이단 논박 · 3권

Ἔλεγχος καὶ ἀνατροπὴ τῆς ψευδωνύμου γνώσεως

이레네우스

서두

지극히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는 우리에게 당부했다. 발렌티노스 계열의 견해들, 곧 그들 스스로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견해들을 밝혀 내고, 그들 사이의 차이를 드러내며, 그들을 무너뜨리는 논증을 제시해 달라고 했다. 모든 이단자의 아버지인 시몬에게서 그들이 비롯되었음을 밝히며, 그들의 가르침과 계승을 드러내고 그들 모두를 반박하는 일에 우리는 착수했다. 그들을 폭로하고 여러 점에서 무너뜨리는 일이 하나의 작업이므로, 우리는 그대에게 책들을 보냈다. 첫째 책은 그들 모두의 견해를 담고, 그들의 관습과 생활의 특징을 드러낸다. 둘째 책에서는 그들이 잘못 가르치는 것들이 해체되고 무너졌으며, 실제로 어떤 것인지 벌거벗겨져 드러났다. 이 셋째 책에서는 성경에서 증거를 제시하여, 그대가 당부한 것 가운데 우리가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그뿐 아니라 그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어떤 방식으로든 그릇되게 가르치는 자들을 논박하고 무너뜨릴 근거들을 우리에게서 얻게 하겠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랑은 풍성하고 인색하지 않아서, 누군가 그 사랑에 청하는 것보다 더 많이 베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의 두 책에서 우리가 말한 것들을 기억하라. 이 내용을 그것들과 연결하면, 모든 이단자에 대한 반론을 우리에게서 아주 충실하게 얻게 될 것이며, 교회가 사도들에게 받아 자기 자녀들에게 나누어 준 유일하고 참되며 생명을 주는 믿음을 위해, 확신을 갖고 온 힘을 다하여 그들에게 맞설 것이다. 만물의 주님이 자기 사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권한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진리, 곧 하나님의 아들의 가르침을 알게 되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를 듣는 이는 나를 듣는다. 너희를 업신여기는 이는 나를 업신여기며, 나를 보내신 이도 업신여긴다.”

Tu quidem, dilectissime, praeceperas nobis, ut eas quae a Valentino sunt sententias absconditas ut ipsi putant in manifestum proderem, et ostenderem varietatem ipsorum, et sermonem destruentem eos inferrem. Aggressi sumus autem nos, arguentes eos a Simone patre omnium haereticorum, et doctrinas et successiones manifestare, et omnibus eis contradicere: propter quod cum sit unius operis traductio eorum et destructio in multis, misimus tibi libros, ex quibus primus quidem omnium illorum sententias continet, et consuetudines et characteres ostendit conversationis eorum. In secundo vero destructa et eversa sunt quae ab ipsis male docentur, et nudata et ostensa sunt talia qualia et sunt. In hoc autem tertio ex Scripturis inferemus ostensiones, ut nihil tibi ex his quae praeceperas, desit a nobis; sed et, praeterquam opinabaris, ad arguendum et evertendum eos qui quolibet modo male docent, occasiones a nobis accipias. Quae enim est in Deo caritas, dives et sine invidia exsistens, plura donat quam postulet quis ab ea. Memento igitur eorum quae diximus in prioribus duobus libris; et haec illis adjungens, plenissimam habebis a nobis adversus omnes haereticos contradictionem, et fiducialiter ac instantissime resistes eis pro sola vera ac vivifica fide, quam ab Apostolis Ecclesia percepit, et distribuit filiis suis. Etenim Dominus omnium dedit Apostolis suis potestatem Evangelii, per quos et veritatem, hoc est Dei Filii doctrinam, cognovimus; quibus et dixit Dominus: Qui vos audit, me audit: et qui vos contemnit, me contemnit, et eum qui me misit.

1.1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이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우리 구원의 경륜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그때 복음을 선포했고, 그 뒤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록으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우리 믿음의 토대와 기둥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들이 완전한 지식을 갖기 전에 선포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말을 감히 하며 자기들이 사도들을 바로잡는 이들이라고 자랑하는 자들도 있다. 우리 주님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나신 뒤, 성령이 임하시자 사도들은 위로부터의 권능을 입었고, 모든 것으로 충만해져 완전한 지식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땅끝까지 나아가, 하나님에게서 우리에게 온 좋은 것들을 복음으로 전하고 사람들에게 하늘의 평화를 알렸다. 그들 모두가 똑같이, 각자가 하나님의 복음을 지니고 있었다.

Non enim per alios dispositionem salutis nostrae cognovimus, quam per eos per quos Evangelium pervenit ad nos: quod quidem tunc praeconaverunt, postea vero per Dei voluntatem in Scripturis nobis tradiderunt, fundamentum et columnam fidei nostrae futurum. Nec enim fas est dicere, quoniam ante praedicaverunt quam perfectam haberent agnitionem; sicut quidam audent dicere, gloriantes emendatores se esse Apostolorum. Postea enim quam surrexit Dominus noster a mortuis, et induti sunt supervenientis Spiritus sancti virtutem ex alto, de omnibus adimpleti sunt, et habuerunt perfectam agnitionem; exierunt in fines terrae, ea quae a Deo nobis bona sunt evangelizantes, et coelestem pacem hominibus annuntiantes, qui quidem et omnes pariter et singuli eorum habentes Evangelium Dei.

1.2

그리하여 마태는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로 복음을 글로 펴냈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던 때였다. 그들이 떠난 뒤,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자인 마가도 베드로가 선포한 것들을 글로 우리에게 전해 주었다. 바울을 따르던 누가도 바울이 선포하던 복음을 책에 담았다. 그 뒤에는 주님의 제자 요한,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웠던 그 요한도 아시아의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펴냈다. 이들 모두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알린,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한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이신 한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했다. 이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이는 주님과 함께한 이들을 업신여기고, 그리스도 주님 자신을 업신여기며, 아버지도 업신여기는 것이다. 자기 구원에 맞서 저항하므로, 스스로 정죄받은 자이다. 모든 이단자가 그렇게 한다.

Ita Matthaeus in Hebraeis ipsorum lingua scripturam edidit Evangelii, cum Petrus et Paulus Romae evangelizarent, et fundarent Ecclesiam. Post vero horum excessum, Marcus discipulus et interpres Petri, et ipse quae a Petro annuntiata erant, per scripta nobis tradidit. Et Lucas autem sectator Pauli, quod ab illo praedicabatur Evangelium, in libro condidit. Postea et Johannes discipulus Domini, qui et supra pectus ejus recumbebat, et ipse edidit Evangelium, Ephesi Asiae commorans. Et omnes isti unum Deum factorem coeli et terrae a lege et prophetis annuntiatum, et unum Christum filium Dei tradiderunt nobis: quibus si quis non assentit, spernit quidem participes Domini, spernit autem et ipsum Christum Dominum, spernit vero et Patrem, et est a semetipso damnatus, resistens et repugnans saluti suae: quod faciunt omnes haeretici.

2.1

그들은 성경으로 논박을 받으면, 도리어 성경 자체를 비난한다. 성경이 올바르지도 않고 권위도 없으며, 여러 방식으로 말해져 있고, 전승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거기서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듯이 말한다. 그들은 진리가 글을 통해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목소리로 전해졌으며, 그래서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온전한 이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한다. 그러나 이 세상의 지혜는 아니다.” 그들 각자는 자기가 꾸며 낸 것이 바로 이 지혜라고 말한다. 그것은 곧 허구이다. 그들의 생각에 걸맞게, 진리는 어떤 때에는 발렌티노스에게, 어떤 때에는 마르키온에게, 어떤 때에는 케린토스에게, 그 뒤에는 바실리데스에게 있게 되는 셈이다. 구원에 관한 말을 전혀 하지 못했던, 반박하는 또 다른 사람에게도 있었다는 셈이다. 그들은 저마다 완전히 비뚤어져, 진리의 규범을 왜곡하며 자기 자신을 선포하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Cum enim ex Scripturis arguuntur, in accusationem convertuntur ipsarum Scripturarum, quasi non recte habeant, neque sint ex auctoritate, et quia varie sint dictae, et quia non possit ex his inveniri veritas ab his qui nesciant traditionem. Non enim per literas traditam illam, sed per vivam vocem: ob quam causam et Paulum dixisse: Sapientiam autem loquimur inter perfectos: sapientiam autem non mundi hujus. Et hanc sapientiam unusquisque eorum esse dicit, quam a semetipso adinvenit, fictionem videlicet, ut digne secundum eos sit veritas, aliquando quidem in Valentino, aliquando autem in Marcione, aliquando in Cerintho, postea deinde in Basilide, fuit aut et in illo qui contra disputat, qui nihil salutare loqui potuit. Unusquisque enim ipsorum omnimodo perversus, semetipsum regulam veritatis depravans praedicare non confunditur.

2.2

우리가 다시 그 전승, 사도들에게서 비롯되고 교회들에서 장로들의 계승을 통해 보존되는 전승으로 그들을 이끌면, 그들은 전승에도 반대한다. 자기들이 장로들뿐 아니라 사도들보다도 더 지혜로워 순수한 진리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사도들이 율법에 속한 것들을 구원자의 말씀에 섞었다고 주장하며, 사도들뿐 아니라 주님 자신도 어떤 때에는 데미우르고스에게서, 어떤 때에는 중간 영역에서, 때로는 최상위 영역에서 나온 말을 하셨다고 한다. 반면 자기들은 의심 없이, 아무 섞임 없이 순수하게 감추어진 신비를 안다고 한다. 이것은 자기 창조자를 지극히 뻔뻔하게 모독하는 일이다. 결국 그들은 이제 성경에도 전승에도 동의하지 않게 된다. 지극히 사랑하는 이여, 뱀처럼 미끄러지며 사방으로 빠져나가려는 그런 자들과 우리는 싸우고 있다. 그러므로 사방에서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되받아 논박하여 진리로 돌아오도록 이끌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류에 붙잡힌 혼이 정신을 차리기는 쉽지 않으나, 진리가 제시되었을 때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Cum autem ad eam iterum traditionem, quae est ab Apostolis, quae per successiones Presbyterorum in Ecclesiis custoditur, provocamus eos, adversantur traditioni, dicentes se non solum Presbyteris, sed etiam Apostolis exsistentes sapientiores, sinceram invenisse veritatem. Apostolos enim admiscuisse ea quae sunt legalia Salvatoris verbis: et non solum Apostolos, sed etiam ipsum Dominum, modo quidem a Demiurgo, modo autem a medietate, interdum autem a summitate fecisse sermones: se vero indubitate, et intaminate, et sincere absconditum scire mysterium: quod quidem impudentissime est blasphemare suum factorem. Evenit itaque, neque Scripturis jam, neque traditioni consentire eos. Adversus tales certamen nobis est, o dilectissime, more serpentum lubrice undique effugere conantes. Quapropter undique resistendum est illis, si quos ex his retusione confundentes, ad conversionem veritatis adducere possimus. Etenim si non facile est ab errore apprehensam resipiscere animam, sed non omnimodo impossibile est errorem effugere apposita veritate.

3.1

그러므로 진실을 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어느 교회에서나 온 세상에 드러난 사도들의 전승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는 사도들이 교회들에 세운 감독들과 우리에게까지 이르는 그들의 계승을 차례로 헤아릴 수 있다. 그들은 이들이 떠들어 대는 것과 같은 일은 전혀 가르치지도 알지도 못했다. 사도들이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따로 은밀히 완전한 이들에게 가르치던 감추어진 신비를 알고 있었다면, 교회들 자체를 맡긴 이들에게 그것을 무엇보다 먼저 전했을 것이다. 사도들은 후계자로 남겨 두면서 자신들의 가르치는 자리를 넘겨준 이들이 모든 면에서 매우 완전하고 흠이 없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올바로 행동하면 큰 유익이 생기고, 넘어지면 더없이 큰 재앙이 생길 것이었다. 이와 같은 책에서 모든 교회의 계승을 열거하면 너무 길어지므로, 우리는 매우 크고 오래되었으며 모두에게 알려진 교회, 가장 영광스러운 두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 세우고 확립한 교회를 들어 말한다. 그 교회가 사도들에게서 받은 전승과 사람들에게 선포된 믿음이 감독들의 계승을 통해 우리에게까지 이르렀음을 밝힘으로써, 악한 자기만족으로든 헛된 영광으로든, 또는 눈멀고 그릇된 생각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마땅치 않게 모이는 모든 이들을 우리는 부끄럽게 한다. 모든 교회, 곧 각처의 신자들은 더 큰 권위 때문에 이 교회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는 사도들에게서 온 전승이 각처의 이들에 의해 늘 보존되어 왔다.

Traditionem itaque Apostolorum in toto mundo manifestatam, in omni Ecclesia adest perspicere omnibus qui vera velint videre, et habemus annumerare eos qui ab Apostolis instituti sunt Episcopi in ecclesiis, et successiones eorum usque ad nos, qui nihil tale docuerunt, neque cognoverunt, quale ab his deliratur. Etenim si recondita mysteria scissent Apostoli, quae seorsim et latenter ab reliquis perfectos docebant, his vel maxime traderent ea quibus etiam ipsas ecclesias committebant. Valde enim perfectos et irreprehensibiles in omnibus eos volebant esse, quos et successores relinquebant, suum ipsorum locum magisterii tradentes: quibus emendate agentibus fieret magna utilitas, lapsis autem summa calamitas. Sed quoniam valde longum est, in hoc tali volumine omnium ecclesiarum enumerare successiones, maximae, et antiquissimae, et omnibus cognitae, a gloriosissimis duobus Apostolis Petro et Paulo Romae fundatae et constitutae ecclesiae, eam quam habet ab Apostolis traditionem, et annuntiatam hominibus fidem, per successiones Episcoporum pervenientem usque ad nos indicantes, confundimus omnes eos, qui quoquo modo vel per sibiplacentiam malam, vel vanam gloriam, vel per caecitatem et malam sententiam, praeterquam oportet colligunt. Ad hanc enim ecclesiam propter potentiorem principalitatem necesse est omnem convenire Ecclesiam, hoc est, eos qui sunt undique fideles, in qua semper ab his, qui sunt undique, conservata est ea quae est ab Apostolis traditio.

3.2

이처럼 복된 사도들은 교회를 세우고 갖춘 뒤, 리누스에게 교회를 돌보는 감독직을 맡겼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이 리누스를 언급한다. 그 뒤를 아나클레토스가 이었고, 그 다음에는 사도들로부터 셋째로 클레멘스가 감독직을 받았다. 그는 사도들을 직접 보았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도들의 선포가 여전히 울리고 전승이 눈앞에 생생하던 이는 그만이 아니었다. 사도들에게 배운 이들이 그때 아직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 클레멘스 때에, 고린토의 형제들 사이에서 큰 분쟁이 일어나자, 로마 교회는 고린토인들에게 매우 힘 있는 편지를 썼다. 그들을 평화로 모으고 그들의 믿음을 새롭게 하며, 얼마 전에 사도들에게서 받은 전승을 알렸다. 그 전승은 전능하신 한 하나님, 하늘과 땅을 만드신 이요 사람을 빚으신 이를 선포했다. 그분은 홍수를 일으키시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으며,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율법을 세우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셨으며,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불을 준비하셨다.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이 편지 자체에서, 교회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이분을 선포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으며, 교회의 사도적 전승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거짓을 가르치고 데미우르고스, 곧 이 모든 존재를 만드신 이 위에 또 다른 신을 꾸며 내는 자들보다 이 편지가 더 오래되었기 때문이다.

Fundantes igitur et instruentes beati Apostoli Ecclesiam, Lino episcopatum administrandae Ecclesiae tradiderunt. Hujus Lini Paulus in his quae sunt ad Timotheum epistolis meminit. Succedit autem ei Anacletus: post eum tertio loco ab Apostolis episcopatum sortitur Clemens, qui et vidit ipsos Apostolos, et contulit cum eis, et cum adhuc insonantem praedicationem Apostolorum et traditionem ante oculos haberet, non solus; adhuc enim multi supererant tunc ab Apostolis docti. Sub hoc igitur Clemente, dissensione non modica inter eos qui Corinthi essent fratres facta, scripsit quae est Romae Ecclesia potentissimas literas Corinthiis, ad pacem eos congregans, et reparans fidem eorum, et annuntians quam in recenti ab Apostolis acceperat traditionem, annuntiantem unum Deum omnipotentem, factorem coeli et terrae, plasmatorem hominis, qui induxerit cataclysmum, et advocaverit Abraham, qui eduxerit populum de terra Aegypti, qui collocutus sit Moysi, qui legem disposuerit, et prophetas miserit, qui ignem praeparaverit diabolo et angelis ejus. Hunc Patrem Domini nostri Jesu Christi ab ecclesiis annuntiari, ex ipsa scriptura, qui velint discere possunt, et apostolicam Ecclesiae traditionem intelligere, cum sit vetustior epistola his qui nunc falso docent, et alterum Deum super Demiurgum et factorem horum omnium quae sunt commentiuntur.

3.3

이 클레멘스의 뒤를 에바리스토스가 이었고, 에바리스토스의 뒤를 알렉산드로스가 이었다. 그 다음에는 사도들로부터 여섯째로 식스토스가 세워졌으며, 그 뒤를 텔레스포로스가 이었다. 그는 더없이 영광스럽게 순교했다. 그 다음은 휘기노스, 그 뒤는 피우스, 그 다음은 아니케토스였다. 소테르가 아니케토스의 뒤를 이은 다음, 지금은 열두째로 엘레우테리오스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진 감독직을 맡고 있다. 이러한 순서와 계승을 통해 교회 안에 있는 사도들에게서 온 전승과 진리의 선포가 우리에게까지 이르렀다. 이는 교회 안에서 사도들 때부터 지금까지 보존되고 참되게 전해진, 하나이며 동일한 생명을 주는 믿음이 있다는 가장 충분한 증거이다.

Huic autem Clementi succedit Euaristus, et Euaristo Alexander, ac deinceps sextus ab Apostolis constitutus est Sixtus, et ab hoc Telesphorus, qui etiam gloriosissime martyrium fecit: ac deinceps Hyginus, post Pius, post quem Anicetus. Cum autem successisset Aniceto Soter, nunc duodecimo loco Episcopatum ab Apostolis habet Eleutherius. Hac ordinatione et successione ea quae est ab Apostolis in Ecclesia traditio et veritatis praeconatio pervenit usque ad nos. Et est plenissima haec ostensio, unam et eandem vivificatricem fidem esse, quae in Ecclesia ab Apostolis usque nunc sit conservata, et tradita in veritate.

3.4

폴리카르포스도 사도들에게 배웠고, 우리 주님을 본 많은 이들과 교제했다. 나아가 사도들에 의해 아시아의 스미르나 교회에 감독으로 세워졌다. 우리도 그를 보았다. 우리가 젊었을 때였다. 그는 오래 살았고, 매우 늙어서 더없이 영광스럽고 고귀하게 순교하며 이 세상을 떠났다. 그는 사도들에게 배운 것들을 늘 가르쳤고, 그것들을 교회에도 전했다. 이것들만이 참되다. 아시아의 모든 교회와 지금까지 폴리카르포스의 뒤를 이은 이들이 이를 증언한다. 그는 발렌티노스와 마르키온, 그릇된 견해를 지닌 다른 이들보다 훨씬 더 큰 권위를 지녔고, 더 믿을 만한 진리의 증인이다. 바로 그가 아니케토스 때에 그 도시에 와서 우리가 앞서 말한 이단자들 가운데 많은 이를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오게 했다. 그는 사도들에게서 이 하나뿐인 진리를 받았다고 선포했고, 그 진리를 교회에도 전했다. 그에게서 다음 이야기를 들은 이들도 있다. 주님의 제자 요한이 에베소에서 목욕하러 갔다가 안에 케린토스가 있는 것을 보고 씻지도 않은 채 목욕탕에서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안에 진리의 원수인 케린토스가 있으니 목욕탕이 무너질까 두렵다고 하면서였다. 언젠가 마르키온이 그를 만나 “우리를 아시오?”라고 묻자, 폴리카르포스 자신도 이렇게 대답했다. “너를 사탄의 맏아들로 안다.”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진리를 훼손한 이들 누구와도 말조차 나누지 않을 만큼 크게 두려워했다.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이단자는 한 번 훈계한 뒤에 피하라. 그런 사람은 그릇되었고 스스로 정죄받은 줄 알아라.” 폴리카르포스가 필리피인들에게 매우 충실하게 쓴 편지도 있다. 배우고자 하며 자기 구원을 염려하는 이들은 이 편지를 통해 그의 믿음의 성격과 진리의 선포를 배울 수 있다. 에베소 교회도 바울이 세웠고, 요한이 트라야누스 때까지 그들 곁에 머물렀으므로, 사도들의 전승에 대한 참된 증인이다.

Et Polycarpus autem non solum ab Apostolis edoctus, et conversatus cum multis ex eis qui Dominum nostrum viderunt; sed etiam ab Apostolis in Asia, in ea quae est Smyrnis Ecclesia constitutus Episcopus, quem et nos vidimus in prima nostra aetate, multum enim perseveravit, et valde senex gloriosissime et nobilissime martyrium faciens exivit de hac vita, haec docuit semper quae ab Apostolis didicerat, quae et Ecclesiae tradidit, et sola sunt vera. Testimonium his perhibent quae sunt in Asia ecclesiae omnes, et qui usque adhuc successerunt Polycarpo: qui vir multo majoris auctoritatis, et fidelior veritatis est testis, quam Valentinus et Marcion, et reliqui qui sunt perversae sententiae. Is enim est qui sub Aniceto cum advenisset in urbem, multos ex his quos praediximus, haereticos convertit in Ecclesiam Dei, unam et solam hanc veritatem annuntians ab Apostolis percepisse se, quam et Ecclesiae tradidit. Et sunt qui audierunt eum, quoniam Johannes Domini discipulus in Epheso iens lavari, cum vidisset intus Cerinthum, exsilierit de balneo non lotus, dicens, quod timeat ne balneum concidat, cum intus esset Cerinthus inimicus veritatis. Et ipse autem Polycarpus Marcioni aliquando occurrenti sibi, et dicenti, Cognoscis nos? respondit: Cognosco te primogenitum Satanae. Tantum Apostoli et horum discipuli habuerunt timorem, ut neque verbo tenus communicarent alicui eorum qui adulteraverant veritatem, quemadmodum et Paulus ait: Haereticum autem hominem post unam correptionem devita, sciens quoniam perversus est qui est talis, et est a semetipso damnatus. Est autem et epistola Polycarpi ad Philippenses scripta perfectissima, ex qua et characterem fidei ejus, et praedicationem veritatis, qui volunt et curam habent suae salutis, possunt discere. Sed et quae est Ephesi ecclesia a Paulo quidem fundata, Johanne autem permanente apud eos usque ad Trajani tempora, testis est verus Apostolorum traditionis.

4.1

이처럼 많은 증거가 있으므로, 교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진리를 더는 다른 이들에게서 찾을 필요가 없다. 사도들이 부자가 보관소에 맡기듯, 진리에 속한 모든 것을 교회에 아낌없이 맡겨 두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원하면 교회에서 생명의 음료를 마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교회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나머지는 모두 도둑이며 강도이다. 그러므로 그들을 피하고, 교회에 속한 것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진리의 전승을 붙잡아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어떤 작은 문제를 두고 논쟁이 일어나더라도, 사도들이 교제했던 아주 오래된 교회들을 찾아가, 그 교회들에서 당면한 문제에 관해 확실하고 실제로 분명한 것을 얻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 사도들조차 우리에게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들이 교회를 맡긴 이들에게 전한 전승의 질서를 따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여러 이방 민족은 이 질서에 동의한다. 종이나 잉크 없이, 영을 통해 자기 마음에 기록된 구원을 지니고, 오래된 전승을 부지런히 지키면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늘과 땅,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한 하나님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빚으신 것을 향한 더없이 큰 사랑 때문에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친히 자신을 통해 사람을 하나님과 결합시키시고, 폰티우스 빌라도 아래서 수난을 겪으셨으며, 다시 살아나시고 찬란함 가운데 영접되셨다. 구원받는 이들의 구원자로, 심판받는 이들의 심판자로 영광 가운데 오실 분이다.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과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오심을 멸시하는 자들을 영원한 불 속으로 보내실 분이다. 기록 없이 이 믿음을 믿은 이들은 우리의 언어로 보면 이방인이다. 그들의 생각과 관습과 행실을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더없이 지혜롭다. 모든 의로움과 정결과 지혜 가운데 살아가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누군가 그들의 언어로 말하면서 이단자들이 꾸며 낸 것을 그들에게 알린다면, 그들은 곧 귀를 막고 멀리멀리 달아날 것이다. 모독하는 말을 듣는 것조차 참지 못해서이다. 이처럼 사도들에게서 온 그 오래된 전승을 통해, 그들의 괴이한 말은 무엇이든 마음속에 생각으로 받아들이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에는 모임도 없었고, 확립된 가르침도 없었기 때문이다.

Tantae igitur ostensiones cum sint, non oportet adhuc quaerere apud alios veritatem, quam facile est ab Ecclesia sumere; cum Apostoli, quasi in depositorium dives, plenissime in eam contulerint omnia quae sint veritatis: uti omnis quicunque velit, sumat ex ea potum vitae. Haec est enim vitae introitus; omnes autem reliqui fures sunt et latrones. Propter quod oportet devitare quidem illos; quae autem sunt Ecclesiae, cum summa diligentia diligere, et apprehendere veritatis traditionem. Quid enim? Et si de aliqua modica quaestione disceptatio esset, nonne oporteret in antiquissimas recurrere ecclesias, in quibus Apostoli conversati sunt, et ab eis de praesenti quaestione sumere quod certum et re liquidum est? Quid autem si neque Apostoli quidem Scripturas reliquissent nobis, nonne oportebat ordinem sequi traditionis, quam tradiderunt iis quibus committebant ecclesias? Cui ordinationi assentiunt multae gentes barbarorum eorum qui in Christum credunt, sine charta vel atramento scriptam habentes per Spiritum in cordibus suis salutem, et veterem traditionem diligenter custodientes, in unum Deum credentes fabricatorem coeli et terrae, et omnium quae in eis sunt, per Christum Jesum Dei Filium. Qui propter eminentissimam erga figmentum suum dilectionem, eam quae esset ex Virgine generationem sustinuit, ipse per se hominem adunans Deo, et passus sub Pontio Pilato, et resurgens, et in claritate receptus, in gloria venturus Salvator eorum qui salvantur, et judex eorum qui judicantur, et mittens in ignem aeternum transfiguratores veritatis, et contemtores Patris sui et adventus ejus. Hanc fidem qui sine literis crediderunt, quantum ad sermonem nostrum, barbari sunt: quantum autem ad sententiam, et consuetudinem, et conversationem, propter fidem perquam sapientissimi sunt, et placent Deo, conversantes in omni justitia et castitate et sapientia. Quibus si aliquis annuntiaverit ea quae ab haereticis adinventa sunt, proprio sermone eorum colloquens, statim concludentes aures longo longius fugient, ne audire quidem sustinentes blasphemum colloquium. Sic per illam veterem Apostolorum traditionem, ne in conceptionem quidem mentis admittunt, quodcunque eorum portentiloquium est, neque enim congregatio fuit apud eos, neque doctrina instituta.

4.2

발렌티노스 이전에는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키온 이전에는 마르키온을 따르는 이들이 없었다. 우리가 앞서 열거한 다른 악한 견해들도 그들의 그릇됨을 처음 시작하고 꾸며 낸 자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전혀 없었다. 발렌티노스는 휘기노스 때에 로마에 왔으며, 피우스 때에 세력을 키우고 아니케토스 때까지 머물렀다. 마르키온에 앞섰던 케르돈도 여덟째 감독이었던 휘기노스 때에, 자주 교회에 와서 공개 고백을 하며 그렇게 지냈다. 때로는 은밀하게 가르쳤고, 때로는 공개 고백을 했으며, 때로는 잘못 가르친 것들이 다른 이들에 의해 드러났다. 그리고 경건한 이들의 모임에서 떨어져 나갔다.

Ante Valentinum enim non fuerunt, qui sunt a Valentino; neque ante Marcionem erant, qui sunt a Marcione; neque omnino erant reliqui sensus maligni, quos supra enumeravimus, antequam initiatores et inventores perversitatis eorum fierent. Valentinus enim venit Romam sub Hygino; increvit vero sub Pio, et prorogavit tempus usque ad Anicetum. Cerdon autem qui ante Marcionem, et hic sub Hygino, qui fuit octavus episcopus, saepe in ecclesiam veniens, et exhomologesin faciens, sic consummavit, modo quidem latenter docens, modo vero exhomologesin faciens, modo vero ab aliquibus traductus in his quae docebat male, et abstentus est a religiosorum hominum conventu.

4.3

그 뒤를 이은 마르키온은 감독직의 열째 자리를 차지한 아니케토스 때에 세력을 키웠다. 영지주의자라고 불리는 다른 이들은 우리가 밝혔듯이, 시몬의 제자 메난드로스에게서 시작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이 받아들인 견해의 아버지이자 지도자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훨씬 뒤에, 교회가 이미 얼마 동안 존속한 때에, 자기들의 배교를 일으켰다.

Marcion autem illi succedens invaluit sub Aniceto, decimum locum episcopatus continente. Reliqui vero qui vocantur Gnostici, a Menandro Simonis discipulo, quemadmodum ostendimus, accipientes initia, unusquisque eorum, cujus participatus est sententiae, ejus et pater, et antistes apparuit. Omnes autem hi multo posterius, mediantibus jam Ecclesiae temporibus, insurrexerunt in suam apostasiam.

5.1

이처럼 사도들에게서 온 전승이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이 존재하고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으니, 복음도 기록한 사도들의 성경에서 나오는 증거로 돌아가자. 그들은 이 기록들에서 하나님에 관한 가르침을 서술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이시고, 그분 안에 거짓이 없음을 밝혔다. 다윗도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실 것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났다.” 사도들도 진리의 제자들이므로 모든 거짓에서 벗어나 있다. 어둠이 빛과 함께할 수 없듯이, 거짓도 진리와 함께할 수 없고,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진리이시기에 거짓말하지 않으셨다. 어떤 존재가 결함의 열매라고 알고 계셨다면, 그 존재를 하나님, 곧 만물의 하나님이요 가장 높으신 왕이며 자신의 아버지라고 결코 고백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완전한 분이 불완전한 존재를, 영적인 분이 혼적인 존재를, 플레로마 안에 계신 분이 플레로마 밖의 존재를 그렇게 고백하셨겠는가? 그분의 제자들도 참으로 만물의 하나님이요 주님이신 분 외에 다른 어떤 이를 하나님이라 부르거나 주님이라 일컫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더없이 허황된 궤변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도들이 듣는 이들의 수용 능력에 따라 위선으로 가르쳤고, 묻는 이들의 선입견에 따라 대답했다는 것이다. 눈먼 이들에게는 그들의 눈먼 상태에 맞추어 눈먼 이야기를 하고, 병든 이들에게는 그들의 병에 맞추어, 잘못된 길에 있는 이들에게는 그들의 잘못에 맞추어 말했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만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를 선포했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비유와 수수께끼로 말할 수 없는 신비를 제시했다고 한다. 곧 주님과 사도들이 진리 자체의 모습에 따라 가르침을 내놓으신 것이 아니라, 위선으로,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대로 가르침을 내놓으셨다는 것이다.

Traditione igitur quae est ab Apostolis, sic se habente in Ecclesia, et permanente apud nos, revertamur ad eam, quae est ex Scripturis ostensionem eorum qui et Evangelium conscripserunt Apostolorum, ex quibus conscripserunt de Deo sententiam, ostendentes quoniam Dominus noster Jesus Christus veritas est, et mendacium in eo non est. Quemadmodum et David eam quae est ex Virgine generationem ejus, et eam quae est ex mortuis resurrectionem prophetans ait: Veritas de terra orta est. Et Apostoli autem discipuli veritatis exsistentes, extra omne mendacium sunt: non enim communicat mendacium veritati, sicut non communicant tenebrae luci; sed praesentia alterius excludit alterum. Veritas ergo Dominus noster exsistens, non mentiebatur: et quem sciebat labis esse fructum, non utique Deum confiteretur et Deum omnium et summum Regem et Patrem suum, perfectus imperfectum, spiritalis animalem, is qui in Pleromate esset eum qui extra Pleroma. Neque discipuli ejus alium quemdam Deum nominarent, aut Dominum vocarent praeter eum, qui vere esset Deus et Dominus omnium: quemadmodum dicunt hi, qui sunt vanissimi sophistae, quoniam Apostoli cum hypocrisi fecerunt doctrinam secundum audientium capacitatem, et responsiones secundum interrogantium suspiciones, caecis caeca confabulantes secundum caecitatem ipsorum, languentibus autem secundum languorem ipsorum, et errantibus secundum errorem eorum: et putantibus Demiurgum solum esse Deum, hunc annuntiasse; his vero qui innominabilem Patrem capiunt, per parabolas et aenigmata inenarrabile fecisse mysterium: uti non quemadmodum habet ipsa veritas, sed et in hypocrisi, et quemadmodum capiebat unusquisque, Dominum et Apostolos edidisse magisterium.

5.2

이런 일은 치료하는 이들이나 생명을 주는 이들이 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병세를 더 무겁게 하고 그들의 무지를 더하는 일이다. 길에서 눈먼 이를 잘못 이끄는 자는 누구나 저주받는다고 하는 율법이 이들보다 훨씬 더 참됨을 알게 될 것이다. 사도들은 길 잃은 이들을 찾고, 보지 못하는 이들이 보게 하며, 병든 이들을 치료하도록 보냄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당시 생각에 맞추어 말하지 않고, 드러난 진리에 따라 말했다. 막 절벽으로 떨어지려는 눈먼 이들에게, 정말 올바른 길이며 무사히 도착할 것처럼 말하며, 그토록 위험한 길을 계속 가라고 권한다면, 어느 누구라도 올바로 행동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환자를 치료하려는 어떤 의사가 치료에 알맞은 것을 따르지 않고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겠는가? 주님께서 병든 이들의 의사로 오셨다는 것은 그분이 친히 이렇게 말씀하며 증언하신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병든 이들에게 필요하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회개로 부르러 왔다.” 그렇다면 병든 이들이 어떻게 회복하겠는가? 죄인들이 어떻게 회개하겠는가? 바로 그 상태를 계속 지킴으로써인가? 아니면 그 반대로, 스스로 무거운 병과 많은 죄를 불러들였던 이전의 삶을 크게 바꾸고 벗어남으로써인가? 이 모든 것의 어머니인 무지는 앎을 통해 사라진다. 그러므로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앎을 주셨고, 그 앎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시며 죄인들이 죄를 짓지 못하도록 막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이전 생각에 맞추어 말씀하지 않으셨고, 묻는 이들의 선입견에 맞추어 대답하지도 않으셨다. 구원을 주는 가르침에 따라, 위선 없이,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말씀하셨다.

Hoc autem non est sanantium, nec vivificantium, sed magis gravantium, et augentium ignorantiam ipsorum: et multo verior his Lex invenietur, maledictum dicens omnem, qui in errorem mittat caecum in via. Qui enim ad inventionem missi erant errantium Apostoli, et ad visionem eorum qui non videbant, et ad medicinam languentium, utique non secundum praesentem opinionem colloquebantur eis, sed secundum veritatis manifestationem. Nec enim quilibet homines recte facient, si caecos jamjamque per praecipitium ferri incipientes, adhortentur insistere illi periculosissimae viae, quasi vere rectae, et quasi bene perventuri sint. Quis autem medicus volens curare aegrotum, faciet secundum concupiscentias aegrotantis, et non secundum quod aptum est medicinae? Quoniam autem Dominus medicus venit eorum qui male habent, ipse testificatur, dicens: Non est opus sanis medicus, sed male habentibus. Non veni vocare justos, sed peccatores ad poenitentiam. Quomodo ergo qui male habent confirmabuntur? et quomodo peccatores poenitentiam agent? Utrum perseverantes in eisdem ipsis; an e contrario, magnam commutationem et transgressionem prioris conversationis accipientes, per quam et aegritudinem non modicam, et multa peccata sibimetipsis importaverunt? Ignorantia autem mater horum omnium per agnitionem evacuatur. Agnitionem ergo faciebat Dominus suis discipulis, per quam et curabat laborantes, et peccatores a peccato coercebat. Non igitur jam secundum pristinam opinionem loquebatur eis, neque secundum suspicionem interrogantium respondebat eis; sed secundum doctrinam salutarem, et sine hypocrisi, et sine personae acceptatione.

5.3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서도 드러난다. 주님은 할례받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을 보이셨고, 예언자들이 미리 선포한 그리스도, 곧 자신을 드러내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되돌려 주시고 썩지 않음의 유산을 주셨다. 사도들은 또 이방 민족들에게 신이라고 생각하던 헛된 나무와 돌을 버리고, 참 하나님을 섬기라고 가르쳤다. 그분은 온 인류를 세우고 만드셨으며,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 그들을 먹이고 자라게 하며 굳게 세우시고, 그들이 존재하게 하신 분이다. 사도들은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라고 가르쳤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기 피로 배교에서 구속하셨다. 우리도 거룩하게 된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은 아버지의 권능으로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모든 이를 심판하시고, 그분의 계명을 지킨 이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좋은 것들을 주실 분이다. 그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신 모퉁이의 으뜸돌로서, 먼 이들과 가까운 이들, 곧 할례자와 무할례자를 하나로 모으고 결합하셨다. 야벳을 넓혀 주시고 그를 셈의 집에 살게 하셨다.

Quod etiam ex Domini sermonibus ostenditur: qui quidem his qui erant ex circumcisione ostendebat Filium Dei, eum qui per prophetas praedicatus fuerat Christum, hoc est semetipsum, manifestabat, qui libertatem hominibus restauraverit, et attribuerit incorruptelae haereditatem. Gentes autem iterum docebant Apostoli, ut relinquerent vana ligna et lapides, quae suspicabantur esse deos, et verum colerent Deum, qui constituisset et fecisset omne humanum genus, et per conditionem suam aleret et augeret et constabiliret, et eis esse praestaret; et ut exspectarent filium ejus Jesum Christum, qui redemit nos de apostasia sanguine suo, ad hoc ut essemus et nos populus sanctificatus, de coelis descensurum in virtute Patris, qui et judicium omnium facturus est, et ea quae a Deo sunt bona donaturus his, qui servaverint praecepta ejus. Hic in novissimis temporibus apparens, lapis summus angularis, in unum collegit, et univit eos qui longe, et eos qui prope, hoc est, circumcisionem et praeputium, dilatans Japhet, et constituens eum in domo Sem.

6.1

그러므로 주님도 성령도 사도들도 하나님이 아닌 이를, 참으로 하나님이 아니라면, 단정적으로, 아무 한정 없이 하나님이라 부른 적이 없었을 것이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와,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모든 창조물을 다스릴 권한을 받은 그분의 아들 외에, 자신의 말로 누구를 주님이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음 말씀이 이와 같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라.’” 이 말씀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씀하셨음을 드러낸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민족들을 유산으로 주시고 모든 원수를 그에게 복종시키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참으로 주님이시고 아들도 참으로 주님이시므로, 성령께서 두 분을 주님이라는 호칭으로 나타내신 것은 합당하다. 또 소돔 사람들의 멸망을 두고 성경은 말한다. “주께서 소돔과 고모라 위에 하늘에서 주에게서 오는 불과 유황을 비처럼 내리셨다.” 아브라함과 말씀을 나누신 아들이 소돔 사람들의 불의 때문에 그들을 심판할 권한을 아버지에게서 받았다는 것을 이 대목은 뜻한다. 다음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왕좌는 영원합니다. 당신 나라의 왕홀은 올곧음의 왕홀입니다. 당신은 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아들과 기름을 붓는 분, 곧 아버지, 두 분 모두를 성령께서 하나님이라는 호칭으로 나타내신 것이다. 또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신들의 모임에 서시고, 그 가운데서 신들을 심판하신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양자로 받아들여진 이들을 말하는 것이며, 이들은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임이며, 하나님, 곧 아들이 친히 모으신 모임이다. 그분을 두고 다시 말한다. “신들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말씀하시고 땅을 부르셨다.” 어느 하나님인가? 다음 말씀의 대상이신 분이다.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오실 것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지 않으실 것이다.” 곧 아들이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드러나 오셨으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찾지 않는 이들에게 내가 뚜렷이 나타났다.” 그렇다면 어느 신들을 말하는가? 다음 말씀을 듣는 이들이다. “내가 말했다. ‘너희는 신들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들이다.’” 곧 양자가 되는 은혜를 받은 이들이다. 그 은혜로 우리는 “아빠, 아버지”라고 외친다.

Neque igitur Dominus, neque Spiritus sanctus, neque Apostoli eum qui non esset Deus, definitive et absolute Deum nominassent aliquando, nisi esset vere Deus; neque Dominum appellassent aliquem ex sua persona, nisi qui dominatur omnium Deum Patrem, et Filium ejus qui dominium accepit a Patre suo omnis conditionis, quemadmodum habet illud: Dixit Dominus Domino meo, Sede a dextris meis, quoadusque ponam inimicos tuos suppedaneum pedum tuorum. Patrem enim Filio collocutum ostendit: qui dedit ei haereditatem gentium, et subjecit ei omnes inimicos. Vere igitur cum Pater sit Dominus, et Filius vere sit Dominus, merito Spiritus sanctus Domini appellatione signavit eos. Et iterum in eversione Sodomitarum Scriptura ait: Et pluit Dominus super Sodomam et Gomorrham ignem et sulfur a Domino de coelo. Filium enim hic significat, qui et Abrahae collocutus sit, a Patre accepisse potestatem judicandi Sodomitas propter iniquitatem eorum. Similiter habet illud: Sedes tua Deus in aeternum; virga directionis, virga regni tui. Dilexisti justitiam, et odisti iniquitatem, propterea unxit te Deus, Deus tuus. Utrosque enim Dei appellatione signavit Spiritus, et eum qui ungitur Filium, et eum qui ungit, id est Patrem. Et iterum: Deus stetit in synagoga Deorum, in medio autem deos discernit; de Patre, et Filio, et de his qui adoptionem perceperunt, dicit: hi autem sunt Ecclesia. Haec enim est synagoga Dei, quam Deus, hoc est Filius ipse per semetipsum collegit. De quo iterum dicit: Deus deorum Dominus locutus est, et vocavit terram; quis deus? de quo dixit: Deus manifeste veniet, Deus noster, et non silebit: hoc est Filius, qui secundum manifestationem hominibus advenit, qui dicit: Palam apparui his qui me non quaerunt. Quorum autem deorum? quibus dicit: Ego dixi, Dii estis, et filii Altissimi omnes. His scilicet qui adoptionis gratiam adepti sunt, per quam clamamus: Abba Pater.

6.2

그러므로 앞서 말했듯이, 만물의 하나님이요 주님이신 분,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분이 계신다. “나는 존재하는 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존재하시는 이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분은 자신의 이름을 믿는 이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드신다. 이들 외에 아무도 하나님이라 불리지 않고 주님이라 일컬어지지 않는다. 또 아들은 모세에게 “이 백성을 구하러 내가 내려왔다”라고 말씀하신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내려오고 올라가신 이는 바로 그분이다. 그러므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자신 안에 아버지를 모신 아들을 통해, 존재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드러나셨다. 아버지는 아들을 증언하시고, 아들은 아버지를 알리신다. 이사야도 말한다.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도 증인이며, 내가 택한 종도 증인이다. 내가 존재하는 이임을 너희가 알고 믿고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이 신들이 아닌 것들을 신들이라고 부를 때에는, 앞서 말했듯이, 그들을 아무 한정 없이 신으로 제시하지 않는다. 어떤 말과 설명을 덧붙여, 그들이 신이 아님을 드러낸다. 다윗에게서도 이런 말을 볼 수 있다. “이방 민족들의 신들은 귀신들의 우상이다.” 또 “다른 신들을 따르지 말라.” 이방 민족들의 신들이라고 말하고, 이방 민족들은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그들을 다른 신들이라고 부름으로써, 그들이 신이라는 자격을 없앤 것이다. 자신의 말로는 그들이 무엇인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귀신들의 우상이다.” 이사야도 말한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쓸모없는 것들을 새기는 자들은 모두 부끄러움을 당하여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나도 증인이다.’” 그들이 신이라는 자격을 없애면서, 그 이름만을 사용한다. 무엇을 말하는지 우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같은 말을 한다. “하늘과 땅을 만들지 않은 신들은 하늘 아래 있는 땅에서 사라져라”라고 말한다. 그들의 멸망을 덧붙임으로써, 그들이 신이 아님을 드러낸 것이다. 엘리야도 온 이스라엘을 갈멜산에 모으고, 그들을 우상숭배에서 돌이키려 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언제까지 두 다리로 절뚝거리겠느냐? 주 하나님이 한 분이라면, 그분을 따라오너라.” 또 번제를 드릴 때, 우상들의 사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너희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나는 주 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겠다. 오늘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하나님이시다.” 예언자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그들이 신으로 여기던 것들이 신이 아님을 밝혔고, 자신이 믿으며 참으로 하나님이신 그 하나님께로 그들을 돌이켰다. 그분을 부르며 이렇게 외쳤다. “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오늘 제 말을 들어 주소서. 주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여기 있는 모든 백성이 알게 하소서.”

Nemo igitur alius, quemadmodum praedixi, Deus nominatur, aut Dominus appellatur, nisi qui est omnium Deus et Dominus, qui et Moysi dixit: Ego sum, qui sum. Et sic dices filiis Israel: Qui est, misit me ad vos: et hujus Filius Jesus Christus Dominus noster, qui filios Dei facit credentes in nomen suum. Et iterum, loquente Filio ad Moysen: Descendi, inquit, eripere populum hunc. Ipse est enim qui descendit, et ascendit propter salutem hominum. Per Filium itaque qui est in Patre, et habet in se Patrem, is Qui est, manifestatus est Deus, Patre testimonium perhibente Filio, et Filio annuntiante Patrem. Quemadmodum et Esaias ait: Et ego, inquit, testis, dicit Dominus Deus, et puer quem elegi, uti cognoscatis, et credatis, et intelligatis, quoniam ego sum. Cum autem eos, qui non sunt dii, nominat, non in totum, quemadmodum praedixi, Scriptura ostendit illos deos, sed cum aliquo additamento et significatione, per quam ostenduntur non esse dii. Quemadmodum apud David: Dii Gentium, idola daemoniorum. Et Deos alienos non sectabimini. Ex eo enim quod dicit, dii Gentium, Gentes autem verum Deum nesciunt, et alienos deos nominans eos, abstulit quod sint dii. A sua autem persona quod est dicit de ipsis: Sunt enim idola, inquit, daemoniorum. Et Esaias: Confundantur omnes qui blasphemant Deum, et sculpunt inutilia, et ego testis, dicit Dominus. Abstulit quod sint dii; solo autem utitur nomine, ad hoc, ut sciamus de quo dicit. Hoc autem ipsum et Jeremias: Dii, inquit, qui non fecerunt coelum et terram, pereant de terra quae est sub coelo. Ex eo enim quod perditionem eorum adjecit, ostendit non esse eos Deos. Et Helias autem convocato universo Israël in Carmelum montem, volens eos ab idolatria avertere, ait eis: Quousque claudicabitis vos in ambabus suffraginibus? Si unus est Dominus Deus, venite post eum. Et iterum super holocaustum sic ait idolorum sacerdotibus: Vos invocabitis in nomine deorum vestrorum, et ego invocabo in nomine Domini Dei mei; et Deus qui exaudiet hodie, ipse est Deus. In eo enim quod haec dicebat propheta qui quidem apud ipsos putabantur dii, arguit deos non esse. Convertit autem eos ad eum Deum qui et credebatur ab eo, et qui vere erat Deus, quem et invocans clamabat: Domine Deus Abraham, Deus Isaac, et Deus Jacob, exaudi me hodie: et intelligat omnis populus hic, quoniam tu es Deus Israel.

6.3

그러므로 저도 주님을 부릅니다. 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분이여. 주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자비로 우리에게 호의를 베푸시어, 우리가 주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만물을 다스리시며, 홀로 참 하나님이신 분입니다. 주님 위에는 다른 하나님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의 다스림도 허락해 주소서.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이 주님만 하나님이심을 알고, 주님 안에서 굳건해지며, 온갖 이단적인 견해와 하나님 없는 견해와 불경한 견해에서 벗어나게 해 주소서.

Et ego igitur invoco te Domine Deus Abraham, et Deus Isaac, et Deus Jacob et Israel, qui es Pater Domini nostri Jesu Christi, Deus qui per multitudinem misericordiae tuae bene sensisti in nobis, ut te cognoscamus; qui fecisti coelum et terram, qui dominaris omnium, qui es solus et verus Deus, super quem alius Deus non est; per Dominum nostrum Jesum Christum dominationem quoque dona Spiritus Sancti: da omni legenti hanc scripturam, cognoscere te quia solus Deus es, et confirmari in te, et absistere ab omni haeretica et quae est sine Deo et impia sententia.

6.4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신들이 아닌 것들을 섬겼다 해도,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아니, 하나님께서 너희를 아신다.” 신들이 아닌 것들과 하나님이신 분을 구별한 것이다. 또 적그리스도를 두고 “대적하여 신이라고 불리거나 숭배받는 모든 것 위로 자신을 높이는 자”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것들, 곧 우상을 가리킨다. 만물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 불리며 실제로 하나님이시다. 적그리스도는 그분 위로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신이라고 불리기는 해도 신이 아닌 그것들 위로 높아질 것이다. 이것이 참됨을 바울 자신이 말한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 한 분 외에는 하나님이 없음을 우리는 안다. 하늘에든 땅에든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있다 해도,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위해 존재한다. 또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있으며, 우리도 그분을 통해 존재한다.” 바울은 신이라 불리기는 해도 신이 아닌 것들을 모든 것의 근원이신 한 하나님 아버지와 구별하고 나누었으며, 자신의 말로 한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확고히 고백했다. 하늘에든 땅에든이라고 한 말은, 이들이 풀이하듯이, 바울이 세계 제작자들을 가리킨다는 뜻이 아니다. 모세가 한 다음 말과 비슷하다.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든,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든,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이든, 신으로 삼을 어떤 형상도 너를 위해 만들지 말라.” 하늘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그가 직접 설명한다. “하늘을 바라보고 해와 달과 별, 하늘의 모든 장식을 보다가, 미혹되어 그것들에게 절하고 섬기지 않도록 하여라.” 모세 자신도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파라오 앞에 신으로 세워졌다. 그가 참으로 주님이라 불리거나 예언자들에게서 하나님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아니다. 영께서는 그를 충실한 모세, 하나님의 하인이며 종이라고 부르시며, 그는 실제로 그러했다.

Et Apostolus autem Paulus, dicens: Si enim his qui non erant dii servistis, nunc cognoscentes Deum, imo cogniti a Deo, separavit eos qui non erant, ab eo qui est Deus. Et iterum de Antichristo dicens: Qui adversatur et extollit se, inquit, super omne quod dicitur deus, vel quod colitur, eos qui ab ignorantibus Deum dii dicuntur significat, id est idola. Etenim Pater omnium Deus dicitur, et est: et non super hunc extolletur Antichristus; sed super eos qui dicuntur quidem, non sunt autem dii. Quoniam autem hoc verum est, ipse Paulus ait: Scimus autem, quoniam nihil est idolum, et quoniam nemo Deus, nisi unus. Etenim si sunt qui dicuntur dii, sive in coelo, sive in terra, nobis unus Deus Pater, ex quo omnia, et nos in illum; et unus Dominus Jesus Christus, per quem omnia, et nos per ipsum. Distinxit enim, et separavit eos qui dicuntur quidem, non sunt autem dii, ab uno Deo Patre, ex quo omnia, et unum Dominum Jesum Christum ex sua persona firmissime confessus est. Quod autem sive in coelo, sive in terra, non quemadmodum exponunt hi, dicere eum mundi fabricatores; sed simile est ei quod a Moyse dictum est: Non facies tibi omnem similitudinem in Deum, quaecunque in coelo sursum, et quaecunque in terra deorsum, et quaecunque in aquis sub terra. Quae autem in coelo sunt, quae sint ipse exponit: Ne quando, inquit, respiciens in coelum, et videns solem et lunam et stellas, et omne ornamentum coeli, errans adores ea et servias eis. Et ipse autem Moyses homo Dei exsistens, Deus quidem datus est ante Pharaonem: non autem vere Dominus appellatur, nec Deus vocatur a prophetis, sed fidelis Moyses famulus et servus Dei, dicitur a Spiritu, quod et erat.

7.1

그들은 바울이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 “그들 안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눈멀게 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세상의 신과, 모든 지배와 시초와 권세 위에 있는 신이 서로 다르다고 말한다. 하나님 위의 신비들을 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바울을 읽을 줄조차 모른다면, 그것은 우리 탓이 아니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여러 사례를 통해 그가 어순을 도치한다고 밝혔듯이, 바울의 습관에 따라 누군가 이렇게 읽는다고 하자. “그들 안에서 하나님께서”라고 읽고, 그다음 짧게 끊으며 조금 쉰 뒤, “이 세상의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눈멀게 하셨다”라고 나머지를 함께 이어 읽으면, 참된 뜻을 찾을 것이다. 그 뜻은 이렇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눈멀게 하셨다.” 이는 짧게 끊어 읽음으로써 드러난다. 바울은 하나님 위에 또 다른 누군가를 아는 것처럼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참으로 하나님이라 고백했고, 이 세상의 믿지 않는 이들을 말한 것이다. 그들은 장차 올 썩지 않는 시대를 상속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을 어떻게 눈멀게 하셨는지는 논의를 이어 가면서 바울 자신에게서 밝혀 보이겠다. 지금은 우리의 생각이 논제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Quod autem dicunt, aperte Paulum in secunda ad Corinthios dixisse: In quibus Deus saeculi hujus excaecavit mentes infidelium; et alterum quidem Deum esse saeculi hujus dicunt, alterum vero qui sit super omnem principatum, et initium, et potestatem: non sumus nos in causa, si hi qui quae super Deum sunt mysteria scire se dicunt, ne quidem legere Paulum sciunt. Si enim quis secundum Pauli consuetudinem, quemadmodum ex multis et alibi ostendimus hyperbatis eum utentem, sic legerit: in quibus Deus, deinde subdistinguens et modicum diastematis faciens, simul et in unum reliqua legerit, saeculi hujus excaecavit mentes infidelium, inveniet verum; ut sit quod dicitur, Deus excaecavit mentes infidelium hujus saeculi. Et hoc per subdistinctionem ostenditur. Non enim Deum hujus saeculi dicit Paulus, quasi super illum alterum aliquem sciens; sed Deum quidem Deum confessus est: infideles autem saeculi hujus dicit, quoniam venturum incorruptelae non haereditabunt saeculum. Quemadmodum autem Deus excaecavit mentes infidelium, ex ipso Paulo ostendemus, proficiente nobis sermone, ut non nunc in multum avocemus mentem nostram a proposito.

7.2

사도가 자신의 말이 빠르기 때문에, 또 자기 안에 있는 영의 강한 움직임 때문에 도치된 어순을 자주 쓴다는 것은 다른 여러 대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행위의 율법은 무엇인가? 약속을 받은 후손이 올 때까지 두어졌으며, 천사들을 통해 중재자의 손으로 정해졌다.” 그 어순은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위의 율법은 무엇인가? 천사들을 통해 중재자의 손으로 정해져 두어졌다. 약속을 받은 후손이 올 때까지이다.” 사람이 묻고 영이 대답하는 것이다. 또 테살로니카인들에게 보낸 둘째 편지에서는 적그리스도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그때 불법한 자가 드러날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입의 숨으로 그자를 죽이시고, 오셔서 임재하심으로 그를 멸하실 것이다. 그자의 출현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 대목의 말들은 다음 순서로 연결된다. “그때 불법한 자가 드러날 것이다. 그자의 출현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이적 가운데 이루어진다. 주 예수께서 자기 입의 숨으로 그자를 죽이시고, 오셔서 임재하심으로 그를 멸하실 것이다.” 주님의 오심이 사탄의 활동을 따라 이루어진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법한 자의 출현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자를 적그리스도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누군가 주의 깊게 읽지 않고, 말하는 대목에서 숨 쉴 간격을 드러내지 않으면, 뜻이 맞지 않는 일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오심이 사탄의 활동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처럼 읽으면서 모독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대목에서는 읽는 방식을 통해 도치된 어순을 드러내고, 사도의 이어지는 뜻을 보존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그 대목에서도 이 세상의 신이라고 읽지 않고,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라 부르는 분, 곧 하나님이라고 읽는다. 이 세상의 믿지 않고 눈먼 이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한다. 그들이 장차 올 생명의 시대를 상속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Quoniam autem hyperbatis frequenter utitur Apostolus, propter velocitatem sermonum suorum, et propter impetum qui in ipso est Spiritus, ex multis quidem aliis est invenire. Sed et in ea quae est ad Galatas, sic ait: Quid ergo lex factorum? posita est, usquequo veniat semen cui promissum est, disposita per angelos in manu Mediatoris. Ordinatio enim sic est: Quid ergo lex factorum? disposita per angelos in manu Mediatoris posita est, usquedum veniat semen cui promissum est: ut sit homo interrogans et Spiritus respondens. Et iterum in secunda ad Thessalonicenses, de Antichristo dicens, ait: Et tunc revelabitur iniquus, quem Dominus Jesus Christus interficiet spiritu oris sui, et destruet praesentia adventus sui illum, cujus est adventus secundum operationem Satanae, in omni virtute et signis et portentis mendacii. Etenim in his ordinatio dictorum sic est: Et tunc revelabitur iniquus, cujus est adventus secundum operationem Satanae, in omni virtute, et signis, et portentis mendacii, quem Dominus Jesus interficiet spiritu oris sui, et destruet praesentia adventus sui. Non enim adventum Domini dicit secundum operationem Satanae fieri; sed adventum iniqui, quem et Antichristum dicimus. Si ergo non attendat aliquis lectioni, et intervalla aspirationis manifestet in quo dicitur, erunt non tantum incongruentia, sed et blasphemat legens, quasi Domini adventus secundum operationem fiat Satanae. Sicut ergo in talibus oportet per lectionem hyperbaton ostendi, et consequentem Apostoli servari sensum, sic et ibi non Deum saeculi hujus legimus, sed Deum, quem vere Deum dicimus: incredulos autem et excaecatos saeculi hujus audiemus, quoniam venturum vitae non haereditabunt saeculum.

8.1

이렇게 그들의 이 비방도 해소되었으므로, 예언자들도 사도들도 참되고 유일한 하나님 외에 다른 이를 하나님이라 부르거나 주님이라 일컬은 적이 전혀 없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주님 자신은 더욱 그러하셨다. 그분은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주라고 명하셨다. 카이사르는 카이사르라 부르시고, 하나님은 하나님으로 고백하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너희는 하나님과 맘몬을 섬길 수 없다”라고 친히 풀이하신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시고, 맘몬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이름으로 부르신 것이다. “너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맘몬을 주님이라 부르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자들에게 맘몬에 복종하지도, 그 지배를 받지도 말라고 가르치신다. 그분은 “죄를 짓는 이는 죄의 종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죄를 섬기는 이들을 죄의 종이라 부르시면서도, 죄 자체를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으신 것처럼, 맘몬을 섬기는 이들을 맘몬의 종이라 부르시면서도 맘몬을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으신다. 맘모나스는 사마리아인들도 사용하는 유대인들의 말로, 탐욕스러운 이, 곧 마땅한 정도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이를 뜻한다. 히브리말로는 덧붙여 마무엘이라고 하며, 탐식하는 이를 뜻한다. 곧 먹고 싶은 욕망을 억제할 수 없는 이이다. 이 두 뜻에 따르더라도, 우리는 하나님과 맘몬을 섬길 수 없다.

Soluta igitur et hac illorum calumnia, manifeste ostensum est, quoniam nunquam neque prophetae neque Apostoli alium Deum nominaverunt, vel Dominum appellaverunt, praeter verum et solum Deum. Multo magis ipse Dominus, qui et Caesari quidem, quae Caesaris sunt reddi jubet, et quae Dei sunt Deo: Caesarem quidem Caesarem nominans, Deum vero Deum confitens. Similiter et illud quod ait, Non potestis duobus dominis servire, ipse interpretatur, dicens: Non potestis Deo servire, et Mammonae; Deum quidem confitens Deum, Mammonam autem nominans, hoc quod et est. Non Mammonam dominum vocat, dicens: Non potestis duobus dominis servire; sed discipulos docet servientes Deo, non subjici Mammonae, neque dominari ab eo. Qui enim, inquit, facit peccatum, servus est peccati. Quemadmodum igitur servientes peccato servos peccati vocat, non tamen ipsum peccatum Deum appellat, sic et eos qui Mammonae serviunt, servos Mammonae appellat, non Deum appellans Mammonam. Mammonas autem est secundum Judaicam loquelam, qua et Samaritae utuntur, cupidus, et plus quam oportet habere volens. Secundum autem Hebraicam, adjunctive dicitur Mamuel, et significat gulosum, id est, qui non possit a gula continere. Secundum utraque igitur quae significantur, non possumus Deo servire, et Mammonae.

8.2

악마를 강한 자라고 말씀하신 것도, 아무 한정 없이 강하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와 비교한 말씀이었다. 주님은 자신이 모든 면에서 참으로 강한 분임을 드러내시며, 먼저 그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으면 누구도 그의 그릇들을 빼앗을 수 없고, 결박한 뒤에야 그의 집을 빼앗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배교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그의 그릇이자 집이었다. 그가 우리를 자기 마음대로 이용했고, 더러운 영이 우리 안에 살았기 때문이다. 자기를 결박하고 자기 집을 빼앗는 분에 맞서서 그가 강했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 이용당하던 사람들에 비해 강했던 것이다. 그가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구해 내셨다. 예레미야도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야곱을 구속하시고, 그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그를 구해 내셨다.” 그를 결박하고 그의 그릇을 빼앗는 분을 가리키지 않은 채, 그가 강하다는 말만 하셨다면, 그는 정복되지 않은 강한 자였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를 붙잡는 분도 덧붙이셨다. 결박하는 이가 붙잡고, 결박된 이는 붙잡히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를 비교의 여지 없이 행하셨다. 배교한 종이 주님과 비교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자만이 아니라, 세워진 것들과 복종 아래 있는 것들 중 어느 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말씀을 통해 만물이 만들어졌으며, 그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Sed et Diabolum cum dixisset fortem, non in totum, sed velut in comparationem nostram; semetipsum in omnia et vere fortem ostendit Dominus, dicens: non aliter aliquem posse diripere vasa fortis, si non prius ipsum alliget fortem, et tunc domum ejus diripiet. Vasa autem ejus et domus nos eramus, cum essemus in apostasia: utebatur enim nobis quemadmodum volebat, et spiritus immundus habitabat in nobis. Non enim adversus eum qui se alligabat, et domum ejus diripiebat, fortis erat; sed adversus eos qui in usu ejus erant homines, quoniam abscedere fecerat sententiam eorum a Deo, quos eripuit Dominus. Quemadmodum et Jeremias ait; Redemit Dominus Jacob, et eripuit eum de manu fortioris ejus. Si igitur non significasset eum qui alligat, et diripit ejus vasa, hoc autem solum eum fortem dixisset, esset fortis invictus. Sed et adjecit obtinentem; tenet enim qui alligat, tenetur autem qui alligatus est. Et hoc sine comparatione fecit, ut non comparetur Domino servus apostata exsistens: non enim tantum hic, sed nec quidquam ex his quae constituta sunt, et in subjectione sunt, comparabitur Verbo Dei, per quem facta sunt omnia, qui est Dominus noster Jesus Christus.

8.3

요한은 천사들이든 대천사들이든, 보좌들이든 주권들이든,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통해 세우고 만드셨다는 것을 이렇게 밝혔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그분이 아버지 안에 계셨다고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고,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다윗도 찬양을 열거하면서,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이름으로 부르고, 하늘들과 그 모든 능력들을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다. “그분이 명령하시니 창조되었고, 그분이 말씀하시니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명령하셨는가? 말씀에게이다. 그는 말한다. “그 말씀을 통해 하늘들이 굳게 세워졌고, 그 입의 숨으로 그 모든 능력들이 세워졌다.” 그분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만드셨다는 것을 다윗은 다시 말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위로 하늘에서, 그리고 땅에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다.” 세워진 것들은 그것들을 세우신 분과 다르고, 만들어진 것들은 그것들을 만드신 분과 다르다. 그분 자신은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시작도 없으며 끝도 없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으시다. 자신에게 스스로 충분하시며, 다른 모든 것들에게도 존재 자체를 베푸시는 분이다. 그분이 만드신 것들은 시작을 갖게 되었다. 시작을 지닌 것들은 해체될 수도 있고, 복종 아래 있으며, 자기들을 만드신 분을 필요로 한다. 이런 것을 조금이라도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들이 반드시 다른 호칭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만물을 만드신 분만이 자신의 말씀과 함께 하나님이요 주님이라고 마땅히 불리신다. 만들어진 것들은 그와 같은 호칭에 참여할 수 없으며, 창조주께 속한 그 호칭을 정당하게 취해서도 안 된다.

Quoniam enim sive Angeli, sive Archangeli, sive Throni, sive Dominationes, ab eo qui super omnes est Deus, et constituta sunt, et facta per Verbum ejus, Johannes quidem sic significavit. Cum enim dixisset de Verbo Dei, quoniam erat in Patre, adjecit: Omnia per eum facta sunt, et sine eo factum est nihil. David quoque cum laudationes enumerasset, nominatim universa quaecunque diximus, et coelos et omnes virtutes eorum, adjecit: Quoniam ipse praecepit, et creata sunt: ipse dixit, et facta sunt. Cui ergo praecepit? Verbo scilicet: per quod, inquit, coeli firmati sunt, et spiritu oris ejus omnis virtus eorum. Quoniam autem ipse omnia fecit libere, et quemadmodum voluit, ait iterum David: Deus autem noster in coelis sursum, et in terra, omnia quaecunque voluit, fecit. Altera autem sunt quae constituta sunt ab eo qui constituit, et quae facta sunt ab eo qui fecit. Ipse enim infectus et sine initio et sine fine et nullius indigens, ipse sibi sufficiens, et adhuc reliquis omnibus, ut sint, hoc ipsum praestans: quae vero ab eo sunt facta, initium sumserunt. Quaecunque autem initium sumserunt, et dissolutionem possunt percipere, et subjecta sunt et indigent ejus qui se fecit, necesse est omnimodo, uti differens vocabulum habeant apud eos etiam, qui vel modicum sensum in discernendo talia habent: ita ut is quidem qui omnia fecerit, cum Verbo suo juste dicatur Deus et Dominus solus; quae autem facta sunt, non jam ejusdem vocabuli participabilia esse, neque juste id vocabulum sumere debere, quod est Creatoris.

9.1

그러므로 이 점은 여기서 분명히 밝혀졌으며, 앞으로 더욱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예언자들도 사도들도 주 그리스도도 자신의 말로 다른 누구를 주님이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고, 본래 의미에서 하나님이요 주님이신 분을 고백했다. 예언자들과 사도들은 아버지와 아들을 고백하며, 그 외의 누구도 하나님이라 부르거나 주님이라 고백하지 않았다. 주님 자신도 아버지만 하나님이요 주님이시며, 그분만이 하나님이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제자들에게 전하셨다. 우리가 참으로 그들의 제자라면, 이러한 그들의 증언을 따라야 한다. 사도 마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하늘의 별처럼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신 분과, 자신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를 돌 숭배에서 자신을 아는 데로 부르신 분을 한 분이며 동일한 하나님으로 알았다. 백성이 아니었던 이가 백성이 되고, 사랑받지 못했던 이가 사랑받는 이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던 요한은, 육체의 혈통을 자랑하면서도 변덕스럽고 온갖 악으로 가득한 생각을 품은 이들에게, 악에서 돌아오게 하는 회개를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마태는 기록한다. “독사의 자손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진노를 피하라고 알려 주었느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속으로 ‘우리에게는 아브라함이 아버지로 계신다’라고 말하지 말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일으키실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선구자는 그들에게 악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선포했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분 외에 다른 하나님을 알리지 않았다. 마태는 그를 두고 다시 말하며, 누가도 마찬가지로 말한다. “이 사람이 곧 예언자를 통해 주께서 말씀하신 이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우리 하나님의 길들을 곧게 하라. 모든 골짜기가 채워지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질 것이다. 굽은 곳은 곧게 되고, 거친 곳은 평탄한 길이 될 것이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Ostenso hoc igitur hic plane, et adhuc ostendetur manifestius, neminem alterum Dominum vel Deum, neque prophetas, neque Apostolos, neque Dominum Christum confessum esse ex sua persona, sed praecipue Deum et Dominum: prophetis quidem et Apostolis Patrem et Filium confitentibus; alterum autem neminem, neque Deum nominantibus, neque Dominum confitentibus: et ipso Domino Patrem tantum Deum et Dominum eum, qui solus est Deus et dominator omnium, tradente discipulis; sequi nos oportet, si quidem illorum sumus discipuli, testimonia illorum ita se habentia. Matthaeus enim Apostolus, unum et eundem sciens Deum, qui promissionem fecerit Abrahae, facturum se semen ejus quasi stellas coeli, qui per Filium suum Christum Jesum a lapidum cultura in suam nos agnitionem vocaverit, uti fieret qui non populus, populus; et non dilecta, dilecta, ait Johannem, praeparantem Christo viam, his qui in carnali quidem cognatione gloriabantur, varium autem et omni malitia completum sensum habebant, eam poenitentiam quae a malitia revocaret, annuntiantem dixisse: Progenies viperarum, quis vobis monstravit fugere ab ira ventura? Facite ergo fructum dignum poenitentiae: et nolite dicere in vobis ipsis, Patrem habemus Abraham. Dico enim vobis, quoniam potens est Deus, ex lapidibus istis suscitare filios Abrahae. Poenitentiam igitur eis eam, quae esset a malitia, praeconabat, sed non alterum Deum annuntiabat, praeter eum qui fecisset promissionem Abrahae, ille praecursor Christi; de quo iterum ait Matthaeus, similiter autem et Lucas: Hic enim est qui dictus est a Domino per prophetam: Vox clamantis in deserto, Parate viam Domini, rectas facite semitas Dei nostri. Omnis vallis implebitur, et omnis mons et collis humiliabitur, et erunt tortuosa in directa, et aspera in vias planas: et videbit omnis caro salutare Dei.

9.2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며 동일한 분, 우리 주님의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예언자들을 통해 선구자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자신의 구원, 곧 자신의 말씀을 모든 육체가 볼 수 있게 하셨다. 그 말씀 자신도 육체가 되어, 모든 이 가운데서 그들의 왕으로 드러나도록 하신 것이다. 심판받는 이들은 심판자를 보고, 자신을 심판하는 분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영광을 얻는 이들도 자기들에게 영광의 선물을 주시는 분을 알아야 했다. 마태는 또 천사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주의 천사가 꿈에 요셉에게 나타났다.” 어느 주님인지는 그가 직접 풀이한다. “주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보라, 동정녀가 태중에 아이를 얻고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를 것이다. 이는 풀이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동정녀에게서 나신 이 임마누엘을 두고 다윗은 말했다. “당신의 기름부음받은 이의 얼굴을 외면하지 마소서. 주께서 다윗에게 진실을 맹세하셨으며, 그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너의 몸에서 난 열매를 너의 왕좌 위에 놓으리라.’” 또 이런 말씀이 있다. “유대에서 하나님이 알려지셨고, 그분의 자리가 평화 가운데 마련되었으며, 그분의 거처가 시온에 있다.” 예언자들이 선포하고 복음이 알린 하나님은 한 분이며 동일한 분이다. 그분의 아들은 다윗의 몸에서 난 열매, 곧 다윗의 후손인 동정녀에게서 나오신 임마누엘이다. 그분의 별을 발람은 이렇게 예언했다. “야곱에게서 별이 떠오르고, 이스라엘에서 지도자가 일어날 것이다.”

Unus igitur et idem Deus est, Pater Domini nostri, qui et praecursorem per prophetas missurum se promisit: et salutare suum, id est Verbum suum, visibile effecit omni fieri carni, incarnatum et ipsum, ut in omnibus manifestus fieret Rex eorum. Etenim ea quae judicantur oportebat videre judicem, et scire hunc a quo judicantur: et ea quae gloriam consequuntur oportebat scire eum, qui munus gloriae eis donat. Iterum autem de Angelo dicens Matthaeus, ait: Angelus Domini apparuit Joseph in somnis; cujus Domini, ipse interpretatur: Uti adimpleatur quod dictum est a Domino per prophetam, Ex Aegypto vocavi filium meum. Ecce Virgo in utero accipiet, et pariet filium, et vocabunt nomen ejus Emmanuel, quod est interpretatum, Nobiscum Deus. De hoc qui est ex Virgine Emmanuel, dixit David: Non avertas faciem Christi tui. Juravit Dominus David veritatem, et non dispernet eum, De fructu ventris tui ponam super sedem tuam. Et iterum: Notus in Judaea Deus, et factus est in pace locus ejus, et habitaculum ejus in Sion. Unus igitur et idem Deus, qui a prophetis praedicatus est, et ab evangelio annuntiatus, et hujus Filius qui ex fructu ventris David, id est ex David Virgine, et Emmanuel: cujus et stellam Balaam quidem sic prophetavit: Orietur stella ex Jacob, et surget dux in Israel.

10장

마태는 동방에서 온 마기들이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다”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별의 인도를 받아 야곱의 집에 계신 임마누엘께 이르러, 자기들이 바친 선물로 경배받는 분이 누구신지를 드러냈다. 몰약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죽고 묻히실 분이 바로 그분이기 때문이었다. 금은 그 나라가 끝이 없는 왕이시기 때문이며, 유향은 유대에서 알려지시고 자기를 찾지 않는 이들에게 드러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었다. 마태는 세례에 관해서도 말한다. “[그에게] 하늘들이 열렸고,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자기 위로 오시는 것을 보았다. 보라,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참으로 기뻐했다.’” 그때 그리스도가 예수 안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며, 그리스도와 예수가 서로 다른 이들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모든 이의 구원자이시고 하늘과 땅을 다스리는 분이 계신다. 앞서 밝혔듯이, 그분은 예수이시며, 육체를 취하시고 아버지에게서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시어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 이사야도 이렇게 말한다. “이새의 뿌리에서 가지가 나오고, 그 뿌리에서 꽃이 올라올 것이다. 하나님의 영, 지혜와 이해의 영, 조언과 힘의 영, 지식과 경건의 영이 그 위에 머무를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이 그를 채울 것이다. 그는 명성에 따라 심판하지도, 말에 따라 책망하지도 않을 것이다. 낮은 이를 위해 판결하고, 땅의 명성 높은 이들을 책망할 것이다.” 이사야 자신이 다시 그분의 기름 부음과 무엇을 위해 기름 부음을 받으셨는지를 미리 알리며 말한다. “하나님의 영이 내 위에 계신다. 그분이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낮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치료하며, 포로들에게 풀려남을, 눈먼 이들에게 보게 됨을 선포하고, 주님께서 받아 주시는 해와 보응의 날을 알리며, 슬퍼하는 모든 이를 위로하도록 나를 보내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새의 뿌리에서 난 사람이시며 아브라함의 아들이시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머물렀고, 낮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에서는, 명성에 따라 심판하지도 말에 따라 책망하지도 않으셨다. 누군가 사람에 관해 그분께 증언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분 자신이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슬퍼하는 모든 사람을 부르셨고, 죄로 인해 포로가 된 이들에게 풀려남을 주시며 그들을 결박에서 풀어 주셨다. 이 결박에 관해 솔로몬은 말한다. “각 사람은 자기 죄의 끈에 묶인다.” 그러므로 예언자들을 통해 그분에게 기름을 부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내려오셨다. 그 기름 부음의 풍성함에서 우리가 받아 구원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마태는 이와 같이 증언한다.

Matthaeus autem Magos ab Oriente venientes ait dixisse: Vidimus enim stellam ejus in Oriente, et venimus adorare eum: deductosque a stella in domum Jacob ad Emmanuel, per ea quae obtulerunt munera ostendisse, quis erat qui adorabatur: Myrrham quidem, quod ipse erat, qui pro mortali humano genere moreretur et sepeliretur: Aurum vero, quoniam Rex, cujus Regni finis non est; Thus vero, quoniam Deus, qui et notus in Judaea factus est, et manifestus eis qui non quaerebant eum. Adhuc ait in baptismate Matthaeus: Aperti sunt [ei] coeli, et vidit Spiritum Dei quasi columbam venientem super eum. Et ecce vox de coelo, dicens: Hic est Filius meus dilectus, in quo mihi bene complacui. Non enim Christus tunc descendit in Jesum; neque alius quidem Christus, alius vero Jesus: sed Verbum Dei, qui est Salvator omnium, et dominator coeli et terrae, qui est Jesus, quemadmodum ante ostendimus, qui et assumsit carnem, et unctus est a Patre Spiritu, Jesus Christus factus est; sicut et Esaias ait: Exiet virga de radice Jesse, et flos de radice ejus ascendet, et requiescet super eum Spiritus Dei, spiritus sapientiae et intellectus, spiritus consilii et fortitudinis, spiritus scientiae et pietatis, et implebit eum spiritus timoris Dei. Non secundum gloriam judicabit, neque secundum loquelam arguet, sed judicabit humili judicium, et arguet gloriosos terrae. Et iterum ipse Esaias unctionem ejus, et propter quid unctus est, praesignificans ait: Spiritus Dei super me, quapropter unxit me, evangelisare humilibus misit me, curare comminutos corde, praeconare captivis remissionem, et caecis visionem, vocare annum Domini acceptabilem, et diem retributionis, consolari omnes plangentes. Nam secundum id quod Verbum Dei homo erat ex radice Jesse, et filius Abrahae, secundum hoc requiescebat Spiritus Dei super eum, et ungebatur ad evangelisandum humilibus. Secundum autem quod Deus erat, non secundum gloriam judicabat, neque secundum loquelam arguebat: non enim opus erat illi, ut quis ei testimonium diceret de homine, cum ipse sciret quid esset in homine. Advocabat autem omnes homines plangentes, et remissionem his qui a peccatis in captivitatem deducti erant donans, solvebat eos a vinculis, de quibus ait Salomon: Restibus autem peccatorum suorum unusquisque constringitur. Spiritus ergo Dei descendit in eum, ejus qui per prophetas promiserat uncturum se eum, ut de abundantia unctionis ejus nos percipientes salvaremur. Et sic quidem Matthaeus.

11.1

사도들을 따르는 이이자 제자인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관해 이렇게 전한다.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그들에게서 요한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의로웠으며,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흠 없이 행했다.” 사가랴에 관해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일이 있었다. 그가 자기 당번의 차례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수행할 때, 제사장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아 분향하게 되었다. 그는 주님의 성전으로 들어가 제사를 드리러 왔다.” 누가는 예루살렘을 택하시고 제사장직의 율법을 주신 그분을, 자신의 말로 단순하게, 아무 한정 없이, 확고하게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주님의 앞에 서 있는 천사 가브리엘도 그분께 속한다. 누가는 그분 위의 다른 이를 알지 못했다. 그분 외에 더 완전한 어떤 하나님이요 주님이신 분을 알았다면, 결함의 열매라고 아는 이를 아무 한정 없이 전적으로 주님과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앞서 밝힌 바와 같다. 요한에 관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는 주님 앞에서 큰 이가 될 것이며, 이스라엘 자손 중 많은 이를 그들의 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그분 앞에 앞서 가리니,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완전한 백성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누구를 위해 백성을 준비했으며, 어느 주님 앞에서 큰 이가 되었는가? 바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분 앞에서이다. “요한에게는 예언자보다 더한 것이 있으며,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큰 이는 없다.”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위해 백성을 준비하며, 동료 종들에게 미리 알리고 그들에게 회개를 선포했다. 그들이 죄와 범법으로 멀어졌던 그분께 돌아와, 오신 주님에게서 용서를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다윗도 이렇게 말한다. “죄인들은 태에서부터 멀어졌고, 모태에서부터 길을 잃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들을 그들의 주님께 돌아오게 하며,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완전한 백성을 준비했다. 누가는 또 천사에 관해 전한다. “바로 그때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에게서 보냄을 받았고, 동정녀에게 말했다. ‘마리아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얻었다.’” 주님에 관해서는 말한다. “그는 큰 이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실 것이다. 그는 야곱의 집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며, 그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외에, 야곱의 집을 끊임없이 영원히 다스리는 이가 누구이겠는가? 그 하나님은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자를 모든 육체가 볼 수 있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분이 사람의 아들이 되시어, 사람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마리아는 기뻐하며, 교회를 위해 예언하면서 외쳤다. “내 혼이 주님을 높이고, 내 영이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뻐했다. 그분은 자신의 자비를 기억하시려고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셨다. 우리 조상들에게,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영원히 말씀하신 대로이다.”

Lucas autem sectator, et discipulus Apostolorum, de Zacharia, et Elizabeth, ex quibus secundum repromissionem Dei Johannes natus est, referens ait: Erant autem justi ambo ante Deum, incedentes in omnibus mandatis et justitiis Domini sine querela. Et iterum de Zacharia dicens: Factum est autem, cum sacerdotio fungeretur in ordine vicis suae ante Deum, secundum consuetudinem sacerdotii, sorte exivit ut incensum poneret, et venit uti sacrificaret, intrans in templum Domini. Qui praeest in conspectu Domini, simpliciter et absolute et firme Deum et Dominum confitens ex sua persona, eum qui elegerit Jerusalem, et legisdationem sacerdotii fecerit, cujus est et angelus Gabriel. Etenim alterum super hunc nesciebat: si enim intellectum perfectioris alicujus Dei et Domini praeter hunc habuisset, non utique hunc quem sciebat labis esse fructum, absolute et in totum, Dominum et Deum confiteretur, sicut ante ostendimus. Sed et de Johanne dicens sic ait: Erit enim magnus in conspectu Domini, et multos filiorum Israel convertet ad Dominum Deum ipsorum, et ipse praecedet in conspectu ejus, in spiritu et virtute Heliae, praeparare Domino plebem perfectam. Cui ergo populum praeparavit, et in cujus Domini conspectu magnus factus est? Utique ejus qui dixit: Quoniam et plus quam propheta habuit aliquid Johannes, et nemo in natis mulierum major est Johanne Baptisatore: qui et populum praeparabat ad adventum Domini, conservis praenuntians, et poenitentiam ipsis praeconans, uti remissionem a Domino praesente perciperent, conversi ad eum, a quo propter peccata et transgressionem erant abalienati; quemadmodum et David ait, Alienati sunt peccatores ab utero, erraverunt a ventre. Et propter hoc convertens eos ad Dominum eorum, praeparabat Domino populum perfectum, in spiritu et virtute Heliae. Et iterum de angelo referens ait: In ipso autem tempore missus est angelus Gabriel a Deo, qui et dixit Virgini; Noli timere Maria, invenisti enim gratiam apud Deum. Et de Domino dicit: Hic erit magnus, et Filius Altissimi vocabitur, et dabit ei Dominus Deus thronum David patris sui, et regnabit in domo Jacob in aeternum, et regni ejus non erit finis. Quis est autem alius qui regnat in domo Jacob sine intermissione in aeternum, nisi Christus Jesus Dominus noster, Filius Dei Altissimi, qui per Legem et Prophetas promisit, salutarem suum facturum se omni carni visibilem, ut fieret Filius Hominis, ad hoc, ut et homo fieret filius Dei? Propter quod exultans Maria, clamabat pro Ecclesia prophetans: Magnificat anima mea Dominum, et exultavit spiritus meus in Deo salutari meo. Assumsit enim Israel puerum suum, reminisci misericordiae suae, quemadmodum locutus est ad patres nostros, Abrahae et semini ejus in aeternum.

11.2

이처럼 많은 대목을 통해 복음은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분임을 밝힌다. 그 율법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음을 알았다. 바로 그 하나님이 자신의 크신 선하심에 따라 우리에게 자비를 쏟아 주셨다. 그 자비 안에서 위에서 돋는 해가 우리를 돌아보았고,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던 이들에게 나타났으며,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었다. 이와 같이 사가랴도, 믿지 않은 탓에 겪었던 말 못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영으로 충만하여 새롭게 하나님을 찬양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이르렀기 때문이다. 말씀께서는 육체로 오시는 일을 새롭게 마련하시어, 하나님에게서 떠났던 인간을 하나님께 속하게 하려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새롭게 하나님을 섬기도록 배웠으며, 다른 하나님을 섬기도록 배운 것이 아니었다. 믿음에 근거해 할례자를 의롭게 하시고, 믿음을 통해 무할례자를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사가랴는 예언하며 말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찬양받으시기를. 자신의 백성을 돌아보시고 구속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자신의 종 다윗의 집에 우리를 위해 구원의 뿔을 세우셨다. 예로부터 있던 자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이다. 우리 원수들에게서,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이들의 손에서 구원하심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신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시려는 것이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그 맹세대로, 원수들의 손에서 구해진 우리가 두려움 없이, 그분 앞에서 우리의 모든 날 동안 거룩함과 의로움 가운데 그분을 섬기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다음 요한에게 말한다. “아이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다. 주님의 얼굴 앞에 먼저 가서 그분의 길들을 준비하고, 그들의 죄가 용서받는 데서 그분의 백성에게 구원을 아는 지식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들에게 없던 구원의 앎, 곧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하며 그 앎을 주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 이분이 내가 말하던 분이다.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그분은 나보다 앞서 계신 분이다.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그분의 충만함에서 받았다.” 이것이 구원의 앎이었다. 다른 하나님도, 다른 아버지도, 뷔토스도, 서른 아이온의 플레로마도, 오그도아스의 어머니도 아니었다. 구원의 앎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이었다. 그분은 구원(salus)이며, 구원자(Salvator)이며, 구원(salutare)이라고 참으로 불리고 실제로 그러하시다. 구원(salus)이라는 호칭은 이렇게 나온다. “주님, 저는 당신의 구원을 바라며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구원자(Salvator)는 또 이렇게 나온다. “보라, 나의 하나님, 나의 구원자이시다.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다.” 구원(salutare)이라는 호칭은 이렇게 나온다.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들 앞에서 자신의 구원을 알리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말씀이시므로 구원자이시다. 영이시므로 구원(salutare)이시다. “우리 얼굴의 영, 주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육체이시므로 구원(salus)이시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하기 때문이다. 요한은 이 구원의 앎을 회개하고,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는 이들에게 전했다.

Per haec igitur et tanta monstrat Evangelium, quoniam qui locutus est patribus Deus, hic est qui per Moysem legisdationem fecit, per quam legisdationem cognovimus, quoniam patribus locutus est. Hic idem Deus secundum magnam bonitatem suam effudit misericordiam in nos, in qua misericordia conspexit nos Oriens ex alto, et apparuit his qui in tenebris et umbra mortis sedebant, et direxit pedes nostros in viam pacis; quemadmodum et Zacharias desinens mutus esse, quod propter infidelitatem passus fuerat, novello spiritu adimpletus nove benedicebat Deum. Omnia enim nova aderant, Verbo nove disponente carnalem adventum, uti eum hominem qui extra Deum abierat, ascriberet Deo: propter quod et nove Deum colere docebantur, sed non alium Deum, quoniam quidem unus Deus, qui justificat circumcisionem ex fide, et praeputium per fidem. Prophetans autem Zacharias dicebat: Benedictus Dominus Deus Israel, quia visitavit et fecit redemtionem populo suo. Et erexit cornu salutis nobis in domo David pueri sui. Sicut locutus est per os sanctorum prophetarum suorum, qui a saeculo sunt. Salutem ex inimicis nostris, et ex manu omnium qui oderunt nos. Ad faciendam misericordiam cum patribus nostris, et reminisci testamenti sancti sui. Jusjurandum quod juravit ad Abraham patrem nostrum, uti det nobis sine timore ex manu inimicorum ereptos servire sibi in sanctitate et justitia, in conspectu suo omnes dies nostros. Deinde ad Johannem dicit: Et tu puer, Propheta Altissimi vocaberis: praeibis enim ante faciem Domini parare vias ejus. Ad dandum intellectum salutis populo ejus, in remissionem peccatorum eorum. Haec enim est salutis agnitio quae deerat eis, quae est Filii Dei, quam faciebat Johannes, dicens: Ecce agnus Dei, qui aufert peccatum mundi. Hic erat de quo dicebam, Post me venit vir qui ante me factus est, quoniam prior me erat: omnesque de plenitudine ejus accepimus. Haec itaque salutis agnitio; sed non alter Deus, nec alter Pater, neque Bythus, neque Pleroma triginta Aeonum, nec Mater ogdoados: sed agnitio salutis erat agnitio Filii Dei, qui et salus, et Salvator, et salutare vere et dicitur et est. Salus quidem, sic: In salutem tuam sustinui te Domine. Salvator autem iterum: Ecce Deus meus, Salvator meus, fidens ero in eum. Salutare autem sic: Notum fecit Deus salutare suum in conspectu gentium. Est enim Salvator quidem, quoniam Filius et Verbum Dei; salutare autem, quoniam Spiritus: Spiritus, enim inquit, faciei nostrae, Christus Dominus; Salus autem, quoniam caro: Verbum enim caro factum est, et habitavit in nobis. Hanc igitur agnitionem salutis faciebat Johannes poenitentiam agentibus, et credentibus in agnum Dei, qui tollit peccatum mundi.

11.3

누가는 말한다.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도 나타나, 다윗의 집에서 구원자, 곧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는 기쁨을 그들에게 알렸다고 한다. 이어서 하늘 군대의 무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 선한 뜻을 지닌 사람들에게 평화.” 날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은 이 천사들이 오그도아스에서 왔으며, 위의 그리스도가 내려옴을 알렸다고 말한다. 그들은 위에 있는 그리스도와 구원자가 태어난 것이 아니라, 경륜에 속한 예수가 세례를 받은 뒤에 비둘기처럼 그에게 내려왔다고 말하면서 다시 무너진다. 그렇다면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오그도아스의 천사들은 이렇게 말하며 거짓말한 셈이다. “다윗의 성읍에서 오늘 너희를 위해 구원자, 곧 주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 그들에 따르면 그때 태어난 이는 그리스도도 구원자도 아니고, 세계 제작자에게 속한 경륜의 예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위의 구원자가 그가 세례받은 뒤, 곧 태어난 지 서른 해가 지난 뒤에 그에게 내려왔다고 말한다.

Apparuit, inquit, et pastoribus angelus Domini, annuntians gaudium eis, quoniam generatus est in domo David Salvator, qui est Christus Dominus. Deinde multitudo exercitus coelestis laudantium Deum et dicentium; Gloria in excelsis Deo, et in terra pax hominibus bonae voluntatis. Hos angelos falsarii Gnostici dicunt ab ogdoade venisse, et descensionem superioris Christi manifestasse. Sed corruunt iterum dicentes eum qui sursum sit, Christum et Salvatorem, non natum esse, sed et post baptisma ejus qui sit de dispositione Jesu, ipsum sicut columbam in eum descendisse. Mentiuntur ergo ogdoados angeli secundum eos, dicentes: Quoniam generatus est hodie vobis Salvator, qui est Christus Dominus in civitate David. Neque enim Christus, neque Salvator, tunc natus est secundum eos: sed ille, qui est de dispositione Jesus, qui est mundi fabricatoris, in quem post baptisma descendisse, hoc est post triginta annos, supernum Salvatorem dicunt.

11.4

그런데 다윗의 성읍에서라는 말을 왜 덧붙였겠는가? 다윗의 몸에서 난 이가 영원한 왕이 되리라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그 약속이 이루어졌음을 기쁜 소식으로 알리려는 것이 아니겠는가? 온 우주의 창조주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다. 다윗 자신도 말한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주님에게서 나의 도움이 온다.” 또 이렇게 말한다. “땅끝들이 그분의 손 안에 있고, 산들의 높은 곳들이 그분의 것이다. 바다는 그분의 것이며, 그분이 그것을 만드셨다. 마른 땅도 그분의 손이 세우셨다. 오라, 경배하자. 그분 앞에 엎드리고, 우리를 만드신 주님 앞에서 울자. 그분이 우리 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다윗을 통해 듣는 이들에게 우리를 빚으신 분, 홀로 하나님이신 그분을 멸시할 자들이 생길 것을 분명히 말씀하신다. 이 때문에 앞서 한 말씀들을 하셨으며, 그 뜻은 이렇다. 잘못 생각하지 말라. 그분 외에, 또는 그분 위에, 더 주목해야 할 다른 하나님은 없다. 우리를 만드시고 세우시며 먹이시는 그분께 경건하고 감사하는 이들로 우리를 준비시키시는 것이다. 자기 창조주를 거슬러 그토록 많은 모독을 꾸며 낸 이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천사들도 같은 것을 전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고 말하면서, 지극히 높은 것들, 곧 하늘 위의 것들을 만드신 분과 땅 위의 모든 것을 세우신 분을 이 말로 찬양했다. 그분은 자신이 빚으신 것, 곧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신의 선하심을 하늘에서 보내셨다. 그러므로 목자들도 돌아가면서, 자기들에게 전해진 대로 듣고 본 모든 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다른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율법과 예언자들이 알린 그분, 만물의 창조주를 찬양했다. 천사들도 그분을 찬양했다. 만일 오그도아스에서 온 천사들이 한 신을 찬양하고, 목자들은 다른 신을 찬양했다면, 오그도아스에서 온 그 천사들이 그들에게 전한 것은 진리가 아니라 오류였을 것이다.

Quid autem in civitate David apposuerunt, nisi ut eam pollicitationem quae a Deo facta est David, quoniam ex fructu ventris ejus aeternus erit Rex, adimpletam evangelisarent? Etenim fabricator totius universitatis fecerat promissionem David, quemadmodum ipse David ait: Adjutorium meum a Domino, qui fecit coelum et terram. Et iterum: In manu ejus fines terrae, et altitudines montium ipsius sunt. Quoniam ipsius est mare et ipse fecit illud, et aridam manus ejus fundaverunt. Venite adoremus, et procidamus ante eum, et ploremus in conspectu Domini qui fecit nos, quia ipse est Dominus Deus noster. Manifeste pronuntians Spiritus sanctus per David audientibus eum, quoniam erunt qui contemnant eum qui plasmavit nos, qui et solus est Deus. Propter quod et dicebat quae praedicta sunt, significans, quoniam ne erraveritis, praeter hunc aut super hunc alius non est Deus, cui magis intendere oporteat, religiosos nos et gratos praeparans in eum qui fecerit et constituerit et enutriat. Quid ergo erit his qui tantum blasphemiae adversus suum factorem adinvenerunt? Hoc idem autem et angeli. In eo enim quod dicunt,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eum qui sit altissimorum, hoc est supercoelestium factor, et eorum quae super terram omnium conditor, his sermonibus glorificaverunt: qui suo plasmati, hoc est hominibus, suam benignitatem salutis de coelo misit. Propter quod et pastores, ait, revertebantur, glorificantes Deum in omnibus quae audierant et viderant, quemadmodum et narratum est ad eos. Non enim alterum Deum glorificabant Israelitae pastores, sed illum qui a lege et prophetis annuntiatus est, factorem omnium, quem et glorificabant angeli. Si autem alterum quidem angeli qui erant ab ogdoade glorificabant, alterum vero pastores; errorem eis et non veritatem detulerunt hi qui ab ogdoade erant angeli.

11.5

누가는 주님에 관해 또 말한다. “정결의 날들이 다 차자, 그들은 그를 예루살렘에서 드렸다. 주님 앞에 서게 하려는 것이었다. 주님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태를 처음 여는 모든 사내아이는 주님께 거룩한 이라 불릴 것이다’라는 말씀에 따른 것이다. 또 주님의 율법에 말한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누가는 자신의 말로 율법을 주신 분을 가장 분명하게 주님이라 부른다. 시므온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다고 한다. “주님, 이제 주님의 종을 평화로이 보내 주십니다.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구원, 이방 민족들에게 계시를 주는 빛이며,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예언자 안나도 그리스도를 보고 이와 같이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분에 관해 말했다고 한다. 이 모든 대목을 통해 한 하나님께서 드러나신다. 자신의 아들이 새롭게 오심을 통해 그 새로운 자유의 경륜, 곧 언약을 사람들에게 여시는 분이다.

Adhuc ait Lucas de Domino: Cum impleti essent dies purgationis, imposuerunt eum in Hierusalem, adstare Domino, quemadmodum scriptum est in lege Domini: Quoniam omne masculinum adaperiens vulvam, sanctum Domino vocabitur: et ut darent sacrificium, secundum quod dictum est in lege Domini, par turturum, aut duos pullos columbarum; ex sua persona manifestissime Dominum appellans eum qui legisdationem fecerit. Et Simeon autem inquit, benedixit Deum, et ait: 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 in pace. Quia viderunt oculi mei salutare tuum. Quod parasti ante faciem omnium populorum. Lumen in revelationem gentium, et gloriam populi tui Israel. Et Anna autem prophetissa, ait, similiter clarificabat Deum, videns Christum; et loquebatur de eo omnibus, qui exspectabant redemtionem Hierusalem. Per haec autem omnia unus Deus demonstratur, novam illam libertatis dispositionem per novum adventum Filii sui testamentum hominibus aperiens.

11.6

그러므로 베드로의 통역자이자 그를 따르는 이인 마가도 복음의 기록을 이렇게 시작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예언자들에게 기록된 대로이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낸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이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 길들을 곧게 하라.’” 거룩한 예언자들의 목소리가 복음의 시작이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그들이 주님이요 하나님으로 고백한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심을 미리 드러낸다. 그분은 그에게 자신의 사자를 그의 앞에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사자가 요한이었으며,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광야에서 외쳤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라. 우리 하나님 앞에서 길들을 곧게 하라.” 예언자들은 저마다 다른 하나님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여러 표현과 많은 호칭으로 한 분이며 동일한 하나님을 선포했다. 이 책 앞의 책에서 밝혔듯이, 아버지는 풍성하고 부요하시다. 논의를 이어 가면서 예언자들 자신에게서도 이 점을 밝힐 것이다. 복음서 끝에서 마가는 말한다. “주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받아들여지셨으며,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 예언자가 말한 것을 확증한 것이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라.’” 이처럼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며 동일한 분이다. 예언자들이 그분을 알렸고, 복음이 그분을 전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그분을 섬기고 사랑한다. 온 마음으로, 하늘과 땅,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을 섬기고 사랑한다.

Quapropter et Marcus interpres et sectator Petri, initium Evangelicae conscriptionis fecit sic: Initium Evangelii Jesu Christi Filii Dei, quemadmodum scriptum est in prophetis: Ecce, mitto angelum meum ante faciem tuam, qui praeparabit viam tuam. Vox clamantis in deserto: Parate viam Domini, rectas facite semitas ante Deum nostrum. Manifeste initium Evangelii esse dicens sanctorum prophetarum voces, et eum quem ipsi Dominum et Deum confessi sunt, hunc Patrem Domini nostri Jesu Christi praemonstrans, qui et promiserit ei angelum suum ante faciem ejus missurum: qui erat Johannes, in spiritu et virtute Heliae clamans in eremo; Parate viam Domini, rectas facite semitas ante Deum nostrum. Quoniam quidem non alium et alium prophetae annuntiabant Deum, sed unum et eundem, variis autem significationibus, et multis appellationibus. Multus enim et dives Pater quemadmodum in eo libro qui ante hunc est, ostendimus; et ex ipsis autem prophetis procedente nobis sermone ostendemus. In fine autem Evangelii ait Marcus: Et quidem Dominus Jesus, postquam locutus est eis, receptus est in coelos, et sedet ad dexteram Dei; confirmans quod a propheta dictum est: Dixit Dominus Domino meo: Sede a dextris meis, quoadusque ponam inimicos tuos suppedaneum pedum tuorum. Sic quidem unus et idem Deus et Pater est, qui a prophetis quidem annuntiatus, ab Evangelio vero traditus, quem Christiani colimus et diligimus ex toto corde, factorem coeli et terrae, et omnium quae in eis sunt.

11.7

주님의 제자 요한은 이 믿음을 선포하며, 복음의 선포를 통해 케린토스가 사람들 가운데 심은 오류와, 훨씬 이전에 니골라파라고 불리는 이들이 심은 오류를 없애려 했다. 그들은 거짓으로 지식이라 불리는 것에서 갈라진 곁가지이다. 요한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고, 자신의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설득하려 했다. 그들의 말처럼 창조자가 한 분이고 주님의 아버지가 다른 분이며, 창조자의 아들이 한 사람이고 위에서 온 그리스도가 다른 분이라는 식이 아니었다. 그 그리스도는 수난을 겪을 수 없는 채로, 창조자의 아들 예수에게 내려왔다가 다시 자기 플레로마로 날아 올라갔다고 한다. 또 태초는 모노게네스이며, 로고스는 그 외아들의 참된 아들이라고 한다. 우리가 속한 이 창조 세계는 첫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훨씬 아래에 종속되어 있고, 보이지 않고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과 교류가 끊어진 어떤 능력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제자는 이 모든 주장을 없애고, 교회 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자신의 말씀을 통해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든 것을 만드셨다는 진리의 규범을 세우려 했다.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성하신 그 말씀을 통해, 창조 세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말씀 안에서 구원도 주셨다는 것을 드러내며, 복음에 따른 가르침을 이렇게 시작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이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만들어진 것은 그분 안에서 생명이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빛은 어둠 속에서 비치며, 어둠은 그 빛을 붙잡지 못했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것에는 우리가 속한 이 창조 세계도 포함된다. 모든 것이라는 말이 자기들의 플레로마 안에 있는 것들만을 가리킨다고 그들이 주장하도록 허용할 수는 없다. 그들의 플레로마가 이 세계도 포함한다면, 이토록 큰 창조 세계가 그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앞의 책에서 우리가 밝힌 대로이다. 반대로 이 세계가 플레로마 밖에 있다면, 이것이 불가능함은 이미 드러났지만, 그들의 플레로마는 이제 모든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토록 큰 창조 세계는 그 밖에 있지 않다. 요한 자신이 다음과 같이 말해 우리의 모든 논쟁을 없앴다. “그분은 이 세상에 계셨고, 세상은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으나,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다. 그분은 자기 것들에게 오셨으나, 자기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르키온과 그와 비슷한 이들에 따르면, 세상은 그분을 통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분은 자기 것들이 아니라 다른 이의 것들에게 오셨다. 어떤 영지주의자들에 따르면, 이 세상은 천사들이 만들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이들에 따르면, 세상은 그분을 통해서가 아니라 데미우르고스를 통해 만들어졌다. 그들이 말하듯이, 구원자는 그러한 형상들이 생겨나도록 일했고, 그 형상들은 위에 있는 것들을 본뜬 것이었다. 데미우르고스는 창조 세계의 제작을 완성했다. 그들은 창조 세계의 경륜을 맡은 주님이자 데미우르고스인 그가 어머니에게서 발출되었다고 말하며, 그를 통해 이 세상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복음은 분명히 말한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한다.

Hanc fidem annuntians Johannes Domini discipulus, volens per Evangelii annuntiationem auferre eum, qui a Cerintho inseminatus erat hominibus errorem, et multo prius ab his qui dicuntur Nicolaitae, qui sunt vulsio ejus quae falso cognominatur scientiae, ut confunderet eos, et suaderet quoniam unus Deus qui omnia fecit per Verbum suum; et non, quemadmodum illi dicunt, alterum quidem fabricatorem, alium autem Patrem Domini: et alium quidem fabricatoris filium, alterum vero de superioribus Christum, quem et impassibilem perseverasse, descendentem in Jesum filium fabricatoris, et iterum revolasse in suum Pleroma: et initium quidem esse monogenem; Logon autem verum filium unigeniti: et eam conditionem quae est secundum nos, non a primo Deo factam, sed a virtute aliqua valde deorsum subjecta, et abscissa ab eorum communicatione quae sunt invisibilia et innominabilia. Omnia igitur talia circumscribere volens discipulus Domini, et regulam veritatis constituere in Ecclesia, quia est unus Deus omnipotens, qui per Verbum suum omnia fecit, et visibilia et invisibilia; significans quoque, quoniam per Verbum, per quod Deus perfecit conditionem, in hoc et salutem his qui in conditione sunt praestitit hominibus; sic inchoavit in ea quae est secundum Evangelium doctrina: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hoc erat in principio apud Deum. Omnia per ipsum facta sunt, et sine ipso factum est nihil. Quod factum est, in ipso vita erat, et vita erat lux hominum, et lux in tenebris lucet, et tenebrae eam non comprehenderunt. Omnia, inquit, per ipsum facta sunt; in omnibus ergo est et haec quae secundum nos est conditio: non enim concedetur eis, omnia dici ea quae sunt infra Pleroma ipsorum. Si enim et haec Pleroma ipsorum continet, non extra est tanta ista conditio, quemadmodum ostendimus in eo libro qui ante hunc est; si autem extra Pleroma sunt haec, quod quidem impossibile visum est, jam non est omnia Pleroma ipsorum: non est ergo extra haec tanta conditio. Abstulit autem a nobis dissensiones omnes ipse Johannes, dicens: In hoc mundo erat, et mundus per ipsum factus est, et mundus eum non cognovit. In sua propria venit, et sui eum non receperunt. Secundum autem Marcionem et eos qui similes sunt ei, neque mundus per eum factus est; neque in sua venit, sed in aliena. Secundum autem quosdam Gnosticorum, ab angelis factus est iste mundus, et non per Verbum Dei. Secundum autem eos qui sunt a Valentino, iterum non per eum factus est, sed per Demiurgum. Hic enim operabatur similitudines tales fieri, ad imitationem eorum quae sunt sursum, quemadmodum dicunt: Demiurgus autem perficiebat fabricationem conditionis. Emissum enim dicunt eum a matre Dominum et Demiurgum ejus dispositionis quae est secundum conditionem, per quem hunc mundum factum volunt: cum Evangelium manifeste dicat, quoniam per Verbum, quod in principio erat apud Deum, omnia sunt facta: quod Verbum, inquit, caro factum est, et habitavit in nobis.

11.8

그들에 따르면, 말씀도 육체가 되지 않았고, 그리스도도, 모든 이에게서 만들어진 구원자도 육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말씀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구원자는 육체가 되지도 수난을 겪지도 않았고, 경륜에 따라 이루어진 그 예수에게 비둘기처럼 내려왔다가,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선포한 뒤에 다시 플레로마로 올라갔다고 한다. 어떤 이들은 경륜에 속한 그 예수가 육체가 되어 수난을 겪었다고 말하며, 물이 관을 통과하듯이 그가 마리아를 통과했다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그가 데미우르고스의 아들이며, 경륜에 속한 예수가 그에게 내려왔다고 말한다. 또 다른 이들은 예수가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으며, 위에서 온 그리스도, 육체가 없고 수난을 겪을 수 없는 분이 그 예수에게 내려왔다고 말한다. 이단자들의 어떤 견해에 따르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가 된 것은 아니다. 그들 모두의 규범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과 위에 있는 그리스도를 육체가 없고 수난을 겪을 수 없는 분으로 내세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사람으로 모습을 바꾸듯이 그분이 나타났다고 여기며, 태어나거나 육체가 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사람의 모습조차 취하지 않았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그 예수에게 비둘기처럼 내려왔다고 말한다. 주님의 제자는 그들 모두가 거짓 증인임을 밝히며 말한다.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어느 하나님의 말씀이 육체가 되었는지를 우리가 묻지 않도록, 그는 더 나아가 이렇게 가르친다. “하나님에게서 보냄받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으니, 빛에 관해 증언하려는 것이었다. 그 자신이 빛은 아니었고, 빛에 관해 증언하려고 왔다.” 그러므로 빛을 증언하는 선구자 요한은 어느 하나님에게서 보냄받았는가? 가브리엘을 천사로 두신 바로 그분에게서이다. 가브리엘은 요한의 탄생도 기쁜 소식으로 알렸다. 그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아들 앞에 자신의 사자를 보내 그의 길을 준비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그 빛에 관해 증언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엘리야는 어느 하나님의 종이자 예언자였는가? 그 자신이 고백하듯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의 종이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세우고 만드신 분이 보낸 요한이, 이름 붙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 내려왔다는 그 빛에 관해 어떻게 증언할 수 있었겠는가? 이단자들은 모두 데미우르고스가 자기 위의 능력을 모른다고 정해 놓았다. 그런데 요한은 그 능력을 증언하고 가리키는 이로 드러난다. 이 때문에 주님은 그에게 예언자보다 더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다른 모든 예언자들은 아버지의 빛이 오실 것을 알렸으며, 자기들이 선포한 분을 보기에 합당한 이가 되기를 갈망했다. 요한은 다른 이들처럼 미리 알리기도 했고, 그분이 오셨을 때 보고 가리켰으며, 많은 이에게 그분을 믿으라고 권했다. 그리하여 그는 예언자와 사도 양쪽의 자리를 지녔다. 이것이 예언자보다 더하다는 뜻이다. 첫째가 사도이고 둘째가 예언자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에게서 온다.

Secundum autem illos, neque Verbum caro factum est, neque Christus, neque qui ex omnibus factus est Salvator. Etenim Verbum et Christum nec advenisse in hunc mundum volunt: Salvatorem vero non incarnatum neque passum; descendisse autem quasi columbam in eum Jesum qui factus est ex dispositione, et cum annuntiasset incognitum Patrem, iterum ascendisse in Pleroma. Incarnatum autem et passum quidam quidem eum qui ex dispositione sit dicunt Jesum, quem per Mariam dicunt pertransisse, quasi aquam per tubum: alii vero Demiurgi filium, in quem descendisse eum Jesum qui ex dispositione sit: alii rursum Jesum quidem ex Joseph et Maria natum dicunt, et in hunc descendisse Christum qui de superioribus sit, sine carne et impassibilem exsistentem. Secundum autem nullam sententiam haereticorum, Verbum Dei caro factum est. Si enim quis regulas ipsorum omnium perscrutetur, inveniet quoniam sine carne et impassibilis ab omnibus illis inducitur Dei Verbum, et qui est in superioribus Christus. Alii enim putant manifestatum eum, quemadmodum hominem transfiguratum; neque autem natum, neque incarnatum dicunt illum: alii vero neque figuram eum assumsisse hominis; sed quemadmodum columbam descendisse in eum Jesum, qui natus est ex Maria. Omnes igitur illos falsos testes ostendens discipulus Domini, ait: Et Verbum caro factum est, et habitavit in nobis. Et ut non inquiramus, cujus Dei Verbum caro factum est, ipse insuper docet, dicens: Fuit homo missus a Deo, erat ei nomen Johannes: hic venit in testimonium, ut testaretur de lumine. Non erat ipse lumen, sed ut testaretur de lumine. Praecursor igitur Johannes, qui testatur de lumine, a quo Deo missus est? Utique ab eo cujus Gabriel est angelus, qui etiam evangelisavit generationem ejus: qui et per prophetas promisit angelum suum missurum ante faciem Filii sui, et praeparaturum viam ejus, hoc est, testificaturum de lumine, in spiritu et virtute Heliae. Helias autem rursus cujus Dei servus et propheta fuit? Ejus qui fecit coelum et terram, quemadmodum et ipse confitetur. A conditore igitur et fabricatore hujus mundi missus Johannes, quemadmodum poterat testificari de eo lumine, quod ex his quae sunt innominabilia et invisibilia descenderit? Omnes enim haeretici decreverunt, Demiurgum ignorare eam quae sit super eum virtutem, cujus testis et ostensor invenitur Johannes. Propter hoc Dominus plus quam prophetam dixit eum habuisse. Reliqui enim omnes prophetae annuntiaverunt adventum paterni luminis; concupierunt autem digni esse videre eum quem praedicabant: Johannes autem et praenuntiavit similiter sicut alii, et advenientem vidit et demonstravit, et credere in eum suasit multis, ita ut ipse et prophetae et apostoli locum habuerit. Hoc est enim plus quam propheta: quoniam primo apostoli, secundo prophetae; omnia autem ex uno et eodem ipso Deo.

11.9

하나님이 창조를 통해 포도원에서 만드신, 처음에 마신 그 포도주도 좋은 것이었다. 그것을 마신 이들 중 누구도 그 포도주를 나쁘다고 하지 않았으며, 주님도 그것을 받으셨다.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이 쓰도록, 말씀을 통해 신속하고 간단하게 물로 만들어진 포도주는 더 좋은 것이었다. 주님께서는 창조된 것 중 어떤 재료도 없이 잔치하는 이들에게 포도주를 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음식으로 채우실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땅에서 난 빵들을 받아 감사하시고, 또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어, 식탁에 누운 이들을 배불리시고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에게 마시게 하셨다. 땅을 만드시고 그 땅에 열매를 내라고 명하시며, 물들을 세우시고 샘들을 내신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도 자신의 아들을 통해 음식의 복과 마실 것의 은혜를 인류에게 주신다는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파악할 수 없는 분이 파악할 수 있는 분을 통해,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분을 통해 주신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 밖에 계시지 않고, 아버지의 품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외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품에 계신 그분이 알려 주셨다.” 아버지의 품에 계신 아들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를 모든 이에게 알리신다. 그러므로 아들이 드러내 주신 이들이 아버지를 안다. 아버지는 또 아들을 통해,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아들을 알게 하신다. 나다나엘도 그분에게 배워 알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그에 관해 참 이스라엘 사람이며, 그 안에 속임이 없다고 증언하셨다. 그 이스라엘 사람이 자기 왕을 알아보고, 그분께 말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베드로도 그분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리스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 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 내가 기뻐하는 이이다. 내 영을 그 위에 두리니, 그가 이방 민족들에게 심판을 알릴 것이다. 그는 다투지도 소리치지도 않을 것이며, 거리에서 아무도 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연기 나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니, 심판을 다툼 속에 내보낼 때까지 그러할 것이다. 이방 민족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둘 것이다.”

Bonum enim et illud quod per conditionem a Deo in vinea factum est, et primo bibitum est vinum. Nemo enim illud vituperavit ex his qui biberunt; sed et Dominus accepit de eo: melius autem quod per Verbum compendialiter ac simpliciter ex aqua ad usum eorum qui ad nuptias convocati erant, factum est vinum. Quamvis enim possit Dominus ex nullo subjacente eorum quae sunt conditionis, praebere epulantibus vinum, et esca complere esurientes, hoc quidem non fecit: accipiens autem eos qui a terra essent panes, et gratias agens, et iterum aquam faciens vinum, saturavit eos qui recumbebant, et potavit eos qui invitati erant ad nuptias; ostendens quoniam Deus qui fecit terram, et jussit eam fructus ferre, et constituit aquas, et edidit fontes, hic et benedictionem escae, et gratiam potus in novissimis temporibus per Filium suum donat humano generi, incomprehensibilis per comprehensibilem, et invisibilis per visibilem, cum extra eum non sit, sed in sinu Patris exsistat. Deum enim, inquit, nemo vidit unquam, nisi unigenitus Filius Dei, qui est in sinu Patris, ipse enarravit. Patrem enim invisibilem exsistentem, ille qui in sinu ejus est Filius omnibus enarrat. Propter hoc cognoscunt eum hi quibus revelaverit Filius, et iterum Pater per Filium, Filii sui dat agnitionem his qui diligunt eum. A quo et Nathanaël discens cognovit, cui et testimonium reddidit Dominus, quoniam verus Israelita est, in quo dolus non est. Cognovit Israelites suum Regem, in quo et ait ei: Rabbi, tu es Filius Dei, tu es Rex Israel. A quo et Petrus edoctus, cognovit Christum Filium Dei vivi, dicentis: Ecce Filius meus dilectissimus, in quo bene sensi: ponam Spiritum meum super eum, et judicium gentibus annuntiabit. Non contendet, neque clamabit, neque quisquam audiet vocem ejus in plateis: calamum quassatum non confringet, et linum fumigans non extinguet, usquequo emittat in contentionem judicium, et in nomine ejus gentes sperabunt.

11.10

복음의 첫머리들은 이와 같다. 이 우주를 만드신 한 하나님, 예언자들이 알린 분이며 모세를 통해 율법의 경륜을 마련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선포한다. 그분 외에 다른 하나님을 알지 않으며, 다른 아버지도 알지 않는다. 이 복음서들의 확고함은 그토록 커서, 이단자들 자신도 그것들을 증언하며, 그 복음서들에서 출발해 저마다 자기 가르침을 확증하려 한다. 에비온파는 마태에 따른 복음서만 사용하면서도, 주님에 관해 잘못 생각하므로 바로 그 복음서에서 논박된다. 누가에 따른 복음서를 잘라내는 마르키온은, 자기가 아직 보존하고 있는 구절들로 인해, 홀로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임이 드러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며, 그리스도는 수난을 겪을 수 없는 채로 있었고 예수가 수난을 겪었다고 말하는 이들은, 마가에 따른 복음서를 선호한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며 그 복음서를 읽으면 바로잡힐 수 있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이들은 자기들의 짝을 이루는 관계들을 입증하려고 요한에 따른 복음서를 아주 많이 사용한다. 바로 그 복음서를 통해 그들이 올바로 말하는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이다. 우리가 첫째 책에서 밝힌 바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를 반박하는 이들이 우리에게 증언하고, 이 문헌들을 사용하니, 그들에 관한 우리의 논증은 확고하고 참되다.

Et haec quidem sunt principia Evangelii, unum Deum fabricatorem hujus universitatis, eum qui et per prophetas sit annuntiatus, et qui per Moysem legis dispositionem fecerit, Patrem Domini nostri Jesu Christi annuntiantia, et praeter hunc alterum Deum nescientia, neque alterum Patrem. Tanta est autem circa Evangelia haec firmitas, ut et ipsi haeretici testimonium reddant eis, et ex ipsis egrediens unusquisque eorum conetur suam confirmare doctrinam. Ebionei etenim eo Evangelio quod est secundum Matthaeum solo utentes, ex illo ipso convincuntur, non recte praesumentes de Domino. Marcion autem id quod est secundum Lucam circumcidens, ex his quae adhuc servantur penes eum, blasphemus in solum exsistentem Deum ostenditur. Qui autem Jesum separant a Christo, et impassibilem perseverasse Christum, passum vero Jesum dicunt, id quod secundum Marcum est praeferentes Evangelium, cum amore veritatis legentes illud, corrigi possunt. Hi autem qui a Valentino sunt, eo quod est secundum Johannem plenissime utentes ad ostensionem conjugationum suarum, ex ipso detegentur nihil recte dicentes, quemadmodum ostendimus in primo libro. Cum ergo hi qui contradicunt, nobis testimonium perhibeant, et utantur his, firma et vera est nostra de illis ostensio.

11.11

복음서들은 지금의 수보다 더 많을 수도, 다시 더 적을 수도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네 방면이 있고, 네 주된 바람이 있으며, 교회는 온 땅에 퍼져 있다. 교회의 기둥과 토대는 복음과 생명의 영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네 기둥을 지녀, 사방으로 썩지 않음을 불어 주고 사람들을 살리는 것은 마땅하다. 이로써 다음 사실이 분명하다. 만물의 장인이신 말씀, 케루빔 위에 앉으시고 모든 것을 품으시는 분께서 사람들에게 나타나, 하나의 영으로 결합된 네 모습을 지닌 복음을 우리에게 주셨다. 다윗도 그분의 오심을 구하며 말한다. “케루빔 위에 앉으신 분이여, 나타나소서.” 케루빔도 네 모습을 지녔으며, 그 모습들은 하나님 아들의 경륜을 나타내는 형상이다. “첫째 생물은 사자와 같다”라고 말한다. 그분의 일을 이루는 힘과 주도권과 왕권을 뜻한다. 둘째는 송아지와 같으며, 희생제사와 제사장직의 질서를 뜻한다. 셋째 생물은 사람 같은 얼굴을 지녔으니, 그분이 사람으로 오심을 분명히 묘사한다. 넷째는 날아가는 독수리와 같으며, 교회로 날아드는 영의 은혜를 드러낸다. 복음서들도 이들과 일치하며, 그 안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앉으신다. 한 복음은 아버지에게서의 그분의 나심을 전한다. 그 나심은 으뜸가고 힘을 발휘하며 영광스럽다. 그 복음은 이렇게 말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또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으며,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때문에 이 복음은 온갖 확신으로 가득하다. 그분의 모습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누가에 따른 복음은 제사장적 특징을 지녔기에, 사가랴 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서 시작했다. 작은아들을 찾은 일을 위해 죽임당할 살진 송아지가 이미 준비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는 그분이 사람으로 태어나심을 전하며 말한다.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의 기록.” 또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러므로 이 복음은 사람의 모습을 지녔다. 이 때문에 복음 전체에서 겸손한 마음을 지닌 온유한 사람의 모습이 유지된다. 마가는 높은 곳에서 사람들에게 오시는 예언의 영에서 시작했다. “복음의 시작이다. 이사야 예언자에게 기록된 대로이다”라고 말하며, 날아다니고 날개를 지닌 복음의 형상을 드러낸다. 이 때문에 짧고 빠르게 지나가는 선포를 전했다. 이것이 예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자신도 모세 이전에 살았던 족장들에게는 자신의 신성과 영광에 따라 말씀하셨고, 율법 아래 있는 이들에게는 제사장적이며 봉사하는 행위를 베푸셨다. 그 후에는 우리를 위해 사람이 되시어, 하늘의 영의 선물을 온 땅에 보내시고, 자신의 날개로 우리를 덮으셨다. 하나님 아들의 경륜이 어떠한가에 따라 생물들의 모습도 그러하고, 생물들의 모습이 어떠한가에 따라 복음의 특징도 그러하다. 생물들은 네 모습을 지녔고, 복음도 네 모습을 지녔으며, 주님의 경륜도 네 모습을 지녔다. 이 때문에 인류에게 네 언약이 주어졌다. 첫째는 홍수 이전 아담 때의 언약이고, 둘째는 홍수 이후 노아 때의 언약이며, 셋째는 모세 때 율법을 주신 일이다. 넷째는 인간을 새롭게 하고, 자기 안에 모든 것을 다시 한데 모으는 언약이다. 이는 복음을 통해 이루어지며, 사람들을 하늘나라로 들어 올리고 날개를 달아 준다.

Neque autem plura numero quam haec sunt, neque rursus pauciora capit esse Evangelia. Quoniam enim quatuor regiones mundi sunt in quo sumus, et quatuor principales spiritus, et deseminata est Ecclesia super omnem terram, columna autem et firmamentum Ecclesiae est Evangelium, et spiritus vitae; consequens est, quatuor habere eam columnas, undique flantes incorruptibilitatem, et vivificantes homines. Ex quibus manifestum est, quoniam qui est omnium artifex Verbum, qui sedet super Cherubim, et continet omnia, declaratus hominibus, dedit nobis quadriforme Evangelium, quod uno spiritu continetur. Quemadmodum et David postulans ejus adventum, ait: Qui sedes super Cherubim, appare. Et enim Cherubim quadriformia; et formae ipsorum imagines sunt dispositionis Filii Dei. Primum enim animal, inquit, simile leoni, efficabile ejus et principale et regale significans: Secundum vero simile vitulo, sacrificalem et sacerdotalem ordinationem significans: Tertium vero animal habens faciem quasi humanam, qui est secundum hominem adventum ejus manifeste describens: Quartum vero simile aquilae volantis, Spiritus in Ecclesiam advolantis gratiam manifestans. Et Evangelia igitur his consonantia, in quibus insidet Christus Jesus. Aliud enim illam quae est a Patre principalem, et efficabilem, et gloriosam generationem ejus enarrat, dicens sic: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Et, Omnia per ipsum facta sunt, et sine ipso factum est nihil. Propter hoc et omni fiducia plenum est Evangelium istud; talis est enim persona ejus. Id vero quod est secundum Lucam, quoniam quidem sacerdotalis characteris est, a Zacharia sacerdote sacrificante Deo inchoavit. Jam enim saginatus parabatur vitulus, qui pro inventione minoris filii inciperet mactari. Matthaeus vero eam quae est secundum hominem, generationem ejus enarrat: Liber, dicens, generationis Jesu Christi, filii David, filii Abraham. Et iterum: Christi autem generatio sic erat. Humanae formae igitur hoc Evangelium: propter hoc et per totum Evangelium humiliter sentiens, et mitis homo servatus est. Marcus vero a prophetico spiritu, ex alto adveniente hominibus, initium fecit: Initium, dicens, Evangelii, quemadmodum scriptum est in Esaia propheta; volatilem et pennatam imaginem Evangelii monstrans: propter hoc et compendiosam et praecurrentem annuntiationem fecit: propheticus enim character est hic. Et ipsum autem Verbum Dei, illis quidem qui ante Moysem fuerunt patriarchis, secundum divinitatem et gloriam colloquebatur: his vero qui in Lege, sacerdotalem et ministerialem actum praebebat: post deinde nobis homo factus, munus coelestis Spiritus in omnem misit terram, protegens nos alis suis. Qualis igitur dispositio Filii Dei, talis et animalium forma: et qualis animalium forma, talis et character Evangelii. Quadriformia autem animalia, et quadriforme Evangelium, et quadriformis dispositio Domini. Et propter hoc quatuor data sunt testamenta humano generi; unum quidem ante cataclysmum sub Adam; secundum vero, post cataclysmum sub Noe; tertium vero, legislatio sub Moyse; quartum vero, quod renovat hominem, et recapitulat in se omnia, quod est per Evangelium, elevans et pennigerans homines in coeleste regnum.

11.12

상황이 이와 같으므로, 복음의 모습을 훼손하고, 앞서 말한 것보다 더 많거나 더 적은 복음의 모습들을 제시하는 이들은 모두 헛되고 배우지 못했으며, 게다가 뻔뻔한 자들이다. 어떤 이들은 진리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한 듯 보이려 하고, 다른 이들은 하나님의 경륜을 물리치려 한다. 마르키온은 복음 전체를 거부하며, 실은 자기 자신을 복음에서 잘라내면서도, 자기에게 복음의 한 몫이 있다고 자랑한다. 또 다른 이들은 마지막 때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인류에게 쏟아진 영의 선물을 무효로 만들려 하며, 요한복음에 따른 복음의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 복음에서 주님은 파라클레토스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들은 복음과 예언의 영을 함께 물리친다. 참으로 비참한 이들이다. 거짓 예언자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예언의 은혜는 교회에서 몰아낸다. 위선으로 다가오는 이들 때문에 형제들과의 교제마저 피하는 이들과 같은 일을 겪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사도 바울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바울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언의 은사들에 관해 자세히 말했으며, 교회에서 예언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모든 일로 하나님의 영께 죄를 지으며, 용서받을 수 없는 죄에 빠진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이들도 아무 두려움 없이, 자기들의 저술을 내놓고, 복음서들 자체보다 더 많은 것을 지녔다고 자랑한다. 그들은 그토록 뻔뻔해져서, 자기들이 얼마 전에 쓴 글에 『진리의 복음』이라는 제목을 붙인다. 그 글은 사도들의 복음서들과 어느 점에서도 일치하지 않으니, 그들에게는 복음조차 모독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만일 그들이 내놓은 것이 진리의 복음이며, 사도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들과 다르다면, 원하는 이들은 다음 결론을 알 수 있다. 그 기록들 자체로 드러나듯이, 사도들이 전한 것은 이제 진리의 복음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복음서들만이 참되고 확고하며, 앞서 말한 수보다 복음서가 더 많을 수도 더 적을 수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토록 많은 증거로 밝혔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잘 짜이고 알맞게 만드셨으므로, 복음의 모습도 잘 짜이고 서로 어울리도록 되어 있어야 했다. 이처럼 그 문헌들의 첫머리에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이들의 견해를 검토했으니, 이제 나머지 사도들에게도 나아가 하나님에 관한 그들의 견해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다음에는 주님의 말씀 자체를 듣자.

His igitur sic se habentibus, vani omnes, et indocti, et insuper audaces, qui frustrantur speciem Evangelii, et vel plures quam dictae sunt, vel rursus pauciores inferunt personas Evangelii: quidam ut plus videantur quam est veritatis adinvenisse: quidam vero, ut reprobent dispositiones Dei. Etenim Marcion totum rejiciens Evangelium, imo vero seipsum abscindens ab Evangelio, partem gloriatur se habere Evangelii. Alii vero ut donum Spiritus frustrentur, quod in novissimis temporibus secundum placitum Patris effusum est in humanum genus, illam speciem non admittunt, quae est secundum Johannis Evangelium, in qua Paracletum se missurum Dominus promisit; sed simul et Evangelium, et propheticum repellunt Spiritum. Infelices vere, qui pseudoprophetae quidem esse volunt, prophetiae vero gratiam repellunt ab Ecclesia: similia patientes his, qui propter eos qui in hypocrisi veniunt, etiam a fratrum communicatione se abstinent. Datur autem intelligi, quod hujusmodi neque Apostolum Paulum recipiant. In ea enim Epistola quae est ad Corinthios, de propheticis charismatibus diligenter locutus est, et scit viros et mulieres in Ecclesia prophetantes. Per haec igitur omnia peccantes in Spiritum Dei, in irremissibile incidunt peccatum. Hi vero qui sunt a Valentino, iterum exsistentes extra omnem timorem, suas conscriptiones proferentes, plura habere gloriantur, quam sint ipsa Evangelia. Siquidem in tantum processerunt audaciae, uti quod ab his non olim conscriptum est, veritatis Evangelium, titulent, in nihilo conveniens Apostolorum Evangeliis, ut nec Evangelium quidem sit apud eos sine blasphemia. Si enim quod ab eis profertur, veritatis est Evangelium, dissimile est autem hoc illis, quae ab Apostolis nobis tradita sunt; qui volunt, possunt discere, quemadmodum ex ipsis Scripturis ostenditur, jam non esse id quod ab Apostolis traditum est veritatis Evangelium. Quoniam autem sola illa vera et firma, et non capit neque plura praeterquam praedicta sunt, neque pauciora esse Evangelia, per tot et tanta ostendimus. Etenim cum omnia composita et apta Deus fecerit, oportebat et speciem Evangelii bene compositam, et bene compaginatam esse. Examinata igitur sententia eorum qui nobis tradiderunt Evangelium, ex ipsis principiis ipsorum, veniamus et ad reliquos Apostolos, et perquiramus sententiam eorum de Deo: post deinde, ipsos Domini sermones audiamus.

12.1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려지신 뒤, 열두 사도의 수를 채우고,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른 이를 유다 대신 선출하려 하여, 그 자리에 있던 이들에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예수를 붙잡은 이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해 미리 말씀하신 이 성경은 이루어져야 했다. 그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 헤아려졌기 때문이다. ‘그의 거처가 황폐해지고, 그곳에 사는 이가 없게 하라.’ 또 ‘그의 감독직을 다른 이가 받게 하라.’” 베드로는 다윗이 한 말들을 근거로 사도의 수를 채웠다. 다시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내려오시어, 모두가 예언하고 여러 언어로 말하게 되자, 어떤 이들은 그들을 조롱하며 새 포도주에 취했다고 여겼다. 베드로는 그때가 낮의 제삼시이므로 그들이 취한 것이 아니며, 이것은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일이라고 말했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들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다.’” 예언자를 통해 인류에게 자신의 영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그 하나님께서 친히 보내신 것이다. 베드로는 바로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이루셨다고 선포한다.

Petrus igitur Apostolus post resurrectionem Domini, et assumtionem in coelos, volens adimplere duodecim Apostolorum numerum, et allegere pro Juda alterum, qui electus esset a Deo, his qui aderant, dixit: Viri fratres, oportebat impleri Scripturam hanc, quam praedixit Spiritus sanctus ore David de Juda, qui factus est dux his qui apprehenderunt Jesum, quoniam annumeratus fuit inter nos: Fiat habitatio ejus deserta, et non sit qui inhabitet in ea; et, Episcopatum ejus accipiat alter: adimpletionem Apostolorum ex his quae a David dicta sunt, faciens. Rursus cum Spiritus sanctus descendisset in discipulos, uti omnes prophetarent, et loquerentur linguis, et quidam irriderent eos, quasi a musto ebrios; dixit Petrus, non ebrios quidem illos esse, cum sit hora tertia diei; esse autem hoc, quod dictum est per prophetam: Erit in novissimis diebus, dicit Dominus, effundam de Spiritu meo in omnem carnem, et prophetabunt. Deus igitur, qui per prophetam promisit missurum se Spiritum suum in humanum genus, ipse et misit et ipse Deus a Petro annuntiatur, suam promissionem adimplesse.

12.2

베드로는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나사렛 예수는 능력과 이적과 표적으로 하나님께서 너희 가운데서 확증하신 사람이다. 너희 자신도 알듯이,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너희 가운데서 그 일들을 행하셨다. 하나님의 정해진 계획과 미리 아심에 따라 넘겨진 이분을 너희는 불의한 자들의 손을 통해 못 박아 죽였다. 하나님께서는 저승의 고통을 풀어 그를 일으키셨다. 그 고통이 그를 붙들고 있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윗은 그분에 관해 말한다. ‘나는 언제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았다. 내가 흔들리지 않도록 그분이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 마음이 기뻐하고 내 혀가 즐거워했으며, 내 육체도 희망 가운데 쉴 것이다. 당신께서는 내 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가 썩음을 겪게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다음 베드로는 다시 그들에게 담대하게, 족장 다윗이 죽어 묻혔으며, 그의 무덤이 오늘까지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했다. “다윗은 예언자였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맹세하시어, 그의 몸에서 난 이가 그의 왕좌에 앉으리라고 하신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했다.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 육체도 썩음을 겪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이 예수를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모두 그 증인이다. 그분은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높여지시고, 아버지에게서 성령의 약속을 받으시어, 너희가 지금 보고 듣는 이 선물을 부어 주셨다. 다윗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으나, 친히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셨다.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의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내 오른쪽에 앉아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아야 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주님이요 그리스도로 삼으셨다.” 무리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베드로는 그들에게 말했다. “회개하라. 너희 각자는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죄의 용서를 얻어라. 그러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다.” 이처럼 사도들은 다른 하나님이나 다른 충만함을 선포하지 않았다. 수난을 겪고 부활한 그리스도가 한 분이고, 위로 날아 올라가 수난을 겪을 수 없는 채로 머문 그리스도가 다른 분이라고도 선포하지 않았다. 한 분이며 동일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그리스도 예수를 선포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그분을 향한 믿음을 알렸고, 예언자들을 근거로 그들에게 권했다. 하나님께서 보내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 그분으로 예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일으키셨다.

Viri, enim inquit Petrus, Israelitae, audite sermones meos: Jesum Nazarenum, virum approbatum a Deo in vobis virtutibus et prodigiis et signis, quae fecit per ipsum Deus in medio vestrum, quemadmodum ipsi scitis: hunc definito consilio et praescientia Dei traditum per manus iniquorum affigentes interfecistis: quem Deus excitavit, solutis doloribus inferorum, quoniam non erat possibile teneri eum ab eis. David enim dicit in ipsum: Providebam Dominum in conspectu meo semper, quoniam a dextris meis est, ne movear. Propter hoc laetatum est cor meum, et exultavit lingua mea, insuper et caro mea requiescet in spe. Quoniam non derelinques animam meam in inferno, neque dabis sanctum tuum videre corruptionem. Dehinc rursum fiducialiter illis dicit de patriarcha David, quoniam mortuus est et sepultus, et sepulchrum ejus sit apud eos usque in hunc diem. Propheta autem, inquit, cum esset, et sciret quoniam jurejurando ei juravit Deus, de fructu ventris ejus sedere in throno ejus, providens locutus est de resurrectione Christi, quoniam neque derelictus est apud inferos, neque caro ejus vidit corruptionem. Hunc Jesum, inquit, excitavit Deus, cujus nos omnes sumus testes: qui dextera Dei exaltatus, repromissionem sancti Spiritus accipiens a Patre, effudit donationem hanc quam vos nunc videtis et auditis. Non enim David ascendit in coelos; dicit autem ipse: Dixit Dominus Domino meo, Sede ad dexteram meam, quoadusque ponam inimicos tuos suppedaneum pedum tuorum. Certissime ergo sciat omnis domus Israel, quoniam et Dominum eum, et Christum, Deus fecit hunc Jesum, quem vos crucifixistis. Cum dixissent igitur turbae; Quid ergo faciemus? Petrus ad eos ait: Poenitentiam agite, et baptisetur unusquisque vestrum in nomine Jesu in remissionem peccatorum, et accipietis donum Spiritus sancti. Sic non alium Deum, nec aliam plenitudinem annuntiabant Apostoli; nec alterum quidem passum et resurgentem Christum, alterum vero qui sursum volaverit, et impassibilis perseveraverit; sed unum et eundem Deum Patrem, et Christum Jesum, qui a mortuis resurrexit; et eam quae in eum est, fidem annuntiabant his, qui non credebant in filium Dei, et ex prophetis cohortabantur eos, quoniam eum, quem promisit se Deus missurum Christum, misit Jesum, quem ipsi crucifixerunt, quem Deus excitavit.

12.3

다시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태어날 때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이 아름다운 문이라 불리는 성전 문 앞에 앉아 구걸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말했다. “내게 은과 금은 없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네게 준다.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곧 그의 발걸음과 발바닥이 굳세어졌고, 그는 걸었다. 그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가, 걷고 뛰며 하나님을 찬양했다. 뜻밖의 일로 온 무리가 그들에게 모여들자, 베드로가 말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왜 이 일을 놀라워하는가? 우리가 우리 힘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바라보는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너희는 그를 재판에 넘겼고, 그를 놓아주려던 빌라도 앞에서 그를 부인했다. 너희는 거룩하고 의로운 분을 억눌렀으며, 살인자를 너희에게 내어 달라고 요구했다. 생명의 인도자는 죽였다.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며, 우리는 그 증인이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 믿음으로, 그분의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굳세게 했다. 그분을 통한 믿음이 너희 모두 앞에서 이 사람에게 온전한 건강을 주었다. 이제 형제들이여, 너희가 알지 못해 악한 일을 했음을 나는 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통해 자신의 그리스도가 수난을 겪으리라고 미리 말씀하신 것을 이루셨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아서라. 너희 죄가 지워지고, 주님의 얼굴에서 너희에게 쉼을 얻는 때가 이르며, 너희를 위해 준비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한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신 모든 것을 정돈할 때까지, 하늘은 그분을 받아들여야 한다. 모세는 우리 조상들에게 말한다. ‘너희 주 하나님께서 너희 형제들 가운데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너희에게 일으키실 것이다. 그가 너희에게 말하는 모든 일에서 그의 말을 들어라.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백성 가운데서 멸망할 것이다.’ 사무엘부터 그 뒤에 말한 모든 이들도 이 날들을 알렸다. 너희는 예언자들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정하신 언약의 자녀이다. 그분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후손 안에서 땅의 모든 종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일으켜 먼저 너희에게 보내시어 복을 주셨다. 너희 각자가 자기 악행에서 돌아서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들에게 분명한 선포를 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예수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기쁜 소식을 알렸다. 다른 하나님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고 수난을 겪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알리며, 이스라엘을 앎으로 이끌었다. 예수 안에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선포하고, 예언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해 알린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셨음을 밝혔다.

Rursus cum Petrus simul cum Johanne vidisset eum qui a nativitate claudus erat, ante portam templi, quae dicitur speciosa, sedentem et petentem eleemosynam, dixit ei: Argentum et aurum non est mihi; quod autem habeo, hoc tibi do: In nomine Jesu Christi Nazareni surge et ambula. Et statim ejus confirmati sunt gressus et plantae, et ambulabat, et introivit cum ipsis in templum, ambulans, et saliens, et glorificans Deum. Multitudine autem universa collecta ad eos propter inopinatum factum, Petrus dixit eis: Viri Israelitae, quid miramini in hoc, et nos quid intuemini, quasi nostra virtute fecerimus hunc ambulare? Deus Abraham, Deus Isaac, et Deus Jacob, Deus patrum nostrorum, glorificavit Filium suum, quem vos quidem tradidistis in judicium, et negastis ante faciem Pilati, cum remittere eum vellet. Vos autem sanctum et justum aggravastis, et petistis virum homicidam donari vobis: ducem autem vitae occidistis, quem Deus excitavit a mortuis, cujus nos testes sumus. Et in fide nominis ejus hunc quem videtis et scitis, confirmavit nomen ejus, et fides quae est per ipsum, dedit ei incolumitatem coram vobis omnibus. Et nunc, fratres, scio quoniam secundum ignorantiam fecistis nequam. Deus autem quae praedixit ore omnium prophetarum pati Christum suum adimplevit. Poenitentiam igitur agite, et convertimini, uti deleantur peccata vestra, et veniant vobis tempora refrigerii a facie Domini, et mittat praeparatum vobis Jesum Christum, quem oportet quidem coelum suscipere usque ad tempora dispositionis omnium quae locutus est Deus per sanctos prophetas suos. Moyses quidem dicit ad patres nostros: Quoniam Prophetam excitabit vobis Dominus Deus vester ex fratribus vestris, quemadmodum me, ipsum audietis in omnibus quaecunque locutus fuerit ad vos. Erit autem omnis anima quaecunque non audierit Prophetam illum, peribit de populo. Et omnes a Samuel et deinceps, quotquot locuti sunt, et annuntiaverunt dies istos. Vos estis filii prophetarum, et testamenti quod Deus disposuit ad patres nostros, dicens ad Abraham: Et in semine tuo benedicentur omnes tribus terrae. Vobis primum Deus excitans Filium suum misit benedicentem vos, ut convertat se unusquisque a nequitiis suis. Manifestam ergo praeconationem Petrus cum Johanne praeconavit eis, repromissionem quam fecit Deus patribus, per Jesum adimpletam evangelisans: non quidem alterum Deum annuntians, sed Filium Dei, qui et homo factus est, et passus, in agnitionem adducens Israel, et in Jesu resurrectionem quae est a mortuis, annuntians, et significans quoniam omnia quae prophetae annuntiaverunt de passione Christi, haec adimplevit Deus.

12.4

이 때문에 대제사장들이 다시 모였을 때, 베드로는 담대하게 그들에게 말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이스라엘 장로들이여, 약한 사람에게 베푼 선행, 곧 이 사람이 낫게 된 일로 오늘 우리가 너희에게 심문받는다면, 너희 모두와 이스라엘 온 백성은 알아야 한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고 하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이름으로, 바로 그분을 통해 이 사람이 너희 앞에 건강하게 서 있다. 그분은 건축하는 너희가 업신여긴 돌이지만,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셨다. 우리가 구원받도록 하늘 아래 사람들에게 주어진 다른 이름은 없다.” 이처럼 사도들은 하나님을 바꾸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백성에게 알렸다. 예언자들을 보내신 그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시고, 그분 안에서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셨다.

Propter quod rursus convocatis principibus sacerdotum, fiducialiter Petrus dixit ad eos: Principes populi et seniores Israelitae, si nos hodie redarguimur a vobis in benefacto hominis infirmi, in quo hic salvatus est; cognitum sit omnibus vobis et omni populo Israel, quoniam in nomine Jesu Christi Nazareni, quem vos crucifixistis, quem Deus excitavit a mortuis, in hoc hic adstat in conspectu vestro sanus. Hic est lapis spretus a vobis aedificantibus, qui factus est in caput anguli. Et non est aliud nomen sub coelo, quod datum sit hominibus, in quo oporteat salvari nos. Sic Apostoli non Deum mutabant, sed Christum annuntiabant populo esse Jesum qui crucifixus est, quem Deus qui prophetas misit, idem Deus, excitavit, et salutem in eo dedit hominibus.

12.5

대제사장들은 그 치유와 사도들의 가르침, 예언자들의 말씀에 대한 풀이로 당혹해했다. (성경은 말한다. 이 치유의 표적이 일어난 사람은 나이가 마흔을 넘었다고 한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놓아주자, 두 사람은 나머지 동료 사도들과 주님의 제자들, 곧 교회로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으며 예수의 이름으로 얼마나 담대하게 행동했는지를 전했다. 온 교회는 이를 듣고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목소리를 높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주님, 하늘과 땅과 바다,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조상 다윗, 주님의 종의 입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이방 민족들이 소란을 일으키고, 백성들이 헛된 것을 꾀했는가? 땅의 왕들이 일어섰고, 주님과 그분의 그리스도를 거슬러 지도자들이 한데 모였다.’ 참으로 헤롯과 폰티우스 빌라도는 이방 민족들 및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주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거룩한 아들 예수를 거슬러 이 성읍에 모였습니다. 주님의 손과 뜻이 일어나도록 미리 정하신 모든 일을 행하려는 것이었습니다.”

Confusi igitur et per curationem, (annorum enim, inquit Scriptura, plusquam XL erat homo in quo factum est signum curationis) et per doctrinam Apostolorum, et prophetarum expositionem, cum remisissent summi sacerdotes Petrum et Johannem, et reversi essent ad reliquos coapostolos et discipulos Domini, id est in Ecclesiam, et enarrassent quae fuerant facta, et quemadmodum fiducialiter egissent in nomine Jesu. Audientes, inquit, tota Ecclesia, unanimes extulerunt vocem ad Deum, et dixerunt: Domine, tu es Deus qui fecisti coelum, et terram, et mare, et omnia quae in eis sunt, qui per Spiritum sanctum ore David patris nostri, pueri tui, dixisti: Quare fremuerunt gentes, et populi meditati sunt inania? Adstiterunt reges terrae, et principes congregati sunt in unum adversus Dominum, et adversus Christum ejus. Convenerunt enim vere in hac civitate adversus sanctum Filium tuum Jesum quem unxisti, Herodes et Pontius Pilatus, cum gentibus et populis Israel, facere quaecunque manus tua et voluntas tua praedestinaverat fieri.

12.6

이것은 교회의 목소리, 모든 교회가 시작된 그 교회의 목소리이다. 이것은 큰 도성의 목소리, 새 언약의 시민들의 목소리이다. 이것은 사도들의 목소리이며, 주님의 제자들의 목소리이다. 그들은 주님이 승천하신 뒤 영을 통해 완전하게 된 이들이다.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시고,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을 불렀으며,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신 그분의 아들 예수도 불렀다. 그들은 다른 이를 알지 못했다. 그때 거기에는 발렌티노스도, 마르키온도 없었고, 자기 자신이나 자기들에게 동의하는 이들을 파멸시키는 나머지 자들도 없었다. 그러므로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들의 말을 들어 주셨다. 이렇게 말한다. “그들이 모여 있던 곳이 흔들렸고,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믿기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했다.” 또 큰 능력으로 사도들이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며,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예수를 일으키셨다. 너희는 그분을 붙잡아 나무에 매달고 죽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으로 그분을 지도자이자 구원자로 높이셨다. 이스라엘에게 회개를, 죄의 용서를 주시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이 일들의 증인이며, 하나님께서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시다.” “날마다 성전과 집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가르치고 복음으로 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라고 한다. 곧 하나님의 아들을 전한 것이다. 이것이 구원의 앎이었다. 하나님 아들의 오심을 아는 이들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하는 앎이다.

Hae voces Ecclesiae, ex qua habuit omnis ecclesia initium: hae voces civitatis magnae, novi testamenti civium: hae voces Apostolorum, hae voces discipulorum Domini, eorum qui post assumtionem Domini per Spiritum et perfecti exstiterunt, et invocaverunt Deum qui fecit coelum et terram et mare, qui per prophetas annuntiatus est, et ejus Filium Jesum, quem unxit Deus, et alterum autem nescientes. Non enim erat ibi tunc Valentinus, nec Marcion, nec reliqui sui vel eorum qui assentiunt eis eversores. Propter quod et exaudivit eos factor omnium Deus. Commotus est enim, inquit, locus, in quo erant collecti, et repleti sunt omnes Spiritu sancto, et loquebantur verbum Dei cum fiducia, omni volenti credere. Virtute enim magna, inquit, reddebant testimonium Apostoli resurrectionis Domini Jesu, dicentes ad eos: Deus patrum nostrorum excitavit Jesum, quem vos apprehendistis, et interfecistis suspendentes in ligno. Hunc Deus principem et Salvatorem exaltavit gloria sua, dare poenitentiam Israel, et remissionem peccatorum: et nos in eo testes sumus sermonum horum, et Spiritus sanctus, quem dedit Deus credentibus ei. Omni quoque die, inquit, in templo, et in domo non cessabant docentes et evangelisantes Christum Jesum Filium Dei. Haec enim erat salutis agnitio, quae perfectos ad Deum efficit eos, qui cognoscunt Filii ejus adventum.

12.7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뻔뻔하게 이렇게 말한다. “사도들은 유대인들에게 선포할 때, 그들이 이미 믿고 있던 분 외에 다른 하나님을 알릴 수 없었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한다. 만일 사도들이 사람들에게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견해에 맞추어 말했다면, 아무도 그들에게서 진리를 알게 되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이 그보다 앞서 주님에게서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주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들 자신도 진리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이 그러했으므로, 자기들이 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주장에 따르면, 아무에게도 진리의 규범이 없게 될 것이다. 모든 제자가 모든 스승을 탓하며, 각자가 생각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자기에게 말해 주었다고 할 것이다. 주님이 오셔서 각자에게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하나님에 대한 견해를 그대로 허용하고 지켜 주려 하셨다면, 주님의 오심도 쓸모없고 무익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더구나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있었다.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보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분을,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 자기들의 영원한 왕이라고 알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미 그들의 종래 견해에 맞추어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주님을 죽인 자들이라고 말한 이들이라면, 데미우르고스 위에 있는 그 아버지를 더욱 담대하게 알렸을 것이며, 각자가 생각하던 것을 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만일 더 높은 구원자가 그들이 올라가야 할 대상이고, 수난을 겪지 않는 존재여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었다면, 그 죄도 훨씬 작았을 것이다. 그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이방인들의 생각에 맞추어 말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들의 신들은 신이 아니며 악령들의 우상이라고 말했듯이, 다른 더 크고 완전한 아버지를 알았다면, 유대인들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알렸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그릇된 견해를 키워 주거나 더욱 늘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의 오류를 풀어 주고, 그들을 그들의 신들에게서 떼어 놓으면서, 또 다른 오류로 이끌지 않았다. 신이 아닌 것들을 치워 버리고, 홀로 하나님이시며 참된 아버지이신 분을 보여 주었다.

Quoniam autem impudenter quidam eorum dicunt, apud Judaeos praeconantes Apostoli non poterant alterum eis Deum annuntiare praeter eum, qui creditus fuerat ab ipsis; dicimus ad eos, quoniam si secundum olim insitam opinionem hominibus loquebantur Apostoli, nemo ab his cognovit veritatem, multo autem prius a Domino; etenim ipsum sic locutum dicunt. Nec hi ergo ipsi veritatem sciunt, sed sententia eorum de Deo cum esset talis, exceperant doctrinam, quemadmodum audire poterant. Secundum hunc igitur sermonem apud neminem erit regula veritatis, sed omnes discipuli omnibus imputabunt, quoniam quemadmodum unusquisque sentiebat, et quemadmodum capiebat, sic et sermo ad eum factus est. Superfluus autem et inutilis adventus Domini parebit, si quidem venit permissurus et servaturus uniuscujusque olim insitam de Deo opinionem. Adhuc etiam et multo durius erat, quem hominem viderant Judaei, et cruci affixerant, annuntiari hunc esse Christum Filium Dei, aeternum ipsorum Regem. Non igitur jam secundum pristinam eorum opinionem loquebantur ad eos. Qui enim in faciem interfectores eos esse Domini dicebant, multo magis fiducialiter eum Patrem, qui super Demiurgum est, et ipsi annuntiarent, et non id quod putabat unusquisque; et multo minus erat peccatum, siquidem superiorem Salvatorem, ad quem ascendere eos oporteret, quoniam esset impassibilis, non affixissent cruci. Quemadmodum enim gentibus non secundum sententiam illorum loquebantur, sed cum fiducia dicebant, quoniam dii ipsorum non essent dii, sed idola daemoniorum; simili modo et Judaeis annuntiassent, si alterum majorem et perfectiorem scissent Patrem, non adnutrientes, neque augentes eorum non veram de Deo opinionem. Et Ethnicorum autem solventes errorem, et auferentes eos a suis diis, non utique alterum eis inferebant errorem; sed auferentes eos qui non erant dii, eum qui solus erat Deus et verus Pater, ostenderunt.

12.8

그러므로 카이사레아에서 백인대장 코르넬리우스와 그와 함께 있던 이방인들에게 베드로가 한 말을 통해, 사도들이 무엇을 알렸는지, 그들의 선포가 어떠했는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전해진 이방인들이었다. 이렇게 말한다. “이 코르넬리우스는 경건한 사람이었으며, 온 집안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에게 많은 구제를 베풀며,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했다. 낮 제구시 무렵, 하나님의 천사가 자기에게 들어와 말하는 것을 보았다. ‘너의 구제가 하나님 앞에 기억될 일로 올라왔다. 그러니 사람을 보내 베드로라고 불리는 시몬을 부르라.’” 베드로는 계시를 보았고, 그 안에서 하늘의 음성이 그에게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이 말씀은 이런 뜻이었다. 율법을 통해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을 구별하신 하나님, 곧 코르넬리우스도 섬기던 그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의 피를 통해 이방 민족들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에게 가서 말했다. “나는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가리지 않으시며, 어느 민족에서든 그분을 경외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분께서 받아 주십니다.” 코르넬리우스가 이전부터 경외하던 하나님,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해 들어 알게 된 하나님, 그가 구제를 베푼 이유가 된 그분이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에게 부족했던 것은 [아들을] 아는 앎이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덧붙였다. “여러분은 일어난 그 일을 알고 있습니다. 온 유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요한이 선포한 세례 뒤에, 갈릴래아에서 시작하여,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께서 성령과 능력으로 어떻게 기름 부으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두루 다니며 선한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억눌린 모든 이를 고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분이 행하신 모든 일의 증인이 우리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분을 사흘째 되는 날 일으키시고, 모습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온 백성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증인인 우리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뒤,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가 바로 자신이라고 백성에게 알리고 증언하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예언자가 이분을 증언합니다. 이분을 믿는 모든 사람은 그분의 이름을 통해 죄의 용서를 받습니다.”

Ex verbis Petri igitur, quae fecit in Caesarea ad Cornelium centurionem, et eos qui cum eo erant gentiles, quibus primo enarratus est sermo Dei, cognoscendum est nobis, quae annuntiabant Apostoli, et qualis fuit praedicatio ipsorum, et quam habuerunt de Deo sententiam. Erat enim, inquit, Cornelius hic religiosus, et timens Deum cum tota domo sua, et faciens eleemosynas multas in populo, et orans Deum semper. Vidit ergo circa horam nonam diei, angelum Dei introeuntem ad se, et dicentem: Eleemosynae tuae ascenderunt in recommemorationem in conspectu Dei. Propter quod mitte ad Simonem, qui vocatur Petrus. Petrus autem cum vidisset revelationem, in qua respondit ad eum coelestis vox: Quae Deus emundavit, tu ne commune dixeris; hoc ideo, quoniam qui per legem inter munda et immunda distinxit Deus, hic emundavit gentes per sanguinem Filii sui, quem et Cornelius colebat. Ad quem Petrus veniens dixit: In veritate comperi, quoniam non est personarum acceptor Deus, sed in omni gente, qui timet eum et operatur justitiam, acceptabilis ei est. Manifeste significans, quoniam quem antea Deum timebat Cornelius, quem per legem et prophetas audierat, propter quem et eleemosynas faciebat, hic in veritate est Deus. Deerat autem ei [Filii] agnitio. Propter quod adjecit: Vos scitis quod factum est verbum per omnem Judaeam. Incipiens enim a Galilaea post baptismum quod praedicavit Johannes, Jesum a Nazareth, quemadmodum unxit eum Deus Spiritu sancto et virtute: ipse circuivit benefaciens et curans omnes qui oppressi erant a diabolo, quoniam Deus erat cum eo. Et nos testes sumus omnium eorum quae fecit et in regione Judaeorum, et in Hierusalem: quem interfecerunt suspendentes in ligno. Hunc Deus excitavit tertia die, et dedit eum manifestum fieri, non omni populo, sed testibus nobis praedestinatis a Deo, qui cum eo et manducavimus, et bibimus post resurrectionem a mortuis. Et praecepit nobis annuntiare populo et testificari, quoniam ipse est praedestinatus a Deo Judex vivorum et mortuorum. Huic omnes prophetae testimonium reddunt, remissionem peccatorum accipere per nomen ejus omnem credentem in eum.

12.9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 이미 가르침을 받은 이들에게, 사람들이 알지 못하던 하나님의 아들과 그분의 오심을 사도들은 알렸다. 다른 하나님을 끌어들인 것은 아니었다. 만일 베드로가 그런 것을 알았다면, 유대인들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이방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선포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천사의 환상으로 두려워하고 있었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든 믿었을 것이다. 베드로의 말을 보면 분명하다. 그는 그들이 이미 알던 하나님을 그대로 지켰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그들에게 증언했다.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이신 그분을 말한 것이다. 죄의 용서를 받도록 그분 안에서 세례를 받으라고 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했다. 그분은 성령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라 불리신다. 이분이 바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그분이다. 베드로의 증언에 담긴 내용이 그러하다. 혹시 이 자들이 나중에 발견했다는 그 완전한 앎을 베드로는 그때 아직 갖추지 못했단 말인가? 그들의 말대로라면 베드로는 불완전했고, 나머지 사도들도 불완전했다. 그러니 사도들이 다시 살아나 이 자들의 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들도 완전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말은 우스꽝스럽다. 이 자들이 사도들의 제자가 아니라 자기들의 악한 생각을 따르는 제자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래서 그들은 저마다 다른 생각을 품는다. 각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오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온 세계의 교회는 사도들에게서 확고한 기초를 받아, 하나님과 그 아들에 대한 하나의 동일한 생각을 굳게 지킨다.

Filium ergo Dei quem ignorabant homines, annuntiabant Apostoli, et adventum ejus, his qui ante instructi erant de Deo; sed non alterum Deum inferebant. Si enim tale aliquid sciret Petrus, libere gentibus praedicasset, alterum quidem Judaeorum, alterum autem Christianorum esse Deum; qui quidem propter visionem angeli conterriti omnes, quodcunque eis dixisset, credidissent. Ex verbis autem Petri manifestum est, quoniam praecognitum quidem eis Deum custodivit, Filium autem Dei Jesum Christum esse testificatus est ipsis, judicem vivorum et mortuorum, in quem et baptizari eos jussit in remissionem peccatorum: et non tantum hoc, sed et Jesum ipsum esse Filium Dei testificatus est, qui et unctus Spiritu sancto, Jesus Christus dicitur. Et est hic idem ex Maria natus, quemadmodum Petri continet testificatio. An numquid perfectam tunc cognitionem nondum habebat Petrus, quam postea adinvenerunt hi? Imperfectus igitur secundum hos Petrus, imperfecti autem et reliqui Apostoli: et oportebit eos reviviscentes, horum fieri discipulos, ut et ipsi perfecti fiant. Sed et hoc quidem ridiculum est. Arguuntur vero isti non quidem Apostolorum, sed suae malae sententiae esse discipuli. Propter hoc autem et variae sententiae sunt uniuscujusque eorum, recipientis errorem quemadmodum capiebat. Ecclesia vero per universum mundum ab Apostolis firmum habens initium, in una et eadem de Deo et de Filio ejus perseverat sententia.

12.10

또 필리포스는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며 예언자 이사야를 읽던 에티오피아 여왕의 내시와 단둘이 있을 때, 누구를 알렸는가? 예언자가 다음과 같이 말한 분이 아니었는가? “그는 도살될 양처럼 끌려갔고, 털 깎는 이 앞에서 소리 내지 않는 어린양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나심을 누가 설명하겠는가? 그의 생명이 땅에서 거두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분이 예수이시며, 그분 안에서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알렸다. 내시 자신도 그렇게 믿고, 곧 세례받기를 청하며 말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그는 에티오피아의 여러 지역으로 보냄을 받았다. 자신이 믿게 된 것을 선포하기 위해서였다.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의 아들이 [이미] 사람으로 오셨고, 제물로 바쳐질 양처럼 끌려가셨다는 것, 그리고 예언자들이 그분에 대해 말한 나머지 모든 것이었다.

Philippus autem rursus spadoni reginae Aethiopum revertenti a Hierosolymis, et legenti Esaiam prophetam, solus soli, quem annuntiavit? Nonne eum de quo dixit propheta: Tanquam ovis ad occisionem ductus est, quemadmodum agnus ante tondentem se sine voce, sic non aperuit os? Nativitatem autem ejus quis enarrabit? quoniam tolletur a terra vita ejus. Hunc esse Jesum, et impletam esse in eo Scripturam; quemadmodum ipse eunuchus credens, et statim postulans baptisari dicebat: Credo Filium Dei esse Jesum. Qui et missus est in regiones Aethiopiae, praedicaturus hoc quod ipse crediderat, Deum quidem unum per prophetas praedicatum; hujus vero Filium [jam] fecisse secundum hominem adventum, et ut ovem ad victimam ductum, et reliqua, quaecunque prophetae dicunt de eo.

12.11

바울 자신도 그러했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그에게 말씀하시고, 그분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것이 자기 주님을 박해하는 것임을 보여 주신 뒤, 다시 보고 세례받도록 아나니아스를 그에게 보내셨다.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서 아주 담대하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했다.” 계시를 통해 자신에게 드러났다고 말한 그 신비가 이것이다. 폰티우스 빌라도 아래서 수난을 겪으신 분이 만물의 주님이시며, 왕이자 하나님이자 심판자라는 것이다. 만물의 하나님이신 분에게서 권한을 받으셨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종하셨기 때문이다. 그것도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이것이 참되다는 것은 다음 말에서도 드러난다. 아테네 사람들에게 아레오파고스에서 복음을 전할 때, 거기에는 유대인들이 없었으므로, 참 하나님을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말했다.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시며, 사람 손으로 지은 신전 안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무엇이 부족한 분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도 아닙니다. 그분이 친히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을, 그리고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한 피로 온 인류를 만드시고, 온 땅 위에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거주하도록 정하신 바에 따라 때를 미리 정하시고, 신적인 것을 찾게 하셨습니다. 어떻게든 그것을 더듬어 느끼거나 발견하게 하신 것입니다. 실로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참으로 그분 안에서 우리는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여러분에게 속한 어떤 이들도 말했습니다. ‘우리도 그분의 자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손이므로, 신적인 것이 사람의 기술이나 욕망으로 빚은 금이나 은이나 돌과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의 때를 지나쳐 주셨으나, 이제 어디서나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여 자신에게 돌아오라고 명하십니다. 한 사람 예수를 통해 의롭게 세상을 심판하실 날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그분 안에 믿음의 확증을 두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그들에게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을 알린다. 유대인들이 그 자리에 없는데도 그러하다. 또 하나님께서 인류를 하나로 만드셨으며, 온 땅에 살게 하셨다고 알린다. 모세도 이렇게 말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민족들을 나누시고, 아담의 아들들을 흩으실 때, 하나님의 천사들의 수에 따라 민족들의 경계를 정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이제 천사들의 권세 아래 있지 않고, 주님의 권세 아래 있다. “야곱, 곧 그분의 백성은 주님의 몫이 되었고, 이스라엘은 그분이 유산으로 받으신 땅이 되었기 때문이다.”

Paulus quoque et ipse, posteaquam de coelo locutus est ad eum Dominus, et ostendit quoniam suum Dominum persequeretur, persequens discipulos ejus, et misit Ananiam ad eum, ut iterum videret et baptisaretur: In synagogis, ait, in Damasco praedicabat cum omni fiducia Jesum, quoniam hic est Christus Filius Dei. Hoc est mysterium quod dicit per revelationem manifestatum sibi, quoniam qui passus est sub Pontio Pilato, hic Dominus est omnium, et Rex, et Deus, et Judex; ab eo qui est omnium Deus, accipiens potestatem, quoniam subjectus factus est usque ad mortem, mortem autem crucis. Et quoniam hoc verum est, Atheniensibus evangelisans in Areopago, ubi Judaeis non assistentibus, licebat ei cum fiducia verum praedicare Deum, dixit eis: Deus qui fecit mundum et omnia quae in eo sunt, hic coeli et terrae Dominus exsistens, non in manufactis templis inhabitat, nec a manibus humanis tractatur, tanquam alicujus indigens, cum ipse omnibus dederit vitam et spiritum, et omnia, qui fecit ex uno sanguine omne genus hominum inhabitare super faciem totius terrae, praefiniens tempora secundum determinationem inhabitationis eorum, quaerere illud quod est divinum, si quo modo tractare possint illud aut invenire, quamvis etiam non longe sit ab unoquoque nostrum: in ipso enim vivimus, et movemur, et sumus: et quemadmodum quidam secundum vos dixerunt: Hujus enim et genus sumus. Genus igitur cum simus Dei, non oportet nos putare, id quod est divinum simile esse auro vel argento, vel lapidi per artem vel concupiscentiam hominis deformato. Tempora ergo ignorantiae despiciens Deus, nunc praecipit hominibus omnibus ubique poeniteri in ipsum, quoniam constituit diem judicari orbem terrae in justitia, in viro Jesu, in quo statuit fidem, excitans eum a mortuis. Hoc autem in loco non solum factorem mundi Deum eis annuntiat, non assistentibus Judaeis; sed et quoniam unum genus humanum fecit inhabitare super omnem terram; quemadmodum et Moyses ait: Quando divisit Altissimus gentes, quemadmodum dispersit filios Adam, statuit terminos gentium secundum numerum angelorum Dei: populum autem qui credit Deo, jam non esse sub angelorum potestate, sed sub Domini. Facta est enim portio Domini populus ejus Jacob, funiculum haereditatis ejus Israel.

12.12

또 바울은 리키아의 루스드라에 바르나바와 함께 있을 때, 태어날 때부터 다리를 저는 사람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걷게 했다. 그 놀라운 일 때문에 군중이 그들을 신들처럼 받들려 하자,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도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복음으로 전합니다. 이 헛된 형상들에게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서십시오. 그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지나간 시대에는 모든 민족이 제 갈 길로 가도록 허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증언 없이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선한 일을 베푸시며, 하늘에서 여러분에게 비와 열매 맺는 때를 주시고,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워 주셨습니다.” 그의 모든 편지가 이러한 선포와 일치한다는 것은, 알맞은 곳에서 사도의 말을 풀이하며, 그 편지들 자체를 통해 보이겠다. 우리가 함께 수고하여 성경에 근거한 이러한 증거들을 다루고, 여러 방식으로 말해진 것을 짧고 간추려 전할 때, 그대도 너그럽게 귀를 기울이며, 말을 길게 늘어놓는다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성경 안에 있는 증거는 바로 그 성경을 통해서만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 두라.

Et iterum Lystris Lyciae cum esset Paulus cum Barnaba, et a nativitate claudum in nomine Domini nostri Jesu Christi ambulare fecisset, et cum turba honorare eos vellet quemadmodum deos, propter admirabile factum, ait eis: Nos similes vobis sumus homines, evangelisantes vobis Deum, uti ab eis vanis simulachris convertamini ad Deum vivum, qui fecit coelum, et terram, et mare, et omnia quae in eis sunt: qui in praeteritis temporibus permisit omnes gentes abire vias suas, quamquam non sine testimonio semetipsum reliquit, benefaciens, de coelo dans vobis pluvias et tempora fructifera, adimplens cibo et hilaritate corda vestra. Quoniam autem his annuntiationibus ejus omnes epistolae consonant, ex ipsis epistolis ostendemus apto in loco, exponentes apostolum. Nobis autem collaborantibus his ostensionibus quae ex Scripturis sunt, et quae multifarie dicta sunt, breviter et compendiose annuntiantibus, et tu cum magnanimitate intende eis, et non longiloquium putare: hoc intelligens quoniam ostensiones quae sunt in Scripturis, non possunt ostendi, nisi ex ipsis Scripturis.

12.13

또 스테파노스는 사도들에게 첫 집사로 뽑혔으며, 모든 사람 가운데 처음으로 주님의 순교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리스도를 고백한 까닭에 처음 죽임당한 그는, 백성 가운데서 담대하게 말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땅과 친족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오라.’ 그분은 아브라함을 옮기셨다. 지금 너희도 살고 있는 이 땅으로 옮기셨다. 이곳에서 그에게 유산을 주지 않으셨다. 발 디딜 만큼도 주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와 그 뒤의 후손에게 이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의 후손은 남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며, 종살이를 하게 되고, 사백 년 동안 괴로움을 겪을 것이다. 그들이 섬길 민족을 내가 심판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그 뒤에 그들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고, 그렇게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낳았다.” 스테파노스가 한 나머지 말도 요셉과 함께 계셨고, 족장들과 함께 계셨으며, 모세와 말씀을 나누신 그 동일한 하나님을 알린다.

Stephanus autem iterum qui electus est ab Apostolis primus diaconus, qui et primus ex omnibus hominibus sectatus est vestigia martyrii Domini, propter Christi confessionem primus interfectus, fiducialiter loquens in populo, et docens eos, dicens: Deus gloriae visus est patri nostro Abrahae, et dixit ad eum: Exi de terra tua et de cognatione tua, et veni in terram quam demonstrabo tibi: et transtulit illum in terram hanc, quam nunc et vos inhabitatis, et non dedit ei haereditatem in ea, nec gressum pedis, sed promisit dare ei in possessionem eam, et semini ejus post eum. Locutus est autem sic Deus ad eum, quoniam erit semen ejus peregrinans in terra aliena, et in servitutem redigentur, et vexabuntur annis quadringentis, et gentem cui servient, judicabo ego, dicit Dominus. Et postea exient et servient mihi in isto loco. Et dedit ei testamentum circumcisionis, et sic generavit Isaac. Et reliqua autem verborum ejus eundem Deum annuntiant, qui fuit cum Joseph, et cum patriarchis, qui et collocutus est Moysi.

12.14

사도들의 모든 가르침은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을 알렸다. 아브라함을 옮기시고, 그에게 유산을 약속하시며, 알맞은 때에 할례의 언약을 주신 분, 그의 후손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신 분을 알렸다. 그 후손은 할례를 통해 눈에 드러나게 구별되어 보존되었다. 그들이 이집트인들과 같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할례를 표징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영광의 하나님이심을 사도들의 말과 행적 자체에서 원하는 이들은 배울 수 있다. 이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위에 다른 이가 없음을 살펴볼 수 있다. 설령 그분 위에 다른 하나님이 있다 해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비교해 보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분이 그보다 더 낫다. 앞서도 말했듯이, 행한 일을 통해 더 나은 이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기들 아버지가 한 일을 아무것도 제시할 수 없으므로, 오직 이분이 하나님이심이 드러난다. 만일 누가 논쟁에 병들어, 사도들이 하나님에 대해 한 말을 알레고리로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앞서 한 말을 검토해 보라. 우리는 거기에서 만물을 지으시고 만드신 한 하나님을 제시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것들을 무너뜨려 실상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의 말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함을 발견할 것이다.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한 분이시라는, 사도들이 가르치고 확신한 바를 그대로 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자기 생각에서 그토록 큰 오류와 하나님을 거스르는 모독을 몰아내면, 그는 스스로도 그 이치를 깨달을 것이다. 모세의 율법과 새 언약의 은혜, 둘 다 각 시대에 알맞게 인류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께서 주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Et omnem Apostolorum doctrinam unum et eundem Deum annuntiasse, qui transtulit Abraham, qui promissionem haereditatis ei fecit, qui testamentum circumcisionis apto tempore dedit, qui ex Aegypto vocavit semen ejus, servatum manifeste per circumcisionem, in signo enim dedit eam, ut non similes essent Aegyptiis, hunc factorem omnium, hunc Patrem Domini nostri Jesu Christi, hunc Deum claritatis, ex ipsis sermonibus et Actibus Apostolorum volentes discere possunt, et contemplari quoniam unus hic Deus, super quem alius non est. Si autem et erat super hunc alius Deus, ex abundanti per comparationem diceremus, hic illo melior est. Melior enim ex operibus apparet, quemadmodum et praediximus: et cum illi nullum Patris sui opus habeant ostendere, hic solus ostenditur Deus. Si quis autem aegrotans circa quaestiones, ea quae ab Apostolis de Deo dicta sunt, allegorisanda existimat, praedictos sermones nostros discutiat, in quibus unum Deum conditorem et factorem omnium ostendimus, et ea quae ab illis dicuntur destruximus et denudavimus, et inveniet consonantes eos Apostolorum doctrinae, et sic habere quemadmodum docebant et persuadebantur, quoniam unus est fabricator omnium Deus: et cum repulerit a sententia sua tantum errorem, et eam quae est adversus Deum blasphemiam, et a semetipso inveniet rationem, cognoscens et eam quae est secundum Moysem legem, et gratiam Novi Testamenti, utraque apta temporibus, ad utilitatem humani generis ab uno et eodem praestita Deo.

12.15

그릇된 생각을 품은 모든 자는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에 반감을 품고, 그것이 복음의 가르침과 다르고 반대된다고 여긴다. 두 언약이 서로 다른 이유를 살피는 데에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은 아버지의 사랑에서 버려지고, 사탄에게 부풀려져, 시몬 마고스의 가르침으로 돌아섰다. 자기들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이신 분에게서 멀어졌다. 다른 하나님을 찾아냈다며, 자기들이 사도들보다 무엇인가 더 발견했다고 여겼다. 사도들은 여전히 유대인들의 생각을 품은 채 복음을 알렸고, 자기들은 사도들보다 순수하고 지혜롭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마르키온과 그를 따르는 자들도 성경을 잘라 내는 데 몰두했다. 어떤 성경들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누가에 따른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들은 줄여 버렸다. 자기들이 줄여 놓은 이것들만 정당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다른 글에서 그들이 아직 간직하는 것들 자체로도 그들을 논박하겠다. 나머지 자들도 모두 거짓된 앎의 이름으로 부풀어, 성경을 인정하면서도 그 해석을 뒤집는다. 우리가 첫째 권에서 보여 준 대로이다. 마르키온을 따르는 자들은 창조자를 악한 것들의 창조자라고 하며, 대놓고 창조자를 모독한다. 그들이 말하는 근원에 대한 주장은 그나마 더 참을 만하다. 본성상 신인 두 존재가 서로 떨어져 있으며, 하나는 선하고, 다른 하나는 악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자들은 이름을 더 공경하는 듯이 사용하며, 창조자이신 그분을 아버지이자 주님이자 하나님으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더 모독적인 주장이나 학파를 이룬다. 충만 안에 있는 아이온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게서 그분이 방출되었다고 하지 않고, 플레로마 밖으로 쫓겨난 그 결함에서 나왔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성경과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무지가 그들에게 이 모든 일을 가져왔다. 우리는 언약들이 서로 다른 이유와, 다시 그 통일성과 조화를 뒤에 이어질 부분에서 설명하겠다.

Omnes enim qui sunt malae sententiae, moti ab ea legisdatione, quae secundum Moysem, dissimilem eam et contrariam Evangelii doctrinae arbitrantes, jam non sunt conversi, uti differentiae utriusque Testamenti inquirerent causas. Deserti igitur cum sint a paterna dilectione, et inflati a Satana, conversi in Simonis Magi doctrinam, abstiterunt sententiis suis ab eo qui est Deus, et putaverunt quid semetipsos plus invenisse quam Apostoli, alterum Deum adinvenientes; et Apostolos quidem adhuc quae sunt Judaeorum sentientes, annuntiasse Evangelium, se autem sinceriores et prudentiores Apostolis esse. Unde et Marcion, et qui ab eo sunt, ad intercidendas conversi sunt Scripturas, quasdam quidem in totum non cognoscentes, secundum Lucam autem Evangelium et Epistolas Pauli decurtantes, haec sola legitima esse dicunt, quae ipsi minoraverunt. Nos autem etiam ex his quae adhuc apud eos custodiuntur, arguemus eos, donante Deo, in altera conscriptione. Reliqui vero omnes falso scientiae nomine inflati, Scripturas quidem confitentur, interpretationes vero convertunt, quemadmodum ostendimus in primo libro. Et quidem hi qui a Marcione sunt statim blasphemant fabricatorem, dicentes eum malorum fabricatorem, propositum initii sui tolerabiliorem habentes, duos naturaliter dicentes deos, distantes ab invicem, alterum quidem bonum, alterum autem malum: hi autem qui sunt a Valentino, nominibus honestius utentes, et Patrem, et Dominum, et Deum, hunc qui est fabricator, ostendentes, propositum sive sectam blasphemiorem habent, neque ab aliquo ex his quae sunt intra plenitudinem Aeonibus dicentes eum emissum, sed ab ea labe quae extra Pleroma expulsa est. Haec autem omnia contulit eis scripturarum et dispositionis Dei ignorantia. Nos autem et causam differentiae testamentorum, et rursum unitatem et consonantiam ipsorum, in his quae deinceps futura sunt, referemus.

12.16

사도들과 그 제자들도 교회가 선포하는 대로 가르쳤다. 그렇게 가르치며 완전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완성에 이르도록 부름받았다. 스테파노스는 이것을 가르치면서, 아직 땅 위에 있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그 오른편에 계신 예수를 보았다. 그가 말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이 보인다.” 그는 이 말을 한 뒤 돌에 맞았으며, 그렇게 완전한 가르침을 이루었다. 모든 면에서 순교의 스승을 본받아,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해 간구하며 말했다. “주님,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을 아는 이들은 이처럼 완전했다. 그분은 처음부터 끝까지 여러 경륜으로 인류와 함께 계신다. 예언자 호세아의 말과 같다. “나는 환상들을 가득 채웠으며, 예언자들의 손을 통해 비유로 나타났다.”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죽음에 이르기까지 목숨을 내어 준 이들이, 사람들에게 자리 잡은 견해에 어떻게 맞추어 말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했다면 수난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진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게 거슬리는 내용을 선포했기에, 수난을 겪은 것이다. 그러므로 분명하다. 그들은 진리를 버리지 않고, 온전히 담대하게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에게 선포했다. 유대인들에게는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라고 알렸다. 아버지께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권을 받으셨다고 알렸다. 우리가 보여 준 그대로이다. 그리스인들에게는 만물을 만드신 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렸다.

Quoniam autem et Apostoli et discentes ipsorum, sic docebant, quemadmodum Ecclesia praedicat, et sic docentes perfecti fuerunt, propter quod et evocabantur ad perfectum: Stephanus haec docens, adhuc cum super terram esset, vidit gloriam Dei, et Jesum ad dexteram, et dixit: Ecce, video coelos apertos, et Filium hominis stantem a dexteris Dei. Et haec dixit, et lapidatus est, et sic perfectam doctrinam adimplevit, per omnia martyrii magistrum imitans, et postulans pro eis qui se interficiebant, et dicens: Domine, ne statuas illis hoc peccatum. Sic erant perfecti, qui unum et eundem Deum, ab initio usque ad finem variis dispositionibus assistentem humano generi, sciebant; quemadmodum ait Osee propheta, Ego visiones implevi, et in manibus prophetarum similatus sum. Qui ergo usque ad mortem tradiderunt animas propter Evangelium Christi, quomodo poterant secundum insitam opinionem hominibus loqui? Quod ipsum si fecissent, non paterentur: sed quoniam contraria his qui non assentiebant veritati praedicabant, ideo et passi sunt. Manifestum est ergo, quoniam non derelinquebant veritatem, sed cum omni fiducia Judaeis et Graecis praedicabant; Judaeis quidem, Jesum eum qui ab ipsis crucifixus est esse Filium Dei, judicem vivorum et mortuorum, a Patre accepisse aeternum regnum in Israel, quemadmodum ostendimus; Graecis vero unum Deum qui omnia fecit, et hujus Filium Jesum Christum annuntiantes.

12.17

사도들의 편지에서 이 점은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은 그 편지를 유대인이나 그리스인들에게 보낸 것이 아니라, 이방인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믿게 된 이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려고 보냈다. 어떤 이들이 유대에서 안티오키아로 내려왔다. 그곳에서 주님의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때문에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 주님을 믿게 된 이들에게 그들은 할례를 받고, 율법의 규례에 따라 나머지 일들도 행하라고 설득했다. 이 문제 때문에 바울과 바르나바는 예루살렘의 다른 사도들에게 올라갔다. 온 교회가 한자리에 모였을 때,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형제 여러분, 오래전부터 여러분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이방인들이 내 입을 통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음을 여러분은 압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증언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 차이도 두지 않으시고, 믿음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씌우려고, 이제 왜 하나님을 시험합니까?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 그들과 마찬가지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 뒤에 야고보가 말했다. “형제 여러분, 시몬이 들려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위한 백성을 어떻게 얻으려 하셨는지 들려주었습니다. 예언자들의 말도 이처럼 일치합니다. 기록된 대로입니다. ‘이 일들 뒤에 내가 돌아와,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짓고, 그 허물어진 곳들을 지으며, 그것을 일으켜 세우리라.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불리는 모든 민족이 주님을 찾게 하리라. 이 일들을 행하시는 주께서 말씀하신다.’ 그분이 하실 일은 예로부터 하나님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판단합니다. 이방인 가운데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이들을 괴롭히지 말고, 우상의 헛된 것들과 음행과 피를 멀리하라고 명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행하지 말라고 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모두 동의하자,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사도들과 장로들인 형제들은 안티오키아와 시리아와 킬리키아에 있는 이방인 출신 형제들에게 인사합니다. 우리는 들었습니다. 우리에게서 나간 어떤 이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말로 여러분을 어지럽히고, 여러분의 혼을 뒤흔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명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한마음으로 모여, 사랑하는 바르나바와 바울과 함께 선택한 사람들을 여러분에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목숨을 내어 놓은 이들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와 실라를 보냈습니다. 이들도 말로 우리의 뜻을 전할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다음의 꼭 필요한 것들 외에 더는 여러분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과 피와 음행을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지 않는 일은 남에게도 행하지 마십시오. 이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면, 성령 안에서 행하며, 잘 지낼 것입니다.” 이 모든 일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은 다른 아버지가 있다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성령을 통해 새로 하나님을 믿게 된 이들에게 자유의 새 언약을 주었다. 제자들이 여전히 할례를 받아야 하는지 아닌지를 그들 자신이 논의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다른 하나님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드러냈다.

Manifestius autem hoc ostenditur ex Apostolorum Epistola, quam neque Judaeis, neque Graecis, sed ipsis qui ex gentibus in Christum credebant, confirmantes fidem ipsorum, miserunt. Cum enim descendissent quidam a Judaea in Antiochiam, in qua et primum omnium discipuli Domini pro fide, quam in Christo habebant, vocati sunt Christiani, et suaderent eis qui crediderant in Dominum circumcidi, et reliqua secundum legis observationem perficere; et ascendissent Paulus et Barnabas Hierosolymam ad alteros Apostolos propter hanc quaestionem, et universa Ecclesia convenisset in unum, Petrus dixit eis: Viri fratres, vos scitis quoniam a diebus antiquis in vobis Deus elegit, ut ex ore meo audirent gentes verbum Evangelii, et crederent: et cordis inspector Deus testimonium perhibuit eis, dans eis Spiritum sanctum, sicut et nobis, et nihil discrevit inter nos et ipsos, emundans per fidem corda illorum. Nunc igitur quid tentatis Deum, imponere jugum super cervicem discipulorum, quod neque patres nostri, neque nos valuimus portare? Sed per gratiam Domini nostri Jesu Christi credimus nos posse salvari, quomodo et illi. Post quem Jacobus dixit: Viri fratres, Simon retulit, quemadmodum Deus excogitavit accipere ex gentibus populum nomini suo. Et sic conveniunt sermones prophetarum, sicut scriptum est: Post haec revertar, et reaedificabo tabernaculum David quod cecidit, et disturbata ejus aedificabo, et erigam illud, uti requirant reliqui hominum Dominum, et omnes gentes, in quibus invocatum est nomen meum super eos, dicit Dominus, faciens haec. Cognitum a seculo est Deo opus ejus: propterea ego secundum me judico, non molestari eos qui ex gentibus convertuntur ad Deum, sed praecipiendum eis, uti abstineant a vanitatibus idolorum, et a fornicatione, et a sanguine: et quaecunque nolunt sibi fieri, aliis ne faciant. Et cum haec dicta essent, et omnes consensissent, scripserunt eis sic: Apostoli et Presbyteri fratres, his qui sunt in Antiochia et Syria et Cilicia fratribus ex gentibus, salutem. Quoniam audivimus, quia ex nobis quidam exeuntes turbaverunt vos sermonibus, destruentes animas vestras, quibus non praecepimus, dicentes, Circumcidimini et servate Legem; placuit nobis convenientibus in unum, electos viros mittere ad vos cum dilectissimis nostris Barnaba et Paulo, hominibus qui tradiderunt animam suam pro nomine Domini nostri Jesu Christi. Misimus igitur Judam et Silam, et ipsos per sermonem annuntiantes nostram sententiam. Placuit enim sancto Spiritui, et nobis, nullum amplius vobis pondus imponere, quam haec quae sunt necessaria, ut abstineatis ab idolothytis, et sanguine, et fornicatione: et quaecunque non vultis fieri vobis, aliis ne faciatis: a quibus custodientes vos ipsos, bene agetis, ambulantes in Spiritu sancto. Manifestum est igitur ex his omnibus, quoniam non alterum Patrem esse docebant, sed libertatis novum testamentum dabant his, qui nove in Deum per Spiritum sanctum credebant. Ipsi autem ex eo quod quaererent, an oporteret circumcidi adhuc discipulos necne, manifeste ostenderunt non habuisse se alterius Dei contemplationem.

12.18

그렇지 않았다면, 이방인들과 함께 먹으려 하지 않을 만큼 첫 언약에 대해 그런 두려움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베드로조차 그들을 가르치도록 보냄받았고, 그러한 환상으로 두려워졌으면서도, 큰 두려움 속에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유대인이 다른 민족 사람과 사귀거나 방문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도 속되거나 더럽다고 부르지 말라고,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절하지 않고 왔습니다.” 명령받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가지 않았으리라는 뜻을 이 말로 드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그들 위에 머무르시고,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듣지 않았다면, 그렇게 쉽게 세례를 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이 사람들이 세례받을 물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함께 있던 이들을 설득하면서, 성령이 그들 위에 머무르시지 않았다면, 그들의 세례를 막을 이가 있었으리라는 뜻도 드러냈다.

Caeterum non talem timorem circa primum habuissent Testamentum, ut nec cum ethnicis quidem convesci vellent. Nam et Petrus, quamvis ad catechizandos eos missus esset, et tali visione conterritus fuisset, cum timore tamen multo locutus est ad eos dicens: Ipsi scitis quoniam non est fas viro Judaeo conjungi, aut convenire cum allophylo: mihi autem Deus ostendit, neminem communem aut immundum dicere hominem: quapropter sine contradictione veni; his sermonibus significans, quoniam non abisset ad eos, nisi jussus fuisset. Sic aeque ne baptisma quidem facile dedisset, nisi, Spiritu sancto requiescente super eos, prophetantes eos audisset. Et propter hoc dixit: Num quis aquam vetare potest ad baptizandum hos, qui Spiritum sanctum acceperunt, quemadmodum et nos? Suadens simul his qui secum erant, et significans, quoniam nisi Spiritus sanctus super eos requievisset, exsisteret qui eos prohiberet a baptismate.

12.19

야고보와 함께 있던 사도들은 이방인들이 자유롭게 행하도록 허용하고, 우리를 하나님의 영께 맡겼다. 그들 자신은 동일한 하나님을 알았으므로, 종래의 규례들을 계속 지켰다. 그래서 베드로조차 환상 때문에, 또 이방인들 위에 머무르신 영 때문에 이전에는 이방인들과 함께 먹었으나, 야고보에게서 어떤 이들이 오자, 그들에게 책망받을까 두려워 물러났고, 이방인들과 함께 먹지 않았다. 바르나바도 그랬다고 바울은 말했다. 주님께서 모든 행적과 모든 가르침의 증인으로 삼으신 사도들은 이처럼 행동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의 경륜을 경건하게 지켰으며, 그것이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에게서 왔음을 드러냈다. 율법의 경륜을 세우신 분 외에 다른 아버지가 있음을 주님께 배웠다면,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Hi autem qui circa Jacobum Apostoli gentibus quidem libere agere permittebant, concedentes nos Spiritui Dei. Ipsi vero eundem scientes Deum, perseverabant in pristinis observationibus, ita ut et Petrus quoque timens ne culparetur ab ipsis, ante manducans cum gentibus propter visionem et propter Spiritum qui requieverat super eos, cum tamen advenissent quidam ab Jacobo, separavit se, et non manducavit cum eis; hoc ipsum autem dixit Paulus et Barnabam fecisse. Sic Apostoli, quos universi actus et universae doctrinae Dominus testes fecit, ubique enim simul cum eo assistentes inveniuntur Petrus et Jacobus et Johannes, religiose agebant circa dispositionem legis, quae est secundum Moysem, ab uno et eodem significantes esse Deo. Quod quidem non fecissent secundum quae praediximus, si praeter eum qui legis dispositionem fecit, alterum Patrem a Domino didicissent.

13.1

바울만 진리를 알았고, 그에게 계시로 신비가 드러났다고 말하는 자들을, 바울 자신이 논박하게 하라.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께서 일하셨다고 그는 말한다. 베드로에게는 할례자들을 위한 사도직에서, 자신에게는 이방인들을 위해 일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바울이 사도로 섬긴 그 하나님의 사도였다. 베드로가 할례자들 가운데서 알린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바울도 이방인들에게 알렸다. 우리 주님께서 바울 한 사람만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은 아니었다. 자기 아들의 경륜을 아는 사도를 단 한 사람만 두실 정도로 하나님이 가난하신 것도 아니다. 바울은 또 이렇게 말한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전하는 이들의 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리를 복음으로 전한 이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럿이었음을 밝힌 것이다. 또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부활 뒤 하나님을 본 모든 이를 먼저 언급한 뒤, 덧붙였다. “나든 그들이든, 우리는 이렇게 알리며, 여러분은 이렇게 믿었습니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 뒤에 하나님을 본 모든 이의 선포가 하나이며 동일함을 고백한 것이다.

Eos autem qui dicunt, solum Paulum veritatem cognovisse, cui per revelationem manifestatum est mysterium, ipse Paulus convincat eos, dicens, unum et ipsum Deum operatum Petro in apostolatum circumcisionis, et sibi in gentes. Ipsius ergo Dei Petrus erat Apostolus, cujus et Paulus; et quem Petrus in circumcisione annuntiabat Deum, et Dei Filium, hunc et Paulus in gentes. Neque enim ut solum Paulum salvaret, venit Dominus noster; nec sic pauper Deus, ut unum solum haberet Apostolum, qui dispositionem Filii sui cognosceret. Et Paulus autem dicens: Quam speciosi pedes evangelisantium bona, evangelisantium pacem, manifestum facit, quoniam non unus, sed plures erant, qui veritatem evangelisabant. Et rursus in ea epistola quae est ad Corinthios, cum praedixisset omnes qui Deum post resurrectionem viderunt, intulit: Sive autem ego, sive illi, sic annuntiamus, et sic credidistis: unam et eandem praedicationem confitens omnium eorum qui Deum viderunt post resurrectionem a mortuis.

13.2

주님도 아버지를 보고 싶어 하는 필리포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는데도, 나를 알지 못했느냐, 필리포스야? 나를 보는 이는 아버지도 본다. 그런데 어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라고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았고, 또 보았다.” 주님께서 이들에 대해 증언하셨다. 그분 안에서 그들이 아버지를 알고 보았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이들이 진리를 알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으로 증언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자들의 말이다. 그들이 진리를 알지 못했다면, 주님께서 열두 사도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왜 보내셨겠는가? 일흔 명도 자신들이 선포할 진리를 먼저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었겠는가? 또 베드로가 어떻게 알지 못했겠는가? 주님께서 그에 대해 증언하셨다. 혈육이 그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시하셨다고 하셨다. 바울은 사람들에게서 나오지도, 사람을 통해 나오지도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해 사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들과 마찬가지이다. 아들은 그들을 아버지께로 이끄시고, 아버지는 그들에게 아들을 드러내신다.

Et Dominus autem Philippo volenti Patrem videre, respondit: Tanto tempore vobiscum sum, et me non cognovisti, Philippe? qui videt me, videt et Patrem. Quomodo tu dicis, Ostende nobis Patrem? Ego enim in Patre, et Pater in me, et a modo cognovistis eum, et vidistis. Quibus ergo Dominus testimonium dixit, quoniam et cognoverunt in ipso et viderunt Patrem, Pater autem veritas, hos dicere non cognovisse veritatem, est hominum falsa testantium, et eorum qui alienati sunt a Christi doctrina. Ad quid enim mittebat Dominus duodecim Apostolos ad oves quae perierant domus Israel, si veritatem non cognoverunt? Quomodo autem et septuaginta praedicabant, nisi ipsi prius veritatem praedicationis cognovissent? Aut quomodo Petrus ignorare potuit, cui Dominus testimonium dedit, quoniam caro et sanguis non revelavit ei, sed Pater qui in coelis est? Sicut ergo Paulus Apostolus non ab hominibus, neque per hominem, sed per Jesum Christum et Deum Patrem; Filio quidem adducente eos ad Patrem, Patre vero revelante eis Filium.

13.3

그 문제로 사도들에게 가도록 자신을 부른 이들의 요청을 바울은 받아들였고,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의 사도들에게 올라갔다. 까닭 없이 간 것이 아니었다. 사도들에게서 이방인들의 자유를 확인받기 위해서였다. 그 자신이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그 뒤 십사 년이 지나, 디도도 데리고, 바르나바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계시에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복음을 그들과 함께 검토했습니다.” 그는 또 말한다. “우리는 잠시 순종하며 양보했습니다. 복음의 진리가 여러분 가운데 머무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사도행전에서 그때를 면밀히 살펴보면, 앞서 말한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기록된 시기가, 바울이 앞서 말한 해들과 일치함을 발견할 것이다. 바울의 선포와 사도들에 관한 누가의 증언은 이처럼 조화를 이루며 사실상 같은 내용이다.

Quoniam autem his qui ad Apostolos vocaverunt eum de quaestione, acquievit Paulus, et ascendit ad eos cum Barnaba in Hierosolymam, non sine causa, sed ut ab ipsis libertas gentilium confirmaretur, ipse ait in ea quae ad Galatas est epistola: Deinde post XIV annos ascendi in Hierosolymam cum Barnaba, assumens et Titum. Ascendi autem secundum revelationem, et contuli cum eis Evangelium quod praedico inter gentes. Et iterum ait: Ad horam cessimus subjectioni, uti veritas Evangelii perseveret apud vos. Si quis igitur diligenter ex Actibus Apostolorum scrutetur tempus, de quo scriptum est ascendisse Hierosolymam propter praedictam quaestionem, inveniet eos qui praedicti sunt a Paulo annos concurrentes. Sic est consonans et velut eadem tam Pauli annuntiatio, quam et Lucae de Apostolis testificatio.

14.1

이 누가가 바울과 떨어질 수 없는 동행자였고, 복음 안에서 그의 동역자였음을, 누가 자신이 분명히 밝힌다. 자랑하려는 뜻에서가 아니라, 진리 자체에 이끌려 밝힌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바르나바와 요한, 곧 마가라고 불리는 이가 바울에게서 떨어져 키프로스로 항해했을 때, “우리는 트로아스에 왔다.” 또 바울은 꿈에서 한 마케도니아 사람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바울이여, 마케도니아로 와서 우리를 도와주시오.” 누가는 말한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나려 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트로아스에서 배를 타고, 사모트라케로 곧장 나아갔다.” 그 뒤 필리피에 이르기까지의 나머지 여정도 모두 누가는 자세히 기록한다. 어떻게 처음 말씀을 전했는지도 기록한다. 그가 말한다. “우리는 앉아서, 모여 있던 여자들에게 말했다.” 누가 믿었는지,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기록한다. 또 말한다. “무교절이 지난 뒤, 우리는 필리피에서 배를 타고, 트로아스에 와서, 이레 동안 머물렀다.”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까지, 바울과 함께 한 나머지 모든 일도 차례로 이야기하며, 장소와 도시, 날짜의 수를 아주 자세히 밝힌다. 그곳에서 바울에게 일어난 일, 그가 어떻게 결박된 채 로마로 보내졌는지, 그를 맡은 백인대장의 이름과 배들의 표장, 어떻게 난파했는지, 어느 섬에서 구조되었는지도 밝힌다. 그곳에서 어떤 친절을 받았는지, 바울이 그 섬의 우두머리를 고친 일, 거기서 어떻게 푸테올리로 항해했는지, 다시 로마에 어떻게 이르렀는지, 로마에서 얼마나 머물렀는지도 기록한다. 누가는 이 모든 일에 함께 있었으므로, 그 일을 자세히 썼다. 그를 거짓말쟁이나 거만한 사람으로 여길 수 없도록 썼다. 이 모든 일이 확실하며, 지금 다른 것을 가르치는 모든 이보다 그가 앞선 사람이었고, 진리를 모르는 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동행자일 뿐 아니라, 사도들의, 특히 바울의 동역자였음은 바울 자신도 편지들에서 밝혔다. 그가 말한다. “데마스는 나를 버리고 테살로니카로 갔으며, 크레스켄스는 갈라티아로, 디도는 달마티아로 갔습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습니다.” 그는 이 말로 누가가 언제나 자기와 결합되어 있었으며, 자기에게서 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또 콜로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사랑하는 의사 누가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 누가는 언제나 바울과 함께 선포했고, 그에게 사랑받는 이라고 불렸으며, 함께 복음을 전했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일도 맡았다. 그의 말에서 드러났듯이, 그가 바울에게서 다른 것을 배우지 않았다면, 바울과 한 번도 함께 있지 않았던 이 자들은 감추어져 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들을 배웠다고 어떻게 자랑할 수 있는가?

Quoniam autem is Lucas inseparabilis fuit a Paulo, et cooperarius ejus in Evangelio, ipse facit manifestum, non glorians, sed ab ipsa productus veritate. Separatis enim, inquit, a Paulo, et Barnaba et Johanne, qui vocabatur Marcus, et cum navigassent Cyprum, nos venimus in Troadem: et cum vidisset Paulus per somnium virum Macedonem, dicentem; Veniens in Macedoniam opitulare nobis Paule; statim, ait, quaesivimus proficisci in Macedoniam, intelligentes quoniam provocavit nos Dominus evangelisare eis. Navigantes igitur a Troade, direximus navigium in Samothracen: et deinceps reliquum omnem ipsorum usque ad Philippos adventum diligenter significat, et quemadmodum primum sermonem locuti sunt: Sedentes enim, inquit, locuti sumus mulieribus quae convenerant; et quinam crediderunt, et quam multi. Et iterum ait: Nos autem navigavimus post dies azymorum a Philippis, et venimus Troadem, ubi et commorati sumus diebus septem. Et reliqua omnia ex ordine cum Paulo refert, omni diligentia demonstrans et loca et civitates et quantitatem dierum, quoadusque Hierosolymam ascenderent: et quae illic contigerint Paulo, quemadmodum vinctus Romam missus est; et nomen centurionis qui suscepit eum, et parasema navium, et quemadmodum naufragium fecerunt, et in qua liberati sunt insula; et quemadmodum humanitatem ibi perceperunt, Paulo curante principem ipsius insulae; et quemadmodum inde Puteolos navigaverunt, et inde Romam pervenerunt, et quanto tempore Romae commorati sunt. Omnibus his cum adesset Lucas, diligenter conscripsit ea, uti neque mendax, neque elatus deprehendi possit, eo quod omnia haec constarent, et seniorem eum esse omnibus qui nunc aliud docent, neque ignorare veritatem. Quoniam non solum prosecutor, sed et cooperarius fuerit Apostolorum, maxime autem Pauli, et ipse autem Paulus manifestavit in epistolis, dicens: Demas me dereliquit, et abiit in Thessalonicam, Crescens in Galatiam, Titus in Dalmatiam: Lucas est mecum solus. Unde ostendit quod semper junctus ei et inseparabilis fuerit ab eo. Et iterum in ea epistola quae est ad Colossenses, ait: Salutat vos Lucas medicus dilectus. Si autem Lucas quidem, qui semper cum Paulo praedicavit, et dilectus ab eo est dictus, et cum eo evangelisavit, et creditus est referre nobis Evangelium, nihil aliud ab eo didicit, sicut ex verbis ejus ostensum est, quemadmodum hi qui nunquam Paulo adjuncti fuerunt, gloriantur abscondita et inenarrabilia didicisse sacramenta?

14.2

바울은 자기가 아는 것을 가르쳤고, 꾸밈없이 가르쳤다. 자기와 함께 있던 이들뿐 아니라, 자기 말을 듣는 모든 이에게 그렇게 했음을 자신이 분명히 밝힌다. 밀레토스에서 에베소와 그 밖의 인근 도시들에서 온 감독들과 장로들을 불러 모았을 때, 그는 서둘러 예루살렘에서 오순절을 지내려 했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증언하고, 예루살렘에서 자신에게 일어나야 할 일을 이야기한 뒤, 덧붙였다. “여러분이 이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합니다. 나는 모든 이의 피에 대해 깨끗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알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과 온 양 떼를 살피십시오. 성령께서 그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으로 세우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다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피로 자신을 위해 세우신 교회입니다.” 그 뒤 악한 교사들이 나타날 것을 알리며 말했다. “나는 압니다. 내가 떠난 뒤,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에게 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도 사람들이 일어나, 제자들을 자기 뒤로 끌어들이려고 그릇된 것을 말할 것입니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알렸습니다.” 사도들은 이처럼 꾸밈없이, 아무에게도 아끼지 않고, 자기들이 주님께 배운 것을 모두에게 전했다. 누가도 이처럼 아무에게도 아끼지 않고, 그들에게 배운 것을 우리에게 전했다. 그 자신이 이렇게 증언한다. “처음부터 직접 보고, 말씀을 섬긴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대로입니다.”

Quoniam autem Paulus simpliciter quae sciebat, haec et docuit, non solum eos qui cum eo erant, verum omnes audientes se, ipse facit manifestum. In Mileto enim convocatis episcopis et presbyteris, qui erant ab Epheso et a reliquis proximis civitatibus, quoniam ipse festinaret Hierosolymis Pentecosten agere, multa testificans eis, et dicens quae oporteret ei Hierosolymis evenire, adjecit: Scio quoniam jam non videbitis faciem meam: testificor igitur vobis hac die, quoniam mundus sum a sanguine omnium. Non enim subtraxi uti non annuntiarem vobis omnem sententiam Dei. Attendite igitur et vobis, et omni gregi, in quo vos Spiritus sanctus praeposuit episcopos, regere ecclesiam Domini, quam sibi constituit per sanguinem suum. Deinde significans futuros malos doctores, dixit: Ego scio quoniam advenient post discessum meum lupi graves ad vos, non parcentes gregi. Et ex vobisipsis exsurgent viri loquentes perversa, uti convertant discipulos post se. Non subtraxi, inquit, uti non annuntiarem omnem sententiam Dei vobis. Sic Apostoli simpliciter, et nemini invidentes, quae didicerant ipsi a Domino, haec omnibus tradebant. Sic igitur et Lucas nemini invidens, ea quae ab eis didicerat, tradidit nobis, sicut ipse testificatur dicens: Quemadmodum tradiderunt nobis qui ab initio contemplatores et ministri fuerunt Verbi.

14.3

누군가 누가를 거절하며, 그가 진리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면, 스스로 제자라고 자처하는 그 복음을 내던지고 있음이 드러날 것이다. 복음의 아주 많고도 긴요한 내용을 우리는 누가를 통해 알았다. 이를테면 요한의 탄생, 사가랴의 이야기, 천사가 마리아에게 온 일, 엘리사벳의 외침,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내려온 일과 그들이 한 말, 안나와 시메온이 그리스도에 대해 한 증언이다. 그분이 열두 살에 예루살렘에 남겨진 일, 요한의 세례, 주님이 몇 살에 세례받으셨는지, 그때가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제십오 년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가르치실 때 부자들에게 하신 말씀도 그러하다. “너희 부자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너희 위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또 “너희 배부른 이들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굶주릴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웃는 너희도 울게 될 것이다.” 또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할 때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도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을 모두 우리는 누가만을 통해 알았다. (주님의 아주 많은 행적도 그를 통해 배웠으며, 모두 그 내용을 이용한다.) 주님께서 그물을 내리라고 명하셨을 때, 베드로와 함께 있던 이들이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일도 그러하다. 열여덟 해 동안 고통받던 여인이 안식일에 고침받은 일, 안식일에 주님께서 고치신 수종병 환자의 일, 그날 치유한 일에 대해 어떻게 논하셨는지도 알았다. 잔치의 윗자리를 탐하지 말라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일, 되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하고 몸이 약한 이들을 불러야 한다고 하신 말씀도 그러하다. 빵을 얻으려고 밤에 문을 두드린 사람과, 끈질기게 졸라서 빵을 얻은 일도 있다. 그분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죄인인 여자가 그분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발랐던 일, 그 여자 때문에 주님께서 두 빚진 이들에 관해 시몬에게 하신 모든 말씀도 있다. 자기에게 생긴 수확을 쌓아 둔 그 부자의 비유도 그러하다. 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로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그들이 요구할 것이다. 네가 준비한 것들은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마찬가지로 자주색 옷을 입고, 호화롭게 즐기던 부자와 가난한 나사로의 이야기도 있다. 제자들이 그분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했을 때, 그분이 제자들에게 주신 대답, 세리 삭개오와 나누신 대화, 성전에서 함께 예배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이야기도 있다. 길에서 그분이 한꺼번에 깨끗하게 하신 열 명의 나병 환자, 골목과 거리에서 다리를 저는 이들과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을 혼인 잔치에 모아 오라고 명하신 일도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던 재판관의 비유도 그러하다. 과부의 끈질긴 요구가 그로 하여금 그 여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게 했다. 포도원에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도 있다. 오직 누가만 말한 것으로 찾아낼 수 있는 내용은 이 밖에도 많다. 마르키온과 발렌티노스도 그 내용을 이용한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부활 뒤 길에서 그분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빵을 떼실 때 그들이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았는지도 있다.

Si autem quis refutet Lucam, quasi non cognoverit veritatem, manifestus erit projiciens Evangelium, cujus dignatur esse discipulus. Plurima enim et magis necessaria Evangelii per hunc cognovimus, sicut Johannis generationem, et de Zacharia historiam, et adventum angeli ad Mariam, et exclamationem Elizabeth, et angelorum ad pastores descensum, et ea quae ab illis dicta sunt, et Annae et Simeonis de Christo testimonium, et quod duodecim annorum in Hierusalem relictus sit, et baptismum Johannis, et quot annorum Dominus baptisatus sit, et quia in quintodecimo anno Tiberii Caesaris. Et in magisterio illud quod ad divites dictum est: Vae vobis divites, quoniam percipitis consolationem vestram. Et, vae vobis qui satiati estis, quoniam esurietis: et qui ridetis nunc, quia plorabitis. Et, vae vobis cum benedixerint vos homines omnes. Secundum haec enim faciebant et pseudoprophetis patres vestri. Et omnia hujusmodi per solum Lucam cognovimus, (et plurimos actus Domini per hunc didicimus, quibus et omnes utuntur:) ut et multitudinem piscium, quam concluserunt hi qui cum Petro erant, jubente Domino ut mitterent retia: et illa quae per octodecim annos passa, curata fuerat mulier die sabbatorum: et de hydropico, quem curavit Dominus die sabbatorum, et quemadmodum disputavit quod curavit in hac die: et quemadmodum docuit discipulos primos discubitus non appetere: et quoniam pauperes et debiles vocare oportet, qui non habent retribuere: et qui pulsavit nocte sumere panes, et propter instantiam importunitatis sumit: et quoniam apud Pharisaeum recumbente eo, peccatrix mulier osculabatur pedes ejus et unguento ungebat, et quaecunque propter eam dixit ad Simonem Dominus de duobus debitoribus: et de parabola divitis illius qui reclusit quae ei nata fuerant, cui et dictum est, In hac nocte expostulabunt animam tuam a te: Quae autem praeparasti, cujus erunt? similiter autem et divitis qui vestiebatur purpura, et jocundabatur nitide, et egenum Lazarum: et eam quam ad discentes suos dixit responsionem, quando dixerunt ei: Adjice nobis fidem: et eam quae ad Zaccheum publicanum facta est confabulationem: et de Pharisaeo et publicano, qui simul adorabant in templo: et de decem leprosis, quos simul emundavit in via: et quoniam de vicis et plateis claudos et luscos jussit colligi ad nuptias; et parabolam judicis qui Deum non timebat, quem instantia viduae fecit ut vindicaret eam: et de arbore fici quae erat in vinea, quae non faciebat fructum. Et alia multa sunt quae inveniri possunt a solo Luca dicta esse, quibus et Marcion et Valentinus utuntur. Et super haec omnia post resurrectionem in via ad discipulos suos quae locutus est, et quemadmodum cognoverunt eum in fractione panis.

14.4

그러므로 그들은 누가가 말한 나머지 내용도 받아들이거나, 이 내용까지 포기해야 한다. 누가가 말한 것 가운데 진실이라며 어떤 것은 받아들이고, 누가가 진리를 몰랐다며 다른 것은 거절하는 일을, 분별 있는 이들은 그들에게 허용하지 않는다. 마르키온을 따르는 자들이 이것들을 거절한다면, 그들에게 복음이 없어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누가에 따른 복음서를 줄여 놓고, 자기들에게 복음이 있다고 자랑하기 때문이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자들은 자기들의 숱한 헛된 말을 그쳐야 할 것이다. 그들은 이 복음서에서 교묘한 말의 구실을 많이 얻어, 누가가 훌륭하게 말한 것들을 감히 그릇되게 해석했기 때문이다. 만일 나머지 내용도 받아들여야 한다면, 온전한 복음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이고, 위험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할 것이다.

Necesse est igitur et reliqua quae ab eo dicta sunt, recipere eos, aut et his renuntiare. Non enim conceditur eis ab his qui sensum habent, quaedam quidem recipere ex his quae a Luca dicta sunt, quasi sint veritatis; quaedam vero refutare, quasi non cognovisset veritatem. Et si quidem refutaverint hi qui a Marcione sunt, non habebunt Evangelium: hoc enim quod est secundum Lucam quemadmodum praediximus, decurtantes, gloriantur se habere Evangelium; hi vero qui a Valentino sunt, cessabunt a plurimo vaniloquio suo: ex hoc enim multas occasiones subtililoquii sui acceperunt, interpretari audentes male, quae ab hoc bene sunt dicta: si autem et reliqua suscipere cogentur, intendentes perfecto Evangelio, et Apostolorum doctrinae, oportet eos poenitentiam agere, ut salvari a periculo possint.

15.1

사도 바울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우리는 같은 말을 다시 한다. 오직 누가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복음의 나머지 말씀들을 포기하고,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인다면, 바울에 관한 그 증언도 받아들여야 한다. 누가 자신이 말하기를, 먼저 주님께서 하늘에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네가 박해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다.” 그 뒤 아나니아스에게 바울에 관해 말씀하셨다. “가라.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내 이름을 전하도록, 이 사람은 내가 택한 그릇이다. 내 이름 때문에 그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그때부터 내가 그에게 보여 주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택하신 이, 그분의 이름을 담대히 전하도록 앞서 말한 민족들에게 보내신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은, 주님의 선택을 업신여기며, 스스로 사도들의 모임에서 떨어져 나간다. 바울이 이 일을 위해 선택되었으므로, 그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없다. 온갖 정성을 다해 우리에게 진리를 전하는 누가가 거짓말쟁이라고 입증할 수도 없다. 어쩌면 바로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통해 복음의 많은 내용을 드러내도록 일하셨을 것이다. 모두가 그 내용을 사용할 수밖에 없게 하셔서, 사도들의 행적과 가르침에 관한 누가의 뒤이은 증언을 모두 따르고, 섞임 없는 진리의 규범을 간직하여, 구원받게 하려 하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의 증언은 참되며, 사도들의 가르침은 분명하고 확고하여, 아무것도 감추지 않는다. 그들은 은밀한 곳에서 한 가지를, 드러난 곳에서 다른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Eadem autem dicimus iterum et his, qui Paulum Apostolum non cognoscunt, quoniam aut reliquis verbis Evangelii, quae per solum Lucam in nostram venerunt agnitionem, renuntiare debent, et non uti eis; aut si illa recipiunt omnia, habent necessitatem recipere etiam eam testificationem, quae est de Paulo, dicente ipso, primum quidem Dominum ei de coelo locutum: Saule, Saule, quid me persequeris? Ego sum Jesus Christus, quem tu persequeris: deinde Ananiae de eo dicente: Vade, quoniam vas electionis mihi est iste, ut portet nomen meum in gentibus, et regibus, et filiis Israel. Ego enim demonstrabo ei ex ipso, quanta oporteat eum pati propter nomen meum. Qui igitur non recipiunt eum qui sit electus a Deo ad hoc, ut fiducialiter portet nomen ejus, quod sit missus ad quas praediximus gentes, electionem Domini contemnunt, et seipsos segregant ab Apostolorum conventu. Neque enim contendere possunt Paulum non esse Apostolum, quando in hoc sit electus: neque Lucam mendacem esse, possunt ostendere, veritatem nobis cum omni diligentia annuntiantem. Fortassis enim et propter hoc operatus est Deus plurima Evangelia ostendi per Lucam, quibus necesse haberent omnes uti, ut sequenti testificationi ejus, quam habet de actibus et doctrina Apostolorum, omnes sequentes, et regulam veritatis inadulteratam habentes, salvari possint. Igitur testificatio ejus vera, et doctrina Apostolorum manifesta et firma, et nihil subtrahens, neque alia quidem in abscondito, alia vero in manifesto docentium.

15.2

그런 일은 거짓을 꾸미는 자들, 악하게 미혹하는 자들, 위선자들의 술책이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자들이 그렇게 한다. 그들은 많은 사람 앞에서, 교회에서 온 이들을 겨냥하여 말을 꺼낸다. 그들이 보통 사람들, 교회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이다. 그 말로 순박한 이들을 사로잡고 유혹하며, 자기 말을 더 자주 듣게 하려고 우리의 설명을 흉내 낸다. 이제는 우리에게 불평까지 한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우리가 까닭 없이 그들과의 교제를 피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같은 말을 하고 같은 가르침을 지니는데도, 우리가 그들을 이단자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제기하는 질문들로 어떤 이들을 믿음에서 떨어뜨리고, 반박하지 않는 청중으로 만들고 나면, 그들에게 따로 자기들의 충만에 관한 말할 수 없는 신비를 이야기한다. 말로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을 진리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모두 속고 있다. 오류는 사람을 설득하며 그럴듯해 보이고, 꾸밈을 찾기 때문이다. 진리에는 꾸밈이 없으며, 그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 맡겨졌다. 그들의 말을 듣는 이 가운데 누군가 답변을 요구하거나 반박하면, 그가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위의 영역에서 자기 어머니에게서 받은 씨를 갖고 있지 않다고 단정한다. 그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고, 그는 중간 영역에 속한 자, 곧 혼적인 자라고 말한다. 반대로 누군가 어린 양처럼 자기 자신을 그들에게 내맡기고, 그들을 따르는 일과 그들의 구속을 얻으면, 그 사람은 부풀어 오른다. 자신이 하늘에도 땅에도 있지 않으며, 플레로마 안에 들어갔고, 이미 자기 천사를 껴안았다고 여긴다. 수탉처럼 우쭐하여, 뽐내는 걸음과 거만한 태도로 다닌다. 그들 가운데에는 위에서 온 사람은 선한 행실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거만한 태도로 근엄함을 꾸며 낸다. 대다수는 남을 업신여기는 자들이 되어, 이미 완전해진 사람인 양, 경외심 없이 경멸하며 살아간다. 자기를 영적인 사람이라 부르며, 플레로마 안에 있는 자기들의 쉼의 장소를 이미 안다고 말한다.

Hoc enim fictorum et prave seducentium et hypocritarum est molimen, quemadmodum faciunt hi qui a Valentino sunt. Hi enim ad multitudinem propter eos qui sunt ab Ecclesia, quos communes et Ecclesiasticos ipsi dicunt, inferunt sermones, per quos capiunt simpliciores, et illiciunt eos, simulantes nostrum tractatum, ut saepius audiant; qui et jam quaeruntur de nobis, quod cum similia nobiscum sentiant, sine causa abstineamus nos a communicatione eorum, et cum eadem dicant, et eandem habeant doctrinam, vocemus illos haereticos: et cum dejecerint aliquos a fide per quaestiones, quae fiunt ab eis, et non contradicentes auditores suos fecerint, his separatim inenarrabile plenitudinis suae enarrant mysterium. Decipiuntur autem omnes, qui quod est in verbis verisimile, se putant posse discere a veritate. Suasorius enim et verisimilis est, et exquirens fucos error: sine fuco autem est veritas, et propter hoc pueris credita est. Et si aliquis quidem ex his qui audiunt eos, quaerat solutiones, vel contradicat eis, hunc quasi non capientem veritatem, et non habentem de superioribus a matre sua semen affirmantes, in totum nihil dicunt ei, mediarum partium dicentes esse illum, hoc est psychicorum. Si autem aliquis quasi parvam ovem, deditum semetipsum ipsis praebeat, imitationem illorum, et redemtionem illorum consecutus, est inflatus iste talis, neque in coelo, neque in terra putat se esse, sed intra Pleroma introisse, et complexum jam angelum suum, cum institorio, et supercilio incedit, gallinacei elationem habens. Sunt autem apud eos, qui dicunt oportere bonam conversationem assequi eum hominem, qui sit desuper veniens: propter hoc et fingunt quodam supercilio gravitatem. Plurimi autem et contemtores facti, quasi jam perfecti, sine reverentia, et in contemtu viventes, semetipsos spiritales vocant, et se nosse jam dicunt eum qui sit intra Pleroma ipsorum refrigerii locum.

15.3

이제 우리는 앞선 논의로 돌아가자. 진리의 선포자이며 자유의 사도였던 이들은, 홀로 참되신 하나님 아버지와 만물에서 으뜸이신 그분의 말씀 외에, 다른 누구도 하나님이라고 부르거나 주님이라고 이름하지 않았다. 이 점이 분명히 밝혀졌으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으며, 그에게 율법의 경륜을 주시고, 조상들을 부르신 그분을 그들이 주 하나님으로 고백했으며, 다른 누구도 알지 못했다는 점도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들과 그 제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품었던 생각은 그들 자신의 말에서 분명해졌다.

Nos autem revertamur ad eundem tractatum. Cum enim declaratum sit manifeste, quoniam neminem alium Deum vocaverunt vel Dominum nominaverunt, qui veritatis fuerunt praedicatores et Apostoli libertatis, nisi solum verum Deum Patrem et Verbum ejus, qui in omnibus principatum habet, manifeste erit ostensum, factorem coeli et terrae, et qui locutus sit cum Moyse, et legis dispositionem ei dederit, qui convocaverit patres, Dominum Deum confiteri eos, et alterum neminem nosse. Manifesta igitur et Apostolorum et discentium eorum ex verbis ipsorum de Deo facta est sententia.

16장

어떤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예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그릇이었으며, 위에서 비둘기처럼 그리스도가 내려와 그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름할 수 없는 아버지를 알린 뒤에는, 이해할 수도 볼 수도 없는 방식으로 플레로마 안에 들어갔다고 한다. 사람들뿐 아니라, 하늘에 있는 권세들과 능력들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예수가 아들이며, 그리스도는 아버지이고, 그리스도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라고도 한다. 다른 이들은 그가 본성상 수난을 겪을 수 없는 존재이므로, 겉으로만 수난을 겪었다고 말한다. 발렌티노스를 따르는 자들은, 경륜에 속한 예수가 마리아를 통과한 바로 그이며, 위에서 구원자가 내려와 그 안에 들어갔다고 말한다. 자기를 방출한 모든 이의 이름을 지녔기 때문에, 이 구원자를 그리스도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경륜에 속한 그에게 자기의 능력과 이름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죽음이 무력해지고, 위에서 내려온 그 구원자를 통해 아버지가 알려지게 하려 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 구원자 자신도 그리스도와 충만 전체를 받아들이는 그릇이라고 말한다. 입으로는 한 그리스도 예수를 고백하면서도, 생각으로는 나누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의 규범은 이러하다. 충만을 바로잡도록 모노게네스에게서 먼저 보내진 그리스도가 하나 있고,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보내진 구원자가 따로 있으며, 경륜에 속한 이가 또 따로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마지막 존재가 수난을 겪었다고 하며, 그리스도를 지니고 있던 구원자는 플레로마로 돌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사도들의 모든 생각을 제시해야 한다. 사도들이 그분에 대해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성령을 통해 그렇게 가르치기 시작할 이들을 미리 가리켰음도 밝혀야 한다. 사탄에게 보내진 그들은, 어떤 이들의 믿음을 무너뜨리고, 그들을 생명에서 떼어 놓으려 한다.

Quoniam autem sunt qui dicunt, Jesum quidem receptaculum Christi fuisse, in quem desuper quasi columbam descendisse Christum, et cum indicasset innominabilem Patrem incomprehensibiliter et invisibiliter intrasse in Pleroma: non enim solum ab hominibus, sed ne ab his quidem, quae in coelo sunt, potestatibus et virtutibus apprehensum eum, et esse quidem filium Jesum, patrem vero Christum, et Christi patrem, Deum: alii vero putative eum passum, naturaliter impassibilem exsistentem: qui autem a Valentino sunt, Jesum quidem qui sit ex dispositione, ipsum esse qui per Mariam transierit, in quem illum de superiori Salvatorem descendisse, quem et Christum dici, quoniam omnium qui emisissent eum, haberet vocabula: participasse autem cum eo qui esset ex dispositione de sua virtute et de suo nomine, ut mors per hunc evacuaretur, cognosceretur autem Pater per eum Salvatorem quidem qui desuper descendisset, quem et ipsum receptaculum Christi et universae plenitudinis esse dicunt, lingua quidem unum Christum Jesum confitentes, divisi vero sententia; (etenim haec est ipsorum regula, quemadmodum praediximus, ut alterum quidem Christum fuisse dicant, qui ab Unigenito ad correctionem plenitudinis praemissus; alterum vero Salvatorem esse ad glorificationem Patris missum; alterum vero ex dispositione, quem et passum dicunt, recurrentem in Pleroma Salvatorem qui Christum portabat); necesse habemus, universam Apostolorum de Domino nostro Jesu Christo sententiam adhibere, et ostendere eos non solum nihil tale sensisse de eo, verum amplius et significasse per Spiritum sanctum, qui inciperent talia docere, submissi a Satana, uti quorundam fidem everterent, et abstraherent eos a vita.

17.1

요한은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으며, 이분이 외아들이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신이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다. 요한 자신의 말에서 우리는 이 점을 충분히 입증했다. 마태도 하나의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사람으로 나신 일을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셨듯이, 그의 후손에게서 영원한 왕을 일으키시리라는 탄생이다. 하나님께서는 훨씬 이전에 아브라함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셨다. 마태는 말한다. “다윗의 아들, 아브라함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이다.” 그 뒤 우리의 생각에서 요셉에 관한 의심을 없애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그분의 어머니가 요셉과 약혼했을 때, 두 사람이 함께하기 전에, 성령으로 아이를 배었음이 드러났다.” 마리아가 임신했으므로, 요셉이 그녀를 떠나보내려 생각할 때, 하나님의 천사가 그 곁에 서서 말했다고 한다. “네 아내 마리아를 맞아들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가 배 속에 품은 것은 성령에게서 비롯되었다. 그녀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불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다음 말씀이 이루어지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이다. “보라, 동정녀가 아이를 배고, 아들을 낳을 것이며,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곧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이루어졌고, 하나님의 아들이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셨으며, 예언자들이 선포한 구원자 그리스도가 바로 이분이심을 분명히 밝힌다. 이 자들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이는 예수이고, 그리스도는 위에서 내려온 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마태는 “예수의 탄생은 이러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왜곡하는 자들을 미리 보시고, 그들의 속임수를 미리 막으려고, 마태를 통해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러했다.” 또 이분이 임마누엘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그분을 그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육신의 뜻이나, 남자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으로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예수와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 이라고 짐작하지 않고, 하나의 동일한 분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Et quoniam Johannes unum et eundem novit Verbum Dei, et hunc esse Unigenitum, et hunc incarnatum esse pro salute nostra, Jesum Christum Dominum nostrum, sufficienter ex ipsius Johannis sermone demonstravimus. Sed et Matthaeus unum et eundem Jesum Christum cognoscens, eam, quae est secundum hominem, generationem ejus ex Virgine exponens, sicut promisit Deus David ex fructu ventris ejus excitaturum se aeternum Regem, multo prius Abrahae eandem faciens promissionem, ait: Liber generationis Jesu Christi, filii David, filii Abraham. Dehinc ut liberaret mentem nostram a suspicione quae est circa Joseph, ait: Christi autem generatio sic erat. Cum esset desponsata mater ejus Joseph, priusquam convenirent, inventa est in utero habens de Spiritu sancto. Dehinc cum Joseph cogitaret dimittere Mariam, quoniam praegnans erat, assistentem ei Angelum Dei, et dicentem: Ne timueris assumere Mariam conjugem tuam: quod enim habet in utero, de Spiritu sancto est. Pariet autem Filium, et vocabis nomen ejus Jesum: hic enim salvabit populum suum a peccatis suis. Hoc autem factum est, ut impleretur quod dictum est a Domino per prophetam: Ecce, virgo accipiet in utero, et pariet filium, et vocabunt nomen ejus Emmanuel, quod est, Nobiscum Deus; manifeste significans, et eam promissionem quae fuerat ad patres adimpletam, ex virgine natum Filium Dei, et hunc ipsum esse Salvatorem Christum, quem prophetae praedicaverunt: non, sicut ipsi dicunt, Jesum quidem ipsum esse qui ex Maria sit natus, Christum vero qui desuper descendit. Caeterum potuerat dicere Matthaeus, Jesu vero generatio sic erat; sed praevidens Spiritus sanctus depravatores, et praemuniens contra fraudulentiam eorum, per Matthaeum ait: Christi autem generatio sic erat; et quoniam hic est Emmanuel, ne forte tantum eum hominem putaremus; non enim ex voluntate carnis, neque ex voluntate viri, sed ex voluntate Dei, Verbum caro factum est, neque alium quidem Jesum, alterum autem Christum suspicaremur fuisse, sed unum et eundem sciremus esse.

17.2

바울도 로마인들에게 쓰면서, 바로 이 점을 풀이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미리 정해진 바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에 관해, 자기 예언자들을 통해 거룩한 성경 안에서 이 복음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아들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에게서 그분을 위해 나셨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로, 거룩하게 하는 영을 통해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해지셨습니다.” 또 로마인들에게 이스라엘에 관해 쓰면서 말한다. “조상들이 그들에게 속하고,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그리스도가 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이시며,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입니다.” 또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다. “때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여자에게서 나고, 율법 아래 있게 되셨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을 속량하시고, 우리가 양자 됨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언자들을 통해 아들에 관해 약속하신 한 하나님과, 한 분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마리아에게서 나신 그 탄생에 따라,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로, 거룩하게 하는 영에 따라,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정해지셨다. 모든 피조물 가운데 맏이이신 것처럼, 죽은 이들의 맏이가 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가 되신 것은, 그분을 통해 우리가 양자 됨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을 품고 받아들이고 껴안는다.

Hoc ipsum interpretatus est Paulus, scribens ad Romanos: Paulus Apostolus Jesu Christi, praedestinatus in Evangelium Dei, quod promisit per prophetas suos in Scripturis sanctis de Filio suo, qui factus est ei ex semine David secundum carnem, qui praedestinatus est Filius Dei in virtute per Spiritum sanctificationis ex resurrectione mortuorum Jesu Christi Domini nostri. Et iterum ad Romanos scribens de Israel, dicit: Quorum patres, et ex quibus Christus secundum carnem, qui est Deus super omnes benedictus in saecula. Et iterum in epistola quae est ad Galatas, ait: Cum autem venit plenitudo temporis, misit Deus Filium suum, factum ex muliere, factum sub lege, ut eos qui sub lege erant redimeret, ut adoptionem percipiamus: manifeste significans unum quidem Deum, qui per prophetas promissionem de Filio fecerit; unum autem Jesum Christum Dominum nostrum, qui de semine David secundum eam generationem quae est ex Maria; hunc destinatum Filium Dei Jesum Christum in virtute, secundum Spiritum sanctificationis ex resurrectione mortuorum, ut sit primogenitus mortuorum, quemadmodum primogenitus in omni conditione; Filius Dei, Hominis Filius factus, ut per eum adoptionem percipiamus, portante homine et capiente et complectente Filium Dei.

17.3

그러므로 마가도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다. 예언자들에게 기록된 대로이다.”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았던 것이다. 그분은 예언자들이 알렸고, 다윗의 후손에게서 나신 임마누엘, 아버지의 큰 뜻을 전하는 사자이시다. 그분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에 돋아나는 이, 곧 의로운 이를 일으키셨고, 그에게 구원의 뿔을 세우셨으며, “야곱 안에 증언을 세우셨다.” 다윗이 그분의 탄생 이유를 설명하며 한 말과 같다. “이스라엘 안에 율법을 두셨다. 다음 세대, 곧 그들에게서 태어날 아들들이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아들들도 일어나 자기 아들들에게 전하리니,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그분의 계명을 찾게 하려는 것이었다.” 천사도 마리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며 말했다. “이 아이는 큰 이가 될 것이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주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에게 주실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 다윗의 아들과 동일한 분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다윗도 성령을 통해 그분이 오시는 경륜을 알고 있었다. 그 경륜을 통해 그분은 산 이들과 죽은 이들 모두를 다스리신다.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아 계신 그분을 다윗은 주님으로 고백했다. 또 그 시메온은 그리스도 예수를 먼저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응답을 성령에게서 받았다. 동정녀의 맏아들이신 그분을 손에 받아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이제 주님의 종을 평안히 보내 주십니다.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구원, 이방인들에게 계시하는 빛,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자기가 손에 안고 있는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모든 이의 빛이며, 이스라엘의 영광이고, 잠든 이들의 평화와 쉼이심을 고백했다.

Propter hoc et Marcus ait: Initium Evangelii Jesu Christi Filii Dei, quemadmodum scriptum est in prophetis: unum et eundem sciens Filium Dei Jesum Christum, qui a prophetis annuntiatus est, qui ex fructu ventris David Emmanuel, magni consilii Patris nuntius, per quem oriri fecit Deus domui David Orientem et justum, et erexit ei cornu salutis, et suscitavit testimonium in Jacob, quemadmodum David causas generationis ejus disserens ait, et legem posuit in Israel, ut cognoscat generatio altera, filii qui nascentur ex his, et ipsi exsurgentes enarrabunt filiis suis, ut ponant in Deum spem suam, et praecepta ejus exquirant. Et rursus angelus evangelisans Mariae, ait: Hic erit magnus, et Filius Altissimi vocabitur, et dabit ei Dominus thronum David patris sui; eum qui sit Filius Altissimi, hunc eundem et David filium confitens. Cujus et David dispositionem adventus per Spiritum cognoscens, per quam dominans est omnium vivorum et mortuorum, Dominum eum confessus est, sedentem ad dextram Patris altissimi. Et Simeon autem ille, qui responsum acceperat a Spiritu sancto, non visurum eum mortem, nisi prius videret Christum Jesum, hunc manibus accipiens Virginis primogenitum, benedixit Deum, et dixit: 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 secundum verbum tuum in pace: quia viderunt oculi mei salutare tuum: quod praeparasti ante faciem omnium populorum, lumen in revelationem gentium, et gloriam populi tui Israel; infantem quem in manibus portabat Jesum, natum ex Maria, ipsum confitens esse Christum Filium Dei, lumen omnium, et gloriam ipsius Israel, et pacem et refrigerium eorum qui in dormitionem ierunt.

17.4

그분은 이미 사람들에게서 빼앗고 계셨다. 그들의 무지를 걷어 내고, 자신을 아는 앎을 주셨으며, 그분을 알아보는 이들을 나누셨다. 이사야가 말한 것과 같다. “그의 이름을 ‘빨리 약탈하라, 서둘러 나누어라’라고 불러라.” 이것들이 그리스도의 일이다. 시메온이 그분을 안고 지극히 높으신 분을 찬송했으니, 바로 이분이 그리스도였다. 목자들도 그분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요한은 아직 자기 어머니의 배 속에 있었고, 그분도 마리아의 태 안에 계셨을 때, 그분이 주님이심을 알고, 기뻐 뛰며 인사했다. 마기들은 그분을 보고 경배하며, 앞서 말한 선물들을 바치고, 영원한 왕 앞에 몸을 엎드렸다. 그들은 다른 길로 떠나, 더는 아시리아인들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부를 줄 알기 전에, 아시리아 왕을 대적하여 다마스쿠스의 힘과 사마리아의 전리품을 얻을 것이다.” 은밀하지만 강력하게 모든 것을 드러내신 것이다. 주님께서 숨긴 손으로 아말렉과 싸우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아이들도 구해 내셨다. 다윗의 집에 속한 아이들, 그때 태어나는 좋은 몫을 받은 아이들이었다. 자기 왕국으로 그들을 먼저 보내시려는 것이었다. 그분 자신이 아기였을 때, 사람의 아기들을 순교자로 준비하셨다. 유대의 베들레헴, 곧 다윗의 성읍에서 태어나신 그리스도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죽임당한 아이들이었다.

Jam enim exspoliabat homines, auferens ignorantiam ipsorum, suam autem agnitionem eis donans, et dispartitionem faciens eorum qui cognoscebant eum, quemadmodum Esaias: Voca, inquit, nomen ejus Velociter spolia, Celeriter dispartire. Haec sunt autem opera Christi. Ipse igitur erat Christus, quem portans Simeon benedicebat Altissimum; quem pastores cum vidissent, glorificabant Deum, quem Johannes, cum adhuc in ventre matris suae esset, et ille in vulva Mariae, Dominum cognoscens, exsultans salutabat; quem Magi videntes, et adorantes, et afferentes munera, quae praediximus, et substernentes semetipsos aeterno Regi, per alteram abierunt viam, non jam per Assyriorum revertentes viam. Priusquam enim cognoscet puer vocare patrem aut matrem, accipiet virtutem Damasci, et spolia Samariae, contra Regem Assyriorum; occulte quidem, sed potenter omnia manifestans, quoniam absconsa manu expugnabat Dominus Amalech. Propter hoc et pueros eripiebat, qui erant in domo David, bene sortiti illo tempore nasci, ut eos praemitteret in suum regnum; ipse infans cum esset, infantes hominum martyres parans, propter Christum, qui in Bethleem natus est Judae in civitate David, interfectos secundum Scripturas.

17.5

그러므로 주님도 부활 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생각 없는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 마음이 더딘 자들아. 그리스도는 이런 수난을 겪고,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았느냐?”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 것이 이것이다.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들과 시편에 나에 관해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경을 깨닫도록, 그때 그들의 지각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겪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며, 그분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게 죄의 용서[에 이르는 회개]가 선포되리라고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했다.]” 이분이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다. 그분은 말씀하신다. “인자는 반드시 많은 수난을 겪고, 버림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해야 한다.”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수난을 겪으신 이분 외에, 복음은 다른 인자를 알지 못한다. 수난 전에 예수에게서 날아가 버리는 그리스도도 알지 못한다. 태어나신 바로 그분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알고, 그 동일한 분이 수난을 겪고 부활하셨음을 안다. 주님의 제자 요한도 이를 확증하며 말한다. “이것들을 기록한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자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믿어서 그분의 이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분이 서로 다른 실체들로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대로 주님을 나누는 이 모독적인 규범들을 미리 본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편지에서도 우리에게 이렇게 증언했다. “자녀들아,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적그리스도가 온다고 들은 것처럼, 지금 많은 적그리스도가 생겨났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그들은 우리에게서 나갔지만, 우리에게 속한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에게 속했다면, 우리와 함께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알아 두십시오. 모든 거짓은 외부에서 비롯되며, 진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이 외에,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이 사람이 적그리스도입니다.”

Propter quod et Dominus discipulis post resurrectionem dicebat: O insensati, et tardi corde ad credendum in omnibus quae locuti sunt prophetae. Nonne haec oportebat pati Christum, et introire in claritatem suam? Et iterum ait eis: Hi sunt sermones quos locutus sum ad vos, cum adhuc essem vobiscum, quoniam oportet impleri omnia scripta in lege Moysi, et Prophetis, et Psalmis de me. Tunc adaperuit eorum sensum, ut intelligerent Scripturas, et dixit ad eos: Quoniam sic scriptum est, [et sic oportebat] Christum pati, et resurgere a mortuis, et praedicari in nomine ejus [poenitentiam in] remissionem peccatorum in omnes gentes. Hic autem est, qui ex Maria natus est. Oportet enim, inquit, Filium hominis multa pati, et reprobari, et crucifigi, et die tertio resurgere. Non ergo alterum Filium Hominis novit Evangelium, nisi hunc qui ex Maria, qui et passus est, sed neque Christum avolantem ante passionem ab Jesu; sed hunc qui natus est, Jesum Christum novit Dei Filium, et eundem hunc passum resurrexisse, quemadmodum Johannes Domini discipulus confirmat, dicens: Haec autem scripta sunt, ut credatis quoniam Jesus est Christus Filius Dei, et ut credentes vitam aeternam habeatis in nomine ejus; providens has blasphemas regulas, quae dividunt Dominum, quantum ex ipsis attinet, ex altera et altera substantia dicentes eum factum. Propter quod et in epistola sua sic testificatus est nobis: Filioli, novissima hora est, et quemadmodum audistis quoniam Antichristus venit, nunc Antichristi multi facti sunt: unde cognoscimus quoniam novissima hora est. Ex nobis exierunt, sed non erant ex nobis: si enim fuissent ex nobis, permansissent utique nobiscum: sed ut manifestarentur quoniam non sunt ex nobis. Cognoscite ergo quoniam omne mendacium extraneum est, et non est de veritate. Quis est mendax, nisi qui negat quoniam Jesus non est Christus? hic est Antichristus.

17.6

앞서 말한 이들은 모두 입으로는 한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스스로를 우스갯거리로 만든다.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여 주었듯이, 그들의 주장은 다양하다. 어떤 이는 수난을 겪고 태어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라고 알린다. 그들이 말하는 다른 이는 데미우르고스에게 속한 이, 곧 경륜에 속한 이이거나, 요셉에게서 난 이이며, 그가 수난을 겪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이지도 않고 말할 수도 없는 것들에서 또 다른 이가 내려왔다며, 그는 보이지도, 이해할 수도 없고, 수난도 겪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들의 생각이 참으로 하나님이신 분에게서 벗어났으므로, 진리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그분의 말씀인 외아들, 언제나 인류와 함께 계시는 분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이 빚으신 것과 결합되고 섞이셨으며, 육신이 되셨고, 이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수난을 겪고, 우리를 위해 부활하셨으며,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다. 모든 육신을 다시 일으키고, 구원을 드러내며, 그분 아래 만들어진 모든 이에게 의로운 심판의 규범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보여 주었듯이, 하나님 아버지는 한 분이시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도 한 분이시다. 그분은 경륜 전체를 통해 오시고,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신다. 그 모든 것 안에는 하나님께서 빚으신 사람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사람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신다. 보이지 않던 분이 보이는 분이 되셨고, 이해할 수 없던 분이 이해할 수 있는 분이 되셨으며, 수난을 겪지 않는 분이 수난을 겪을 수 있는 분이 되셨다. 말씀이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 위의 것들, 영적인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가운데 으뜸이신 것처럼, 보이는 것들과 몸을 지닌 것들 가운데서도 으뜸이 되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은 첫자리를 자신에게 취하시고, 자신을 교회의 머리로 세우셔서, 알맞은 때에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이끄신다.

Quia autem omnes qui praedicti sunt, etsi lingua quidem confitentur unum Jesum Christum, semetipsos derident, aliud quidem sentientes aliud vero dicentes; etenim argumenta illorum varia, quemadmodum ostendimus, alterum quidem passum, et natum hunc esse Christum annuntiant, et esse alterum eorum Demiurgi autem, qui sit ex dispositione, vel eum qui sit ex Joseph, quem et passibilem argumentantur, alterum vero eorum ab invisibilibus et inenarrabilibus descendisse, quem et invisibilem et incomprehensibilem, et impassibilem esse confirmant, errantes a veritate, eo quod absistat sententia eorum ab eo qui est vere Deus, nescientes quoniam hujus Verbum unigenitus, qui semper humano generi adest, unitus et consparsus suo plasmati secundum placitum Patris, et caro factus, ipse est Jesus Christus Dominus noster, qui et passus est pro nobis, et surrexit propter nos, et rursus venturus est in gloria Patris, ad resuscitandam universam carnem, et ad ostensionem salutis, et regulam justi judicii ostendere omnibus qui sub ipso facti sunt. Unus igitur Deus Pater, quemadmodum ostendimus, et unus Christus Jesus Dominus noster, veniens per universam dispositionem, et omnia in semetipsum recapitulans. In omnibus autem est et homo plasmatio Dei: et hominem ergo in semetipsum recapitulans est, invisibilis visibilis factus, et incomprehensibilis factus comprehensibilis, et impassibilis passibilis, et Verbum homo, universa in semetipsum recapitulans: uti sicut in supercoelestibus et spiritalibus et invisibilibus princeps est Verbum Dei; sic et in visibilibus, et corporalibus principatum habeat, in semetipsum primatum assumens, et apponens semetipsum caput Ecclesiae, universa attrahat ad semetipsum apto in tempore.

17.7

그분께는 질서 없거나 때에 맞지 않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미리 아셨으며, 알맞은 때에, 어울리는 순서대로 아들께서 이루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리아가 포도주의 놀라운 표적을 서두르며, 때가 되기 전에 단번에 마련되는 잔에 참여하기를 원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녀의 때 이른 재촉을 물리치며 말씀하셨다. “여인이여, 이 일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그때를 기다리신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분을 붙잡으려 할 때가 여러 번 있었으나,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지 않았다”라고 한다. 붙잡히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수난의 때도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언자 하박국도 말한다. “해들이 가까워지면 주님은 알려지실 것이고, 때가 오면 드러나실 것입니다. 내 혼이 진노 속에 흔들릴 때, 주님은 자신의 자비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울도 말한다. “때가 가득 찼을 때,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이로써 분명해진다. 아버지께서 미리 아신 모든 것을, 우리 주님께서 미리 아신 알맞은 순서와 시기와 시간에 이루셨다. 그분은 하나의 동일한 분이시며, 풍성하고 다양하시다. 아버지의 풍성하고 다양한 뜻을 섬기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구원받는 이들의 구원자, 다스림 아래 있는 이들의 주님, 지어진 것들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의 외아들, 선포된 그리스도,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때가 가득 찼을 때였다.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 인자가 되셔야 했다.

Nihil enim incomtum atque intempestivum apud eum, quomodo nec incongruens est apud Patrem. Praecognita sunt enim haec omnia a Patre, perficiuntur autem a Filio, sicut congruum et consequens est, apto tempore. Propter hoc properante Maria ad admirabile vini signum, et ante tempus volente participare compendii poculo, Dominus repellens ejus intempestivam festinationem, dixit: Quid mihi et tibi est mulier? nondum venit hora mea; exspectans eam horam quae est a Patre praecognita. Propter hoc cum saepe vellent eum homines apprehendere, Nemo, inquit, immisit manus ei: nondum enim venerat hora apprehensionis, nec tempus passionis, quod praecognitum fuerat a Patre, quemadmodum et Abacuc propheta ait: In eo cum appropinquarint anni cognosceris, in adventu temporis ostenderis, in eo quod turbetur anima mea in ira, misericordiae tuae memoraberis. Sed et Paulus ait: Cum autem venit plenitudo temporis, misit Deus filium suum. Per quod manifestum est, quoniam omnia quae praecognita erant a Patre, ordine et tempore et hora praecognita et apta perfecit Dominus noster, unus quidem et idem exsistens, dives autem et multus. Diviti enim et multae voluntati Patris deservit, cum sit ipse Salvator eorum qui salvantur, et Dominus eorum qui sunt sub dominio, et Deus eorum quae constituta sunt, et unigenitus Patris, et Christus qui praedicatus est, et Verbum Dei incarnatus, cum advenisset plenitudo temporis, in quo Filium Hominis fieri oportebat Filium Dei.

17.8

앎을 내세우면서, 예수와 그리스도와 모노게네스를 서로 다른 이로 이해하고, 이 모노게네스에게서 다시 말씀이 나왔다고 하며, 구원자도 따로 있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 경륜 밖에 있다. 오류의 제자인 이들은, 결함 속에 있게 된 아이온들이 그 구원자를 방출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겉으로는 양이다. 겉에 드러나는 말로는, 우리와 같은 말을 하며, 우리와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으로는 이리이다. 그들의 생각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여러 신을 꾸며 내고, 많은 아버지를 만들어 내며, 하나님의 아들을 잘게 쪼개어 여럿으로 나누기 때문이다. 주님도 이들을 조심하라고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그분의 제자 요한도 앞서 말한 편지에서 그들을 피하라고 명하며 말한다. “많은 미혹하는 자들이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고백하지 않는 이들입니다. 이런 이가 미혹하는 자이며 적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이 이루어 놓은 것을 잃지 않도록, 그들을 살피십시오.” 또 편지에서 말한다. “많은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서 나왔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영을 알아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고백하는 모든 영은 하나님에게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갈라놓는 모든 영은 하나님에게서 나오지 않고, 적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복음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셨고,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라고 한 말씀과 같은 뜻이다. 그러므로 그는 편지에서 다시 외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모든 이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의 동일한 분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분이 육신으로 올라가셨으므로, 그분께 하늘의 문들이 열렸다. 그분은 또 수난을 겪으신 바로 그 육신으로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며 오실 것이다.

Igitur omnes extra dispositionem sunt, qui sub obtentu agnitionis alterum quidem Jesum intelligunt, alterum autem Christum, et alterum Unigenitum, ab hoc autem rursum est Verbum, et alterum Salvatorem, quem etiam eorum qui in deminoratione facti sunt Aeones emissionem esse dicunt hi qui sunt erroris discipuli: qui a foris quidem oves, per eam enim quam habent extrinsecus loquelam similes nobis apparent, eadem nobiscum loquentes, intrinsecus vero lupi. Sententia enim eorum homicidialis, Deos quidem plures confingens, et patres multos simulans; comminuens autem et per multa dividens Filium Dei: quos et Dominus nobis cavere praedixit, et discipulus ejus Johannes in praedicta epistola fugere eos praecepit, dicens; Multi seductores exierunt in hunc mundum, qui non confitentur Jesum Christum in carne venisse. Hic est seductor et Antichristus. Videte eos, ne perdatis quod operati estis. Et rursus in epistola ait: Multi pseudoprophetae exierunt de saeculo. In hoc cognoscite Spiritum Dei. Omnis spiritus qui confitetur Jesum Christum in carne venisse, ex Deo est. Et omnis spiritus qui solvit Jesum Christum, non est ex Deo, sed ex Antichristo est. Haec autem similia sunt illi, quod in Evangelio dictum est, quoniam Verbum caro factum est, et habitavit in nobis. Propter quod rursus in epistola clamat: Omnis qui credit quia Jesus est Christus, ex Deo natus est; unum et eundem sciens Jesum Christum, cui apertae sunt portae coeli propter carnalem ejus assumtionem: qui etiam in eadem carne in qua passus est veniet, gloriam revelans Patris.

17.9

바울도 이에 동의하며 로마인들에게 말한다. “생명에 이르도록 은혜와 의를 풍성히 받는 이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더욱더 왕 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에게서 날아가 버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이 자들이 수난을 겪지 않는다고 하는, 위에 있는 구원자도 알지 못한다. 만일 한쪽은 수난을 겪고, 다른 쪽은 수난을 겪지 않은 채 남았으며, 한쪽은 태어나고, 그 태어난 이에게 다른 쪽이 내려왔다가, 다시 그를 떠났다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도는 태어나고 수난을 겪으신 그분, 그리스도 예수를 한 분으로 알았으므로, 같은 편지에서 다시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세례받은 우리는 모두 그분의 죽음 안에서 세례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 가운데 걷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 그리스도께서 수난을 겪으셨으며,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힌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미리 정해진 때에 자기 피로 우리를 속량하신 분이시다. 그는 말한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정해진 때에, 불경한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왜 죽으셨겠습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자기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이제 그분의 피 안에서 의롭게 된 우리는, 더욱더 그분을 통해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였을 때, 하나님 아들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화해했다면, 화해한 지금은 더욱더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 붙잡히고 수난을 겪으셨으며, 우리를 위해 자기 피를 흘리신 그분, 이분이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주 분명히 알리는 것이다. 그분은 또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 자신이 말한 것과도 같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더욱이 부활하셨으며,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십니다.” 또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다시는 죽지 않으심을 압니다.” 바울 자신도 성령을 통해 악한 교사들이 나눌 것을 미리 보고, 그들이 분열을 일으킬 모든 구실을 잘라 버리려 하여, 앞서 인용한 말을 했다. “예수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그는 거의 이렇게 외치는 셈이다. “길을 잃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의 동일한 분입니다. 수난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분, 아버지의 오른편에 계시며,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분입니다. 맞으실 때 맞서 때리지 않으셨고, 수난을 겪으실 때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폭압을 겪으실 때,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을 용서해 달라고 아버지께 청하셨습니다. 그분이 참으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난 외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이시기 때문입니다.”

Et Paulus autem his consentiens, Romanos alloquens, ait: Multo magis hi qui abundantiam gratiae et justitiae accipiunt in vitam, regnabunt per unum Jesum Christum. Nescit ergo eum qui evolavit Christum a Jesu; neque eum novit Salvatorem qui sursum est, quem impassibilem dicunt. Si enim alter quidem passus est, alter autem impassibilis mansit; et alter quidem natus est, alter vero in eum qui natus est, descendit, et rursus reliquit eum; non unus, sed duo monstrantur. Quoniam autem unum eum, et qui natus est et qui passus est, Christum Jesum novit Apostolus, in eadem epistola iterum dicit: An ignoratis quoniam quotquot baptisati sumus in Christo Jesu, in morte ejus baptisati sumus? ut quemadmodum resurrexit Christus a mortuis, sic et nos in novitate vitae ambulemus. Rursus autem significans Christum passum, et ipsum esse Filium Dei, qui pro nobis mortuus est et sanguine suo redemit nos in praefinito tempore, ait: Ut quid enim Christus, cum adhuc essemus infirmi, secundum tempus pro impiis mortuus est? Commendat autem suam dilectionem Deus in nobis, quoniam cum adhuc essemus peccatores, pro nobis Christus mortuus est: multo magis justificati nunc in sanguine ejus, salvi erimus per ipsum ab ira. Si enim cum essemus inimici, reconciliati sumus Deo per mortem Filii ejus, multo magis reconciliati, salvi erimus in vita ejus. Hunc eundem qui apprehensus et passus est, et effudit sanguinem suum pro nobis, hunc Christum, hunc Filium Dei manifestissime annuntians, qui etiam surrexit et assumtus est in coelos, quemadmodum ipse ait, simul autem, Christus mortuus est, imo qui et resurrexit, qui est in dextera Dei; et iterum, Scientes quoniam Christus resurgens a mortuis, jam non moritur. Praevidens enim et ipse per Spiritum subdivisiones malorum magistrorum, et omnem ipsorum occasionem dissensionis volens abscindere, ait quae praedicta sunt: Si autem Spiritus ejus qui suscitavit Jesum a mortuis, habitat in vobis, qui suscitavit Christum a mortuis vivificabit et mortalia corpora vestra. Unum quod non exclamat ad eos qui volunt audire, Quoniam nolite errare; unus et idem est Christus Jesus Filius Dei, qui per passionem reconciliavit nos Deo, et resurrexit a mortuis, qui est in dextera Patris, et perfectus in omnibus: qui cum vapularet, non repercutiebat; qui cum pateretur, non est minatus; et cum tyrannidem pateretur, rogabat Patrem ut ignosceret his qui se crucifixerant. Ipse enim vere salvavit: ipse est enim Verbum Dei, ipse unigenitus a Patre, Christus Jesus Dominus noster.

18.1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예수 안으로 내려왔다거나, 그 위의 구원자가 경륜에 속한 이 안으로 내려왔다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에게서 온 이가 데미우르고스에게 속한 이 안으로 내려왔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알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알았다면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말했다.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그분 안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사야를 통해 “그분 위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르실 것이다”라고 한 바로 그 영이시다. 또 “주님의 영이 내 위에 계신다.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도 이분이시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아버지의 영이시다. 그 영이 너희 안에서 말씀하신다.” 또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향해 새로 태어나게 하는 권능을 주시며, 말씀하셨다.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마지막 때에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 이 영을 부어 주셔서, 그들이 예언하리라고 약속하셨다. 인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 안으로 이 영이 내려오신 것이다. 그 아들과 함께, 인류 가운데 거하고, 사람들 안에 머무르며, 하나님께서 빚으신 것 안에 거하는 데 익숙해지셨다. 그들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 오래됨에서 그리스도의 새로움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셨다. 다윗은 인류를 위해 이 영을 구하며 말했다. “다스리는 영으로 저를 굳게 하소서.” 누가는 말한다. 주님께서 올라가신 뒤, 오순절에 이 영이 제자들 위에 내려오셨다. 모든 민족이 생명에 들어가고, 새 언약이 열리도록 하는 권능을 지니신 영이시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든 언어로 한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찬송했다. 영께서 멀리 떨어진 지파들을 하나로 모으시고, 모든 민족의 첫 열매를 아버지께 드리셨다. 그러므로 주님도 우리를 하나님께 맞게 하실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셨다. 마른 밀로는 물기 없이 한 덩이의 반죽을 만들 수 없고, 한 빵도 만들 수 없다. 이처럼 여럿인 우리도 하늘에서 오는 물 없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없었다. 마른 땅이 물기를 받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하듯이, 처음에는 마른 나무였던 우리도 위에서 기꺼이 주시는 비 없이는 생명의 열매를 결코 맺을 수 없었다. 우리의 몸은 씻음을 통해 썩지 않음에 이르는 그 일치를 받았고, 혼은 영을 통해 받았다. 그러므로 둘 다 필요하다. 둘 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그 불충실한 사마리아 여인을 가엾이 여기셨다. 그녀는 한 남편 곁에 머무르지 않고, 여러 혼인으로 음행한 이였다. 살아 있는 물을 그녀에게 보여 주고 약속하셔서, 더는 목마르지 않고, 수고하여 물기를 얻는 일에 매이지 않게 하셨다. 영원한 생명으로 솟아오르는 마실 물을 자기 안에 지니게 하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물을 아버지에게서 선물로 받아, 자신에게 참여하는 이들에게 친히 주셨다. 온 땅에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Etenim potuerunt dicere Apostoli, Christum descendisse in Jesum; aut illum superiorem Salvatorem, in eum qui sit dispositionis; aut illum qui est ab invisibilibus, in eum qui est Demiurgi: sed nihil quidem tale neque scierunt, neque dixerunt; si enim scissent, et dixissent utique: quod autem erat, hoc et dixerunt, Spiritum Dei sicut columbam descendisse in eum; hunc Spiritum, de quo ab Esaia dictum est, Et requiescet super eum Spiritus Dei, sicut praediximus. Et iterum: Spiritus Domini super me, propter quod unxit me. Iste Spiritus, de quo ait Dominus: Non enim vos estis qui loquimini, sed Spiritus Patris vestri qui loquitur in vobis. Et iterum potestatem regenerationis in Deum dans discipulis, dicebat eis: Euntes docete omnes gentes, baptisantes eos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Hunc enim promisit per prophetas effundere in novissimis temporibus super servos et ancillas, ut prophetent: unde et in Filium Dei, Filium Hominis factum, descendit, cum ipso assuescens habitare in genere humano, et requiescere in hominibus, et habitare in plasmate Dei, voluntatem Patris operans in ipsis, et renovans eos a vetustate in novitatem Christi. Hunc Spiritum petiit David humano generi, dicens: Et Spiritu principali confirma me. Quem et descendisse Lucas ait post ascensum Domini super discipulos in Pentecoste, habentem potestatem omnium gentium ad introitum vitae, et ad apertionem novi Testamenti: unde et omnibus linguis conspirantes hymnum dicebant Deo, Spiritu ad unitatem redigente distantes tribus, et primitias omnium gentium offerente Patri. Unde et Dominus pollicitus est mittere se Paracletum, qui nos aptaret Deo. Sicut enim de arido tritico massa una fieri non potest sine humore, neque unus panis: ita nec nos multi unum fieri in Christo Jesu poteramus, sine aqua quae de coelo est. Et sicut arida terra, si non percipiat humorem, non fructificat: sic et nos, lignum aridum exsistentes primum, nunquam fructificaremus vitam, sine superna voluntaria pluvia. Corpora enim nostra per lavacrum illam, quae est ad incorruptionem, unitatem acceperunt, animae autem per Spiritum. Unde et utraque necessaria, cum utraque proficiunt in vitam Dei, miserante Domino nostro Samaritanae illi praevaricatrici, quae in uno viro non mansit, sed fornicata est in multis nuptiis, et ostendente ei, et pollicente aquam vivam, ut ulterius non sitiret, neque occuparetur ad humectationem aquae laboriose, habens in se potum salientem in vitam aeternam, quam Dominus accipiens munus a Patre, ipse quoque his donavit qui ex ipso participantur, in universam terram mittens Spiritum sanctum.

18.2

그 이스라엘 사람 기드온은 이 선물의 은혜를 미리 보고, 자기의 청을 바꾸었다. 다른 민족들의 권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도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 위에만 이슬이 내렸던 양털 위에 장차 마름이 있으리라고 예언했다. 그 양털은 백성의 모형이었다. 곧 그들이 더는 하나님에게서 성령을 받지 못하리라는 뜻이다. 이사야의 말과 같다. “구름들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겠다.” 그러나 온 땅에는 이슬이 내린다. 이 이슬이 주님 안으로 내려오신 하나님의 영, 지혜와 깨달음의 영, 계획과 능력의 영, 지식과 경건의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이시다. 주님은 이 영을 다시 교회에 주셨다. 하늘에서 보혜사를 온 땅에 보내신 것이다. 주님께서는 악마도 그 하늘에서 번개처럼 내던져졌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슬이 필요하다. 불에 타 버리지 않고, 열매 없는 이들이 되지 않으며, 고발자가 있는 그곳에 보혜사도 계시게 하려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강도를 만났던 자기 사람을 성령께 맡기셨다. 주님이 친히 그를 가엾이 여겨, 그 상처를 싸매시고, 왕의 데나리온 두 닢을 주셨다. 영을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형상과 명문을 받아, 우리에게 맡겨진 데나리온 한 닢으로 열매를 맺고, 불린 것을 주님께 세어 드리도록 하신 것이다.

Hanc muneris gratiam praevidens Gedeon ille Israelita, quem elegit Deus, ut salvaret populum Israel de potentatu alienigenarum, demutavit petitionem, et super vellus lanae, in quo tantum primum ros fuerat, quod erat typus populi, ariditatem futuram prophetans; hoc est, non jam habituros eos a Deo Spiritum sanctum, sicut Esaias ait: Et nubibus mandabo ne pluant super eam; in omni autem terra fieri ros, quod est Spiritus Dei, qui descendit in Dominum, spiritus sapientiae et intellectus, spiritus consilii et virtutis, spiritus scientiae et pietatis, spiritus timoris Dei: quem ipsum iterum dedit Ecclesiae, in omnem terram mittens de coelis Paracletum, ubi et diabolum tamquam fulgur projectum ait Dominus. Quapropter necessarius nobis est ros Dei, ut non comburamur, neque infructuosi efficiamur, et ubi accusatorem habemus, illic habeamus et Paracletum; commendante Domino Spiritui sancto suum hominem, qui inciderat in latrones, cui ipse misertus est, et ligavit vulnera ejus, dans duo denaria regalia, ut per Spiritum imaginem et inscriptionem Patris et Filii accipientes, fructificemus creditum nobis denarium, multiplicatum Domino annumerantes.

18.3

그러므로 앞서 말한 경륜 위에 영이 내려오셨고, 아버지의 말씀이기도 한 하나님의 외아들은, 때가 가득 찼을 때, 사람을 위해 사람 안에서 육신이 되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에 관한 경륜 전체를 이루셨으며, 하나의 동일한 분이시다. 주님 자신이 증언하시고, 사도들이 고백하며, 예언자들이 알리는 그대로이다. 꾸며 낸 여덟 묶음과 네 묶음을 고안하고, 여러 갈래의 분할을 생각해 낸 자들의 모든 가르침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성령을 없애 버리고, 그리스도와 예수를 서로 다른 이로 이해하며, 그리스도가 한 분이 아니라 여럿이었다고 가르친다. 이들이 결합되어 있다고 말하더라도, 한쪽은 수난에 참여했고, 다른 쪽은 수난을 겪지 않은 채 남았다고 다시 설명한다. 한쪽은 플레로마에 올라갔고, 다른 쪽은 중간 영역에 남았으며, 한쪽은 보이지도 않고 이름할 수도 없는 곳에서 잔치를 즐기고 기뻐하지만, 다른 쪽은 데미우르고스 곁에 앉아 그의 능력을 비워 버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대도, 이 글에 주의를 기울이며 자기 구원을 염려하는 모든 이도, 밖에서 그들의 말을 들을 때, 선뜻 넘어가서는 안 된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믿는 이들과 비슷하게 말하면서도, 생각은 다를 뿐 아니라, 서로 반대되고, 모든 면에서 모독으로 가득하다. 말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들의 성향에서 나오는 이질적인 독을 자기 안으로 들이키는 이들을, 그러한 생각으로 죽이는 것이다. 누군가 물에 섞은 석고를 우유인 양 주고, 색깔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속이는 것과 같다.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님의 것들을 왜곡하고, 진리에 불순물을 섞는 모든 이에 관해, 우리보다 앞선 어떤 이가 말한 것과 같다. “하나님의 젖에 석고를 섞는 일은 악하다.”

Spiritu itaque descendente super praedictam dispositionem, et Filio Dei unigenito, qui et Verbum est Patris, veniente plenitudine temporis, incarnato in homine propter hominem, et omnem secundum hominem dispositionem implente Jesu Christo Domino nostro, uno et eodem exsistente, sicut et ipse Dominus testatur, et Apostoli confitentur, et prophetae annuntiant, mendaces ostensae sunt universae doctrinae eorum, qui octonationes et quaternationes putativas adinvenerunt, et subdivisiones excogitaverunt: qui Spiritum quidem interimunt, alium autem Christum, et alium Jesum intelligunt, et non unum Christum, sed plures fuisse docent: et si unitos eos dixerint, iterum ostendunt eum quidem participasse passionem, hunc autem impassibilem perseverasse; et hunc quidem ascendisse in Pleroma, hunc autem in medietate remansisse; et hunc quidem in invisibilibus et innominabilibus epulari et oblectari, hunc autem assidere Demiurgo, evacuantem eum virtute. Unde et oportebit et te, et omnes qui intendunt huic Scripturae, et solliciti sunt pro sua salute, non, quum audiunt forinsecus eorum sermones, sponte succumbere; similia enim loquentes fidelibus, sicut praediximus, non solum dissimilia sapiunt, sed et contraria, et per omnia plena blasphemiis, per quae interficiunt eos, qui per similitudinem verborum dissimile affectionis eorum in se attrahunt venenum: sicut quis aquae mixtum gypsum dans pro lacte, seducat per similitudinem coloris, sicut quidam dixit superior nobis, de omnibus qui quolibet modo depravant quae sunt Dei, et adulterant veritatem; In Dei lacte gypsum male miscetur.

19.1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 그분을 통해 모든 것이 만들어졌고, 언제나 인류와 함께 계셨던 그분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께서 미리 정하신 시간에 따라, 자신이 빚으신 것과 결합하여, 수난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 되셨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그렇다면 그때 태어났으니, 그리스도는 그 이전에 없었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모든 반론은 배제된다. 우리가 보여 주었듯이, 하나님의 아들은 그때 비로소 시작되신 분이 아니며,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그분은 육신이 되어 사람이 되셨을 때, 인류의 긴 내력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셨다. 우리에게 구원을 집약하여 베푸셔서, 우리가 아담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 곧 하나님의 형상과 닮음을 따라 존재하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되찾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Ostenso manifeste, quod in principio Verbum exsistens apud Deum, per quem omnia facta sunt, qui et semper aderat generi humano, hunc in novissimis temporibus secundum praefinitum tempus a Patre, unitum suo plasmati, passibilem hominem factum, exclusa est omnis contradictio dicentium: Si ergo tunc natus est, non erat ergo ante Christus. Ostendimus enim, quia non tunc coepit Filius Dei, exsistens semper apud Patrem; sed quando incarnatus est, et homo factus, longam hominum expositionem in seipso recapitulavit, in compendio nobis salutem praestans, ut quod perdideramus in Adam, id est, secundum imaginem et similitudinem esse Dei, hoc in Christo Jesu reciperemus.

19.2

한번 패배하고, 불순종으로 짓눌린 그 사람이 자신을 다시 빚어, 승리의 상을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죄 아래 쓰러진 이가 구원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아들은 이 둘을 모두 이루셨다.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아버지에게서 내려와, 육신이 되셨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려가셔서, 우리 구원의 경륜을 완성하셨다. 바울은 우리가 그분을 의심 없이 믿도록 권하며, 다시 말한다. “‘누가 하늘에 올라갔는가?’라고 네 마음속에 말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일이다. 또 ‘누가 심연에 내려갔는가?’라고 말하지 말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서 풀어내는 일이다.” 그 뒤에 덧붙인다. “네 입으로 주 예수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까닭에 이 일들을 하셨는지, 그는 이유를 설명하며 말한다.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을 다스리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또 고린토인들에게 쓰면서 말한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는 알립니다.” 이어서 말한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먹는 일에서 우리와 함께하신 분은 누구인가? 이 자들이 꾸며 내는 위의 그리스도인가? 호로스, 곧 한계 위에 펼쳐져, 그들의 어머니에게 형태를 주었다는 그인가? 아니면 동정녀에게서 나신 임마누엘, 버터와 꿀을 드신 분인가? 예언자는 그분에 대해 말한다. “그는 사람이다. 누가 그를 알아보겠는가?” 바울이 알린 분도 바로 이분이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했습니다. 성경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죽으셨고, 묻히셨으며, 성경대로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Quia enim non erat possibile, eum hominem qui semel victus fuerat et elisus per inobedientiam, replasmare, et obtinere bravium victoriae, iterum autem impossibile erat ut salutem perciperet qui sub peccato ceciderat, utraque operatus est Filius, Verbum Dei exsistens, a Patre descendens, et incarnatus, et usque ad mortem descendens, et dispensationem consummans salutis nostrae, cui credere nos indubitate adhortans, iterum dicit: Ne dixeris in corde tuo, Quis ascendit in coelum? hoc est Christum deducere. Aut, Quis descendit in abyssum? hoc est Christum a mortuis liberare; deinde infert: Quoniam si confitearis in ore tuo Dominum Jesum, et credideris in corde tuo, quoniam Deus illum excitavit a mortuis, salvus eris. Et rationem reddidit propter quam causam haec fecit Verbum Dei, dicens: In hoc enim Christus et vixit, et mortuus est, et resurrexit, ut vivorum et mortuorum dominetur. Et iterum ad Corinthios scribens ait: Nos autem annuntiamus Christum Jesum crucifixum. Et infert: Calix benedictionis quem benedicimus, nonne communicatio sanguinis est Christi? Quis est autem qui communicavit nobis de escis? Utrum is qui ab illis affingitur sursum Christus, superextensus Horo, id est fini, et formavit eorum matrem: an vero qui ex virgine est Emmanuel, qui butyrum et mel manducavit, de quo ait propheta: Et homo est, et quis cognoscet eum? Hic idem a Paulo annuntiabatur: Tradidi enim, inquit, vobis in primis, quoniam Christus mortuus est pro peccatis nostris secundum Scripturas, et quoniam sepultus est, et resurrexit tertia die secundum Scripturas.

19.3

그러므로 분명하다. 바울은 수난을 겪고, 묻히고 부활하셨으며, 또 태어나신 그분, 자신이 사람이라고 부른 그분 외에, 다른 그리스도를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고 선포된다면”이라고 말한 뒤, 그분이 육신이 되신 이유를 설명하며 덧붙였다. “사람을 통해 죽음이 왔고, 사람을 통해 죽은 이들의 부활도 왔습니다.” 우리 주님의 수난과 사람 되심과 죽음을 말할 때마다, 그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다음과 같은 말에서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으니, 네 음식으로 그를 멸망시키지 말라.” 또 말한다.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습니다.” 또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셔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 ‘나무에 달린 이는 모두 저주받은 자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말한다. “네 지식으로 말미암아 약한 형제가 멸망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수난을 겪지 않는 그리스도가 예수 안으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그분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이셨으며, 우리를 위해 수난을 겪으셨음을 밝힌 것이다. 그분은 누우셨다가 부활하시고, 내려오셨다가 올라가신 분, 인자가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 이름 자체도 이를 뜻한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에는 기름을 부으신 분과, 기름 부음 받은 분, 그분에게 부어진 기름 부음 자체가 함축되어 있다. 기름을 부으신 이는 아버지이며, 기름 부음 받은 이는 아들이다. 영 안에서 기름 부음을 받으셨으며, 그 영이 기름 부음이시다. 말씀이 이사야를 통해 하신 말과 같다. “하나님의 영이 내 위에 계신다.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기름을 부으시는 아버지와, 기름 부음 받은 아들, 기름 부음이신 영을 나타내는 것이다.

Manifestum est igitur, quoniam Paulus alterum Christum nescit, nisi hunc solum, qui et passus est, et sepultus est, et resurrexit, qui et natus est, quem et hominem dixit. Cum enim dixisset: Si autem Christus annuntiatur quoniam a mortuis resurrexit, intulit, rationem reddens incarnationis ejus: Quoniam per hominem mors, et per hominem resurrectio mortuorum. Et ubique in passione Domini nostri, et humanitate, et mortificatione ejus, Christi usus est nomine, quemadmodum in illo: Noli esca tua perdere illum, pro quo Christus mortuus est. Et iterum: Nunc autem in Christo vos qui aliquando fuistis longe, facti estis proximi in sanguine Christi. Et iterum: Christus nos redemit de maledicto Legis, factus pro nobis maledictum: quoniam scriptum est, Maledictus omnis qui pendet in ligno. Et iterum: Et periet infirmus in tua scientia frater, propter quem Christus mortuus est; significans, quoniam non Christus impassibilis descendit in Jesum, sed ipse, Jesus Christus cum esset, passus est pro nobis, qui decubuit et resurrexit, qui descendit et ascendit, Filius Dei, filius hominis factus: quemadmodum et ipsum nomen significat. In Christi enim nomine subauditur qui unxit, et ipse qui unctus est, et ipsa unctio in qua unctus est. Et unxit quidem Pater, unctus est vero Filius, in Spiritu, qui est unctio; quemadmodum per Esaiam ait sermo: Spiritus Dei super me, propter quod unxit me; significans et unguentem Patrem, et unctum Filium, et unctionem, qui est Spiritus.

19.4

주님 자신도 수난을 겪은 이가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신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은 나,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혈육이 그에게 계시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시하셨다고 하시며, 주님은 그를 칭찬하셨다. 인자가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그때부터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제사장들에게 많은 고난을 겪고, 버림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사흘째 되는 날 부활해야 함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시작하셨다.” 베드로에게 그리스도로 인정받으신 그분, 아버지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그에게 계시하셨으므로, 그가 복되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분이, 자신이 많은 수난을 겪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베드로가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그분을 그리스도로 여기며, 그분의 수난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자, 그때 그를 꾸짖으셨다. 제자들에게는 말씀하셨다. “누구든 내 뒤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이는 그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 이는 그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분명히 하셨다. 그분을 고백하기 때문에 죽음에 넘겨지고, 목숨을 잃을 이들의 구원자가 그분 자신이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수난을 겪을 분이 아니고, 예수에게서 날아가실 분이었다면, 제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따르라고 왜 권하셨겠는가? 이 자들의 말대로라면, 그분 자신은 그 십자가를 지지 않고, 수난의 경륜을 떠나 버리셨을 텐데 말이다. 어떤 이들이 감히 풀이하듯이, 위의 십자가를 아는 일에 대해 하신 말씀이 아니었다. 그분 자신이 겪어야 하며, 그 제자들도 앞으로 겪을 수난에 관한 말씀이었다. 그분은 덧붙이셨다. “자기 목숨을 구하는 이는 그 목숨을 잃을 것이며, 목숨을 잃는 이는 그 목숨을 찾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분 때문에 수난을 겪을 것이기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예언자들과 지혜로운 이들과 교사들을 보낸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 일부를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을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 때문에 통치자들과 왕들 앞에 설 것이다. 사람들은 너희 가운데 일부를 채찍질하고 죽이며, 이 성읍에서 저 성읍으로 박해할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박해받을 이들도 아셨고, 그분 때문에 채찍질당하고 죽임당할 이들도 아셨다. 다른 십자가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겪고, 그 뒤 제자들이 겪을 수난에 관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그 말씀은 제자들에게도 권하는 말씀이었다. “몸을 죽이지만 혼은 죽일 수 없는 이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몸과 혼을 게헨나에 보내는 권한을 지닌 분을 더욱 두려워하라.” 또 그분에 대한 고백을 지키라고 권하셨다.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름을 고백하는 이들을, 아버지 앞에서 자신도 고백하겠다고 약속하셨다. 자신을 부인하는 이들은 부인하시고, 그분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이들은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어떤 자들은 그토록 대담해져서, 순교자들까지 업신여긴다. 주님을 고백한 까닭에 죽임당하고, 주님께서 예고하신 모든 일을 견디며, 그렇게 주님 수난의 발자취를 따르려 애쓰는 이들을 비난한다. 그들은 수난을 겪으신 분의 증인이 되었고, 우리도 그들을 순교자들 가운데 헤아린다. 그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시고, 그들이 영광을 얻을 때, 그들의 순교를 모욕했던 모든 자는 그리스도께 수치를 당할 것이다.

Et ipse autem Dominus manifestum facit eum qui est passus. Cum enim interrogasset discipulos: Quem me homines dicunt esse Filium Hominis? et Petrus cum respondisset: Tu es Christus Filius Dei vivi; et cum laudatus esset ab eo, quoniam caro et sanguis non revelavit ei, sed Pater qui est in coelis, manifestum fecit, quoniam Filius Hominis hic est Christus Filius Dei vivi: Ex eo enim, inquit, coepit demonstrare discentibus, quoniam oportet illum Hierosolymam ire, et multa pati a sacerdotibus, et reprobari, et crucifigi, et tertia die resurgere. Ipse qui agnitus est a Petro Christus, qui eum beatum dixit, quoniam Pater ei revelavit Filium Dei vivi, dixit, semetipsum oportere multa pati et crucifigi: et tunc Petro increpavit, secundum opinionem hominum putanti eum esse Christum, et passionem ejus aversanti, et dixit discipulis: Si quis vult post me venire, neget se, et tollat crucem suam, et sequatur me. Qui enim voluerit animam suam salvare, perdet illam: et qui eam perdiderit propter me, salvabit eam. Haec enim Christus manifeste dicebat, ipse exsistens Salvator eorum, qui propter suam confessionem in mortem traderentur, et perderent animas suas. Si autem ipse non erat passurus, sed avolaret a Jesu, quid et adhortabatur discipulos tollere crucem, et sequi se, quam ipse non tollebat secundum ipsos, sed relinquebat dispositionem passionis? Quoniam enim non de agnitione superioris crucis dicit hoc, quemadmodum quidam audent exponere; sed de passione, quam oportebat illum pati, et ipsi discipuli ejus futurum erat ut paterentur, intulit: Quicunque enim salvaverit animam suam, perdet eam: et qui perdiderit, inveniet eam; et quoniam passuri erant discipuli ejus propter eum, dicebat Judaeis: Ecce, ego mitto ad vos prophetas, et sapientes, et doctores, et ex his interficietis, et crucifigetis; et discipulis dicebat, Ante duces et reges stabitis propter me, et ex vobis flagellabunt, et interficient, et persequentur a civitate in civitatem; sciebat igitur et eos qui persecutionem passuri essent, sciebat et eos qui flagellari et occidi haberent propter eum: et non altera de cruce, sed de passione, quam passurus esset ipse prior, post deinde discipuli ejus. Erat ergo sermo ejus adhortans etiam illos: Nolite timere eos qui occidunt corpus, animam autem non possunt occidere: timete autem magis eum, qui habet potestatem et corpus et animam mittere in gehennam; et servare eas quae essent ad eum confessiones. Etenim ipse confessurum se promittebat coram Patre eos qui confiterentur nomen suum coram hominibus; negaturum autem eos qui negarent eum, et confusurum qui confunderentur confessionem ejus. Et cum haec ita se habeant, ad tantam temeritatem progressi sunt quidam, ut etiam martyres spernant, et vituperent eos qui propter Domini confessionem occiduntur, et sustinent omnia a Domino praedicta, et secundum hoc conantur vestigia assequi passionis Domini, passibilis martyres facti; quos et concedimus ipsis martyribus. Cum enim inquiretur sanguis eorum, et gloriam consequentur, tunc a Christo confundentur omnes qui inhonoraverunt eorum martyrium.

19.5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말씀하셨다. “아버지, 이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말씀에서도 그리스도의 오래 참음과 인내, 자비와 선하심이 드러난다. 그분이 친히 수난을 겪으셨고, 자기를 학대한 이들을 친히 변호하셨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라”라고 하신 분이, 친히 십자가에서 그대로 행하셨다. 인류를 그토록 사랑하셔서, 자기를 죽이는 이들을 위해서까지 간구하셨다. 누군가 둘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이들을 판단한다면, 상처와 매질, 그들이 자기에게 저지른 나머지 일들 가운데서도 선을 베풀고, 자기에게 저지른 악을 마음에 두지 않은 분이, 날아가 버려, 어떤 위해나 모욕도 겪지 않은 이보다 훨씬 더 낫고, 더 인내하며, 참으로 선한 분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이 겉으로만 수난을 겪었다고 말하는 자들에게도 같은 논증이 적용된다. 실제로 수난을 겪지 않았다면, 고통도 없었을 것이므로, 그분께 감사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실제로 고난을 겪기 시작할 때, 그분 자신이 먼저 그 일을 참으로 겪지 않았다면, 우리에게 맞고 다른 뺨도 내밀라고 권하시는 분은 우리를 미혹하는 이로 보일 것이다. 자신이 아닌 것을 그들에게 보이셔서 그들을 속인 것처럼, 자신이 견디지 않은 일들을 견디라고 권하여, 우리도 속이는 셈이다. 스승이 겪거나 견디지 않은 일을 우리가 겪고 견디므로, 우리가 스승보다 높아지기까지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님 홀로 참된 스승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은 참으로 선하고 인내하신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이 인자가 되셨다. 그분은 싸워서 이기셨다. 조상들을 위해 싸우는 사람이셨으며, 순종으로 불순종을 풀어내셨다. 강한 자를 묶고, 약한 이들을 풀어 주셨으며, 죄를 없애시고, 자신이 빚으신 것에 구원을 주셨다. 그분은 더없이 자애롭고 자비로우신 주님이며, 인류를 사랑하시는 분이시다.

Et ex hoc autem quod Dominus in cruce dixerit: Pater dimitte eis, non enim sciunt quid faciunt, longanimitas, et patientia, et misericordia, et bonitas Christi ostenditur, ut et ipse pateretur, et ipse excusaret eos qui se male tractassent. Verbum enim Dei quod nobis dixit: Diligite inimicos vestros, et orate pro eis qui vos oderunt, ipse hoc fecit in cruce, in tantum diligens humanum genus, ut etiam pro his qui se interficerent, postularet. Si quis autem quasi duorum exsistentium, judicium de his faciat, invenietur multo melior, et patientior, et vere bonus, qui in vulneribus ipsis, et plagis, et reliquis quae in eum commiserunt, beneficus est, nec memor est in se commissae malitiae, eo qui avolavit, nec ullam injuriam, neque opprobrium passus est. Hoc autem idem et illis occurrit, qui dicunt eum putative passum. Si enim non vere passus est, nulla gratia ei, cum nulla fuerit passio: et nos, cum incipiemus vere pati, seducens videbitur, adhortans nos vapulare, et alteram praebere maxillam, si ipse illud non prior in veritate passus est: et quemadmodum illos seduxit, ut videretur eis ipse hoc quod non erat, et nos seducit, adhortans perferre ea, quae ipse non pertulit. Erimus autem et super magistrum, dum patimur et sustinemus quae neque passus est neque sustinuit magister. Sed quoniam solus vere magister Dominus noster, et bonus vere Filius Dei et patiens, Verbum Dei Patris Filius Hominis factus. Luctatus est enim, et vicit: erat enim homo pro patribus certans, et per obedientiam, inobedientiam persolvens: alligavit enim fortem, et solvit infirmos, et salutem donavit plasmati suo, destruens peccatum. Est enim piissimus et misericors Dominus, et amans humanum genus.

19.6

앞서 말했듯이, 그분은 그렇게 사람을 하나님께 붙어 있게 하시고 하나로 만드셨다. 사람이 사람의 원수를 이기지 않았다면, 그 원수는 정당하게 패배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그것을 확고히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결합되지 않았다면, 썩지 않음에 참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양쪽 모두와 맺은 자신의 친밀한 관계를 통해, 그 둘을 우정과 화합으로 되돌리셔야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받아들이시고,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도록 하셔야 했다.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의 사귐을 그분에게서 받지 않았다면, 그분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나누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양자 됨에 참여할 수 있었겠는가? 그분은 모든 나이를 거쳐 오셨고, 모든 이에게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시켜 주셨다. 그분이 겉으로만 나타나셨다고, 육신으로 태어나지도, 참으로 사람이 되지도 않으셨다고 말하는 자들은, 여전히 옛 정죄 아래 있으며, 죄를 옹호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죽음이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죽음은 아담부터 모세까지 다스렸으며, 아담의 범법과 같은 방식으로 죄짓지 않은 이들 위에서도 다스렸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이 와서, 죄에 대해, 그것이 죄짓는 자라고 증언했다. 그것의 왕권을 거두고, 왕이 아니라 강도임을 드러내며, 살인자임을 보여 주었다. 자기 안에 죄를 지닌 사람에게는 짐을 지워, 그가 죽음에 처할 죄인임을 드러냈다. 율법은 영적인 것이므로, 죄를 드러냈을 뿐, 없애지는 않았다. 죄는 영을 다스린 것이 아니라 사람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죄를 죽이고, 죽음에 처할 죄인을 속량하실 분은, 그와 똑같은 존재, 곧 사람이 되셔야 했다. 그 사람은 죄에 끌려 종살이하게 되었고, 죽음에 붙잡혀 있었다. 죄가 사람을 통해 죽임당하고, 사람이 죽음에서 나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처음 가공되지 않은 땅에서 빚어진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해, 많은 이가 죄인이 되어, 생명을 잃었다. 처음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서도 많은 이가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아야 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 모세의 말과 같다. “하나님, 그분의 일들은 참되다.” 육신이 되시지 않은 채 육신인 듯 보이셨다면, 그분의 일은 참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이신 그대로 계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며, 사람을 처음 빚으신 일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셔서, 죄를 죽이고, 죽음을 무력하게 하며, 사람을 살리려 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일들은 참되다.

Haerere itaque fecit et adunivit, quemadmodum praediximus, hominem Deo. Si enim homo non vicisset inimicum hominis, non juste victus esset inimicus. Rursus autem nisi Deus donasset salutem, non firmiter haberemus eam. Et nisi homo conjunctus fuisset Deo, non potuisset particeps fieri incorruptibilitatis. Oportuerat enim Mediatorem Dei et hominum, per suam ad utrosque domesticitatem, in amicitiam et concordiam utrosque reducere, et facere, ut et Deus assumeret hominem, et homo se dederet Deo. Qua enim ratione filiorum adoptionis ejus participes esse possemus, nisi per Filium eam quae est ad ipsum recepissemus ab eo communionem, nisi verbum ejus communicasset nobis caro factum? Quapropter et per omnem venit aetatem, omnibus restituens eam quae est ad Deum communionem. Igitur qui dicunt eum putative manifestatum, neque in carne natum, neque vere hominem factum, adhuc sub veteri sunt damnatione, advocationem praebentes peccato, non devicta secundum eos morte, quae regnavit ab Adam usque ad Moysem, etiam in eos qui non peccaverunt in similitudinem transgressionis Adae. Veniens autem lex, quae data est per Moysem, et testificans de peccato, quoniam peccator est, regnum quidem ejus abstulit, latronem et non regem eum detegens, et homicidam eum ostendit: oneravit autem hominem qui habebat peccatum in se, reum mortis ostendens eum. Spiritalis enim cum lex esset, manifestavit tantummodo peccatum, non autem interemit: non enim Spiritui dominabatur peccatum, sed homini. Oportebat enim eum qui inciperet occidere peccatum, et mortis reum redimere hominem, id ipsum fieri quod erat ille, id est hominem: qui a peccato quidem in servitium tractus fuerat, a morte vero tenebatur, ut peccatum ab homine interficeretur, et homo exiret a morte. Quemadmodum enim per inobedientiam unius hominis, qui primus de terra rudi plasmatus est, peccatores facti sunt multi, et amiserunt vitam; ita oportuit et per obedientiam unius hominis, qui primus ex virgine natus est, justificari multos, et percipere salutem. Sic igitur Verbum Dei homo factus est, quemadmodum et Moyses ait: Deus, vera opera ejus. Si autem non factus caro parebat quasi caro, non erat verum opus ejus. Quod autem parebat, hoc et erat; Deus, hominis antiquam plasmationem in se recapitulans, ut occideret quidem peccatum, evacuaret autem mortem, et vivificaret hominem: et propter hoc vera opera ejus.

20.1

그분을 그저 사람이라고,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하는 자들은, 옛 불순종의 종살이에 머문 채 죽어 간다. 아직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과 섞이지 않았고, 아들을 통해 자유를 받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분이 말씀하셨듯이, “아들이 너희를 해방하면, 너희는 참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동정녀에게서 나신 임마누엘을 알지 못하여, 그분의 선물을 빼앗긴다. 그 선물은 영원한 생명이다. 썩지 않음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아, 죽을 육신에 머무르며, 죽음에 빚진 자들이 된다. 생명의 해독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말씀은 자신의 은혜의 선물을 설명하며,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말했다. 너희는 신들이며,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사람들처럼 죽을 것이다.” 분명히 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양자 됨의 선물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순결하게 나셔서 육신이 되신 일을 업신여기는 이들, 주님께 올라가는 일을 사람에게서 빼앗고, 자기들을 위해 육신이 되신 하나님의 말씀께 감사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인자가 되셨다. [...] 하나님의 말씀과 섞이고, 양자 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썩지 않음과 죽지 않음에 결합되지 않았다면, 썩지 않음과 죽지 않음을 우리는 달리 얻을 수 없었다. 썩지 않음과 죽지 않음이 먼저 우리와 같은 것이 되지 않았다면, 썩지 않음과 죽지 않음에 우리가 어떻게 결합될 수 있었겠는가? 썩을 것은 썩지 않음에, 죽을 것은 죽지 않음에 삼켜져, 우리가 아들로 받아들여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Rursus autem qui nude tantum hominem eum dicunt ex Joseph generatum, perseverantes in servitute pristinae inobedientiae moriuntur, nondum commixti Verbo Dei Patris, neque per Filium percipientes libertatem, quemadmodum ipse ait: Si Filius vos manumiserit, vere liberi eritis. Ignorantes autem eum qui ex Virgine est Emmanuel, privantur munere ejus, quod est vita aeterna: non recipientes autem Verbum incorruptionis, perseverant in carne mortali, et sunt debitores mortis, antidotum vitae non accipientes. Ad quos Verbum ait, suum munus gratiae narrans: Ego dixi, Dii estis, et filii Altissimi omnes: vos autem sicut homines moriemini. Ad eos indubitate dicit, qui non percipiunt munus adoptionis, sed contemnunt incarnationem purae generationis Verbi Dei, fraudantes hominem ab ea ascensione quae est ad Dominum, et ingrati exsistentes Verbo Dei, qui incarnatus est propter ipsos. Propter hoc enim Verbum Dei homo; et qui Filius Dei est, Filius Hominis factus est, ... commixtus Verbo Dei, et adoptionem percipiens fiat filius Dei. Non enim poteramus aliter incorruptelam et immortalitatem percipere, nisi adunati fuissemus incorruptelae et immortalitati. Quemadmodum autem adunari possemus incorruptelae et immortalitati, nisi prius incorruptela et immortalitas facta fuisset id quod et nos, ut absorberetur quod erat corruptibile ab incorruptela, et quod erat mortale ab immortalitate, ut filiorum adoptionem perciperemus?

20.2

그러므로 “그의 나심을 누가 설명하겠는가?”라고 한다. “그는 사람이다. 누가 그를 알아보겠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계시해 주신 이는 그분을 안다. 육신의 뜻으로나, 남자의 뜻으로 나지 않으신 그 인자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것이다. 아담의 아들들 가운데 아무도 그분과 같은 뜻에서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주님이라 이름되지 않음을, 우리는 성경으로 입증했다. 진리를 조금이라도 접한 이들은 모두 알 수 있다. 그때까지 존재한 모든 사람을 넘어, 그분은 본래 하나님이요 주님이요 영원한 왕이며, 외아들이요 육신이 되신 말씀이시다. 모든 예언자와 사도들, 그리고 영 자신이 선포한 분이시다. 그분이 다른 모든 이처럼 그저 사람이셨다면, 성경이 그분에 대해 이렇게 증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아버지에게서 나심을 모든 이를 뛰어넘는 영광스러움으로 지니셨고, 동정녀에게서의 탄생도 영광스럽게 겪으셨기에, 거룩한 성경은 그분에 대해 둘 다 증언한다. 그분이 볼품없고 수난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시며, 암나귀의 새끼 위에 앉으시고, 식초와 쓸개즙을 마시게 되셨으며, 백성 가운데서 멸시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내려가셨다는 것이다. 또 그분이 거룩한 주님, 놀라운 분, 조언자, 아름다운 모습을 지닌 분, 강한 하나님, 구름 위로 오시는 만물의 심판자이심을, 성경은 그분에 대해 모두 예언했다.

Propter hoc Generationem ejus quis enarrabit? quoniam homo est, et quis agnoscet eum? Cognoscit autem illum is, cui Pater qui est in coelis revelavit, ut intelligat quoniam is qui non ex voluntate carnis neque ex voluntate viri natus est Filius Hominis, hic est Christus Filius Dei vivi. Quoniam enim nemo in totum ex filiis Adae, Deus appellatur secundum eum, aut Dominus nominatur, ex Scripturis demonstravimus. Quoniam autem est ipse proprie praeter omnes qui fuerunt tunc homines, Deus, et Dominus, et Rex aeternus, et Unigenitus, et Verbum incarnatum praedicatum et a prophetis omnibus, et Apostolis, et ab ipso Spiritu, adest videre omnibus qui vel modicum de veritate attigerint. Haec autem non testificarentur Scripturae de eo, si, similiter ut omnes, homo tantum fuisset. Sed quoniam praeclaram praeter omnes habuit in se eam quae est ab Altissimo Patre genituram, praeclara autem functus est et ea quae est ex Virgine generatione, utraque Scripturae divinae de eo testificantur: et quoniam homo indecorus et passibilis, et super pullum asinae sedens, aceto et felle potatur, et spernebatur in populo, et usque ad mortem descendit; et quoniam Dominus sanctus, et Mirabilis, Consiliarius, et Decorus specie, et Deus fortis, super nubes veniens universorum Judex, omnia de eo Scripturae prophetabant.

20.3

그분은 사람이셨으므로 시험받으셨고, 또 말씀이셨으므로 영광받으셨다. 말씀은 쉬셨다. 시험받고, 모욕당하며,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을 수 있도록 쉬셨다. 이기고 견디며, [...] 부활하고 올려지시는 일에서는 사람이 흡수되었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말씀이며, 인자이시다. 인류에게서 혈통을 받았고, 자신도 사람이었던 마리아에게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므로, 인자가 되셨다. 그러므로 주님 자신이 깊은 곳에, 위로 높은 곳에, 우리에게 표징을 주셨다. 사람이 청하지 않은 표징이었다. 동정녀가 아이를 배고, 동정녀인 채로 아들을 낳을 수 있으며, 또 이렇게 태어난 이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 되리라고 사람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분은 땅 아래의 곳들로 내려가, 잃어버린 양을 찾으실 분이셨다. 그 양은 그분 자신이 빚으신 것이었다. 그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다시 찾은 그 사람을 아버지께 드리고 맡기시며, 자신 안에서 사람의 부활의 첫 열매를 이루실 분이셨다. 머리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처럼, 나머지 몸, 곧 생명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몸도 불순종 때문에 내려진 정죄의 기간이 찼을 때, 부활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몸은 관절과 연결 부위를 통해 결합하고,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으로 튼튼해져, 각 지체가 몸 안에서 제게 알맞은 자리를 지닌다. 아버지 곁에 거처가 많은 것은, 몸에 지체가 많기 때문이다.

Sicut enim homo erat, ut tentaretur: sic et Verbum, ut glorificaretur: requiescente quidem Verbo, ut posset tentari, et inhonorari, et crucifigi, et mori; absorpto autem homine in eo quod vincit, et sustinet, ... et resurgit, et assumitur. Hic igitur Filius Dei Dominus noster, exsistens Verbum Patris, et Filius Hominis, quoniam ex Maria, quae ex hominibus habebat genus, quae et ipsa erat homo, habuit secundum hominem generationem, factus est Filius hominis. Propter hoc et ipse Dominus dedit nobis signum in profundum, in altitudinem sursum, quod non postulavit homo, quia nec speravit virginem praegnantem fieri, posse quae erat virgo et parere filium, et hunc partum Deum esse nobiscum, et descendere in ea quae sunt deorsum terrae, quaerentem ovem quae perierat, quod quidem erat proprium ipsius plasma, et ascendere in altitudinem, offerentem et commendantem Patri eum hominem qui fuerat inventus, primitias resurrectionis hominis in semetipso faciens: ut quemadmodum caput resurrexit a mortuis, sic et reliquum corpus omnis hominis qui invenitur in vita, impleto tempore condemnationis ejus, quae erat propter inobedientiam, resurgat, per compagines et conjunctiones coalescens et confirmatum augmento Dei, unoquoque membrorum habente propriam et aptam in corpore positionem. Multae enim mansiones apud Patrem, quoniam et multa membra in corpore.

21.1

사람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그럽게 참으셨다. 말씀을 통해 그에게 승리가 돌려질 것을 미리 보셨기 때문이다. 연약함 속에서 능력이 완성될 때,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지극히 큰 능력이 드러났다. 요나가 바다짐승에게 삼켜지도록 그분은 참고 허용하셨다. 삼켜져 완전히 멸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토해져 나온 뒤 하나님께 더욱 복종하고, 기대할 수 없던 구원을 베푸신 분께 더욱 영광을 돌리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또 니느웨 사람들을 확고한 회개로 이끌어, 그들을 죽음에서 풀어 주실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요나에게 일어난 표징에 두려워하게 되었다. 성경이 그들에 대해 말한 것과 같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의 악한 길과, 자기 손에 있던 불의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우리에게서 진노를 거두셔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이처럼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범법을 일으킨 큰 바다짐승에게 사람이 삼켜지도록 허용하며 참으셨다. 삼켜진 채로 완전히 멸망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길을 미리 마련하고 준비하신 것이다. 요나의 표징을 통해 말씀이 이루신 구원의 길이다. 요나와 같은 생각을 주님에 대해 품고, 이렇게 고백하며 말한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나는 주님의 종이며, 바다와 마른 땅을 만드신 하늘의 주 하나님을 섬깁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서 기대하지 못한 구원을 받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요나가 예언한 그 말을 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나는 괴로움 속에서 나의 주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저승의 배 속에 있는 내 말을 그분이 들어 주셨다.” 사람이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에게서 받은 그 구원에 대해 쉬지 않고 감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어떤 육신도 주님 앞에서 자랑하지 않고,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결코 품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썩지 않음을 본래 자기 것이라고 여기고, 진리를 붙들지 않으며, 타고난 본성으로 하나님과 같은 존재인 양 헛된 거만함을 뽐내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은 자기를 만드신 분께 더욱 감사하지 않는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품으신 사랑을 가리며, 자기 생각을 눈멀게 한다. 자신을 하나님과 견주며 동등하다고 판단하여, 하나님께 마땅한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Magnanimus igitur fuit Deus deficiente homine, eam quae per Verbum esset victoriam reddendam ei praevidens. Cum enim perficiebatur virtus in infirmitate, benignitatem Dei et magnificentissimam ostendebat virtutem. Sicut enim patienter sustinuit absorberi Jonam a ceto, non ut absorberetur et in totum periret, sed ut evomitus magis subjiceretur Deo, et plus glorificaret eum qui insperabilem salutem ei donasset, et firmam poenitentiam faceret Ninivitis, ut converterentur ad Dominum qui eos liberaret a morte, conterritos ab eo signo quod factum erat circa Jonam, quemadmodum Scriptura de his dicit: Et reversi sunt unusquisque a via sua mala, et injustitia, quae erat in manibus eorum, dicentes: Quis scit si poenitebit Deus, et avertat iram suam a nobis, et non peribimus? Sic et ab initio fuit patiens Deus hominem absorbi a magno ceto, qui fuit auctor praevaricationis, non ut absorptus in totum periret, sed praestruens et praeparans adinventionem salutis, quae facta est a Verbo per signum Jonae, his qui eandem cum Jona de Domino sententiam habuerunt, et confessi fuerunt, et dixerunt, Servus Domini ego sum, et Dominum Deum coeli ego colo, qui fecit mare et aridam: ut insperabilem homo a Deo percipiens salutem, resurgat a mortuis, et clarificet Deum, et eam quae a Jona prophetata est dicat vocem: Clamavi ad Dominum Deum meum in tribulatione mea, et exaudivit me de ventre inferni; et semper permaneat glorificans Deum, et sine intermissione gratias referens pro ea salute quam consecutus est ab eo: ut non glorietur in conspectu Domini omnis caro, nec unquam de Deo contrarium sensum accipiat homo, propriam naturaliter arbitrans eam quae circa se esset incorruptelam, et non tenens veritatem, inani supercilio jactaretur, quasi naturaliter similis esset Deo. Ingratum enim magis eum hoc ei qui eum fecerat perficiens, et dilectionem quam habebat Deus in hominem obfuscabat, et excaecabat sensum suum ad non sentiendum quod sit de Deo dignum, comparans et aequalem se judicans Deo.

21.2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참으신 뜻은 이러했다. 사람이 모든 일을 거치고, 행실을 분별하게 된 뒤,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이르러, 무엇에서 풀려났는지를 경험으로 배우고,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분에게서 썩지 않음의 선물을 받아,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더 많이 용서받은 이는 더 많이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 자기 자신을 알아, 죽을 존재이며 연약하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죽을 존재에게 죽지 않음을, 시간 안의 존재에게 영원을 주실 만큼, 하나님은 죽지 않으시고 능력이 크신 분이시다. 자기에게 드러난 하나님의 다른 모든 능력도 깨달아, 그 능력들로 가르침받으며,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인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사람의 영광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일들이다. 사람은 그분의 모든 지혜와 능력을 담는 그릇이다. 의사가 병든 이들에게서 진가를 드러내듯이, 하나님도 사람들 안에서 드러나신다. 그러므로 바울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모든 것을 불신앙에 가두셨습니다.” 영적인 아이온들에 대해 한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사람에 대해 한 말이다. 죽지 않음에서 쫓겨났다가, 그 뒤 자비를 얻고,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그분이 주시는 양자 됨을 받은 사람이다. 지어진 것들과 그것들을 지으신 분에 대해,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참된 견해를 간직하는 이, 곧 만물의 지극히 능하신 하나님, 모든 것에 존재를 주신 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그분의 사랑과 복종과 감사 안에 머무르며, 더 나아가 그분에게서 더 큰 영광을 받을 것이다. 자기를 위해 죽으신 분을 닮아 갈 때까지 받게 될 것이다. 그분 자신도 죄의 육신과 같은 모습이 되셨다. 죄를 정죄하시고, 정죄된 죄를 육신 밖으로 내쫓으시려는 것이었다. 또 사람을 자신과 닮은 모습으로 부르시며, 하나님을 본받는 이로 세우시고, 하나님을 보도록 아버지의 규범 아래 두시며,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 안에 거하셨고, 인자가 되셨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해지고,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하시는 데 익숙해지도록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 구원의 표징, 동정녀에게서 나신 임마누엘이 주님 자신이시다. 사람들이 스스로 구원받을 수 없었으므로, 그들을 구원하신 이는 주님 자신이었다. 그래서 바울도 사람의 연약함을 알리며 말한다. “내 육신에 선이 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 구원의 선이 우리에게서 오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또 말한다.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이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풀어 주겠습니까?” 그 뒤에 풀어 주시는 이를 제시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이사야도 이를 말한다. “늘어진 손들과 연약한 무릎들이여, 굳세어져라. 마음이 약한 이들아, 용기를 내어라. 굳세어지고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우리 하나님께서 심판으로 보응하셨고, 보응하실 것이다. 그분 자신이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라고 한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구원받게 되었다는 뜻이다.

Haec ergo fuit magnanimitas Dei, ut per omnia pertransiens homo, et morum agnitionem percipiens, dehinc veniens ad resurrectionem quae est a mortuis, et experimento discens unde liberatus est, semper gratus exsistat Domino, munus incorruptelae consecutus ab eo, ut plus diligeret eum, cui enim plus dimittitur plus diligit, cognoscat autem semetipsum, quoniam mortalis et infirmus est; intelligat autem et Deum, quoniam in tantum immortalis et potens est, uti et mortali immortalitatem, et temporali aeternitatem donet: intelligat autem et reliquas virtutes Dei omnes in semetipsum ostensas, per quas edoctus sentiat de Deo, quantus est Deus. Gloria enim hominis, Deus, operationes vero Dei; et omnis sapientiae ejus et virtutis receptaculum, homo. Quemadmodum medicus in his qui aegrotant, probatur; sic et Deus in hominibus manifestatur. Quapropter et Paulus ait: Conclusit autem Deus omnia in incredulitate, ut omnium misereatur; non de spiritalibus Aeonibus dicens hoc, sed de homine qui fuit inobediens Deo, et projectus de immortalitate, dehinc misericordiam consecutus est, per Filium Dei eam quae est per ipsum percipiens adoptionem. Hic enim tenens sine inflatione et jactantia veram gloriam de his quae facta sunt, et de eo qui fecit, qui est potentissimus omnium Deus, quique omnibus ut sint praestitit; et manens in dilectione ejus, et subjectione, et gratiarum actione, majorem ab eo gloriam percipiet provectus, accipiens dum consimilis fiat ejus qui pro eo mortuus est; quoniam et ipse in similitudine carnis peccati factus est, uti condemnaret peccatum, et jam quasi condemnatum projiceret illud extra carnem; provocaret autem in similitudinem suam hominem, imitatorem eum assignans Deo, et in paternam imponens regulam ad videndum Deum, et capere Patrem donans; Verbum Dei quod habitavit in homine, et Filius Hominis factus est, ut assuesceret hominem percipere Deum, et assuesceret Deum habitare in homine, secundum placitum Patris: propter hoc ergo signum salutis nostrae eum qui ex Virgine Emmanuel est, ipse Dominus, quoniam ipse Dominus erat qui salvabat eos, quia per semetipsos non habebant salvari: et propter hoc Paulus infirmitatem hominis annuntians, ait: Scio enim quoniam non habitat in carne mea bonum; significans, quoniam non a nobis, sed a Deo est bonum salutis nostrae. Et iterum: Miser ego homo, quis me liberabit de corpore mortis hujus? Deinde infert liberatorem; Gratia Jesu Christi Domini nostri. Hoc autem et Esaias: Confortamini, inquit, manus resolutae et genua debilia: adhortamini, pusillanimes sensu, confortamini, ne timeatis: ecce, Deus noster judicium retribuit, et retributurus est: ipse veniet, et salvabit nos. Hoc, quoniam non a nobis, sed a Dei adjumento habuimus salvari.

22장

또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그저 사람만은 아니시며, 육신 없는 분도 아니시라는 사실을, 예언자는 이렇게 선포했다. 육신이 없는 존재는 천사들이다. “장로도 천사도 아니라, 주님 자신이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다. 그들을 사랑하시며, 가엾이 여기실 것이므로, 친히 그들을 풀어 주실 것이다.” 구원을 베푸는 말씀이신 그분이 참되고 눈에 보이는 사람이 되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다시 말한다. “보라, 시온 성읍아, 너의 눈이 우리의 구원을 볼 것이다.” 우리를 위해 죽으신 분이 그저 사람만은 아니셨음을, 이사야[예레미야]는 말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님께서 매장의 땅에서 잠든 자신의 죽은 이들을 기억하셨다.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그들에게 내려가, 자신에게서 오는 구원을 기쁜 소식으로 전하셨다.” 예언자 아모스[미가]도 같은 말을 한다. “그분이 돌이키셔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실 것이다. 우리의 불의들을 풀어 없애고, 우리의 죄들을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실 것이다.” 또 그분이 오실 장소를 가리키며 말한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음성을 내셨다.” 유다의 유산에서 남서쪽에 있는 그 지역으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 오실 것이며, 그분은 하나님이시고, 베들레헴에서 나오셨다. 그곳에서 주님께서 태어나셨으며, 온 땅에 그분의 찬양을 보내실 것이다. 예언자 하박국이 말한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남서쪽에서 오시고, 거룩하신 분께서 에프렘 산에서 오실 것이다. 그분의 능력이 하늘을 덮었고, 그분의 찬양으로 땅이 가득하다. 그분 앞에 말씀이 먼저 나아갈 것이며, 그분의 발이 들판을 걸어갈 것이다.” 그분이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오심이 베들레헴에서, 유산의 남서쪽에 있는 에프렘 산으로부터 이루어지고, 그분이 사람이심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분의 발이 들판을 걸어갈 것이다”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사람에게 고유한 표지이다.

Rursus, quoniam neque homo tantum erit, qui salvabit nos, neque sine carne, sine carne enim angeli sunt, praedicavit enim, dicens: Neque senior, neque angelus, sed ipse Dominus salvabit eos, quoniam diligit eos, et parcet eis, ipse liberabit eos. Et quoniam hic ipse homo verus visibilis incipiet esse, quum sit Verbum salutare, rursus Esaias ait: Ecce, Sion civitas, salutare nostrum oculi tui videbunt. Et quoniam non solum homo erat, qui moriebatur pro nobis, Esaias [Hieremias] ait: Et commemoratus est Dominus sanctus Israel mortuorum suorum qui dormierant in terra sepultionis: et descendit ad eos evangelisare salutem quae est ab eo, ut salvaret eos. Hoc autem idem et Amos [Micheas] propheta ait: Ipse convertetur, et miserebitur nostri: dissolvet injustitias nostras, et projiciet in altitudinem maris peccata nostra. Et rursus significans locum adventus ejus, ait: Dominus ex Sion locutus est, et ex Hierusalem dedit vocem suam. Et quoniam ex ea parte, quae est secundum Africum haereditatis Judae, veniet Filius Dei, qui Deus est, et qui erat ex Bethleem, ubi natus est Dominus, in omnem terram emittet laudationem ejus, sicut ait Habacuc propheta: Deus ab Africo veniet, et Sanctus de monte Effrem. Cooperuit coelum virtus ejus, et laudatione ejus plena est terra. Ante faciem ejus praeibit Verbum, et progredientur in campis pedes ejus. Manifeste significans, quoniam Deus, et quoniam in Bethleem adventus ejus, et ex monte Effrem, qui est secundum Africum haereditatis, et quoniam homo. Progredientur enim, inquit, in campis pedes ejus: hoc autem signum proprium hominis.

23장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셨고, 주님 자신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며, 친히 동정녀의 표징을 주셨다. 성경을 감히 다음과 같이 번역하는 이들의 해석은 참되지 않다. “보라, 젊은 여자가 아이를 배고, 아들을 낳을 것이다.” 에베소의 테오도티온과 폰토스의 아퀼라가 그렇게 번역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이었다. 이들을 따른 에비온파는 그분이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이토록 큰 하나님의 경륜을 무너뜨리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예언자들의 증언을 무력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이 바빌론으로 옮겨지기 전에, 곧 메디아인들과 페르시아인들이 지배권을 얻기 전에, 이 예언이 주어졌다. 우리 주님이 오시기 훨씬 전에, 유대인들 자신이 이를 그리스어로 번역했다. 유대인들이 우리의 뜻에 맞추려고 이렇게 번역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남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가 장차 생겨날 것과, 성경에 있는 이 증언들을 사용할 것을 그들이 알았다면, 자기들의 성경을 불태우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모든 민족이 생명에 참여한다고 성경이 밝히며, 자기가 야곱의 집이자 이스라엘 백성이라고 자랑하는 이들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상속권을 잃었다고 보여 주기 때문이다.

Deus igitur homo factus est, et ipse Dominus salvavit nos, ipse dans Virginis signum. Non ergo vera est quorundam interpretatio, qui ita audent interpretari Scripturam: Ecce adolescentula in ventre habebit, et pariet filium; quemadmodum Theodotion Ephesius est interpretatus, et Aquila Ponticus, utrique Judaei proselyti; quos sectati Ebionei, ex Joseph eum generatum dicunt: tantam dispositionem Dei dissolventes, quantum ad ipsos est; frustrantes prophetarum testimonium, quod operatus est Deus. Prophetatum est quidem, priusquam in Babylonem fieret populi transmigratio, id est, antequam Medi et Persae acciperent principatum: interpretatum vero in Graeco ab ipsis Judaeis multum ante tempora adventus Domini nostri, ut nulla relinquatur suspicio, ne forte morem nobis gerentes Judaei, haec ita sint interpretati. Qui quidem si cognovissent nos futuros, et usuros his testimoniis quae sunt ex Scripturis, nunquam dubitassent ipsi suas comburere Scripturas, quae et reliquas omnes gentes manifestant participare vitae, et eos qui gloriantur domum se esse Jacob et populum Israel exhaereditatos ostendunt a gratia Dei.

24.1

로마인들이 자기 왕국을 차지하기 전, 아직 마케도니아인들이 아시아를 지배하던 때였다. 라고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기가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도서관을, 모든 사람의 가치 있는 저술들로 꾸미려 했다.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그들의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하여 받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그때도 아직 마케도니아인들에게 복종하고 있었으므로, 성경과 두 언어에 가장 정통한 이들, 일흔 장로를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보냈다. 그가 원한 일을 행하도록 보낸 것이다. 왕은 그들을 시험해 보려 했고, 그들이 서로 뜻을 맞추어, 성경에 있는 진리를 번역을 통해 감출까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을 서로 떼어 놓고, 모두 같은 성경을 번역하라고 명했다. 모든 책에 대해 그렇게 했다. 그들이 프톨레마이오스 앞에 함께 모여, 자기들의 번역을 서로 비교하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고, 사람들은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께 속한 글이라고 믿었다. 모두가 같은 내용을, 같은 말과 같은 이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성경이 번역되었음을, 그 자리에 있던 이방인들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이 일을 행하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백성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성경이 훼손되었고, 칠십 년 뒤, 유대인들이 자기 땅으로 내려온 다음, 페르시아 왕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시대에, 레위 지파의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하나님께서 영감을 주셨다. 이전 예언자들의 모든 말씀을 되살려 기억하고,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을 백성에게 회복시켜 주게 하신 것이다.

Prius enim quam Romani possiderent regnum suum, adhuc Macedonibus Asiam possidentibus, Ptolemaeus Lagi filius, cupiens eam bibliothecam, quae a se fabricata esset in Alexandria, omnium hominum dignis conscriptionibus ornare, petiit ab Hierosolymitis in Graecum sermonem interpretatas habere Scripturas eorum. Illi vero, obediebant enim tunc adhuc Macedonibus, eos quos habebant perfectiores Scripturarum intellectores, et utriusque loquelae, septuaginta seniores miserunt Ptolemaeo facturos hoc quod ipse voluisset. Ille autem experimentum eorum sumere volens, et metuens ne forte consentientes, eam veritatem quae esset in Scripturis, absconderent per interpretationem, separans eos ab invicem, jussit omnes eandem interpretari Scripturam: et hoc in omnibus libris fecit. Convenientibus autem ipsis in unum apud Ptolemaeum, et comparantibus suas interpretationes, Deus glorificatus est, et Scripturae vere divinae creditae sunt, omnibus eadem, et eisdem verbis, et eisdem nominibus, recitantibus ab initio usque ad finem; uti et praesentes gentes cognoscerent, quoniam per aspirationem Dei interpretatae sunt Scripturae. Et non esse mirabile Deum hoc in eis operatum, quando in ea captivitate populi quae facta est a Nabuchodonosor corruptis Scripturis, et post septuaginta annos Judaeis descendentibus in regionem suam, post deinde temporibus Artaxerxis Persarum regis, inspiravit Hesdrae, sacerdoti tribus Levi, praeteritorum prophetarum omnes rememorare sermones, et restituere populo eam legem quae data est per Moysem.

24.2

성경은 이처럼 큰 진실함과 하나님의 은혜로 번역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경을 통해 자기 아들을 향한 우리의 믿음을 마련하고 새롭게 하셨으며, 이집트에서 순수한 성경을 우리를 위해 보존하셨다. 가나안의 기근을 피해 온 야곱의 집도 그곳에서 자라났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오신 우리 주님도 그곳에서 보존되셨다. 이 성경 번역은 우리 주님이 내려오시기 전에 이루어졌고,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나기 전에 번역되었다. (우리 주님은 아우구스투스 통치 사십일 년 무렵에 태어나셨으며, 성경이 번역되던 때의 왕인 프톨레마이오스는 훨씬 이전 사람이었다.) 이제 와서 다르게 번역하려는 이들은 참으로 뻔뻔하고 대담한 자들임이 드러난다. 그 성경 자체를 통해 우리에게 논박받고, 하나님 아들의 오심을 믿어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Cum tanta igitur veritate et gratia Dei interpretatae sint Scripturae, ex quibus praeparavit et reformavit Deus fidem nostram quae in Filium ejus est, et servavit nobis simplices Scripturas in Aegypto, in qua adolevit et domus Jacob effugiens famem, quae fuit in Chanaan, in qua et Dominus noster servatus est, effugiens eam persecutionem quae erat ab Herode; et haec earum Scripturarum interpretatio, priusquam Dominus noster descenderet, facta sit, et, antequam Christiani ostenderentur, interpretata sit; (natus est enim Dominus noster circa primum et quadragesimum annum Augusti imperii, multo autem vetustior fuit Ptolemaeus, sub quo interpretatae sunt Scripturae) vere impudorati et audaces ostenduntur, qui nunc volunt aliter interpretationes facere, quando ex ipsis Scripturis arguantur a nobis, et in fidem adventus Filii Dei concludantur.

25.1

우리가 지닌 믿음은 확고하고, 꾸며 낸 것이 아니며, 홀로 참되다. 앞서 말한 방식으로 번역된 이 성경들에서 분명한 증거를 얻기 때문이다. 교회의 선포에도 덧붙여 왜곡한 것이 없다. 사도들은 이들 모두보다 앞선 이들이며, 앞서 말한 번역과 일치한다. 번역도 사도들의 전승과 일치한다. 베드로와 요한과 마태와 바울, 그 뒤의 나머지 사도들과 그들을 따르던 이들은, 장로들의 번역에 담긴 대로 모든 예언의 내용을 알렸다. 하나의 동일한 하나님의 영께서, 예언자들 안에서는 주님의 오심이 무엇이며 어떠할지를 선포하셨고, 장로들 안에서는 올바로 예언된 것들을 올바로 번역하셨다. 그 영께서 사도들 안에서도 양자 됨의 때가 가득 찼으며, 하늘나라가 가까워졌고, 동정녀에게서 나신 임마누엘을 믿는 사람들 안에 거하심을 알리셨다. 그들 자신이 증언한 대로이다. 요셉이 마리아와 함께하기 전에, 곧 그녀가 동정인 채로, 성령으로 아이를 배었음이 드러났다. 천사 가브리엘도 그녀에게 말했다. “성령이 네게 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네게서 태어날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다.” 천사는 꿈에 요셉에게도 말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다음 말씀이 이루어지려는 것이었다. 이사야 예언자가 한 말씀이다. ‘보라, 동정녀가 아이를 밸 것이다.’”

Firma est autem, et non ficta, et sola vera, quae secundum nos est fides, manifestam ostensionem habens ex his Scripturis, quae interpretatae sunt illo modo quo praediximus; et Ecclesiae annuntiatio sine interpolatione. Etenim Apostoli, cum sint his omnibus vetustiores, consonant praedictae interpretationi, et interpretatio consonat Apostolorum traditioni. Etenim Petrus, et Johannes, et Matthaeus, et Paulus, et reliqui deinceps, et horum assectatores, prophetica omnia ita annuntiaverunt, quemadmodum Seniorum interpretatio continet. Unus enim et idem Spiritus Dei, qui in prophetis quidem praeconavit quis et qualis esset adventus Domini, in Senioribus autem interpretatus est bene quae bene prophetata fuerant; ipse et in Apostolis annuntiavit, plenitudinem temporum adoptionis venisse, et proximasse regnum coelorum, et inhabitare intra homines credentes in eum qui ex Virgine natus est Emmanuel. Quemadmodum ipsi testificantur, quoniam priusquam convenisset Joseph cum Maria, manente igitur ea in virginitate, inventa est in utero habens de Spiritu sancto; et quoniam dixit ei Gabriel Angelus: Spiritus sanctus adveniet in te, et virtus Altissimi obumbrabit te: quapropter quod nascetur ex te sanctum, vocabitur Filius Dei; et quoniam Angelus in somnis dixit ad Joseph: Hoc autem factum est, ut adimpleretur quod dictum est ab Esaia Propheta: Ecce virgo in utero concipiet.

25.2

장로들은 이사야가 한 말을 이렇게 번역했다. “주님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말씀하셨다. ‘주 너의 하나님께 아래로 깊은 곳에서든, 위로 높은 곳에서든, 너를 위한 표징을 구하여라.’ 아하즈가 말했다. ‘구하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시험하지도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너희가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주님은 어떻게 괴로움을 주시는가? 그러므로 주님 자신이 너희에게 표징을 주실 것이다. 보라, 동정녀가 아이를 배고, 아들을 낳을 것이며, 너희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그는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며, 악한 것을 알거나 선택하기 전에, 좋은 것으로 바꿀 것이다. 아기가 선과 악을 알기 전에, 선을 택하도록 악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이 말씀들을 통해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나심과, 그 실체가 하나님이심을 세심하게 나타내셨다.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이 이를 뜻하기 때문이다.) “버터와 꿀을 먹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이심도 드러내셨다. 그분을 아기라고 부르며, “선과 악을 알기 전에”라고 한 것도 그러하다. 이것들은 모두 사람인 아기의 표지이다. “선을 택하도록 악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것은, 하나님께 고유한 일이다. 버터와 꿀을 먹는다는 말 때문에 그분을 그저 사람으로만 이해하거나, 반대로 임마누엘이라는 이름 때문에 그분을 육신 없는 하나님으로 여기는 일을 막으려는 것이다.

Seniores autem sic interpretati sunt dixisse Esaiam; Et adjecit Dominus loqui ad Achaz: Pete tibi signum a Domino Deo tuo in profundum deorsum, aut in altitudinem sursum. Et dixit Achaz: Non petam, et non tentabo Dominum. Et dixit: Non pusillum vobis agonem praebere hominibus, et quemadmodum Dominus praestat agonem? Propter hoc Dominus ipse dabit vobis signum. Ecce, Virgo in ventre accipiet, et pariet filium, et vocabitis nomen ejus Emmanuel. Butyrum et mel manducabit: priusquam cognoscat aut eligat mala, commutabit bonum: quoniam priusquam cognoscat infans bonum vel malum, non consentiet nequitiae, uti eligat bonum. Diligenter igitur significavit Spiritus sanctus per ea quae dicta sunt generationem ejus quae est ex Virgine, et substantiam, quoniam Deus: (Emmanuel enim nomen hoc significat), et manifestat, quoniam homo, in eo quod dicit: Butyrum et mel manducabit; et in eo quod infantem nominat eum, et, priusquam cognoscat bonum et malum: haec enim omnia signa sunt hominis infantis. Quod autem non consentiet nequitiae, ut eligat bonum, proprium hoc est Dei, uti non per hoc quod manducabit butyrum et mel nude solummodo eum hominem intelligeremus, neque rursus per nomen Emmanuel, sine carne eum Deum suspicaremur.

26.1

“들어라, 다윗의 집아”라고 말한 것은 다음 사실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배의 열매에서 영원한 왕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셨다. 다윗의 혈통인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분이 바로 그 왕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배의 열매에서 왕이 나리라고 약속하셨다. 이는 아이를 밴 동정녀에게 고유한 표현이었다. 그의 허리의 열매나, 그의 콩팥의 열매라고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게 하는 남자와, 남자에게서 아이를 갖는 여자에게 고유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 약속에서 남자의 생식기를 제외했다.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태어나실 분이 남자의 뜻에서 비롯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배의 열매라는 말을 확고히 정하여, 동정녀에게서 나실 분의 탄생을 선포했다. 성령으로 충만한 엘리사벳도 증언하며, 마리아에게 말했다. “당신은 여자들 가운데 복되며, 당신 배의 열매도 복됩니다.” 들으려는 이들에게 성령이 가리키신 것은, 그의 배의 열매에서 왕을 일으키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동정녀의, 곧 마리아의 출산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사야의 말씀을 바꾸어, “보라, 젊은 여자가 아이를 밸 것이다”라고 하고, 그분을 요셉의 아들로 여기는 자들은, 다윗에게 주어진 그 약속도 바꾸어 보라.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배의 열매에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뿔을 일으키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감히 이것까지 바꾸었을 것이다.

Et in eo quod dicit, Audite domus David, significantis erat, quoniam quem promisit Deus David, de fructu ventris ejus aeternum suscitaturum se Regem, hic est qui ex Virgine, quae fuit de genere David, generatus est. Propter hoc enim et de fructu ventris ejus Regem promisit, quod erat proprium virginis praegnantis; et non de fructu lumborum ejus, nec de fructu renum ejus, quod est proprium viri generantis, et mulieris ex viro conceptionem facientis. Circumscripsit igitur genitalia viri in promissione Scriptura: imo vero nec commemoratur, quoniam non ex voluntate viri erat, qui nascebatur. Statuit autem et confirmavit fructum ventris, ut generationem ejus qui erat futurus ex virgine, pronuntiaret, quemadmodum Elizabeth impleta Spiritu sancto testificata est, dicens ad Mariam: Benedicta tu inter mulieres, et benedictus fructus ventris tui; significante Spiritu sancto audire volentibus, repromissionem quam repromisit Deus, de fructu ventris ejus suscitare Regem, impletam esse in Virginis, hoc est in Mariae, partu. Qui igitur transmutant id quod apud Esaiam, Ecce, adolescentula in ventre concipiet, et Joseph filium eum volunt esse, illud transmutent quod est repromissionis, quod apud David positum est, ubi promisit illi Deus, de fructu ventris ejus suscitare cornu Christi Regis. Sed non intellexerunt: caeterum etiam hoc quoque ausi fuissent demutare.

26.2

이사야가 “아래로 깊은 곳에서든, 위로 높은 곳에서든”이라고 말한 것은, 내려오신 분이 바로 올라가신 분임을 가리킨다. “주님 자신이 표징을 주실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그분의 탄생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음을 드러낸다. 하나님, 곧 만물의 주님이신 하나님 자신이 다윗의 집에 표징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달리 일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젊은 여자가 남자에게서 아이를 배어 낳는 일, 출산하는 모든 여자에게 일어나는 일에, 무슨 큰일이나 표징이 있겠는가? 사람들에게 예상하지 못한 구원이 일어나려 했으므로, 하나님의 도움으로, 동정녀에게서의 예상하지 못한 출산도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이 표징을 주셨고, 사람이 그것을 이루어 낸 것은 아니었다.

Quod autem dixerit Esaias, In profundum deorsum, vel in altitudinem sursum, significantis fuit, quoniam qui descendebat ipse erat et qui ascendebat. In eo autem quod dixerit: Ipse Dominus dabit signum, id quod erat inopinatum generationis ejus significavit, quod nec factum esset aliter, nisi Deus Dominus omnium Deus ipse dedisset signum in domo David. Quid enim magnum, aut quod signum fieret in eo quod adolescentula concipiens ex viro peperisset, quod evenit omnibus quae pariunt mulieribus? Sed quoniam inopinata salus hominibus inciperet fieri, Deo adjuvante, inopinatus et partus Virginis fiebat, Deo dante signum hoc, sed non homine operante illud.

27장

그러므로 다니엘도 그분의 오심을 미리 보았다. 손을 대지 않고 잘라 낸 돌이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이었다. 손을 대지 않았다는 말은 이런 뜻이었다. 그분의 오심은 사람의 손이 일하여, 곧 돌을 잘라 내는 일을 하는 남자들이 일하여, 이 세상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곧 요셉이 그분에게 관여하지 않고, 마리아만 그 경륜에 협력했다는 것이다. 이 돌은 땅에서 나왔으며, 하나님의 능력과 솜씨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이사야도 말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시온의 기초에 귀하고, 선택되고, 으뜸가고, 존귀한 모퉁잇돌을 놓는다.’” 그분이 사람으로 오심이 남자의 뜻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되었음을 우리가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Propter hoc autem et Daniel praevidens ejus adventum, lapidem sine manibus abscissum advenisse in hunc mundum. Hoc est enim quod sine manibus significabat, quod non operantibus humanis manibus, hoc est, virorum illorum qui solent lapides caedere, in hunc mundum ejus adventus erat, id est, non operante in eum Joseph, sed sola Maria cooperante dispositioni. Hic enim lapis a terra, et ex virtute et arte constat Dei. Propter hoc autem et Esaias ait: Sic dicit Dominus: Ecce, ego mitto in fundamenta Sion lapidem pretiosum, electum, summum, angularem, honorificum: uti non ex voluntate viri, sed ex voluntate Dei, adventum ejus qui secundum hominem est intelligamus.

28장

그래서 모세도 모형을 보여 주며, 지팡이를 땅에 던졌다. 그 지팡이가 육신이 되어, 하나님의 경륜에 맞서 일어난 이집트인들의 모든 반역을 꾸짖고 삼켜 버리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집트인들 자신도 백성을 위해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가락임을 증언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셉의 아들이었다면, 같은 씨에서 태어나, 그들의 후손인 그분이, 어떻게 솔로몬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고, 요나보다 더 큰 것을 지니며, 다윗보다 큰 분이실 수 있었겠는가? 자기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았다고, 어째서 베드로를 복되다고 하셨겠는가?

Propter hoc autem et Moyses ostendens typum, projecit virgam in terram, ut ea incarnata, omnem Aegyptiorum praevaricationem, quae insurgebat adversus Dei dispositionem, argueret et absorberet: et ut ipsi Aegyptii testificarentur, quoniam digitus est Dei qui salutem operatur populo, et non Joseph filius. Si enim Joseph filius esset, quemadmodum plus poterat quam Solomon, aut plus quam Jonas habere, aut plus esse David, cum esset ex eadem seminatione generatus, et proles exsistens ipsorum? Ut quid autem et beatum dicebat Petrum, quod eum cognosceret esse Filium Dei vivi?

29장

그뿐만 아니라, 요셉의 아들이었다면, 왕이 될 수도 없었고, 예레미야에 따르면 상속자도 될 수 없었다. 마태도 그의 계보를 설명하듯이, 요셉은 여호야김과 여고냐의 후손으로 나타난다. 여고냐와 그에게서 난 모든 이는 왕국에서 쫓겨났다.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말한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가 내 오른손의 인장이 되었다 해도, 나는 그를 거기서 떼어 내고, 네 목숨을 노리는 이들의 손에 그를 넘기겠다.” 또 말한다. “여고냐는 쓸모없는 그릇처럼 업신여김을 받았다. 알지 못하던 땅으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땅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이 사람을 내쳐진 사람으로 기록하여라. 그의 후손 가운데 다윗의 왕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이가 번성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 여호야김에 대해서도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그의 아버지인 유다 왕 여호야김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에게서 나서 다윗의 왕좌에 앉을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시체는 내던져져, 낮의 더위와 밤의 서리를 맞을 것이다. 나는 그와 그의 아들들을 살펴, 그들에게 말한 모든 재앙을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들, 유다 땅 위에 내리겠다.” 그러므로 그분이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며, 그분에게 희망을 둔다고 말하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왕국에서 쫓겨나게 만든다. 여고냐와 그의 후손에게 내려진 저주와 질책 아래 떨어지는 것이다. 영께서 악한 교사들이 할 말을 미리 아셨으므로, 여고냐에 대해 이 말씀들이 주어졌다. 그의 씨에서, 곧 요셉에게서 그분이 태어나시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다윗의 배에서 영원한 왕이 일으켜짐을 그들이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왕은 모든 것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시는 분이다.

Super haec autem nec rex esse posset, si quidem Joseph filius fuisset; nec haeres, secundum Hieremiam. Joseph enim Joacim et Jechoniae filius ostenditur, quemadmodum et Matthaeus generationem ejus exponit. Jechonias autem, et qui ab eo omnes, abdicati sunt a regno, Hieremia dicente sic: Vivo ego, dicit Dominus, si factus fuerit Jechonias filius Joacim, rex Juda, signaculum in manu dextera mea, inde abstraham eum, et tradam eum in manu quaerentium animam tuam. Et iterum: Inhonoratus est Jechonias, quemadmodum vas quod non est opus, quoniam projectus est in terram, quam non sciebat. Terra audi sermonem Domini: scribe virum hunc abdicatum hominem, quoniam non augebit de semine ejus sedens super thronum David, princeps in Juda. Et iterum Deus ait super Joacim patrem ejus: Propter hoc sic dicit Dominus super Joacim patrem ejus, regem Judae: Non enim erit ex eo sedens super thronum David; et mortificatum ejus erit projectum in aestu diei, et in glacie noctis, et respiciam super eum, et super filios ejus, et inferam super eos, et super inhabitantes Hierusalem, super terram Juda, omnia mala, quae locutus sum super eos. Qui ergo eum dicunt ex Joseph generatum, et in eo habere spem, abdicatos se faciunt a regno, sub maledictione et increpatione decidentes, quae erga Jechoniam et in semen ejus. Propter hoc enim dicta sunt haec de Jechonia, Spiritu praesciente ea quae a malis doctoribus dicuntur; uti discant, quoniam ex semine ejus, id est ex Joseph, non erit natus, sed secundum repromissionem Dei de ventre David suscitatur Rex aeternus, qui recapitulatur omnia in se.

30장

그분은 처음 빚으신 것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셨다.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해 죄가 들어왔고, 죄를 통해 죽음이 지배하게 된 것처럼,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들어온 의는, 오래전 죽었던 사람들에게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한다. 처음 빚어진 그 아담이 가공되지 않은 땅, 아직 처녀인 땅에서 그 실체를 얻었던 것과 같다. (아직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사람이 땅을 일구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손으로,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졌다.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땅에서 흙을 취하여, 사람을 빚으셨다. 이처럼 아담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시는 분, 말씀 자신은, 아직 동정녀였던 마리아에게서, 아담을 하나로 모으는 탄생을 마땅히 받으셨다.

Et antiquam plasmationem in se recapitulatus est. Quia quemadmodum per inobedientiam unius hominis introitum peccatum habuit, et per peccatum mors obtinuit; sic et per obedientiam unius hominis justitia introducta vitam fructificet his, qui olim mortui erant, hominibus. Et quemadmodum protoplastus ille Adam de rudi terra, et de adhuc virgine, (nondum enim pluerat Deus, et homo non erat operatus terram) habuit substantiam, et plasmatus est manu Dei, id est, Verbo Dei, omnia enim per ipsum facta sunt, et sumsit Dominus limum a terra, et plasmavit hominem: ita recapitulans in se Adam ipse Verbum exsistens, ex Maria quae adhuc erat Virgo, recte accipiebat generationem Adae recapitulationis.

31.1

첫 아담에게 사람인 아버지가 있었고, 남자의 씨에서 태어났다면, 둘째 아담도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마땅히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땅에서 취해졌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빚어졌다면, 아담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시는 바로 그 말씀도 그와 닮은 탄생을 지니셔야 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다시 흙을 취하지 않고, 마리아에게서 빚어지게 하셨는가? 다른 피조물이 생겨나거나, 구원받을 피조물이 달라지는 일이 없이, 그 닮음을 지킨 채, 동일한 피조물을 하나로 모으려 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동정녀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셨다고 말하는 이들은 잘못 생각한다. 육신의 유산을 내버리려 하면서, 그 닮음도 내버리기 때문이다. 앞의 사람이 땅에서, 하나님의 손과 솜씨로 형체와 실체를 얻었는데, 뒤의 분은 하나님의 손과 솜씨로 빚어지지 않았다면, 그분의 형상과 닮음에 따라 만들어진 사람의 닮음은 더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 솜씨도 일관성 없는 것으로 보이며, 자기의 지혜를 드러낼 대상도 없게 된다. 이는 곧 이런 말이다.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인 것처럼 겉으로 나타났다는 말,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취하지 않고도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에게서 육신의 실체를 받지 않으셨다면, 사람도 인자도 되지 않으신 것이다. 우리가 지닌 존재가 되지 않으셨다면, 수난을 겪고 견디신 일도 대단한 일이 아니게 된다. 우리가 땅에서 받은 몸이며, 하나님에게서 영을 받는 혼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자신이 빚으신 것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런 존재가 되셨다. 그래서 자신을 인자로 고백하시고, 땅을 상속받을 것이므로 온유한 이들을 복되다고 하신다. 사도 바울도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분명히 말한다. “여자에게서 나신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또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말한다. “그분의 아들에 관한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후손에게서 나셨고,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로, 거룩하게 하는 영에 따라,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해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입니다.”

Si igitur primus Adam habuit patrem hominem, et ex semine viri natus est; merito dicerent, et secundum Adam ex Joseph esse generatum. Si autem ille de terra quidem sumtus est, et Verbo Dei plasmatus est, oportebat id ipsum Verbum recapitulationem Adae in semetipsum faciens, ejusdem generationis habere similitudinem. Quare igitur non iterum sumsit limum Deus, sed ex Maria operatus est plasmationem fieri? Ut non alia plasmatio fieret, neque alia esset plasmatio quae salvaretur, sed eadem ipsa recapitularetur, servata similitudine. Errant igitur qui dicunt, eum nihil ex Virgine accepisse, ut abjiciant carnis haereditatem, abjiciant autem et similitudinem. Si enim ille quidem de terra, et manu et artificio Dei, plasmationem et substantiam habuit, hic autem non manu et artificio Dei; jam non servavit similitudinem hominis, qui factus est secundum imaginem ipsius et similitudinem, et inconstans artificium videbitur, non habens circa quod ostendat sapientiam suam. Hoc autem dicere est, et putative apparuisse eum, et tanquam hominem, cum non esset homo: et factum eum hominem, nihil assumentem de homine. Si enim non accepit ab homine substantiam carnis, neque homo factus est, neque Filius Hominis: et si hoc non factus est quod nos eramus, non magnum faciebat quod passus est et sustinuit. Nos autem quoniam corpus sumus de terra acceptum, et anima accipiens a Deo spiritum, omnis quicunque confitebitur. Hoc itaque factum est Verbum Dei, suum plasma in semetipsum recapitulans: et propter hoc Filium Hominis se confitetur, et beatificat mites, quoniam ipsi haereditabunt terram. Et Apostolus autem Paulus in epistola quae est ad Galatas, manifeste ait: Misit Deus Filium suum, factum de muliere. Et rursus in ea quae est ad Romanos: De Filio autem, inquit, ejus, qui factus est ex semine David secundum carnem, qui praedestinatus est Filius Dei in virtute, secundum Spiritum sanctificationis, ex resurrectione mortuorum, Jesu Christi Domini nostri.

31.2

그렇다면 그분이 마리아 안으로 내려오신 일도 쓸모없어진다. 그녀에게서 아무것도 받으려 하지 않으셨다면, 왜 그녀 안으로 내려오셨겠는가? 마리아에게서 아무것도 받지 않으셨다면, 땅에서 나온 음식들을 드시지 않았을 것이다. 땅에서 취한 몸은 그 음식들로 양분을 얻기 때문이다. 모세와 엘리야처럼,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자기 음식을 구하여 몸이 굶주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길을 가시다가 지쳐 앉으셨다”라고, 그분의 제자 요한이 그분에 대해 기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내 상처의 고통을 더하였다”라고, 다윗이 그분에 대해 미리 외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사로를 두고 눈물을 흘리지도, 핏덩이를 땀으로 흘리지도, “내 혼이 슬프다”라고 말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옆구리가 찔렸을 때 피와 물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땅에서 취한 육신의 표지가 이 모든 것이다. 자신이 빚으신 것을 구원하시며, 그분은 이 육신을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셨다.

Caeterum supervacua est in Mariam descensio ejus. Quid enim in eam descendebat, si nihil incipiebat sumere ab ea? Aut si nihil sumsisset ex Maria, nunquam eas quae a terra erant percepisset escas, per quas id quod a terra sumtum est nutritur corpus: nec quadriginta diebus, quemadmodum Moyses et Helias, jejunans esurisset corpus ejus, suam quaerens escam: sed nec Johannes discipulus ejus de eo scribens dixisset, Jesus autem fatigatus in itinere sedebat: nec David praeclamasset in eum, Et super dolorem vulnerum meorum apposuerunt: nec lacrymasset super Lazarum: nec sudasset globos sanguinis: nec dixisset, quod Tristis est anima mea: nec percusso latere exisset sanguis et aqua. Haec enim omnia signa carnis, quae a terra sumta est, quam in se recapitulatus est, suum plasma salvans.

32.1

그래서 누가는 우리 주님의 탄생에서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보가 일흔두 세대로 이루어졌다고 밝히며, 끝을 시작과 연결한다. 아담 이후 흩어진 모든 민족, 모든 언어와 인류의 세대를 아담 자신과 함께 그분이 자신 안에 하나로 모으셨음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도 아담을 장차 오실 분의 모형이라고 불렀다. 만물의 장인이신 말씀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중심으로 장차 이루어질 인류의 경륜을 자신 안에 미리 형성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혼적인 첫 사람을 영적인 이에게서 구원받도록 미리 정하셨다. 구원하시는 분이 먼저 계셨으므로, 구원받을 존재도 생겨나야 했다. 구원하시는 분이 헛되이 계시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동정녀 마리아도 순종하는 이로 나타나, 말한다. “보십시오, 주님, 당신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와는 불순종했다. 아직 동정녀였을 때, 순종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와는 아담이라는 남편이 있었어도, 아직 동정녀였다. (그들은 낙원에서 둘 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조금 전에 만들어져, 아이를 낳는 일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성장하고, 그 뒤에 번성해야 했다.) 하와는 불순종하여, 자신과 온 인류에게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 마리아도 남편이 정해져 있었지만, 동정녀였으며, 순종하여, 자신과 온 인류에게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 그래서 율법은 남자와 약혼한 여자를, 아직 동정녀여도, 그와 약혼한 남자의 아내라고 부른다. 마리아에게서 하와로 거슬러 이어지는 관계를 가리키는 것이다. 묶인 연결 부위들을 거꾸로 돌리지 않고는, 묶인 것을 달리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첫 매듭들이 둘째 매듭들에 의해 풀리고, 둘째 매듭들이 다시 첫 매듭들을 풀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첫 매듭이 둘째 결박에 의해 풀리며, 둘째 결박이 맨 먼저 풀리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첫째인 이들이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인 이들이 첫째가 될 것이라고 하셨다. 예언자도 같은 뜻으로 말한다. “조상들 대신 네게 아들들이 태어났다.” 주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맏이로 태어나, 옛 조상들을 자기 품에 받아들이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다. 아담이 죽는 이들의 시작이 되었기에, 그분 자신은 살아 있는 이들의 시작이 되셨다. 그래서 누가도 주님에게서 계보를 시작하여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들이 주님을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들을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셨음을 가리킨 것이다. 이처럼 하와의 불순종의 매듭도 마리아의 순종을 통해 풀렸다. 동정녀 하와가 믿지 않음으로 묶어 놓은 것을, 동정녀 마리아가 믿음으로 풀었다.

Propter hoc Lucas genealogiam, quae est a generatione Domini nostri usque ad Adam, septuaginta duas generationes habere ostendit, finem conjungens initio, et significans quoniam ipse est qui omnes gentes exinde ab Adam dispersas, et universas linguas, et generationem hominum cum ipso Adam in semetipso recapitulatus est. Unde et a Paulo typus futuri dictus est ipse Adam: quoniam futuram circa Filium Dei humani generis dispositionem in semetipsum fabricator omnium Verbum praeformaverat, praedestinante Deo primum animalem hominem, videlicet ut a spiritali salvaretur. Cum enim praeexisteret salvans, oportebat et quod salvaretur fieri, uti non vacuum sit salvans. Consequenter autem et Maria virgo obediens invenitur, dicens: Ecce ancilla tua Domine, fiat mihi secundum verbum tuum. Eva vero inobediens: non obaudivit enim, adhuc cum esset virgo. Quemadmodum illa virum quidem habens Adam, virgo tamen adhuc exsistens (erant enim utrique nudi in Paradiso, et non confundebantur, quoniam paulo ante facti, non intellectum habebant filiorum generationis; oportebat enim illos primo adolescere, dehinc sic multiplicari) inobediens facta, et sibi, et universo generi humano causa facta est mortis: sic et Maria habens praedestinatum virum, et tamen virgo, obediens, et sibi et universo generi humano causa facta est salutis. Et propter hoc Lex eam quae desponsata erat viro, licet virgo sit adhuc, uxorem ejus qui desponsaverat vocat, eam quae est a Maria in Evam recirculationem significans: quia non aliter quod colligatum est solveretur, nisi ipsae compagines alligationis reflectantur retrorsus; ut primae conjunctiones solvantur per secundas, secundae rursus liberent primas. Et evenit primam quidem compaginem a secunda colligatione solvere, secundam vero colligationem primae solutionis habere locum. Et propter hoc Dominus dicebat primos quidem novissimos futuros et novissimos primos. Et propheta autem hoc idem significat, dicens: Pro patribus nati sunt tibi filii. Primogenitus enim mortuorum natus Dominus, et in sinum suum recipiens pristinos patres, regeneravit eos in vitam Dei, ipse initium viventium factus, quoniam Adam initium morientium factus est. Propter hoc et Lucas initium generationis a Domino inchoans in Adam retulit, significans quoniam non illi hunc, sed hic illos in Evangelium vitae regeneravit. Sic autem et Evae inobedientiae nodus solutionem accepit per obedientiam Mariae. Quod enim alligavit virgo Eva per incredulitatem, hoc virgo Maria solvit per fidem.

32.2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에게 오시고, 그 큰 경륜을 하나로 모으시며, 자신이 빚으신 것을 찾으실 때, 자신의 형상과 닮음에 따라 만들어진 바로 그 사람을 구원하셔야 했다. 곧 아담이었다. 불순종 때문에 내려진 그의 정죄 기간을 채우며 구원하셔야 했다. 그 기간은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었다. 사람에 관한 구원의 모든 경륜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패배하지 않고, 그분의 솜씨가 무력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살도록 만드신 사람이, 자기를 그릇되게 이끈 뱀에게 해를 입어 생명을 잃고, 더는 생명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죽음에 완전히 내던져졌다면, 하나님께서 패배하신 셈이며, 뱀의 악이 하나님의 뜻을 이긴 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패배하지 않으시고 너그러이 참으신다. 앞서 말했듯이, 사람을 바로잡고, 모든 것을 시험하기 위해 오래 참으심을 드러내셨다. 둘째 사람을 통해 강한 자를 묶고, 그의 살림을 빼앗으셨으며, 죽임당한 사람을 살리셔서 죽음을 무력하게 하셨다. 아담은 그자가 차지한 첫 살림이 되었고, 그자는 아담을 자기 권세 아래 붙들고 있었다. 부당하게 범법을 끌어들여, 죽지 않음을 구실로 그에게 죽음을 가져온 것이다. 그들이 신들처럼 되리라고 약속했지만, 그것은 그자에게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으며, 그들에게 죽음을 초래했다. 사람을 사로잡았던 자가 하나님께 정당하게 다시 사로잡혔고, 사로잡혔던 사람은 정죄의 결박에서 풀려났다.

Necesse ergo fuit, Dominum ad perditam ovem venientem, et tantae dispositionis recapitulationem facientem, et suum plasma requirentem, illum ipsum hominem salvare, qui factus fuerat secundum imaginem et similitudinem ejus, id est, Adam adimplentem tempora ejus condemnationis, quae facta fuerat propter inobedientiam, quae Pater posuit in sua potestate: quoniam et omnis dispositio salutis, quae circa hominem fuit, secundum placitum fiebat Patris, uti non vinceretur Deus, neque infirmaretur ars ejus. Si enim qui factus fuerat a Deo homo ut viveret, hic amittens vitam laesus a serpente qui depravaverat eum, jam non reverteretur ad vitam, sed in totum projectus esset morti, victus esset Deus, et superasset serpentis nequitia voluntatem Dei. Sed quoniam Deus invictus et magnanimis est, magnanimem quidem se exhibuit ad correptionem hominis et probationem omnium, quemadmodum praediximus; per secundum autem hominem alligavit fortem, et diripuit ejus vasa, et evacuavit mortem vivificans eum hominem qui fuerat mortificatus. Primum enim possessionis ejus vas Adam factus est, quem et tenebat sub sua potestate, hoc est, praevaricationem inique inferens ei, et per occasionem immortalitatis mortificationem faciens in eum. Etenim promittens futuros eos tanquam deos, quod ei non est omnino possibile, mortem fecit in eis: unde et juste a Deo recaptivatus, qui hominem captivum duxerat; solutus est autem condemnationis vinculis, qui captivus ductus fuerat homo.

33.1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 사람은 아담, 처음 빚어진 그 사람이다. 성경은 주님께서 그에 대해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우리의 형상과 닮음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우리는 모두 그에게서 나왔고, 그에게서 나왔으므로, 그의 이름도 물려받았다. 사람이 구원받는다면, 먼저 사람으로 빚어진 이도 구원받아야 한다. 원수에게 심하게 해를 입고, 처음 포로가 된 그 사람을, 원수를 이긴 분이 구해 내지 않고, 같은 포로 상태에서 낳은 그의 아들들만 구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 처음 빼앗은 전리품이 그 원수에게 남아 있다면, 원수는 아직 패배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가령 적들이 어떤 이들을 정복하여, 결박한 포로로 끌고 가고, 오랫동안 노예로 붙들어 두어, 그들이 거기서 자녀를 낳았다고 하자. 누군가 그 노예들을 불쌍히 여겨, 바로 그 적들을 정복했더라도, 붙잡혀 간 이들의 아들들만 그 아버지들을 노예로 삼았던 자들의 권세에서 풀어 주고, 포로 생활을 겪은 당사자들은 적들에게 예속된 채로 남긴다면, 그 일은 정당하지 않다. 바로 그들을 위해 원한을 갚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들을 구제하려는 일로 자녀들은 자유를 얻었는데, 정작 포로 생활을 겪은 아버지들 자신은 풀어 주지 않는다면 그렇다. 사람을 도우시고, 자신의 자유로 회복시키신 하나님은 연약하지도 불의하지도 않으시다.

Hic est autem Adam, si oportet verum dicere, primiformis ille homo, de quo Scriptura ait dixisse Dominum: Faciamus hominem ad imaginem et similitudinem nostram; nos autem omnes ex ipso: et quoniam sumus ex ipso, propterea quoque ipsius haereditavimus appellationem. Cum autem salvetur homo, oportet salvari eum qui prior formatus est homo. Quoniam nimis irrationabile est, illum quidem, qui vehementer ab inimico laesus est, et prior captivitatem passus est, dicere non eripi ab eo qui vicerit inimicum, ereptos vero filios ejus, quos in eadem captivitate generavit. Nec victus quidem adhuc parebit inimicus, ipsis veteribus spoliis manentibus apud eum. Quemadmodum si hostes expugnaverint quosdam, et vinctos duxerint captivos, et multo tempore in servitute possederint eos, ita ut generent apud eos; et aliquis dolens pro his qui servi facti sunt, eosdem hostes expugnet: non tamen juste faciet, si filios quidem eorum qui captivi ducti sunt, liberet de potestate eorum qui in servitutem deduxerant patres eorum, ipsos vero qui captivitatem sustinuerunt subjectos relinquat inimicis, propter quos et ultionem fecit; consecutis libertatem filiis ex causa paternae vindicationis, sed non relictis ipsis patribus, qui ipsam captivitatem sustinuerunt. Neque enim infirmus est Deus neque injustus, qui opitulatus est homini et in suam libertatem restauravit eum.

33.2

그래서 아담이 처음 범법했을 때에도, 성경이 전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담 자신을 저주하지 않고, 그가 행한 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셨다. 옛사람 가운데 어떤 이가 말한 것과 같다. “저주가 사람 안에 계속 머물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저주를 땅으로 옮기셨다.” 사람은 범법의 선고로, 괴로움과 땅에서의 수고, 얼굴에 땀을 흘리며 빵을 먹는 일과, 자기가 취해진 땅으로 돌아가는 일을 받았다. 여자도 마찬가지로 괴로움과 수고와 탄식, 출산의 고통과 종속을 받았다. 곧 자기 남편을 섬기는 일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저주받아 완전히 멸망하지도 않고, 질책 없이 지내면서 하나님을 업신여기지도 않도록 하신 것이다. 그들을 속인 뱀에게는 모든 저주가 흘러갔다.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일을 했으므로, 모든 가축과 땅의 모든 짐승 가운데 너는 저주받았다.’” 주님도 복음에서 같은 뜻으로, 왼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신다. “저주받은 자들아, 내 아버지께서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불로 떠나가라.” 영원한 불이 본래 사람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속이고, 걸려 넘어지게 한 자, 내가 말하는 배교의 우두머리, 이탈의 우두머리와, 그와 함께 배교한 천사들을 위해 준비되었음을 가리키신 것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회개하지도 돌아서지도 않고, 악한 일을 계속하는 이들도 그 불을 정당하게 받게 될 것이다.

Propter hoc et in initio transgressionis Adae, sicut enarrat Scriptura, non ipsum maledixit Adam, sed terram in operibus ejus, quemadmodum ex veteribus quidam ait: Quoniam quidem transtulit Deus maledictum in terram, ut non perseveraret in homine. Condemnationem autem transgressionis accepit homo taedia et terrenum laborem, et manducare panem in sudore vultus sui, et converti in terram, ex qua assumtus est; similiter autem et mulier taedia, et labores, et gemitus, et tristitias partus, et servitium, id est, ut serviret viro suo: ut neque maledicti a Deo in totum perirent, neque sine increpatione perseverantes Deum contemnerent. Omnis autem maledictio decurrit in serpentem, qui seduxerat eos. Et dixit, inquit, Deus serpenti: Quoniam fecisti hoc, maledictus tu ab omnibus pecoribus, et ab omnibus bestiis terrae. Hoc idem autem et Dominus in Evangelio, his qui a sinistris inveniuntur, ait: Abite maledicti in ignem aeternum, quem praeparavit Pater meus diabolo et angelis ejus; significans quoniam non homini principaliter praeparatus est aeternus ignis, sed ei qui seduxit et offendere fecit hominem, et, inquam, qui princeps apostasiae est, principi abscessionis, et his angelis qui apostatae facti sunt cum eo: quem quidem juste percipient etiam hi qui similiter ut illi sine poenitentia et sine regressu in malitiae perseverant operibus.

34장

카인도 그러했다. 형제와의 나눔을 올바로 하지 않았으므로, 잠잠하라는 하나님의 권고를 받았다. 그는 시기와 악의를 품고, 형제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권고를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죄에 죄를 더하여, 자기 행위로 자기 생각을 드러냈다. 생각한 것을 그대로 행해, 형제를 지배하고 죽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이를 불의한 이에게 내주셨다. 그가 겪은 일을 통해 한쪽은 의로운 이로 나타나고, 자기가 저지른 일을 통해 다른 쪽은 불의한 이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 뒤에도 카인은 누그러지지 않았고, 악행을 저지른 뒤에도 잠잠해지지 않았다. 형제가 어디 있느냐는 물음을 받자, “모릅니다. 제가 제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여, 그 대답으로 악을 더 넓히고 늘렸다. 형제를 죽이는 일도 악한데,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그분을 속일 수 있기라도 한 듯, 그토록 뻔뻔하고 불경하게 대답하는 것은 훨씬 더 악하다. 그래서 그 자신도 저주를 짊어졌다. 스스로 죄를 끌어들이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으며, 형제를 죽인 일도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Quemadmodum Cain, cum accepisset consilium a Deo, uti quiesceret in eo quod non recte divisisset eam quae erga fratrem erat communicationem, sed cum zelo et malitia suspicatus est posse dominari ejus, non solum non acquievit, sed et adjecit peccatum super peccatum, manifestans sententiam suam per operationem suam. Quod enim cogitavit hoc et operatus est, dominatus est et interfecit eum, subjiciente Deo justum injusto, ut ille quidem ex iis quae passus est justus ostendatur; hic vero per ea quae commisit, detegeretur injustus. Et ne sic quidem mitigatus est, nec quievit super factum malum; sed interrogatus ubi esset frater ejus, Nescio, ait; numquid custos fratris mei sum ego? extendens et multiplicans malum per responsionem. Etenim si malum est occidere fratrem, multo pejus sic audacter et irreverenter respondere omnia scienti Deo, quasi possit frustrari eum. Propter hoc et ipse maledictionem portavit, quoniam a se peccatum attulit, non reveritus Deum, neque confusus in parricidio.

35.1

아담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며, 모든 것이 반대였다. 죽지 않음을 구실로 다른 이에게 속자, 곧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었다. 하나님을 피할 수 있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그분의 명령을 어겨, 하나님 앞에 나아가 말씀을 나눌 자격이 없다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주님을 경외함은 깨달음의 시작이며, 범법을 깨달음은 회개를 낳았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이들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신다. 아담은 허리에 두른 것으로, 행동으로 자기 회개를 드러냈다.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다. 몸을 덜 괴롭게 할 수 있는 다른 잎들도 많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불순종에 걸맞은 옷을 만든 것이다. 본래의 성향과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고, 더 나쁜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으므로, 육신의 방자한 충동을 억누르며, 자신과 아내에게 절제의 굴레를 둘렀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며, 이를테면 이런 뜻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거룩함의 영에게서 받아 지니고 있던 그 옷을, 불순종으로 잃었습니다. 이제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덮개가 제게 마땅하다는 것을 압니다. 즐거움은 전혀 주지 않고, 몸을 물어뜯고 찌르는 덮개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께서 무화과 잎 대신 가죽옷을 그들에게 입혀 주시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을 낮추며, 늘 그 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Circa Adam autem nihil tale factum est, sed omnia in contrarium. Ab altero enim seductus sub occasione immortalitatis, statim timore corripitur et absconditur: non quasi possit effugere Deum, sed confusus, quoniam transgressus praeceptum ejus indignus est venire in conspectum et colloquium Dei. Timor autem Domini initium intelligentiae; intellectus vero transgressionis fecit poenitentiam: poenitentibus autem largitur benignitatem suam Deus. Etenim per succinctorium in facto ostendit suam poenitentiam, foliis ficulneis semetipsum contegens, exsistentibus et aliis foliis multis, quae minus corpus ejus vexare potuissent: condignum tamen inobedientiae amictum fecit, conterritus timore Dei; et retundens petulantem carnis impetum, quoniam indolem et puerilem amiserat sensum, et in cogitationem pejorum venerat, fraenum continentiae sibi et uxori suae circumdedit, timens Deum et adventum ejus exspectans, et velut tale quid significans: Quoniam, inquit, eam quam habui a Spiritu sanctitatis stolam amisi per inobedientiam, et nunc cognosco quod sim dignus tali tegumento, quod delectationem quidem nullam praestat, mordet autem et pungit corpus. Et hoc videlicet semper habuisset indumentum, humilians semetipsum, nisi Dominus qui est misericors tunicas pelliceas pro foliis ficulneis induisset eos.

35.2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셔서, 여자에게 책임이 이어지게 하시고, 여자에게 다시 물으셔서, 책임이 뱀에게 옮겨지게 하셨다. 여자는 있었던 일을 말했다. “뱀이 저를 속여서, 제가 먹었습니다”라고 했다. 뱀에게는 묻지 않으셨다. 그가 범법을 일으킨 우두머리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에게 먼저 저주를 내리셔서, 사람에게는 그다음의 질책이 이르게 하셨다. 사람을 속인 자를 하나님께서는 미워하셨고, 속임당한 이에게는 조금씩 서서히 자비를 베푸셨다. 그래서 그를 낙원에서 내보내고, 생명나무에서 멀리 옮기셨다. 어떤 자들이 감히 말하듯, 생명나무를 그에게 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를 가엾이 여기셔서, 영원히 범법자로 머물지 않게 하신 것이다. 그에게 있는 죄가 죽지 않는 것이 되거나, 악이 끝도 없고 고칠 수도 없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셨다. 죽음을 사이에 두셔서, 그의 범법을 막고, 죄를 그치게 하셨다. 땅에서 이루어질 육신의 해체를 통해, 죄에 끝을 주신 것이다. 마침내 사람이 죄를 위해 살기를 그치고, 죄에 대해 죽어,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Propter hoc autem et interrogat eos, uti ad mulierem veniret accusatio; et illam rursus interrogat, uti ad serpentem transmitteret causam. Dixit enim quod fuerat factum: Serpens, ait, seduxit me, et manducavi. Serpentem vero non interrogavit; sciebat enim eum principem transgressionis factum; sed maledictum primo immisit in eum, uti secunda increpatione veniret in hominem. Eum enim odivit Deus, qui seduxit hominem; ei vero qui seductus est, sensim paulatimque misertus est. Quapropter et ejecit eum de Paradiso, et a ligno vitae longe transtulit: non invidens ei lignum vitae, quemadmodum audent quidam dicere; sed miserans ejus, ut non perseveraret semper transgressor; neque immortale esset quod esset circa eum peccatum, et malum interminabile et insanabile. Prohibuit autem ejus transgressionem, interponens mortem, et cessare faciens peccatum, finem inferens ei per carnis resolutionem, quae fieret in terra; uti cessans aliquando homo vivere peccato, et moriens ei, inciperet vivere Deo.

36장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원한을 두셔서, 뱀과 여자, 그리고 여자의 씨가 서로 경계하게 하셨다. 한쪽은 발바닥을 물리면서도, 원수의 머리를 밟을 힘이 있었고, 다른 쪽은 물고 죽이며, 사람의 걸음을 방해했다. 그 머리를 밟도록 미리 정해진 씨가 올 때까지 그러했다. 그 씨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분이다. 예언자는 그분에 대해 말한다. “너는 독사와 바실리스크 위를 걷고, 사자와 용을 짓밟을 것이다.” 사람을 거슬러 일어나 퍼져 가며, 사람을 차갑게 만들었던 죄가, 다스리던 죽음과 함께 무력해지고, 마지막 때에 인류에게 달려드는 사자, 곧 적그리스도가 그분에게 짓밟힐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분은 용, 곧 저 옛 뱀을 묶고, 패배했던 사람의 권세 아래 두셔서, 그 모든 힘을 밟게 하신다. 패배했던 이는 아담이었다. 그에게서 모든 생명이 빼앗겼다. 그러므로 원수가 거꾸로 패배하자, 아담은 생명을 되찾았다. 처음 사람을 차지했던 마지막 원수인 죽음은 무력해진다. 사람이 풀려나면,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죽음이 승리 안에 삼켜졌다. 죽음아, 네 승리가 어디 있느냐? 죽음아, 네 가시가 어디 있느냐?” 죽음이 처음 지배했던 이가 풀려나지 않았다면, 이 말을 정당하게 할 수 없다. 그의 구원이 죽음을 무력하게 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사람, 곧 아담을 살리실 때, 죽음도 무력해졌다.

Quapropter inimicitiam posuit inter serpentem et mulierem, et semen ejus, observantes invicem: illo quidem cui morderetur planta, et potente calcare caput inimici; altero vero mordente, et occidente, et interpediente ingressus hominis, quoadusque venit semen praedestinatum calcare caput ejus, quod fuit partus Mariae, de quo ait propheta: Super aspidem et basiliscum ambulabis, et conculcabis leonem et draconem; significans quia illud quod erigeretur et dilataretur adversus hominem peccatum, et frigidum reddebat eum, evacuaretur cum regnante morte, et conculcaretur ab eo in novissimis temporibus insiliens humano generi leo, hoc est, Antichristus; et draconem illum serpentem vetustum alligans, et subjiciens potestati hominis, qui fuerat victus, ad calcandam omnem ejus virtutem. Victus autem erat Adam, ablata ab eo omni vita: propter hoc victo rursus inimico recepit vitam Adam; novissima autem inimica evacuatur mors, quae primum possederat hominem. Quapropter liberato homine, fiet quod scriptum est, Absorpta est mors in victoria. Ubi est mors victoria tua? Ubi est mors aculeus tuus? Quod non poterit juste dici, si non ille liberatus fuerit, cui primum dominata est mors. Illius enim salus, evacuatio est mortis. Domino igitur vivificante hominem, id est Adam, evacuata est et mors.

37장

아담의 구원을 부정하는 이들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 잃어버린 양이 다시 찾아졌음을 믿지 않아, 항상 자신을 생명에서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 양을 찾지 못했다면, 인류 전체는 아직 멸망에 붙잡혀 있다. 이 견해, 오히려 이 무지와 눈멂을 처음 들여온 타티아노스는 거짓말하는 자이다. 앞서 보여 주었듯이, 그는 모든 이단자의 견해를 얽어 놓은 자가 되었지만, 이것은 스스로 고안해 냈다. 다른 자들에게 없던 새로운 것을 내놓으려 하여, 헛된 말을 하고, 믿음이 텅 빈 청중을 만들려 한 것이다. 스승으로 여겨지기를 바라며, 바울이 자주 한 다음과 같은 말을 거듭 사용하려 했다. “아담 안에서 우리 모두가 죽는다.”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났으므로, 그를 따르는 모든 이와, 아담이 구원받지 않으면 큰 이익이라도 얻는 듯, 아담에 대해 다투는 이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뱀도 사람을 설득하여, 그를 범법자로 만들었을 뿐, 자기 배교의 시작과 재료로 사람을 삼았고, 하나님은 보지 못했다. 이처럼 아담의 구원을 부정하는 이들도, 자기 자신을 이단자와 진리를 배반한 자로 만들고, 뱀과 죽음의 옹호자로 드러낼 뿐,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Mentiuntur ergo omnes qui contradicunt ejus saluti, semper seipsos excludentes a vita, in eo quod non credant inventam ovem quae perierat. Si autem illa non est inventa, adhuc possidetur in perditione omnis hominis generatio. Mendax ergo is qui prior hanc sententiam, imo hanc ignorantiam et caecitatem induxit, Tatianus: connexio quidem factus omnium haereticorum, quemadmodum ostendimus; hoc autem a semetipso adinvenit, uti novum aliquid praeter reliquos inferens, vacuum loquens, vacuos a fide auditores sibi praepararet, affectans magister haberi, tentans et subinde uti hujusmodi a Paulo assidue dictis: Quoniam in Adam omnes morimur; ignorans autem, quoniam ubi abundavit peccatum, superabundavit gratia. Ostenso ergo hoc manifeste, erubescant omnes qui ab eo sunt, et concertant de Adam, quasi magnum aliquid lucrentur, si ille non salvetur: quando magis nihil proficiant, quemadmodum et serpens nihil profecit suadens homini, nisi illud quod eum transgressorem ostendit, initium et materiam apostasiae suae habens hominem; Deum autem non vidit. Sic et hi qui contradicunt saluti Adae, nihil proficiunt, nisi hoc, quod semetipsos haereticos et apostatas faciunt veritatis, et advocatos se serpentis et mortis ostendunt.

38.1

그러므로 우리를 만들고 빚으신 분에 관해 불경한 견해를 내놓는 모든 이의 실상을 드러냈다. 그분은 이 세계도 지으셨으며, 그분 위에는 다른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 또 우리 주님의 실체와 그분께서 자신의 사람을 위해 이루신 경륜에 관하여 거짓을 가르치는 이들을 그 증거들 자체로 무너뜨렸다. 한편 교회의 선포는 어느 모로 보나 확고하며, 한결같이 지속되고, 예언자들과 사도들과 모든 제자에게서 증언을 얻는다. 우리가 밝혔듯이, 시작과 중간과 끝에 걸쳐, 하나님의 경륜 전체와 사람의 구원을 이루는 굳건한 사역 전체에 걸쳐 그러하다. 이는 우리의 믿음 안에 있다. 우리는 교회에서 받은 이 믿음을 지키며, 이 믿음은 늘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좋은 그릇에 맡겨 놓은 뛰어난 보물처럼 새로워지고, 그것을 담은 그릇 자체도 새로워지게 한다. 이 하나님의 선물은 교회에 맡겨졌다. 이는 빚어진 존재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것과 같으며, 선물을 받는 모든 지체가 살아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안에는 그리스도와의 친교, 곧 성령께서 마련되어 계신다. 성령께서는 썩지 않음의 보증이시며, 우리 믿음을 굳게 해 주시는 분이시며, 하나님께 올라가는 사다리이시다.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도들과 예언자들과 교사들을 세우셨습니다.” 성령의 다른 모든 활동도 그러하다. 교회로 모여들지 않는 이들은 모두 이 성령께 참여하지 못한다. 그들은 악한 견해와 더없이 나쁜 행실로 스스로 생명을 빼앗는다. 교회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영도 계시며, 하나님의 영이 계신 곳에 교회와 모든 은혜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령은 진리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참여하지 않는 이들은 어머니의 젖을 먹고 생명을 얻지도 못하며, 그리스도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더없이 맑은 샘물을 받지도 못한다. 그들은 땅을 파서 자신을 위해 깨진 물웅덩이를 만들고, 진흙에서 더러운 물을 떠 마신다. 자기 실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교회의 믿음을 피하며, 가르침을 받지 않으려고 성령을 물리친다.

Traductis igitur omnibus, qui nefandas inferunt sententias de factore et plasmatore nostro, qui et hunc mundum fabricatus est, super quem alius Deus non est; et ipsis ostensionibus eversis his, qui de substantia Domini nostri, et de dispositione quam fecit propter hominem suum, falsa docent; praedicationem vero Ecclesiae undique constantem, et aequaliter perseverantem, et testimonium habentem a prophetis et ab Apostolis, et ab omnibus discipulis, quemadmodum ostendimus, per initia, et medietates, et finem, et per universam Dei dispositionem, et eam quae secundum salutem hominis est solidam operationem, quae est in fide nostra; quam perceptam ab Ecclesia custodimus, et quae semper a Spiritu Dei, quasi in vase bono eximium quoddam depositum juvenescens, et juvenescere faciens ipsum vas in quo est. Hoc enim Ecclesiae creditum est Dei munus, quemadmodum aspiratio plasmationi, ad hoc ut omnia membra percipientia vivificentur: et in eo disposita est communicatio Christi, id est Spiritus sanctus, arrha incorruptelae, et confirmatio fidei nostrae, et scala ascensionis ad Deum. In Ecclesia enim, inquit, posuit Deus Apostolos, prophetas, doctores, et universam reliquam operationem Spiritus: cujus non sunt participes omnes, qui non concurrunt ad Ecclesiam, sed semetipsos fraudant a vita, per sententiam malam, et operationem pessimam. Ubi enim Ecclesia, ibi et Spiritus Dei; et ubi Spiritus Dei, illic Ecclesia, et omnis gratia: Spiritus autem veritas. Quapropter qui non participant eum, neque a mammillis matris nutriuntur in vitam, neque percipiunt de corpore Christi procedentem nitidissimum fontem: sed effodiunt sibi lacus detritos de fossis terrenis, et de coeno putidam bibunt aquam, effugientes fidem Ecclesiae, ne traducantur; rejicientes vero Spiritum, ut non erudiantur.

38.2

그들은 진리에서 멀어졌기에, 마땅히 온갖 오류 속에서 뒹굴고 그 오류에 흔들린다. 같은 일에 대해서도 때에 따라 생각이 이리저리 달라지며, 언제나 확고한 지식을 갖지 못한다. 진리의 제자가 되기보다 말로 궤변을 늘어놓는 사람이 되기를 더 바란다. 그들은 하나의 바위 위에 기초를 세우지 않고, 여러 돌을 품은 모래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러 신을 꾸며 내고, 늘 찾고 있다는 것을 구실로 삼는다. 그들은 눈이 어두우므로 결코 찾아낼 수 없다. 그들은 창조자를 모독하기 때문이다. 곧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찾아내는 일도 가능하게 해 주시는 분을 모독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 위에 또 다른 신을, 혹은 다른 충만을, 혹은 다른 경륜을 찾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빛도, 하나님에게서 오는 그 빛도 그들에게 비치지 않는다. 그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업신여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랑과 한없는 인자하심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셨다는 이유로 그들은 그분을 가장 하찮게 여긴다. (이 앎은 그분의 크기를 아는 것도, 본질을 아는 것도 아니다. 아무도 그 본질을 측정하거나 만져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다. 우리를 만들고 빚으셨으며, 우리 안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고, 피조물을 통해 우리를 먹이시며, 자신의 말씀으로 굳게 세우시고, 지혜로 만물을 결합하시는 분, 바로 그분께서 홀로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하나님 위에 있지도 않은 신을 꿈꾸며, 자신들이 위대한 신을 찾아냈다고 인정받으려 한다. 인류와 교제하거나 땅의 일을 돌보는 모습을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런 신 말이다. 그들이 찾아낸 것은 바로 에피쿠로스의 신이다. 자신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신, 곧 누구도 돌보지 않는 신이다.

Alienati vero a veritate, digne in omni volutantur errore, fluctuati ab eo, aliter atque aliter per tempora de eisdem sentientes, et nunquam scientiam stabilitam habentes, sophistae verborum magis volentes esse quam discipuli veritatis. Non enim sunt fundati super unam petram, sed super arenam, habentem in seipsa lapides multos. Propter hoc et multos Deos fingunt, et quaerere quidem semper in excusatione habent, caecutiunt enim, invenire vero nunquam possunt. Blasphemant enim fabricatorem, hoc est, eum qui est vere Deus, qui et praestat invenire; putantes se super Deum alterum invenisse Deum, vel alteram plenitudinem, vel alteram dispositionem. Quapropter et lumen, quod est a Deo, non lucet eis, quoniam inhonoraverunt et spreverunt Deum, minimum arbitrantes eum, quoniam propter dilectionem suam et immensam benignitatem in agnitionem venit hominibus: (agnitionem autem non secundum magnitudinem, nec secundum substantiam; nemo enim mensus est eam, nec palpavit; sed secundum illud, ut sciremus, quoniam qui fecit, et plasmavit, et insufflationem vitae insufflavit in eis, et per conditionem nutrit nos, Verbo suo confirmans, et Sapientia compingens omnia, hic est qui est solus verus Deus:) eum vero qui non est, somniantes super hunc, ut magnum Deum putentur adinvenisse, quem nemo possit cognoscere, humano generi communicantem, nec terrena administrantem: Epicuri videlicet invenientes Deum, neque sibi, neque aliis aliquid praestantem, id est, nullius providentiam habentem.

39장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돌보신다. 그러기에 조언도 해 주신다. 조언하시면서 자기 행실을 살피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 그러므로 돌봄과 다스림을 받는 존재들은 자신을 이끄는 분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이성 없는 존재도, 헛된 존재도 아니며, 하나님의 돌보심에서 받은 지각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교도 가운데 일부도, 유혹과 쾌락에 덜 매이고 우상 숭배의 미신에 그토록 깊이 끌려들지 않은 이들도, 희미하게나마 그분의 돌보심에 감동되어 돌아서서 이렇게 말했다. 이 우주를 지으신 분께서 만물의 아버지이시며,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 맞게 세계를 질서 지으신다고 말이다.

Providentiam autem habet Deus omnium, propter hoc et consilium dat: consilium autem dans adest his, qui morum providentiam habent. Necesse est igitur ea quae providentur et gubernantur, cognoscere suum directorem: quae quidem non sunt irrationalia, neque vana, sed habent sensibilitatem perceptam de providentia Dei. Et propter hoc ethnicorum quidam, qui minus illecebris ac voluptatibus servierunt, et non in tantum superstitione idolorum coabducti sunt, providentia ejus moti licet tenuiter, tamen conversi sunt, ut dicerent fabricatorem hujus universitatis Patrem omnium providentem, et disponentem secundum nos mundum.

40.1

다시 그들은, 꾸짖고 심판하시는 일이 하나님께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아버지에게서 이 두 가지를 없애려 했다. 또 자신들은 진노하지 않는 선한 신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신은 심판하고 다른 신은 구원한다고 말했다. 그렇게 두 신 모두에게서 분별과 정의를 빼앗으면서도 이를 알지 못했다. 심판하는 신이 선하지도 않다면, 마땅히 베풀어야 할 이들에게 베풀고 꾸짖어야 할 이들을 꾸짖는 일에서 의로운 재판관으로도, 지혜로운 재판관으로도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선한 신이 그저 선하기만 하고, 누구에게 선함을 베풀 것인지 분별하지 못한다면, 정의와 선함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선함이 판단과 함께 작용하지 않는다면, 모두를 구원하지 못하므로 그의 선함은 무력해 보일 것이다.

Rursus ut increpativum auferrent a Patre et judiciale, indignum id Deo putantes, et sine iracundia et bonum arbitrantes se adinvenisse Deum, alterum quidem judicare, et alterum quidem salvare dixerunt, nescientes utrorumque auferentes sensum et justitiam. Si enim judicialis non et bonus sit, ad donandum quidem his quibus debet, et ad exprobrandum his quibus oportet, neque justus neque sapiens videbitur judex; rursus bonus, si hoc tantum sit, bonus, non et probator in quos immittat bonitatem, extra justitiam erit et bonitatem, et infirma bonitas ejus videbitur, non omnes salvans, si non cum judicio fiat.

40.2

그러므로 마르키온 자신이 하나님을 둘로 나누어, 한 신은 선하고 다른 신은 심판한다고 말함으로써, 둘 모두에게서 하나님이심을 없애 버린다. 심판하는 신이 선하기도 하지 않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선함이 없는 이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선한 신이 심판하기도 하지 않는다면, 앞의 신과 같은 일을 겪어, 그에게서도 하나님이라는 자격이 사라진다. 만물의 아버지께 심판하시는 능력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분을 지혜롭다고도 말하는가? 그분께서 지혜로우시다면 분별하시는 분이기도 하다. 분별에는 심판하는 능력이 따르며, 올바르게 분별하도록 그 심판하는 능력에는 정의가 뒤따른다. 정의는 판단을 이끌어 내며, 판단은 정의롭게 이루어질 때 지혜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과 천사의 모든 지혜를 지혜로 능가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주님이자 재판관이시며, 의로우신 분이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선하시고, 자비로우시며, 오래 참으시고, 마땅히 구원할 이들을 구원하신다. 그분께는 정의롭게 행하는 선함이 부족하지 않으며, 지혜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구원해야 할 이들을 구원하시고, 심판받을 만한 이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이다. 선함이 앞서 이끌고 먼저 나아가기에, 그분의 정의도 가혹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Marcion igitur ipse dividens Deum in duo, alterum quidem bonum, et alterum judicialem dicens, ex utrisque interimit Deum. Hic enim qui judicialis, si non et bonus sit, non est Deus, quia Deus non est, cui bonitas desit: et ille rursus qui bonus, si non et judicialis, idem quod hic patietur, ut auferatur ei ne sit Deus. Quemadmodum autem et sapientem dicunt Patrem omnium, si non et judiciale ei assignent? Si enim sapiens, et probator est; probatori autem subest judiciale, judiciale autem assequitur justitia, ut juste probet; justitia provocat judicium: judicium autem, cum fit cum justitia, transmittet ad sapientiam. Sapientia igitur praecellet Pater super omnem humanam et angelicam sapientiam, quoniam Dominus, et judex, et justus, et dominator super omnes. Est enim et bonus, et misericors, et patiens, et salvat quos oportet: neque bonum ei deficit juste effectum, neque sapientia deminoratur: salvat enim quos debet salvare, et judicat dignos judicio: neque justum immite ostenditur, praeeunte scilicet et praecedente bonitate.

40.3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인자하게 자기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들과 불의한 이들에게 비를 내려 주신다. 똑같이 그분의 인자하심을 받고도 받은 선물의 가치에 맞게 살지 않은 이들을 그분께서 심판하실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호의에 거슬러 향락과 사치에 빠져 살았으며, 그토록 많은 은혜를 베푸신 분을 모독하기까지 했다.

Qui igitur solem suum oriri facit omnibus benigne Deus, et pluit super justos et injustos, judicabit eos, qui ex aequo benignitatem ejus percipientes, non similiter secundum dignationem munerationis ejus conversati sunt; sed in deliciis et luxuriis versati sunt adversus benevolentiam ejus, adhuc et blasphemantes eum, qui tanta beneficia in eos fecerit.

41장

플라톤은 이들보다 더 경건한 사람으로 드러난다. 그는 동일한 하나님께서 의로우시고 선하시며, 모든 것을 다스릴 권한을 지니시고 친히 심판하신다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신은 옛말에도 있듯이, 존재하는 모든 것의 시작과 끝과 중간을 지니고, 본성을 따라 두루 다니며 올바르게 일을 이루신다. 신의 법에서 벗어나는 이들에게 벌을 내리는 정의가 언제나 그분을 따른다.” 또 그는 이 우주를 만들고 지으신 분께서 선하시다고 밝혔다. 그는 말한다. “선한 이에게는 어느 누구를 두고도 시기가 결코 생겨나지 않는다.” 이처럼 그는 하나님의 선함을 세계 제작의 시작과 원인으로 삼았다. 무지도, 길을 잃은 아이온도, 결함의 열매도, 울고 탄식하는 어머니도, 다른 신이나 아버지도 그 원인으로 삼지 않았다.

Quibus religiosior Plato ostenditur, qui eundem Deum et justum et bonum confessus est, habentem potestatem omnium, ipsum facientem judicium, sic dicens: Et Deus quidem, quemadmodum et vetus sermo est, initium, et finem, et medietates omnium quae sunt habens, recte perficit, secundum naturam circumiens: hunc autem semper consequitur justitia ultrix in eos, qui deficiunt a lege divina. Et iterum factorem et fabricatorem hujus universitatis bonum ostendit. Bono autem, inquit, nulla unquam de quoquam nascitur invidia: hoc initium et causam fabricationis mundi constituens bonitatem Dei; sed non ignorantiam, nec Aeonem qui erravit, nec labis fructum, nec matrem plorantem et lamentantem, nec alterum Deum vel Patrem.

42.1

이런 것들을 생각해 내고 꾸며 낸 이들을 두고 그 어머니가 슬퍼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들은 자기 머리 위에 돌아올 만한 일을 꾸며 냈기 때문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충만 밖에, 곧 하나님을 아는 지식 밖에 있으며, 그들의 추론은 형태도 모양도 없는 유산아가 되었다. 그 추론은 진리를 조금도 붙들지 못했으며, 공허와 그림자 속으로 떨어졌다. 그들의 가르침은 텅 비고 어두우며, 호로스는 그것이 플레로마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았다. 영도 그들을 안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아버지는 무지를 낳으며, 그들 안에서 죽음의 정념을 일으켰다. 이것들은 우리가 퍼뜨리는 비방이 아니다. 그들 자신이 확언하고, 직접 가르치며, 그것들을 자랑한다. 그들은 어머니를 높이 생각하며,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곧 하나님 없이, 여성에게서 여성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이는 방황에서 부패가 생겨났다는 뜻이다.

Juste autem eos mater planget, talium excogitatores et adinventores: digna enim commentiti sunt in capita sua, quoniam mater ipsorum extra Plenitudinem est, id est, extra Dei agnitionem, et collectio eorum abortio facta est informis et sine specie: nihil enim de veritate apprehendit; in vacuum et in umbram decidit; vacua enim doctrina ipsorum et intenebrata: et Horus eam non permisit introire in Pleroma; non enim recepit eos Spiritus in refrigerium. Pater enim ipsorum ignorantiam generans, mortis passiones in eis operatus est. Haec non nos diffamamus, sed ipsi confirmant, ipsi docent, gloriantur in ipsis, altum sentiunt de matre, quam sine patre dicunt genitam, hoc est sine Deo, foeminam a foemina, quod est ex errantia corruptelam.

42.2

우리는 기도한다. 그들이 스스로 판 구덩이에 계속 머물지 않기를, 그러한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나오고, 뷔토스에서 벗어나며, 공허에서 물러나고, 그림자를 버리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와 합당하게 태어나고, 그들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며, 이 우주를 지으시고 만드신 분,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자 만물의 주님을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그들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가 그들에게 더 유익한 사랑을 베풀기에, 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에게서 나오는 사랑은 참되므로,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그들을 구원한다. 그 사랑은 쓰라린 약과 같아서, 상처에 지나치게 돋아난 불필요한 살을 없앤다. 그들의 거만함과 부풀어 오른 자만심을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힘을 다해 그들에게 손을 내밀려 애쓰며, 지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 말에 더하여, 다음 권에서 주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일은 뒤로 미루어 두었다. 그리스도 자신의 가르침으로 잘못을 밝혀, 이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그런 오류를 그치고, 자신들을 지으신 분을 향한 모독에서 물러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해서다. 그분께서는 홀로 하나님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아멘.

Nos autem precamur non perseverare eos in fovea, quam ipsi foderunt, sed segregari ab hujusmodi matre, et exire a Bytho, et absistere a vacuo, et umbram derelinquere: et legitime eos generari conversos ad Ecclesiam Dei, et formari Christum in eis, et cognoscere eos fabricatorem et factorem hujus universitatis, solum verum Deum et Dominum omnium. Haec precamur de illis, utilius eos diligentes, quam ipsi semetipsos putant diligere. Quae enim est a nobis dilectio, cum sit vera, salutaris est eis si quidem eam recipiant. Est enim austero medicamini similis, absumens improbiorem ac superfluam vulneris carnem: elationem enim illorum et inflationem evacuat. Quapropter tentantes omni virtute manum porrigere eis, non taedebit nos. Prorogavimus autem super haec quae dicta sunt, in sequenti libro Domini sermones inferre, si quos ex his per ipsam Christi doctrinam convincentes, suadere possimus cessare ab ejusmodi errore, et absistere ab ea blasphemia, quae est in fabricatorem ipsorum, qui et solus est Deus, et Pater Domini nostri Jesu Christi. Amen.

번역 메모
  1. 서두 본문으로

    Harvey판 제2책 인쇄 1쪽의 제3권 서문 전체이다. 독자의 요청, 앞의 두 권에서 한 일, 이 권에서 성경의 증거를 제시하겠다는 계획을 보존했다.

    destructio와 destructa는 무너뜨림이라는 인쇄 독법으로 옮겼다. 1쪽 각주 1은 detectio와 detecta라는 교정 제안을 검토하며, 이 기록에서는 대안으로 구별한다.

    하나님 안의 사랑이 요청보다 더 베푼다는 서술과, 교회가 사도들에게 받아 자녀들에게 전하는 믿음의 순서를 유지했다. 복음의 potestatem은 복음을 전할 권한으로 읽었다.

    끝의 인용은 누가복음 10:16에 대응한다. 너희를 듣는 것과 나를 듣는 것, 너희와 나와 나를 보내신 이를 업신여기는 관계를 인쇄 형태대로 옮겼다.

  2. 1.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1장 1절의 앞부분이다. 처음 선포했던 복음을 이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록으로 전했다는 순서를 보존했다.

    in Scripturis는 선포한 복음을 기록으로 전했다는 문맥으로 옮겼다. 토대와 기둥이라는 두 비유를 각각 유지했다.

    supervenientis Spiritus sancti는 인쇄된 속격 구문을 유지했다. 2쪽 각주 3은 사도행전 1:8과 비교한다. 위로부터의 권능을 입는 표현은 누가복음 24:49와도 이어진다.

    모두와 각자가 하나님의 복음을 지녔다는 마지막 서술의 주어는 사도들로 읽었다. 이레네우스는 사도들의 앎을 자신들이 바로잡는다고 주장하는 상대를 비판한다.

  3. 1.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1장 1절의 나머지와 2절 전체이다. 2절은 이들 모두가 한 하나님을 전했다는 Et omnes isti에서 시작한다.

    마태가 히브리인들 가운데서 그들의 언어로 기록을 냈다는 서술을 옮겼다.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던 때라는 관계도 저자의 전승 보고로 보존했다.

    Post vero horum excessum은 그들이 떠난 뒤로 옮겼다. 5-6쪽의 편집 각주는 출발과 죽음의 두 풀이를 검토하고 로마에서의 출발을 지지한다. 그 연대 해석은 본문과 구별했다.

    마가는 베드로의 제자이자 통역자, 누가는 바울을 따르던 이로 옮겼다. 요한은 주님의 제자이며 주님의 가슴에 기대어 누웠던 이로 서술된다. 아시아의 에베소라는 거주지명도 유지했다.

    그리스어 병렬문은 Harvey 인쇄 3-6쪽에서 보존하고 『교회사』 5.8.2-4의 인용 범위와 대조했다. 인용은 요한의 에베소 거주에서 끝나며, 뒤의 한 하나님과 한 그리스도에 관한 라틴어 서술과 구별했다.

    파피아스 선집 II.15의 마가 전승과 II.16의 마태 전승을 병행 대목으로 연결했다. 출처 정보에는 공개판 alpha-0.7의 고정 주소와 해당 원문 수정본을 기록했다. 이레네우스의 보고와 파피아스 및 전승자의 발화를 각각 구별해 비교할 수 있다.

  4. 2.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2장 1절이다. 성경을 비난하며 진리가 살아 있는 목소리로 전해졌다고 말하는 주장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상대 집단의 견해이다.

    고린도전서 2:6의 바울 인용을 그들이 자기들의 지혜에 적용한다고 서술한다. 이어지는 허구라는 말은 이레네우스의 논평으로 구별했다.

    발렌티노스, 마르키온, 케린토스, 바실리데스에 이어 반박하는 또 다른 사람을 말하는 구문을 유지했다. 7쪽 각주 3도 마지막 표현을 특정 이름을 정하지 않은 반대자로 풀이한다.

    진리의 규범을 왜곡하며 자기 자신을 선포한다는 마지막 문장의 주체와 대상을 보존했다.

  5. 2.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2장 2-3절이다. 3절은 이런 자들과 싸운다는 Adversus tales certamen에서 시작한다.

    교회들에서 장로들의 계승으로 보존되는 사도 전승이라는 서술을 유지했다. 상대는 자신들이 장로들과 사도들보다 더 지혜롭다고 주장한다.

    주님의 말이 데미우르고스, 중간 영역, 최상위 영역에서 나왔다는 주장은 상대 집단에 귀속했다. summitas는 최상위 영역으로 옮기며, 8쪽 각주 1의 플레로마 풀이를 대조 정보로 기록한다.

    lubrici [l. lubrice]에서는 부사 lubrice를 채택해 뱀처럼 미끄러지며 달아나는 동작으로 옮겼다. 8쪽 각주 2는 사본의 형용사와 그리스어 복원 가능성을 함께 논의한다.

    일부라도 진리로 돌아오게 할 가능성과, 오류에서 벗어나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두 한정을 보존했다.

  6. 3.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3장 1-2절이다. 2절은 모든 교회의 계승을 열거하면 길어진다는 Sed quoniam valde longum est에서 시작한다.

    8쪽의 successiones는 사본을 근거로 복원한 인쇄 독법이다. 사도들이 세운 감독과 그들에게서 이어지는 계승을 구별해 옮겼다.

    감추어진 신비를 알고 있었다면 교회를 맡긴 이들에게 우선 전했을 것이라는 조건을 유지했다. 뒤의 유익과 재앙은 후계자들이 올바로 행동하거나 넘어지는 경우에 따른 결과이다.

    potentiorem principalitatem은 더 큰 권위로 옮겼다. 9쪽 각주 7은 권위·우위와 그 근거에 관한 여러 해석을 제시한다. convenire는 각주 8이 택한 일치의 뜻으로 읽었으며, 모인다는 뜻과 구별해 기록한다.

    in qua는 그 안에서는으로 옮겼다. 가까이 있는 모든 교회와 앞서 나온 이 교회 가운데 어느 표현을 받는지에 관해 9쪽 각주 10이 논의한다. 각처의 이들에 의해라는 ab his qui sunt undique도 인쇄된 범위로 보존했다.

  7. 3.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3장 3절의 앞부분이다. 다음 단위의 에바리스토스부터 이어지는 목록도 같은 통상 절에 속한다.

    리누스를 말하는 바울의 편지라는 언급에 인쇄 여백은 디모데후서 4:21을 연결한다. 아나클레토스는 라틴어 Anacletus를 옮겼으며, 그리스어 병렬문의 이름은 Ἀνέγκλητος이다.

    클레멘스는 사도들로부터 셋째로 감독직을 받았다고 서술된다. 편지를 썼다는 문장의 주어는 로마 교회이며, 클레멘스 때라는 시기와 구별했다.

    창조주, 홍수, 아브라함, 출애굽, 모세, 율법과 예언자, 악마와 천사들을 위한 불이라는 내용은 이레네우스가 전하는 서신 설명이다. 공개한 『클레멘스 1서』 전체와 비교할 수 있도록 alpha-0.7의 고정 주소와 데이터 해시를 출처 정보에 연결했다.

    ex ipsa scriptura는 이 편지 자체에서로 옮겼다. 11쪽 각주 3도 여기서 scriptura가 가리키는 글을 클레멘스의 편지로 풀이한다.

    10-11쪽의 그리스어 병렬문은 『교회사』 5.6.1-3에 해당한다. [ἀναγγέλλουσα]의 편집 보완 표시를 보존했으며, 사도들에게서 최근 받은 전승을 말하는 곳까지가 인용 범위이다.

  8. 3.3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3장 3절의 뒷부분이다. 식스토스는 여섯째, 엘레우테리오스는 열두째라는 본문의 순서를 유지했다.

    라틴어 인명 Euaristus, Sixtus, Eleutherius와 그리스어 병렬문의 Εὐάρεστος, Ξύστος, Ἐλεύθερος를 각각 출처 정보에 보존했다. 휘기노스와 아니케토스는 앞선 번역의 표기를 유지했다.

    그리스어의 διδαχῇ [διαδοχῇ]는 본문과 대괄호 독법을 함께 보존했다. 한국어는 라틴어 successione에 따라 계승으로 옮겼다.

    병렬문은 『교회사』 5.6.4-5와 대조했다. 우리에게 전승과 선포가 이르렀다는 곳에서 인용이 끝나며, 뒤의 생명을 주는 동일한 믿음에 관한 라틴어 결론을 구별했다.

  9. 3.4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3장 4절 전체이다. 우리가 젊을 때 폴리카르포스를 보았다는 진술은 이레네우스의 직접 보고로 옮겼다.

    12-13쪽 라틴어의 Ecclesiae tradidit는 두 곳 모두 폴리카르포스가 교회에 전했다는 뜻으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에서는 교회가 전승을 전달하는 주체로 서술된다. 12쪽 각주 4는 이 차이를 논의한다.

    요한과 케린토스의 목욕탕 이야기는 폴리카르포스에게서 들은 이들을 거쳐 전해진다. 라틴어는 목욕탕이 무너질까 두렵다고 했다는 간접 서술이고, 그리스어에는 φύγωμεν이라는 도피 권유가 있다.

    마르키온의 질문 Cognoscis nos?는 우리를 아시오?로 옮겼다. 폴리카르포스의 답변 Cognosco te는 단수인 너를 안다는 표현이다. 질문과 응답의 수를 각각 유지했다.

    디도서 3:10-11에 대응하는 인용은 라틴어의 post unam correptionem에 따라 한 번 훈계한 뒤로 옮겼다. 그리스어의 두 번째 훈계를 뜻하는 καὶ δευτέραν과 죄를 짓는다는 καὶ ἁμαρτάνει를 병렬문 차이로 기록한다.

    ut neque verbo tenus communicarent는 말조차 나누지 않을 만큼으로 옮겼다. Harvey 14쪽 각주 3은 여러 판본과 사본의 구문을 비교한 뒤 이 형태를 채택한다.

    폴리카르포스의 편지를 수식하는 perfectissima는 매우 충실하게 쓴으로 옮겼다. 15쪽 각주 1은 그리스어 ἱκανωτάτη를 뒤의 배울 수 있다는 내용과 연결해 설명한다. 이 사이트의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alpha-0.7 고정 주소와 데이터 해시를 연결했다.

    폴리카르포스에 관한 그리스어 병렬문은 『교회사』 4.14.3-8에 해당한다. 마지막 에베소 교회 문장은 별도 인용 위치인 3.23.4로 연결했다.

    에베소 교회를 바울이 세웠고 요한이 트라야누스 때까지 머물렀다는 관계를 저자의 진술로 보존했다. charac-와 terem으로 두 면에 걸친 characterem은 한 단어로 연결하고 인쇄 14쪽에 귀속했다.

  10. 4.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4장 1-2절 전체이다. 2절은 여러 이방 민족이 그 질서에 동의한다는 Cui ordinationi assentiunt에서 시작한다.

    quasi in depositorium dives는 부자가 보관소에 맡기듯으로 옮겼다. dives를 부자를 가리키는 주격 명사로 읽고, 사도들이 진리에 속한 것을 교회에 맡겼다는 비유를 유지했다.

    modica quaestione는 작은 문제이다. 사도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가정하는 문장과, 교회들을 맡은 이들이 받은 전승의 질서를 구별해 옮겼다.

    barbari는 우리 언어를 기준으로 한 이방인이라는 뒤쪽 설명에 따라 옮겼다. 저자는 이들의 믿음, 생각과 행실을 칭찬한다. 종이나 잉크 없이 영을 통해 마음에 기록된 구원이라는 표현도 보존했다.

    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한 창조, 동정녀에게서의 출생, 수난과 부활, 영접과 오심의 순서를 유지했다. adventus는 오심으로 옮기며,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오심이라는 표현의 주체를 그리스도로 읽었다.

    끝의 apud eos는 바로 앞에서 괴이한 말을 꾸며 낸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인쇄된 enim과 과거형을 유지했으며, 17쪽 각주 1은 다른 판본의 neque dum과 비교한다.

  11. 4.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4장 3절의 앞부분이다. 발렌티노스와 케르돈의 활동 시기를 휘기노스, 피우스, 아니케토스의 감독 재임과 연결하는 저자의 보고를 보존했다.

    휘기노스는 라틴어 octavus에 따라 여덟째 감독으로 옮겼다. 병렬 그리스어에는 ἔνατος, 곧 아홉째로 되어 있다. 17-18쪽 각주는 이 차이를 논의하며, 이레네우스 1권 24장도 아홉째라고 서술한다.

    exhomologesin은 앞선 번역과 같이 공개 고백으로 옮겼다. 은밀한 가르침, 고백, 잘못된 가르침이 드러나는 때를 나누어 옮겼다.

    abstentus est는 모임에서 떨어져 나갔다로 옮겼다. 그리스어 ἀφιστάμενος와 17-18쪽 각주는 스스로 물러나는 해석을 다루며, 라틴어의 수동형과 함께 비교할 수 있도록 기록했다.

    인쇄 17쪽의 그리스어 병렬문은 『교회사』 4.11.1에 해당한다. 발렌티노스의 로마 도착부터 케르돈의 이탈까지의 인용이며, 앞의 라틴어 문장들과 범위를 구별했다.

  12. 4.3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4장 3절의 뒷부분이다. 아니케토스의 열째라는 순서를 유지했다. 앞 단위 라틴어의 휘기노스 여덟째라는 독법과 함께 보존한다.

    마르키온과 케르돈의 계승, 영지주의자들과 시몬의 제자 메난드로스의 관계는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계보로 옮겼다. antistes는 그 견해의 지도자로 읽었다.

    마지막 Omnes autem hi 문장은 인쇄 대본을 유지했다. 18쪽 각주 3은 일부 사본의 생략과 난외 주석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논의한다. 교회가 이미 존속하던 뒤의 시기라는 표현에는 별도의 연도를 더하지 않았다.

  13. 5.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5장 1절이다. 교회의 전승 논증에서 사도들이 남긴 성경의 증거로 돌아간다는 문장이다. 첫 문장의 ex quibus는 앞에 나온 기록들과 연결해 옮겼다.

    진리가 땅에서 솟아났다는 인용을 저자는 동정녀에게서의 출생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에 적용한다. 난외에는 시편 84:12로 적혀 있으며, 인용 위치는 KJV 및 통상 개신교 번호의 시편 85:11과 대조했다.

    결함의 열매를 하나님과 아버지로 고백했겠는가 하는 논박을 가정의 문장으로 옮겼다. 완전한 분과 불완전한 존재, 영적인 분과 혼적인 존재, 플레로마 안과 밖의 존재는 각각 주체와 대상으로 나뉜다.

    청중의 능력과 선입견에 맞추어 위선적으로 가르쳤다는 설명은 이레네우스가 반박하는 궤변가들의 주장이다. 병든 이들을 뜻하는 languentibus는 다음 단위의 치료 비유와 이어진다.

    inenarrabile fecisse mysterium은 말할 수 없는 신비를 제시했다로 옮겼다. 19쪽 각주 2의 πλάσασθαι와 φράσασθαι는 편집자가 논의하는 그리스어 복원·교정의 두 동사이다.

  14. 5.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5장 2절이다. 신명기 27:18을 요약한 저주, 절벽으로 향하는 눈먼 이,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의 비유를 차례로 보존했다.

    주님이 의사로 오셨다는 인용은 누가복음 5:31-32에 대응한다. 죄인들을 회개로 부른다는 목적을 인쇄된 형태로 옮겼다.

    transgressio는 이전의 삶을 벗어나는 변화로 읽었다. 무지가 앎을 통해 사라지고 그 앎이 치료와 죄에서의 제지로 이어지는 관계를 유지했다.

    sine personae acceptatione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로 옮겼다. 20쪽 각주 1은 판본이 채택한 acceptatione와 Clermont 사본을 연결한다.

  15. 5.3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5장 3절이다. 주님은 할례받은 이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사도들은 이방 민족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서술된다.

    per conditionem suam은 자신의 창조물을 통해로 옮겼다. 하나님이 인류를 만들고 먹이며 존재하게 하신다는 서술의 주체를 유지했다.

    그리스도가 자기 피로 배교에서 구속하여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다는 목적과, 아버지의 권능으로 내려와 심판하고 좋은 것을 준다는 미래 서술을 구별했다.

    먼 이들과 가까운 이들을 모으는 대목에는 에베소서 2:17, 야벳과 셈의 대목에는 창세기 9:27이 인쇄 여백에 연결되어 있다. 야벳을 넓히고 셈의 집에 살게 하는 주체를 그리스도로 읽는 저자의 적용을 보존했다.

  16. 6.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6장 1절이다. definitive et absolute는 단정적으로, 아무 한정 없이로 옮겼다. ex sua persona는 호칭을 화자가 자신의 말로 사용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주께서 주께 말씀하심, 주께서 주에게서 불과 유황을 내리심,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기름을 부으심이라는 인용 구조를 보존했다. 저자는 이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연결한다.

    양자로 받아들여진 이들을 교회와 연결하고, 아들이 친히 모으신 하나님의 모임으로 풀이하는 서술을 유지했다. 아빠, 아버지라는 외침은 로마서 8:15와 연결된다.

    너희는 신들이라는 인용의 난외 표기는 시편 81:5이다. 본문에 대응하는 KJV 및 통상 개신교 절은 시편 82:6으로 확인하여 출처 데이터에 별도로 기록했다.

  17. 6.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6장 2-3절이다. 3절은 성경이 신들이 아닌 것들을 부르는 경우를 논하는 Cum autem eos에서 시작한다.

    출애굽기 3:14의 존재하시는 이와 3:8의 내려왔다는 말씀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연결한 저자의 풀이를 보존했다. 22-23쪽 각주 1도 두 말씀과 아버지·아들의 관계를 논의한다.

    이사야 43:10의 puer는 이 문맥에서 종으로 옮겼다. 저자는 이 구절을 아버지와 아들의 증언에 연결한다. ego sum은 앞의 출애굽기 인용과 이어지는 존재하시는 이의 표현으로 읽었다.

    이방 민족들의 신들, 다른 신들, 귀신들의 우상이라는 표현에서 호칭과 한정어를 구별했다. 23쪽 난외의 시편 95:5와 80:10 표기를 인용문 형태와 함께 보존했다.

    이사야 인용 끝의 나도 증인이다는 말을 유지했다. 23쪽 각주 2는 이 구절이 앞선 이사야 인용에서 반복되어 들어왔을 가능성을 논의한다.

    엘리야의 두 다리로 절뚝거린다는 신체 비유와, 주 하나님이 한 분이라면이라는 unus의 독법을 유지했다. 23쪽 각주 4-5는 다리 관절과 그리스어 표현의 관계를 검토한다.

    오늘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대목은 인쇄된 hodie를 옮겼다. 24쪽 각주 1은 이 형태가 igne에서 생겼다고 설명한다. 이어지는 엘리야의 기도에도 오늘이라는 표현이 있다.

  18. 6.3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6장 4절이다. 앞선 엘리야의 기도를 따라 저자가 아브라함·이삭·야곱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직접 기도한다.

    dominationem quoque dona Spiritus Sancti는 성령의 다스림도 허락해 주소서로 옮겼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청원한다는 관계와 명령형 dona를 유지했다.

    hanc scripturam은 저자의 이 글을 가리킨다. 독자가 하나님을 알고 굳건해지며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도록 구하는 청원을 보존했다.

  19. 6.4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6장 5절이다. 갈라디아서 4:8-9 인용의 첫 si는 섬겼다 해도로 옮겼다. 24쪽 각주 6의 sed 교정 제안과 인쇄 독법을 구별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께서 아시는 것의 방향도 유지했다.

    데살로니가후서 2:4의 신이라고 불리거나 숭배받는 것 위에 자신을 높인다는 인용과, 그 대상이 우상이라는 저자의 해석을 구별했다.

    고린도전서 8:4-6의 ex quo, in illum, per quem, per ipsum을 각각 옮겼다. 모든 것의 근원이신 아버지, 그분을 위해 존재하는 우리, 그리스도를 통해 있는 모든 것과 우리라는 관계이다.

    바울이 자신의 말로 그리스도를 고백한다는 ex sua persona를 유지했다. mundi fabricatores는 세계 제작자들이라는 복수형으로 옮겼다.

    신명기 5:8 인용의 in Deum은 신으로 삼을이라는 뜻으로 옮겼다. 이어지는 신명기 4:19의 하늘과 해·달·별에 관한 경고도 인쇄된 형태대로 보존했다.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신으로 세워졌다는 말과, 충실한 하인과 종이라는 호칭을 구별했다. 판본 여백은 출애굽기 7:1, 히브리서 3:5, 민수기 12:7을 각각 연결한다.

  20. 7.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7장 1절이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이 세상의라는 말을 신에 연결하는 독법과 믿지 않는 이들에게 연결하는 저자의 풀이를 구별했다.

    처음의 신이라는 번역은 두 신을 구별하는 상대 집단의 독법에 따른 표현이다. 하나님 다음에 쉼을 두라는 설명에서는 저자가 참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대상을 하나님으로 옮겼다.

    hyperbaton은 서로 연결되는 말들이 떨어져 놓이는 어순을 가리키는 문법 용어로 읽었다. 짧게 끊고 쉬는 동작, 나머지를 함께 읽는 동작, 완성된 해석 문장을 각각 보존했다.

    saeculum은 현재를 가리킬 때 이 세상, 장차 올 때를 가리킬 때 시대로 옮겼다. 저자는 장차 올 썩지 않는 시대를 상속받지 못하는 이들과 이 세상의 믿지 않는 이들을 연결한다.

  21. 7.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7장 2절이다. 바울의 빠른 말과 그 안의 영의 움직임을 어순 도치의 이유로 제시하는 저자의 설명을 유지했다.

    갈라디아서 3:19에 해당하는 두 인용은 모두 lex factorum을 행위의 율법으로 옮겼다. 26쪽 각주 1은 라틴어의 factorum과 그리스어의 표현을 비교한다. 두어졌다와 천사들을 통해 정해졌다는 구절의 순서를 바꾸는 설명도 보존했다.

    데살로니가후서 2:8-9의 첫 인용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 어순을 바꾼 둘째 인용에는 주 예수라는 호칭이 있다. 불법한 자의 출현과 사탄의 활동을 연결하고, 주님의 오심과 구별하는 논증을 유지했다.

    spiritu oris sui는 자기 입의 숨으로, praesentia adventus sui는 오셔서 임재하심으로 옮겼다. 사탄의 활동을 따르는 자의 출현과 주님의 오심은 한국어에서도 지시 대상을 나누어 표시했다.

    Si ergo non attendat에서는 non이 주의 깊게 읽는 것과 숨 쉴 간격을 드러내는 것의 두 동작에 걸리는 것으로 읽었다. 그 결과를 말하는 blasphemat는 모독한다는 동사 형태로 옮겼다.

    27쪽의 quem vere Deum dicimus는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이라 부르는 분으로 옮겼다. 각주 1은 사본의 quidem과 quidem jure를 함께 제시한다.

  22. 8.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8장 1절이다. 카이사르를 부르는 이름, 하나님이라는 고백, 두 주인과 맘몬의 지배, 죄의 종이라는 비유를 차례로 구별했다. 인용은 마태복음 22:21과 6:24, 요한복음 8:34에 대응한다.

    맘모나스의 탐욕과 마무엘의 탐식을 설명하는 부분은 본문이 전하는 언어 풀이이다. 유대인들의 말, 사마리아인들의 사용, 히브리말이라는 구별을 유지했다.

    adjunctive는 덧붙여로 옮기고 Mamuel을 마무엘로 보존했다. 27-29쪽 각주는 음절이나 문자의 연결, 어원과 전사에 관한 여러 추정을 제시한다.

  23. 8.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8장 2절이다. 악마의 강함을 인간과 비교한 것으로 한정하고, 주님이 그를 결박하고 집을 빼앗는 행위와 구별했다. 우리를 그릇과 집으로 보는 적용도 보존했다.

    예레미야 31:11에 대응하는 인용은 야곱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해 내는 주님을 말한다. 이레네우스는 이를 마태복음 12:29의 결박하는 분과 연결한다.

    29쪽의 tenet과 tenetur는 붙잡는 이와 붙잡힌 이의 능동·수동 관계이다. obtinentem은 붙잡는 분으로 옮겼으며, 각주 1은 소유를 얻고 유지한다는 뜻을 함께 설명한다.

  24. 8.3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8장 3절이다. 천사, 대천사, 보좌, 주권의 목록을 유지했다. 말씀이 아버지 안에 계셨다는 것은 저자의 요한 요약이며, 이어지는 인용은 요한복음 1:3이다.

    명령하시니 창조되었고 말씀하시니 만들어졌다는 인용 순서를 보존했다. 누구에게 명령했는가를 묻고 말씀에게라고 답하는 해석은 이레네우스의 논증이다.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은 분, 시작과 끝이 없는 분, 다른 모든 것에 존재를 주는 분이라는 서술을 유지했다. 피조물에 관한 dissolutionem possunt percipere는 해체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 옮겼다.

    마지막 cum Verbo suo는 자신의 말씀과 함께로 옮겼다. 창조주께 속한 호칭과 피조물의 호칭을 구별하는 결론에 연결된다.

  25. 9.1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9장 1절의 앞부분이다. 이어지는 Harvey 9장 2절의 첫 문단까지가 통상 1절에 속한다.

    ex sua persona는 자신의 말로, praecipue Deum et Dominum은 본래 의미에서 하나님이요 주님이신 분으로 옮겼다. 예언자와 사도, 주님 자신과 제자들이 각각 무엇을 고백하고 전하는지 구별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돌 숭배에서의 부르심을 같은 하나님의 행위로 연결한다. 백성이 됨과 사랑받는 이가 됨은 로마서 9:25를 인용해 적용하는 대목이다.

    마태복음 3:7-9에 해당하는 인용의 fructum은 단수 독법이다. 30-31쪽 각주 2가 이를 다른 인용 및 사본과 비교한다. 마지막 길과 골짜기 인용은 저자가 마태와 누가를 함께 언급하는 형태로 보존했으며, 우리 하나님의 길들과 모든 육체가 구원을 본다는 표현을 유지했다.

  26. 9.2 본문으로

    이 단위는 통상 3권 9장 1절의 나머지와 2절의 앞부분이다. 통상 2절은 천사를 말하는 Iterum autem de Angelo에서 시작하며, 다음 Harvey 10장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구원을 말씀에 연결한 salutare suum, id est Verbum suum을 보존했다. 그 말씀도 육체가 되어 모든 육체에게 보이게 되셨다는 연결과, 심판자 및 영광을 주는 이를 알아야 한다는 두 목적을 구별했다.

    천사의 나타남에 이어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는 말과 동정녀의 임신·출산을 인용하는 순서를 유지했다. in utero accipiet는 태중에 아이를 얻고로 옮겼다. 31쪽 각주 2는 관련 동사 형태를 비교한다.

    시편 인용의 기름부음받은 이의 얼굴, 다윗의 몸에서 난 열매, 평화 가운데 마련된 자리라는 표현을 보존했다. ex David Virgine는 다윗의 후손인 동정녀라는 계보로 읽었다.

    별과 지도자의 예언은 인쇄된 Balaam에 따라 발람에게 귀속했다. 31쪽 각주 3은 일부 사본이 이사야로 적고 있음을 기록한다. dux는 지도자로 옮겼다.

  27. 10장 본문으로

    Harvey판 제3권 10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다. 통상 9장 2절의 나머지와 3절 전체이며, 통상 3절은 세례를 말하는 Adhuc ait in baptismate Matthaeus에서 시작한다.

    마기들이 바친 몰약, 금, 유향을 죽음과 매장, 왕권, 하나님께 연결하는 설명은 저자의 해석이다. 마기들의 경배를 말하는 인용은 마태복음 2:2와 연결된다.

    32쪽 세례 인용의 [ei]는 [그에게]로 옮겨 대괄호를 보존했다. 각주 2는 Clermont와 Arundel 사본의 생략을 대괄호의 이유로 설명한다.

    예수와 그리스도를 나누는 견해에 대한 반박, 말씀의 성육신, 아버지에게서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문장을 각각 보존했다.

    이사야 11장 인용에서는 가지와 꽃, 지식과 경건의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을 나누어 옮겼다. gloria와 gloriosos는 명성과 명성 높은 이들로 읽었다. 32쪽 각주 5는 그리스어 δόξα의 뜻과 번역 문제를 논의한다.

    이사야 61장 인용은 낮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함, 포로들의 풀려남, 보응의 날과 슬퍼하는 모든 이의 위로까지 포함한다. humilibus는 낮은 이들로 옮겼으며, 33쪽 각주 1은 그리스어 역본들의 낱말을 비교한다.

    마지막 ejus qui per prophetas promiserat는 기름 부음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수식어로 옮겼다. 33쪽 각주 3은 사본을 따라 복원한 이 독법을 설명한다. 그 하나님의 영이 예수 위에 내려오시고, 우리가 그 기름 부음의 풍성함에서 받아 구원받는 관계를 유지했다.

  28. 11.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1절이다. ANF/New Advent에서는 통상 10장 1절과 2절의 앞부분이며, 2절은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보냄받은 일을 말하는 Et iterum de angelo referens ait에서 시작한다. 인쇄본의 MASS. 절 표기는 따로 기록했다.

    누가는 사도들을 따르는 이이자 제자로 서술된다. 분향에 이어 제사를 드리러 왔다는 et venit uti sacrificaret를 유지했다. Harvey 33-34쪽 각주는 이 구절의 형성을 논의한다.

    Qui praeest로 시작하는 라틴어의 어순은 그대로 보존했다. 한국어는 누가를 고백하는 주체로, 주님 앞에 서 있는 관계절의 대상을 가브리엘로 읽었다. Keble 1872년판 224쪽 각주 g는 이 관계절을 뒤로 옮기는 것이 추정임을 명시한다. 구문의 해석과 비교 근거를 출처 데이터에 기록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은 모든 육체에게 자신의 구원자를 보이시겠다고 약속하신 분으로 읽었다. salutarem은 인쇄된 남성형을 유지해 구원자로 옮겼으며, 34쪽 각주 4가 이 형태를 설명한다.

    요한을 통해 준비하는 plebem perfectam은 완전한 백성으로 옮겼다. 요한이 엘리야의 영과 능력으로 사람들을 주님께 돌이킨다는 관계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도록 그분이 사람의 아들이 되셨다는 목적을 유지했다.

    마리아가 교회를 위해 예언한다는 표현과 Magnificat의 두 인용 구간을 보존했다. 자신의 종 이스라엘을 붙들어 주신다는 말과 자비를 기억한다는 목적, 인쇄된 suae도 각각 유지했다.

  29. 11.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0장 2절 나머지이다. 인쇄면 상단 MASS. 표기는 35쪽의 x.2와 36쪽의 x.3으로 나뉘어 기록된다.

    novello spiritu, nove, nova의 반복을 새로운 영과 새롭게 마련되는 일로 옮겼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을 하나님께 속하게 하려는 육체의 오심이라는 목적을 보존했다.

    로마서 3:30의 ex fide와 per fidem은 각각 믿음에 근거해와 믿음을 통해로 옮겼다. 이어지는 사가랴의 찬가에서 언약, 맹세와 죄의 용서, 우리의 모든 날이라는 순서와 표현을 유지했다.

    요한의 증언에서 뒤에 오시는 분과 나보다 앞서 계신 분이라는 시간 관계를 유지했다. 36쪽 각주 1도 시간의 우선성을 설명한다.

    salus와 salutare는 모두 구원이라는 명사로 옮기고, 이 대목의 말놀이와 적용을 구별하도록 라틴어를 괄호로 표시했다. Salvator는 구원자이다. 저자가 이 세 호칭을 아들과 말씀, 영, 육체에 각각 연결하는 순서를 유지했다.

    예레미야애가 4:20에 대응하는 우리 얼굴의 영, 주 그리스도라는 인용을 보존했다. Spiritus를 영으로 옮기며,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는 요한복음 1:14의 인용과 구별했다.

  30. 11.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0장 3절 앞부분이다. 뒤의 다윗의 성읍을 묻는 문장도 같은 통상 절에 이어진다.

    첫 누가복음 인용은 in domo David에 따라 다윗의 집으로, 뒤의 인용은 in civitate David에 따라 다윗의 성읍으로 옮겼다. Harvey 36-37쪽 각주도 이 차이를 지적한다.

    hominibus bonae voluntatis는 선한 뜻을 지닌 사람들에게로 옮겼다. 36쪽 각주 5는 라틴어의 속격과 관련 그리스어 독법을 비교한다. falsarii는 날조하는이라는 저자의 비판적 호칭으로 유지했다.

    경륜에 속한 예수와 위의 구원자를 구별하는 견해는 상대 집단의 주장으로 옮겼다. 서른 해가 지난 뒤라는 말은 출생에서 세례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는 문맥으로 읽었다. 천사들이 거짓말했다는 결론도 그 주장을 전제로 한 저자의 논박이다.

  31. 11.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0장 3절 나머지이다. 다윗의 성읍이라는 표현을 다윗에게 약속한 영원한 왕과 연결한다.

    37쪽의 짧은 그리스어 병렬문과 Theod. Dial. 1 및 두 누가복음 카테나 자료의 인쇄 참조를 보존했다. 병렬문의 보존 자료 참조는 판본에 적힌 상태로 기록했으며, 한국어는 라틴어 대본에서 옮겼다.

    시편 인용의 ploremus는 울자로 옮겼다. 37쪽 각주 4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형태를 논의한다. 창조주를 찬양하는 천사와 목자들, 서로 다른 신을 찬양했다면이라는 가정의 결론을 구별했다.

  32. 11.5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5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0장 4절이다. 정결의 날, 첫 사내아이와 비둘기 제물, 시므온과 안나의 증언을 차례로 보존했다.

    imposuerunt eum in Hierusalem은 그를 예루살렘에서 드렸다로 옮겼다. 38쪽 각주 2가 제시하는 봉헌의 뜻을 따랐으며, adstare는 주님 앞에 서게 함으로 연결했다.

    Lumen in revelationem gentium은 이방 민족들에게 계시를 주는 빛으로 옮겼다. 누가는 율법을 주신 분을 자신의 말로 주님이라 부르는 서술자로 구별했다.

    nullam [novam illam]에서는 novam illam을 채택해 그 새로운으로 옮겼다. 38-39쪽 각주는 nullam을 약자와 illam의 결합으로 설명한다. 자유의 경륜과 testamentum은 동격으로 읽어 곧 언약으로 옮겼다.

  33. 11.6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6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0장 5절이다. 인쇄면의 MASS. 표기는 x.6이므로 두 절 체계를 출처 데이터에서 구별했다.

    마가를 베드로의 통역자이자 그를 따르는 이로 옮겼다. 복음의 시작은 예언자들에게 기록된 대로라는 in prophetis의 형태를 유지했다.

    우리 하나님 앞에서 길들을 곧게 하라는 ante Deum nostrum이 두 번 나온다. Harvey 39쪽 각주 3은 복음서와 예언서의 인용 형태를 비교한다.

    Multus et dives Pater는 아버지가 풍성하고 부요하다는 뜻으로 읽었다. 저자는 여러 표현과 호칭으로 같은 하나님을 선포했다는 문맥에서 이 말을 쓴다.

    복음서 끝에서 마가가 말했다는 인용은 마가복음 16:19에 대응한다. 하늘로 받아들여짐과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시편의 말씀으로 확증하는 저자의 연결을 보존했다.

  34. 11.7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7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1-2절이다. 2절은 요한이 논쟁을 없앤다는 Abstulit autem a nobis에서 시작한다.

    요한의 집필 목적, 케린토스와 니골라파의 관계, 모노게네스와 로고스의 구별은 이레네우스가 전하는 설명으로 옮겼다. vulsio는 40쪽 각주 3의 식물 비유에 따라 곁가지로 읽었다.

    요한복음 1:3-4 인용은 nihil 뒤에서 끊고 Quod factum est를 다음 문장에 연결한 판본을 따랐다. 만들어진 것은 그분 안에서 생명이었다로 옮겼으며, 41쪽 각주 2가 이 문장 나누기를 설명한다. comprehenderunt는 붙잡았다의 뜻으로 옮겼다.

    infra Pleroma는 41쪽 각주 3이 설명하는 intra의 뜻에 따라 플레로마 안으로 옮겼다. 모든 것이라는 말의 포함 범위와 창조 세계의 위치를 논하는 조건문을 유지했다.

    42쪽 Hic은 각주 2에 따라 구원자 소테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위의 것들을 본뜬 형상이 생기도록 하는 일과 데미우르고스의 제작을 구별했다.

  35. 11.8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8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3-4절이다. 4절은 어느 하나님의 말씀인지를 묻는 Et ut non inquiramus에서 시작한다. 마리아를 통과함,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태어남, 위의 그리스도의 하강을 각각 다른 집단의 견해로 보존했다.

    요한복음 1:6-8 인용에서 빛을 증언하는 요한과 빛 자체를 구별했다. 43쪽 각주 1이 비교하는 Non erat ipse lumen 문장을 인쇄대로 유지했다.

    요한을 보낸 하나님, 가브리엘의 탄생 예고, 엘리야의 영과 능력, 창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저자의 논증을 옮겼다. 상대 집단이 말하는 데미우르고스의 무지와 요한의 증언 사이의 모순도 그 논박의 맥락으로 보존했다.

    요한은 오실 분을 예고하고 실제로 보며 가리키고 믿도록 권했다고 서술된다. 저자는 이 행위를 예언자와 사도 양쪽의 자리에 연결하며, 고린도전서 12:28의 사도와 예언자의 순서를 인용한다.

  36. 11.9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9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5-6절이다. 6절은 Deum enim, inquit, nemo vidit unquam에서 시작한다. 포도주 이야기로 바뀌는 인쇄 순서를 유지했으며, 43쪽 각주 5는 이 전환에 관한 결락 가능성을 논의한다.

    창조를 통해 포도원에서 난 포도주와 말씀을 통해 물로 만든 포도주를 구별했다. compendialiter ac simpliciter는 신속하고 간단하게로 옮겼다. 주님이 피조 재료 없이도 행할 수 있었으나 빵과 물을 사용하셨다는 가능성과 실제 행위를 나누었다.

    cum extra eum non sit는 아들이 아버지 밖에 계시지 않다는 뜻으로 읽었다. 바로 뒤의 아버지 품이라는 표현과, 보이지 않는 분이 보이는 분을 통해 주신다는 서술에 연결했다.

    요한복음 1:18 인용은 nisi와 unigenitus Filius Dei를 보존해 하나님의 외아들 외에는으로 옮겼다. 44쪽 각주 3은 nisi의 성경 본문상 근거를 문제 삼는다.

    Pater per Filium, Filii sui dat agnitionem에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 자신의 아들을 알게 하신다는 목적어를 유지했다.

    Nathanaël의 분음 부호를 보존했으며, Israelites는 나다나엘을 가리키는 단수로 읽었다. 인쇄 여백은 나다나엘에게 요한복음 1:47과 1:49, 베드로에게 6:69를 연결한다. 마태복음 16:16-17은 관련 병행 구절로 따로 기록했다.

    마태복음 12:18-21 인용의 Filius는 아들로, in contentionem은 다툼 속으로 옮겼다. 45쪽 각주 1-2는 종이라는 형태와 그리스어 네이코스·니코스의 차이를 비교한다. 한국어는 인쇄된 라틴어 표현을 유지했다.

  37. 11.10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10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7절이다. principia는 앞서 살핀 복음의 첫머리들로 옮겼다.

    에비온파와 마태, 마르키온과 누가, 예수와 그리스도를 분리하는 이들과 마가, 발렌티노스 계열과 요한의 관계를 저자의 보고로 보존했다. 마가복음을 선호하는 집단은 본문처럼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상태로 옮겼다.

    진리를 사랑하며 읽으면 바로잡힐 수 있다는 corrigi possunt의 가능성을 유지했다. 상대 집단도 이 복음서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저자가 자기 논증의 확고함을 도출하는 순서이다.

  38. 11.1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1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8절이다. 세상의 네 방면, 네 바람, 교회의 네 기둥, 네 생물과 복음의 네 모습을 연결하는 저자의 수적 논증을 보존했다.

    principales spiritus는 주된 바람, spiritus vitae는 생명의 영, uno spiritu는 하나의 영으로 옮겼다. 복음과 생명의 영을 교회의 기둥과 토대라고 부르는 문장의 주어와 서술어도 유지했다.

    본문의 배열에서 요한복음 서문을 인용하는 복음은 사자, 누가는 송아지, 마태는 사람의 얼굴, 마가는 날아가는 독수리의 특징과 대응한다. 라틴어에서 첫 복음은 한 복음이라고 표현하고, 그리스어 병렬문은 요한의 이름을 직접 적는다.

    제사장 사가랴와 작은아들을 찾은 일을 위한 살진 송아지, 마태복음의 계보와 탄생, 온유한 사람의 모습을 저자의 복음서 특징 설명으로 옮겼다.

    마가의 시작은 이 대목에서 이사야 예언자에게 기록된 대로라는 형태이다. 라틴어는 복음의 시작, 그리스어 병렬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으로 적는다. 앞선 Harvey 11장 6절의 예언자들에게라는 형태도 별도로 보존되어 있다.

    그리스어 병렬문의 긴 점열은 ...로 나타내고, 별표와 [Int. Ἰησοῦς], [suppl. καὶ λειτουργικήν]을 구별해 보존했다. 라틴어 actum과 그리스어 τάξιν의 차이는 49-50쪽 각주 6이 검토한다.

    네 언약은 라틴어의 아담, 노아, 모세, 복음 순서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은 노아의 홍수와 무지개, 아브라함의 할례, 모세, 복음의 순서이며 50쪽 각주 1도 이 차이를 설명한다. 두 전승의 목록을 각각 출처 데이터에 보존했다.

  39. 11.1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1장 1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1장 9절이다. 복음의 수와 모습을 더하거나 줄이는 이들의 동기를 구별하고, 50-51쪽의 짧은 그리스어 병렬문도 보존했다.

    partem은 한 몫으로 옮겼다. 51쪽 각주 1이 다른 판본의 pariter와 비교하는 인쇄 독법을 유지했다.

    요한복음과 예언의 영을 물리치는 이들은 본문의 Alii에 따라 다른 이들로 옮겼다. 거짓 예언자가 되기를 원한다는 pseudoprophetae esse volunt도 인쇄 문장대로 유지했다. 집단의 이름을 붙이는 각주의 해석은 본문과 구별한다.

    바울이 교회에서 예언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알고 있다는 표현을 유지했다. 이런 이들이 바울도 받지 않으리라는 말은 저자가 앞의 주장으로부터 도출하는 추론이다.

    『진리의 복음』은 발렌티노스 계열이 근래의 저술에 붙였다고 보고되는 제목이다. 그 문헌을 진리의 복음으로 가정하면 사도들이 전한 것과 모순된다는 조건부 논박을 보존했다.

    마지막은 복음서의 첫머리들에서 저자들의 견해를 살핀 뒤 다른 사도들과 주님의 말씀으로 넘어가겠다는 저술 순서이다. 인쇄 52쪽에서 다음 Harvey 12장이 시작한다.

  40. 12.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절이다. 열두 사도의 수를 채우는 베드로의 말과 성령의 내려오심을 나누어 옮겼다.

    사도행전 1장 인용의 Episcopatum은 감독직으로 옮겼다. 다윗의 말들을 근거로 사도의 수를 채운다는 저자의 설명도 보존했다. 인쇄 52쪽에서 그리스어 병렬문 앞뒤로 갈라진 Apostolorum은 한 단어로 연결했다.

    사도행전 2장 인용의 제삼시, 새 포도주, 주께서 말씀하신다는 호칭과 모든 육체에 영을 부어 예언하게 한다는 형태를 유지했다.

    53쪽의 [ei]는 각주 1이 et에서 생겼다고 설명하는 대괄호 표기이다. 이 대명사를 제외하고 하나님이 친히 영을 보내셨다는 문장으로 옮겼다. 두 짧은 그리스어 병렬문은 인쇄면과 카테나 참조에 연결했다.

  41. 12.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2절이다. 베드로의 말 안에 인용된 다윗과 주님의 말씀, 뒤의 저자 해설을 구별했다.

    inferorum과 inferno는 앞선 번역과 같이 저승으로 옮겼다. 53쪽 각주 4는 인용의 저승과 죽음의 독법을 비교한다. 54쪽의 그분이 버려지지 않았다는 구절에서는 인쇄대로 혼이라는 말을 따로 덧붙이지 않았다.

    이 선물이라는 donationem hanc와 예수의 이름이라는 in nomine Jesu를 보존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주님과 그리스도로 삼으셨다는 문장의 주체와 대상을 유지했다.

    라틴어의 Deum Patrem은 하나님 아버지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은 Θεὸν καὶ σωτῆρα로 되어 있으며, 위로 날아감에 해당하는 자리에도 서로 다른 독법이 있다. 54쪽 각주 4-5와 함께 각각 기록했다.

    인쇄 54-55쪽에 나뉜 mor-와 tuis는 mortuis로 연결하고 54쪽에 귀속했다. 수난과 부활을 겪는 그리스도와 수난을 겪지 않는 다른 그리스도를 구별하는 견해에 대한 논박을 유지했다.

  42. 12.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3절이다. 베드로의 치유 명령, 군중에게 한 말, 그 안의 모세 인용과 저자 해설을 구별했다.

    gressus et plantae는 발걸음과 발바닥으로 옮겼다. 예수 그리스도 나사렛 사람의 이름, 걷고 뛰며 성전에 들어가는 동작을 각각 유지했다.

    in judicium은 재판에, aggravastis는 억눌렀으며로, fecistis nequam은 악한 일을 했다는 뜻으로 옮겼다. 빌라도가 놓아주려 했다는 vellet도 유지했다. 55쪽 각주 1-4가 이 인용 형태들을 비교한다.

    refrigerium은 쉼을 얻음, praeparatum은 준비됨, dispositio는 정돈의 뜻으로 옮겼다. 56쪽 각주 3-5는 그리스어 인용과 라틴어의 관계를 논의한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 복을 주심과 각자가 악행에서 돌아서는 목적을 구별했다. 마지막은 예수 안에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을 선포한다는 표현으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의 τὸν [τοῦ]도 따로 보존했다.

  43. 12.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4절이다. salvatus는 치유의 문맥에서 낫게 됨으로, 마지막 salvari는 구원받음으로 옮겼다.

    머릿돌과 다른 이름에 관한 인용은 인쇄된 범위대로 옮겼다. 57쪽 각주 4의 문구 보충 제안은 대조 정보로 구별했다.

    [excitavit,]는 뒤에 반복된 동사와 함께 대괄호로 제시되어 있다. 앞의 중복 동사를 제외하고, 예언자들을 보낸 바로 그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켰다는 문장으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도 보존했다.

  44. 12.5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5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5절 앞부분이다. 비교 전사의 한 문단에 4절과 5절이 함께 들어 있으나, 인쇄본의 번호에 따라 별도 단위로 나누었다.

    치유의 표적이 일어난 이가 마흔 살을 넘었다는 plusquam XL의 한정을 유지했다. 대제사장들의 반응과 돌아온 사도들의 보고, 온 교회의 기도를 구별했다.

    기도의 다윗은 우리 조상이자 주님의 종으로, 예수는 주님이 기름 부으신 거룩한 아들로 옮겼다. 이 성읍에서 모임, 주님의 손과 뜻이 미리 정한 일이라는 인용 형태도 보존했다.

  45. 12.6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6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5절 나머지이다. 모든 교회가 시작된 교회, 큰 도성과 새 언약 시민들의 목소리라는 서술을 보존했다.

    Filius Jesus [Filium Jesum]에서는 목적격 교정을 채택했다. invocaverunt의 대상으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를 나란히 읽어 옮겼다.

    사도행전 5장 인용의 gloria sua는 자신의 영광으로, credentibus ei는 그분을 믿는 이들에게로 옮겼다. 59쪽 각주 2는 영광과 오른손의 독법 관계를 논의한다.

    성전과 집이라는 in templo et in domo를 유지했다. 59쪽에서 사도행전 인용 활자가 Christum Jesum에서 끝나므로, 뒤의 Filium Dei는 곧 하나님의 아들을 전했다는 저자의 설명으로 나누어 옮겼다.

  46. 12.7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7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6절이다. 사도들이 청중의 기존 믿음에 맞추어 말했다는 상대의 주장과, 그 가정에서 나오는 결론을 구별했다.

    진리의 규범을 아무도 알 수 없고 주님의 오심도 무익해진다는 문장들은 상대의 주장을 시험하는 논박이다. omnes discipuli omnibus는 제자들이 각자의 스승을 탓하는 상황으로 풀어 옮겼다.

    수난을 겪지 않는 더 높은 구원자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 아니라면 죄가 더 작았으리라는 조건을 유지했다. 이 조건은 저자가 상대의 구원자 이해를 받아 논박하는 부분이다.

  47. 12.8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8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7절 앞부분이다. 사도행전의 서술, 천사의 말, 하늘의 음성, 베드로의 설교를 구별했다.

    코르넬리우스의 제구시와 천사가 구제를 언급하는 인용 형태를 보존했다. commune는 속되다는 뜻으로 옮겼다. 60쪽 각주 5에 따라 그가 섬기던 분이라는 관계절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읽었다.

    [Filii]는 판본이 보완한 단어로, 한국어에도 [아들을]이라고 표시했다. 61쪽 각주 1은 Filii의 약자가 ei에 흡수되었을 가능성을 설명하며, 병렬 그리스어에는 τοῦ Υἱοῦ가 있다.

    부활 뒤 함께 먹고 마신 증인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심판자, 그 이름을 통한 죄의 용서라는 베드로의 선포를 각각 유지했다. 두 그리스어 병렬문과 대괄호 교정도 원문 자료에 보존했다.

  48. 12.9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9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7절 나머지이다. 사도들이 이미 알려진 하나님과 그 아들의 오심을 선포했다는 저자의 설명으로 옮겼다.

    in quem baptizari는 그분 안에서 세례받음으로 옮겼다.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분과 동일하다는 문장은 저자가 베드로의 증언에서 이끌어 내는 설명이다.

    사도들이 다시 살아나 상대 집단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그들의 주장에서 나오는 결론을 반어적으로 제시한다. 그들의 말대로라면이라는 조건을 앞에 두어 논박의 흐름을 유지했다.

  49. 12.10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0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8절이다. 필리포스와 내시가 단둘이 나눈 대화 및 이사야 인용을 보존했다. Nativitatem은 나심으로 옮겼다.

    내시의 고백은 라틴어 본문의 예수라는 호칭을 따랐다. 병렬 그리스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이 있으며, 두 형태를 각각 기록했다.

    [adj. jam]의 보완 제안을 [jam]으로 채택하여 한국어에 [이미]를 표시했다. 62쪽 각주 2는 이 말이 Filium에서 빠졌을 가능성을 설명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전할 내용은 내시가 믿게 된 고백으로 옮겼다.

  50. 12.1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9절 앞부분이다. 회심 뒤의 바울, 아레오파고스 설교, 모세 인용과 저자의 설명을 구별했다.

    수난을 겪은 예수가 주님·왕·하나님·심판자라는 호칭과 하나님께 권한을 받는 관계를 유지했다. 유대인들이 자리에 없었다는 말은 저자가 설교 상황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사도행전 17장 인용의 tractatur와 tractare는 만짐과 더듬어 느낌으로 옮겼다. 63쪽 각주 1이 이 독법을 논의한다. 같은 쪽 대괄호의 중복 보충 동사 [fecerit,]는 제외했다.

    한 피, 거주의 정함에 따른 때, 여러분에게 속한 어떤 이들, 한 사람 예수라는 인용 형태를 유지했다. in quo statuit fidem은 그분 안에 믿음의 확증을 두셨다는 뜻으로 옮겼다.

    신명기 32장 인용의 하나님의 천사들의 수를 보존했다. 이미 공개한 클레멘스 1서 29.2의 병행 인용을 고정 주소에 연결했다. Harvey 64쪽 각주의 설명과 Lake 인쇄 58쪽에서 확인한 θεοῦ의 상태는 별도의 대조 기록에 담았다.

  51. 12.1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9절 나머지이다. Lystris Lyciae는 리키아의 루스드라로 옮겼다. 65쪽 각주 2는 지명을 Lycaoniae로 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도행전 14장 인용의 vobis와 vestra를 청중에게 말하는 여러분으로 옮겼다. 비와 열매 맺는 때, 음식과 마음의 기쁨을 각각 보존했다.

    ostendimus [ostendemus]에서는 미래형 교정을 채택하여 뒤에서 보이겠다는 저술 계획으로 옮겼다. 마지막은 성경의 증거를 설명하는 저자가 독자에게 너그럽게 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문맥이다.

  52. 12.1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0절이다. 스테파노스를 첫 집사이자 주님의 순교 발자취를 처음 따른 이로 설명하는 저자의 진술을 보존했다.

    사도행전 7장 인용 안의 아브라함에게 한 명령과 후손에 대한 약속을 구별했다. 발 디딜 만큼의 유산, 사백 년의 괴로움, 할례의 언약과 이사악 출생을 인쇄 형태대로 옮겼다.

  53. 12.1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1절이다. 사도들의 가르침, 할례의 표징,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연결하는 설명으로 옮겼다.

    더 위의 하나님이 있다는 가정을 세운 뒤 각자의 행한 일을 비교하는 논박을 구별했다. ex abundanti per comparationem은 비교를 한 걸음 더 밀고 나가는 가정으로 풀었다.

    inveniet의 삼인칭을 유지하고,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대상은 저자가 앞서 펼친 논의로 읽었다. 66쪽 각주 3은 다른 사본의 이인칭과 번역상의 가능성을 함께 설명한다.

    율법과 새 언약의 은혜가 각각 시대에 알맞게 주어졌다는 결론을 유지했다. 논쟁에 병들었다는 표현의 인쇄 여백은 디모데전서 6:4를 가리킨다.

  54. 12.15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5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2절이다. 모세의 율법에 대한 반응, 시몬 마고스의 가르침, 사도들보다 더 안다는 주장을 저자의 설명과 상대의 주장으로 나누었다.

    누가에 따른 복음서와 바울 서신을 줄였다는 보고를 보존했다. 다른 글에서 논박하겠다는 말은 저술 계획으로 옮겼다. Harvey 67쪽 각주가 든 유세비우스 교회사 5.8.9의 위치를 확인하고 별도 대조 기록에 연결했다.

    68쪽 본문의 tolerabiliorem을 더 참을 만하다는 비교로 옮겼다. 각주 1은 Arundel 사본에 근거한 이 독법을 설명한다. propositum initii sui는 그들이 말하는 근원에 관한 주장으로 읽고, 이어지는 발렌티노스 계열과의 비교를 유지했다.

    플레로마 안의 아이온과 그 밖으로 쫓겨난 결함을 구별했다. 끝의 언약들 사이의 차이, 통일성과 조화는 저자가 뒤에서 다루겠다고 예고하는 주제이다.

  55. 12.16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6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3절이다. 완전한 가르침과 순교의 완성을 연결하는 흐름으로 옮겼다. martyrii magistrum은 순교의 스승으로 옮겼다.

    스테파노스가 본 인자는 하나님의 오른편에 서 있는 분으로 옮겼다.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위한 기도와 호세아 인용을 구별했다. similatus sum은 예언자들의 손을 통해 비유로 나타났다는 수동형으로 읽었다.

    청중의 기존 견해에 맞추었다면 수난을 겪지 않았으리라는 조건을 유지했다. 유대인들에게 전한 예수의 아들 됨과 심판 및 왕권, 그리스인들에게 전한 창조자와 그 아들을 나누어 옮겼다.

  56. 12.17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7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4절이다. 안티오키아의 사건과 그리스도인 호칭, 예루살렘에서의 베드로와 야고보의 말, 사도들의 편지를 구별했다.

    베드로의 말에서 여러분 가운데라는 in vobis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보존했다. 야고보의 말 안의 아모스 인용도 따로 표시했다. opus는 그분이 하실 일이라는 단수의 뜻으로 옮겼다.

    야고보의 말과 편지에는 각각 세 금지 항목과 자신에게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말이 들어 있다. 70쪽 각주 3-4는 우상에 관한 두 표현과 목 졸라 죽인 것에 대한 항목의 생략을 논의한다. 한국어는 각 인용에 인쇄된 항목과 순서를 유지했다.

    Apostoli et Presbyteri fratres는 사도들과 장로들인 형제들을 발신자로 읽었다. 명한 적이 없다는 관계절은 혼란을 일으킨 사람들에게 연결했다. nostram sententiam은 우리의 뜻으로 옮겼다.

    편지 마지막의 ambulantes in Spiritu sancto를 성령 안에서 행하며로 보존했다. 이어지는 자유의 새 언약은 저자가 편지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57. 12.18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8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5절 앞부분이다. 첫 언약에 대한 두려움과 베드로의 방문, 세례의 이유를 연결하는 설명으로 옮겼다.

    conterritus는 환상으로 두려워졌다는 본문대로 옮겼다. 71쪽 각주 1의 constrictus 교정 제안은 판본 정보로 구별했다. 사람을 속되거나 더럽다고 부르는 일과, 사람들이 예언하는 것을 들었다는 표현도 유지했다.

    그리스어 병렬문 앞뒤로 나뉜 contradictione를 연결했다. 병렬 그리스어의 Ἴσως γὰρ와 라틴어의 Sic aeque는 각각 보존했으며, 한국어는 라틴어의 마찬가지로라는 연결을 따랐다.

  58. 12.19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2장 19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2장 15절 나머지이다. 72쪽 여백의 9라는 표기와 구별하여, 71쪽 본문의 19절 시작에 이어지는 구간으로 연결했다.

    concedentes nos Spiritui Dei의 nos를 우리로 옮겼다. 야고보와 함께 있는 사도들과 그들이 이방인에게 허용한 자유를 저자의 일인칭 서술대로 보존했다.

    베드로가 함께 먹던 자리에서 물러난 이유와 바르나바에 대한 바울의 보고를 구별했다. 베드로·야고보·요한이 주님과 동행했다는 서술은 저자의 마지막 논증에 연결해 옮겼다.

  59. 13.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3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3장 1절이다. 바울만 진리를 알았다는 주장에 대해, 베드로와 바울의 사도직 및 여러 사도의 동일한 선포를 근거로 답하는 흐름을 유지했다.

    부활 뒤 보았다는 두 문장에는 모두 Deum이 인쇄되어 있어 하나님으로 옮겼다. 72쪽 각주 3과 73쪽의 이어지는 각주는 Dominum의 약자가 잘못 읽혔을 가능성을 설명한다. 채택 본문의 독법과 그 교정 제안을 구별했다.

    좋은 소식과 평화를 전하는 이들의 복수를 보존했다. 인쇄 72-73쪽에 나뉜 resurrectionem을 한 단어로 연결하고 시작 쪽인 72쪽에 귀속했다.

  60. 13.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3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3장 2절이다. 필리포스에게 한 주님의 대답과, 그것을 근거로 사도들의 앎을 설명하는 저자의 말을 구별했다.

    열두 사도, 일흔 명, 베드로의 계시를 각각 보존했다. 마지막 갈라티아서 인용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를 통한 바울의 사도직이라는 호칭을 유지했다.

    Sicut ergo는 바울의 사도직과 앞서 언급한 이들을 연결하는 문장으로 옮겼다. eos와 eis는 그들을 가리키는 복수이다. 73쪽 각주 1은 문장의 누락을 추정하는 견해와 기존 문맥으로 이어 읽는 견해를 비교한다.

  61. 13.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3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3장 3절이다. 예루살렘 방문의 목적과 바울의 회고, 사도행전과 연대를 비교하는 저자의 설명을 구별했다.

    갈라티아서 2:5의 Ad horam cessimus subjectioni는 잠시 순종하며 양보했다는 긍정형으로 옮겼다. 74쪽 각주 1은 부정어가 있는 독법과 이 인용의 의미 차이를 설명한다.

    갈라티아서 2:1의 십사 년, 바르나바와 디도, 계시에 따른 방문을 인쇄대로 보존했다. 그 연대가 사도행전과 일치한다는 말은 저자의 비교 결과를 보고하는 문장이다.

  62. 14.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4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4장 1절이다. 누가 자신이 쓴 동행 기록과 바울 서신을 근거로 누가의 신뢰성을 논하는 저자의 설명을 옮겼다.

    트로아스에 왔다는 우리라는 인칭, 마케도니아 사람의 꿈, 바울이여라는 부름과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호칭을 보존했다. 항해의 경로와 트로아스에서 머문 이레도 각각 옮겼다.

    parasema는 배들의 표장으로 옮겼다. 바울이 그 섬의 우두머리를 고쳤다는 principem과, 현재 다른 것을 가르치는 이들보다 누가가 앞선 사람이라는 seniorem도 본문대로 보존했다.

    elatus는 거만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옮겼다. 75쪽 각주 2의 그리스어 독법 설명은 별도로 구별했다. 디모데후서의 누가만 함께 있다는 말, 골로새서의 사랑하는 의사라는 호칭, didicit의 배웠다는 동사를 유지했다.

  63. 14.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4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4장 2절이다. 밀레토스에 모인 이들은 에베소와 인근 도시들에서 온 감독들과 장로들로 옮겼다.

    사도행전 20장 인용의 regere는 다스리다, ecclesiam Domini는 주님의 교회, sibi constituit per sanguinem suum은 자신의 피로 자신을 위해 세우셨다는 뜻으로 옮겼다. 76쪽 각주 3-5는 이 표현들을 대조한다.

    하나님의 모든 뜻을 알렸다는 반복 인용과, 아무에게도 아끼지 않고 배운 것을 전했다는 설명을 유지했다. 누가복음 서문의 직접 보고 말씀을 섬긴 이들에 관한 인용은 마지막에 구별했다.

  64. 14.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4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4장 3절이다. 누가를 통해 알게 되었다는 내용의 목록과 그 범위는 저자가 제시하는 설명으로 옮겼다. 탄생과 세례에서 부활까지 열거 순서를 유지했다.

    열두 살과 티베리우스 제십오 년, 열여덟 해를 구별했다. 부자들에게 하는 화의 선언과, 조상들이 거짓 예언자들에게 했다는 인용 형태를 보존했다.

    77쪽 괄호 안의 omnes는 모두로 옮겼다. 판본 각주 2는 이를 다른 복음서 저자들로 설명한다. 본문의 괄호와 뒤에 이어지는 행적 목록을 구별했다.

    부자의 혼을 요구한다는 expostulabunt는 그들이 요구할 것이라는 복수로 옮겼다. 78쪽 luscos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이들로, ad nuptias는 혼인 잔치로 옮겼다. 각주 1의 caecos 독법과 본문의 표현을 구별했다.

    76-77쪽의 exclamationem은 한 단어로 연결하고 시작 쪽인 76쪽에 귀속했다. 마르키온과 발렌티노스도 내용을 이용한다는 말과, 부활 뒤 길에서의 대화 및 빵을 떼며 알아본 일을 끝에 보존했다.

  65. 14.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4장 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4장 4절이다. 누가의 내용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두 경우와, 각 경우에 마르키온·발렌티노스 계열이 감당해야 할 결과를 구별했다.

    perfecto Evangelio는 온전한 복음으로 옮겼다. 끝의 회개와 위험에서 구원받으라는 권고는 저자가 상대 집단에 제시하는 결론이다.

  66. 15.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5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5장 1절이다. 누가의 복음서 내용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바울에 관한 증언도 받아들이라고 요청하는 논증으로 옮겼다.

    바울에게 말하는 이는 주님이며, 아나니아스에게 바울에 관해 말씀하시는 이도 주님으로 읽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 이방인들과 왕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라는 범위를 유지했다. ex ipso는 79쪽 각주 4의 시간 해석을 따라 그때부터로 옮겼다.

    plurima Evangelia는 앞장의 누가 본문 목록에 이어 복음의 많은 내용으로 옮겼다. 누가의 뒤이은 증언은 사도들의 행적과 가르침에 연결된다. 78-79쪽의 locutum은 연결하여 78쪽에 귀속했다.

  67. 15.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5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5장 2절이다. 상대 집단이 교회 사람들에게 붙인 호칭과 불평, 가르치는 방식에 대한 저자의 묘사를 구별했다.

    communes et Ecclesiasticos는 보통 사람들, 교회 사람들이라는 두 호칭으로 옮겼다. 79-80쪽 각주 6-7은 communes와 καθολικούς의 관계 및 et의 복원을 설명한다.

    80쪽의 discere는 배우다, omnes는 모두로 유지했다. 판본 각주 3은 discernere와 omnino의 추정을 비교하면서, 그럴듯한 주장을 인용된 성경의 진리에서 배울 수 있다고 여기는 상황으로 풀이한다.

    어린 양의 비유와 imitationem 및 redemtionem은 그들을 따르는 일과 그들의 구속으로 옮겼다. institorio는 81쪽 각주 1의 제안에 따라 뽐내는 걸음으로 읽었다. 80-81쪽의 inflatus는 한 단어로 연결했다.

    선한 행실을 요구하며 근엄함을 꾸미는 이들과 경멸하며 사는 대다수를 구별했다. 플레로마 안의 쉼의 장소에 관한 마지막 말은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다.

  68. 15.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5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5장 3절이다. 진리의 선포자와 자유의 사도라는 호칭, 한 하나님 아버지와 그 말씀, 모세와 율법 및 조상들의 부름을 연결하는 결론으로 옮겼다.

    qui in omnibus principatum habet는 만물에서 으뜸이신 말씀에 연결했다. 마지막은 사도들과 그 제자들의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그들 자신의 말에서 확인된다는 저자의 설명이다.

  69. 16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6장은 절 번호 없는 하나의 본문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1절이다. 상대 집단들의 서로 다른 주장을 차례로 보고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예수를 아들, 그리스도를 아버지, 하나님을 그리스도의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와, 겉으로만 수난을 겪었다는 견해를 구별했다. 발렌티노스 계열의 예수는 마리아를 통과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위에서 내려온 구원자를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호칭을 인쇄대로 유지했다. 82쪽 각주 1의 Totum 추정은 판본 정보로 구별했다. 받아들이는 그릇이라는 receptaculum은 예수와 구원자에 각각 적용되는 대로 옮겼다.

    괄호 안에서는 모노게네스에게서 보내진 그리스도,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는 구원자, 수난을 겪는 경륜의 존재를 나누었다. 플레로마로 돌아가는 주체는 그리스도를 지닌 구원자로 읽었다. 각주 7이 비교하는 목적격과 탈격 가운데 인쇄 본문의 목적격을 보존했다.

    끝의 submissi a Satana는 사탄에게 보내진 이들이라는 저자의 비판으로 옮겼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제시하겠다는 계획과 앞으로 나타날 교사들을 미리 가리켰다는 진술을 구별했다.

  70. 17.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2절이다. 요한과 마태의 증언, 마태 안의 천사 및 예언자 인용을 구별했다.

    Christi autem generatio는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반복하여 옮겼다. 예수의 탄생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는 문장과 대비하는 것이 저자의 논증이다. 83쪽 각주 1이 이 호칭의 독법을 설명한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으로 풀었다. 요한복음 1:13-14를 결합한 인용에서는 육신의 뜻, 남자의 뜻, 하나님의 뜻을 구별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단수 서술을 유지했다. 83-84쪽 각주 5가 단수 독법을 논의한다.

  71. 17.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3절 앞부분이다. 로마서 서두와 9:5, 갈라티아서 4:4-5의 인용 및 저자의 해설을 나누었다.

    praedestinatus의 두 용례는 미리 정해짐으로, Spiritus sanctificationis는 거룩하게 하는 영으로 옮겼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이라는 인쇄된 인용 형태도 유지했다.

    로마서 9:5는 그리스도에게 이어지는 하나님 호칭과 만물 위에 계심 및 영원한 찬송을 보존했다. 갈라티아서의 factum은 여자에게서 남과 율법 아래 있게 됨을 각각 나타내도록 옮겼다.

    죽은 이들의 맏이와 모든 피조물 가운데 맏이를 구별했다. 마지막은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을 품고 받아들이고 껴안는 세 동작을 보존했다.

  72. 17.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3절 나머지와 4절 앞부분이다. 마가 인용에서 시작하여 시메온의 고백에 대한 저자 설명까지 포함한다.

    마가의 서두는 예언자들에게 기록되었다는 인용대로 옮겼다. magni consilii Patris nuntius는 아버지의 큰 뜻을 전하는 사자, Orientem et justum은 돋아나는 이, 곧 의로운 이로 읽었다. 다윗의 집과 구원의 뿔, 시편의 세대별 전승을 이어지는 문맥으로 유지했다.

    시메온은 동정녀의 맏아들을 손에 안은 이로 옮겼다. lumen omnium은 모든 이의 빛으로, 잠든 이들의 pax와 refrigerium은 평화와 쉼으로 구별했다.

  73. 17.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4절 나머지이다. 사람들의 무지를 걷어 내는 일을 빼앗음에, 그분을 아는 이들을 나눔에 연결한 저자의 이사야 해석을 보존했다.

    이사야 8장의 이름 풀이와 아시리아 왕에 맞서는 인용을 구별했다. 마기들이 돌아가지 않은 아시리아인들의 길, 숨긴 손으로 아말렉과 싸운다는 출애굽기 인용 형태도 유지했다.

    다윗 집의 아이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죽임당하고 그분의 왕국으로 먼저 보내졌다는 서술은 저자의 순교 해석으로 옮겼다. 아이들과 주님이 모두 아기였다는 표현도 보존했다.

  74. 17.5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5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5절이다. 부활 뒤의 말씀,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 요한 서신의 적그리스도 진술을 나누었다.

    86쪽의 [et sic oportebat]와 [poenitentiam in]은 의문을 표시한 대괄호와 함께 보존했다. 한국어에는 [또 그렇게 되어야 했다.]와 죄의 용서[에 이르는 회개]로 해당 범위를 표시했다. 각주 4가 이 구절들의 복원과 사본 상태를 설명한다.

    인자의 십자가형과 사흘째 부활, 요한복음 20:31의 그리스도 호칭과 영원한 생명을 인쇄대로 옮겼다. 요한의 서신 인용에서는 자신들이 떠난 일과 속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구별했다.

    negat quoniam Jesus non est Christus는 negat와 non을 모두 갖춘 인쇄문을 유지했다. 한국어는 부인하는 내용이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주장임을 드러내도록 옮겼다.

  75. 17.6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6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6절이다. 태어나고 수난을 겪은 이에게 라틴어 본문이 붙인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보존했다. 데미우르고스 및 요셉과 연결되는 설명들도 저자의 열거대로 옮겼다.

    unitus et consparsus는 결합되고 섞임으로 옮겼다. 87쪽 각주 5는 consparsus를 긴밀한 결합의 뜻으로 풀이한다. recapitulans는 제1권의 용례와 같이 자신 안에 하나로 모음으로 옮겼다.

    In omnibus autem est et homo는 하나로 모이는 만물 안에 하나님께서 빚으신 사람도 포함된다는 뜻으로 옮겼다. 보이지 않음과 보임, 수난을 겪지 않음과 겪을 수 있음의 대조는 같은 분의 성육신을 설명한다.

    Harvey 87-88쪽 각주 7의 병행 표현을 이그나티우스의 폴리카르포스에게 보낸 편지 3.2에 연결했다. Lake 270쪽과 공개 고정판을 확인했으며, Harvey 각주의 확장 전승 보충 제안은 중간 전승 본문과 구별했다. 비교 전사의 한 문단에 붙어 있던 7절도 인쇄 번호로 나누었다.

  76. 17.7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7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7절이다. 아버지가 미리 아신 때와 아들이 일을 이루는 순서를 연결해 옮겼다.

    compendii poculo는 단번에 마련되는 잔으로 읽었다. 가나의 포도주를 다룬 앞선 문맥과 Keble 269쪽의 해석을 비교했다. Harvey 88쪽 각주 2는 그리스도의 수난을 집약하는 잔이라는 해석을 제안하며, 이 차이는 검토 항목으로 남겼다.

    하박국 인용의 해들이 가까워짐, 때가 옴, 진노 속에서 흔들리는 혼, 자비를 기억함을 각각 유지했다. 마지막의 풍성하고 다양함은 한 분이 여러 관계에서 구원자·주님·하나님·아들·그리스도·말씀으로 일하시는 열거와 함께 옮겼다.

  77. 17.8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8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8절이다. 분리된 여러 존재를 상정하는 견해, 겉의 양과 속의 이리라는 비유, 요한 서신 인용을 구별했다.

    요한이서 인용의 Videte eos는 그들을 살피라로 옮겼다. 앞서 말한 편지라는 저자의 호칭은 그대로 두고, 인용 위치는 요한이서 7-8절로 연결했다. 89쪽 각주 4가 편지의 지시 관계를 논의한다.

    요한일서 인용의 de saeculo는 세상에서 나옴, qui solvit Jesum Christum은 예수 그리스도를 갈라놓는 영으로 옮겼다. 90쪽 각주 1-4는 이 인용 형태를 대조한다. 쪽 경계의 pseudoprophetae는 연결했다.

    carnalem ejus assumtionem은 하늘의 문이 열림과 같은 육신으로 다시 오심의 문맥에서 육신으로 올라가심으로 읽었다. 인쇄된 그리스어 병렬문의 ἔνσαρκον ἀνάληψιν과 Keble 270쪽도 비교했다. 테오도레토스 대화편을 가리키는 인쇄 참조는 병렬문과 함께 보존했다.

  78. 17.9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7장 9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6장 9절이다. 로마서 인용들을 통해 태어나고 수난을 겪고 부활한 그리스도의 동일성을 설명하는 흐름을 유지했다.

    로마서 5:17의 in vitam은 생명에 이르도록으로 옮겼다. 5:6의 Ut quid는 왜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는가라는 질문으로 유지했다. 91쪽 각주 2는 이 의문 표현과 다른 독법을 비교한다.

    로마서 6:3-4와 8:11은 인쇄된 인용 범위대로 옮겼다. 로마서 8:34 앞의 simul autem은 저자가 인용을 잇는 말로 읽었다. 91쪽 각주 3이 그 문장 경계를 설명한다.

    Unum quod non exclamat은 거의 이렇게 외치는 셈이라는 뜻으로 옮겼다. 뒤의 긴 단락은 바울의 뜻을 저자가 풀어 제시하는 말이며, 맞서 때리지 않음과 위협하지 않음,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의 용서를 청함을 보존했다.

  79. 18.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8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7장 1-2절이다. 예수에게 내려오신 영, 세례 명령, 오순절과 사마리아 여인의 생수를 하나의 논증으로 이어 옮겼다.

    docete는 가르치다로, regeneratio in Deum은 하나님을 향해 새로 태어남으로 옮겼다. 영이 인자와 함께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데 익숙해졌다는 assuescens도 저자의 표현대로 유지했다.

    Spiritu principali는 다스리는 영으로 옮겼다. 92쪽의 인쇄 여백은 Ps. l. 13.이며, 같은 구절의 KJV 위치는 시편 51:12로 확인해 별도 기록에 연결했다.

    여러 언어로 부르는 한 찬송과 민족들의 첫 열매, 마른 밀과 물 및 한 빵의 비유를 구별했다. 몸은 씻음으로, 혼은 영으로 썩지 않음에 이르는 일치를 받는다는 구분을 보존했다.

    사마리아 여인의 여러 혼인에 대한 평가는 저자의 서술로 옮겼다. quam은 앞선 생수를 가리키는 여성 관계대명사로 읽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생수의 선물을 나누어 주고 성령을 온 땅에 보낸다는 연결을 유지했다.

  80. 18.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8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7장 3절이다. 기드온의 청이 바뀐 일을 양털과 온 땅의 이슬을 대조하는 저자의 예언적 해석으로 옮겼다.

    양털을 백성의 모형으로 보고, 그 위의 마름과 온 땅에 내리는 이슬을 성령에 연결하는 해석을 보존했다. 이사야의 비와 영에 관한 인용은 각각 구별했다.

    지식과 경건의 영,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을 나누어 옮겼다. Paracletus는 보혜사로 통일하고, 고발자가 있는 곳에서 사람을 돕는 역할을 함께 읽었다.

    강도 만난 자기 사람을 성령께 맡기는 설명에서, 왕의 데나리온 두 닢과 아버지·아들의 형상 및 명문을 보존했다. 뒤의 denarium은 단수이므로 한 닢으로 옮겼다. 맡긴 것을 늘려 주님께 돌려드림은 저자가 두 비유를 연결한 해석이다.

  81. 18.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8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7장 4절이다. super praedictam dispositionem은 앞서 말한 경륜 위에로 옮겼다. 94쪽의 그리스어 병렬문은 미리 정해진 경륜을 통함이라는 표현이며, 두 형태를 각각 보존했다.

    그리스어의 [adde, δι᾽ ἄνθρωπον] 보충 표지와 예수라는 호칭, καὶ δοκήσεις를 유지했다. 판본 각주 1-2의 그리스도 호칭 추가와 형용사 교정 제안은 본문과 구별했다.

    여러 존재를 나누는 상대의 설명과 그들을 경계하라는 독자에 대한 요청을 구별했다. 데미우르고스 곁에 앉아 그의 능력을 비운다는 목적어 관계를 유지했다.

    affectionis eorum은 그들의 성향으로 옮겼으며, eorum은 가르치는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각주 5가 비교하는 infectionis 교정 제안과 인쇄된 표현을 구별했다. 우유와 석고의 비유는 말의 겉모습과 그 안의 해로운 가르침을 연결한다.

    마지막 격언은 자기보다 앞선 어떤 이의 말로 소개되어 있다. 이 소개와 격언을 함께 보존했다. 95쪽 각주 3은 격언이 난외 주석이라는 견해와 저자가 소개한 인물의 말이라는 견해를 비교한다.

  82. 19.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1절이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과 마지막 때의 성육신, 아담 안에서 잃었던 형상과 닮음을 회복하는 목적을 구별했다.

    longam hominum expositionem은 인류의 긴 내력으로, recapitulavit은 자신 안에 하나로 모음으로 옮겼다. in compendio는 구원을 집약하여 베푸는 뜻으로 읽었다. 95쪽 각주 4는 이 표현을 그리스어 συντόμως와 비교한다.

  83. 19.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2절과 3절 앞부분이다. 다시 빚음과 승리의 상, 죄 아래 있는 이의 구원을 아들이 이루는 일로 옮겼다.

    로마서 인용을 다시 말하는 주체는 95쪽 각주 6에 따라 바울로 읽었다. liberare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풀어냄으로, 로마서 14:9는 삶·죽음·부활의 순서대로 옮겼다.

    고린도전서 인용의 예수라는 호칭과 축복의 잔에 관한 질문을 유지했다. 호로스에 붙은 id est fini는 곧 한계라는 라틴어 번역자의 풀이로 보존했다. 버터와 꿀, 사람을 알아보는 예언자의 질문은 임마누엘에 관한 대목에 연결했다.

  84. 19.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3절 나머지이다. 수난과 사람 됨, 죽음을 말할 때 바울이 사용하는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중심으로 인용들을 연결했다.

    음식 때문에 형제를 멸망시키는 일,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짐, 율법의 저주와 나무에 달림, 약한 형제에 관한 인용을 각각 구별했다. 96-97쪽의 테오도레토스 그리스어 병렬문도 따로 보존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함축된 기름을 부으신 분, 기름 부음 받은 분, 기름 부음 자체를 나누어 옮겼다. 이사야 인용의 Spiritus Dei는 하나님의 영으로 유지했다.

  85. 19.4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4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4절과 5절 앞부분이다. 베드로의 고백에서 제자들의 수난과 순교자의 증언까지 이어지는 단위이다.

    수난 예고의 제사장들, 버림받음과 십자가형을 유지했다. 첫 목숨 인용은 구할 것이다로, 뒤의 반복 인용은 찾을 것이다로 옮겨 두 동사를 구별했다.

    위의 십자가라는 상대의 해석과 실제 수난의 십자가를 구별했다. 예언자들과 지혜로운 이들 다음의 doctores는 교사들로 옮겼다. 98쪽 각주 7은 제자들의 박해에 관한 문장을 주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표현으로 설명한다.

    고백을 지키라는 권고와, 그분을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겠다는 confusurum의 목적어 관계를 유지했다. passibilis martyres는 수난을 겪으신 분의 증인으로 옮겼다.

    concedimus ipsis martyribus는 99쪽 각주 7의 connumeramus 풀이에 따라 순교자들 가운데 헤아린다는 뜻으로 읽었다. 마지막은 순교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과 그들이 얻을 영광을 언급하는 저자의 설명이다.

  86. 19.5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5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5절 나머지와 6절이다. 십자가에서 용서를 구한 말씀과 원수를 위해 기도하라는 명령을 연결했다.

    그리스도가 둘이라는 가정과 수난이 외관에 그쳤다는 가정을 각각 세운 뒤, 그 결과를 비교하는 논박으로 옮겼다. 우리가 스승보다 높아진다는 말도 그 가정에서 나오는 결론이다.

    pro patribus는 조상들을 위해서로, 순종으로 불순종을 푼다는 persolvens는 풀어내다로 옮겼다. 강한 자를 묶음과 약한 이들을 풀어 줌, 빚으신 것에 구원을 주는 동작을 구별했다.

  87. 19.6 본문으로

    Harvey판 3권 19장 6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8장 7절이다. 하나님과 사람의 결합, 중보자의 역할, 율법과 죄, 아담과 그리스도의 순종을 순서대로 옮겼다.

    100쪽 conjunctus는 하나님과 결합됨으로 유지했다. 100-101쪽 그리스어 병렬문의 쪽 경계에서 나뉜 ἑκατέρους는 연결했다. 라틴어의 중보자는 하나님이 사람을 받아들이고 사람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한다. 그리스어는 하나님께 사람을 내보이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린다. 이 차이는 101쪽 각주 1과 함께 기록했다.

    모든 나이를 거쳐 오셨다는 per omnem aetatem을 유지했다. 죄에 관한 peccator와 뒤의 eum은 죄를 죄짓는 자·강도·살인자로 인격화하는 표현으로 읽었다. 율법이 죄를 드러내는 일과 죄를 없애는 일을 구별했다.

    de terra rudi는 가공되지 않은 땅으로 옮겼다. 101-102쪽 각주 5는 rudi가 사람을 가리키는 rudis를 고친 것이라고 설명한다. 동정녀에게서 처음 나심과 로마서 5:19의 순종 대비도 보존했다.

    하나님의 일들이 참되다는 신명기 32:4 인용과, 나타나신 그대로 육신이 되셨다는 결론을 유지했다. 101-102쪽의 두 번째 그리스어 병렬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비교 범위로 구별했다.

  88. 20.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0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9장 1절이다. 요셉에게서 난 사람이라는 상대의 주장, 자유와 생명의 선물, 양자 됨을 차례로 옮겼다.

    commixti와 commixtus는 섞임으로 옮겨 라틴어의 독법을 유지했다. 102-103쪽 각주와 병렬 그리스어는 결합 및 말씀을 받아들임이라는 다른 표현을 제시한다. antidotum vitae는 생명의 해독제로 옮겼다.

    시편 인용에서 라틴어는 신들 다음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들을 놓고, 그리스어는 반대 순서로 말한다. 주님께 올라감이라는 라틴어와 하나님께 올라감이라는 그리스어도 각각 보존했다.

    103쪽 라틴어의 점열을 한국어에 [...]로 표시했다. 각주 4는 이 위치에서 ut homo가 빠졌을 가능성을 설명하며, 병렬 그리스어에는 목적절과 사람이라는 주어가 있다. 번역은 결락 표시를 유지한 채 뒤의 양자 됨을 연결했다.

  89. 20.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0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9장 2절이다. 나심을 묻는 이사야 인용과 사람을 알아봄에 관한 예레미야 인용, 아버지가 계시하신 인자의 고백을 구별했다.

    secundum eum은 그분과 같은 뜻에서로 옮겼다. 104쪽 각주 1은 이 라틴어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어 표현과 그 자체로라는 뜻을 논의한다. 외아들 호칭도 유지했다.

    아버지에게서의 나심과 동정녀에게서의 탄생이라는 두 서술을 구별했다. 볼품없음과 수난 가능성, 아름다운 모습과 강한 하나님이라는 호칭은 각각 성경의 증언으로 제시되는 대로 옮겼다.

  90. 20.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0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19장 3절이다. 사람이기에 시험받음과 말씀이기에 영광받음이라는 평행을 유지했다.

    라틴어 requiescente Verbo와 absorpto homine는 말씀의 쉼과 사람의 흡수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은 사람이 승리하고 견디는 일에 말씀이 함께함을 말한다. 104쪽 각주 6은 라틴어의 흡수를 신성의 광대함 안에서의 흡수로 풀이한다.

    라틴어에서 견딤 뒤에 놓인 점열은 [...]로 표시했다. 그리스어의 결락은 시험받음 뒤에 있으며, 뒤에는 선을 베풂이라는 동사가 있다. 각주 5는 그리스어의 모욕당함 동사가 빠졌을 가능성을 설명한다.

    마리아 자신도 사람이었다는 서술과 인자가 되었다는 반복을 보존했다. 표징의 깊은 곳과 높은 곳, 잃어버린 양, 부활한 머리와 나머지 몸, 지체의 자리와 아버지 곁의 거처를 이어 옮겼다.

  91. 21.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1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0장 1절이다. 요나의 구원과 인류의 구원을 연결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음을 설명하는 저자의 해석으로 옮겼다.

    cetus는 바다짐승으로 옮겼다. 처음에는 요나를 삼킨 존재, 다음에는 범법을 일으킨 큰 바다짐승으로 서술된다. 요나에게 일어난 표징과 니느웨 사람들의 회개를 구별했다.

    요나의 고백은 나는 주님의 종이라는 Servus Domini를 유지했다. 저승의 배 속과 주님 앞이라는 인용의 호칭도 보존했다. 106쪽 각주 2가 주님의 종이라는 독법을 설명한다.

    썩지 않음을 타고난 자기 소유로 여기는 견해와,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판단하는 사람의 생각을 마지막 문장의 주체로 읽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에게서 받은 구원을 인정하는 목적과 이어진다.

  92. 21.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1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0장 2-3절이다. 108쪽 여백에는 3이 인쇄되어 있으나, 107쪽 본문에는 새 절 번호가 없어 이어지는 2절로 보존했다.

    106쪽 operationes는 복수형과 인쇄 구두점을 유지했다. 사람의 영광은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일들이라는 병렬로 읽었다. 그 뒤 사람은 모든 지혜와 능력을 담는 그릇으로 옮겼다. 각주 7은 operationis 교정 제안과 구두점 조정으로 읽는 방식을 비교한다.

    로마서 11:32의 omnia는 모든 것, incredulitate는 불신앙으로 옮겼다. 이어지는 저자의 설명은 그 인용을 하나님께 불순종했다가 자비를 받은 사람에게 적용한다.

    첫 veram gloriam은 피조물과 창조자에 관한 참된 견해로, 뒤의 majorem gloriam은 더 큰 영광으로 옮겼다. 107쪽 각주 3은 provectus와 accipiens의 문법적 해석들을 비교한다. 사람의 성장과 자신을 위해 죽은 이를 닮아 감을 연결했다.

    사람이 하나님을 받아들임과 하나님이 사람 안에 거함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주체는 말씀으로 읽었다. 임마누엘이 구원의 표징이라는 다음 서술도 판본의 문장 경계를 따라 연결했다.

    로마서 7:25 인용의 Gratia Jesu Christi Domini nostri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옮겼다. 108쪽 각주 1은 감사와 은혜의 독법 차이를 설명한다. 이사야 인용의 우리 하나님과 우리를 구원하심도 유지했다.

  93. 22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2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0장 4절이다. 구원하실 분의 사람 됨과 하나님 되심을 예언자 인용으로 설명하는 구간이다.

    senior는 장로로 옮겼다. 108쪽 각주 5는 그리스어 πρέσβυς를 사절이나 중보자로 읽는 견해를 제시한다. 구원을 베푸는 말씀과 눈에 보이는 참사람이라는 서술도 보존했다.

    이사야[예레미야]와 아모스[미가]는 인쇄된 이름 및 편집 교정을 함께 표시했다. 죽은 이들에게 내려가 구원을 전하는 인용은 판본이 유스티노스의 트뤼폰과의 대화 72장과 비교하는 본문으로 기록했다. 그 인용의 성경 장절 연결은 미지정 상태이다.

    Africus는 남서쪽으로, Effrem은 에프렘으로 옮겼다. 109쪽 각주 1은 다른 성경 판본의 방향과 지명을 비교한다. 한국어는 인쇄 대본의 방향과 지명을 유지했다.

    하박국 인용의 앞서 나아가는 말씀과 들판을 걸어가는 발을 보존했다. 발의 동작을 사람 됨의 표지로 설명하는 부분은 저자의 해석으로 구별했다.

  94. 23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3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1절이다. 이사야 7:14를 둘러싼 동정녀와 젊은 여자의 역어 차이를 다룬다.

    에베소의 테오도티온, 폰토스의 아퀼라, 두 사람의 개종과 에비온파에 관한 내용은 이레네우스가 전하는 보고로 옮겼다. 110쪽 salvavit는 과거형으로 유지했다. 각주 5는 다른 판본과 사본의 미래형을 기록한다.

    그리스어 병렬문은 유세비우스 교회사 5.8.10에 연결했다. 유세비우스의 이 인용은 에비온파가 요셉에게서 태어났다고 주장한다는 말까지이며, 뒤에 이어지는 라틴어의 번역 시기 논증은 그 범위와 구별했다.

    미래의 그리스도교인과 성경 사용을 미리 알았다는 가정문은 조건문으로 유지했다. 성경과 은혜에 관한 마지막 판단도 저자가 자신의 논박 안에서 제시하는 내용으로 옮겼다.

  95. 24.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4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2절이다.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과 에스라의 회복에 관해 저자가 전하는 전승을 옮겼다.

    라고스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일흔 장로, 서로 떨어져 번역함, 모든 책에서 말과 이름이 일치했다는 내용을 인쇄대로 유지했다. 111-114쪽 각주의 다른 전승과 역사적 해석은 본문 보고와 구별했다.

    라틴어 facturos는 장로들이 왕이 원하는 일을 행하도록 보냈다는 뜻으로 읽었다. 113쪽 그리스어는 하나님이 원하신 일을 행하셨다는 구문이다. 각주 4와 함께 두 행위 주체를 구별해 기록했다.

    칠십 년 뒤 유대인들이 자기 땅으로 내려왔다는 descendentibus를 유지했다. 그리스어는 올라왔다는 표현이다. 에스라가 예언자들의 말을 기억하고 율법을 회복했다는 뒤의 진술도 전승 보고로 옮겼다.

    그리스어 병렬문의 범위는 유세비우스 교회사 5.8.11-15에 연결했다. 112-113쪽에서 갈라진 Hierosolymitis와 ἠτήσατο는 각각 연결하여 시작 쪽에 귀속했다.

  96. 24.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4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3절 앞부분이다. 통상 절은 Harvey 25장 1절의 앞부분까지 이어진다. 이집트에서 성경이 보존된 일과 야곱의 집 및 주님의 보존을 연결하는 저자의 논증을 유지했다.

    아우구스투스 통치 사십일 년 무렵이라는 날짜와 괄호를 보존했다. 115쪽 각주 1은 이 괄호가 주석처럼 보인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본문의 숫자를 현대 연대 판단으로 바꾸어 읽는 일과 구별했다.

    마지막은 기존 성경으로 논박받는 이들이 다르게 번역하려 한다는 저자의 비판이다. 하나님 아들의 오심을 믿어야 한다는 결론에 몰린다는 concludantur를 그 논증의 결과로 옮겼다.

  97. 25.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5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3절 나머지와 4절 앞부분이다. 이전 24장 2절에서 시작한 통상 3절은 장로들의 번역에 담긴 내용이라는 문장까지 이어진다.

    사도들과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번역 및 전승과 일치한다는 논증을 보존했다. 하나의 동일한 영이 예언자와 장로들과 사도들 안에서 일한다는 세 관계도 구별했다.

    누가복음 인용의 네게서 태어날 거룩한 이라는 표현을 유지했다. 마태의 성취 인용은 저자가 꿈속 천사의 말에 연결하는 문맥대로 옮겼다.

  98. 25.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5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4절 나머지이다. 아하즈와 주님의 대화, 임마누엘 인용과 성령의 의미 설명을 구별했다.

    Dominus praestat agonem은 주격인 주님을 행위 주체로 옮겼다. vocabitis는 너희가 부를 것이라는 복수로, commutabit bonum은 좋은 것으로 바꿈으로 유지했다. 116쪽 각주 4는 부르는 동사의 인칭을 대조한다.

    동정녀에게서의 탄생, 하나님이라는 substantia, 버터와 꿀 및 아기의 표지는 저자가 구별하여 제시하는 대로 옮겼다. 악에 동의하지 않음과 선을 택함도 각각 유지했다.

  99. 26.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6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5절이다. 이사야의 다윗 집 호칭과 시편의 약속, 엘리사벳의 말을 연결하는 논증으로 옮겼다.

    venter는 배로 통일하여 다윗과 마리아에게 적용되는 같은 낱말을 드러냈다. 배의 열매와 허리 및 콩팥의 열매, 남자의 생식기를 구별하는 표현은 저자가 동정녀의 잉태를 설명하는 신체어 논증이다.

    cornu Christi Regis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뿔로 옮겼다. 117쪽 각주 2의 Regem 교정 제안은 본문의 Regis와 구별했다. 같은 쪽의 테오도레토스 그리스어 병렬문도 보존했다.

  100. 26.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6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6절이다. 아래로 깊은 곳과 위로 높은 곳을 그분의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에 연결했다.

    예상하지 못한 탄생과 구원이라는 inopinatus의 반복을 유지했다. 하나님, 곧 만물의 주님이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호칭도 인쇄된 반복에 따라 옮겼다.

  101. 27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7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7절이다. 다니엘의 손을 대지 않고 잘린 돌을 요셉과 마리아의 역할에 연결하는 저자의 해석을 보존했다.

    첫 문장은 유한 동사가 생략된 라틴어를 다니엘의 예견에 연결해 옮겼다. 118쪽 각주 2는 ait venisse라는 교정을 제안한다. 이사야의 돌에 붙은 귀함·선택·으뜸·모퉁이·존귀함의 수식도 유지했다.

  102. 28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8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8절이다. 지팡이가 육신이 되어 반역을 삼키는 일을 성육신의 모형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해석을 옮겼다.

    하나님의 손가락이 백성의 구원을 이룬다는 진술, 솔로몬·요나·다윗과의 비교, 베드로의 고백과 복됨을 각각 보존했다.

  103. 29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29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9절 앞부분이다. 요셉의 계보와 예레미야 인용을 왕권의 약속에 연결하는 저자의 논증으로 옮겼다.

    여호야김과 여고냐의 filius는 계보상의 후손으로 읽었다. 인용 안의 그를 넘기겠다는 표현과 네 목숨이라는 이인칭 전환은 그대로 유지했다. 119쪽 각주 2는 라틴어의 tuam과 그리스어의 ejus에 해당하는 독법 차이를 설명한다.

    abdicatum hominem은 내쳐진 사람, mortificatum ejus는 그의 시체로 옮겼다. 땅을 부르는 단수 호칭과 낮의 더위 및 밤의 서리도 보존했다.

  104. 30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0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9절 마지막 문장과 10절 앞부분이다. 다음 31장 1절에서 통상 10절이 이어진다.

    recapitulatio 계열은 자신 안에 하나로 모음으로 유지했다. 가공되지 않고 아직 처녀인 땅과 동정녀 마리아를 대응시키며, 하나님의 손을 말씀으로 풀이하는 저자의 해석을 보존했다.

  105. 31.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1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1장 10절 나머지와 22장 1절 전체이다. 비교 입력의 서로 다른 표제 아래 놓인 두 문단을 인쇄 본문의 연속된 한 절로 연결했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닮은 탄생, 동일한 피조물의 구원, 마리아에게서 받은 육신의 실체를 구별했다. 땅에서 받은 몸과 하나님에게서 영을 받는 혼이라는 서술도 유지했다.

    120-121쪽 그리스어 병렬문은 육신의 유산과 닮음을 버린다는 말까지이다. 쪽 경계의 ἄνθρωπον은 연결했다. 라틴어는 그 뒤 바울의 두 인용까지 이어진다.

    로마서 인용의 praedestinatus는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해짐으로 옮겼다. 거룩하게 하는 영과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한 표현도 인쇄대로 보존했다.

  106. 31.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1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2장 2절이다.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받지 않았다는 가정의 결과를 음식과 수난의 표지에 적용하는 논박으로 옮겼다.

    사십 일의 금식, 여행의 피로, 내 상처의 고통, 나사로를 위한 눈물, 핏덩이의 땀, 혼의 슬픔, 옆구리의 피와 물을 각각 유지했다. globos sanguinis는 핏덩이로 옮겨 본문 표현을 보존했다.

    122쪽 그리스어 병렬문은 절 전체에 대응한다. 판본의 성경 인용과 저자가 덧붙인 해석을 구별하고, 원문에 있는 조건과 부정의 범위를 유지했다.

  107. 32.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2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2장 3-4절 전체이다. 계보와 아담, 하와와 마리아, 매듭과 부활의 논증이 이어지는 한 단위이다.

    누가의 계보에 관한 septuaginta duas를 일흔두 세대로 옮겼다. 123쪽 각주 1은 이 숫자와 관련된 계보 이름들의 생략을 논의한다. 주님의 여종이라는 마리아의 일인칭 호칭도 보존했다.

    하와와 마리아가 각각 자신과 온 인류에게 죽음과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는 서술을 유지했다. 아담과 하와의 성장에 관한 괄호는 각주 5의 삽입 가능성 논의와 함께 인쇄대로 보존했다.

    recirculatio는 마리아에게서 하와로 거슬러 이어지는 관계로 읽었다. 둘째 결박이 먼저 풀리는 자리를 차지한다는 표현은 앞선 매듭을 역순으로 푸는 비유에 연결했다. 주님이 조상들을 생명의 복음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행위 주체도 유지했다.

  108. 32.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2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1절이다. 비교 입력의 통상 23장 표제를 인쇄본의 새 장으로 취급하지 않고 32장의 연속된 2절로 보존했다.

    잃어버린 양을 아담으로 읽는 저자의 해석, 정죄의 기간과 아버지의 정하심을 연결했다. 아담이 생명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하나님이 패배한 셈이라는 말은 조건부 논박으로 옮겼다.

    둘째 사람이 강한 자를 묶고 그 살림을 빼앗는 비유, 죽지 않음을 내세운 뱀의 약속, 사로잡던 자가 다시 사로잡히고 사람이 풀려나는 역전을 각각 유지했다.

  109. 33.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3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2절이다. 인류가 아담에게서 이름을 물려받았다는 설명과, 포로의 자녀만 풀어 주는 구출이 부당하다는 비유를 연결했다.

    sed non relictis ipsis patribus는 non을 유지하며, 문맥상 아버지들은 풀어 주지 않는다는 가정에 이어 읽었다. 126쪽 각주 3은 이 부정어와 그리스어의 읽기 가능성을 논의한다. 이 구문의 해석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항목이다.

  110. 33.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3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3절이다. 옛사람의 말이라는 인용 소개, 땅과 사람과 뱀에게 주어진 결과를 구별했다.

    마태복음 25:41 인용은 내 아버지께서 악마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준비한 영원한 불이라는 형태를 유지했다. 126쪽 각주 5가 이 독법을 대조한다.

    배교의 우두머리와 이탈의 우두머리라는 반복 호칭을 보존했다. 각주 7은 두 번째 호칭의 삽입 가능성을 논의한다. 회개와 돌아섬 없이 악행을 계속하는 이들에 대한 결론도 저자의 설명으로 옮겼다.

  111. 34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4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4절이다. 비교 전사의 선행 1을 본문 절 번호로 채택하는 일과 구별했다.

    형제와의 나눔을 올바로 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잠잠하라는 권고는 창세기 4:7의 그리스어 전승에 연결되는 저자의 해석이다. 127쪽 각주 2가 해당 그리스어를 제시한다.

    parricidio는 이 문맥에서 형제를 살해한 일로 옮겼다. 127쪽 각주 9는 친족 살해를 포함하는 용례와 다른 판본의 fratricidio를 비교한다.

  112. 35.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5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5절 앞부분이다. 카인과 아담의 반응을 대조하고, 두려움에서 회개로 이어지는 저자의 해석을 유지했다.

    무화과 잎의 따가움과 절제의 굴레, 본래의 성향과 어린아이의 마음을 구별했다. 아담에게 부여한 말은 저자가 그의 행동의 뜻을 풀어 제시하는 말로 옮겼다.

    거룩함의 영에게서 받은 옷을 잃음과 가죽옷을 입혀 주심을 보존했다. 마지막은 자비로운 개입이 없었다면 그 옷을 계속 입었을 것이라는 조건문이다.

  113. 35.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5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5절 나머지와 6절 전체이다. 질문과 책임의 이동, 속인 자와 속임당한 이의 구별을 유지했다.

    sensim paulatimque는 조금씩 서서히로 옮겼다. 생명나무에서 멀리 옮긴 일을 죄가 영원히 지속되지 않도록 하는 자비로 설명하는 부분은 저자의 해석이다.

    죽음을 사이에 두어 죄를 그치게 함, 땅에서 이루어지는 육신의 해체,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함을 각각 보존했다.

  114. 36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6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7절이다. 뱀과 여자 및 씨, 원수의 머리와 사람의 발바닥에 관한 관계를 구별했다.

    frigidum reddebat는 사람을 차갑게 만들었다는 인쇄 표현으로 옮겼다. 사자를 적그리스도로 풀이하는 내용도 유지했다. 129쪽 각주 3-4는 두 독법의 그리스어 관계를 논의한다.

    죽음에 대한 질문은 승리, 가시의 순서로 보존했다. 아담이 생명을 되찾는 일과 죽음이 무력해지는 일을 잇는 논증을 유지했다.

  115. 37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7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3장 8절이다. 아담의 구원에 관한 타티아노스의 견해와 평가는 저자가 전하는 논박으로 옮겼다.

    아담 안에서 모두 죽음과,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가 더 넘쳤다는 바울 인용을 구별했다. 마지막의 Deum autem non vidit는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로 유지했다. 130쪽 각주 6은 οὐδέν과 εἶδεν의 읽기 관계를 논의한다.

  116. 38.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8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4장 1절이다. 교회의 선포에 관한 긴 구문을 한국어 문장으로 나누고, 교회에서 받은 믿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워진다는 관계를 유지했다.

    aspiratio plasmationi는 빚어진 존재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창조의 비유이다. 그리스도와의 친교, 썩지 않음의 보증, 믿음을 굳게 함, 하나님께 올라가는 사다리는 성령을 설명하는 표현들이다.

    교회가 있는 곳과 하나님의 영이 계신 곳에 관한 두 절을 함께 보존했다. 고린도전서 12:28의 직분들과 예레미야 2:13의 깨진 물웅덩이 이미지를 저자의 논증에 연결했다.

  117. 38.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8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4장 2절이다. 하나의 바위, 여러 돌을 품은 모래, 늘 바뀌는 생각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나님의 크기와 본질을 측정함, 창조와 양육을 통해 하나님을 앎을 구별했다. 말씀으로 굳게 세우시고 지혜로 만물을 결합하신다는 두 표현도 보존했다.

    humano generi communicantem은 앞의 quem nemo possit cognoscere에 연결하여, 인류와 관계 맺는 모습을 아무도 알 수 없는 신이라는 뜻으로 옮겼다. 에피쿠로스의 신과의 비교는 이레나이오스가 논박하는 상대의 신관에 대한 평가이다.

  118. 39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39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1절이다. providentia는 문맥에 따라 돌보심과 자기 행실을 살핌으로 옮겼다.

    sensibilitas는 돌봄을 받은 존재의 지각을 가리킨다. 일부 이교도들이 창조자를 알게 되었다는 설명은 이레나이오스가 제시하는 평가이다.

  119. 40.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0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2절이다. 선함과 심판을 서로 다른 신에게 나누어 돌리는 견해에 대한 조건부 논증을 유지했다.

    donandum은 마땅히 베푸는 일, probator는 선함을 받을 대상을 분별하는 이로 옮겼다. 마지막 문장은 선함이 판단과 함께 작용하는지를 조건으로 삼는다.

  120. 40.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0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3절이다. 마르키온이 나눈 두 신의 속성에서 각각 어떤 결론이 따르는지 드러내도록 조건절을 옮겼다.

    지혜, 분별, 심판하는 능력, 정의, 판단의 연결을 차례대로 유지했다. 마지막은 선함이 먼저 나아가므로 정의가 가혹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121. 40.3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0장 3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4절이다. 마태복음 5:45의 해와 비에 관한 말씀에서 출발하여, 같은 은혜를 받은 사람의 행실과 심판을 논하는 저자의 흐름을 유지했다.

  122. 41장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1장은 절 번호 없는 한 단위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5절이다. 플라톤이 말하는 정의와 선함을 두 인용문으로 나누어 옮겼다.

    quemadmodum et vetus sermo est는 옛말에도 있듯이라는 삽입구이다. Harvey판은 첫 인용에 플라톤의 법률 제4권, 둘째에 티마이오스라는 출처를 적고 그리스어를 함께 싣는다. 해당 그리스어와 인쇄 위치를 별도 자료로 연결했다.

    선한 이에게 시기가 생겨나지 않는다는 인용을 세계 제작의 원인에 관한 설명으로 잇는다. 아이온, 결함의 열매, 우는 어머니는 앞서 다룬 상대의 신화에 속하는 표현들이다.

  123. 42.1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2장 1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6절이다. 어머니와 아버지, 유산아, 호로스, 플레로마는 상대의 신화를 되돌려 적용하는 저자의 논박 안에서 읽었다.

    collectio는 여기서 추론으로 옮겼다. 136쪽 각주 4는 결합 또는 구성이라는 읽기와 논증이라는 읽기를 비교하며, 후자에 가까운 생략 삼단논법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단어의 해석은 추가 대조 대상으로 기록한다.

    doctrina는 가르침, Spiritus는 영으로 옮겼다. 137쪽 각주 1-2는 각각 소피아와 아카모트에 연결한다. 인쇄된 명칭과 편집자의 해설을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기록했다.

    commentiti sunt는 인쇄된 형태에 따라 꾸며 냈다고 옮겼다. 136쪽 각주 3은 비슷한 소리를 내는 라틴어 형태들의 전승과 삽입 가능성을 논의한다.

  124. 42.2 본문으로

    Harvey판 3권 42장 2절이며, ANF/New Advent의 통상 25장 7절이다. 교회로 돌아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형성되기를 바라는 기도와, 그들이 사랑을 받아들인다는 조건을 유지했다.

    improbiorem ac superfluam vulneris carnem은 상처에 지나치게 돋아난 불필요한 살로 옮겼다. 137쪽 각주 7은 이 표현을 과도하게 자란 살로 풀이하며, 본문은 교만을 가라앉히는 사랑을 약에 비유한다.

    Prorogavimus는 주님의 말씀을 제시하는 일을 다음 권으로 미루어 두었다는 예고이다. 제3권은 137쪽의 Amen으로 끝나며, 뒤의 138쪽은 빈 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