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논박 · 1권

Ἔλεγχος καὶ ἀνατροπὴ τῆς ψευδωνύμου γνώσεως

이레네우스

서두 1

어떤 이들은 진리를 저버리고 거짓된 말과 끝없는 족보를 끌어들인다. 사도가 말했듯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일보다 논쟁거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들이다. 그들은 교묘하게 꾸며 낸 그럴듯함으로 경험이 부족한 이들의 마음을 잘못 이끌고, 그들을 사로잡는다.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바르게 말해진 것들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이들이 되어, 많은 사람을 무너뜨린다. 지식을 구실로 이 우주를 세우고 꾸미신 분에게서 그들을 끌어낸다.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분보다 더 높고 큰 무엇을 보여 줄 수 있는 듯이 행동한다. 말의 기교로 순박한 이들을 탐구의 길로 그럴듯하게 끌어들이지만, 거짓과 참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창조주를 거스르는 자신들의 모독적이고 불경한 견해를 갖게 함으로써, 그들을 그릇되게 파멸시킨다.

Quatenus veritatem refutantes quidam inducunt verba falsa, et genealogias infinitas, quae quaestiones magis praestant, quemadmodum Apostolus ait, quam aedificationem Dei, quae est in fide; et per eam, quae est subdole exercitata verisimilitudo, transducunt sensum eorum, qui sunt inexpertiores, et in captivitatem ducunt eos, falsantes verba Domini, interpretatores mali eorum, quae bene dicta sunt, effecti: et multos evertunt, attrahentes eos sub occasione agnitionis ab eo, qui hanc universitatem constituit et ornavit; quasi altius aliquid et majus habentes ostendere, quam eum, qui caelum et terram, et omnia quae in eis sunt, fecit; suadenter quidem illi illiciunt per verborum artem simpliciores ad requirendi modum, male autem perdunt eos, in eo quod blasphemam et impiam ipsorum sententiam faciant in Fabricatorem, non discernere valentium falsum a vero.

서두 2

오류는 제 모습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벌거벗은 채 알아볼 수 있게 되는 일을 피하려고, 그럴듯한 덮개로 교묘히 치장한다. 말하기조차 우스운 일이지만, 진리 자체보다 더 참된 것처럼 자신을 내세워, 겉모습으로 미숙한 이들을 속이려 한다. 이런 일을 두고 우리보다 뛰어난 이가 말했듯이, 귀한 보석인 값비싼 에메랄드가 어떤 이들 앞에서는 기술로 닮게 만든 유리 때문에 모욕을 당한다. 이를 감별하고, 교묘하게 만든 세공품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렇다. 청동이 은에 섞였을 때,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쉽게 그것을 감별하겠는가? 그러므로 우리의 잘못까지 더해져 어떤 이들이 늑대에게 잡혀가는 양처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양가죽을 겉에 걸친 탓에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경계하라고 우리에게 미리 말씀하셨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말을 하지만, 속으로는 다르게 생각한다. 발렌티누스의 제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이들의 해설서를 읽고, 그들 가운데 몇 사람과 직접 만나 그들의 견해를 파악했기에, 사랑하는 그대여, 그들의 기괴하고 깊디깊은 신비를 그대에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모든 이가 그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에게 이해할 머리가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도 이를 알고, 그대와 함께 있는 모든 이에게 밝혀 주기를 바란다. 그들에게 어리석음의 심연과 하나님을 향한 모독에서 스스로를 지키라고 일러 주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힘이 있는 만큼, 지금 다른 것을 가르치는 이들의 견해를 간결하고 분명하게 설명하겠다. 내가 말하는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주변에 모인 사람들로, 그 견해는 발렌티누스 학파에서 핀 작은 꽃과 같다. 우리의 보잘것없는 능력이나마, 그 견해를 무너뜨릴 실마리를 다른 이들에게 주겠다. 그들이 말하는 것들이 굳게 서 있지 못하고, 진리에도 맞지 않음을 밝히겠다. 우리는 글을 쓰는 데 익숙하지 않고, 말의 기교를 배운 이들도 아니다. 사랑이 우리를 재촉하여, 그대와 그대 곁의 모든 이에게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으나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드러난 그들의 가르침을 알리려 한다. 덮인 것 가운데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겨진 것 가운데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Error enim secundum semetipsum non ostenditur, ne denudatus fiat comprehensibilis, suasorio autem cooperimento subdole adornatus, et ipsa veritate (ridiculum est et dicere) veriorem semetipsum praestat, ut decipiat exteriori phantasmate rudiores: quemadmodum a meliore nobis dictum est de hujusmodi: Quoniam lapidem pretiosum smaragdum magni pretii apud quosdam, vitreum in ejus contumeliam per artem assimilatum, quoadusque non adest, qui potest probare, et artificium arguere, quod subdole sit factum. Quum enim commixtum fuerit aeramentum argento, quis facile poterit, rudis cum sit, hoc probare? Igitur ne forte et cum nostro delicto abripiantur quidam quasi oves a lupis, ignorantes eos propter exterius ovilis pellis superindumentum, a quibus cavere denunciavit nobis Dominus, similia quidem nobis loquentes, dissimilia vero sentientes: necessarium duxi, cum legerim Commentarios ipsorum, quemadmodum ipsi dicunt, Valentini discipulorum, quibusdam autem ipsorum et congressus, et apprehendens sententiam ipsorum, manifestare tibi, Dilectissime, portentuosissima et altissima mysteria, quae non omnes capiunt, quia non omnes cerebrum habent, ut et tu cognoscens ea, omnibus his, qui sunt tecum, manifesta facias, et praecipias eis observare se a profundo insensationis, et ejus, quae est in Deum, blasphemationis. Et quantum nobis virtutis adest, sententiam ipsorum, qui nunc aliud docent, dico autem eorum, qui sunt circa Ptolemaeum, quae est velut flosculum Valentini scholae, compendiose et manifeste ostendemus, et aliis occasiones dabimus secundum nostram mediocritatem ad evertendum eam, non stantia, neque apta veritati ostendentes ea, quae ab iis dicuntur: neque conscribere consueti, neque qui sermonum arti studuerimus: dilectione autem nos adhortante, et tibi et omnibus, qui sunt tecum, manifestare, quae usque adhuc erant absconsae, jam autem secundum gratiam Dei in manifestum venerunt doctrinae ipsorum. Nihil enim est coopertum, quod non manifestabitur; et nihil absconsum, quod non cognoscetur.

서두 3

켈트인들 가운데 살며, 이방의 말을 쓰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우리에게서 우리가 배우지 못한 말의 기교를 기대하지 말라. 우리가 추구하지 않았던 저술가의 역량이나, 말의 화려함,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설득력도 기대하지 말라. 소박하고 진실하게 평범한 말로, 사랑을 담아 그대에게 쓴 글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주기 바란다. 그대는 우리보다 더 능력이 있으니, 우리에게서 씨앗과 시작을 받듯이 받아 그대 스스로 그것을 키워 갈 것이다. 그대의 넓은 이해력으로 우리가 짤막하게 말한 것들을 풍성한 열매로 맺게 하고, 그대와 함께 있는 이들에게 우리가 미약하게 전한 것들을 힘있게 확증할 것이다. 그대는 오래전부터 그들의 견해를 배우고 싶어 했다. 그것을 그대에게 밝혀 줄 뿐 아니라, 그 견해가 거짓임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움도 주려고 우리가 힘썼듯이, 그대도 주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은혜를 따라 다른 이들을 힘있게 섬길 것이다. 사람들이 그들의 이런 설득에 더는 휩쓸려 가지 않도록 말이다.

Non autem exquires a nobis, qui apud Celtas commoramur, et in barbarum sermonem plerumque vacamus, orationis artem, quam non didicimus, neque vim conscriptoris, quam non affectavimus, neque ornamentum verborum, neque suadelam, quam nescimus; sed simpliciter et vere et idiotice ea, quae tibi cum dilectione scripta sunt, cum dilectione percipies, et ipse auges ea penes te, ut magis idoneus quam nos, quasi semen et initia accipiens a nobis: et in latitudine sensus tui in multum fructificabis ea, quae in paucis a nobis dicta sunt, et potenter asseres iis, qui tecum sunt, ea quae invalide a nobis relata sunt. Et quemadmodum nos elaboravimus, olim quaerenti tibi discere sententiam eorum, non solum facere tibi manifestam, sed et subministrationem dare, uti ostenderemus eam falsam: sic et tu efficaciter reliquis ministrabis secundum gratiam, quae tibi a Domino data est, ut jam non abstrahantur homines ab illorum suadela, quae est talis.

1.1

그들은 보이지 않고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높은 곳에 앞서 존재한 어떤 완전한 아이온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를 프로아르케, 프로파토르, 뷔토스라고 부른다. 그는 보이지 않으며, 아무것도 그를 담아낼 수 없다고 한다. 아무것에도 담기지 않고, 보이지 않으며, 영원하고 태어나지 않은 존재로서,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깊은 침묵과 고요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엔노이아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를 카리스와 시게라고도 부른다. 어느 때에 이 뷔토스는 만물의 시작을 자기에게서 내보내려 했다. 이 발출물을 씨처럼 내보내려 했으며, 자기와 함께 있던 시게의 자궁에 넣듯이 그것을 두었다고 한다. 시게는 그 씨를 받아들여 잉태하고 낳았는데, 자신을 내보낸 이와 닮고 동등하며, 아버지의 위대함을 홀로 담아내는 누스였다. 그들은 이 누스를 독생자, 아버지, 만물의 시작이라고도 부른다. 그와 함께 진리도 나왔으며, 이것이 최초로 태어난 첫 피타고라스적 네 존재의 무리라고 한다. 그들은 이를 만물의 뿌리라고도 부른다. 곧 뷔토스와 시게, 그리고 누스와 알레테이아이다. 이 독생자는 자신이 나온 목적을 깨닫고, 자신도 로고스와 조에를 내보냈다고 한다. 자기 뒤에 있게 될 모든 존재의 아버지이자, 온 플레로마의 시작과 형성을 이룰 이였다. 로고스와 조에에게서는 짝을 이루어 인간과 교회가 나왔다. 이들이 처음 태어난 여덟 존재의 무리이며, 만물의 뿌리와 실체라고 한다. 그들은 이를 뷔토스, 누스, 로고스, 안트로포스라는 네 이름으로 부른다. 이들 각각이 남녀 한 쌍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 프로파토르는 곧 생각을 뜻하는 자신의 엔노이아와 짝을 이루어 결합했다. 그들은 엔노이아를 은총과 침묵이라고 부른다. 독생자, 곧 누스는 알레테이아, 곧 진리와, 로고스는 조에, 곧 생명과, 안트로포스는 에클레시아와 결합했다.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나온 이 아이온들은 자신들도 자기 것을 바쳐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려 하여, 짝을 이루어 또 다른 존재들을 내보냈다. 로고스와 조에는 인간과 교회가 나온 뒤에, 다른 아이온 열을 내보냈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뷔티오스와 믹시스, 아게라토스와 헤노시스, 아우토퓌에스와 헤도네, 아키네토스와 쉰크라시스, 모노게네스와 마카리아이다. 이들이 열 아이온이며,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나왔다고 그들은 말한다. 안트로포스 자신도 에클레시아와 함께 열두 아이온을 내보냈다. 그들에게 붙인 이름은 다음과 같다. 파라클레토스와 피스티스, 파트리코스와 엘피스, 메트리코스와 아가페, 아이노스와 쉬네시스, 에클레시아스티코스와 마카리오테스, 텔레토스와 소피아이다. 이것이 그들 오류의 서른 아이온이다. 침묵 속에 가려져 알려지지 않은 존재들이다. 그들에 따르면, 이 보이지 않는 영적 플레로마는 여덟, 열, 열둘의 무리, 이렇게 셋으로 나뉜다. 그들은 이 때문에 구원자가 서른 해 동안 공개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 아이온들의 신비를 드러낸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들은 그를 주님이라고 부르려 하지도 않는다. 또 일꾼들의 비유, 곧 포도밭으로 보내지는 이들의 비유에도 이 서른 아이온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어떤 이들은 첫째 시쯤에, 어떤 이들은 셋째 시쯤에, 어떤 이들은 여섯째 시쯤에, 어떤 이들은 아홉째 시쯤에, 어떤 이들은 열한째 시쯤에 보내진다. 그러므로 앞서 말한 시각들을 모두 합치면 서른이라는 수를 채운다. 하나, 셋, 여섯, 아홉, 열하나를 합치면 서른이 된다. 그들은 이 시각들을 통해 아이온들이 드러난다고 하며, 자기들이 맺은 열매인 이것들이 위대하고 놀랍고 감추어진 신비라고 한다. 성경에 나오는 것이라면, 어디에 있는 무엇이든, 자기들의 지어낸 이야기에 맞추고 닮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한다.

Dicunt esse quendam in invisibilibus, et inenarrabilibus alitudinibus perfectum Aeonem, qui ante fuit. Hunc autem et Proarchen, et Propatora, et Bython vocant: esse autem illum invisibilem, et quem nulla res capere possit. Cum autem a nullo caperetur, et esset invisibilis, sempiternus, et ingenitus, in silentio et in quiete multa fuisse, in immensis aeonibus. Cum ipso autem fuisse et Ennoean, quam etiam Charin, et Sigen vocant: et aliquando voluisse a semetipso emittere hunc Bythum initium omnium, et velut semen prolationem hanc praemitti voluit, et eam deposuisse quasi in vulva ejus, quae cum eo erat, Sige. Hanc autem suscepisse semen hoc, et praegnantem factam generasse Nun, similem et aequalem ei, qui emiserat, et solum capientem magnitudinem Patris. Nun autem hunc, et Unigenitum vocant, et Patrem, et Initium omnium. Una autem cum eo emissam Veritatem, et hanc esse primam et primogenitam Pythagoricam quaternationem, quam et radicem omnium dicunt. Est enim Bythus et Sige, deinde Nus et Alethia. Sentientem autem Unigenitum hunc in quae prolatus est, emisisse et ipsum Logon et Zoen, patrem omnium eorum, qui post se futuri essent, et initium et formationem universi Pleromatis. De Logo autem et Zoe emissum secundum conjugationem, Hominem et Ecclesiam, et esse hanc primogenitam Octonationem, radicem et substantiam omnium, quatuor nominibus apud eos nuncupatam, Bython, et Nun, et Logon, et Anthropon. Esse enim illorum unumquemque masculo-foeminam, sic, initio Propatorem illum coisse secundum conjugationem suae Ennoeae, id est, cogitationi, quam Gratiam et Silentium vocant: Unigenitum autem, hoc est, Nun Alethiae, id est, Veritati: Logon autem Zoae, id est, Vitae: et Anthropon cum Ecclesia. Hos autem Aeonas in gloriam Patris emissos, volentes et ipsos de suo clarificare Patrem, emisisse emissiones in conjugatione; Logon quidem et Zoen posteaquam emissus est Homo et Ecclesia, alteros decem Aeonas, quorum nomina dicunt haec: Bythius et Mixis, Ageratos et Henosis, Autophyes et Hedone, Acinetos et Syncrasis, Monogenes et Macaria. Hi decem Aeones, quos dicunt ex Logo et Zoe emissos. Anthropon autem et ipsum emisisse cum Ecclesia Aeonas duodecim, quibus nomina haec donant: Paracletus et Pistis, Patricos et Elpis, Metricos et Agape, Aenos et Synesis, Ecclesiasticos et Macariotes, Theletos et Sophia. Hi sunt triginta erroris eorum Aeones, qui tacentur et non agnoscuntur. Hoc invisibile et spiritale secundum eos Pleroma, tripartite divisum in octonationem, et decada, et duodecada: et propter hoc Salvatorem dicunt (nec enim Dominum eum nominare volunt) triginta annis in manifesto nihil fecisse, ostendentem mysterium horum Aeonum. Sed et in parabola eorum operariorum, qui in vineam mittuntur, dicunt manifestissime triginta hos Aeonas declaratos. Mittuntur enim alii quidem circa primam horam, alii circa tertiam, alii circa sextam, alii circa nonam, alii circa undecimam. Compositae igitur praedictae horae in semetipsas, triginta numerum adimplent. Una enim, et tres, et sex, et novem, et undecim, triginta fiunt. Per horas autem Aeonas manifestari volunt: et haec esse magna et admirabilia et abscondita mysteria, quae ipsi fructificant: et sicubi quid eorum, quae dicuntur in scripturis, poterunt adaptare et assimilare figmento suo.

1.2

또 그들은 자기들의 프로파토르를 그에게서 태어난 독생자, 곧 누스 한 존재만 안다고 말한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그가 보이지도 않고 파악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누스만 아버지를 보며 기뻐했고, 그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을 살펴보며 즐거워했다. 다른 아이온들에게도 아버지의 위대함을 나누어 알리려 했다. 그가 얼마나 크고 위대한지, 어떻게 시작 없이 존재하며, 담아낼 수 없고, 바라보아도 파악할 수 없는지를 알리려 한 것이다. 그러나 시게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를 제지했다. 그들 모두가 자기 아버지를 찾으려는 생각과 열망을 품게 하려 했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아이온도 말없이 저마다 자기들의 씨를 내보낸 이를 보고, 시작 없는 그 뿌리를 바라보고 싶어 했다.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가 내보낸 그 열둘 가운데 마지막이며 가장 어린 아이온, 곧 소피아는 멀리 뛰쳐나갔다. 자기 짝인 텔레토스와 결합하지 않은 채 격정을 겪었다. 그 격정은 누스와 알레테이아에 관한 일들에서 시작되었다가, 변질된 이 [아이온, 곧 소피아]에게 흘러들었다. 사랑을 구실로 삼았으나, 실상은 무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스처럼 완전한 아버지와 교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격정은 아버지를 찾아내려는 것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의 위대함을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고, 불가능한 일에 나섰기에 큰 고뇌에 빠졌다. 그 높이의 위대함, 아버지의 탐구할 수 없음, 그를 향한 사랑 때문에, 늘 앞으로 뻗어 나갔다. 모든 것을 굳게 붙들고,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위대함 바깥에 지켜 두는 그 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달콤함에 끝내 삼켜지고, 전체 실체 안으로 풀어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 힘을 호로스라고도 부른다. 소피아는 이 힘에 의해 제지되고 굳게 세워져, 겨우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제 아버지는 파악할 수 없는 분임을 믿고, 그 아연한 경탄에서 비롯된 이전의 생각을 거기에 뒤따른 격정과 함께 내려놓았다고 한다.

Et propatorem quidem eorum cognosci soli dicunt ei, qui ex eo natus est, Monogeni, hoc est, No: reliquis vero omnibus invisibilem et incomprehensibilem esse. Solus autem Nus, secundum eos delectabatur videns Patrem, et magnitudinem immensam ejus considerans exultabat, et excogitabat reliquis quoque Aeonibus participare magnitudinem Patris; quantus et quam magnus existeret, et quemadmodum erat sine initio, et incapabilis, et incomprehensibilis ad videndum. Continuit autem eum Sige voluntate Patris, quoniam vellet omnes hos in intellectum et desiderium exquisitionis Patris sui adducere. Et reliqui quidem Aeones omnes tacite quodammodo desiderabant prolatorem seminis sui videre, et eam, quae sine initio est, radicem contemplari. Praesiliit autem valde ultimus et junior de duodecade ea, quae ab Anthropo et Ecclesia emissa fuerat, Aeon, hoc est, Sophia: et passa est passionem sine complexu conjugis Theleti: quae exorsa quidem fuerat in iis, quae sunt erga Nun et Alethiam; derivavit autem in hunc [Aeonem, id est, Sophiam], demutatam, sub occasione quidem dilectionis, temeritatis autem, quoniam non communicaverat Patri perfecto, quemadmodum et Nus. Passionem autem esse exquisitionem Patris: voluit enim, ut dicunt, magnitudinem ejus comprehendere. Dehinc quum non posset, quoniam impossibilem rem aggrederetur, in magna agonia constitutum propter magnitudinem altitudinis, et propter quod investigabile Patris est, et propter eam quae erat erga eum dilectionem, quum extenderetur semper in priora, a dulcedine ejus novissime forte absorptum fuisset, et resolutum in universam substantiam, nisi ei, quae confirmat, et extra inenarrabilem magnitudinem custodit omnia, occurrisset virtuti. Hanc autem virtutem et Horon vocant; a qua abstentum et confirmatum, vix reversum in semetipsum, et credentem jam, quoniam incomprehensibilis est Pater, deposuisse pristinam intentionem cum ea, quae acciderat, passione, ex illa stuporis admiratione.

1.3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소피아의 격정과 돌아옴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풀어낸다. 소피아는 불가능하고 파악할 수 없는 일에 나섰다가, 여성으로서 자기 본성에 따라 낳을 수 있는 형체 없는 실체를 낳았다고 한다. 그것을 바라보고, 태어난 것이 완전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슬퍼했다. 그 뒤에는 바로 이 일로 끝을 맞게 될까 두려워했다. 이어서 질겁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 혼란에 빠져, 그 원인과 태어난 것을 어떻게 감출지를 찾았다. 이런 격정들 속에 있다가, 돌아서서 아버지에게 돌아가려 했다. 얼마 동안 감히 시도했으나, 기력이 다하여 아버지에게 간청하게 되었다. 다른 아이온들도, 특히 누스가, 그와 함께 간청했다고 한다. 물질의 실체는 무지와 괴로움과 두려움과 경악, 곧 여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 일들에 뒤이어 아버지는 독생자를 통해 앞서 말한 호로스를 내보낸다. 짝 없이 남성과 여성을 함께 지닌 자기 모습에 따른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가 어떤 때에는 자기 짝인 시게와 함께 있고, 어떤 때에는 남성의 역할도, 여성의 역할도 한다고 주장한다. 이 호로스를 스타우로스, 뤼트로테스, 카르피스테스, 호로테테스, 메타고게우스라고도 부른다. 소피아는 이 호로스를 통해 깨끗해지고 굳게 세워졌으며, 자기 짝에게 회복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 생각이 뒤따른 격정과 함께 그에게서 분리되었기에, 소피아 자신은 플레로마 안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피아의 욕망은 격정과 함께 호로스에 의해 분리되고 십자가에 못 박혀, 그 바깥에 있게 되었다. 아이온의 어떤 본성적 충동으로서 영적 실체이기는 했으나,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형체도 모양도 없었다. 이 때문에 그 열매를 연약하며 여성적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Quidam autem ipsorum hujusmodi passionem et reversionem Sophiae, velut fabulam narrant, impossibilem et incomprehensibilem rem eam aggressam, peperisse substantiam informem, qualem naturam habebat foemina parere: in quam cum intendisset, primo quidem contristatam, propter inconsummationem generationis: post deinde timuisse, ne hoc ipsum finem habeat: dehinc expavisse et aporiatam, id est, confusam, quaerentem causam, et quemadmodum absconderet id, quod erat natum. In iis autem passionibus factam, accepisse regressionem, et in Patrem regredi conari: et aliquamdiu ausam, tamen defecisse, et supplicem Patris factam. Una autem cum ea rogasse et reliquos Aeonas, maxime autem Nun. Hinc dicunt primum initium habuisse substantiam materiae, de ignorantia, et taedio, et timore, et stupore. Pater autem praedictum Horon super haec per Monogenem praemittit in imagine sua, sine conjuge masculo-foemina. Patrem enim aliquando quidem cum conjuge Sige, modo vero et pro masculo, et pro foemina esse volunt. Horon vero hunc et Stauron, et Lytroten, et Carpisten, et Horotheten, et Metagogea vocant. Per Horon autem hunc dicunt mundatam et confirmatam Sophiam, et restitutam conjugi. Separata enim intentione ab ea cum appendice passione, ipsam quidem infra Pleroma perseverasse. Concupiscentiam vero ejus cum passione ab Horo separatam et crucifixam, et extra eum factam, esse quidem spiritalem substantiam, ut naturalem quendam Aeonis impetum, informem vero et sine specie, quoniam nihil apprehendisset. Et propter hoc fructum ejus invalidum et foemineum dicunt.

1.4

이것이 아이온들의 플레로마 바깥으로 분리되고, 그 어머니가 자기 짝과의 결합을 회복한 뒤에, 독생자는 아버지의 섭리에 따라 또 다른 한 쌍, 곧 그리스도와 성령을 내보냈다고 한다. 아이온들은 이들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짝을 이루는 본성을 가르쳤다. 태어나지 않은 이에 대한 자기들의 이해를 알고, 그것으로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또 그들 가운데 아버지에 관한 지식을 선포했다. 그는 담아낼 수 없고, 파악할 수 없는 분이며, 오직 독생자를 통해서만 그를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 모두가 영원히 존속하는 까닭은 아버지의 파악할 수 없음에 있으며, 태어나고 형성되는 까닭은 그의 파악할 수 있음에 있다. 그것이 곧 아들이다. 이제 막 나온 그리스도가 그들 가운데 이 일들을 이루었다. 성령은 모두 동등하게 된 그들에게 감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참된 안식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이렇게 아이온들이 형태와 생각에서 서로 같아졌다고 말한다. 모두 누스와 로고스가 되고, 모두 안트로포스가 되고, 모두 그리스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성적 존재들도 마찬가지로 모두 알레테이아, 조에, 영, 에클레시아가 되었다. 모든 존재가 이렇게 굳게 세워지고, 완전한 안식을 누리며, 큰 기쁨으로 그 큰 즐거움에 동참하는 프로파토르를 찬양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아이온들의 온 플레로마는 하나의 뜻과 생각으로, 그리스도와 영의 동의 아래, 아이온 각자가 자기 안에 지닌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아름답게 피어난 것을 가져와 모았다고 한다. 이것들을 알맞게 엮고, 정성껏 하나로 맞추어, 하나의 발출물을 내보냈다. 뷔토스의 존귀와 영광을 위한 가장 완전한 아름다움이며, 플레로마의 별, 완전한 열매인 예수였다. 그를 구원자라고도, 그리스도라고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로고스라고도 부른다. 모든 존재에게서 나왔기에 전체라고도 부른다. 그들을 기리는 뜻에서, 같은 부류의 천사들도 그의 호위자로서 그와 함께 나왔다고 한다.

Postea vero quam separata sit haec extra Pleroma Aeonum, et mater ejus redintegrata suae conjugationi, Monogenem iterum alteram emisisse conjugationem, secundum providentiam Patris, Christum et Spiritum sanctum, a quibus consummatos esse dicunt Aeonas. Christum enim docuisse eos conjugationis naturam, innati comprehensionem cognoscentes sufficientes, sive idoneos, esse: declarasse quoque in eis Patris agnitionem, quoniam incapabilis est, et incomprehensibilis, et non est neque videre, neque audire eum nisi per solum Monogenem. Et causam quidem aeternae perseverationis iis omnibus incomprehensibile Patris esse: generationis autem et formationis comprehensibile ejus, quod quidem filius est. Et haec quidem qui nunc emissus erat Christus in eis operatus est. Spiritus vero sanctus adaequatos eos omnes gratias agere docuit, et veram requiem induxit. Et sic forma et sententia similes factos Aeonas dicunt, universos factos Noas et Logos, et omnes Anthropos, et omnes Christos: et foeminas similiter omnes Alethias, et Zoas, et Spiritus, et Ecclesias. Confirmata quoque in hoc omnia, et requiescentia ad perfectum, cum magno gaudio dicunt hymnizare Propatorem, magnae exultationis participantem. Et propter hoc beneficium una voluntate et sententia universum Pleroma Aeonum, consentiente Christo et Spiritu, unumquemque Aeonum, quod habebat in se optimum et florentissimum conferentes, collationem fecisse: et haec apte compingentes, et diligenter in unum adaptantes, emisisse problema, et in honorem et gloriam Bythi perfectissimum decorem quendam, et sidus Pleromatis, perfectum fructum Jesum, quem et Salvatorem vocari, et Christum, et Logon patronymice, ac omnia, quoniam ab omnibus esset. Satellites quoque ei in honorem ipsorum ejusdem generis Angelos cum eo prolatos.

1.5

이것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자기들 플레로마 안에서의 일들이다. 격정을 겪은 아이온이 아버지를 찾아내려다 큰 숲에 빠진 듯 거의 멸망할 뻔한 재난, 호로스, 그들의 십자가, 구속자, 카르피스테스, 호로테테스, 메타고게우스로 말미암아 그 고뇌에서 다시 굳게 세워진 일, 회심 뒤에 그들의 아버지에게서 첫 그리스도와 성령이라는 마지막 아이온들이 태어난 일, 그들이 소테르라고 부르는 둘째 그리스도가 함께 모은 것으로 빚어져 만들어진 일이다. 이 일들은 모두가 그들의 지식을 받아들일 수는 없기에 공공연히 말해지지 않았으나, 구원자가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이들에게 신비롭게 다음과 같이 보여 주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서른 아이온은 구원자가 공개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고 그들이 말하는 서른 해를 통해, 또 포도밭 일꾼의 비유를 통해 드러난다는 것이다. 바울도 아이온들을 매우 분명하게, 아주 자주 언급한다고 한다. 다음과 같이 말하여, 그 순서까지 지킨다는 것이다. “시대들의 시대의 모든 세대에.” 심지어 우리 자신도 감사기도를 드리며 “아이온들의 아이온들에”라고 말할 때, 그 아이온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어디서든 아이온이나 아이온들이라는 말이 나오면, 그 존재들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열두 아이온의 발출은 주님께서 열두 살에 율법 교사들과 토론하신 일로, 또 사도들의 선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가 열두 사도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열여덟 아이온은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한 뒤에 그가 열여덟 달 동안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는 그들의 말, 곧 그 일로 드러난다고 한다. 또 그의 이름 맨 앞에 있는 두 글자, 이오타와 에타도 열여덟 아이온을 뚜렷이 드러낸다고 한다. 열 아이온 역시 그의 이름 첫머리에 있는 이오타라는 글자로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구원자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오타 하나나 작은 획 하나도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열두째 아이온에게 일어난 이 격정은 사도들 가운데 열두째였던 유다의 배신을 통해, 또 그가 열두째 달에 수난을 당했다는 사실을 통해 드러난다고 말한다. 그가 세례 뒤에 한 해 동안 선포했다고 그들은 주장하기 때문이다. 피가 흐르는 병을 앓던 여자에게서도 이것이 매우 분명히 드러난다고 한다. 그 여자는 열두 해 동안 고통을 겪다가, 그의 옷자락을 만졌을 때, 주님이 오심으로 치유되었다. 이 때문에 구원자가 “누가 나를 만졌느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이온들 사이에서 일어난 신비와 격정을 겪은 아이온의 치유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는 설명이다. 열두 해 동안 고통을 겪은 그 여자는 그 힘을 가리킨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 힘은 뻗어 나가고 있었고, 그 실체는 끝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아들의 옷, 곧 첫 네 존재의 무리에 속한 진리를, 그 옷자락으로 드러나는 진리를 만지지 못했다면, 자기 실체 전체 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에게서 나온 힘으로 멈추어 서고, 격정에서 벗어나 안정을 얻었다. 그들은 이 힘이 호로스라고 주장한다. 그것이 소피아를 치유하고, 그에게서 격정을 분리했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게서 나온 구원자가 전체라는 사실은 “태를 여는 모든 남성”이라는 이 말씀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그는 모든 것이므로, 격정을 겪은 아이온의 생각의 태를 열었다. 그 생각은 플레로마 바깥으로 분리되었으며, 그들은 이를 둘째 여덟 존재의 무리라고도 부른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하겠다. 또 바로 이 때문에 바울이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 자신이 모든 것이다.” 또, “모든 것이 그를 향하고, 그에게서 모든 것이 나온다.” 또,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거한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아졌다.” 그들은 이 말씀들과 그와 같은 다른 모든 말씀을 이렇게 해석한다.

Haec igitur est quae intra Pleroma ipsorum dicitur negotiatio et passi Aeonis, et pene perditi, et quasi in multa materia propter inquisitionem Patris calamitas, et Hori, et Crucis ipsorum, et Redemptoris, et Carpistae, et Horothetae, et Metagogei, ex agonia compago, et primi Christi cum Spiritu sancto de poenitentia a Patre ipsorum postrema Aeonum genesis, et secundi Christi, quem Soterem dicunt, ex collatione composita fabricatio. Haec autem manifeste quidem non esse dicta, quoniam non omnes capiunt agnitionem ipsorum, mysterialiter autem a Salvatore per parabolas ostensa iis, qui possunt intelligere, sic: triginta Aeonas significari per triginta annos, sicut praediximus, in quibus nihil in manifesto dicunt fecisse Salvatorem; et per parabolam operariorum vineae. Et Paulum manifestissime dicunt Aeonas nominare saepissime, adhuc etiam et ordinem ipsorum servare, sic dicentem: In universas generationes saeculi saeculorum. Sed et nos ipsos denique in gratiarum actionibus dicentes, aeonas aeonum, illos Aeonas significare: et ubicunque Aeon aut Aeones nominantur, in illos id referri volunt. Duodecadis autem Aeonum emissionem significatam per id, quod duodecim annorum existens Dominus disputaverit cum legis doctoribus, et per Apostolorum electionem: duodecim enim Apostolos elegit. Et reliquos octodecim Aeonas manifestari per id, quod post resurrectionem a mortuis octodecim mensibus dicant conversatum eum cum discipulis. Sed et praecedentes nominis ejus duas literas Iota et Eta, octodecim Aeonas significanter manifestare. Et decem autem Aeonas similiter per Iota literam, quod praecedit in nomine ejus, significari dicunt. Et propter hoc dixisse Salvatorem: Iota unum, aut unus apex non praeteriet, quoadusque omnia fiant. Hanc autem passionem, quae circa duodecimum Aeonem facta est, significari dicunt per apostasiam Judae, qui duodecimus erat Apostolorum, et quoniam duodecimo mense passus est; uno enim anno volunt eum post baptisma praedicasse. Adhuc etiam in ea quae profluvium sanguinis patiebatur, manifestissime hoc significari: duodecim enim annis passam eam, per Domini adventum esse sanatam, cum tetigisset fimbriam vestimenti ejus, et propter hoc dixisse Salvatorem: Quis me tetigit? docentem discipulos quod factum esset inter Aeonas mysterium, et curationem passi Aeonis. Per illam enim quae passa est duodecim annis, illa virtus significatur, eo quod extenderetur, et in immensum flueret ejus substantia, quemadmodum dicunt. Et nisi tetigisset vestimentum illius filii, hoc est veritatis primae tetradis, quae per fimbriam manifesta est, advenisse in omnem substantiam suam. Sed stetit et quievit a passione per egressam virtutem filii. Esse autem hunc Horon volunt, qui curavit eam, et passionem separavit ab ea. Quod autem Salvatorem ex omnibus existentem Omne esse, per hoc responsum, Omne masculinum aperiens vulvam, manifestari dicunt. Qui cum omnia sit, aperuit vulvam excogitationis passi Aeonis, et separata ea extra Pleroma, quam etiam secundam Ogdoadem vocant, de qua paulo post dicemus. Et a Paulo autem manifeste propter hoc dictum dicunt: Et ipse est omnia. Et rursus: Omnia in ipsum, et ex ipso omnia. Et iterum: In ipso habitat omnis plenitudo divinitatis. Et illud: Recapitulata esse omnia in Christo per Deum. Sic interpretantur dicta, et quaecunque alia sunt talia.

1.6

또 자기들의 호로스에 관해, 곧 여러 이름으로 부르는 그 존재에 관해, 두 작용이 있다고 설명한다. 굳게 세우는 작용과 분리하는 작용이다. 굳게 하고 지탱한다는 점에서는 십자가이며, 나눈다는 점에서는 호로스이다. 구원자가 그의 작용을 다음과 같이 드러냈다고 한다. 우선 굳게 세우는 작용은 이 말씀에서 드러냈다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이는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또,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라.” 분리하는 작용은 이 말씀에서 드러냈다. “나는 평화를 보내러 온 것이 아니라 칼을 보내러 왔다.” 요한도 바로 이것을 드러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그의 손에 키가 있으니, 타작마당을 깨끗하게 하고, 밀알을 자기 곳간에 모을 것이며, 겨는 꺼지지 않는 불로 태울 것이다.” 이 말씀으로 호로스의 작용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키를 십자가라고 해석한다. 불이 겨를 태우듯이, 그것이 모든 물질적인 것을 소멸시키고, 키가 밀알을 가려내듯이, 구원받는 이들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 자신도 이 십자가를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고 한다. “십자가의 말씀은 멸망하는 이들에게는 어리석음이지만, 구원받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어떤 것도 자랑하는 일이 내게 없기를 바란다. 그를 통해 세상이 내게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나도 세상에 대해 그러하다.” 이렇듯 그들은 자기들의 플레로마와 만물의 형성에 관해 말한다. 바르게 말해진 것들을 자기들이 그릇되게 지어낸 것들에 맞추려 하는 것이다. 해석을 뒤틀고, 설명을 왜곡하여, 복음서와 사도들의 글에서 증거를 만들려 할 뿐 아니라, 율법과 예언서에서도 그렇게 한다. 거기에는 비유와 알레고리가 많이 있고, 모호한 것을 해석을 통해 여러 방향으로 끌어갈 수 있기에, 자기들의 지어낸 이야기에 더욱 치우치고 교묘하게 맞추는 것이다.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와 한 분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을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지 않는 이들을 진리에서 떼어 내어 사로잡아 간다.

Adhuc etiam de Horo suo (quem etiam pluribus nominibus vocant) duas operationes habere eum ostendunt, confirmativam et separativam: et secundum id quidem, quod firmat et constabilit, Crucem esse; secundum id vero, quod dividit, Horon. Salvatorem autem sic manifestasse operationes ejus: et primo quidem confirmativam, in eo quod dicit: Qui non tollit crucem suam, et sequitur me, discipulus meus esse non potest. Et iterum: Tollens crucem, sequere me. Separativam autem in eo quod dicit: Non veni mittere pacem, sed gladium. Et Joannem dicunt hoc ipsum manifestasse, dicentem: Ventilabrum in manu ejus, emundare aream, et colliget frumentum in horreum suum, paleas autem comburet igni inexstinguibili; et per haec operationem Hori significasse. Ventilabrum enim illud crucem interpretantur esse, quae scilicet consumit materialia omnia, quemadmodum paleas ignis: emundat autem eos qui salvantur, sicut ventilabrum triticum. Paulum autem Apostolum et ipsum reminisci hujus crucis dicunt sic: Verbum enim crucis iis qui pereunt stultitia est: iis autem, qui salvantur, virtus Dei. Et iterum: Mihi autem non eveniat in ullo gloriari, nisi in Christi cruce, per quem mihi mundus crucifixus est, et ego mundo. Talia igitur de Pleromate ipsorum, et plasmate universorum dicunt, adaptare cupientes ea quae bene dicta sunt, iis quae male adinventa sunt ab ipsis. Et non solum autem ex Evangelicis et Apostolicis tentant ostensiones facere, convertentes interpretationes, et adulterantes expositiones: sed etiam ex Lege et Prophetis, cum multae parabolae et allegoriae sint dictae, et in multa trahi possint ambiguum per expositionem, propensius ad figmentum suum et dolose adaptantes, in captivitatem ducunt a veritate eos, qui non firmam fidem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et in u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conservant.

1.7

그들이 말하는 플레로마 바깥의 일들은 다음과 같다. 저 위에 있는 소피아의 엔튀메시스, 곧 그들이 아카모트라고도 부르는 존재는 격정과 함께 위의 플레로마에서 분리되어, 그림자와 빈 공간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빛 바깥에, 플레로마 바깥에 있게 되어, 유산된 태아처럼 형체도 모양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렇게 되었다. 위에 있는 그리스도는 그를 불쌍히 여겨, 십자가를 통해 자신을 뻗어, 자기 힘으로 그에게 형태를 주었다. 그것은 실체만을 형성한 것이며, 지식을 부여하는 형성은 아니었다. 이 일을 하고 나서 자기 힘을 거두어 돌아갔으며, 그를 홀로 두었다. 플레로마와 떨어져 자신에게 일어난 고통을 깨닫고, 더 나은 것들을 갈망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와 성령이 그 안에 남겨 둔 얼마간의 불멸의 향기를 지닌 채 말이다. 이 때문에 그도 두 이름으로 불린다.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소피아라고 불리는데, 그의 아버지가 소피아라고 불리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곁에 있는 영에게서 이름을 받아 성령이라고도 불린다. 그는 형태를 얻고 지각을 갖추었으나, 곧바로 보이지 않게 자기와 함께 있던 그 말씀, 곧 그리스도가 떠나자 그 안이 비워졌다. 자기를 떠난 그 빛을 찾으러 나섰지만, 그것을 붙잡을 수 없었다. 호로스가 막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호로스는 그가 더 앞으로 내달리지 못하게 제지하며, 이아오라고 말했다. 여기서 이아오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카모트는 격정에 얽혀 있었기에 호로스를 넘어갈 수 없었고, 바깥에 홀로 남겨져, 갖가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격정의 모든 부분에 굴복했다. 붙잡지 못했다는 슬픔을 겪었고, 빛이 자기를 떠난 것처럼 생명도 떠나 버릴까 두려워했다. 이 일들에 당혹해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것은 무지 [속에서] 일어났다. 그 어머니인 첫 소피아 아이온이 격정 속에서 변화를 겪었던 것과 달리, 아카모트는 정반대의 상태에 있었다. 그 위에 또 다른 정서가 그에게 생겼다. 자기를 살린 이에게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것이 물질의 결합이며 실체였다고 말한다. 이 세상은 그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세상의 모든 영혼과 데미우르고스의 영혼은 그 돌아섬에서 태어났고, 나머지 것들은 두려움과 슬픔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의 눈물에서 모든 액체의 실체가 생겨났고, 웃음에서는 빛나는 것이, 슬픔과 두려움에서는 세상의 물체적 원소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아카모트는 어떤 때에는 어둠과 빈 공간에 홀로 버려져 있다는 이유로 울며 슬퍼했다. 어떤 때에는 자기를 떠난 그 빛을 생각하며 마음이 풀어져 웃었다. 그러다가 다시 두려워하기도 했고, 당혹해하거나 정신을 잃기도 했다.

Ea vero quae extra Pleroma dicuntur ab iis, sunt talia: Enthymesin illius superioris Sophiae, quam et Achamoth vocant, separatam a superiore Pleromate cum passione dicunt, in umbra et vacuitatis locis defervisse per necessitatem: extra enim lumen facta est, et extra Pleroma, informis et sine specie, quasi abortus, ideo quia nihil apprehendit. Misertum autem ejus superiorem Christum, et per crucem extensum, sua virtute formasse formam, quae esset secundum substantiam tantum, sed non secundum agnitionem: et haec operatum recurrere subtrahentem suam virtutem, et reliquisse illam, uti sentiens passionem, quae erga illam esset per separationem Pleromatis, concupiscat eorum quae meliora essent, habens aliquam odorationem immortalitatis relictam in semetipsa a Christo et Spiritu sancto. Quapropter et ipsam duobus nominibus vocari, Sophiam paternaliter (Pater enim ejus Sophia vocatur) et Spiritum sanctum ab eo, qui est erga Christum Spiritus. Formatam autem eam et sensatam factam, statim autem evacuatam ab eo qui invisibiliter cum ea erat Verbo, hoc est Christo, in exquisitionem egressam ejus luminis, quod se dereliquisset; et non potuisse apprehendere illud, quoniam coërcebatur ab Horo. Et sic Horon coërcentem eam ne anterius irrueret, dixisse Iao, unde et Iao nomen factum dicunt: et cum non posset pertransire Horon, quoniam complexa fuerat passionem, et sola fuisset derelicta foris, omni parti passionis succubuisse multifariae et variae existentis: et passam eam, tristitiam quidem, quoniam non apprehendit, timorem autem, ne quemadmodum eam lumen, sic et vita relinqueret: consternationem autem super haec: [in] ignorantia autem omnia. Et non quemadmodum mater ejus prima Sophia Aeon, demutationem in passionibus habuit, sed contrarietatem. Super haec autem evenisse ei et alteram affectionem conversionis ad eum qui vivificavit. Eam collectionem et substantiam fuisse materiae dicunt, ex qua hic mundus constat. De conversione enim mundi et Demiurgi omnem animam genesin accepisse: de timore autem et tristitia reliqua initium habuisse. A lacrymis enim ejus factam universam humidam substantiam: a risu autem lucidam: a tristitia autem et pavore corporalia mundi elementa. Aliquando enim plorabat et tristis erat, quomodo dicunt, quod derelicta sola esset in tenebris et in vacuo: aliquando autem in cogitationem veniens ejus quod dereliquerat eam lumen, diffundebatur et ridebat: aliquando autem rursus timebat: aliquando consternabatur, et ecstasin patiebatur.

1.8

무엇을 더 말하겠는가? 이제 여기에 큰 비극이 펼쳐지고, 그들 각자의 공상이 나타난다. 실체가 어떤 격정에서, 어떤 원소에서 생겨났는지를 저마다 다르게, 엄숙하게 설명하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이런 것들을 모든 이에게 공공연히 가르치려 하지 않고, 그런 신비들에 대해 큰 보수를 낼 수 있는 이들에게만 가르치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우리 주님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고 하신 것들과 그들이 말하는 것은 이제 같지 않다. 기만하는 자들이 큰 수고를 들여 찾아낸, 멀리 떨어진, 기괴하고, 심오한 신비들인 것이다. 아이온의 격정에서 나온 엔튀메시스의 눈물에서 바다와 샘과 강, 모든 액체 물질이 생겨났으며, 그의 웃음에서 빛이, 두려움과 동요에서 세상의 물체적 원소들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배우려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도 그들의 결실에 무언가를 보태고 싶다. 내가 보니, 샘과 강과 비, 그런 것들의 물 가운데에는 단물이 있고, 바닷물은 짜다. 눈물은 짠 성질을 지니므로,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낸다. 모든 물이 그의 눈물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분명하다. 짠물들이 그 눈물에서 나왔다. 아카모트는 고뇌와 큰 동요 속에 있다가 땀도 흘렸으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 그들의 추론을 따라, 샘과 강, 또 다른 단물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그의 땀에서 생겨났다고 추정해야 한다. 눈물의 성질은 한 가지인데, 거기서 나온 물이 어떤 것은 짜고, 어떤 것은 달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어떤 것은 눈물에서, 어떤 것은 땀에서 나왔다고 하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세상에는 뜨겁고 톡 쏘는 물도 있으니, 그가 무엇을 하다가, 몸의 어느 부분에서 그 물들을 내보냈는지 그대가 알아서 생각해야 한다. 그러한 결실은 그들의 이야기에 잘 어울린다. 그들의 어머니가 모든 격정을 두루 겪고, 겨우 몸을 일으켜, 자기를 떠난 그 빛, 곧 그리스도에게 돌이켜 간청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리스도는 플레로마로 돌아간 뒤, 짐작할 수 있듯이, 자신이 두 번째로 내려가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래서 아카모트에게 파라클레토스, 곧 구원자를 보냈다. 아버지가 그에게 모든 능력을 주고, 모든 것을 그의 권한 아래 맡겼으며, 아이온들도 마찬가지로 했다고 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왕좌들과 신적 존재들과 주권들, 곧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창조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자기와 같은 때에 생긴 천사들과 함께 아카모트에게 그가 보내졌다. 이 아카모트는 그를 경외하여, 처음에는 경외심 때문에 덮개를 썼다고 한다. 그러나 뒤에는 그의 모든 결실과 함께 그를 보고, 그 모습을 바라봄으로써 힘을 얻어,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지식에 따른 형성으로 그를 빚었으며, 그의 격정들을 치유했다. 그에게서 격정들을 떼어 내고, 그것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이미 형태와 힘을 갖춘 상태였기에, 앞의 소피아의 경우처럼 그것들을 없애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로 떼어 낸 뒤, 함께 섞고 응고시켜, 몸 없는 격정에서 몸을 이루지 않은 물질로 바꾸었다. 이렇게 하여 그것들 안에 응집체와 물체를 이룰 수 있는 적합성과 본성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하여 두 실체가 생겨나게 했다. 하나는 격정들에서 나온 악한 실체이며, 다른 하나는 돌아섬에서 나왔지만 격정을 겪을 수 있는 실체였다. 이 때문에 구원자가 능력으로 만들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카모트는 격정에서 벗어나, 그와 함께 있는 빛들의 모습을, 곧 그와 함께 있던 천사들의 모습을 기쁨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하고, 그의 형상에 따라 열매를 낳았다고 그들은 가르친다. 구원자의 호위자들과 닮게 된 영적 자손이었다.

Ecquid enim? tragoedia multa est jam hic, et phantasia uniuscujusque illorum, aliter et aliter graviter exponentis, ex quali passione, et ex quali elemento substantia generationem accepit. Quae etiam convenienter videntur mihi non omnes velle in manifesto docere, sed solos illos qui etiam grandes mercedes pro talibus mysteriis praestare possunt. Non enim jam dicunt similia illis, de quibus Dominus noster dixit: Gratis accepistis, gratis date: sed separata et portentuosa, et alta mysteria cum magno labore exquisita fallacibus. Quis enim non eroget omnia quae sunt ejus, uti discat, quoniam a lacrymis Enthymeseos, quae est ex passione Aeonis, maria et fontes, et flumina, et universa humida materia generationem acceperunt: de risu autem ejus lumen, de pavore autem et inconstabilitate corporalia mundi elementa? Volo autem aliquid et ego conferre fructificationi eorum. Quoniam enim video dulces quidem quasdam aquas, ut fontes, et flumina, et imbres, et talia; quae autem sunt in mari salsas: adinvenio non omnia a lacrymis ejus emissa, quoniam lacrymae salsae sunt qualitate. Manifestum igitur, quoniam salsae aquae sunt hae a lacrymis. Opinor autem eam in agonia et in inconstantia grandi constitutam et sudasse. Unde etiam secundum argumentationem ipsorum suspicari oportet, fontes et flumina, et si quae sunt aliae aquae dulces, generationem habuisse a sudoribus ejus. Non est enim suadibile, cum sint unius qualitatis lacrymae, alteras quidem salsas, alteras dulces aquas ex iis exisse. Hoc autem magis suadibile, alteras quidem esse a lacrymis, alteras vero a sudoribus. Quoniam autem et calidae et austerae quaedam sunt aquae in mundo, intelligere debes, quid faciens, et ex quo membro emisit has. Apti sunt enim hujusmodi fructus argumento ipsorum. Cum igitur peragrasset omnem passionem mater ipsorum, et vix cum elata esset, ad obsecrationem conversa est ejus luminis, quod dereliquerat eam, hoc est, Christi, dicunt: qui regressus in Pleroma, ipse quidem, ut datur intelligi, pigritatus est secundo descendere: Paracletum autem misit ad eam, hoc est, Salvatorem, praestante ei virtutem omnem Patre, et omnia sub potestate tradente: et Aeonibus autem similiter, uti in eo omnia conderentur, visibilia et invisibilia, throni, divinitates, dominationes. Mittitur autem ad eam cum coaetaneis suis Angelis. Hanc autem Achamoth reveritam eum dicunt primo quidem coopertionem imposuisse propter reverentiam: deinde autem cum vidisset eum cum universa fructificatione sua, accurrisse ei, virtute accepta de visu ejus. Et illum formasse eam formationem, quae est secundum agnitionem, et curationem passionum fecisse ejus, separantem eas ab ea, et non eas neglexisse, nec enim erat possibile eas exterminari quemadmodum prioris, eo quod jam habilia et possibilia essent; sed segregantem separatim commiscuisse et coagulasse, et de incorporali passione in incorporalem materiam transtulisse eas: et sic aptabilitatem et naturam fecisse in eis, ut in congregationes et corpora venirent, uti fierent duae substantiae, una quidem mala ex passionibus, altera autem conversionis passibilis: et propter hoc virtute Salvatorem fabricasse dicunt. Hanc autem Achamoth extra passionem factam concepisse de gratulatione eorum, quae cum eo sunt luminum visionem, id est, Angelorum qui erant cum eo, et delectatam in conspectu eorum peperisse fructus secundum illius imaginem docent, partum spiritalem secundum similitudinem factum satellitum Salvatoris.

1.9

그들에 따르면, 이렇게 세 가지가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는 격정에서 나온 것으로, 물질이었다. 다른 하나는 돌아섬에서 나온 것으로, 혼에 속한 것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카모트가 낳은 것으로, 영적인 것이었다. 이제 아카모트는 그것들을 형성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영적인 것은 형성할 수 없었다. 자기와 같은 실체를 지녔기 때문이다. 자신의 돌아섬에서 생겨난 혼에 속한 실체를 형성하는 데로 향했고, 구원자에게서 받은 가르침들도 내놓았다고 한다. 먼저 아카모트는 혼에 속한 실체로 하나님 아버지이자 구원자이며 왕인 존재를 빚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와 같은 실체를 지닌 모든 것, 곧 혼에 속한 것들의 왕이며, 그들은 이것들을 오른쪽 것들이라고 부른다. 또 격정과 물질에서 나온 것들의 왕이기도 하며, 그들은 이것들을 왼쪽 것들이라고 부른다. 그가 자기 어머니에게 은밀하게 움직임을 받아, 자기 뒤에 있는 것들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메트로파토르, 아파토르, 데미우르고스, 아버지라고 부른다. 오른쪽 것들, 곧 혼에 속한 것들의 아버지라고 하며, 왼쪽 것들, 곧 물질에 속한 것들의 제작자라고 한다. 모든 것의 왕이기도 하다. 이 엔튀메시스가 아이온들을 기리려고 모든 것을 만들고자 하여, 그들의 형상들을 만들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더 정확히는 구원자가 엔튀메시스를 통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엔튀메시스 자신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형상으로, 데미우르고스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머물렀다. 데미우르고스는 독생자의 형상이며, 그가 만든 천사들과 대천사들은 나머지 아이온들의 형상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는 플레로마 바깥에 있는 것들의 아버지이자 하나님이 되었고, 혼과 물질에 속한 모든 것의 제작자였다고 한다. 서로 섞여 있던 두 실체를 나누고, 몸 없는 것들에서 물체를 만들어, 하늘과 땅에 있는 것들을 제작했다. 물질과 혼에 속한 것들, 오른쪽과 왼쪽 것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위로 날아오르는 것과 아래로 기울어지는 것들의 제작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 일곱 하늘을 만들었고, 데미우르고스는 그 위에 있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그를 헤브도마드라고 부르고, 어머니인 아카모트는 오그도아드라고 부른다. 플레로마의 처음 태어난 최초의 여덟 무리가 지닌 수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 일곱 하늘에는 지성이 있다고 말하며, 그것들이 천사들이라고 전한다. 데미우르고스 자신도 하나님을 닮은 천사라고 한다. 그와 같이, 셋째 하늘 위에 있는 낙원도 하나의 권능, 곧 넷째 대천사라고 말한다. 그 안에 머물던 아담은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았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이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생각했으나, 아카모트가 그것들을 만들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하늘을 만들면서도 하늘을 몰랐고, 인간을 빚으면서도 인간을 몰랐고, 땅을 드러내면서도 땅을 몰랐다고 한다. 모든 일에서 이와 같이, 그는 자기가 만드는 것들의 형상들과 그 어머니 자체도 몰랐다고 한다. 자신이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그런 활동의 원인이 되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어머니는 그를 이런 존재로 내놓으려 했다. 자기 실체의 머리이며 시작이고, 모든 활동의 주인이 되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 어머니를 오그도아드, 소피아, 땅, 예루살렘, 성령이라고 부르고, 남성형으로 주라고도 부른다. 그는 중간 장소를 차지하여, 데미우르고스 위에, 플레로마 아래 또는 바깥에, 마지막 때까지 있다고 한다.

Tria igitur haec cum subsistant secundum eos, unum quidem ex passione, quod erat materia, alterum vero de conversione, quod erat animale: alterum vero quod enixa est, quod est spiritale, sic conversa est in formationem ipsorum. Sed spiritale quidem non potuisse eam formare, quoniam ejusdem substantiae ei erat. Conversam autem in formationem ejus, quae facta erat de conversione ejus, animalis substantiae, emisisse quoque a Salvatore doctrinas. Et primo quidem formasse eam de animali substantia dicunt Deum Patrem, et Salvatorem, et Regem omnium ejusdem substantiae ei, id est, animalium, quas dextras vocant; et eorum quae ex passione et ex materia, quas sinistras dicunt. Ea enim quae post eum sunt, eum dicunt formasse latenter motum a matre sua. Unde et Metropatorem, et Apatorem, et Demiurgum eum, et Patrem vocant: dextrorum quidem Patrem dicentes eum, id est, Psychicorum; sinistrorum vero, id est, Hylicorum, Demiurgum: omnium autem Regem. Hanc enim Enthymesin volentem in Aeonum honorem omnia facere, imagines dicunt fecisse ipsorum, magis autem Salvatorem per ipsam. Et ipsam quidem in imagine invisibilis Patris conservasse incognitam a Demiurgo. Hunc autem unigeniti Filii: reliquorum vero Aeonum eos, qui ab hoc facti sunt Angeli et Archangeli. Patrem itaque et Deum dicunt factum eorum quae sunt extra Pleroma, fabricatorem esse omnium Psychicorum et Hylicorum. Separantem enim duas substantias confusas, et de incorporalibus corporalia facientem, fabricasse quae sunt caelestia et terrena, et factum Hylicorum et Psychicorum, dextrorum et sinistrorum fabricatorem, levium et gravium, sursum advolantium, et deorsum devergentium: septem quoque caelos fecisse, super quos Demiurgum esse dicunt. Et propter hoc Hebdomadam vocant eum, matrem autem Achamoth Ogdoada, servantem numerum primogenitae et primariae Pleromatis Ogdoadis. Septem autem caelos, quos intellectuales esse dicunt, Angelos autem eos tradunt et Demiurgum et ipsum angelum, Deo autem similem, quemadmodum et Paradisum supra tertium caelum existentem virtutem Archangelum quartum dicunt esse, et ab hoc aliquid accepisse Adam conversatum in eo. Haec autem Demiurgum dicunt a semetipso quidem putasse in totum fabricasse; fecisse autem ea Achamoth. Caelum enim fecisse nescientem caelum, et hominem plasmasse ignorantem hominem, terram autem ostendisse non scientem terram, et in omnibus sic dicunt ignorasse eum figuras eorum, quae faciebat, et ipsam matrem; semetipsum autem putasse omnia esse. Causam autem ei fuisse matrem ejus talis operationis dicunt, quae sic voluerit producere eum: caput quidem et initium suae substantiae, dominum autem universae operationis. Hanc autem Matrem et Ogdoadem vocant, et Sophiam, et Terram, et Hierusalem, et Spiritum sanctum, et Dominum masculiniter. Habere autem medietatis locum eam, et esse quidem super Demiurgum, subtus autem sive extra Pleroma usque ad finem.

1.10

그들은 물질적 실체가 세 격정, 곧 두려움과 슬픔과 당혹함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혼에 속한 것들은 두려움과 돌아섬에서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는 돌아섬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하며, 말 못 하는 짐승들과 인간에게 있는 그 밖의 혼에 속한 모든 실체는 두려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우월한 존재로서 영적인 것들을 미리 알았으며, 자기만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예언자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하나님이며,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악한 영적 존재들은 슬픔에서 생겨났다고 가르친다. 마귀도 여기에서 태어났으며, 그들은 그를 코스모크라토르라고도 부른다. 귀신들과 악의 모든 영적 실체도 여기에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데미우르고스는 자기 어머니에게서 나온 혼에 속한 아들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코스모크라토르는 데미우르고스의 피조물이라고 한다. 코스모크라토르는 영적인 악이기에 자기 위의 것들을 알지만, 데미우르고스는 혼에 속한 존재이므로 알지 못한다고 한다. [한편] 그들의 어머니는 하늘 위의 장소, 곧 중간 영역에 머문다. 데미우르고스는 하늘 안의 장소, 곧 일곱 영역에 머문다. 코스모크라토르는 우리와 같은 이 세상에 있다고 한다. 앞서 말했듯이, 세상의 물체적 원소들은 경악과 당혹함에서, 곧 더 광란한 상태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땅은 경악으로 멈추어 선 상태에서, 물은 두려움의 움직임에서, 공기는 슬픔이 굳어짐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불은 죽음과 부패로서 이 모든 것 안에 있다. 그와 같이 무지도 세 격정 모두에 감추어져 있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세상을 만든 뒤, 흙에 속한 인간도 만들었다. 이 메마른 땅에서 취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실체에서, 쏟아지고 흐르는 물질에서 취하여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안에 혼에 속한 인간을 불어넣었다고 그들은 단정한다. 이 인간이 형상과 닮음을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형상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물질에 속한 존재여서, 가깝기는 하지만, 하나님과 같은 실체는 아니다. 닮음을 따른다는 점에서는 혼에 속한 존재이다. 영적으로 흘러나온 것이기에, 그 실체도 생명의 영이라고 불렸다는 것이다. 그 뒤에는 그에게 가죽옷이 둘러졌다고 말한다. 이것은 감각을 지닌 살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들의 어머니인 아카모트가 구원자 곁에 있는 그 천사들을 바라봄에 따라 낳은 자손은, 자기 어머니와 같은 실체를 지닌 영적 존재였다. 이 자손도 데미우르고스는 몰랐다고 한다. 그가 모르는 사이, 그 안에 은밀하게 넣어졌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그에게서 나온 그 혼과, 이 물질적인 몸 안에 심겨, 그 안에서 마치 자궁 속에 있는 것처럼 길러지고 자라나, 완전한 이성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능력과 섭리로 소피아가 그의 숨결과 함께 심은 영적 인간을 데미우르고스는 알아채지 못했다. 자기 어머니를 몰랐듯이, 그 어머니의 씨도 몰랐다. 그들은 이 씨가 교회라고도 말한다. 위에 있는 교회의 모형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자기들 안에 있는 인간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혼은 데미우르고스에게서, 몸은 진흙에서, 살로 된 부분은 물질에서, 영적 인간은 어머니 아카모트에게서 받았다는 것이다.

Quoniam quidem materialem substantiam ex tribus passionibus constare dicunt, timore, et tristitia, et aporia, de timore quidem et de conversione animalia subsistentiam accepisse: de conversione quidem Demiurgum volunt genesin habuisse: de timore autem reliquam omnem animalem substantiam mutorum animalium, et hominum. Et propter hoc superiorem eum existentem praescire quae sunt spiritalia, et se putasse solum Deum, et per prophetas dixisse, Ego Deus, et praeter me nemo. De tristitia autem spiritalia malitiae docent facta: unde et diabolum genesin habuisse, quem et Cosmocratorem vocant, et daemonia, et omnem spiritalem malitiae substantiam. Sed Demiurgum quidem psychicum filium matris suae dicunt, Cosmocratorem vero creaturam Demiurgi: et Cosmocratorem quidem intelligere ea quae sunt supra eum, quoniam sit spiritalis malitia; Demiurgum vero ignorare, cum sit animalis. Habitare [autem] matrem quidem ipsorum in eo qui sit supercaelestis locus, hoc est in medietate; Demiurgum vero in eo qui sit in caelo locus, hoc est hebdomade: Cosmocratorem vero in eo qui sit secundum nos mundo. De expavescentia vero et aporia, quasi de vesaniori, corporalia, quemadmodum praediximus, mundi elementa facta esse: terram vero secundum expavescentiae statum, aquam vero secundum timoris motum, aërem vero secundum moestitiae fixionem: ignem vero omnibus iis inesse mortem et corruptelam, quemadmodum et ignorantiam omnibus tribus passionibus inabsconsam docent. Cum fabricasset igitur mundum, fecit et hominem choicum, non autem ab hac arida terra, sed ab invisibili substantia, et ab effusili et fluida materia accipientem: et in hunc insufflasse psychicum definiunt. Et hunc esse secundum imaginem et similitudinem factum: secundum imaginem quidem hylicum esse, proximum quidem, sed non ejusdem substantiae esse Deo: secundum similitudinem vero psychicum, unde et spiritum vitae substantiam ejus dictam, cum sit ex spiritali defluitione. Post deinde circumdatam dicunt ei dermatinam tunicam: hanc autem sensibilem carnem esse volunt. Partum vero matris ipsorum, quae est Achamoth, quem secundum inspectionem eorum Angelorum qui sunt erga Salvatorem generavit, existentem ejusdem substantiae matri suae spiritalem, et ipsum enim ignorasse Demiurgum dicunt: et latenter depositum esse in eum, nesciente eo, uti per eum in eam quae ab eo esset animam seminatum, et in materiale hoc corpus, gestatum quoque velut in utero in iis et amplificatum, paratum fiat ad susceptionem perfectae rationis. Latuit igitur, quemadmodum dicunt, Demiurgum conseminatus insufflationi ejus a Sophia spiritalis homo, inenarrabili virtute et providentia. Quemadmodum enim Matrem suam ignoravit, sic et semen ejus. Quod etiam ipsum Ecclesiam esse dicunt, exemplum superioris Ecclesiae: et hunc esse in semetipsis hominem volunt, uti habeant animam quidem a Demiurgo, corpus autem a limo, et carneum a materia, spiritalem vero hominem a matre Achamoth.

1.11

이렇게 세 가지가 있으므로, 물질적인 것, 곧 그들이 왼쪽 것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필연적으로 멸망한다고 말한다. 썩지 않음의 숨결을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혼에 속한 것, 곧 그들이 오른쪽 것이라고도 부르는 것은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 사이에 있으므로,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으로 옮겨진다고 한다. 영적인 것은 여기서 혼에 속한 것과 결합하여, 살아가는 가운데 그것과 함께 배워 형성되도록 내보내졌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라고 말한다. 혼에 속한 것에는 감각을 통한 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세상도 만들어졌다고 하고, 구원자도 스스로 선택할 권한을 지닌 이 혼에 속한 것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한다. 그가 구원할 것들의 첫 열매를 받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카모트에게서는 영적인 것을 받았고, 데미우르고스에게서는 프시키코스, 곧 혼에 속한 그리스도를 입었으며, 경륜에 따라 몸을 둘렀다는 것이다. 그 몸은 혼에 속한 실체를 지녔으나,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져, 보이고, 만질 수 있고, 고통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물질에 속한 것은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한다. 물질에 속한 것은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것 전체가 지식으로 형성되고 완전해질 때, 완성이 오리라고 한다. 곧 사람들, 하나님에 관해 완전한 지식을 가진 이들, 아카모트에게서 신비에 입문한 이들이 완전해질 때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프시키코스, 곧 혼에 속한 사람들은 프시키카, 곧 혼에 속한 것들을 배운다. 행위와 믿음만으로 굳게 세워지고, 완전한 지식은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다. 교회에 속한 우리가 그런 사람들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하게 사는 일이 필요하다고 답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들은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본성상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든 구원받는다고 말한다. 흙에 속한 것이 구원을 받는 일이 불가능하듯이, 곧 그것은 구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듯이, 영적인 것 역시, 곧 자신들이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부패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한다. 금이 진창 속에 놓여도 자기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본성을 지키는 것과 같다. 진창이 금을 조금도 해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자기들도, 어떤 물질적인 행위를 하든, 전혀 해를 입지 않으며, 영적 실체를 잃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Cum sint igitur tria, alterum materiale (quod etiam sinistrum vocant) ex necessitate perire dicunt, quippe cum nullam spirationem incorruptelae recipere possit: Animale vero (quod etiam dextrum appellant) cum sit medium spiritalis et materialis, illuc redigi, quocunque declinaverit: Spiritale vero emissum esse, uti hic animali conjunctum formetur, coëruditum ei in conversatione. Et hoc esse dicunt, sal, et lumen mundi. Opus erat enim animali sensibilibus disciplinis. Ob quam causam et mundum fabricatum dicunt, et Salvatorem autem ad hoc venisse animale, quia suae potestatis est, ut id salvet. Quae enim salvaturus erat, eorum primitias eum suscepisse dicunt: ab Achamoth quidem spiritale, a Demiurgo autem indutum psychicum (id est animalem) Christum, a dispositione autem circumdatum corpus, animalem habens substantiam, paratum vero inenarrabili arte, ut et visibile, et palpabile, et passibile fieret. Et hylicum autem nihil omnino suscepit: non enim esse hylicum capacem salutis. Consummationem vero futuram, cum formatum et perfectum fuerit scientia omne spiritale, hoc est, homines qui perfectam agnitionem habent de Deo, et hi qui ab Achamoth initiati sunt mysteria: esse autem hos semetipsos dicunt. Erudiuntur autem psychica (id est animalia) psychici (id est animales) homines, qui per operationem et fidem nudam firmantur, et non perfectam agnitionem habent. Esse autem hos nos, qui sumus ab Ecclesia, dicunt. Quapropter et nobis quidem necessariam esse bonam conversationem respondent: aliter enim impossibile esse salvari. Semetipsos autem non per operationem, sed eo quod sint naturaliter spiritales, omnimodo salvari dicunt. Quemadmodum enim choicum impossibile est salutem percipere, (non enim esse illum capacem salutis dicunt,) sic iterum quod spiritale (quod semetipsos esse volunt) impossibile esse corruptelam percipere, licet in quibuscunque fuerint factis. Quemadmodum enim aurum in coeno depositum non amittit decorem suum, sed suam naturam custodit, cum coenum nihil nocere auro possit: sic et semetipsos dicunt, licet in quibuscunque materialibus operibus sint, nihil semetipsos noceri, neque amittere spiritalem substantiam.

1.12

이 때문에 그들 가운데 완전하다는 자들은 금지된 모든 일을 두려움 없이 행한다. 그런 일들에 대해 성경은, “그 일을 하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고 확언한다. 그들은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거리낌 없이 먹으며, 그것 때문에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즐거움을 위해, 신들을 기리려고 벌이는 이방인들의 모든 축제에도 맨 먼저 모여든다.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혐오스러운 살육의 경기 구경조차 조금도 삼가지 않을 정도이다. 어떤 자들은 육체의 쾌락에 탐욕스럽게 매달리며, 육적인 것들은 육적인 것들에, 영적인 것들은 영적인 것들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은 자기들에게서 이 가르침을 배우는 여자들을 몰래 타락시킨다. 그들에게 여러 차례 설득되었던 많은 여자가 뒤에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와, 다른 오류들과 함께 이 일도 고백했다. 다른 자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공공연히 자기가 사랑하게 된 여자들을 그들의 남편들에게서 떼어 내어, 자기 아내로 삼았다. 또 다른 자들은 처음에는 매우 단정하게, 자매들과 함께 사는 것처럼 가장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드러났다. 자매라던 여자가 형제라던 남자에게서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밖에도 혐오스럽고 불경한 일을 많이 행하면서, 하나님을 경외하여 생각에서조차, 말에서조차 죄짓기를 두려워하는 우리를 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 비난한다. 자기들은 높여, 완전한 이들이라고, 선택의 씨들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쓰도록 주어지는 은혜를 받으므로, 그 은혜를 빼앗기기도 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자기들은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며, 말로 다 나타낼 수도, 이름 붙일 수도 없는 짝의 결합에서 위로부터 내려온 은혜를 지니기에, 더 보태어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모든 방식으로 자기들은 늘 짝의 결합이라는 신비를 익혀야 한다고 한다. 분별없는 이들을 설득하려고, 바로 이런 말을 한다. “누구든 세상 안에 있으면서, 아내와 결합하도록 그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 이는 진리에 속하지 않으며, 진리로 들어가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한 자로서 여자와 결합한 이는 진리로 들어가지 못한다. 욕망 속에서 여자와 결합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들이 혼에 속한 이들이라고 부르고, 세상에 속해 있다고 하는 우리에게는 절제와 선한 행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것을 통해 중간 영역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영적이며 완전하다고 불리는 자기들에게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고 한다. 행위가 플레로마 안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작게 내보내져, 여기서 완전해진 씨가 이끌기 때문이다. 모든 씨가 완전해지면, 그들의 어머니인 아카모트는 중간 영역에서 떠나, 플레로마 안으로 들어가고, 모든 존재에게서 나온 자기 신랑인 구원자를 맞아들이리라고 그들은 말한다. 구원자와 소피아, 곧 아카모트가 짝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이들이 신랑과 신부이며, 혼인방은 온 플레로마라고 한다. 영적인 이들은 혼을 벗어 버리고, 지성을 지닌 영들이 되어, 붙잡히지도, 보이지도 않은 채 플레로마 안으로 들어간다. 구원자 곁에 있는 천사들에게 신부로 주어진다는 것이다. 데미우르고스 자신도 어머니 소피아의 장소, 곧 중간 영역으로 옮겨간다고 한다. 의로운 이들의 혼들도 중간 영역에서 안식을 누린다. 혼에 속한 것은 아무것도 플레로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Quapropter et intimorate omnia quae vetantur hi, qui sunt ipsorum perfecti, operantur, de quibus Scripturae confirmant, quoniam qui faciunt ea, Regnum Dei non haereditabunt. Etenim idolothyta indifferenter manducant, nihil inquinari ab iis putantes, et in omnem diem festum ethnicorum pro voluptate in honorem Deorum factum primi conveniunt; uti in nihilo quidem abstineant, quod est apud Deum et apud homines odiosum muneris homicidiale spectaculum. Quidam autem et carnis voluptatibus insatiabiliter inservientes, carnalia carnalibus, spiritalia spiritalibus reddi dicunt. Et quidam quidem ex ipsis clam eas mulieres, quae discunt ab eis doctrinam hanc, corrumpunt: quemadmodum multae saepe ab iis suasae, post conversae mulieres ad Ecclesiam Dei, cum reliquo errore et hoc confessae sunt. Alii vero et manifeste, ne quidem erubescentes, quascunque adamaverint mulieres, has a viris suis abstrahentes, suas nuptas fecerunt. Alii vero valde modeste initio, quasi cum sororibus fingentes habitare, procedente tempore manifestati sunt, gravida sorore a fratre facta. Et alia multa odiosa et irreligiosa facientes, nos quidem, qui per timorem Dei timemus etiam usque in mentibus nostris et sermonibus peccare, arguunt quasi idiotas, et nihil scientes; semetipsos extollunt, perfectos vocantes, et semina electionis. Nos enim in usu gratiam accipere dicunt, quapropter et auferri a nobis: semetipsos autem proprie possidere, desursum ab inenarrabili et innominabili syzygia descendentem habere gratiam, et propterea adjici eis. Quapropter ex omni modo oportere eos semper syzygiae meditari mysterium. Et hoc suadent insensibilibus iis sermonibus dicentes sic: Quicunque in saeculo est, et uxorem non amat, ut ei conjungatur, non est de veritate, et non transiet in veritatem. Qui autem de saeculo est mixtus mulieri, non transit in veritatem: quoniam in concupiscentia mixtus est mulieri. Quapropter nobis quidem, quos psychicos vocant, et de saeculo esse dicunt, necessariam continentiam, et bonam operationem, uti per eam veniamus in medietatis locum. Sibi autem, spiritalibus et perfectis vocatis, nullo modo. Non enim operatio in Pleroma inducit, sed semen quod est inde pusillum quidem emissum, hic autem perfectum factum. Cum autem universum semen perfectum fuerit, Achamoth quidem matrem ipsorum transire de medietatis loco dicunt, et intra Pleroma introire, et recipere sponsum suum Salvatorem, qui est ex omnibus factus, uti syzygia fiat Salvatoris et Sophiae, quae est Achamoth. Et hoc esse sponsum et sponsam: nymphonem vero universum Pleroma. Spiritales vero exspoliatos animas, et spiritus intellectuales factos, inapprehensibiliter et invisibiliter intra Pleroma ingressos, sponsas reddi iis qui circa Salvatorem sunt angelis. Demiurgum vero transire et ipsum in matris suae Sophiae locum, hoc est, in medietatem. Justorum quoque animas refrigerare et ipsas in medietatis loco. Nihil enim psychicum intra Pleroma transire.

1.13

이 일들이 그렇게 이루어지면, 세상에 숨어 있는 불이 타올라 휩쓸며, 모든 물질을 소멸시키고, 그 자신도 함께 소멸되어, 더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는 구원자가 오기 전에 이 일들을 하나도 알지 못했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어떤 이들은 또 이렇게 말한다. 데미우르고스가 자기 아들 그리스도를 내보냈는데, 그도 혼에 속한 존재였으며, 그에 관해 예언자들을 통해 말했다는 것이다. 물이 관을 통과하듯이 마리아를 통과한 이가 바로 그리스도이며, 세례 때에 플레로마에서, 모든 존재에게서 나온 그 구원자가 비둘기의 모습으로 그에게 내려왔다고 한다. 그 안에는 아카모트에게서 나온 그 영적 씨도 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은 처음 태어난 최초의 네 무리의 모형을 유지하며, 이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그들은 말한다. 아카모트에게서 나온 영적인 것, 데미우르고스에게서 나온 혼에 속한 것,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기술로 만들어진 경륜에 따른 것, 그에게 내려온 그 비둘기인 구원자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 구원자는 계속 고통을 겪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붙잡을 수도, 볼 수도 없는 존재이므로 고통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그가 빌라도에게 끌려갔을 때, 그 안에 놓였던 그리스도의 영이 거두어졌다고 한다. 어머니에게서 나온 씨도 고통을 겪지 않았다고 그들은 말한다. 영적인 것이며, 데미우르고스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았기에, 그것 역시 고통받을 수 없었다. 그들에 따르면, 고통을 겪은 것은 혼에 속한 그리스도와, 경륜에 따라 신비롭게 만들어진 몸이었다. 어머니가 그를 통해 위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형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그 위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자신을 뻗어, 아카모트에게 실체에 따른 형성을 부여한 이이다. 이 모든 일이 저 위의 일들의 모형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아카모트에게서 나온 그 씨를 지닌 혼들은 다른 혼들보다 더 나았다고 한다. 그래서 데미우르고스에게 더 사랑받았다. 그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한 채, 자기 때문에 그 혼들이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 혼들을 예언자들과 제사장들과 왕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씨가 예언자들을 통해 많은 것을 말했다고 그들은 설명한다. 그 씨가 더 높은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위의 것들에 관해 많이 말했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를 통해, 그가 만든 그 혼들을 통해 말한 것이다. 이렇게 그들은 예언을 나누어, 어떤 것은 어머니에게서, 어떤 것은 씨에게서, 어떤 것은 데미우르고스 자신에게서 나왔다고 가르친다. 예수도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구원자에게서, 어떤 것은 어머니에게서, 어떤 것은 데미우르고스에게서 받아 말했다고 한다. 이 점은 논의를 진행하며 드러내 보이겠다. 데미우르고스는 자기 위의 것들을 몰랐기에, 선포되는 말들에 마음이 움직이면서도, 그 말들을 업신여겼다. 그 까닭을 그때그때 다르게 생각했다. 스스로 어떤 움직임을 지닌 예언하는 영 때문이거나, 인간 때문이거나, 더 열등한 자들의 혼란 때문이라고 여겼다. 구원자가 올 때까지 이렇게 무지한 상태로 머물렀다고 한다. 그러다가 구원자가 오자, 데미우르고스는 그에게서 모든 것을 배웠다고 그들은 말한다. 자기의 모든 능력과 함께, 기쁘게 그에게 복종했다. 그가 바로 복음서에 나오는 백부장, 구원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도 내 권한 아래 군인들과 종들을 두고 있으며, 내가 명령하는 것을 그들이 행합니다.” 데미우르고스는 자기에게 맡겨진 세상의 창조를 필요한 때까지 이루어 갈 것이라고 한다. 특히 교회를 보살피고 돌보기 위해서, 또 마련된 상을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어머니의 자리로 옮겨갈 것을 아는 것이다.

His autem factis ita, is qui latet in mundo ignis exardescens et comprehendens, universam materiam consumit, et ipsum simul consumptum abire in id, ut jam non sit. Demiurgum autem nihil horum cognovisse ostendunt ante Salvatoris adventum. Sunt autem qui dicunt emisisse eum Christum filium suum, sed et animalem: et de hoc per Prophetas locutum esse. Esse autem hunc qui per Mariam transierit, quemadmodum aqua per tubum transit, et in hunc in baptismate descendisse illum qui esset de Pleromate ex omnibus Salvatorem in figura columbae: fuisse autem in eo et illud quod est ab Achamoth semen spiritale. Dominum igitur nostrum ex quatuor iis compositum fuisse dicunt, servantem typum primogenitae et primae quaternionis; de spiritali, quod erat ab Achamoth: et de animali, quod erat de Demiurgo: et de dispositione, quod erat factum inenarrabili arte: et de Salvatore, quod erat illa, quae descendit in eum columba. Et hunc quidem impassibilem perseverasse: (non enim possibile erat pati eum, cum esset incomprehensibilis et invisibilis) et propter hoc ablatum esse, cum traheretur ad Pilatum, illum qui depositus erat in eum spiritus Christi. Sed ne id quidem quod a matre erat semen, passum esse dicunt. Impassibile enim et illud, quippe spiritale, et invisibile etiam ipsi Demiurgo. Passus est autem secundum hos animalis Christus, et ille qui ex dispositione fabricatus in mysterio, ut ostendat per eum mater typum superioris Christi, illius qui extensus est Cruci, et formavit Achamoth formationem secundum substantiam: omnia enim haec exempla illorum esse dicunt. Eas vero quae habuerunt semen id quod est ab Achamoth animas, meliores dicunt fuisse quam reliquas: quapropter et plus eas dilectas a Demiurgo, non sciente causam, sed a semetipso putante esse tales. Quapropter et in prophetas, aiunt, distribuebat eas, et sacerdotes, et reges. Et multa ab hoc semine dicta per prophetas exponunt: quippe cum altioris naturae esset. Multa autem et matrem de superioribus dixisse dicunt; sed et per hunc, et per eas, quae ab hoc factae sunt animae. Ac deinceps dividunt prophetias, aliquid quidem a matre dictum docentes, aliquid a semine, aliquid autem ab ipso Demiurgo: et Jesum tantundem aliquid quidem a Salvatore dixisse, aliquid a matre, aliquid a Demiurgo, quemadmodum ostendemus procedente nobis sermone. Demiurgum autem, quippe ignorantem quae essent super eum, moveri quidem in iis quae dicuntur, contempsisse vero ea, aliam atque aliam causam putantem, sive spiritus qui prophetat, habens et ipse suam aliquam motionem, sive hominem, sive perplexionem pejorum: et sic ignorantem conservasse usque ad adventum Salvatoris. Cum venisset autem Salvator, didicisse eum ab eo omnia dicunt, et in gaudium ei cessisse cum omni virtute sua, et eum esse illum in Evangelio Centurionem, dicentem Salvatori: Et ego enim sub potestate mea habeo milites et servos, et quod jussero, faciunt. Perfecturum autem eum eam quae secundum ipsum est mundi creationem, usque ad id tempus quod oportet, maxime autem propter Ecclesiae diligentiam atque curam, et propter agnitionem praeparati praemii, quoniam in locum matris transibit.

1.14

그들은 인간에게 세 부류가 있다고 말한다. 영에 속한 부류, 혼에 속한 부류, 흙에 속한 부류이다. 가인과 아벨과 셋에게서 그랬듯이, 이들에게서도 세 본성을 보여 주려는 것이다. 이제 각 사람 안에서가 아니라, 부류에 따라 나뉜다고 한다. 흙에 속한 것은 부패로 들어간다. 혼에 속한 것은 더 나은 것을 선택하면, 중간 영역에서 안식을 누릴 것이다. 더 나쁜 것을 선택하면, 그 역시 같은 멸망으로 들어간다. 아카모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적인 것들을 씨로 심는다. 그 때문에 혼들도 여기에서 배울 것이며, 작은 상태로 내보내진 씨들은 길러지고, 뒤에 완전함을 누릴 자격을 얻어, 구원자의 천사들에게 신부로 주어진다고 그들은 답한다. 그들의 혼들은 필연적으로 중간 영역에서 데미우르고스와 함께 영원히 안식을 누릴 것이다. 또 혼들 자체를 다시 나누어, 어떤 것은 본성상 선하고, 어떤 것은 본성상 악하다고 말한다. 선한 혼들은 씨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들이며, 다른 혼들은 본성상 악하여, 그 씨를 결코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Hominum autem tria genera dicunt; spiritalem, psychicum, choicum, quemadmodum fuit Cain, Abel, Seth; ut ostendant et ex his tres naturas, jam non secundum unumquemque, sed secundum genus. Et Choicum quidem in corruptelam abire: Animale vero, si meliora elegerit, in loco medietatis refrigeraturum: si vero pejora, transire et ipsum ad similia. Spiritalia vero inseminat Achamoth, ex illo tempore usque nunc, propter quod et animae erudientur quidem hic: et semina enutrita, quia pusilla emittantur, post deinde perfectione digna habita, sponsas reddi Salvatoris Angelis respondent; animabus eorum ex necessitate in medietate cum Demiurgo refrigeraturis in aeternum. Et ipsas autem animas rursus subdividentes, dicunt quasdam quidem natura bonas, quasdam autem natura malas. Et bonas quidem has esse, quae capaces seminis fiunt: alias vero natura nequam, nunquam capere illud semen.

1.15

이렇듯 그들의 이야기는 예언자들도 선포하지 않았고, 주님도 가르치지 않았고, 사도들도 전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것을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자랑한다. 기록되어 있지도 않은 것들을 읽어 내고, 흔히 말하듯, 모래로 밧줄을 꼬려 하면서, 주님의 비유나 예언자의 말씀, 사도의 말처럼 믿을 만한 것들을 자기들이 말한 것에 맞추려 한다. 자기들의 꾸며 낸 이야기가 증거 없는 것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의 순서와 짜임을 넘어서고, 자기들이 할 수 있는 한 진리의 지체를 해체한다. 이리저리 옮기고 다시 빚어, 이것을 저것으로 만들며, 주님의 말씀들에서 떼어 맞춘 것들을 서툴게 엮은 허구에 끼워 넣어, 많은 사람을 속인다.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하는 것과 같다. 솜씨 좋은 장인이 귀한 보석들로 정성껏 만든 왕의 아름다운 초상이 있다. 거기에 표현된 사람의 모습을 해체하고, 그 보석들을 옮겨, 새로 배열하여 개나 여우의 형상을 만든다. 그것조차 엉성하게 만든다. 그러고 나서 단언하며 말한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그 아름다운 왕의 초상이 바로 이것이라고. 그는 보석들을 보여 준다. 처음 장인이 왕의 초상으로 잘 조합해 두었던 보석들이지만, 나중 사람이 개의 형상으로 잘못 옮겨 놓은 것들이다. 그는 보석들의 겉모습으로 왕의 모습이 어떠한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속이고, 이 흉한 여우의 형상이 바로 왕의 아름다운 초상이라고 설득한다. 이 사람들도 같은 방식으로, 늙은 여자들의 옛이야기를 기워 붙이고, 이어서 말들과 표현들과 비유들을 여기저기서 떼어 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들의 이야기에 맞추려 한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플레로마 안의 것들에 맞추는지는 이미 말했다.

Cum sit igitur tale illorum argumentum, quod neque Prophetae praedicaverunt, neque Dominus docuit, neque Apostoli tradiderunt, quod abundantius gloriantur plus quam caeteri cognovisse, de iis quae non sunt scripta legentes, et quod solet dici, de arena resticulas nectere affectantes, fide digna aptare conantur iis quae dicta sunt, vel parabolas dominicas, vel dictiones propheticas, aut sermones apostolicos, ut figmentum illorum non sine teste esse videatur; ordinem quidem et textum Scripturarum supergredientes, et quantum in ipsis est, solventes membra veritatis. Transferunt autem et transfingunt, et alterum ex altero facientes, seducunt multos ex iis quae aptant ex dominicis eloquiis male composito phantasmati. Quomodo si quis regis imaginem bonam fabricatam diligenter ex gemmis pretiosis a sapiente artifice, solvens subjacentem hominis figuram transferat gemmas illas, et reformans faciat ex iis formam canis, vel vulpeculae, et hac male dispositam; dehinc confirmet et dicat, hanc esse regis illam imaginem bonam, quam sapiens artifex fabricavit, ostendens gemmas, quae bene quidem a primo artifice in regis imaginem compositae erant, male vero a posteriore in canis figuram translatae sunt, et per gemmarum phantasiam decipiat idiotas, qui comprehensionem regalis formae non habeant, et suadeat quoniam haec turpis vulpeculae figura illa est bona regis imago: eodem modo et hi anicularum fabulas adsuentes, post deinde sermones, et dictiones, et parabolas hinc inde auferentes, adaptare volunt fabulis suis eloquia Dei. Et quanta quidem iis, quae sunt intra Pleroma, aptant, diximus.

1.16

이제 그들의 플레로마 바깥에 있는 것들에 관해, 성경에서 가져와 자기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주님께서 세상 마지막 때에 수난을 겪으러 오신 까닭은 이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아이온에게 일어난 격정을 보여 주고, 그 마지막을 통해 아이온들에 관한 경륜의 마지막을 드러내려는 것이었다. 주님께서 곁에 서서 죽음에서 건져 내신 그 열두 살 소녀, 회당장의 딸은 아카모트의 모형이라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그들의 그리스도가 자신을 뻗어 아카모트에게 형태를 주고, 그를 떠난 그 빛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플레로마 바깥에서 유산된 태아의 처지에 있던 아카모트에게 구원자가 자기를 드러냈다는 사실은, 바울이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맨 마지막에는 유산된 태아와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다.” 자기와 같은 때에 생긴 이들과 함께 구원자가 아카모트에게 온 일도, 바울이 같은 방식으로 드러내어, 같은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자는 천사들 때문에 머리에 너울을 써야 한다.” 또 구원자가 아카모트에게 왔을 때, 아카모트는 부끄러움 때문에 자기 얼굴에 너울을 썼다는 것이다. 그가 겪은 격정들도 주님께서 드러내셨다고 한다. 곧 그가 빛에게서 버려졌다는 일을,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고 말씀하실 때 드러내셨다는 것이다. 소피아가 빛에게서 버려졌고, 호로스에게 앞으로 내달리는 일을 제지당했음을 드러내셨다고 한다. 그의 괴로움은 “내 혼이 얼마나 슬픈가!”라고 하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그의 두려움은 “아버지, 가능하다면, 이 잔이 나를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하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또 어찌할 바를 모름, 곧 당혹함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같은 방식으로 드러난다. 그가 인간의 세 부류를 [이렇게] 보여 주었다고 그들은 가르친다. 물질에 속한 부류는 “당신을 따를까요?”라고 하는 이에게,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라고 답하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혼에 속한 부류는,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서 집안사람들에게 작별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라고 말하는 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데서 드러난다. “쟁기에 손을 얹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하늘나라에 적합하지 않다.” 이 사람이 중간 부류에 속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의로운 일을 많이 했다고 고백했으나, 뒤에 따르기를 거절하고, 재물에 굴복하여 완전해지지 못한 사람도, 그 사람 역시 혼에 속한 부류였다고 주장한다. 영에 속한 부류는 “죽은 이들이 자기 죽은 이들을 묻게 두어라. 그대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드러난다. 또 세리 삭개오에게, “서둘러 내려오너라. 오늘은 그대 집에 내가 머물러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에서도 드러난다... 누룩의 비유, 곧 여자가 가루 세 사톤 속에 숨겼다고 하는 누룩의 비유도 세 부류를 드러낸다고 한다. 여자는 소피아를 가리킨다고 가르치며, 가루 세 사톤은 인간의 세 부류, 곧 영에 속한 부류, 혼에 속한 부류, 흙에 속한 부류라고 한다. 누룩은 구원자 자신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바울도 흙에 속한 이들, 혼에 속한 이들, 영에 속한 이들을 분명하게 말했다고 한다. 어떤 곳에서는, “흙에 속한 이가 그러하듯, 흙에 속한 이들도 그러하다”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는, “혼에 속한 사람은 영에 속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라고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영에 속한 이는 모든 것을 분별한다”라고 했다. [또 이 말,] “혼에 속한 이는 영에 속한 것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은 데미우르고스에 관해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혼에 속한 존재라서, 영적인 존재인 어머니도, 그의 씨도, 플레로마 안의 아이온들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원자가 자기가 구원할 이들의 첫 부분을 받았다는 사실은 바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첫 봉헌물이 거룩하면, 반죽 덩어리도 그러하다.” 첫 봉헌물은 영적인 것을 가리킨다고 가르치고, 반죽은 우리, 곧 혼에 속한 교회라고 한다. 구원자가 그 교회의 실체를 취하여, 자기와 함께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 그 자신이 누룩이었기 때문이다.

Quanta autem de iis, quae extra Pleroma sunt ipsorum, ad suos insinuare conantur ex Scripturis, sunt talia: Dominum in novissimis mundi temporibus propter hoc venisse ad passionem dicunt, ut ostendat, quae circa novissimum Aeonum facta est, passionem, et per hunc finem manifestet finem ejus, quae est circa Aeonas, dispositionis. Duodecim autem annorum virginem illam archisynagogi filiam, quam insistens Dominus a mortuis liberavit, typum esse narrant Achamoth, quam extensus Christus eorum figuravit, et ad sensibilitatem adduxit ejus, quod dereliquerat eam, luminis. Quoniam autem ei manifestavit semetipsum Salvator, existenti extra Pleroma in abortionis parte, Paulum dicunt dixisse in prima ad Corinthios epistola: Novissime autem tanquam abortivo visus est et mihi. Et illam quae est cum coaetaneis Salvatoris adventationem ad Achamoth, similiter manifestasse eum in eadem epistola dicentem: Oportere mulierem velamen habere in capite propter Angelos. Et quoniam adventante Salvatore ad eam, propter verecundiam velamen imposuit Achamoth in faciem suam. Et passiones autem, quas passa est, significasse Dominum dicunt: in hoc quidem, quod derelicta est a lumine; in eo, cum dicit in cruce: Deus meus, Deus meus, ut quid me dereliquisti? manifestasse eum, quoniam derelicta est a lumine Sophia, et prohibita est ab Horo in priora impetum facere. Taedium autem ejus, in eo quod dixisset: Quam tristis est anima mea! Timorem autem, in eo quod dixerit: Pater, si possibile est, transeat a me calix. Et aporiam autem (id est consternationem) similiter in eo, quod dixerit: Et quid dicam nescio. Tria autem genera hominum [sic] ostendisse docent eum; hylicum quidem, in eo quod responderit dicenti: Sequar te? Non habet filius hominis ubi caput reclinet. Animale autem, in eo quod dixerit dicenti: Sequar te, permitte autem mihi ire et renunciare domesticis: Nemo super aratrum manum imponens, et in posteriora respiciens, aptus est regno caelorum. Hunc autem dicunt de mediis esse. Et illum autem similiter, qui multas partes justitiae confitebatur se fecisse, post deinde nolentem sequi, sed a divitiis victum, ut ne fieret perfectus, et hunc de psychico genere fuisse volunt. Spiritale vero, in eo quod dicit: Remitte mortuos sepelire mortuos suos, tu autem vade et annuncia regnum Dei; Et Zacchaeo publicano, dicens: Properans descende, quoniam hodie in domo tua oportet me manere... Et fermenti parabolam, quod mulier abscondisse dicitur in farinae sata tria, tria genera manifestare dicunt. Mulierem quidem Sophiam dici docent; farinae vero sata tria, tria genera hominum, spiritale, animale, choicum. Fermentum vero ipsum Salvatorem dictum dicunt. Et Paulum autem manifeste dixisse choicos, animales, spiritales. Alibi quidem: Qualis choicus, tales et choici. Alibi autem: Animalis homo non percipit quae sunt spiritus. Alibi autem: Spiritalis examinat omnia. [Id autem,] Animalis autem non percipit quae sunt spiritus, de Demiurgo dictum dicunt, qui cum Psychicus sit, non cognoverit neque matrem spiritalem existentem, neque semen ejus, neque eos qui sunt in Pleromate Aeones. Quoniam autem eorum quos salvaturus erat Salvator initia accepit, Paulum dixisse: Et si delibatio sancta, et massa. Delibationem quidem, quod est spiritale dictum docentes: conspersionem autem nos, id est psychicam Ecclesiam, cujus substantiam assumpsisse dicunt eum, et cum semetipso erexisse, quoniam erat ipse fermentum.

1.17

또 아카모트가 플레로마 바깥에서 길을 잃고, 그리스도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구원자가 그를 찾아 나섰다는 사실은, 자기가 길 잃은 그 양을 찾아왔다고 말씀하실 때, 그가 드러냈다고 한다. 길 잃은 양은 자기들의 어머니를 가리킨다고 설명하며, 여기 있는 교회는 그 어머니에게서 씨로 심겼다고 주장한다. 길을 잃음은 플레로마 바깥에서 온갖 격정 속에 머무름이라고 한다. 물질은 그 격정들에서 생겨났다고 전한다. 집을 청소하고 드라크마를 찾아내는 그 여자는 위에 있는 소피아를 가리킨다고 이야기한다. 자기의 생각을 잃었다가, 나중에 구원자가 옴으로써 모든 것이 깨끗해지자, 그 생각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이 존재도 플레로마 안으로 회복된다. 그리스도를 자기 품에 받아 안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 이제 당신의 말씀에 따라 당신의 종을 평안히 놓아주십니다”라고 말한 그 시므온은 데미우르고스의 모형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는 구원자가 오자, 자기가 옮겨 갈 자리를 알게 되어, 뷔토스에게 감사했다는 것이다. 또 안나를 통해 아카모트가 아주 분명히 드러난다고 한다. 복음서에 따르면, 안나는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 그 뒤의 모든 세월을 과부로 지냈다. 그러다가 구원자를 보았고, 그를 알아보았으며, 모든 사람에게 그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카모트는 그때 구원자를 그와 같은 때에 생긴 이들과 함께 잠시 보았고, 그 뒤의 모든 세월을 중간 영역에 머물며, 그가 다시 와서 자기를 본래의 짝과 결합시켜 줄 때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그 이름도 구원자가 “지혜는 자기 자녀들에 의해 옳다고 인정받았다”라고 하신 말씀에서 드러났다고 한다.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완전한 이들에게 지혜를 말한다.” 바울은 플레로마 안에 있는 짝의 결합들도 한 사례로 드러내어 말했다고 한다. 이 삶에서 이루어지는 그 결합에 관해 쓰면서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 신비는 크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해 말한다.”

Et quoniam erravit Achamoth extra Pleroma, et formata est a Christo, et quaesita est a Salvatore, manifestare eum dicunt, in eo quod dixit, semetipsum venisse ad eam quae errasset ovem. Ovem enim errantem matrem suam referunt dici, ex qua eam, quae sit hic, volunt esse seminatam Ecclesiam. Errorem autem, eam, quae est extra Pleroma, in omnibus passionibus immorationem, ex quibus factam materiam tradunt. Mulierem autem illam quae mundat domum, et invenit drachmam, superiorem Sophiam narrant dici: quae cum perdidisset intentionem suam, post deinde, mundatis omnibus per Salvatoris adventum, invenit eam: quoniam et haec restituitur secundum eos intra Pleroma. Simeon autem eum qui in manus suas accepit Christum, et gratias egit Deo, et dixit: Nunc remittis servum tuum, Domine, secundum sermonem tuum in pace, typum esse Demiurgi dicunt, qui veniente Salvatore didicit transpositionem suam, et gratias egit Bytho. Et per Annam, quae in Evangelio dicitur septem annis cum viro vixisse, reliquum autem omne tempus vidua perseverasse, donec vidisset Salvatorem, et agnovisset eum, et loqueretur de eo omnibus, manifestissime Achamoth significari dicunt: quae cum ad modicum vidisset tunc Salvatorem cum coaetaneis suis, postero omni tempore perseverans in medietate, sustinebat eum, quando iterum veniat et reponat eam suae conjugationi. Et nomen autem ejus significatum a Salvatore, in eo quod dixerit: Justificata est Sapientia a filiis ejus: et a Paulo autem sic: Sapientiam autem loquimur perfectis. Et conjugationes autem quae sunt intra Pleroma Paulum dixisse dicunt, in uno ostendentem; de ea enim conjugatione, quae est secundum hanc vitam scribens ait: Hoc enim mysterium magnum est; dico autem in Christo et Ecclesia.

1.18

또 그들은 주님의 제자 요한이 자신의 말로 최초의 여덟 존재의 무리와 만물의 발생을 드러냈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요한은 하나님에게서 처음 생겨난 어떤 시작을 제시했다. 이를 누스라고도, 아들이라고도 부르고, 주님의 독생자라고도 부른다. 아버지는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씨의 형태로 내보냈다. 이 시작에게서 말씀이 나왔고, 그 안에서 아이온들의 모든 실체가 나왔다고 그들은 말한다. 말씀 자신이 나중에 그 실체에 형태를 주었다. 요한은 최초의 발생을 말하므로, 시작, 곧 아들과 말씀에서부터 가르침을 전개한 것은 적절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작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이 말씀은 시작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하나님과 시작과 말씀, 이 셋을 먼저 구별한 뒤, 다시 하나로 묶었다. 그 둘, 곧 아들과 말씀의 발출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들이 서로 이루는 결합과 아버지와 이루는 결합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시작은 아버지 안에, 또 아버지에게서 있으며, 말씀은 시작 안에, 또 시작에게서 있다. “시작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한 말은 그러므로 적절하다. 말씀이 아들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시작도 그러했기 때문이다. “말씀은 하나님이셨다”는 말도 그에 따른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시작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말은 발출의 순서를 드러낸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생겨났으며, 그 없이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말씀은 자기 뒤에 있는 모든 아이온에게 형성과 발생의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한은 “그 안에서 생겨난 것은 생명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짝의 결합들을 드러냈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생겨났다고 말하면서, 생명은 그 안에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서 생겨난 이 생명은 그를 통해 생겨난 것들보다 더 가깝다. 생명은 그와 함께 있으며, 그를 통해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요한이 덧붙여,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이제 요한은 인간과 교회를 같은 이름으로 드러냈다. 하나의 이름을 통해 짝의 결합이 이루는 공동성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인간과 교회가 태어나기 때문이다. 생명을 사람들의 빛이라고 부른 까닭은, 그들이 생명에게서 빛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형태를 얻고 드러났다는 뜻이다. 바울도 이를 말한다.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이다.” 생명이 인간과 교회를 드러내고 낳았기에, 그들의 빛이라고 불린 것이다. 요한은 이 말들을 통해 다른 것들과 함께, 로고스와 조에,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라는 둘째 네 존재의 무리를 분명히 드러냈다. 첫째 네 존재의 무리도 나타냈다. 구원자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플레로마 바깥의 모든 것이 그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가르치고, 그가 플레로마 안의 열매라고도 말하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빛나고, 그들에게 파악되지 않는 빛이라고 그를 불렀다. 격정에서 생겨난 모든 것을 형성하면서, 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를 아들과 진리와 생명이라고 말하고, 육신이 된 말씀이라고 말한다. 그의 영광을 우리가 보았다고 하며, 그 영광은 독생자의 영광과 같은 것이었고, 아버지가 그에게 주신 것이며, 은혜와 진리로 가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고, 우리는 그 영광을 보았다. 아버지에게서 나온 독생자와 같은 영광이었다. 말씀은 은혜와 진리로 충만하셨다.” 아버지와 은총과 독생자와 진리를 말하여, 최초의 네 존재의 무리를 정확히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요한은 최초이자 모든 아이온의 어머니인 여덟 존재의 무리를 말했다. 아버지와 은총과 독생자와 진리와 말씀과 생명과 인간과 교회를 말한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설명은 이와 같다.

Adhuc autem Johannem discipulum Domini docent primam ogdoadem, et omnium generationem significasse ipsis dictionibus. Itaque principium quoddam subjecit, quod primum factum est a Deo: quod etiam Nun vocat et filium: et unigenitum Domini vocat, in quo omnia Pater emisit seminaliter. Ab hoc autem aiunt Verbum emissum, et in eo omnem Aeonum substantiam, quam ipsum postea formavit Verbum. Quoniam igitur de prima genesi dicit, bene a principio, hoc est a Filio, et Verbo doctrinam facit. Dicit autem sic: In principio erat Verbum, et Verbum erat apud Deum, et Deus erat Verbum: hoc erat in principio apud Deum. Prius distinguens in tria, Deum, et Principium, et Verbum; iterum ea univit, uti et emissionem ipsorum utrorumque ostendat, id est, Filii et Verbi, et eam quae est ad invicem simul et ad Patrem unionem. In Patre enim et ex Patre principium, in principio autem et ex principio Verbum. Bene igitur dixit, In principio erat Verbum; erat enim in Filio: Et Verbum erat apud Deum: etenim principium. Et Deus erat Verbum, consequenter; quod enim ex Deo natum est, Deus est. Hic enim erat in principio apud Deum, ostendit emissionis ordinem. Omnia per ipsum facta sunt, et sine ipso factum est nihil. Omnibus enim iis qui post eum sunt Aeonibus, formationis et generationis causa Verbum factum est. Sed quod factum est in eo, inquit, vita est: hic enim syzygias manifestavit: Omnia enim, ait, per ipsum facta sunt, vita autem in ipso. Haec ergo quae in eo facta est, proximior est quam ea quae per ipsum facta sunt: cum ipso est enim, et per ipsum fructificat. Quoniam infert, Et vita erat lux hominum. Hominem autem nunc et Ecclesiam simili nomine significavit, ut per unum nomen manifestet syzygiae communionem. Ex Logo enim et Zoe Homo generatur et Ecclesia. Lumen autem dixit hominum vitam, quoniam illuminati sunt ab ea, quod est formatum et manifestatum. Hoc autem et Paulus dicit: Omne enim quod manifestatur lumen est. Quoniam igitur vita manifestavit et generavit Hominem et Ecclesiam, lumen dicta est eorum. Aperte igitur manifestavit Johannes per sermones hos, et alia, et quaternationem secundam, Logon et Zoen, Anthropon et Ecclesiam. Sed et primam significavit tetradem. Narrans enim de Salvatore, et docens omnia, quae extra Pleroma sunt, per eum formata, fructum quoque eum esse dicens intra Pleroma. Etenim lumen dixit illum quod in tenebris lucet, et non comprehenditur ab eis, quoniam omnia quae facta sunt ex passione formans, ignoratus est ab eis. Et Filium et Veritatem et Vitam dicit eum, et Verbum carnem factum: cujus gloriam vidimus, ait, et erat gloria ejus qualis erat unigeniti, quae a Patre data est ei, plena gratia et veritate. Dicit autem sic: Et Verbum caro factum est, et habitavit in nobis, et vidimus gloriam ejus, gloriam quasi unigeniti a Patre, plenum gratia et veritate. Diligenter igitur ostendit primam quaternationem, Patrem dicens, et Gratiam, et Monogenem, et Veritatem. Sic Johannes de prima et matre omnium Aeonum ogdoade dixit. Patrem enim dixit, et Gratiam, et Monogenem, et Veritatem, et Verbum, et Vitam, et Hominem, et Ecclesiam. Et Ptolemaeus quidem ita.

1.19

사랑하는 그대여, 이제 보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런 궁리를 써서 자신을 속이고, 성경을 왜곡하며, 자기들이 꾸며 낸 이야기가 성경에서 성립하는 것처럼 만들려고 애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술책 자체와 말들을 제시했다. 그 말들에서 그 궁리의 악함과 오류의 사악함을 그대가 살펴보게 하려는 것이다. 우선, 요한에게 위에 있는 그 여덟 존재의 무리를 보여 주려는 뜻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발출의 순서를 지켰을 것이다. 최초의 네 존재의 무리가 그들의 말대로 더 존귀하다면, 그 이름들을 맨 앞에 놓고, 그 뒤에 둘째 무리를 덧붙였을 것이다. 이름들의 순서를 통해 여덟 존재의 순서가 드러나게 하려는 것이다. 마치 잊었다가 다시 생각난 듯이, 그렇게 긴 간격을 두고, 맨 마지막에 최초의 네 존재의 무리를 언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 짝의 결합을 나타내려 했다면, 에클레시아의 이름도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짝들에 대해서도 남성의 명칭만으로 만족하든지 했을 것이다. 그들의 여성 짝들도 마찬가지로 함께 알아들을 수 있으므로, 모든 경우에 일관성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이들의 짝을 열거했다면, 안트로포스, 곧 인간의 짝도 분명하게 밝혔을 것이다. 우리가 점을 쳐서 그 짝의 이름을 알아내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해석이 꾸며 낸 것임은 분명하다. 요한은 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독생자 그리스도 예수를 선포하며, 그를 통해 모든 것이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며, 독생자이고, 만물의 창조자이며,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고, 세상을 만드신 분이라고 말한다. 그가 자기 것들에게 오셨고, 바로 그가 육신이 되셨으며,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럴듯하게 해석을 뒤틀어, 모노게네스가 발출의 순서에서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들이 시작이라고도 부르는 바로 그 존재이다. 소테르, 곧 구원자는 또 다른 존재라고 주장한다. 로고스, 곧 말씀도 또 다른 존재이며, 모노게네스, 곧 독생자의 아들이라고 한다. 플레로마를 바로잡기 위해 내보내진 그리스도도 또 다른 존재라고 한다. 말해진 것 하나하나를 진리에서 떼어 내고, 이름들을 남용하여, 자기들의 논증으로 옮겼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요한은 그 많은 말을 하면서도 주 그리스도 예수를 언급하지 않은 셈이다. 아버지와 카리스와 모노게네스와 알레테이아와 로고스와 조에와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를 말한 것이라면, 그들의 논증에 따라 최초의 여덟 존재의 무리에 관해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리 안에는 아직 예수도, 요한의 스승인 그리스도도 없었다. 사도가 그들의 짝의 결합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했으며, 그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바로 요한 자신이 분명히 했다. 처음에 자신이 언급한 그 말씀에 관해 다시 모아 말하며, 덧붙여 설명한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 그러나 그들의 논증에 따르면, 말씀이 육신이 된 것은 아니다. 말씀은 플레로마 바깥으로 나온 적조차 없기 때문이다. 모든 존재에게서 만들어지고, 말씀보다 뒤에 있는 구원자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Vides igitur, dilectissime, adinventionem, qua utentes seducunt semetipsos, calumniantes scripturis, fictionem suam ex eis constare annitentes. Propter hoc enim et ipsas eorum adposui astutias et dictiones, ut ex eis consideres malitiam inventionis et nequitiam erroris. Primo enim si propositum esset Johanni, illam quae sursum est octonationem ostendere, ordinem custodisset utique emissionis, et primam quaternationem, cum sit venerabilior, quemadmodum dicunt, in primis utique posuisset nominibus, et sic adjunxisset secundam, ut per ordinem nominum ordo ostenderetur octonationis: et non utique post tantum intervallum quasi oblitus, deinde commemoratus, in novissimo primae memoratus fuisset quaternationis. Deinde autem et conjugationes significare volens, et Ecclesiae non praetermisisset nomen; sed aut et in reliquis conjugationibus contentus fuisset masculorum appellatione, similiter cum possent et illa simul subaudiri, ut unitatem per omnia esset custodiens; aut si reliquorum conjugationes enumerabat, et Anthropi, (id est, Hominis) utique manifestasset conjugem, et utique non remisisset de divinatione nos accipere nomen ipsius. Manifesta igitur expositionis eorum transfictio. Johanne enim unum Deum Omnipotentem, et unum Unigenitum Christum Jesum annunciante, per quem omnia facta esse dicit, hunc Verbum Dei, hunc unigenitum, hunc factorem omnium, hunc lumen verum illuminans omnem hominem, hunc mundi fabricatorem, hunc in sua venisse, hunc eundem carnem factum, et inhabitasse in nobis: hi transvertentes secundum verisimile expositionem, alterum quidem Monogenem volunt esse secundum emissionem, quem scilicet et Principium vocant: alterum autem Soterem, (id est, Salvatorem) fuisse volunt, et alterum Logon, (id est, Verbum) filium Monogenis, (id est, Unigeniti) et alterum Christum ad emendationem Pleromatis emissum: et unumquodque eorum quae dicta sunt auferentes a veritate, et abutentes nominibus, in suam argumentationem transtulerunt: ut secundum eos in tantis Johannes Domini Christi Jesu memoriam non fecerit. Si enim Patrem dixit, et Charin, et Monogenem, et Alethian, et Logon, et Zoen, et Anthropon, et Ecclesiam, secundum illorum argumentationem de prima ogdoade dixit, in qua nondum Jesus, nondum Christus Johannis magister. Quia autem non de syzygiis ipsorum Apostolus dixit, sed de Domino nostro Jesu Christo, quem et Verbum scit esse Dei, idem ipse fecit manifestum. Recapitulans enim de eo Verbo quod ei in principio dictum est, insuper exponit: Et Verbum caro factum est, et inhabitavit in nobis. Secundum autem illorum argumentationem, non Verbum caro factum est, quod quidem nec venit unquam extra Pleroma: sed qui ex omnibus factus est, et sit posterior Verbo, Salvator.

1.20

그러므로 분별없는 이들이여, 배우라. 우리를 위해 고난받고,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아이온들 가운데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신이 되었다면, 사도가 다른 이를 두고 말했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씀, 곧 내려오신 분이 바로 올라가신 분이시며, 한 분 하나님에게서 난 독생자 아들이시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사람들을 위해 육신이 되셨다면, 요한은 다른 누군가나 여덟 존재의 무리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한 것이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말씀은 본래 의미에서 육신이 되지 않았다. 소테르가 혼에 속한 몸을 입었다고 그들은 말한다. 경륜에 따라, 말로 다 나타낼 수 없는 섭리로 마련되어, 보이고 만질 수 있게 된 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은 그 옛날 하나님께서 진흙으로 아담을 빚으신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육신이 참으로 되셨음을 밝혔다. 그들의 최초로 태어난 첫 여덟 무리는 이로써 해체된다. 로고스와 모노게네스와 조에와 포스와 소테르와 그리스도, [또] 하나님의 아들이 한 분, 바로 같은 분으로 드러나고, 그 같은 분이 우리를 위해 육신이 되셨기 때문이다. 그들이 엮은 여덟 무리는 해체된다. 이것이 해체되면, 그들의 모든 논증이 무너진다. 그들은 그것을 거짓 이름으로 꿈꾸어 내어, 자기들의 논증을 꾸미려고 성경을 모욕한다. 그런 다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표현들과 이름들을 모아, 앞서 말했듯이, 본래 의미에 맞는 데서 본래 의미에 어긋나는 데로 옮긴다. 자기 마음대로 어떤 논제를 정하고, 그 뒤에 호메로스의 시구들로 그것을 엮어 보려는 사람들과 같은 일을 한다. 무지한 이들은 호메로스가 그때그때 꾸며서 펼쳐 낸 논제에 맞추어 시를 지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어 맞춘 시구의 흐름에 끌려, 호메로스가 실제로 이렇게 지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가령, 헤라클레스가 에우뤼스테우스에게서 저승에 있는 그 개에게 보내졌다는 이야기를, 호메로스의 시구들로 이렇게 쓰는 것이다. 양쪽이 시도하는 방식이 서로 같으므로, 예를 들어 이런 것들도 언급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 “이 말을 하고 울고 있는 이를 문밖으로 보내었다, 큰일들에 익숙한 불굴의 헤라클레스를, 페르세우스의 후손 스테넬로스에게서 태어난 에우뤼스테우스가, 어두운 디스의 개를 에레보스에서 지상으로 데려오게 하려고. 그는 산에서 자란 사나운 사자처럼 나아간다, 도시 한가운데로. 아는 이들이 모두 함께 갔다, 노인들과 소년들과 아직 혼인하지 않은 소녀들이, 그가 죽음 자체로 나아가는 듯이 크게 울면서. 메르쿠리우스와 회청빛 눈의 팔라스가 가는 이를 앞서 보낸다. 고통이 형제를 얼마나 몰아붙이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순박한 사람들 가운데 이런 시구들에 누가 사로잡히지 않겠는가? 호메로스가 이 줄거리에 맞추어 그 시구들을 그렇게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호메로스의 작품을 아는 사람은 시구들은 알아보되, 그 줄거리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어떤 구절은 오디세우스에 관해, 어떤 것은 헤라클레스에 관해, 어떤 것은 프리아모스에 관해, 또 어떤 것은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에 관해 쓰였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시구들을 가져다가, 하나하나 본래의 책에 돌려놓으면, 지금의 줄거리를 없애 버릴 것이다. 그와 같이, 세례를 통해 받은 진리의 규범을 자기 안에 굳게 지닌 사람도, 성경에서 나온 이름들과 표현들과 비유들은 알아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독적인 줄거리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보석들은 알아보더라도, 여우를 왕의 초상 대신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표현들을 하나씩 본래 순서에 돌려놓고, 진리의 몸에 맞추면, 그들이 꾸며 낸 것을 벌거벗겨, 아무 실체가 없음을 드러낼 것이다. 이 극에는 아직 마무리가 필요하다. 누군가가 그들의 소극을 끝까지 풀어낸 뒤, 그것을 무너뜨리는 논증을 덧붙이게 하려고, 이 이야기의 창시자들 자신이 어떤 점에서 서로 다른 말을 하는지 먼저 보여 주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오류의 영들에게서 나온 듯한 이들이다. 이 사실에서도, 그 증명에서도, 교회가 선포하는 견고한 진리와 그들이 꾸며 낸 거짓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Discite igitur insensati, quoniam Jesus, qui passus est pro nobis, qui inhabitavit in nobis, idem ipse est Verbum Dei. Si enim alius ex Aeonibus pro nostra salute caro factus est, aestimandum erat de altero dixisse Apostolum. Si autem Verbum Patris qui descendit, ipse est et qui ascendit, ab uno Deo unigenitus Filius, secundum Patris placitum incarnatus pro hominibus, non de alio aliquo, neque de ogdoade Johannes sermonem fecit, sed de Domino Jesu Christo. Neque enim Verbum secundum eos principaliter caro factum est. Dicunt enim Sotera induisse corpus animale, de dispositione aptatum inenarrabili providentia, ut visibile et palpabile fieret. Caro est autem illa vetus de limo secundum Adam facta plasmatio a Deo, quam vere factum Verbum Dei manifestavit Johannes. Et soluta est illorum prima et primogenita octonatio. Cum enim unus et idem ostenditur Logos et Monogenes, et Zoe et Phos, et Soter et Christus [et] filius Dei, et hic idem incarnatus pro nobis, soluta est octonationis illorum compago. Hac autem soluta, decidit illorum omnis argumentatio, quam falso nomine somniantes infamant Scripturas, ad propriam argumentationem confingendam. Post deinde dictiones et nomina dispersim posita colligentes, transferunt, sicut praediximus, ex eo quod est secundum naturam in id quod est contra naturam: similia facientes iis, qui controversias sibimetipsis quaslibet proponunt, post deinde conantur ex Homericis versibus meditari eas: ita ut idiotae putent ex illa temporali declamata controversia Homerum versus fecisse, et multi abducantur per compositam consequentiam versuum, ne forte haec sic Homerus fecerit. Quemadmodum Herculem ab Eurystheo ad eum qui apud inferos est canem missum ex Homericis versibus scribens ita: nihil enim prohibet exempli gratia commemorari et horum, cum sit similis et eadem utrisque argumentatio. Haec ubi dicta dedit, emisit limine flentem Herculem invictum, magnarum non inscium rerum, Eurystheus natus Sthenelo prosapia Persei, Ducturum ex Erebo canem atri Ditis ad auras. Vadit at ille, velut leo nutritus montibus acer, Urbem per mediam: noti simul omnes abibant, Et senes, et pueri, et nondum nuptae puellae, Plorantes multum, ac si mortem iret ad ipsam. Mercurius praemittit et caesia Pallas euntem: Fratrem etenim sciebat quatenus dolor exagitaret. Quis non ex simplicibus abripiatur ab hujusmodi versibus, et putet sic illos Homerum in hoc argumento fecisse? Qui autem scit Homerica, cognoscet quidem versus, argumentum autem non cognoscet, sciens quoniam aliquid quidem eorum est de Ulysse dictum, aliud vero de Hercule, aliud vero de Priamo, aliud vero de Menelao et Agamemnone. Si autem tulerit illos, et unumquemque suo libro reddiderit, auferet de medio praesens argumentum. Sic autem et qui Regulam Veritatis immobilem apud se habet, quam per baptismum accepit, haec quidem quae sunt ex Scripturis nomina, et dictiones, et parabolas cognoscet: blasphemum autem illorum argumentum non cognoscet. Etenim si gemmas agnoscet, sed vulpem pro regali imagine non recipiet. Unumquemque autem sermonum reddens suo ordini, et aptans veritatis corpusculo, denudabit, et insubstantivum ostendet figmentum ipsorum. Quoniam autem scenae huic deest redemptio, ut quis mimum ipsorum explicans, destructorem sermonem inferat, bene habere putavimus ostendere primo in quibus ipsi patres hujus fabulae discrepant adversus se invicem, quasi qui sint ex variis spiritibus erroris. Et ex hoc enim diligenter cognoscere est, et ex ostensione, eam firmam quae ab Ecclesia praedicatur veritatem, et ab iis id quod fingitur falsiloquium.

2장

교회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며,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에게서 이 믿음을 받았다. 하늘과 땅, 바다와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드신 한 분 하나님, 전능하신 아버지를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신이 되신 한 분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이며, 성령을 믿는 믿음이다. 성령은 예언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과 오심과 동정녀에게서 나심과 수난과 죽은 이들 가운데서의 부활과, 사랑받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하늘에 오르심을 선포하셨다. 아버지의 영광 가운데 하늘에서 그가 오실 일도 선포하셨다. 모든 것을 하나로 모으고, 인류의 모든 육신을 다시 일으키기 위함이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늘의 것들과 땅의 것들과 땅 아래 것들의 모든 무릎이 우리 주님이며, 하나님이며, 구원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 예수께 꿇게 하려는 것이다. 모든 혀가 그를 고백하고, 모든 것에 대해 그가 의로운 심판을 행하시려는 것이다. 악한 영적 존재들과, 범죄하고 배교한 천사들과, 불경하고, 불의하고, 악하고, 모독하는 사람들을 영원한 불 속으로 보내실 것이다. 의롭고 올바른 이들,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의 사랑 안에 머문 이들에게는, 어떤 이들은 처음부터, 어떤 이들은 회개한 뒤 그렇게 한 이들에게는, 생명을 주시며, 썩지 않음을 선물로 베푸시고, 영원한 영광으로 감싸 주실 것이다.

Ecclesia enim per universum orbem usque ad fines terrae disseminata, et ab Apostolis, et discipulis eorum accepit eam fidem, quae est in unum Deum, Patrem omnipotentem, qui fecit caelum et terram, et mare, et omnia quae in eis sunt: et in unum Christum Jesum filium Dei, incarnatum pro nostra salute: et in Spiritum Sanctum, qui per Prophetas praedicavit dispositiones Dei, et adventum, et eam, quae est ex Virgine generationem, et passionem, et resurrectionem a mortuis, et in carne in caelos ascensionem dilecti Jesu Christi Domini nostri, et de caelis in gloria Patris adventum ejus, ad recapitulanda universa, et resuscitandam omnem carnem humani generis, ut Christo Jesu Domino nostro, et Deo, et Salvatori, et Regi, secundum placitum Patris invisibilis omne genu curvet caelestium, et terrestrium, et infernorum, et omnis lingua confiteatur ei, et judicium justum in omnibus faciat: spiritalia quidem nequitiae, et angelos transgressos, atque apostatas factos, et impios, et injustos, et iniquos, et blasphemos homines in aeternum ignem mittat: justis autem et aequis, et praecepta ejus servantibus, et in dilectione ejus perseverantibus, quibusdam quidem ab initio, quibusdam autem ex poenitentia, vitam donans incorruptelam loco muneris conferat, et claritatem aeternam circumdet.

3장

앞서 말했듯이, 교회는 이 선포와 이 믿음을 받아, 온 세상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한 집에 사는 것처럼 성실하게 지킨다. 하나의 혼과 하나의 마음을 지닌 듯이, 그것들을 똑같이 믿는다. 하나의 입을 가진 듯이, 한목소리로 그것들을 선포하고, 가르치고, 전한다. 세상의 말들은 서로 달라도, 전승의 힘은 하나이며 동일하다. 게르마니아에 세워진 교회들이 다르게 믿거나, 다르게 전하는 것이 아니다. 이베리아인들 가운데 있는 교회도, 켈트인들 가운데 있는 교회도, 동방의 교회도, 이집트의 교회도, 리비아의 교회도, 세상 가운데 세워진 교회들도 다르지 않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태양이 온 세상에 하나이며 같은 것처럼, (빛인) 진리의 선포도 그와 같이 어디서나 빛나고, 진리의 앎에 이르려는 모든 사람을 비춘다. 교회들을 이끄는 이들 가운데 말솜씨가 매우 뛰어난 사람도 이것과 다른 내용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도 스승보다 높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는 데 부족한 사람도 전승을 줄이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하나이며 동일하기에, 그 믿음을 길게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더 보태지 않고, 적게 말하는 사람도 줄이지 않는다.

Hanc praedicationem cum acceperit, et hanc fidem, quemadmodum praediximus, Ecclesia, et quidem in universum mundum disseminata, diligenter custodit, quasi unam domum inhabitans: et similiter credit iis, videlicet quasi unam animam habens et unum cor, et consonanter haec praedicat, et docet, et tradit, quasi unum possidens os. Nam etsi in mundo loquelae dissimiles sunt, sed tamen virtus traditionis una et eadem est. Et neque hae quae in Germania sunt fundatae ecclesiae, aliter credunt, aut aliter tradunt: neque hae quae in Hiberis sunt, neque hae quae in Celtis, neque hae quae in Oriente, neque hae quae in Aegypto, neque hae quae in Libya, neque hae quae in medio mundi sunt constitutae: sed sicut sol creatura Dei in universo mundo unus et idem est; sic et (lumen,) praedicatio veritatis, ubique lucet, et illuminat omnes homines, qui volunt ad cognitionem veritatis venire. Et neque is qui valde praevalet in sermone, ex iis qui praesunt ecclesiis, alia quam haec sunt dicet: nemo enim super magistrum est: neque infirmus in dicendo deminorabit traditionem. Cum enim una et eadem fides sit, neque is qui multum de ea potest dicere ampliat, neque is qui minus deminorat.

4장

어떤 이들이 슬기에 따라 더 많이 알거나 더 적게 안다는 것은, 이야기 자체를 바꾸거나, 이 우주를 빚고, 만들고, 기르시는 분 외에 다른 하나님을 생각해 내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분만으로는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은 듯이, 다른 그리스도나 다른 독생자를 생각해 내는 데 있지도 않다. 비유로 말해진 모든 것을 탐구하고, 진리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데 있다. 인류 가운데 이루어진 하나님의 일과 경륜을 설명하는 데 있다. 범죄한 천사들의 배교와 사람들의 불순종에 대해,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셨음을 풀어 밝히는 데 있다. 한 분, 같은 분인 [하나님]께서 어떤 것들은 일시적으로, 다른 것들은 영원하게, 어떤 것들은 하늘의 것으로, 어떤 것들은 땅의 것으로 만드신 이유를 알리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분이시면서도, 예언자들에게 한 가지 모습으로만 나타나지 않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나신 까닭을 아는 데 있다. 인류에게 여러 언약이 주어진 이유를 알리고, 각 언약의 특징이 무엇인지 가르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푸시려고, 모든 것을 불신앙 안에 가두신 이유를 탐구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고, 고난받으신 뜻을 두고 감사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아들의 오심이 처음이 아니라, 마지막 때, 곧 끝에 나타난 까닭을 알리는 데 있다. 마지막과 다가올 일들에 관해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을 펼쳐 살피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희망이 없던 이방인들을 공동 상속자로, 같은 몸에 속한 이들로, 성도들과 함께 참여하는 이들로 만드신 이유를 잠잠히 넘기지 않는 데 있다. 이 죽을 육신이 불멸을, 썩을 것이 썩지 않음을 어떻게 입게 되는지 선포하는 데 있다. “백성이 아니었던 이가 백성이며, 또 [사랑받지 못하던] 이가 사랑받는 이다”라고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버림받은 여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녀보다 많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선포하는 데 있다. 이런 일들과 이와 비슷한 일들에 관하여 사도는 외쳤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풍요와 지혜와 지식이여! 그분의 심판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려우며, 그분의 길은 얼마나 찾기 어려운가!” 창조주와 만드신 분 위에, 그분과 그들의 어머니, 길 잃은 아이온의 엔튀메시스를 생각해 내고, 그토록 큰 모독에 이르는 데 앎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어머니 위에 또 플레로마가 있다고, 어떤 때는 서른 아이온이, 어떤 때는 셀 수 없이 많은 아이온이 있다고 거짓말하는 데 있지도 않다. 참으로 신적인 깨달음을 잃은 이 교사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온 교회는 온 세상에서 하나이며 동일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Plus autem aut minus secundum prudentiam nosse quosdam, non in eo quod argumentum immutetur, efficitur, et alius Deus excogitetur praeter fabricatorem, et factorem, et nutritorem hujus universitatis, quasi non ipse sufficiat nobis, aut alius Christus, aut alius Monogenes: sed in eo, quod omnia quae in parabolis dicta sunt exquirere, et adjungere veritatis argumento, et in eo, ut instrumentum et dispositionem Dei in genere humano factam enarrat: et quoniam magnanimus extitit Deus, et in transgressorum angelorum apostasia, et in inobedientia hominum, edisserere; et quare alia quidem temporalia, alia vero aeterna, et quaedam caelestia, quaedam terrena unus et idem [Deus] fecit, annunciare: et quare cum invisibilis sit, apparuit Prophetis Deus non in una forma, sed aliis aliter, nosse: et quare testamenta multa tradita humano generi, annunciare, et quis sit uniuscujusque testamentorum character, docere: et quare conclusit omnia in incredulitatem Deus, ut universis misereatur, exquirere: et quare Verbum Dei caro factum est, et passus est, gratias agere: et quare in novissimis temporibus adventus Filii Dei, hoc est in fine apparuerit, et non in initio, annunciare: et de fine et de futuris, quaecunque posita sunt in Scripturis, revolvere: et quare desperatas Gentes cohaeredes et concorporatas et participes Sanctorum fecit Deus, non tacere: et quemadmodum mortalis haec caro induet immortalitatem, et corruptibile incorruptelam, annunciare: et quemadmodum fatus est Qui non erat populus, populus: et [non] dilecta, dilecta; et quemadmodum Plures filii ejus quae deserta est, magis quam ejus quae habet virum, praeconare. In talibus enim et in similibus eis exclamavit Apostolus: O altitudo divitiarum et sapientiae et agnitionis Dei! quam inscrutabilia judicia ejus, et investigabiles viae ejus. Sed non in eo, ut supra Creatorem et Fabricatorem, matrem ejus et illorum, Enthymesin Aeonis errantis adinvenires, et ad tantam pervenires blasphemiam: neque in eo quod est super hanc rursus Pleroma, aliquando quidem xxx. aliquando vero innumerabiles multitudines Aeonum mentiri: quemadmodum dicunt hi, qui vere sunt deserti a divina sententia magistri; cum ea, quae est Ecclesia universa, unam et eandem fidem habeat in universo mundo, quemadmodum praediximus.

5.1

이제 이들의 일관되지 않은 견해도 살펴보자. 두세 사람에 불과하면서도, 같은 것들에 관해 어떻게 서로 다른 말을 하며, 이름과 내용 모두에서 반대되는 답을 내놓는지 보자. 그들 가운데 첫째인 발렌티누스는 그노시스라고 불리는 이단에서 옛 가르침들을 가져와, 자기 특색에 맞게 바꾸며, 다음과 같이 정했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두 존재의 무리가 있고, 그 가운데 하나는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존재라고, 다른 하나는 시게라고 불린다. 그 뒤 이 두 존재의 무리에서 둘째 두 존재의 무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라고, 다른 하나는 알레테이아라고 부른다. 이 네 존재의 무리에서 로고스와 조에,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가 열매로 나왔다고 한다. 이들이 최초의 여덟 존재의 무리이다. 앞서 말했듯이,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열 권능이 나왔다고 한다.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에게서는 열둘이 나왔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떠나고 결핍에 빠져, 나머지 경륜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또 두 경계를 설정한다. 하나는 뷔토스와 [나머지] 플레로마 사이에 있어, 태어난 아이온들을 만들어지지 않은 아버지에게서 구별한다. 다른 하나는 그들의 어머니를 플레로마에서 떼어 놓는다. 그리스도도 플레로마 안에 있는 아이온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깥에 있게 된 어머니에게서, 더 나은 것들에 대한 기억을 따라, 어떤 그림자와 함께 태어났다고 한다. 이 그리스도는 남성적 존재이기에, 자기에게서 그림자를 잘라 내고, 플레로마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그림자 아래 남겨졌고, 영적 실체가 비워진 채, 또 다른 아들을 내보냈다. 그가 데미우르고스라고 한다. 그에게 속한 모든 것에 대해 전능한 이라고도 부른다. 왼쪽의 지배자도 그와 함께 나왔다고 한다. 뒤에서 우리가 다룰, 거짓으로 그노시스파라는 이름을 지닌 이들과 같은 설명이다. 예수에 관해서는, 어떤 때에는 그들의 어머니에게서 분리되어 나머지 존재들과 하나가 된 이, 곧 텔레토스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어떤 때에는 위의 플레로마로 되돌아간 이, 곧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또 어떤 때에는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성령은 아이온들을 살피고 열매 맺게 하려고, 진리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보이지 않게 그들 안에 들어가, 성령을 통해 아이온들이 진리의 잎들을 내게 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은 이와 같다.

Videamus nunc et horum inconstantem sententiam, cum sint duo vel tres, quemadmodum de eisdem non eadem dicunt, sed et nominibus et rebus contraria respondent. Qui enim est primus, ab ea quae dicitur gnostica haeresis, antiquas in suum characterem doctrinas transferens Valentinus, sic definivit; dualitatem quandam innominabilem, cujus quidem aliud vocari Inenarrabile, aliud autem Sigen. Post deinde ex hac dualitate, secundam dualitatem emissam, cujus aliud quidem Patrem vocat, aliud autem Aletheiam. Ex hac autem quaternatione fructificari Logon et Zoen, Anthropon et Ecclesiam. Esse autem hanc octonationem primam. Et a Logo quidem et Zoe decem virtutes dicit emissas, sicut praediximus. Ab Anthropo autem et Ecclesia xii. ex quibus unam discedentem et destitutam, reliquam dispositionem fecisse. Terminos autem duos adhibet: unum quidem inter Bythum et [reliquum] Pleroma, determinantem natos Aeones ab infecto Patre; alterum vero separantem illorum matrem a Pleromate. Et Christum autem non ab his qui sunt in Pleromate Aeonibus emissum, sed a matre foris autem facta secundum memoriam meliorum enixum esse cum quadam umbra. Et hunc quidem, quippe cum esset masculus, abscidisse a semetipso umbram, et regressum in Pleroma. Matrem autem subrelictam sub umbra, vacuatam autem spiritali substantia, alterum filium emisisse. Et hunc esse Demiurgum, quem et omnipotentem dicit eorum quae ei subjacent. Coëmissum autem ei et sinistrum principem, similiter iis qui dicentur a nobis falsi nominis Gnostici. Et Jesum autem aliquando quidem ab eo qui separatus a matre eorum et coadunatus est cum reliquis, emissum dicit, id est a Theleto: aliquando autem ab eo, qui recucurrit sursum in Pleroma, hoc est a Christo: aliquando autem ab Anthropo et Ecclesia. Et Spiritum autem sanctum a Veritate dicit emissum, in examinationem et fructificationem Aeonum, invisibiliter in eos introëuntem, per quem Aeones fructificarent folia veritatis. Haec quidem ille.

5.2

세쿤두스는 최초의 여덟 존재의 무리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오른쪽의 네 무리와 왼쪽의 네 무리, 빛과 어둠이 있다고 한다. 떠났고 [또] 결핍에 빠진 권능은 서른 아이온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열매들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다른 어떤 이, 그들 가운데 이름난 교사도, 더 높은 곳과 더 큰 지식에 이르는 듯 자신을 뻗어, 최초의 네 존재의 무리를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존재 이전에 프로아넨노에토스, 말로 나타낼 수 없고, 이름 붙일 수 없는 프로아르케가 있다. 나는 이것을 모노테스라고 부른다. 이 모노테스와 함께 어떤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헤노테스라고도 부른다. 이 헤노테스와 모노테스는 하나이므로, 아무것도 내보내지 않으면서, 만물의 시작, 노에톤이며, 아겐네톤이며, 아오라톤인 시작을 내보냈다. 이 시작을 말로는 모나스라고 부른다. 이 모나스와 함께 같은 실체를 지닌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헨이라고도 부른다. 이 권능들, 곧 모노테스와 헤노테스와 모나스와 헨이 나머지 아이온들의 발출을 내놓았다.” 이우, 이우! 페우, 페우! 이런 이름 만들기와 그토록 큰 대담함을 두고는, 참으로 비극의 탄식을 해야 한다. 어쩌면 그처럼 부끄럼도 없이 자기 거짓말에 이름들을 붙였는가. “모든 것 이전에 프로아르케, 프로아넨노에토스가 있는데, 나는 이것을 모노테스라고 부른다”라고, 또 “이 모노테스와 함께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헤노테스라고도 부른다”라고 말하면서, 그가 말한 모든 것이 지어낸 것임을 분명히 고백한 셈이다. [또] 자기 자신이 그 허구에 이름을 붙였음을 고백한 것이다. 다른 누구도 [전에] 붙인 적 없는 이름들이다. 그가 이런 일을 감히 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대로, 진리는 오늘날까지 이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누군가가 이런 논제에서 다음과 같이 이름들을 정하는 데에도 아무 지장이 없다. “왕다운 어떤 프로아르케, 프로아넨노에토스, 프로아뉘포스타토스라는 권능, 프로프로퀼린도메네가 있다. 그와 함께 어떤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박이라고 부른다. 이 박과 함께 어떤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완전한 텅 빔이라고도 부른다. 이 박과 텅 빔은 하나이므로, 내보내지 않았으면서, 누구에게나 보이고, 먹을 수 있고 달콤한 열매를 내보냈다. 그 열매를 말로는 오이라고 부른다. 이 오이와 함께 같은 힘을 지닌 권능이 있는데, 나는 그것을 멜론이라고도 부른다. 이 권능들, 박과 텅 빔과 오이와 멜론은 발렌티누스의 정신 나간 멜론들, 그 나머지 무리를 내보냈다.” 만물에 관한 말을 최초의 네 존재의 무리로 바꾸어야 하고,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이름을 붙여도 된다면, 훨씬 더 믿을 만하고, 일상에서 쓰이며, 모두가 아는 이 이름들을 쓰는 일을 누가 막겠는가?

Secundus autem primam ogdoadem sic tradidit, dicens: quaternationem esse dextram, et quaternationem sinistram, et lumen et tenebras; et discedentem autem [et] destitutam virtutem, non a triginta Aeonibus dicit fuisse, sed a fructibus eorum. Alius vero quidam, qui et clarus est magister ipsorum, in majus sublime, et quasi in majorem agnitionem extensus, primam quaternationem dixit sic: Est quidem ante omnes Proarche, Proanennoëtos, et Inenarrabilis, et Innominabilis, quam ego Monotetem voco. Cum hac Monotete est virtus, quam et ipsam voco Henotetem. Haec Henotes et Monotes cum sint unum, emiserunt, cum nihil emiserint, principium omnium noëton, et agenneton, et aoratum, quam Archem sermo Monada vocat. Cum hac Monade est virtus ejusdem substantiae ei, quam et eam voco Hen. Hae autem virtutes, id est Monotes, et Henotes, et Monas, et Hen, emiserunt reliquas emissiones Aeonum. Iu iu! et Pheu pheu! Tragicum vere dicere oportet super hanc nominum factionem et tantam audaciam, quemadmodum sine rubore mendacio suo nomina posuit. In eo enim quod dicit, est ante omnia Proarche, Proanennoëtos, quam ego Monoteta voco, et iterum, cum hac Monotete est virtus, quam et ipsam voco Henotetem, manifestum, quoniam figmenta sunt quaecunque ab eo dicta sunt, confessus est, [et] quoniam ipse nomina posuit figmento, quae a nemine altero [antea] posita sunt: qui nisi haec auderet, hodie veritas secundum eum non habuisset nomen. Nihil igitur prohibet et alterum quendam in tali argumento sic praefinire nomina: Est quaedam Proarche regalis Proanennoëtos, Proanypostatos virtus, Proprocylindomene. Cum illa autem est virtus, quam ego cucurbitam voco: cum hac cucurbita autem est virtus, quam et ipsam voco perinane. Haec cucurbita et perinane, cum sint unum, emiserunt, cum non emisissent, fructum, in omnibus visibilem manducabilem et dulcem, quem fructum sermo cucumerem vocat. Cum hoc cucumere est virtus ejusdem potestatis ei, quam et ipsam peponem voco. Hae virtutes, cucurbita, et perinane, et cucumis, et pepo, emiserunt reliquam multitudinem Valentini deliriosorum peponum. Si enim eum sermonem qui de universis fit, transfigurari in primam quaternationem oportet, et quemadmodum vult aliquis ipse ponere nomina, quis prohibet his nominibus, ut multo credibilioribus, et in usu positis, et ab omnibus cognitis?

5.3

그들 가운데 또 다른 이들은 최초로 생겨난 첫 여덟 무리를 이런 이름들로 불렀다. 첫째는 프로아르케, 그다음은 아넨노에토스, 셋째는 아레토스, 넷째는 아오라토스이다. 첫 프로아르케에게서는 첫째와 다섯째 자리에 아르케가 나왔다고 한다. 아넨노에토스에게서는 둘째와 여섯째 자리에 아카탈렙토스가, 아레토스에게서는 셋째와 일곱째 자리에 아노노마스토스가, 아오라토스에게서는 넷째와 여덟째 자리에 아겐네토스가 나왔다. 이것이 최초의 여덟 무리의 플레로마이다. 이 권능들이 뷔토스와 시게보다 먼저 있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완전한 이들보다 더 완전하고, 그노시스파보다 더 아는 사람들로 보이려는 것이다. 이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마땅할 것이다. “오, 멜론들아, 비난받아 마땅한 궤변가들아, 참되지 못한 이들아.” 뷔토스 자신에 관해서도 그들 사이에는 여러 견해가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짝이 없으며, 남성도, 여성도, 그 어떤 것도 아니라고 한다. 다른 이들은 그가 남성이면서 여성이라고 하며, 그에게 양성의 성질을 부여한다. 또 다른 이들은 시게를 그의 짝으로 붙여, 최초의 짝이 이루어지게 한다.

Alii autem rursus ipsorum primam et archegonon octonationem his nominibus nominaverunt: primum Proarchen, deinde Anennoëton, tertiam autem Arrheton, et quartam Aoraton. Et de prima quidem Proarche emissum esse primo et quinto loco Archen, ex Anennoëto secundo et sexto loco Acatalepton, et de Arrheto autem tertio et septimo loco Anonomaston, de Aorato autem quarto et octavo loco Agenneton, Pleroma hoc primae ogdoadis. Has volunt virtutes fuisse ante Bython et Sigen, ut perfectorum perfectiores appareant, et Gnosticorum magis gnostici viri ad quos juste quis hoc dicat. O pepones, sophistae vituperabiles, et non veri. Etenim de ipso Bytho variae sunt sententiae apud eos. Quidam enim sine conjugatione dicunt eum, neque masculum, neque foeminam, neque omnino aliquid esse. Alii autem et masculum et foeminam eum dicunt esse, hermaphroditi genus ei donant. Sigen autem rursus alii conjugem ei addunt, ut fiat prima conjugatio.

6.1

프톨레마이오스 주변의 더 많이 안다는 이들은, 뷔토스에게 두 짝이 있다고 말한다. 엔노이아와 텔레시스이며, 이들을 성향들이라고도 부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무엇을 내보낼지를 먼저 마음속으로 생각했고, 그다음에 뜻을 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성향과 권능, 곧 엔노이아와 텔레시스가 서로 섞이듯 하여, 모노게네스와 알레테이아가 짝을 이루어 나오게 되었다. 이 둘은 아버지의 두 성향의 모형과 형상으로 나온 것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게 나타낸 존재들이라고 한다. 누스는 의지의 형상이며, 알레테이아는 엔노이아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남성적 존재는 뒤에 더해진 의지의 형상이며, 여성적 존재는 본래 지닌 엔노이아의 형상이다. 의지가 엔노이아의 힘과 같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엔노이아는 언제나 발출을 생각했으나, 스스로는 자기가 생각한 것을 내보낼 수 없었다. 그러다가 의지의 힘이 오자, 생각하던 것을 그때 내보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보기에도 이들은 만물의 하나님보다는, 아킬레우스를 언제 영예롭게 하고, 수많은 그리스인을 죽일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근심으로 잠들지 못하는 호메로스의 유피테르를 더 잘 이해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생각하시는 즉시, 생각하신 것을 이루신다. 원하시는 바로 그때, 원하신 것을 생각하신다. 원하실 때 생각하시고, 생각하실 때 원하신다. 그분은 온전히 생각이며, 온전히 지각이며, 온전히 눈이며, 온전히 들음이며, 온전히 모든 좋은 것의 샘이시기 때문이다.

Hi vero qui sunt circa Ptolemaeum scientiores, duas conjuges habere eum Bython dicunt, quas et dispositiones vocant, Ennoean et Thelesin. Primo enim mente concepit quid emittere, (sicut dicunt) post deinde voluit. Quapropter duobus his affectibus et virtutibus, id est, Ennoeas et Theleseos, velut commixtis in invicem, emissio Monogenis et Aletheiae secundum conjugationem facta est. Quos typos et imagines duorum affectuum Patris egressas esse, invisibilium visibiles; Thelematis quidem Nun, Ennoeas autem Aletheian: et propter hoc adventitiae voluntatis masculus est imago, innatae vero Ennoeae foemininus, quoniam Voluntas velut virtus facta est Ennoeae. Cogitabat enim Ennoea semper emissionem, non tamen et emittere ipsa per semetipsam poterat quae cogitabat. Cum autem Voluntatis virtus advenit, tunc quod cogitabat, emisit. Non videntur tibi hi, o dilectissime, Homerici Jovis, propter solicitudinem non dormientis, sed curae habentis, quando poterit honorare Achillem, et multos perdere Graecorum, apprehensionem habuisse magis, quam ejus, qui est universorum Deus; qui simul ut cogitavit, perfecit id quod cogitavit: et simul ac voluit, et cogitat hoc quod voluit: tunc cogitans cum vult, et tunc volens cum cogitat: cum sit totus cogitatus, et totus sensus, et totus oculus, et totus auditus, et totus fons omnium bonorum.

6.2

그들보다 더 슬기롭다고 여겨지는 이들은, 최초의 여덟 존재의 무리가 한 아이온에게서 다른 아이온이 나오는 단계적 방식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한다. 프로파토르와 그의 엔노이아에게서 아이온들이 동시에 한꺼번에 나왔다고 한다. 그들이 생겨날 때, 자신들이 산파 노릇을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제는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가 나온 것이 아니라,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에게서 로고스와 조에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프로파토르가 무엇을 내보낼지 생각했을 때, 그 때문에 아버지라고 불렸다. 내보낸 것들이 참되었기에, 그것은 알레테이아라고 불렸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했을 때에는, 그 때문에 안트로포스라고 불렸다. 미리 생각했던 이들을 내보낸 뒤에는, 그 때문에 에클레시아라고 불렸다. 안트로포스가 로고스를 말했다. 이것이 처음 태어난 아들이다. 로고스의 뒤를 조에가 따르며, 이렇게 최초의 여덟 무리가 완성되었다.

Qui autem prudentiores putantur illorum esse, primam octonationem non gradatim, alterum ab altero Aeonem emissum dicunt, sed simul et in unum Aeonum emissionem a Propatore et Ennoea ejus, cum crearentur, ipsi obstetricasse se affirmant. Et jam non ex Logo et Zoe Anthropon et Ecclesiam, sed ex Anthropo et Ecclesia Logon et Zoen dicunt generatos, in hunc modum dicentes: quando cogitavit aliquid emittere Propator, hoc Pater vocatus est; at ubi quae emisit vera fuerunt, hoc Alethia vocatum est. Cum autem voluit semetipsum ostendere, hoc Anthropos dictus est. Quos autem praecogitaverat posteaquam emisit, hoc Ecclesia vocata est. Locutus est Anthropos Logon, hic est primogenitus Filius. Subsequitur autem Logon Zoe, et sic prima octonatio completa est.

6.3

그들 사이에는 구원자에 관해서도 큰 다툼이 있다. 어떤 이들은 그가 모든 존재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며, 그 때문에 기쁘게 여겨진 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온 플레로마가 그를 통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뻐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은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나온 열 아이온에게서만 그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의 이름을 유지하여, 로고스와 조에라고 그가 불린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들은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가 낳은 열두 아이온에게서 그가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안트로포스의 후손으로서, 스스로 사람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은 플레로마를 굳게 세우려고 내보내진 이들, 곧 그리스도와 성령에게서 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때문에 자기를 내보낸 아버지의 명칭을 유지하여, 그리스도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만물의 프로파토르 자신, 곧 프로아르케이며 프로아넨노에토스인 이가 안트로포스라고 불린다고 말한다. 이것이 크고 감추어진 신비라는 것이다. 모든 것 위에 있고, 모든 것을 담아내는 권능이 안트로포스라고 불린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구원자가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Multa autem pugna apud eos, etiam de Salvatore. Quidam enim eum ex omnibus generatum dicunt, quapropter Beneplacitum vocari, quoniam universum Pleroma bene sensit per eum glorificare Patrem. Alii autem ex solis decem Aeonibus, qui sunt a Logo et Zoe emissi, et propter hoc Logon et Zoen dici eum, parentum nomina custodientem. Alii autem ex duodecim Aeonibus his qui sunt ab Anthropo et Ecclesia facti: et propter hoc Filium hominis se confiteri, velut postgenitum Anthropi. Alii autem a Christo et Spiritu sancto, iis qui ad firmamentum Pleromatis emissi sunt, factum eum dicunt, et propter hoc Christum vocari eum dicunt, Patris sui a quo emissus est, custodientem appellationem. Alii autem sunt, qui ipsum Propatorem omnium, et Proarchen, et Proanennoeton Anthropon dicunt vocari: et hoc esse magnum et absconditum mysterium, quoniam quae est super omnia virtus, et continet omnia, Anthropos vocatur: et ideo hoc Filium hominis se dicere Salvatorem.

7.1

그들 가운데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승을 더 낫게 고쳤다고 자랑하는데, 그 이름은 마르코스이다. 마술로 속이는 데 아주 능숙하여, 그 수단으로 많은 남자와 적지 않은 여자를 미혹하고, 가장 많이 아는 사람, 보이지 않고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곳들에서 가장 큰 능력을 받은 사람인 듯이, 그들을 자기에게 돌아서게 했다. 참으로 적그리스도의 앞잡이인 듯하다. 아낙실라오스의 재주에 마술사라고 불리는 이들의 사악함을 섞어, 분별이 없고 정신을 잃은 사람들에게, 그 수단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Alius vero quidam ex iis, qui sunt apud eos, magistri emendatorem se esse glorians, (Marcus est autem illi nomen) magicae imposturae peritissimus, per quam et viros multos, et non paucas foeminas seducens, ad se converti, velut ad scientissimum, et virtutem maximam ab invisibilibus et ab inenarrabilibus locis habentem, fecit, praecursor quasi vere existens Antichristi. Anaxilai enim ludicra cum nequitia eorum, qui dicuntur magi, commiscens, per haec virtutes perficere putatur apud eos, qui sensum non habent, et a mente sua excesserunt.

7.2

포도주를 섞은 잔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척하면서, 기원하는 말을 길게 늘여, 자줏빛과 붉은빛이 나타나게 한다. 만물 위의 존재들에게서 온 그 은총이 그의 기원을 통해 자기 피를 그 잔에 떨어뜨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이 그 잔을 맛보기를 몹시 바라게 하여, 이 마술사를 통해 불리는 은총이 그들 안에도 흘러들게 하려는 것이다. 다시 여자들에게 섞은 잔들을 건네고,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 그들에게 감사하라고 명령한다. 이 일이 끝나면, 그 자신이 그 속은 여자가 감사의식을 행한 그 잔보다 훨씬 큰 다른 잔을 가져온다. 여자가 감사의 잔으로 삼은 작은 잔에서, 자기가 가져온 훨씬 더 큰 잔으로 옮겨 부으면서, 곧바로 이렇게 말한다. “만물 이전에 계시고,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으며,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은총께서, 그대의 속사람을 채우시고, 좋은 땅에 겨자씨를 심으시며, 그대 안에 자신에 관한 지식을 더해 주시기를.” 이와 같은 말을 하여, 그 불행한 여자를 광란으로 몰아간다. 작은 잔에서 부은 것으로 큰 잔이 가득 차고, 심지어 넘쳐흐르게 될 때, 놀라운 일을 행하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와 비슷한 다른 일들도 행하여, 많은 사람을 잘못 이끌고, 자기 뒤로 끌어갔다. 그에게는 곁에서 돕는 어떤 귀신도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 귀신을 통해 자신도 예언하는 듯 보이며, 자기의 은총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여기는 여자들에게 예언하게 한다. 그는 특히 여자들에게 힘을 쏟는데, 그중에서도 지체가 높고, 자줏빛 옷을 두르고, 매우 부유한 이들에게 그러하다. 그들을 자주 끌어들이려 하며, 아첨하여 이렇게 말한다. “나는 그대가 나의 은총에 참여하기를 바란다. 만물의 아버지께서 자기 얼굴 앞에 있는 그대의 천사를 늘 바라보시기 때문이다. 그대의 위대함이 차지할 자리는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먼저 나에게서, 나를 통해 은총을 받아라. 자기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처럼 자신을 준비하여라. 그대가 내가 되고, 내가 그대가 되도록 하여라. 그대의 혼인방에 빛의 씨를 심어라. 나에게서 신랑을 받고, 그를 받아들이며, 그 안에 받아들여져라. 보라, 은총이 그대 안에 내려오셨다. 입을 열고, 예언하여라.” 여자가 “나는 예언한 적이 없고, 예언할 줄 모릅니다”라고 답하면, 속고 있는 그 여자를 놀라게 하려고 다시 어떤 기원들을 행하고, 그에게 말한다. “입을 열고, 무엇이든 말하여라. 그러면 예언하게 될 것이다.” 그 여자는 앞서 들은 말들에 속고 들떠, 자기가 예언하기 시작하리라는 생각으로 혼을 달아오르게 한다. 심장이 지나칠 정도로 요동치자, 대담해져, 헛소리와 우연히 떠오르는 모든 것을 허황되고 거침없이 말한다. 영에 달아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나은 이가 그런 예언자들에 관해 설명하듯이, 혼은 마치 빈 공기에 달아올라 대담하고 염치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자기를 여예언자라고 여기고, 자기의 은총을 나누어 준 마르코스에게 감사한다. 그에게 보답하기를 열망하여, 자기 재산을 내주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식으로 많은 재산을 모았다. 몸으로 결합하는 데까지 나아가, 모든 면에서 그와 하나 되기를 원한다. 그와 함께 하나로 합쳐지려는 것이다.

Pro calice enim vino mixto fingens se gratias agere, et in multum extendens sermonem invocationis, purpureum et rubicundum apparere facit, ut putetur ea Gratia ab iis quae sunt super omnia, suum sanguinem stillare in illius calicem per invocationem ejus, et valde concupiscere praesentes ex illo gustare poculo, ut et in eos stillet quae per magum hunc vocatur Gratia. Rursus mulieribus dans calices mixtos, ipsas gratias agere jubet praesente se. Et ubi hoc factum est, ipse alium calicem multo majorem quam est ille, in quo illa seducta Eucharistiam fecit, proferens, et transfundens a minori, qui est a muliere Eucharistiae factus, in illum qui est ab eo allatus (multo majorem), statim dicens ita: Illa quae est ante omnia, inexcogitabilis et inenarrabilis gratia, adimpleat tuum intus hominem, et multiplicet in te agnitionem suam, inseminans granum sinapis in bonam terram. Et talia quaedam dicens, et in insaniam mittens illam infelicem, admirabilia faciens apparuit, quando major calix adimpletus est de minori calice, ut et supereffunderet ex eo. Et alia quaedam his similia faciens. exterminavit multos, et abstraxit post se. Datur autem intelligi, eum et daemonem quendam paredrum habere, per quem ipse quoque prophetare videtur, et quotquot dignas putat fieri participes suae gratiae, prophetare facit. Maxime enim circa mulieres vacat, et hoc circa eas quae sunt honestae, et circumpurpuratae, et ditissimae, quas saepe abducere tentans, dicit blandiens eis: Participare te volo ex mea gratia, quoniam Pater omnium angelum tuum semper videt ante faciem suam. Locus autem tuae magnitudinis in nobis est: oportet nos in unum convenire. Sume primum a me, et per me gratiam. Adapta te ut sponsa sustinens sponsum suum, ut sis quod ego, et ego quod tu. Constitue in thalamo tuo semen luminis. Sume a me sponsum, et cape eum, et capere in eo. Ecce gratia descendit in te, aperi os tuum, et propheta. Cum autem mulier responderit: Nunquam prophetavi, et nescio prophetare: invocationes quasdam faciens denuo, ad stuporem ejus quae seducitur, dicit ei: Aperi os tuum, et loquere quodcunque, et prophetabis. Illa autem seducta et elata ab iis quae praedicta sunt, concalefaciens animam a suspicione quod incipiat prophetare, cum cor ejus multo plus quam oporteat palpitet, audet, et loquitur deliriosa, et quaecunque evenerint omnia, vacue et audacter, quippe calefacta spiritu, (sicut melior nobis de talibus prophetis exequitur, quod audax et inverecunda est anima quasi vacuo aëre excalefacta) et exinde Prophetidem semetipsam putat, et gratias agit Marco ei, qui participavit ei suam gratiam: et remunerare eum gestit, non solum secundum substantiae suae dationem, (unde et divitiarum copiam magnam collegit) sed et secundum corporis copulationem, et secundum omnia uniri ei cupit, ut cum eo descendat in unum.

7.3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며, 속임에 넘어가지 않는 신실한 여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그가 예언하라고 명령하며 다른 여자들처럼 꾀려 하자, 그에게 코웃음 치고 저주하며, 신적 영감을 받은 척하는 이런 미친 사람에게서 떠났다. 그들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예언은 사람들에게 마술사 마르코스가 넣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자기 은혜를 보내 주신 이들이 하나님에게서 받은 예언을 지닌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과 때에 말하는 것이며, 마르코스가 명령할 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명령하는 것은 명령받는 것보다 더 크고 더 높은 권한을 지닌다. 하나는 다스리고, 다른 하나는 복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르코스가 명령하거나, 다른 누군가가 명령한다면, 잔치에서 제비를 뽑으며 이들 모두가 늘 하듯이, 서로에게 예언하라고 명하고, 그들이 자기들을 위해 자기 욕망에 따라 예언한다면, 명령하는 이가 인간이면서도 예언의 영보다 더 크고 더 높은 권한을 지니게 될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에게서 명령을 받고, 그들이 원할 때 말하는 그런 영들은 땅에 속하고 약하며, 대담하고 염치없다. 교회를 통해 처음부터 받은 견고한 믿음을 지키지 않는 이들을 속이고 멸망시키려고, 사탄이 보낸 영들이다.

Jam vero quaedam ex fidelissimis mulieribus, quae habent timorem Dei, et non sunt seducibiles, quas similiter ut reliquas affectavit seducere, jubens eis prophetare, exsufflantes et catathematizantes eum, separaverunt se ab hujusmodi insano, qui se divinum spirare simulabat: pro certo scientes, quoniam prophetare non a Marco mago inditur hominibus, sed quibuscunque Deus desuper immiserit gratiam suam. hi a Deo traditam habent prophetiam, et tunc loquuntur ubi, et quando Deus vult; sed non quando Marcus jubet. Quod enim jubet, eo quod jubetur majus est et dominatius, quoniam illud quidem principatur, illud autem subjectum est. Si ergo Marcus quidem jubet, vel alius quis, sicut solent in coenis sortibus hi omnes ludere, et sibimetipsis invicem imperare ut prophetent, et secundum suas concupiscentias eos sibi prophetare, erit ille qui jubet et major et dominatior prophetico spiritu, cum sit homo, quod est impossibile. Sed tales quidem qui jubentur ab ipsis spiritus, et loquuntur quando volunt ipsi, terreni et infirmi sunt. audaces autem et impudentes, a Satana immissi ad seductionem et perditionem eorum, qui non firmam fidem, quam ab initio per ecclesiam acceperunt, custodiunt.

7.4

더 나아가 이 마르코스는 모든 여자에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여자들에게는 사랑의 묘약과 유혹하는 약물까지 만들어 주어, 그들의 몸을 욕보이기도 한다. 이런 여자들이 하나님의 교회로 돌아와 고백하는 일이 매우 많았다. 그에게 몸을 더럽혔으며, 욕정으로 몹시 불타올라 그를 사랑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시아에 있는 우리 편의 한 집사도, 그를 자기 집에 맞아들였다가, 이런 재난을 당했다. 그의 아내가 아름다웠는데, 이 마술사에게 마음과 몸이 타락하여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그 뒤 형제들이 크게 애써 그 여자를 돌아오게 했을 때, 그는 남은 시간을 모두 공개 고백 가운데 보냈다. 이 마술사에게 당한 그 타락 때문에 울며 탄식했다.

Adhuc etiam et amatoria et adlectantia efficit, ut et corporibus ipsarum contumeliam irroget, hic idem Marcus quibusdam mulieribus, etsi non universis. Hae saepissime conversae ad ecclesiam Dei. confessae sunt, et secundum corpus exterminatas se ab eo, velut cupidine et inflammatas valde illum se dilexisse; ut et diaconus quidam eorum qui sunt in Asia nostri, suscipiens eum in domum suam, inciderit in hujusmodi calamitatem. Nam cum esset uxor ejus speciosa, et sententia et corpore corrupta esset a mago isto, et secuta eum esset multo tempore, post deinde cum magno labore fratres eam convertissent, omne tempus in exhomologesi consummavit, plangens et lamentans ob hanc, quam passa est ab hoc mago, corruptelam.

7.5

그의 제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도 같은 일로 돌아다니며, 많은 여자들을 꾀어 타락시키고, 스스로 완전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아무도 자기들의 지식의 크기에 견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이나 베드로를 말하더라도, 사도들 가운데 다른 누구를 말하더라도 그렇다. 자기들이 모든 이보다 더 많이 알았으며, 말로 다할 수 없는 능력에 관한 그 지식의 위대함을 자기들만 온전히 들이마셨다고 한다. 자기들은 높은 곳에 있으며, 모든 권능 위에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자유롭게 행하며, 어떤 일에서도 아무 두려움이 없다고 한다. 구속을 통해 심판자에게 붙잡히지도 보이지도 않게 되기 때문이다. 심판자가 그들을 붙잡더라도, 그 앞에 서서 구속의 말을 하며 이렇게 말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 곁에 앉아 계시며, 모든 시대에 앞선 그 신비로운 시게 곁에 앉아 계신 이여, 당신을, 아버지의 얼굴을 늘 바라보는 위대한 이들은, 당신을 길잡이와 인도자로 삼아, 자기들의 형상들을 위로 끌어올립니다. 저 지극히 대담한 이는 환상에 이끌려, 첫 아버지의 선하심 때문에, 우리를 그 형상들, 곧 그들의 모상으로 내보냈습니다. 그때 그는 위에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꿈처럼 지니고 있었습니다. 보십시오, 심판자가 가까이 있습니다. 전령이 내 변론을 하러 나오라고 내게 명합니다. 당신은 우리 둘의 사정을 아시니, 하나인 자로서 심판자 앞에 서 주십시오.” 어머니는 이 말을 듣자마자, 그들에게 호메로스가 말한 지하 세계의 투구를 씌워, 보이지 않게 심판자를 피하도록 했다. 곧바로 그들을 구해 내어, 신방으로 데려가, 그들의 신랑들에게 돌려주었다.

Et discipuli autem ejus quidam circumobversati in iisdem, seducentes mulierculas multas corruperunt, perfectos semetipsos vocantes: quasi nemo possit exaequari magnitudini agnitionis ipsorum, nec si Paulum aut Petrum dicas, vel alterum quendam Apostolorum: sed plus omnibus se cognovisse, et magnitudinem agnitionis illius, quae est inenarrabilis virtutis, solos ebibisse. Esse autem se in altitudine super omnem virtutem: quapropter et libere omnia agere, nullum in nullo timorem habentes. Propter enim redemptionem et incomprehensibiles et invisibiles fieri judici. Si autem et apprehenderit eos, assistentes ei cum redemptione haec dicerent: O assessor Dei et mysticae illius pro aeonon Siges, quam magnitudines semper videntes, faciem Patris, te viae duce et adductore utentes, abstrahunt sursum suas formas, quas valde audax illa ducta phantasmate, propter bonum Propatoris emisit nos imagines illorum, tunc intentionem illorum quae sunt sursum, quasi somnium habens; Ecce, judex in proximo, et praeco me jubet meae defensioni adesse. Tu autem, quasi quae scias utrorumque nostrorum rationem, tanquam unum exsistentem judici assiste. Mater autem cito, audiens haec, Homericam inferorum galeam eis superimposuit, ut invisibiliter effugerent judicem, et statim eripiens eos in thalamum duxit, et reddidit suis sponsis.

7.6

그들은 이런 말을 하고 이런 일을 하면서, 우리가 사는 론강 지역에서도 많은 여자들을 미혹했다. 양심에 인두 자국을 지닌 이 여자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드러내 놓고 공개 고백을 하고, 어떤 이들은 바로 그 일을 부끄러워하여, 말없이 조금씩 물러나면서, 하나님의 생명에 대한 희망을 버린다. 어떤 이들은 아예 떠나갔고, 어떤 이들은 이쪽저쪽 사이에서 망설이며, 속담대로 되어, 안에도 밖에도 있지 않다. 지식의 자녀들이 뿌린 씨에서 이런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Talia autem dicentes et operantes, et in iis quoque quae sunt secundum nos regiones Rhodanenses, multas seduxerunt mulieres, quae cauteriatas conscientias habentes, quaedam quidem etiam in manifesto exhomologesin faciunt, quaedam autem reverentes hoc ipsum, in silentio sensim semetipsas retrahunt, desperantes a vita Dei, quaedam quidem in totum abscesserunt; quaedam autem inter utrumque dubitant, et quod est proverbii passae sunt, neque intus, neque foris exsistentes, hunc fructum habentes seminis filiorum agnitionis.

8.1

이 마르코스는 자기가 독생자이므로, 자기만이 콜로르바소스의 시게를 위한 자궁이며 그릇이었다고 말하면서, 자기 안에 맡겨진 씨를 다음과 같이 낳았다. 가장 높고 보이지 않으며 이름 붙일 수 없는 곳들에서 온 그 네 존재의 무리가, 여자의 모습으로 자기에게 내려왔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세상이 그 무리의 남성적 모습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냈으며, 신들 가운데서나 사람들 가운데서나 누구에게도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만물의 기원을 이 사람에게만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자기의 아버지가 아무도 없으며,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물질적 실체를 지니지 않으며, 남성도 여성도 아닌 아버지가, 처음에 자기의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이 말로 나타나고, 자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형체를 갖추기를 원했을 때, 입을 열어, 자기와 닮은 말씀을 내보냈다. 그 말씀은 곁에 서서, 아버지에게 그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었다. 보이지 않는 이의 형상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이름은 다음과 같이 발음되었다. 그의 이름 가운데 첫 말을 말했다. 그것은 아르케(ἀρχὴ)였으며, 그 음절은 네 글자였다. 둘째를 이어 붙였고, 이것도 네 글자였다. 그다음 셋째를 말했으며, 이것은 열 글자였다. 그 뒤에 오는 것을 말했고, 이것은 열두 글자였다. 이렇게 이름 전체가 발음되었으며, 글자는 서른 개, 음절은 네 개였다. 각 요소에는 자기 글자들과, 자기 글자 모양과, 자기 발음과, 형태와 형상들이 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어느 것도 그것의 형체를 보지 못하며, 그 자체도 한 요소를 넘어서 있지 않다고 한다.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각각은 이웃한 요소의 발음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기가 발음하는 것을, 그렇게 자기가 발음하는 모든 것을, 전체의 이름으로 삼는다. 각각은 전체의 일부이면서도, 자기 소리를 마치 전체인 것처럼 부른다. 각각 발음된 것들이 마지막 요소의 마지막 글자에 이를 때까지, 소리 내기를 멈추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것이 한 글자로 모여, 하나의 같은 소리로 울릴 때, 만물의 회복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함께 아멘이라고 말하는 일이 그 외침의 형상이라고 전한다. 그 소리들은 물질적 실체를 지니지 않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온을 형성하며, 이 소리들이 곧 그 형상들이라고 한다. 주님이 천사들이라고 부르신 그 형상들은 끊임없이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본다.

Hic igitur Marcus vulvam et susceptorium Colorbasi Silentii semet solum fuisse dicens, quippe unigenitus existens, semen, quod depositum est in eum, sic enixus est. Illam quae est a summis, et ab invisibilibus, et innominabilibus locis quaternationem descendisse figura muliebri ad eum: (quoniam, inquit, ejus masculinum mundus ferre non poterat) et ostendisse quoque semetipsam quae esset, et universorum genesim, quam nemini unquam neque deorum neque hominum revelavit, huic solo enarrasse, ita dicentem: Quando primum Pater, cujus Pater nemo est, qui est inexcogitabilis et insubstantivus, qui neque masculus neque foemina est, voluit suum inenarrabile narrabile fieri, et quod invisibile sibi est, formari; aperuit os, et protulit Verbum simile sibi: quod adsistens ostendit ei quod erat ipse, cum invisibilis forma apparuisset. Enuntiatio autem nominis facta est talis: Loquutus est verbum primum nominis ejus; fuit ἀρχὴ, et syllabe ejus literarum quatuor. Conjunxit et secundam, et fuit haec literarum quatuor. Post loquutus est et tertiam, et fuit haec literarum x. Et eam, quae est post haec, loquutus est, et fuit ipsa literarum xii. Facta est ergo enuntiatio universi nominis, literarum xxx, syllabarum autem quatuor. Unumquodque autem elementorum suas literas, et suum characterem, et suam enuntiationem, et figurationes, et imagines habere: et nihil eorum esse, quod illius videat formam, neque ipsum super elementum est. Sed nec cognoscere eum, sed ne quidem proximi ejus unumquodque enuntiationem scire, sed quod ipse enuntiat, ita omne quod enuntiat, illud quod est totum nominet. Unumquemque enim ipsorum, pars existens totius, suum sonum quasi omne nominare, et non cessare sonantia, quoadusque ad novissimam literam novissimi elementi singulariter enuntiata deveniant. Tunc autem et redintegrationem universorum dicit futuram, quando omnia devenientia in unam literam, unam et eandem consonationem sonent, cujus exclamationis imaginem, Amen simul dicentibus nobis, tradidit esse. Sonos autem eos esse qui formant insubstantivum et ingenitum Aeona, et esse hos formas, quas Dominus Angelos dixit, quae sine intermissione vident faciem Patris.

8.2

그는 요소들의 공통되며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이름들을 아이온들, 말들, 뿌리들, 씨들, 충만들, 열매들이라고 불렀다. 그 각각과 각자에게 고유한 것들은 에클레시아라는 이름 안에 담겨 있으며 그렇게 이해된다고 한다. 그 요소들 가운데 마지막 요소의 마지막 글자가 자기 목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나가, 요소들의 형상을 따라 자기 요소들을 낳았다고 한다. 그것들로부터 여기에 있는 것들이 질서를 갖추었고, 이것들에 앞선 것들도 생겨났다고 말한다. 그 글자 자체는, 그 소리가 아래로 향하는 소리를 따라갔던 그 글자는, 전체를 채우기 위하여, 자기가 속한 음절에게 위로 다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소리는 아래에 남아, 마치 밖으로 던져진 것처럼 되었다고 한다. 그 글자가 자기 발음과 함께 아래로 내려온 근원인 그 요소 자체는, 서른 글자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서른 글자 각각은 자기 안에 다른 글자들을 지니며, 그 글자들로 그 글자의 이름을 부른다. 다시 그 다른 글자들은 또 다른 글자들로 이름이 붙고, 그것들은 또 다른 글자들로 이름이 붙는다. 그렇게 글자들의 수가 한없이 늘어난다. 그대는 다음 예를 통해 그 말뜻을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Nomina autem elementorum communia et enarrabilia Aeonas, et verba, et radices, et semina, et plenitudines, et fructus vocavit. Singula autem ipsorum et uniuscujusque propria in nomine Ecclesiae contineri et intelligi ait. Quorum elementorum novissimi elementi ultima litera vocem emisit suam, cujus sonus exiens secundum imaginem elementorum elementa propria generavit: ex quibus et quae sunt hic, disposita dicit, et ea quae sunt ante haec, generata. Ipsam quidem literam, cujus sonus erat consequens sonum deorsum, a syllaba sua sursum receptam dicit, ad impletionem universi: remansisse autem deorsum sonum quasi foras projectum. Elementum autem ipsum, ex quo litera cum enuntiatione sua descendit deorsum, literarum ait esse xxx, et unamquamque ex his xxx literis in semetipsa habere alias literas, per quas nomen literae nominatur. Et rursus alias per alias nominari literas, et alias per alias, ita ut in immensum decidat multitudo literarum. Sic autem planius disces quod dicitur;

8.3

델타라는 요소는 자기 안에 다섯 글자를 지닌다. 바로 Δ, Ε, Λ, Τ, Α이다. 이 글자들은 다시 다른 글자들로 쓰이고, 그것들은 또 다른 글자들로 쓰인다. 다른 글자들이 끊임없이 다른 글자들을 낳고, 서로의 뒤를 이어, 델타의 전체 구성이 그처럼 한없이 늘어난다면, 그 요소의 글자들의 바다는 얼마나 더 크겠는가? 한 글자가 이처럼 한없다면, 이름 전체에 담긴 글자들의 깊이를 보라. 마르코스의 시게는 첫 아버지가 이 글자들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기를 담아낼 수 없음을 알고, 아이온들이라고도 부르는 요소들에게, 그 각각에게, 자기 발음을 외치도록 허락했다고 한다. 하나의 요소가 전체를 발음할 수 없기 때문이다.

Delta elementum literas habet in se quinque, et ipsum Δ, et Ε, et Λ, et Τ, et Α, et hae rursus literae per alias scribuntur literas, et aliae per alias. Si ergo universa substantia Deltae in immensum decidit, aliis alias literas generantibus et succedentibus alterutrum, quanto magis illius elementi majus esse pelagus literarum? Et si una litera sic immensa est, vide totius nominis profundum literarum, ex quibus Propatora Marci Silentium constare docuit. Quapropter et Patrem scientem incapabile suum, dedisse elementis, quae et Aeonas vocat, unicuique eorum suam enuntiationem exclamare, eo quod non possit unum, illud quod est totum enuntiare.

8.4

이것들을 설명한 네 존재의 무리가 그에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진리 자체도 그대에게 보여 주고자 한다. 내가 위의 거처들에서 그를 데려왔다. 그대가 그의 벗은 모습을 살펴보고, 그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가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지혜에 경탄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위쪽에 있는 그의 머리를 보아라. Α와 Ω이다. 목은 Β와 Ψ, 어깨와 손은 Γ와 Χ, 가슴은 Δ와 Φ, 허리는 Ε와 Υ, 배는 Ζ와 Τ, 성기는 Η와 Σ, 넓적다리는 Θ와 Ρ, 무릎은 Ι와 Π, 정강이는 Κ와 Ο, 다리는 Λ와 Ξ, 발은 Μ와 Ν이다.” 이 마술사에 따르면, 이것이 진리의 몸이다. 이것이 요소의 형태이며, 글자의 모양이다. 그는 이 요소를 인간이라고 부른다. 이 인간이 모든 말의 샘이며, 모든 목소리의 시작이며,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모든 것을 말로 나타내는 것이며, 침묵하는 시게의 입이라고 한다. 이것이 진리의 몸이다. “그대는 마음의 이해를 더 높이 들어 올려, 진리의 입에서 나오는 스스로를 낳으며, 아버지를 주는 말씀을 들어라.”

Haec itaque exponentem ei quaternationem dixisse: Volo autem tibi et ipsam ostendere Veritatem. Deposui enim illam de superioribus aedificiis, ut circumspicias eam nudam, et intuearis formositatem ejus; sed et audias eam loquentem, et admireris sapientiam ejus. Vide quid igitur in caput ejus sursum, primum Α et Ω. Collum autem Β et Ψ. Humeros cum manibus Γ et Χ. Pectus Δ et Φ. Cinctum Ε et Υ. Ventrem Ζ et Τ. Verenda Η et Σ. Femora Θ et Ρ. Genua Ι et Π. Tibias Κ et Ο. Crura Λ et Ξ. Pedes Μ et Ν. Hoc est corpus ejus, quae est secundum magum, Veritatis: haec figura elementi, hic character literae. Et vocat elementum hoc, Hominem: esse autem fontem ait eum omnis verbi, et initium universae vocis, et omnis inenarrabilis enarrationem, et taciti Silentii os. Et hoc quidem corpus ejus. Tu autem sublimius allevans sensus intelligentiam, Autogenitora et Patrodotora verbum ab ore Veritatis audi.

8.5

그 무리가 이 말을 마치자, 진리는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 한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은 이름이었으며, 그 이름은 우리가 알고 말하는 바로 그 이름, 그리스도 예수였다. 그 이름을 말한 뒤, 곧 침묵했다. 마르코스가 그가 더 말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네 존재의 무리가 다시 가운데로 나와 말했다. “그대는 진리의 입에서 들은 그 말을 하찮은 것으로 여겼다. 그대가 알고 지녔다고 생각하는 이것은 본래의 이름이 아니다. 그대는 그 소리만 지녔으며, 그 능력은 모르기 때문이다. 예수는 수의 표지가 되는 이름으로, 여섯 글자로 되어 있으며, 부르심에 속한 모든 이에게 알려져 있다. 그러나 플레로마의 아이온들 가운데 있는 그 이름은, 여러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다른 형태, 다른 모형을 지닌다. 그와 동족인 이들이 그 이름을 이해하며, 그들의 위대함은 늘 그와 함께 있다.”

Haec autem cum dixisset illa, attendentem ad eum Veritatem, et aperientem os, locutam esse verbum: verbum autem nomen factum, et nomen esse hoc quod scimus et loquimur Christum Jesum; quod cum nominasset, statim tacuit. Cum autem putaret Marcus plus aliquid eam dicturam, rursus Quaternatio veniens in medium ait: Tanquam contemptibile putasti esse verbum, quod ab ore Veritatis audisti. Non hoc quod scis et putas habere, olim est nomen. Vocem enim tantum habes ejus, virtutem autem ignoras. Jesus autem est insigne nomen, sex habens literas, ab omnibus qui sunt vocationis cognitum. Illud autem quod est apud Aeonas Pleromatis, cum sit multifarium exsistens, alterius est formae, et alterius typi, quod intelligitur ab ipsis qui sunt cognati ejus quorum magnitudines apud eum sunt semper.

8.6

“그러므로 그대들에게 있는 이 스물네 글자가, 위에 있는 요소들의 수 전체를 담아내는 세 권능의 형상을 따른 유출임을 알아라. 소리 없는 글자 아홉은 아버지와 진리에게 속한다고 생각하여라. 그들은 목소리가 없기 때문이다. 곧 말로 나타낼 수도, 발음할 수도 없다는 뜻이다.” 반모음은 여덟이며, 로고스와 조에에게 속한다고 한다. 소리 없는 글자와 모음의 중간에 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것들의 유출과, 아래에 있는 것들의 올라옴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모음은 일곱이며,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에게 속한다고 한다. 안트로포스를 통해 나온 목소리가 모든 것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그 목소리의 소리가 모든 것에 형태를 입혔다. 그러므로 로고스와 조에는 여덟을,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는 일곱을, 아버지와 알레테이아는 아홉을 지닌다. 수가 모자라므로, 아버지 곁에 있던 이가 내려왔다. 이루어진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자기가 떨어져 나왔던 그곳으로 보냄을 받은 것이다. 플레로마들의 통일이 균등함을 지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능력을 열매로 맺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일곱이라는 수에 속한 이가 여덟에 속한 이들의 능력을 받았고, 세 자리는 수가 같아져, 각각 여덟 무리가 되었다. 이 셋이 함께 모여, 스물넷이라는 수를 드러냈다. 또 세 요소가 있는데, 그는 이것들이 세 권능과 짝을 이루어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여섯이 되며, 이것들에서 스물네 글자가 흘러나왔다.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네 존재의 무리의 원리에 따라 네 배가 되어, 같은 수를 이룬다. 이것들은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에게 속한다고 그는 말한다. 세 권능이 그것들에 보이지 않는 이와 닮은 모습을 입혔다고 한다. 우리가 쓰는 겹자음 글자들은 그 요소들의 형상의 형상이며, 이것들을 스물네 글자에 더하여 세면, 그 유비에 따른 힘으로 서른이라는 수를 이룬다고 한다.

Has igitur, quae apud vos sunt viginti quatuor literae, emanationes esse intellige trium virtutum imaginales, eorum quae continent universum, quae sunt sursum, elementorum numerum. Mutas enim literas novem puta esse Patris et Veritatis, quoniam sine voce sint, hoc est, et inenarrabiles et ineloquibiles. Semivocales autem cum sint octo, Logi esse et Zoës, quoniam quasi mediae sint inter mutas et vocales: et recipere eorum quidem quae super sint, emanationem, eorum vero quae subsint elevationem. Vocales autem et ipsas septem esse, Anthropi et Ecclesiae: quoniam per Anthropum vox progrediens formavit omnia. Sonus enim vocis formam eis circumdedit. Est igitur Logos habens et Zoe viii. Anthropos autem et Ecclesia vii. Pater autem et Alethia ix. Ex minori autem computatione, qui erat apud Patrem descendit, emissus illuc unde fuerat separatus ad emendationem factorum, ut Pleromatum unitas aequalitatem habens, fructificet unam in omnibus quae est ex omnibus virtus. Et sic is qui est numeri vii eorum qui sunt octo accepit virtutem, et facta sunt tria loca similia numeris, cum sint octonationes: quae ter in se venientia viginti quatuor ostenderunt numerum. Et tria quidem elementa, quae dicit ipse trium in conjugatione virtutum exsistere, quae fiunt vi. ex quibus emanaverunt viginti quatuor literae, quadripertita inenarrabilis quaternationis ratione, eundem numerum faciunt, quae quidem dicit illius qui est innominabilis exsistere. Indui autem eas a tribus virtutibus, in similitudinem illius qui est invisibilis: quorum elementorum imagines imaginum esse eas quae sunt apud nos duplices literae, quas cum xxiv literis adnumerantes, virtute quae est secundum analogiam, xxx faciunt numerum.

8.7

이 원리와 배열의 열매가 형상을 닮은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그는 말한다. 엿새 뒤 넷째로 산에 올라, 여섯째가 된 그 이가, 내려와 일곱 무리 안에 머물렀다. 그는 수의 표지를 지닌 여덟 무리였으며, 자기 안에 요소들의 모든 수를 지녔다. 그가 세례를 받으러 왔을 때, 비둘기가 내려와, 그 수를 드러냈다. 그 비둘기는 Ω와 Α이다. 그 수가 하나와 팔백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모세가 사람이 여섯째 날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경륜에 따라, 준비일인 여섯째 날에, 첫 사람을 다시 태어나게 하려고, 마지막 사람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 경륜의 시작과 끝은 여섯째 시각이며, 그때 그가 나무에 못 박혔다. 완전한 지성은 여섯이라는 수가 만듦과 다시 태어남의 능력을 지녔음을 알고, 그 수에 관하여 수의 표지로 나타난 이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탄생을 빛의 자녀들에게 드러냈다고 한다. 그래서 겹자음 글자들도 수표의 수를 지닌다고 말한다. 그 수표의 수가 스물네 요소와 합쳐져, 서른 글자로 된 이름을 완성했기 때문이다.

Hujus rationis et dispositionis fructum dicit in similitudinem imaginis apparuisse illum, qui post vi dies quartus ascendit in montem, et factus est sextus, qui descendit et detentus est in hebdomade, cum esset insignis octonatio, et haberet in se omnem elementorum numerum, quem manifestavit, cum ipse venisset ad baptismum, columbae descensio, quae est Ω et Α. Numerus enim ipsius unum et dccc. Et propter hoc Mosen in sexta die dixisse hominem factum: et dispositionem autem in sexta die, quae est in coena pura, novissimum hominem in regenerationem primi hominis apparuisse. Cujus dispositionis initium et finem sextam horam, in qua affixus est ligno. Perfectum enim sensum, scientem eum numerum qui est sex, virtutem fabricationis et regenerationis habentem, manifestasse filiis luminis eam generationem quae facta est per eum, qui manifestatus est insignis in eum numerum. Hinc etiam et duplices literas numerum insignem habere ait. Insignis enim numerus commixtus viginti quatuor elementis xxx literarum nomen explicuit.

8.8

마르코스의 시게가 말하듯이, 일곱이라는 수의 위대함을 일꾼으로 삼아, 스스로 생각한 생각의 열매가 드러나게 했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지금 이 수표의 수를, 그 수표를 따라 형성된 그 존재로 이해하여라. 그는 마치 여러 부분으로 나뉘거나, 잘려 나가, 밖에 남은 이이다. 자기 능력과 슬기로, 자기에게서 나온 발출을 통해, 일곱 무리의 능력을 본떠, 일곱 권능으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 생명을 주었으며, 눈에 보이는 이 전체의 혼이 되게 했다. 그 자신도 이 만들어진 것을 사용하며, 그것이 자기의 자발적인 뜻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여긴다. 나머지 것들은, 모방할 수 있는 것들의 모상이어서, 어머니의 엔튀메시스에 봉사한다. 첫째 하늘은 Α를 소리 내고, 그다음 하늘은 Ε를, 셋째 하늘은 Η를 소리 낸다. 넷째이며 일곱 가운데 한가운데인 하늘은 Ι의 능력을 발음한다. 다섯째는 Ο, 여섯째는 Υ, 일곱째이며 가운데에서부터 넷째인 하늘은 Ω라는 요소를 외친다.” 많은 말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으면서도, 참된 것은 하나도 말하지 않는 마르코스의 시게가 이렇게 단언한다. 그 권능들은, 모두 함께 서로 얽혀, 소리를 내고 영광을 돌리는데, 자기들을 내보낸 이에게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 소리의 영광은 첫 아버지에게 올려진다. 이 영광 돌림의 소리가 땅으로 전해져, 땅 위에 있는 것들을 빚는 이이며 낳는 이가 되었다고 한다.

Usus est autem Diacono septem numerorum magnitudine, quemadmodum dicit Marci Sige, ut ab se cogitatae cogitationis manifestetur fructus. Et insignem quidem hunc numerum in praesenti, ait, eum qui ab insigni figuratus est intellige, eum qui quasi in partes divisus est, aut praecisus, et foris perseveravit, qui sua virtute et prudentia per eam quae est ab eo emissionem, hunc, qui est septem virtutum, secundum imitationem hebdomadis virtutis animavit mundum, et animam posuit esse hujus universi quod videtur. Utitur autem et ipse hoc opere quasi spontanee ab ipso facto: reliqua vero ministrant, cum sint imitationes imitabilium, enthymesin matris. Et primum quidem coelum sonat Α, quod autem est post illum Ε, tertium autem Η, quartum vero et medium numeri vii Iotae virtutem enarrat, quintum vero Ο, sextum autem Υ, septimum autem et iv a medio Ω elementum exclamat, quemadmodum Marci Sige, quae multa quidem loquacius exsequitur, nihil autem verum loquens, affirmat. Quae virtutes, ait, omnes simul in vicem complexae, sonant et glorificant illum a quo emissae sunt, gloria autem soni mittitur in Propatorem. Hujus autem glorificationis sonum in terram delatum ait plasmatorem factum, et generatorem eorum quae sunt in terra.

8.9

그는 막 태어난 아기들에게서 그 증거를 가져온다. 그 아기들의 혼은 자궁에서 나오자마자, 각 요소의 이 소리를 외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곱 권능이 말씀에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아기들 안에 있는 혼도 울면서, 마르코스를 애도하며, 그 말씀에 영광을 돌린다. 이 때문에 다윗도 말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주께서 찬양을 완전하게 하셨다.” 또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혼이 고통과 재난에 놓이면, 자기의 짐을 덜고자, 찬양의 표시로, 오(Ω)라고 외친다. 위에 있는 혼이 자기와 동족인 것을 알아보고, 그에게 도움을 내려보내게 하려는 것이다.

Ostensionem autem affert ab iis qui nunc nascuntur infantibus, quorum anima, simul ut de vulva progressa est, exclamat uniuscujusque elementi hunc sonum. Sicut ergo septem virtutes (inquit) glorificant Verbum, sic et anima in infantibus plorans et plangens Marcum, glorificat eum. Propter hoc autem et David dixisse: Ex ore infantium et lactentium perfecisti laudem. Et iterum, Coeli enarrant gloriam Dei. Et propter hoc quando in doloribus et calamitatibus anima fuerit, in relevationem suam, dicit Ω, in signum laudationis, ut cognoscens illa quae sursum est anima, quod est cognatum suum, adjutorium ei deorsum mittat.

8.10

서른 글자로 된 이름 전체에 관하여, 그 이름의 글자들로부터 커지는 뷔토스에 관하여, 각 지체가 두 글자로 되어 있고, 열두 지체로 이루어진 진리의 몸에 관하여, 말하지 않으면서도 말한 그의 목소리에 관하여, 말로 나타내지 않은 그 이름을 풀어내는 일에 관하여, 세계와 사람의 혼에 관하여, 이것들이 형상에 따른 그 배열을 지닌 방식에 관하여, 그는 이런 헛소리를 했다. 이어서 어떻게 그들의 네 존재의 무리가 이름들로부터 동등한 능력을 드러냈는지 우리가 이야기하겠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들이 하는 말 가운데 우리에게 전해진 것들을 그대가 하나도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대가 우리에게 자주 요청한 대로 하겠다.

Et de omni quidem nomine, quod est xxx literarum, et de Bytho, qui augmentum accipit ex hujus literis, adhuc etiam de Veritatis corpore, quod est duodecim membrorum, unoquoque membro ex duabus literis constante; et de voce ejus quam locuta est non locuta; et de resolutione ejus nominis, quod non est enarratum; et de mundi anima, et hominis, secundum quae habent illam, quae est ad imaginem, dispositionem, sic deliravit. Dehinc autem quemadmodum ex nominibus aequiparatam virtutem ostendit eorum quaternatio, referemus, ut nihil lateat te, dilectissime, eorum quae ad nos pervenerunt ex iis, quae ab iis dicuntur, quemadmodum saepe postulasti a nobis.

8.11

그들의 더없이 지혜로운 시게는 스물네 요소의 탄생을 이렇게 알린다. 홀로됨과 함께 하나됨이 있으며, 그것들에서 두 발출이 나왔다. 앞서 말한 대로, 모나스와 헨이다. 이 둘이 배가 되어 넷이 되었다. 둘을 두 배 하면 넷이기 때문이다. 다시 둘과 넷을 함께 더하여, 여섯이라는 수를 드러냈다. 이 여섯을 네 배 하여, 스물네 형태를 낳았다. 첫 네 존재의 무리의 이름들은 지극히 거룩한 것으로 이해되며, 말로 나타낼 수 없다. 아들만이 그것들을 알며, 아버지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아신다. 그가 엄숙함과 존경과 믿음으로 부르는 다른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아레토스(Ἄῤῥητος), 시게(Σιγὴ), 파테르(Πατὴρ),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이다. 이 네 존재의 무리의 전체 수는 스물네 글자이다. 아레토스라는 이름은 일곱 글자, 세이게(Σειγὴ)는 다섯 글자, 파테르는 다섯 글자, 알레테이아는 일곱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을 함께 더하면, 다섯씩 둘과 일곱씩 둘이 스물넷이라는 수를 채운다. 둘째 네 존재의 무리인 로고스와 조에,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도 같은 수의 요소들을 드러냈다. 구원자의 말로 나타낼 수 있는 이름 예수(Ἰησοῦς)는 여섯 글자이며, 그의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이름은 스물네 글자이다. 아들 그리스도(Υἱὸς Χρειστὸς)는 열두 글자이고, 그리스도 안의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것은 서른 글자이다. 그래서 그는 그를 Α와 Ω라고 말하는데, 비둘기(περιστεράν)를 드러내려는 것이다. 이 새가 그 수를 지니기 때문이다.

Sic autem annuntiat perquam sapiens eorum Sige generationem xxiv elementorum: cum solitate esse unitatem, ex quibus duae sunt emissiones, sicut praedictum est, monas et hen, quae duplicatae, iv factae sunt: bis enim duo, quatuor. Et rursus duo et quatuor in idipsum compositae, sextum manifestaverunt numerum. Hi autem sex quadruplicati viginti quatuor generaverunt figuras. Et quidem quae sunt primae quaternationis nomina sancta sanctorum intelliguntur, quae non possunt enarrari; intelliguntur autem a solo Filio, quae Pater scit quaenam sunt. Alia vero, quae cum gravitate, et honore, et fide nominantur apud eum, sunt haec, Ἄῤῥητος et Σιγὴ, Πατὴρ et Ἀλήθεια. Hujus autem quaternationis universus numerus est literarum viginti quatuor: Ἄῤῥητος enim nomen literas habet in se septem, Σειγὴ quinque, et Πατὴρ quinque. et Ἀλήθεια vii, quae composita in se, bis quini, et bis septem, xxiv numerum adimpleverunt. Similiter et secunda quaternatio Logos et Zoe, Anthropos et Ecclesia eundem numerum elementorum ostenderunt. Et Salvatoris quoque narrabile nomen Ἰησοῦς literarum est sex; inenarrabile autem ejus, literarum viginti quatuor. Υἱὸς Χρειστὸς literarum xii; quod est autem in Christo inenarrabile, literarum xxx. Et propter hoc ait eum Α et Ω, ut περιστεράν manifestet, cum hunc numerum habeat haec avis.

8.12

예수의 말로 나타낼 수 없는 기원은 이러하다고 한다. 만물의 어머니, 곧 첫 네 존재의 무리에게서, 둘째 네 존재의 무리가 딸의 자리에 나와, 여덟 무리가 되었다. 그것에서 열 무리가 나왔다. 이렇게 열여덟이 되었다. 열 무리가 여덟 무리와 결합하여, 그것을 열 배 하여, 여든이라는 수를 만들었다. 다시 여든에 열을 곱하여, 팔백이라는 수를 만들었다. 이렇게 여덟 무리에서 열 무리로 나아가는 글자들의 전체 수는 여덟과 여든과 팔백이 되었으며, 이것이 예수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글자들을 계산하면, 팔백팔십팔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하늘 위에 계신 예수의 기원을 그대는 이제 분명히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인들의 알파벳에는 한 자리 수가 여덟, 십 단위 수가 여덟, 백 단위 수가 여덟 있어, 팔백팔십팔이라는 수를 드러낸다. 모든 수로 이루어진 예수를 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Α와 Ω라고 부르는데, 그가 모든 것으로부터 태어났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또 이렇게 설명한다. 첫 네 존재의 무리를 수의 진행에 따라 더하면, 열이라는 수가 나타난다. Α와 Β와 Γ와 Δ를 함께 더하면 열이 되며, 그것이 Ι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것이 예수라고 주장한다.

Jesus autem hanc habet inquit inenarrabilem genesin. A matre enim universorum, id est primae quaternationis, in filiae locum processit secunda quaternatio, et facta est octonatio, ex qua progressa est decas: sic factum est xviii. Decas itaque adjuncta octonationi et decuplam eam faciens lxxx fecit numerum: et rursus octuagies decies octingentorum numerum fecit, ut sit universus literarum numerus ab octonatione in decadem progrediens octo et octuaginta et dccc quod est Jesus. Jesus enim nomen secundum Graecarum literarum computum dccc sunt lxxxviii. Habes manifeste et supercoelestis Jesu secundum eos genesin. Quapropter et Α Β Graecorum habere monadas octo, et decadas viii, et hecatontadas viii, dccclxxxviii numerum ostendentia, hoc est, Jesum, qui est ex omnibus constans numeris: et propter hoc Α et Ω nominari eum, cum significet ex omnibus ejus generationem. Et iterum ita: primae quaternationis secundum progressionem numeri in semetipsam compositae x apparuit numerus. Α enim et Β et Γ et Δ in semetipsa composita x fiunt, quod est Ι, et hoc esse volunt Jesum.

8.13

그는 또 그리스도가 여덟 글자이며, 그것들로 첫 여덟 무리를 나타낸다고 말한다. 이 무리가 이오타와 결합하여, 팔백팔십팔이라는 수를 낳았다고 한다. 아들 그리스도라고도 불리며, 이것이 열두 무리라고 말한다. 아들(Υἱὸς)이라는 이름은 네 글자, 크레이스토스(Χρειστὸς)는 여덟 글자이며, 이것들이 합쳐져 열두 무리의 위대함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이름의 수표가 나타나기 전, 곧 아들 예수가 나타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큰 무지와 미혹에 빠져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여섯 글자의 이름이 드러났을 때, 그 이름을 지닌 이는 육신을 입었다. 사람의 감각으로 알아볼 수 있도록 내려오기 위함이었다. 자기 안에 여섯과 스물넷을 지니고 있었다. 그때 사람들은 그를 알고 무지에서 벗어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올라갔다. 그 이름이 그들의 인도자가 되어, 진리의 아버지께 이끌었다. 만물의 아버지는 무지를 풀어 없애고, 죽음을 무너뜨리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그를 아는 것이 무지를 없애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의 뜻에 따라, 위에 있는 권능의 형상을 따라 갖추어진 이를 인간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Sed et Christus, inquit, literarum est viii, ex quibus primam octonationem significari, quae cum Iota applicita dccclxxxviii numerum generavit. Dicitur autem, ait, et filius Christus, hoc est duodecas: Υἱὸς enim nomen literarum quatuor est, Χρειστὸς autem octo: quae composita duodecadis ostenderunt magnitudinem. Prius autem, inquit, quam hujus nominis insigne appareret, hoc est Jesus, filius, in ignorantia magna fuerunt homines et errore. Cum autem manifestatum est vi literarum nomen, hoc quod est secundum carnem amictum est, ut ad sensibilitatem hominis descenderet, habens in semetipso ipsum quoque vi et viginti quatuor; tunc cognoscentes eum cessaverunt ab ignoratione, et a morte in vitam ascenderunt, nomine eis facto ducatore ad Patrem veritatis. Voluisse enim Patrem universorum solvere ignorantiam, et destruere mortem. Ignorantiae autem solutio, agnitio ejus fiebat. Et propter hoc dictum secundum voluntatem ejus, eum qui est secundum imaginem ejus, quae sursum est virtus, dispositum Hominem.

8.14

아이온들은 네 존재의 무리에서 나왔다. 그 네 무리 안에는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 로고스와 조에가 있었다. 그들에게서 흘러나온 권능들이, 땅 위에 나타난 예수를 낳았다고 그는 말한다. 천사 가브리엘은 로고스의 자리를, 성령은 조에의 자리를,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은 안트로포스의 자리를 채웠다. 동정녀는 에클레시아의 자리를 드러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렇게 경륜에 속한 사람이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다. 만물의 아버지는 태를 거쳐 나온 그를 선택하여, 말씀을 통해 자기를 알게 하셨다. 그가 물에 이르렀을 때, 위로 돌아 올라갔으며, 열둘이라는 수를 채운 이가, 비둘기처럼 그에게 내려왔다고 한다. 그 안에는 그와 함께 씨로 뿌려진 이들, 함께 내려오고 함께 올라간 이들의 씨가 있었다. 내려온 그 능력 자체는 아버지의 씨라고 말한다.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을 지니며, 그들을 통해 알려지는 시게의 이름 붙일 수 없는 능력과, 모든 아이온들을 지녔다. 이것이 예수의 입을 통해 말씀한 영이며, 자기가 사람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아버지를 드러낸 영이다. 예수에게 내려와 그와 하나가 되었다. 경륜에 따른 구원자 예수는 죽음을 무너뜨렸다고 한다. 그는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를 알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예수는 경륜에 따른 그 사람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그 사람에게 내려올 안트로포스의 닮은 모습과 형상으로 놓였다는 것이다. 그를 받아들인 이는 안트로포스 자신과, 로고스 자신과, 아버지와, 아레토스와, 시게와, 알레테이아와, 에클레시아와, 조에를 지녔다고 한다.

A quaternatione enim progressi sunt Aeones. Erat autem in quaternatione Anthropos et Ecclesia, Logos et Zoe. Ab iis igitur virtutes, ait, emanatae generaverunt eum, qui in terra manifestatus est, Jesum. Et Logi quidem locum adimplesse angelum Gabriel, Zoes autem Spiritum sanctum, Anthropi autem Altissimi virtutem: Ecclesiae autem locum Virgo ostendit. Et sic ille qui est secundum dispositionem, per Mariam generatur apud eum homo, quem Pater omnium transeuntem per vulvam elegit per Verbum ad agnitionem suam. Cum autem venisset ipse ad aquam, descendisse in eum, quasi columbam, eum qui recurrit sursum, et implevit xii numerum: in quo inerat semen eorum qui conseminati sunt cum eo, et condescenderunt et coascenderunt. Ipsam autem virtutem quae descendit, semen dicit esse Patris, habens in se et Patrem, et Filium, et eam quae per eos cognoscitur innominabilis virtus Siges, et omnes Aeonas. Et hunc esse Spiritum qui locutus est per os Jesu, qui se confessus est Filium hominis, et manifestavit Patrem, descendens quidem in Jesum, unitus est. Et destruxit quidem mortem, ait, qui fuit ex dispositione Salvator Jesus; agnovit autem Patrem Christum Jesum. Esse ergo Jesum nomen quidem ejus, qui est ex dispositione homo, dicit, positum autem esse in assimilationem et figurationem ejus, qui incipit in eum descendere, Hominis, quem capientem habere et ipsum Hominem, et ipsum Logon, et Patrem, et Arrheton, et Sigen, et Alethian, et Ecclesiam, et Zoen.

8.15

이것들은 이제 이우, 이우라는 탄식도, 페우라는 탄식도, 모든 비극의 외침과 고통의 울부짖음도 넘어선다. 마르코스가 진리를 우상으로 만들고, 그 몸에 알파벳 글자들을 새겨 놓은 것을 보면서, 그토록 큰 거짓말들을 엮어 낸 악한 시인을 누가 미워하지 않겠는가? 그리스인들은 인정한다. 태초에 견주면 최근에, 흔히 말하는 어제와 그제에, 자기들이 카드모스에게서 처음 열여섯 글자를 받았다고 한다. 그 뒤 시간이 흐르면서, 스스로 글자들을 고안했는데, 어느 때에는 거센소리 글자들을, 어느 때에는 겹자음 글자들을 만들었다. 맨 나중에 팔라메데스가 긴소리 글자들을 더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리스인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는 진리가 없었다는 말인가? 마르코스여, 그대의 말대로라면 진리의 몸은 카드모스와 그보다 앞선 이들보다 나중에 생겼으며, 나머지 글자들을 보탠 이들보다도 뒤에 생겼다. [시대로 보아 팔라메데스보다도 뒤이다.] 그대 자신보다도 나중에 생겼다. 그대 혼자 그대가 선포하는 진리를 우상으로 끌어내렸기 때문이다.

Haec jam supra Iu Iu, et super Pheu, et super universam tragicam exclamationem et doloris vociferationem sunt. Quis enim non oderit eum, qui tantorum mendaciorum malus compositor est poeta, cum viderit veritatem idolum a Marco factam, et hoc Alphabetae literis stigmatam? Nuper, sicut quod est ab initio, quod dici solet heri et ante, Graeci confitentur a Cadmo se primum sedecim accepisse: post deinde procedentibus temporibus semetipsos adinvenisse, aliquando quidem aspiratas, aliquando autem duplices: novissime autem omnium Palamedem aiunt longas eis apposuisse. Prius igitur quam apud Graecos haec fierent, non erat veritas. Corpus enim ejus secundum te, Marce; posterius est tempore quam Cadmos, et ii qui ante eum sunt; posterius autem his, qui reliqua elementa addiderunt [temporis quam Palamedes]: posterius autem tempore, quam et tu ipse. Tu autem solus in idolum deposuisti eam, quae a te praedicatur Veritas.

8.16

그토록 수다를 떠는 그대의 시게를 누가 견디겠는가? 그 시게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아이온)에게 이름을 붙이고,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이를 설명하며, 찾아 헤아릴 수 없는 이를 이야기한다. 그대가 몸과 형체가 없다고 말하는 이가 입을 열고, 여러 부분으로 이루어진 생물 가운데 하나처럼 말씀을 내보냈다고 한다. 그의 말씀은 그를 내보낸 이와 닮았고, 보이지 않는 이의 형상이 되었으며, 서른 요소와 네 음절로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면 만물의 아버지도 그 말씀과 닮아서, 그대 말대로, 서른 요소와 네 음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 누가 그대를 견디겠는가? 만물을 세우고, 빚고,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을 형태와 수 안에, 어떤 때에는 서른, 어떤 때에는 스물넷, 어떤 때에는 고작 여섯 안에 가두고, 그를 네 음절과 서른 요소로 쪼개는 그대를! 하늘을 굳게 세우신 만물의 주님을, 알파벳과 마찬가지로, 팔백팔십팔이라는 수로 끌어내리는 그대를! 모든 것을 담아내시며, 아무것에도 담기지 않는 그 아버지를, 네 무리와 여덟 무리, [열 무리], 열두 무리로 나누고, 이런 곱셈을 통해, 그대 스스로 말로 나타낼 수 없고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것을 설명하는 그대를! 그대는 몸도 물질적 실체도 없다고 부르는 이의 질료와 실체를, 서로에게서 태어나는 많은 글자들로 만들어 낸다. 그대 자신이 만들어 내는 다이달로스가 되어, 가장 높은 능력을 빚는 악한 장인이 된 것이다. 나눌 수 없다고 말하는 그 실체를, 소리 없는 글자와 모음, 반모음의 소리로 다시 나누고, 그 가운데 소리 없는 것을, 만물의 아버지와 그의 생각에 거짓으로 돌렸다. 그대를 믿는 모든 이를 극심한 모독과 큰 불경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Quis autem sustinebit tuam illam, quae tantum verbosata est Sigen, quae innominabilem nominat (Aeonem), inenarrabilem exponit, et eum qui investigabilis est enuntiat, et aperuisse os dicit eum, quem incorporalem et infiguratum dicis, et emisisse Verbum, quasi unum ex his quae composita sunt animalia: Verbum quoque ejus simile esse ei qui eum emisit, et formam invisibilis factum, elementorum quidem esse triginta, syllabarum autem quatuor? Erit ergo secundum similitudinem Verbi Pater omnium, sicut tu ais, elementorum quidem triginta, syllabarum autem quatuor. Aut iterum quis sustinebit te in schemata et numeros, aliquando quidem triginta, aliquando autem viginti quatuor, aliquando sex tantum, concludentem universorum conditorem, et Demiurgum, et factorem Verbum Dei, et minuentem eum in syllabas quidem quatuor, elementa autem triginta: et omnium Dominum qui firmavit coelos, in dccclxxxviii deducentem numeros, similiter atque Alphabetum: et ipsum qui omnia capit Patrem, a nullo autem capitur, in quaternationem et octonationem [et decadem] et duodecadem subpartientem, et per hujusmodi multiplicationes illud quod est inenarrabile et incognoscibile, quemadmodum tu dicis, Patris enarrantem? Et quem incorporalem et insubstantivum nominas, hujus materiam et substantiam ex multis literis, aliis ex aliis generatis, fabricas, ipse Daedalus fictor et faber malus factus sublimissimae virtutis: et quam indivisibilem dicis substantiam, in mutas, et vocales, et semivocales sonos subdividens, id quod est mutum in his, omnium Patri et hujus intentioni mentiens, in summam blasphemiam et magnam impietatem immisisti omnes qui tibi credunt.

8.17

신적 영감을 받은 원로이며, 진리의 전령인 이는, 그대의 이런 무모함을 두고, 마땅하고도 적절하게, 다음과 같이 그대를 꾸짖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 마르코스여, 기이한 징조를 살피는 자여, 점성술과 마술에 능한 자여, 그것들로 미혹의 가르침을 굳게 하며, 그대가 속이는 이들에게 표징들을 보여 주는 자여, 그것들은 배교한 능력의 행위들, 그대의 아버지 사탄이 그대에게 행하게 해 주는 것들, 천사 아자젤의 능력을 통해 그렇게 하게 하며, 그대를 세우니, 하나님을 거스르는 악행의 앞잡이로 삼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원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들의 나머지 신비들을, 길게 이어지는 그 신비들을, 짧게 풀어 설명하고, 오랫동안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면 누구나 그것들을 쉽게 논박하고 잘못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Quapropter et juste et apte tali temeritati tuae divinae aspirationis senior et praeco veritatis invectus est in te, dicens sic: Idolorum fabricator, Marce, et portentorum inspector, Astrologiae cognitor et magicae artis, Per quae confirmas erroris doctrinas, Signa ostendens his qui a te seducuntur, Apostaticae virtutis operationes, Quae tibi praestat tuus pater Satanas Per angelicam virtutem Azazel facere, habens te Praecursorem contrariae adversus Deum nequitiae. Et haec quidem amator Dei senior. Nos autem reliqua mysteria eorum, quae sunt longa, conabimur breviter expedire, et ea quae multo tempore sunt occultata, in manifestum producere. Sic enim fit ut facile argui et convinci possint ab omnibus.

9.1

모든 것을 수로 환원한 이들은, 아이온들의 탄생과, 양이 길을 잃었다가 다시 발견되는 일을 하나로 합쳐, 신비롭게 선포하려 든다. 모든 것이 하나와 둘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면서, 하나에서 넷까지 세어, 열 무리를 만들어 낸다. 하나와 둘과 셋과 넷을 함께 더하면, 열 아이온의 수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시 둘이 자기에게서 에피세몬까지 나아가, 둘과 넷과 여섯으로, 열두 무리를 드러낸다. 또 둘에서 같은 방식으로 열까지 세면, 서른이라는 수가 나타나며, 그 안에 여덟 무리와 열 무리와 열두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열두 무리를, 에피세몬을 지니고 있기에, (에피세몬 때문에 그 뒤를 따르는) 수난이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열둘이라는 수에 어떤 결함이 생겼을 때, 양이 제멋대로 뛰어나가 길을 잃었다고 한다. 열두 무리에서 이탈이 일어났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한 권능이 열두 무리에서 떠나 사라졌다고 신탁처럼 말한다. 이것이 드라크마를 잃고, 등불을 켜서, 그것을 찾은 여자라고 한다. 그러므로 남은 수들, 드라크마의 경우 아홉과, 양의 경우 열하나를 서로 곱하면, 아흔아홉이라는 수가 나온다고 한다. 아홉에 열하나를 곱하면 아흔아홉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멘도 이 수를 지닌다고 말한다.

Generationem itaque Aeonum, et errorem ovis, et adinventionem, adunantes in unum, mystice audent annunciare hi qui in numeros omnia deduxerunt, de monade et dualitate dicentes omnia constare: et a monade usque ad quatuor numerantes, sic generant decadem. Unum enim et duo, et tres, et quatuor, in unum compositae, decem Aeonum generaverunt numerum. Rursus autem dualitas ab ea progressa usque ad episemon, duo et quatuor et sex, duodecadem ostendit. Et rursus a dualitate similiter numerantibus nobis usque ad x, xxx numerus ostensus est, in quo est ogdoas et decas et duodecas. Duodecadem igitur eo quod episemon habuerit (consequentem sibi propter episemon) passionem vocant. Et propter hoc circa xii numerum cum labes quaedam facta fuisset, ovem luxuriatam oberrasse: quoniam apostasiam a duodecade factam dicunt. Similiter et a duodecade abscedentem unam virtutem periisse divinant: et hanc esse mulierem quae perdiderit drachmam, et accenderit lucernam, et invenerit eam. Sic igitur et numeros reliquos in drachma, qui sunt novem, in ove vero undecim, perplexos sibimetipsis, xcix numerum generare: quoniam novies undeni xcix fiant. Quapropter et Amen hunc habere dicunt numerum.

9.2

그들이 달리 해석하는 방식도 그대에게 알려 주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그대가 그들의 열매를 모든 면에서 보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Η라는 글자가 에피세몬과 함께 여덟 무리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알파[벳]에서 여덟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에피세몬을 빼고 글자들의 수를 계산하여, Η까지 더하면, 서른 무리가 나타난다고 한다. 누군가 Α에서 시작하여, 글자들의 수를 Η까지 세면서, 에피세몬을 빼고, 글자들의 증가분을 차례로 더하면, 서른이라는 수를 얻게 된다. Ε라는 글자까지 더하면 열다섯이 되고, 그 뒤 일곱이라는 수를 더하면, 스물둘이 된다. 여덟에 해당하는 Η를 여기에 더하면, 그 놀라운 서른 무리가 채워진다. 이것으로 그들은 여덟 무리가 서른 아이온의 어머니임을 보인다. 서른이라는 수는 세 권능에서 합쳐진 것이므로, 그 수를 세 배 하면 아흔이 된다. 이 셋 자체를 서로 곱하면 아홉이 된다. 이렇게 여덟 무리가 아흔아홉이라는 수를 낳았다. 열두째 아이온이 떠나 위에 열하나를 남겼으므로, 글자들의 모형이 로고스의 형상에 맞게 놓였다고 그들은 말한다. (글자들 가운데 열한째가 Λ이며, 그 수는 서른이다.) 위의 경륜을 본떠 놓였다는 것이다. 알파에서 에피세몬을 빼고, Λ까지 글자들의 수를 합하여, Λ 자체를 포함해 글자들이 늘어나는 만큼 더하면, 아흔아홉이라는 수가 되기 때문이다. Λ는, 차례에서 열한째 자리에 있는 그 글자는, 열둘이라는 수를 채우려고, 자기와 닮은 것을 찾으러 내려왔으며, 그것을 찾자 채워졌다고 한다. 이는 글자 자체의 모양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Λ가 자기와 닮은 것을 찾으러 와서, 그것을 발견하고, 자기에게 끌어당겨, 열두째 자리를 채웠기 때문이다. Μ라는 글자가 두 람다, ΛΛ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을 통해 아흔아홉의 자리를, 곧 결핍을, 왼손의 모형을 피하고, 하나를 뒤따른다고 한다. 그 하나를 아흔아홉에 더하면, 그들을 오른손으로 옮겨 주었다는 것이다.

Non pigritabor autem tibi et aliter eos interpretantes annunciare, ut undique conspicias fructum eorum. Literam enim Η cum episemo Ogdoadem esse volunt, cum ab alpha[beta] octavo sit posita loco: rursus iterum sine episemo computantes numerum ipsarum literarum, et componentes usque ad Η, triacontadem ostendunt. Incipiens enim quis ab Α, et perfiniens in Η, numerum literarum, abstrahens autem episemum, et insuper conjungens incrementum literarum, inveniet tricenarium numerum. Usque enim ad Ε literam, xv fiunt: post deinde appositus eis vii numerus, ii et xx perficit. Cum autem appositum est eis Η, quod est viii, admirabilem triacontadem adimplevit. Et hinc ostendunt Ogdoadem matrem triginta Aeonum. Quoniam igitur ex tribus virtutibus unitus est tricenarius numerus, ter idem factus xc fecit. Et ipsa autem trias in se composita ix generavit. Sic Ogdoas xcix generavit numerum. Et quoniam duodecimus Aeon absistens reliquit sursum xi, consequenter dicunt typum literarum in figura Logi positum esse: (Undecimam enim in literis esse Λ, qui est numerus xxx) et secundum imaginem positum esse superioris dispositionis: quoniam ab Alpha sine episemo, ipsarum literarum numerus usque ad Λ compositus, secundum augmentum literarum cum ipso Λ, xc et ix facit numerum. Quoniam autem Λ, quae est undecimo loco in ordine, ad similis sui descendit inquisitionem, ut impleret xii numerum, et cum invenisset eum, adimpleta est, manifestum esse ex ipsa figuratione literae. Λ enim quasi ad sui similis inquisitionem adveniens, et inveniens, et in semet rapiens ipsum, duodecimi adimplevit locum, Μ litera ex duobus Lambdis ΛΛ consistente. Quapropter et fugere eos per agnitionem xcix locum, hoc est deminorationem, typum sinistrae manus: sectari autem unum, quod additum super xcix in dexteram eos manum transtulit.

9.3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이 글을 읽으면서, 그들의 이토록 큰, 우쭐대며 지혜를 자처하는 어리석음을 두고 크게 웃으리라는 것을 나는 잘 안다. 하나님을 향한 그토록 큰 경외와,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능력의 위대함과, 하나님의 그토록 큰 경륜들을, Α와 Β로, 그토록 빈약하고 억지로 끌어낸 숫자들로 설명하는 이들은 애도받아 마땅하다. 교회에서 떠나, 이런 늙은 여자들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이들은 모두, 참으로 자기 자신에게 정죄받은 이들이다. 바울은 우리에게 이런 이들을 첫 번째와 두 번째 권고 뒤에 피하라고 명령한다. 주님의 제자 요한은 그들에 대한 정죄를 더 엄하게 하여, 우리가 그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기를 원했다. 그는 말한다. “그들에게 인사하는 이는 그들의 지극히 악한 행위에 참여한다.” 당연한 일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불경한 이들에게는 기쁨이 없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 그 위에 다른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그분이, 결함에서, 그 자체도 또 다른 결함에서 생긴 그 결함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이들은 모든 불경을 넘어 불경하다. 그들의 설명대로라면 그분은 셋째 결함의 발출이 된다. 이런 견해에 마땅히 코웃음 치고 저주하면서, 그들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달아나야 한다. 그들이 이것들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고, 자기들이 지어낸 것들을 기뻐할수록, 그들이 여덟 무리의 지극히 악한 영적 존재들에게 더욱 휘둘리고 있음을 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광란의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더 많이 웃고, 자기가 건강하다고 여기며, 건강한 사람처럼 모든 것을 행하고, 어떤 일들은 건강한 사람들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일수록, 더 심하게 병든 것과 같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여겨지고, 활을 지나치게 팽팽히 당겨 쏘듯, 자기 힘을 소진할수록, 더욱 분별이 없어진다. 무지의 더러운 영이 나갔다가, 그들이 하나님께 힘쓰지 않고 세상의 물음들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면, 자기보다 더 악한 다른 영 일곱을 데려오고, 하나님보다 높은 것들을 생각해 낼 수 있다는 듯이, 그들의 생각을 우쭐하게 만든다. 배제를 위해 알맞게 조합된, 지극히 악한 영들의 무지의 여덟 무리를 그들 안에 들여놓았다.

Tu quidem haec pertransiens, dilectissime, optime scio quoniam ridebis multum tantam illorum in tumore sapientem stultitiam. Sunt autem digni planctu, qui tantam Dei religionem et magnitudinem vere inenarrabilis virtutis, et tantas dispositiones Dei per Α et Β, et per numeros tam frigidos, et vi extortos enunciant. Quotquot autem absistunt ab Ecclesia, et iis anilibus fabulis assentiunt, vere a semetipsis sunt damnati. Quos Paulus jubet nobis post primam et secundam correptionem devitare. Johannes enim Domini discipulus superextendit damnationem in eos, neque Ave a nobis eis dici volens: Qui enim dicit, inquit, eis Ave, communicat operibus ipsorum nequissimis. Et merito: Non enim est gaudere impiis, dicit Dominus. Impii autem super omnem impietatem hi sunt, qui factorem coeli et terrae, unum Deum omnipotentem, super quem alius Deus non est, ex Labe, et ipsa ex altera Labe facta, emissum dicunt: et sic jam secundum eos esse eum emissionem tertiae Labis. Quam sententiam digne exsufflantes et catathematizantes, oportet porro alicubi et longe fugere ab eis: et quanto plus haec affirmant et gaudent in iis adinventionibus suis, tanto magis sciamus plus eos agitari ab Ogdoadis nequissimis spiritalibus: quemadmodum hi qui in phreneticam passionem inciderunt, aut plus rident, et valere se putant, et quasi sani omnia agunt; quaedam autem et quasi plus quam sani sunt, tanto magis male habent. Similiter autem et hi, quo magis plus sapere putantur, enervantes semetipsos, super tonum sagittantes, tanto magis non sapiunt. Exiens enim immundus spiritus ignorantiae, dein vacantes eos non Deo, sed mundialibus quaestionibus inveniens, assumens alios spiritus septem nequiores semetipso, et infatuans illorum sententiam, quasi possint quae sunt super Deum adinvenire, et aptabiliter in exclusionem compositam Ogdoadem ignorantiae nequissimorum spirituum in eos deposuit.

10장

나는 그대에게 그들이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전하고자 한다. 창조 자체가 보이지 않는 것들의 형상을 따라, 데미우르고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를 통해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먼저 네 요소, 곧 불과 물과 땅과 공기가, 위의 네 존재의 무리의 형상으로 나왔다고 말한다. 그것들의 작용들도 함께 세면, 곧 뜨거움과 차가움, 습함과 건조함을 더하면, 여덟 무리를 정확히 그려 낸다고 한다. 그것에서 열 권능을 다음과 같이 센다. 일곱 개의 회전하는 물체들이 있으며, 이것들을 하늘들이라고도 부른다. 그다음 그것들을 둘러싼 원이 있는데, 그것을 여덟째 하늘이라고 부른다. 그다음 해와 달이 있다. 이것들은 수가 열이므로, 로고스와 조에에게서 나온 보이지 않는 열 무리의 형상들이라고 말한다. 열두 무리는 황도라고 부르는 원을 통해 드러난다고 한다. 열두 별자리가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의 딸인 열두 무리를, 일종의 그림자로, 매우 분명하게 그려 냈다고 말한다. 만물의 짐을 실은 운행이 매우 빠른데, 그 위에 놓인 하늘은 그것에 반대 방향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한다. 그 하늘은 그 오목한 천구에 무게를 가하고, 자기의 느림으로, 반대쪽에서 그것들의 속도를 조절한다. 그래서 한 별자리에서 같은 별자리까지 한 바퀴 도는 데 서른 해가 걸린다. 그들은 그것이 호로스의 형상이라고 말한다. 이름의 순서에서 서른째인 그들의 어머니를 둘러싸는 그 호로스이다. 또 달은 자기 하늘을 서른 날 동안 돌면서, 그 날들로 서른 아이온의 수를 나타낸다고 한다. 해는 열두 달 동안 돌고, 순환하여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을 마쳐, 그 열두 달로 열두 무리를 드러낸다고 한다. 날들도 열두 시각의 길이를 지니므로, 보이지 않는 열두 무리의 모형이라고 한다. 하루의 열두째 부분인 한 시각도, 서른 무리의 형상을 나타내기 위해, 서른 부분으로 갖추어졌다고 말한다. 황도라는 원 자체의 둘레도 삼백육십 부분으로 되어 있다. 각 별자리가 서른 부분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을 통해서도, 열둘과 서른의 결합을 나타내는 형상이 보존된다고 말한다. 또 땅이 열두 지대로 나뉘어 있으며, 각 지대에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대로 각각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그 흐름을 내려보낸 능력을 닮은 자녀들을 낳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열두 무리와 그 자녀들의 매우 분명한 모형이라고 확언한다. 이에 더하여 데미우르고스가 위의 여덟 무리의 끝없음과 영원함, 무한함과 시간에 매이지 않음을 본뜨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함의 열매였기에, 그 지속성과 영속성을 형태로 드러낼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영원함을 시간의 길이와, 때들과, 수많은 해의 수 속에 펼쳐 놓았다. 시간을 많이 쌓으면 그 끝없음을 본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그가 진리를 놓쳤으므로, 거짓을 뒤따랐으며, 이 때문에 시간들이 다 차면, 그의 작품은 멸망하게 된다고 한다.

Volo autem tibi referre quemadmodum et ipsam conditionem secundum imaginem invisibilium a Demiurgo, quasi ignorante eo, fabricatam per Matrem dicunt. Primo quidem quatuor elementa dicunt, ignem, aquam, terram, et aërem, imaginem emissam esse superioris quaternationis: et operationes eorum cum eis annumeratas, id est, calidum et frigidum, humectum et aridum, diligenter imaginare Ogdoadem, ex qua decem virtutes sic enumerant: septem quidem corporea circumlata, quae etiam coelos vocant: post deinde continentem eos circulum, quem octavum coelum vocant, post deinde solem et lunam. Haec cum sint decem numero, imagines dicunt esse invisibilis decadis ejus, quae a Logo et Zoe progressa sit. Duodecadem autem ostendi per eum, qui Zodiacus vocatur circulus. xii enim signa manifestissime Hominis et Ecclesiae filiam duodecadem, quasi per quandam umbram pinxisse dicunt. Et e contrario superjunctum, inquiunt, universorum oneri, cum sit velocissimum, quod superpositum est coelum, quod ad ipsam concavationem aggravat, et ex contrarietate moderatur illorum velocitatem sua tarditate, ita ut in xxx annis circuitum a signo in signum faciat, imaginem dicunt id Hori ejus, qui trigesimam nominis illorum matrem circumtinet. Lunam quoque rursus suum coelum circumeuntem xxx diebus, per dies numerum xxx Aeonum significare. Et solem autem in duodecim mensibus circumeuntem et perficientem circularem suam apocatastasin, per duodecim menses duodecadem manifestare. Et ipsos autem dies duodecim horarum mensuram habentes, typum non apparentis duodecadis esse. Sed et horam dicunt, quod est duodecimum diei, ex triginta partibus adornatam propter imaginem triacontadis. Et ipsius autem Zodiaci circuli circummensurationem esse partium ccclx, quodque enim signorum partes habere xxx. Sic quoque per circulum imaginem copulationis eorum, quae sunt duodecim, ad xxx custoditam dicunt. Adhuc etiam et terram in xii climata divisam dicentes, et in unoquoque climate unamquamque virtutem ex coelis secundum demissionem suscipientem, et similes generantem filios ei virtuti, quae demiserit distillationem, typum esse duodecadis et filiorum ejus manifestissimum asseverant. Ad haec autem volentem aiunt Demiurgum superioris Ogdoadis interminabile, et aeternum, et infinitum, et intemporale imitari, et cum non potuisset perseverabile ejus et perpetuum deformare, ideo quod fructus sit Labis, in temporum spatia, et tempora, et numeros multorum annorum aeternitatem ejus deposuisse, existimantem in multitudine temporum imitari ejus interminatum. Hic dicunt, cum effugisset eum veritas, subsecutum mendacium: et propter hoc destructionem, adimpletis temporibus, accipere ejus opus.

11.1

그들은 창조에 관해 이런 말들을 하면서, 저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대로, 날마다 새로운 것을 고안한다. 그들 가운데 가장 큰 거짓말을 열매로 맺는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완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예언의 글들을 변형하여 끼워 맞추는 것들을 드러내고, 그것들을 논박할 필요가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모세는, 창조의 일을 서술하기 시작하면서, 바로 그 첫머리에서 만물의 어머니를 드러내어,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만드셨다.” 하나님과 시작, 하늘과 땅, 이 넷을 이름하여, 그들의 주장대로, 자기들의 네 무리를 그려 냈다는 것이다. 그 무리의 보이지 않고 감추어진 성질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땅은 보이지 않고 갖추어지지 않았다.” 첫 네 무리의 자식인 둘째 네 무리를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깊음과 어둠을 이름했으며, 그 안에 물이 있고, 물 위에 움직이던 영이 있다는 것이다. 그다음 열 무리를 언급하면서, 빛을 말하고, 낮과, 밤과, 창공과, 저녁과, 아침이라 부르는 것과, 마른땅과, 바다와, 풀과, 열째 자리에 나무를 말했다. 이렇게 열 이름을 통해, 열 아이온을 드러냈다고 한다. 열두 무리의 능력도 이런 방식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해를 말하고, 달과, 별들과, 때들과, 해들과, 큰 바다짐승들과, 물고기들과, 기어 다니는 것들과, 날아다니는 것들과, 네 발 달린 것들과, 들짐승들과, 이 모든 것 뒤 열두째에 사람을 말했다. 그들은 이렇게 영이 모세를 통해 서른 무리를 말했다고 가르친다. 또 빚어진 사람은, 위의 능력의 형상을 따라, 하나의 샘에서 오는 그 능력을 자기 안에 지닌다고 한다. 그 능력은 뇌 안의 자리에 놓였으며, 위의 네 무리의 형상을 따라, 그곳에서 네 능력이 흘러나온다. 그 이름은 하나는 시각, 다른 하나는 청각, 셋째는 후각, 넷째는 미각이다. 여덟 무리는 사람을 통해 이렇게 드러난다고 말한다. 두 귀와, 같은 수의 눈과, 두 후각 기관과, 쓴맛과 단맛을 보는 두 가지 미각을 지닌다는 것이다. 사람 전체가 서른 무리의 전체 형상을 다음과 같이 지닌다고 가르친다. 손에는 손가락을 통해 열 무리를 지니고, 열두 지체로 나뉘는 몸 전체에는 열두 무리를 지닌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이 진리의 몸을 나누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나눈다. 말로 나타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여덟 무리는 내장 속에 감추어져 있다고 이해한다.

Et de conditione quidem talia dicentes, quotidie adinvenit unusquisque eorum, quemadmodum potest, aliquid novi. Perfectus enim nemo, nisi qui maxima mendacia apud eos fructificaverit. De propheticis autem quaecunque transformantes coaptant, necessarium est manifestantes arguitionem his inferre. Moyses enim, inquiunt, incipiens id quod est secundum conditionem opus, statim in principio matrem omnium ostendit, dicens: In principio fecit Deus coelum et terram. Quatuor haec nominans, Deum et principium, coelum et terram, quaternationem ipsorum, quemadmodum ipsi dicunt, figuravit. Et invisibile autem et absconditum ejus manifestantem dicere: Terra autem erat invisibilis et incomposita. Secundam autem quaternationem, progeniem primae quaternationis, sic eum dixisse volunt, abyssum nominantem et tenebras, in quibus sunt et aquae, et qui ferebatur super aquas Spiritus. Post quam decadis commemorantem, lumen dicere, et diem, et noctem, et firmamentum, et vesperam, et quod vocatur mane, et aridam, et mare, adhuc etiam et herbam, et decimo loco lignum: sic quoque per decem nomina, x Aeonas manifestasse. Duodecadis autem sic formatam apud eos virtutem: Solem enim dicere, et Lunam, et stellas, et tempora, et annos, et cetos, adhuc etiam pisces, et serpentia, et volatilia, et quadrupedia, feras quoque, et super haec omnia duodecimum hominem. Sic ab Spiritu triacontadem per Moysen dictam docent. Nec non et formatum hominem secundum imaginem superioris virtutis, habere in se eam, quae sit ab uno fonte, virtutem. Constitutam autem eam esse in eo, qui sit in cerebro locus, ex quo defluant virtutes quatuor secundum imaginem supernae tetradis, quae vocantur, una quidem visio, altera autem auditus, tertia odoratus, et quarta gustatio. Octonationem autem dicunt significari per hominem sic: aures quidem duas habentem, et totidem visus, adhuc etiam odorationes duas, et duplicem gustationem, amari et dulcis. Totum autem hominem omnem imaginem triacontadis sic habere docent: in manibus quidem per digitos decadem bajulare: in toto autem corpore, cum in xii membra dividatur, duodecadem. Dividunt autem illud, quemadmodum Veritatis apud eos divisum est corpus, de quo praediximus. Ogdoadem autem, et inenarrabilem et invisibilem, in visceribus absconditam intelligi.

11.2

그들은 또 큰 빛인 해가 네 무리의 수 때문에 넷째 날에 생겼다고 말한다. 모세가 세운 성막의 뜰도 고운 아마포와, 청색과, 자주색과, 진홍색으로 만들어져, 그들에게 같은 형상을 드러냈다고 한다. 귀한 돌들을 네 줄로 장식한 제사장의 긴 옷도 네 무리를 뜻한다고 단정한다. 넷이라는 수를 나타낼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성경에 어디든 있으면, 자기들의 네 무리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말한다. 여덟 무리는 또 이렇게 드러난다. 사람이 여덟째 날에 빚어졌다고 말한다. 어느 때에는 그가 여섯째 날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어느 때에는 여덟째 날이라고 한다. 혹시 흙에 속한 사람은 여섯째 날에 빚어지고, 육에 속한 사람은 여덟째 날에 빚어졌다고 말하려는 것일까? 그들은 이 둘을 구별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또 하나의 사람과 다른 사람을 구별한다. 하나님의 형상과 닮음을 따라 만들어진, 남성이며 여성인 사람이 있으며, 이 사람이 영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땅에서 빚어진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라고 한다. 홍수 때 방주에 관한 경륜도, 그 안에서 여덟 사람이 구출되었으므로, [구원을 주는] 여덟 무리를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고 말한다. 다윗도 같은 것을 나타내는데, 형제들 가운데 여덟째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여덟째 날에 행하는 할례도 위의 여덟 무리의 할례를 드러낸다. 성경에서 여덟이라는 수에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여덟 무리의 신비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소유로 주겠다고 약속하신 열 민족을 통해, 열 무리도 드러난다고 말한다. 사라에 관한 경륜, 곧 열 해 뒤에 아들을 얻도록 자기 여종 하갈을 그에게 준 일도, 같은 것을 뜻한다. 리브가에게 보내진 아브라함의 종이 우물에서 그에게 금 열 닢의 팔찌들을 준 일, 그의 형제들이 그를 열흘 동안 붙들어 둔 일, 열 홀을 받은 여로보암, 성막의 열 뜰, 열 규빗의 기둥들, 곡식을 사려고 처음 이집트에 보내진 야곱의 열 아들, 부활 뒤, 도마가 그 자리에 없을 때, 주님께서 나타나신 열 사도, 이 모두가 그들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열 무리를 그려 냈다.

Solem quoque iterum, qui sit magnum luminare, in quarta dierum fieri propter quaternationis numerum dicunt. Tabernaculi quoque, quod a Moyse compositum est, atria de bysso, et hyacintho, et purpura, et coccino facta, eandem apud eos ostenderunt imaginem. Sacerdotis quoque poderem quatuor ordinibus lapidum pretiosorum adornatum, quaternationem significare praefiniunt. Et si qua omnino talia sunt posita in scripturis, quae quatuor possunt numerum designare, propter quaternationem ipsorum dicunt factum. Octonationem rursus ostendi sic: in octavo dierum formatum dicunt hominem. Aliquando enim volunt eum sexto die factum, aliquando autem in octavo, nisi forte choicum quidem in sexto dierum dicunt formatum, carnalem autem in octavo: distincta sunt enim haec apud eos. Quidam autem et alterum esse volunt qui secundum imaginem et similitudinem Dei factus est homo masculo foemineus, et hunc esse spiritalem: alterum autem qui ex terra plasmatus sit. Et arcae autem dispositionem in cataclysmo, in qua octo homines liberati sunt, manifestissime dicunt ogdoadem [salutarem] ostendere. Hoc autem idem et David, cum octavus esset genitus inter fratres suos, significare. Adhuc etiam et circumcisionem, quae octavo die fit, circumcisionem superioris ogdoadis manifestare. Et omnino quaecunque inveniuntur in Scripturis obduci posse ad numerum octavum, mysterium ogdoadis adimplere dicunt. Sed et decadem significari per decem gentes, quas promisit Deus Abrahae in possessionem dare, dicunt: et dispositio quae est secundum Saram, quomodo post decem annos dat ei ancillam suam Agar, ut ex ea filium faciat, idem significare. Et servus autem Abraham missus ad Rebeccam, et super puteum dans ei armillas aureorum decem, et fratres ejus tenentes eam in dies decem, adhuc etiam Jeroboam, qui decem sceptra accepit, et tabernaculi decem atria, et columnae decem cubitorum, et decem filii Jacob ad emptionem tritici prima vice in Aegyptum missi, et decem Apostoli, quibus manifestatur post resurrectionem Dominus, cum Thomas non esset praesens, invisibilem defigurabant secundum eos decadem.

11.3

열두 무리에서는 결함이 겪은 수난의 신비가 일어났으며, 그 수난에서 보이는 것들이 만들어졌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 열두 무리가 곳곳에 뚜렷하고도 매우 분명하게 놓여 있다고 말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 그들에게서 나온 열두 지파, 열두 돌을 지닌 화려한 로기온(흉패), 열두 방울, 모세가 산 아래 세운 열두 돌, 마찬가지로 여호수아가 강 가운데 세운 돌들과, 건너편에 세운 다른 돌들, 언약궤를 메는 이들, 송아지를 번제로 바칠 때 엘리야가 놓은 돌들, 사도들의 수, 그 밖에 열둘이라는 수를 유지하는 모든 것이, 자기들의 열두 무리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이 모든 것의 통일, 서른 무리라고 불리는 것을, 노아 때에 높이가 서른 규빗이었던 그 방주를 통해, 사울을 기대어 앉게 한 사무엘을 통해, ... 서른 날 동안 들에 숨어 있던 이를 통해, 그와 함께 동굴에 들어간 이들을 통해, 거룩한 성막의 길이가 서른 규빗이었다는 것을 통해 나타낸다. 이 수와 같은 다른 것들이 발견되면, 이런 주장들로 자기들의 서른 무리를 드러낸다.

Duodecadem autem, erga quam et mysterium passionis Labis fuisse, ex qua passione visibilia fabricata esse volunt, signanter et manifestissime positam ubique dicunt: ut duodecim filios Jacob, ex quibus duodecim quoque tribus, et logion varium duodecim habens lapides, et duodecim tintinnabula, et eos qui a Moyse positi sunt sub monte duodecim lapides, similiter autem et eos qui a Jesu in flumine positi sunt, et alteros qui trans positi sunt, et portantes arcam testamenti, et eos qui ab Helia positi sunt in holocausto vituli, et numerum quoque Apostolorum, et omnia omnino quaecunque duodecim numerum custodiunt, duodecadem ipsorum significare volunt. Horum autem unitatem omnium, quae vocatur triacontas, per eam arcam, cujus triginta cubitis altitudo fuit sub Noe, et per Samuelem declinantem Saul, ..... qui triginta diebus abscondebatur in agro, et per eos qui cum eo intraverunt in speluncam, et propter id quod longitudo fuerit sancti tabernaculi triginta cubitorum. Et quaecunque alia aequalia numeris his inveniuntur, triacontadem ipsorum per hujusmodi ostendunt asseverationes.

12장

나는 여기에 다음 내용도 덧붙일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는 그들의 첫 아버지에 관하여, 성경에서 골라 내어, 그들이 설득하려 애쓰는 내용들이다. 이 우주를 만드신 분 외에, 우리 주님께서 다른 아버지를 선포하셨음을 보이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은 만드신 분을 불경하게 모독하며, 결함의 열매라고 말한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가, “이스라엘은 나를 알지 못했고, 백성은 나를 깨닫지 못했다”고 한 말을, 보이지 않는 뷔토스를 모른다는 뜻으로 끼워 맞춘다. 호세아에서 말한,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다”는 말도, 같은 뜻으로 끌어가려 한다. “깨닫는 이도, 하나님을 찾는 이도 없다. 모두 빗나갔고, 함께 쓸모없게 되었다”는 말도, 뷔토스에 대한 무지에 연결한다.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 “하나님을 보고도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도, 그를 가리킨다고 설득한다. 그들은 만드신 분은 예언자들에게 보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 “하나님을 보고도 살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말은, 보이지 않고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위대함을 두고 한 말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말씀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 만물을 만드신 분에 관하여 하신 말씀임은, 우리 모두에게 분명하다. 이것이 그들이 지어낸 뷔토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데미우르고스에 관한 말씀이며, 그분 자신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심을, 논의를 이어 가면서 밝힐 것이다. 다니엘도 같은 것을 나타낸다고 그들은 말한다. 자기가 알지 못하기에, 천사에게 비유들의 풀이를 물었다는 것이다. 천사도 그에게서 뷔토스의 큰 신비를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다니엘아, 돌아가라. 깨닫는 이들이 깨닫고, 흰 이들이 희어질 때까지, 이 말들은 닫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흰 이들이며 깨닫는 이들이라고 자랑한다.

Necessarium autem duxi addere iis, et quanta de Propatore ipsorum, qui incognitus erat omnibus ante adventum Christi, eligentes de Scripturis suadere contendunt, ut ostendant Dominum nostrum alterum annunciare Patrem praeter fabricatorem hujus universitatis: quem (sicut praediximus) impie blasphemantes, Labis fructum esse dicunt. Prophetam igitur Esaiam dicentem; Israel me autem non cognovit, et populus me non intellexit, invisibilis Bythi ignorantiam dixisse coaptant. Et in Osee quod dictum est: Non est in eis veritas, neque agnitio Dei, in hoc idem tendere conantur. Et, Non est intelligens aut requirens Deum: Omnes declinaverunt, simul inutiles facti sunt, in Bythi ignorantia apponunt. Et per Moysen autem dictum; Nemo videbit Deum, et vivet; in illum habere suadent relationem. Et fabricatorem quidem a prophetis visum dicunt: illud autem quod scriptum est, Nemo videbit Deum et vivet, de invisibili magnitudine et incognita omnibus dictum volunt. Et quoniam quidem de invisibili Patre factore omnium dictum est, Nemo videbit Deum, omnibus nobis manifestum est: quoniam autem non de hoc qui ab iis adinventus est Bythus, sed de Demiurgo, et ipse est invisibilis Deus, ostenditur procedente sermone. Et Danielem autem hoc idem significare, in eo quod interrogat angelum absolutiones parabolarum, quasi non scientem. Sed et angelum abscondentem ab eo magnum mysterium Bythi, dicere ei: Recurre Daniel: hi enim sermones obstructi sunt, quoadusque intellectores intelligant, et albi inalbentur: et seipsos esse albos et intellectores gloriantur.

13.1

이에 더하여, 자기들이 지어낸 외경과 허위 문헌을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이 가져와, 분별없는 이들과, 진리의 글들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거짓 이야기도 끌어들인다. 주님께서 어릴 때, 글자를 배우고 계셨는데, 으레 하듯이, 그의 스승이 “알파라고 말해 보아라”라고 말하자, “알파”라고 답하셨다는 것이다. 다시 스승이 베타라고 말하라고 명하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고 한다. “당신이 먼저 알파가 무엇인지 내게 말해 주십시오. 그러면 내가 베타가 무엇인지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그분만이 알려지지 않은 이를 알았고, 알파라는 모형으로 그를 드러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Super haec autem inenarrabilem multitudinem apocryphorum et perperum scripturarum, quas ipsi finxerunt, afferunt ad stuporem insensatorum, et quae sunt veritatis non scientium literas. Assumunt autem in hoc et illam falsationem, quasi Dominus cum puer esset, et disceret literas, cum dixisset magister ejus, quemadmodum in consuetudine est, Dic Α, responderit Α. Rursum cum magister jussisset dicere Β, respondisse Dominum: Tu prior dic mihi quid est Α, et tunc ego dicam tibi quid est Β. Et hoc exponunt, quasi ipse solus incognitum scierit, quod manifestavit in typo Α.

13.2

복음서에 적힌 것들 가운데 일부도 이런 방식으로 바꾸어 놓는다. 열두 살 때, 자기 어머니에게 하신 대답이 그 예이다. “내가 내 아버지께 속한 것들 가운데 있어야 함을 알지 못합니까?” 그들은 말한다. 그들이 알지 못하던 아버지를 그들에게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열두 지파에게 제자들을 보내어,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선포하게 하셨다고 한다. “선한 선생님”이라고 말한 사람에게, 참으로 선하신 하나님을 고백하며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한 분,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시다.” 여기서 하늘들이라고 불린 것은 아이온들이라고 말한다. 또 이 때문에, “무슨 능력으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그에게 말한 이들에게,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어 그들을 당황하게 하셨다고 한다. 말씀하지 않으심으로, 아버지가 말로 나타낼 수 없는 분임을 보이셨다고 해석한다. 또 이렇게 하신 말씀도 있다. “나는 이 말들 가운데 하나를 듣고 싶었던 적이 많았으나, 내게 말해 줄 사람이 없었다.” 이 하나라는 말로, 그들이 알지 못했던 참으로 한 분이신 하나님을 드러내셨다고 그들은 말한다. 또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셨을 때, 그 성을 두고 우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것들을 알았더라면! 그러나 그것들은 네게 감추어졌다.” 이 감추어졌다는 말로, 뷔토스의 숨겨진 성질을 드러내셨다고 한다.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수고하며 짐을 진 모든 이들아, 내게 오너라. 내게 배워라.” 진리의 아버지를 선포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이 모르던 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들의 증거이며, 자기 규범의 마무리와도 같은 것으로, 그들은 다음 말씀을 가져온다. “아버지, 땅과 하늘의 주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이들에게서 이것들을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아버지, 아버지 앞에서 그렇게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내게 맡겨졌습니다. 아버지를 아는 이는 아들뿐이며, 아들을 아는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계시해 준 이뿐입니다.” 이 말씀들로 그분이 다음 사실을 매우 분명하게 드러내셨다고 그들은 말한다. 곧, ... 그분이 오시기 전에는, 아무도 진리의 아버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만드신 분과 창조주는 언제나 모두에게 알려져 있었다는 듯이, 그들은 끼워 맞추려 한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대상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던 아버지이며, 자기들이 바로 그분을 선포한다고 한다.

Quaedam autem eorum quae in Evangelio posita sunt, in hunc characterem transfigurant. Sicut illud quod ad matrem suam, duodecim annorum exsistens, respondit dicens: Non scitis quoniam in his quae Patris mei sunt oportet me esse? Hunc quem non sciebant, dicunt, Patrem annunciabat eis: et propter hoc emisisse discipulos in duodecim tribus, annunciantes ignotum eis Deum. Et ei qui dixisset illi; Magister bone, eum, qui vere bonus esset Deus, confessum esse respondentem: Quid me dicis bonum? unus est bonus, Pater in coelis. Coelos autem nunc Aeonas dictos dicunt. Et propter hoc non respondisse eis, qui ei dixerunt, In qua virtute hoc facis? sed e contrario interrogatione sua consternasse eos, inenarrabile Patris, in eo quod non dixerit, ostendisse eum interpretantur. Sed et in eo quod dixerit: Saepius concupivi audire unum ex sermonibus istis, et non habui qui diceret mihi, manifestantis dicunt esse per hoc unum, eum qui sit vere unus Deus, quem non cognoverint. Adhuc in eo quod appropinquans ad Hierusalem ploraverit super eam, et dixerit: Si cognosses et tu hodie quae sunt ad pacem, abscondita autem sunt a te, per eum sermonem qui est absconditus, apocryphon Bythi manifestasse. Et iterum dicentem, Venite ad me omnes qui laboratis et onerati estis, discite a me, veritatis Patrem annunciasse. Quod enim nesciebant, inquiunt, hoc eis promisit se docturum. Ostensionem autem superiorum, et velut finem regulae suae afferunt haec: Confiteor tibi Pater Domine terrae et coelorum, quoniam abscondisti ea a sapientibus et prudentibus, et revelasti ea parvulis. Ita Pater meus, quoniam in conspectu tuo placitum factum est. Omnia mihi tradita sunt a Patre: et nemo cognovit Patrem nisi Filius, et Filium nisi Pater, et cuicunque Filius revelaverit. In his enim manifestissime (aiunt) ostendisse eum, quod ..... ante adventum ejus nemo manifeste cognoverit Patrem veritatis: et aptare volunt, quod quasi fabricator et conditor semper ab omnibus cognitus sit: et haec Dominum dixisse de incognito omnibus Patre, quem ipsi annuntiant.

14.1

그들의 구속 전승은 보이지도 않고 붙잡을 수도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붙잡을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것들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정하지 않아, 간단히,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다. 그들 저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 전승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견해를 가르치는 신비의 집전자들이 있는 만큼, 구속의 방식들도 있다. 하나님께로 거듭나게 하는 세례를 부정하고, 믿음 전체를 저버리도록, 사탄이 이런 방식을 도입했다는 것을, 그들을 논박하면서, 더 알맞은 자리에서 설명하겠다. 완전한 지식을 받은 이들에게는 이 구속이 필요하다고 그들은 말한다. 모든 것 위에 있는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플레로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구속이 뷔토스의 깊이로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나타나신 예수의 세례는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며, 그에게 내려온 영의 구속은 완전함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앞의 것은 혼에 속하고, 뒤의 것은 영에 속한다고 단언한다. 요한이 전한 세례는 회개를 위한 것이고,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구속은 완전함을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이것을 두고 그분이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야 할 다른 세례가 있고, 나는 그것을 향해 몹시 서두른다.”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가, 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오른쪽과 왼쪽에 자기 아들들을 앉혀 달라고 청했을 때에도, 주님께서 그 아들들에게 이 구속을 더하셨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바울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아주 자주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자기들이 전하는 구속이라는 것이다. 다양하고 서로 어긋나게 전하는 그 구속이다.

Redemptionis autem ipsorum traditionem evenit invisibilem esse et incomprehensibilem: videlicet cum sit incomprehensibilium et invisibilium mater. Et propter hoc cum sit instabilis, non simpliciter, neque uno sermone referendum est: quoniam unusquisque illorum, quemadmodum ipsi volunt, tradunt eam. Quanti enim sunt hujusmodi sententiae mystici antistites, tot sunt et redemptiones. Et quia ad negationem baptismatis ejus quae est in Deum regenerationis, et universae fidei destitutionem, submissa est species haec a Satana, arguentes eos referemus aptiori loco. Dicunt autem eam necessariam esse iis qui perfectam agnitionem acceperunt, ut in eam quae est super omnia virtus, sint regenerati. Aliter enim nobis impossibile esse intra Pleroma introire, quoniam haec est quae in profundum Bythi deducit secundum eos. Et baptisma quidem apparentis Jesu in remissionem esse peccatorum, redemptionem autem esse ejus qui in eo descenderit spiritus ad perfectionem: et illud quidem animale, illam autem spiritalem esse repromittunt. Et baptisma quidem a Joanne annuntiatum in poenitentiam, redemptionem autem ejus qui in eo est Christi, positam esse ad perfectionem: et hoc esse de quo dicit: Aliud baptisma habeo baptizari, et valde propero ad illud. Sed et filiis Zebedaei, matre ipsorum postulante, ut sedere faceret eos a dextris et a sinistris cum eo in regno, hanc apposuisse redemptionem Dominum dicunt, dicentem: Potestis baptismum baptizari, quod ego habeo baptizari? Et Paulum manifeste dicunt eam, quae sit in Christo Jesu, redemptionem saepissime ostendisse: et esse hanc eam quae ab ipsis varie et inconsonanter traditur.

14.2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혼인을 위한 방을 마련하고, 입문하는 이들에게, 어떤 불경한 말들과 함께, 신비 의식 같은 것을 행한다. 위의 짝들의 결합을 본떠, 자기들이 행하는 일이 영적인 혼인이라고 말한다. 다른 이들은 물로 데려가, 세례를 주며 이렇게 말한다.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만물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만물의 어머니인 진리에게로, 예수 [안으로] 내려오신 이에게로, 결합과 [구속과] 권능들과의 교제에 이르도록.” 다른 이들은 히브리어 이름들도 소리 내어 말한다. 입문하는 이들을 놀라게 하거나 두렵게 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 “바시마 카카바사 에아나아 이르라우미스타 디아르로아다 카에오타 바포보르 카멜란티.” 이 말들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모든 능력 위에 있는 것을 나는 부릅니다. 빛이라 불리고, 영이며, 생명인 것을 부릅니다. 당신께서 몸 안에서 왕으로 다스리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구속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모든 신성과 지배와 진리로부터 감추어진 이름, 나자렛 예수, 성령을 통해 살아 있는 이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가, 천사들의 구속을 위해, 빛의 띠들 가운데 입은 이름.” 회복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메시아 우파르 마그노 인 센칼디아 모소메다 에아아카 파로넵세하 예수 나자레네.” 이 말들의 풀이는 다음과 같다. “나는 그리스도의 영과, 마음과, 하늘 위에 있는 자비로운 능력을 나누지 않습니다. 진리의 구원자여, 당신의 이름을 누리게 하소서.” 이것들은 입문 의식을 행하는 이들이 말한다. 입문하는 이는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굳게 세워졌고, 구속받았습니다. 이 시대와, 그것에서 나온 모든 것으로부터, 이아오의 이름으로, 나는 내 혼을 구속합니다. 그는 자기 혼을 구속하여, 살아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그다음 곁에 있는 이들이 말한다. “이 이름이 머무는 모든 이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 뒤 입문한 이에게 발삼 향유를 바른다. 이 향유는 모든 것 위에 있는 향기로움의 모형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Quidam enim ex ipsis sponsale cubiculum quoddam adaptant, et quasi mysticum conficiunt cum quibusdam profanis dictionibus iis qui sacrantur, et spiritales nuptias dicunt esse id quod ab ipsis fit, secundum similitudinem supernarum conjugationum. Alii autem adducunt ad aquam, et baptizantes ita dicunt: In nomen incogniti Patris omnium, in veritatem matrem omnium, in descendentem [in] Jesum ad unitionem [et redemptionem] et communionem virtutum. Alii autem et Hebraica nomina superfantur, ut stupori sint, vel deterreant eos qui sacrantur, sic: Basyma cacabasa eanaa irraumista diarroada caëota bafobor camelanthi. Horum autem interpretatio est talis: Hoc quod est super omnem virtutem Patris invoco, quod vocatur lumen, et spiritus, et vita, quoniam in corpore regnasti. Alii autem rursus redemptionem profantur sic: Nomen quod absconditum est ab universa deitate, et dominatione, et veritate, quod induit Jesus Nazarenus in zonis luminis, Christus Dominus viventis per Spiritum sanctum in redemptionem angelicam. Nomen quod est restaurationis: Messia ufar magno in senchaldia mosomeda eaacha faronepseha Jesu Nazarene. Et horum interpretatio est talis: Christi non divido spiritum, cor, et supercoelestem virtutem misericordem: fruar nomine tuo Salvator veritatis. Et haec quidem profantur ipsi qui sacrant. Qui autem sacratur respondet: Confirmatus sum, et redemptus sum, et redimo animam meam ab aeone hoc, et omnibus quae sunt ab eo in nomine Iao, qui redemit animam ejus in redemptionem in Christo vivente. Dehinc superfantur qui astant: Pax omnibus in quos hoc nomen requiescit. Post deinde ungunt sacratum opobalsamo. Unguentum enim hoc typum esse dicunt ejus suavitatis, quae sit super universa.

14.3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물로 데려가는 일이 쓸데없다고 말한다. 기름과 물을 함께 섞고, 앞서 말한 것들과 비슷한 어떤 불경한 말들을 하면서, 입문하는 이들의 머리에 그것을 붓는다. 이것이 구속이라고 주장한다. 그들도 발삼 향유를 바른다. 다른 이들은 이 모든 것을 물리치며, 말로 나타낼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능력의 신비를, 보이고 썩어 없어지는 피조물들을 통해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고, 몸도 없고 감각으로 느낄 수도 없는 것들을, 감각으로 느낄 수 있고 몸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위대함에 대한 앎 자체가 완전한 구속이라고 한다. 결함의 무지와 수난에서 생긴 것들에 관해서는, 앎을 통해 무지의 전체 상태가 해체되므로, 앎이 속사람의 구속이 된다고 한다. 그 구속은 몸에 속한 것도 아니다. 몸은 썩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혼에 속한 것도 아니다. 혼도 결함에서 나왔고, [또] 영의 거처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속도 영에 속해야 한다고 한다. 영적인 속사람이 앎을 통해 구속받으며, 그들에게는 만물에 관한 앎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참된 구속이라고 한다.

Quidam autem eorum adducere quidem ad aquam supervacuum esse dicunt; admiscentes autem oleum et aquam in unum, cum quibusdam prophanis dictionibus, similibus quae praediximus, mittunt super eorum caput qui sacrantur: et hoc esse redemptionem volunt. Ungunt autem et ipsi opobalsamo. Alii autem haec omnia recusantes, dicunt, non oportere inenarrabilis et invisibilis virtutis mysterium per visibiles et corruptibiles perfici creaturas: et ea quae mente concipi non possunt, et incorporalia, et insensibilia, per sensibilia et corporalia. Esse autem perfectam redemptionem, ipsam agnitionem inenarrabilis magnitudinis. Ea enim quae sunt de ignorantia labis et passione facta, per agnitionem dissolvi universum ignorantiae statum, uti sit agnitio redemptio interioris hominis. Et neque corporalem esse eam; corruptibile enim est corpus: neque animalem, quoniam et anima de labe est, [et] spiritus velut habitaculum: spiritalem ergo oportere et redemptionem esse. Redimi enim per agnitionem interiorem hominem spiritalem, et sufficere eis universorum agnitionem: et hanc esse redemptionem veram.

14.4

또 다른 이들은 죽음의 마지막 때에 죽은 이들을 구속한다. 그들의 머리에 기름과 물을, 또는 앞서 말한 향유와 물을 붓고, 앞서 말한 기원들을 함께 한다. 지배자들과 권세들에게 붙잡히지도 보이지도 않게 하고, 그들의 속사람이 보이지 않는 것들 위로 올라가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몸은 세상의 피조물들 가운데 남겨지고, 혼은 데미우르고스에게 내던져지는 것처럼 된다고 한다. 죽은 뒤, 권세들에게 이르렀을 때,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라고 가르친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온 아들, 그전에 계셨던 아버지에게서 온 아들이며, 그전에 계셨던 이 안의 아들이다. 나에게 속한 것과 남에게 속한 모든 것을 보러 왔다. 그렇다고 완전히 남의 것은 아니다. 아카모트의 것들이다. 아카모트는 여성이며, 이것들을 자기를 위해 만들었다. 그는 그전에 계셨던 이에게서 혈통을 이어받았다. 나는 내가 왔던 나의 곳으로 다시 간다.” 이 말을 하면 권세들을 벗어나 달아난다고 한다. 데미우르고스 주위에 있는 이들에게도 가서,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나는 귀한 그릇이다. 너희를 만든 여성보다 더 귀하다. 너희 어머니가 자기 뿌리를 모를지라도, 나는 나 자신을 알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안다. 썩지 않는 소피아를 나는 부른다. 그는 아버지 안에 있으며, 너희 어머니의 어머니이다. 너희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도, 남성인 짝도 없다. 여성에게서 태어난 여성이 너희를 만들었는데, 자기 어머니도 모르고, 자기 혼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머니의 어머니를 부른다.” 데미우르고스 주위에 있는 이들이 이 말을 듣고, 크게 혼란스러워하며, 자기들의 뿌리와, 어머니의 계보를 책망한다고 한다. 입문한 이들은 자기들의 매듭을, 곧 혼을 내던지고, 자기들의 곳으로 간다고 한다. 그들의 구속에 관하여 우리에게 전해진 것은 이것들이다. 그들은 서로 달라, 가르침도, 전승도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 새로 등장했다고 알려진 이들은, 날마다 새로운 것을 고안하고, 아무도 생각한 적 없는 것을 열매로 내놓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이의 견해를 기술하기는 어렵다.

Alii sunt qui mortuos redimunt ad finem defunctionis, mittentes eorum capitibus oleum et aquam, sive praedictum unguentum cum aqua, et cum supradictis invocationibus, ut incomprehensibiles et invisibiles principibus et potestatibus fiant, et ut superascendat super invisibilia interior ipsorum homo, quasi corpus quidem ipsorum in creatura mundi relinquatur, anima vero projiciatur Demiurgo. Et praecipiunt eis venientibus ad potestates haec dicere, posteaquam mortui fuerint: Ego filius a Patre, Patre qui ante fuit, filius autem in eo qui ante fuit. Veni autem videre omnia quae sunt mea et aliena; non autem aliena in totum, sed sunt Achamoth, quae est foemina, et haec sibi fecit: deducit enim genus ex eo qui ante fuit, et eo rursus in mea unde veni. Et haec dicentem evadere et effugere potestates dicunt. Venire quoque ad eos qui sunt circa Demiurgum, et dicere eis: Vas ego sum pretiosum, magis quam foemina quae fecit vos. Si mater vestra ignorat radicem suam, ego autem novi meipsum, et scio unde sim, et invoco incorruptibilem Sophiam, quae est in Patre, mater autem est matris vestrae, quae non habet patrem, neque conjugem masculum; foemina autem a foemina nata effecit vos, ignorans et matrem suam, et putans seipsam esse solam: ego autem invoco ejus matrem. Haec autem eos qui circa Demiurgum sunt audientes, valde conturbari, et reprehendere suam radicem, et genus matris: ipsos autem abire in sua, projicientes nodos ipsorum, id est animam. Et de redemptione quidem ipsorum haec sunt quae quidem in nos venerunt. Cum autem discrepent ab invicem et doctrina, et traditione, et qui recentiores eorum agnoscuntur, affectant per singulos dies novum aliquid adinvenire, et fructificare quod nunquam quisquam excogitavit, durum est omnium describere sententias.

15장

우리는 진리의 규범을 붙들고 있다. 곧, 한 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이 자기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갖추어 주시고, 존재하지 않던 것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 “주님의 말씀으로 하늘이 굳게 세워졌고, 그의 입의 영으로 하늘의 모든 군대가 세워졌다.” 또 이렇게 말한다. “모든 것이 그를 통해 생겨났으며, 그 없이는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았다.” (만물 가운데 어느 것도 제외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를 통해 모든 것을 만드셨다. 보이는 것들이든, 보이지 않는 것들이든,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든, 이해로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든, 어떤 경륜에 따라 시간에 속하는 것들이든, 영속하는 것들이든 그러하다.) 천사들을 통해 하신 것이 아니며, 그분의 생각에서 떨어져 나간 어떤 능력들을 통해 하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만물 가운데 어느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자기 말씀과 영을 통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질서를 세우시고, 다스리시며,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신다. 이분이 세상을 만드셨다. 세상도 만물 가운데 속하기 때문이다. 이분이 사람을 빚으셨으며, 이분이 아브라함의 하나님, [또]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그분 위에는 다른 하나님도, 근원도, 능력도, 플레로마도 없다. 우리가 밝히겠지만, 이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다. 그러므로 이 규범을 붙들면, 그들이 아무리 다양하고 많은 말을 하더라도, 그들이 진리에서 벗어났음을 쉽게 논박할 수 있다. 거의 모든 이단이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말하면서도, 악한 견해로 그것을 바꾸어 버린다. 자기들을 만드신 분께 감사하지 않는 것이다. 이방인들이 우상숭배로 그러는 것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이 빚으신 것을 멸시하며, 자기들의 구원에 맞서고, 자신을 가장 가혹하게 고발하는 자이며, 거짓 증인이 된다. 그들이 원하지 않더라도, 육신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다. 죽은 이들 가운데서 자기들을 일으키시는 분의 능력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들의 불신앙 때문에, 의로운 이들 가운데 함께 헤아려지지는 않을 것이다. 모든 이단을 향한 폭로와 논박은 다양하고 여러 갈래이며, 우리는 그들 모두를 각자의 성격에 따라 반박하고자 한다. 그래서 먼저 그들의 샘과 뿌리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들의 지극히 높은 뷔토스를 앎으로써, 이런 열매들이 나온 나무를 그대가 이해하게 하려는 것이다.

Cum teneamus autem nos regulam veritatis, id est, quia sit unus Deus omnipotens, qui omnia condidit per Verbum suum, et aptavit, et fecit ex eo, quod non erat, ad hoc ut sint omnia, quemadmodum Scriptura dicit: Verbo enim Domini coeli firmati sunt, et Spiritu oris ejus omnis virtus eorum. Et iterum: Omnia per ipsum facta sunt, et sine ipso factum est nihil. (Ex omnibus autem nihil subtractum est; sed omnia per ipsum fecit Pater, sive visibilia, sive invisibilia, sive sensibilia, sive intelligibilia, sive temporalia propter quandam dispositionem, sive aeonia) non per angelos, neque per virtutes aliquas abscissas ab ejus sententia: nihil enim indiget omnium Deus; sed per Verbum et Spiritum suum omnia faciens, et disponens, et gubernans, et omnibus esse praestans: hic qui mundum fecit, etenim mundus ex omnibus: hic qui hominem plasmavit, hic qui Deus Abraham, [et] Deus Isaac, et Deus Jacob, super quem alius Deus non est, neque initium, neque virtus, neque Pleroma: hic Pater Domini nostri Jesu Christi, quemadmodum ostendemus: hanc ergo tenentes regulam, licet valde varia et multa dicant, facile eos deviasse a veritate arguimus. Omnes enim fere quotquot sunt haereses, Deum quidem unum dicunt, sed per sententiam malam immutant, ingrati exsistentes ei, qui fecit eos, quemadmodum et gentes per idololatriam. Plasma autem Dei contemnunt, contradicentes suae saluti, ipsi sui accusatores amarissimi, et falsi testes exsistentes. Qui quidem resurgent in carne, licet nolint, uti agnoscant virtutem suscitantis eos a mortuis: cum justis autem non annumerabuntur, propter incredulitatem suam. Cum sit igitur adversus omnes haereticos detectio atque convictio varia et multifaria, et nobis propositum est omnibus iis secundum ipsorum characterem contradicere; necessarium arbitrati sumus prius referre fontem et radicem eorum, uti sublimissimum ipsorum Bythum cognoscens, intelligas arborem, de qua defluxerunt tales fructus.

16.1

사마리아 사람 시몬은 바로 그 마술사이다. 그에 관하여, 사도들의 제자이며 추종자인 누가가 말한다. “시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전부터 그 성에서 마술의 [기술]을 부리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미혹하고, 자기가 어떤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작은 이부터 큰 이까지 그의 말을 들으며, 말했다. ‘이 사람은 크다고 불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들은 그에게 주목했다. 오랫동안 자기 마술로 그들의 정신을 빼놓았기 때문이다.” 믿는 척했던 이 시몬은, 사도들도 병을 고치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마술로 행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복음으로 전하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이들을, 안수하여 성령으로 채우는 일도, 더 뛰어난 어떤 마술 지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의심했다. 자기가 원하는 누구에게든 성령을 주는 그 권한을 자기도 받으려고, 사도들에게 돈을 내놓았다가, 베드로에게 다음 말을 들었다. “네 돈이 너와 함께 멸망하기를! 하나님의 선물을 돈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일에서 네게는 몫도 배당된 자리도 없다. 네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지 않기 때문이다. 쓰디쓴 쓸개즙과, 불의의 결박 속에 네가 있는 것을 내가 본다.” 그 뒤에도 그는 하나님을 더욱 믿지 않았고, 자기도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보이려고, 사도들과 다투는 데 열을 올렸다. 마술 전체를 더욱 깊이 파고들어,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는 클라우디우스 황제 때에 있었으며, 마술 때문에 황제가 동상으로 그를 기렸다는 말도 있다. 이렇게 많은 이가 그를 하나님인 듯 영광스럽게 여겼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들 가운데 아들로 나타났고, 사마리아에는 아버지로 내려왔으며, 나머지 민족들에게는 성령으로 왔다고 가르쳤다. 자기가 가장 높은 능력이며, 곧 모든 것 위에 있는 아버지라고 했다.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부르든,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받아들였다.

Simon enim Samarites, magus ille, de quo discipulus et sectator Apostolorum Lucas ait: Vir quidam autem nomine Simon, qui ante erat in civitate, magicam exercens [artem], et seducens gentem Samaritanorum, dicens se esse aliquem magnum, quem auscultabant a pusillo usque ad magnum, dicentes: Hic est virtus Dei, quae vocatur magna. Intuebantur autem eum, propter quod multo tempore magicis suis dementasset eos. Hic igitur Simon, qui fidem simulavit, putans Apostolos et ipsos sanitates per magicam, et non virtute Dei perficere, et per impositionem manuum Spiritu sancto adimplere credentes Deo per eum, qui ab ipsis evangelizatur Christus Jesus, per majorem quandam magicam scientiam et hoc suspicans fieri, et offerens pecunias Apostolis, ut acciperet et ipse hanc potestatem quibuscunque velit dandi Spiritum sanctum, audivit a Petro: Pecunia tua tecum sit in perditionem, quoniam donum Dei existimasti pecunia possideri: non est tibi pars, neque sors in sermone hoc: cor enim tuum non est rectum coram Deo. In felle enim amaritudinis, et obligatione injustitiae video te esse. Et cum adhuc magis non credidisset Deo, et cupidus intendit contendere adversus Apostolos, uti et ipse gloriosus videretur esse, et universam magicam adhuc amplius inscrutans, ita ut in stuporem cogeret multos hominum: quippe cum esset sub Claudio Caesare, a quo etiam statua honoratus esse dicitur propter magicam. Hic igitur a multis quasi Deus glorificatus est, et docuit semetipsum esse qui inter Judaeos quidem quasi Filius apparuerit, in Samaria autem quasi Pater descenderit, in reliquis vero gentibus quasi Spiritus sanctus adventaverit. Esse autem se sublimissimam virtutem, hoc est eum qui sit super omnia Pater, et sustinere vocari se quodcunque eum vocant homines.

16.2

모든 이단이 그에게서 생겨난, 사마리아 사람 시몬의 종파는 이런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헬레나라는 여자를, 페니키아의 도시 티로에서, 매춘부로 있던 그 여자를 값을 치르고 데려와, 자기와 함께 다녔다. 그가 자기 정신의 첫 생각이며, 만물의 어머니라고 말했다. 처음에 그를 통해 마음속으로 천사들과 대천사들을 만들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이 엔노이아는 그에게서 뛰쳐나와, 자기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알고, 아래쪽으로 내려가, 천사들과 권세들을 낳았으며, 이들이 이 세상도 만들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들을 낳은 뒤, 그들의 질투 때문에, 엔노이아는 그들에게 붙잡혔다. 그들은 다른 누군가의 자식으로 여겨지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몬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엔노이아는 자기가 내보낸 권세들과 천사들에게 붙잡혀, 온갖 모욕을 당했다. 위에 있는 자기 아버지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침내 인간의 몸 안에 갇히기까지 했고, 여러 시대에 걸쳐,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옮겨 가듯, 다른 여자들의 몸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된 그 헬레나 안에도 엔노이아가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스테시코로스는 시로 그를 저주했다가,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 뒤 뉘우치고, 팔리노디아라고 부르는 시들을 써서, 그 시에서 그를 찬양하자,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엔노이아는 이렇게 몸에서 몸으로 옮겨 가며, 줄곧 모욕을 당하다가, 끝내 매춘 업소에서 몸을 팔게 되었으며, 그가 바로 잃은 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몬 자신이 와서, 먼저 그를 데려오고, 결박에서 풀어 주며, 자기를 아는 지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려 했다는 것이다. 천사들은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기를 탐하여, 세상을 잘못 다스렸다. 시몬은 이 일들을 바로잡으러 왔으며, 모습을 바꾸어 내려왔다고 한다. 능력들과 권세들과 천사들을 닮은 모습이 되어, 사람이 아니면서도, 사람들 가운데 사람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유대에서 고난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으나, 실제로 고난을 받지는 않았다고 한다. 예언자들은 세상을 만든 천사들에게 영감을 받아, 예언들을 말했으므로, 시몬과 그의 헬레나에게 희망을 둔 이들은 더 이상 예언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말고, 자유로운 이들로서 원하는 대로 행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시몬의 은혜를 따라 구원받으며, 의로운 행위에 따라 구원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행위들이 본성상 의로운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렇게 된다고 한다. 세상을 만든 천사들이 그렇게 정하여, 이런 명령들을 통해 사람들을 종살이로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이 풀려 없어지고, 자기에게 속한 이들이 세상을 만든 이들의 지배에서 해방되리라고 그는 약속했다.

Simon autem Samaritanus, ex quo universae haereses substiterunt, habet hujusmodi sectae materiam. Hic Helenam quandam, quam ipse a Tyro civitate Phoenices quaestuariam cum redemisset, secum circumducebat, dicens hanc esse primam mentis ejus conceptionem, matrem omnium, per quam in initio mente concepit angelos facere et archangelos. Hanc enim Ennoiam exsilientem ex eo, cognoscentem quae vult pater ejus, degredi ad inferiora, et generare angelos et potestates, a quibus et mundum hunc factum dixit. Posteaquam autem generavit eos, haec detenta est ab ipsis propter invidiam, quoniam nollent progenies alterius cujusdam putari esse. Ipsum enim se in totum ignoratum ab ipsis: Ennoian autem ejus detentam ab iis, quae ab ea emissae essent potestates, et angeli: et omnem contumeliam ab iis passam, uti non recurreret sursum ad suum patrem, usque adeo ut et in corpore humano includeretur, et per saecula veluti de vase in vas transmigraret in altera muliebria corpora. Fuisse autem eam et in illa Helena, propter quam Trojanum contractum est bellum; quapropter et Stesichorum per carmina maledicentem eam, orbatum oculis: post deinde poenitentem et scribentem eas, quae vocantur palinodias, in quibus hymnizavit eam, rursus vidisse. Transmigrantem autem eam de corpore in corpus, ex eo et semper contumeliam sustinentem, in novissimis etiam in fornice prostitisse: et hanc esse perditam ovem. Quapropter et ipsum venisse, uti eam assumeret primam et liberaret eam a vinculis, hominibus autem salutem praestaret per suam agnitionem. Cum enim male moderarentur Angeli mundum, quoniam unusquisque eorum concupisceret principatum, ad emendationem venisse rerum, et descendisse eum transfiguratum, et assimilatum Virtutibus, et Potestatibus, et Angelis, ut et in hominibus homo appareret ipse, cum non esset homo; et passum autem in Judaea putatum, cum non esset passus. Prophetas autem a mundi fabricatoribus Angelis inspiratos dixisse prophetias: quapropter nec ulterius curarent eos hi qui in eum et in Helenam ejus spem habeant, et ut liberos agere quae velint: secundum enim ipsius gratiam salvari homines, sed non secundum operas justas. Nec enim esse naturaliter operationes justas, sed ex accidenti; quemadmodum posuerunt qui mundum fecerunt Angeli, per hujusmodi praecepta in servitutem deducentes homines. Quapropter et solvi mundum, et liberari eos qui sunt ejus ab imperio eorum qui mundum fecerunt, repromisit.

16.3

그러므로 그들의 신비 의식을 맡은 제사장들은 음탕하게 살고, 저마다 할 수 있는 대로 마술을 행한다. 축귀와 주문을 사용한다. 사랑의 묘약과, 사람을 끌어당기는 주술과, 파레드로이와 오니로폼포이라고 불리는 것들과, 그 밖의 온갖 비술이 그들 사이에서 열심히 행해진다. 유피테르의 모습으로 만든 시몬의 형상과, 미네르바의 모습으로 만든 헬레나의 형상도 지니며, 이것들을 숭배한다. 그 지극히 불경한 견해의 시조 시몬에게서 이름을 받아, 시몬파라고 불린다. 그들에게서 거짓으로 지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 시작되었다. 이는 그들 자신의 주장에서도 알 수 있다.

Igitur horum mystici sacerdotes libidinose quidem vivunt, magias autem perficiunt, quemadmodum potest unusquisque ipsorum. Exorcismis et incantationibus utuntur. Amatoria quoque et agogima, et qui dicuntur paredri et oniropompi, et quaecunque sunt alia perierga apud eos studiose exercentur. Imaginem quoque Simonis habent factam ad figuram Jovis, et Helenae in figuram Minervae; et has adorant: habent quoque et vocabulum a principe impiissimae sententiae Simone, vocati Simoniani, a quibus falsi nominis scientia accepit initia, sicut ex ipsis assertionibus eorum adest discere.

17장

그의 후계자는 메난드로스였다. 사마리아 출신으로, 그 자신도 마술의 극치에 이르렀다. 그는 첫 능력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기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서 구원자로 보냄을 받은 이라고 했다. 세상은 천사들이 만들었으며, 그 천사들도 시몬이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엔노이아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세상을 만든 바로 그 천사들을 이길 수 있도록, 자기가 가르치는 마술을 통해, 지식을 준다고도 덧붙였다. 그의 제자들은 그를 향한 세례를 통해 부활을 받으며, 이제 더 이상 죽을 수 없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채로 계속 존재한다고 한다.

Hujus successor fuit Menander, Samarites genere, qui et ipse ad summum magiae pervenit. Qui primam quidem virtutem incognitam ait omnibus; se autem eum esse, qui missus sit ab invisibilibus Salvatorem pro salute hominum. Mundum autem factum ab Angelis; quos et ipse similiter ut Simon, ab Ennoia emissos dicit. Dare quoque per eam, quae a se doceatur, magicam scientiam addidit, ut et ipsos qui mundum fecerunt, vincat Angelos. Resurrectionem enim per id quod est in eum baptisma accipere ejus discipulos, et ultra non posse mori, sed perseverare non senescentes et immortales.

18장

다프네 근처의 안티오키아 출신 사투르니누스와, 바실리데스는, 이들에게서 계기를 얻어, 서로 다른 가르침을 내놓았다. 한 사람은 시리아에서, 다른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했다. 사투르니누스는 메난드로스처럼,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한 아버지를 제시했다. 그 아버지가 천사들, 대천사들, 능력들, 권세들을 만드셨다고 한다. 어떤 일곱 천사가 세상과 그 안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람도 천사들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위의 가장 높은 권세에게서 빛나는 형상이 나타났을 때, 그 형상은 곧바로 위로 돌아갔으므로, 천사들은 그것을 붙잡아 둘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격려하며 말했다. “형상과 닮음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사람이 만들어졌으나, 천사들의 무력함 때문에, 그 빚어진 것은 일어설 수 없었고, 작은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자기를 닮게 만들어졌으므로, 위의 능력은 그를 불쌍히 여겨, 생명의 불꽃을 보냈다. 그 불꽃이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마디들을 갖추어 주고, 살게 했다는 것이다. 이 생명의 불꽃은 죽은 뒤, 자기와 같은 종류에 속한 것들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나머지는 그것들이 만들어진 재료들로 풀려 돌아간다. 구원자는 태어나지 않았으며, 몸이 없고, 형체도 없으며, 사람으로 보였을 뿐이라고 그는 제시했다. 유대인들의 하나님은 천사들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모든 지배자가 그의 아버지를 없애려 했기에,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무너뜨리고, 자기를 믿는 이들을 구원하려고 왔다고 한다. 그 믿는 이들은 그의 생명의 불꽃을 지닌 이들이다. 이 사람이 처음으로 천사들이 두 종류의 사람을 빚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악하고, 다른 하나는 선하다는 것이다. 귀신들이 악한 이들을 도왔기에, 구원자가 와서, 악한 사람들과 귀신들을 없애고, 선한 이들을 구원하려 했다고 한다. 그들은 혼인과 출산이 사탄에게서 나왔다고 말한다. 그에게 속한 이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동물성 음식도 삼가며, 이런 꾸며 낸 절제로 많은 이를 미혹한다. 예언들 가운데 어떤 것은 세상을 만든 천사들이 말했고, 어떤 것은 사탄이 말했다고 한다. 그는 사탄도 세상을 만든 이들에게 대적하는 천사이며, 특히 유대인들의 하나님에게 대적한다고 제시했다.

Ex iis Saturninus, qui fuit ab Antiochia ea quae est apud Daphnen, et Basilides, occasiones accipientes, distantes doctrinas ostenderunt; alter quidem in Syria, alter vero in Alexandria. Saturninus quidem similiter ut Menander, unum Patrem incognitum omnibus ostendit, qui fecit Angelos, Archangelos, Virtutes, Potestates. A septem autem quibusdam Angelis mundum factum, et omnia quae in eo. Hominem autem Angelorum esse facturam, desursum a summa potestate lucida imagine apparente, quam cum tenere non potuissent, inquit, eo quod statim recurrerit sursum, adhortati sunt semetipsos, dicentes: Faciamus hominem ad imaginem et similitudinem: qui cum factus esset, et non potuisset erigi plasma propter imbecillitatem Angelorum, sed quasi vermiculus scarizaret, miserantem ejus desuper Virtutem, quoniam in similitudinem ejus esset factus, emisisse scintillam vitae, quae erexit hominem, et articulavit, et vivere fecit. Hanc igitur scintillam vitae post defunctionem recurrere ad ea quae sunt ejusdem generis, dicit: et reliqua ex quibus facta sunt in illa resolvi. Salvatorem autem innatum demonstravit, et incorporalem, et sine figura, putative autem visum hominem. Et Judaeorum Deum unum ex Angelis esse ait: et propter hoc quod dissolvere voluerint Patrem ejus omnes principes, advenisse Christum ad destructionem Judaeorum Dei, et ad salutem credentium ei; esse autem hos, qui habent scintillam vitae ejus. Duo enim genera hic primus hominum plasmata esse ab Angelis dixit, alterum quidem nequam, alterum autem bonum. Et quoniam daemones pessimos adjuvabant, venisse Salvatorem ad dissolutionem malorum hominum et daemonum, ad salutem autem bonorum. Nubere autem et generare a Satana dicunt esse. Multi autem ex iis, qui sunt ab eo, et ab animalibus abstinent, per fictam hujusmodi continentiam seducentes multos. Prophetias autem quasdam quidem ab iis Angelis, qui mundum fabricaverint dictas; quasdam autem a Satana: quem et ipsum Angelum adversarium mundi fabricatoribus ostendit, maxime autem Judaeorum Deo.

19.1

바실리데스는, 더 높고 더 그럴듯한 것을 발견한 듯 보이려고, 자기 가르침의 내용을 한없이 늘였다. 먼저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에게서 누스가 태어나고, 누스에게서 로고스가 태어나며, 로고스에게서 프로네시스가, 프로네시스에게서 소피아와 뒤나미스가, 뒤나미스와 소피아에게서 능력들과 지배자들과 천사들이 나왔다고 제시한다. 그 천사들을 첫 천사들이라고도 부르며, 그들이 첫째 하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이들에게서 흘러나와 생긴 다른 이들이, 앞의 하늘과 닮은 또 다른 하늘을 만들었고, 같은 방식으로 그들에게서 흘러나와 또 다른 이들이 생겼을 때, [또] 그들은 자기들 위의 존재들과 대응하는 형상으로서, 다른 셋째 하늘을 만들었다고 한다. 셋째 하늘에서 아래로 내려가 넷째 하늘이 생겼고, 그 뒤로도 같은 방식으로, 다른 지배자들과 천사들이 계속 생겨났으며, 하늘들은 삼백육십오 개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해의 날수도 하늘의 수에 따라 그만큼 있다는 것이다.

Basilides autem, ut altius aliquid et verisimilius invenisse videatur, in immensum extendit sententiam doctrinae suae, ostendens Nun primo ab innato natum Patre, ab hoc autem natum Logon, deinde a Logo Phronesin, a Phronesi autem Sophiam et Dynamin, a Dynami autem et Sophia virtutes, et principes, et Angelos, quos et primos vocat, et ab iis primum coelum factum. Dehinc ab horum derivatione alios autem factos, aliud coelum simile priori fecisse, et simili modo ex eorum derivatione cum alii facti essent, [et] antitypi eis qui super eos essent, aliud tertium deformasse coelum: et a tertio deorsum descendentum quartum, et deinceps secundum eum modum alteros et alteros principes et angelos factos esse dicunt, et coelos ccclxv. Quapropter et tot dies habere annum secundum numerum coelorum.

19.2

우리에게도 보이는 맨 마지막 하늘을 차지한 천사들이, 세상 안의 모든 것을 구성하고, 땅을 자기들의 몫으로 나누었으며, 그 위의 민족들도 나누었다고 한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으로 여겨지는 이라고 한다. 나머지 민족들을 자기 백성, 곧 유대인들에게 복종시키려 했으므로, 다른 모든 지배자가 그에게 맞서 일어나 저항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머지 민족들도 그의 민족에게 반발했다. 태어나지 않았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아버지는, 그들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 자기의 맏아들 누스를 보냈다. 그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이이며, 그를 믿는 이들을 세상을 만든 이들의 권세에서 해방하려고 보냈다는 것이다. 그 권세들의 민족들에게, 그는 땅 위에서 사람으로 나타나, 능력을 행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고난을 받은 것은 그가 아니라, 강제로 동원된 키레네 사람 시몬이 그를 대신하여 그의 십자가를 졌다고 한다. 시몬은 그에 의해 모습이 바뀌어, 예수로 여겨지게 되었으며, 무지와 잘못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한다. 예수 자신은 시몬의 모습을 받아, 곁에 서서 그들을 비웃었다는 것이다. 그는 몸 없는 능력이며,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의 누스였기에, 원하는 대로 모습을 바꾸어, 그를 보내신 이에게 올라갔다. 그들을 조롱했으며, 붙잡힐 수 없었고,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아는 이들은 세상을 만든 지배자들에게서 해방되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힌 이를 고백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으로 여겨지고, 예수라고 불렸으며, 이 경륜을 통해 세상을 만든 이들의 작품들을 무너뜨리도록, 아버지에게 보냄을 받은 이를 고백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십자가에 못 박힌 이를 고백하면, 그는 아직 종이며, 몸들을 만든 이들의 권세 아래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그를 부인한 이는, 그들에게서 해방되었고,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의 경륜을 안다는 것이다.

Eos autem qui posterius continent coelum angelos, quod etiam a nobis videtur, constituisse ea quae sunt in mundo omnia, et partes sibi fecisse terrae, et earum quae super eam sunt gentium. Esse autem principem ipsorum eum, qui Judaeorum putatur esse Deus. Et quoniam hic suis hominibus, id est Judaeis, voluit subjicere reliquas gentes, reliquos omnes principes contra stetisse ei et contraegisse. Quapropter et reliquae resiluerunt gentes ejus genti. Innatum autem et innominatum Patrem, videntem perditionem ipsorum, misisse primogenitum Nun suum, et hunc esse qui dicitur Christus, in libertatem credentium ei a potestate eorum qui mundum fabricaverunt. Et gentibus ipsorum autem apparuisse eum in terra hominem, et virtutes perfecisse. Quapropter neque passum eum, sed Simonem quendam Cyrenaeum angariatum portasse crucem ejus pro eo: et hunc secundum ignorantiam et errorem crucifixum, transfiguratum ab eo, uti putaretur ipse esse Jesus: et ipsum autem Jesum Simonis accepisse formam, et stantem irrisisse eos. Quoniam enim Virtus incorporalis erat et Nus innati Patris, transfiguratum quemadmodum vellet, et sic ascendisse ad eum qui miserat eum, deridentem eos, cum teneri non posset, et invisibilis esset omnibus. Et liberatos igitur eos qui haec sciant a mundi fabricatoribus principibus: et non oportere confiteri eum qui sit crucifixus, sed eum qui in hominis forma venerit, et putatus sit crucifixus, et vocatus sit Jesus, et missus a Patre, uti per dispositionem hanc opera mundi fabricatorum dissolveret. Si quis igitur, ait, confitetur crucifixum, adhuc hic servus est, et sub potestate eorum qui corpora fecerunt: qui autem negaverit, liberatus est quidem ab iis, cognoscit autem dispositionem innati Patris.

19.3

그들의 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한다. 몸은 본성상 썩어 없어지기 때문이다. 예언들도 세상을 만든 지배자들에게서 왔다고 하며, 특히 율법은 그들의 우두머리에게서 왔다고 말한다. 그가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아무 두려움 없이 그것을 사용하고, 다른 행위들을 하는 것도, 모든 욕망을 따르는 것도 무관한 일로 여긴다고 한다. 이들 역시 마술과, 형상들과, 주문들과, 기원들과, 그 밖의 모든 비술을 사용한다. 천사들의 이름인 양 어떤 이름들을 지어내어, 이들은 첫째 하늘에 있고, 저들은 둘째 하늘에 있다고 선포한다. 그 뒤로도 지어낸 삼백육십오 하늘의 이름들과, 근원들과, 천사들과, 능력들을 설명하려 애쓴다. 마찬가지로, 그들이 말하기를 구원자가 그 안으로 내려오고 올라갔다는 세계의 이름이 카울라카우라고 한다. 그러므로 이것들을 배우고, 모든 천사들과, 그들의 원인을 아는 이는, 모든 천사와 권세들에게 보이지도 붙잡히지도 않게 되는데, 카울라카우도 그와 같았다고 한다. 아들이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그들 자신도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된다고 한다. 자기들은 모든 이를 알고, 모든 이를 통과해 가면서도, 자기들 자신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한다. “너는 모든 이를 알아라. 그러나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하게 하라.” 이런 이들은 따라서 부인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오히려 그 이름 때문에 고난을 받을 수도 없다고 한다. 모든 이와 비슷하게 지내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이것들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천 명 가운데 하나, 만 명 가운데 둘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은 이제 유대인도 아니며, 아직 그리스도인도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들의 신비를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고, 침묵하여 감추어 두어야 한다고 한다.

Animae autem eorum soli esse salutem; corpus enim natura corruptibile exsistit. Prophetias autem et ipsas a mundi fabricatoribus fuisse ait principibus, proprie autem legem a principe ipsorum, eum qui eduxerit populum de terra Aegypti. Contemnere autem et idolothyta et nihil arbitrari, sed sine aliqua trepidatione uti eis: habere autem et reliquarum operationum usum indifferentem, et universae libidinis. Utuntur autem et hi magia, et imaginibus, et incantationibus, et invocationibus, et reliqua universa periergia: nomina quoque quaedam affingentes quasi Angelorum, annuntiant hos quidem esse in primo coelo, hos autem in secundo: et deinceps nituntur ccclxv. ementitorum coelorum et nomina, et principia, et angelos, et virtutes exponere. Quemadmodum et mundus nomen esse, in quo dicunt descendisse et ascendisse Salvatorem, esse Caulacau. Igitur qui haec didicerit, et Angelos omnes cognoverit, et causas eorum, invisibilem et incomprehensibilem eum angelis et potestatibus universis fieri, quemadmodum et Caulacau fuisse. Et sicut filium incognitum omnibus esse, sic et ipsos a nemine oportere cognosci; sed cum sciant ipsi omnes, et per omnes transeant, ipsos omnibus invisibiles et incognitos esse. Tu enim, aiunt, omnes cognosce, te autem nemo cognoscat. Quapropter et parati sunt ad negationem qui sunt tales, imo magis ne pati quidem propter nomen possunt, cum sint omnibus similes. Non autem multos scire posse haec, sed unum a mille, et duo a myriadibus. Et Judaeos quidem jam non esse dicunt, Christianos autem nondum: et non oportere omnino ipsorum mysteria effari, sed in abscondito continere per silentium.

19.4

점성가들과 같은 방식으로, 삼백육십오 하늘의 장소와 위치를 나눈다. 그들의 이론들을 받아들여, 자기들의 가르침에 맞게 옮긴 것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아브락사스(ἀβράξας)이며, 그 때문에 이 이름 안에 삼백육십오라는 수가 들어 있다고 한다.

Trecentorum autem sexaginta quinque coelorum locales positiones distribuunt similiter ut Mathematici. Illorum enim theoremata accipientes, in suum characterem doctrinae transtulerunt: esse autem principem illorum ἀβράξας, et propter hoc ccclxv. numeros habere in se.

20.1

카르포크라테스와 그를 따르는 이들은, 세상과 그 안의 것들이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보다 훨씬 낮은 천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예수는 요셉에게서 태어났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같았으나, 다음 점에서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고 한다. 그의 혼이 굳세고 깨끗하여, 태어나지 않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그 순환 가운데서 자기가 보았던 것들을 기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에게서 그에게 능력이 보내져, 세상을 만든 이들을 벗어날 수 있게 하고, 그 혼이 모든 이를 통과하여,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져, 하나님께 올라가게 했다고 한다. 그 혼과 비슷한 것들을 품은 이들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그들은 예수의 혼이 유대인들의 관습 속에서 자랐으나, 그들을 업신여겼으며, 그 때문에 능력들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 능력들로 형벌이 되어 사람들 안에 있던 고통들을 없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이 예수의 혼처럼, 세상을 만든 지배자들을 업신여길 수 있으면, 같은 일을 행할 능력을 마찬가지로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우쭐해져, 어떤 이들은 자기가 예수와 같다고 말하며, 어떤 이들은 어떤 점에서 예수보다 더 강하다고도 말한다. 어떤 이들은 그의 제자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하니, 곧 베드로와 바울과 나머지 사도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도들도 예수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고 여긴다. 자기들의 혼도 같은 순환에서 내려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만든 이들을 업신여기므로, 같은 능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인정받으며, 다시 같은 곳으로 간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 세상의 것들을 예수보다 더 업신여긴다면, 예수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한다.

Carpocrates autem et qui ab eo, mundum quidem, et ea quae in eo sunt, ab Angelis multo inferioribus ingenito Patre factum esse dicunt. Jesum autem e Joseph natum, et quum similis reliquis hominibus fuerit, distasse a reliquis secundum id, quod anima ejus firma et munda cum esset, commemorata fuerit quae visa essent sibi in ea circumlatione, quae fuisset ingenito Deo: et propter hoc ab eo missam esse ei virtutem, uti mundi fabricatores effugere posset, et per omnes transgressa, et in omnibus liberata, ascenderet ad eum, et eas, quae similia ei amplecterentur, similiter. Jesu autem dicunt animam in Judaeorum consuetudine nutritam contempsisse eos, et propter hoc virtutes accepisse, per quas evacuavit quae fuerunt in poenas passiones, quae inerant hominibus. Eam igitur, quae similiter atque illa Jesu anima, potest contemnere mundi fabricatores archontas, similiter accipere virtutes ad operandum similia. Quapropter et ad tantum elationis provecti sunt, ut quidam quidem similes se esse dicant Jesu: quidam autem adhuc et secundum aliquid illo fortiores, quidam et distantes amplius quam illius discipuli, ut puta quam Petrus et Paulus, et reliqui Apostoli: hos autem in nullo deminorari a Jesu. Animas enim ipsorum ex eadem circumlatione devenientes, et ideo similiter contemnentes mundi fabricatores, eadem dignas habitas esse virtute, et rursus in idem abire. Si quis autem plus quam ille contempserit ea quae sunt hic, posse meliorem quam illum esse.

20.2

이들 역시 마술을 행하고, 주문과, 사랑의 묘약과, 호감을 얻는 주술과, 곁에서 돕는 영들과, 꿈을 보내는 영들과, 그 밖의 악행들을 행한다. 이미 이 세상의 지배자들과 창조자들을 지배할 권한이 있다고 말한다. 그들뿐 아니라, 세상 안에 만들어진 모든 것까지 지배한다는 것이다. 이들도 교회의 거룩한 이름을 비방하도록, 이방인들과 마찬가지로, 사탄에게서 미리 보냄을 받았다.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이 그들의 말을 듣고, 우리 모두가 그런 이들이라고 생각하여, 진리의 선포에서 귀를 돌리게 하려는 것이다. 또는 그들의 행위를 보고, 우리 모두를 모독하게 하려는 것이다. 가르침에서도, 행실에서도, 날마다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우리는 그들과 아무것도 함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방탕한 생활과, 불경한 견해를 [지니며], 자기들의 악을 가리려고, 그 이름을 악용한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정당하다. 자기들의 행위에 합당한 보응을 하나님에게 받기 때문이다. 그들의 광기는 그토록 고삐가 풀려, 경건을 거스르는 불경한 온갖 일을 자기 마음대로 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들이 악하거나 선한 것은 오직 사람의 판단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반드시 혼들은 몸에서 몸으로 옮겨 가며, 모든 삶과, 모든 행위를 겪어야 한다고 한다. (누군가 미리 한 번의 삶에서 모든 일을 한꺼번에 행한 경우는 예외이다. 그런 일들은 우리가 말하거나 들어서도 안 되고, 마음속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는 것들이다. 우리의 도시들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행해진다고 하더라도, 믿어서도 안 된다.) 그들의 글에 따르면, 그들의 혼이 삶의 모든 경험을 거쳐, 떠나갈 때, 어느 것 하나 더 부족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 일에 힘써야 하는 것은, 자유에 이르기 위해 아직 어떤 것이 모자라, 다시 몸으로 보내지는 일을 겪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예수가 다음 비유를 말했다고 한다. “네가 길에서 네 적대자와 함께 있을 때, 그에게서 풀려나도록 힘써라.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이 하속에게 넘겨, 너를 감옥에 가두지 않게 하라. 참으로 네게 말한다. 마지막 콰드란스까지 갚기 전에는, 너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적대자가 세상 안의 천사들 가운데 하나이며, 그를 악마라고 부른다. 죽은 혼들을 세상에서 지배자에게 데려가도록, 그가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 지배자는 세상을 만든 이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하며, 그가 그런 혼들을 자기를 섬기는 다른 천사에게 넘겨, 다른 몸들 안에 가두게 한다고 한다. 그들은 몸이 감옥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분이 말씀하신, “마지막 콰드란스까지 갚기 전에는, 너는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세상을 만든 천사들의 권세에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 안의 온갖 행위를 겪을 때까지, 계속 몸을 바꾸어 살아간다는 것이다. 더 부족한 것이 없게 되면, 그때 그의 혼이 풀려나, 세상을 만든 천사들 위에 계신 그 하나님께 자유롭게 가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구원받으며, 모든 혼은, 한 번의 삶에서 미리 온갖 행위에 참여하든, 몸에서 몸으로 옮겨 다니든, 각각의 삶의 형태로 보내져 채워 가든, 빚을 갚아 자유로워져, 이제 더 이상 몸 안에 있지 않게 된다고 한다.

Artes enim magicas operantur et ipsi, et incantationes, philtra quoque et charitesia, et paredros, et oniropompos, et reliquas malignationes, dicentes se potestatem habere ad dominandum jam principibus et fabricatoribus hujus mundi: non solum autem, sed et his omnibus, quae in eo sunt facta. Qui et ipsi ad detrectationem divini Ecclesiae nominis, quemadmodum et gentes, a Satana praemissi sunt, uti secundum alium et alium modum, quae sunt illorum audientes homines, et putantes omnes nos tales esse, avertant aures suas a praeconio veritatis: aut et videntes quae sunt illorum, omnes nos blasphement, in nullo eis communicantes, neque in doctrina, neque in moribus, neque in quotidiana conversatione. Sed vitam quidem luxuriosam, sententiam autem impiam [habent], ad velamen malitiae ipsorum nomine abutuntur, quorum judicium justum est, recipientium dignam suis operibus a Deo retributionem. Et in tantum insania effraenati sunt, uti et omnia quaecunque sunt irreligiosa et impia, in potestate habere et operari se dicant. Sola enim humana opinione negotia mala et bona dicunt. Et utique secundum transmigrationes in corpora oportere in omni vita, et in omni actu fieri animas: (si non praeoccupans quis in uno adventu omnia agat semel ac pariter, quae non tantum dicere et audire non est fas nobis, sed ne quidem in mentis conceptionem venire, nec credere, si apud homines conversantes in his quae sunt secundum nos civitates, tale aliquid agitatur,) uti, secundum quod scripta eorum dicunt, in omni usu vitae factae animae ipsorum, exeuntes, in nihilo adhuc minus habeant; adoperandum autem in eo, ne forte propterea quod deest libertati aliqua res, cogantur iterum mitti in corpus. Propter hoc dicunt Jesum hanc dixisse parabolam: Cum es cum adversario tuo in via, da operam, ut libereris ab eo, ne forte te det judici et judex ministro, et mittat te in carcerem. Amen dico tibi, non exies inde, donec reddas novissimum quadrantem. Et adversarium dicunt unum ex Angelis qui sunt in mundo, quem diabolum vocant, dicentes factum eum ad id, ut ducat eas quae perierunt animas a mundo ad principem. Et hunc dicunt esse primum ex mundi fabricatoribus, et illum altero angelo, qui ministrat ei, tradere tales animas, uti in alia corpora includat: corpus enim dicunt esse carcerem. Et id quod ait: Non exies inde, quoadusque novissimum quadrantem reddas, interpretantur, quasi non exeat quis a potestate Angelorum eorum, qui mundum fabricaverunt; sed sic transcorporatum semper, quoadusque in omni omnino operatione, quae in mundo est, fiat: et quum nihil defuerit ei, tum liberatam ejus animam eliberari ad illum Deum, qui est supra angelos mundi fabricatores; sic quoque salvari, et omnes animas sive ipsae praeoccupantes in uno adventu in omnibus misceantur operationibus, sive de corpore in corpus transmigrantes, vel immissae in unaquaque specie vitae adimplentes, et reddentes debita, liberari, uti jam non fiant in corpore.

20.3

경건하지 않고 불의하며 금지된 이런 일들이 그들 사이에서 행해진다면, 나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 그러나 그들의 저술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그들 자신도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가 자기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신비 가운데, 따로 말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청원하여, 합당하고 동의하는 이들에게 이것들을 따로 전하게 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믿음과 사랑을 통해 구원받으며, 나머지는 그 자체로 선악의 차이가 없으나, 사람들의 판단에 따라, 어떤 것은 선하다고, 어떤 것은 악하다고 불린다는 것이다. 본성상 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Et si quidem fiant haec apud eos, quae sunt irreligiosa, et injusta, et vetita, ego nequaquam credam. In conscriptionibus autem illorum sic conscriptum est, et ipsi ita exponunt; Jesum dicentes in mysterio discipulis suis et apostolis seorsum locutum, et illos expostulasse, ut dignis et assentientibus seorsum haec traderent. Per fidem enim et caritatem salvari; reliqua vero, indifferentia cum sint, secundum opinionem hominum quaedam quidem bona, quaedam autem mala vocari, cum nihil natura malum sit.

20.4

그들 가운데 다른 이들은 표식을 하는데, 자기 제자들의 오른쪽 귓불 뒤편에 낙인을 찍는다. 이들에게서 마르켈리나도 나왔다. 그는 아니케토스 때 로마에 와서, 이 가르침에 속한 사람으로서, 많은 이를 미혹했다. 그들은 스스로 그노시스파라고 부른다. 형상들도 지니는데, 어떤 것은 그린 것이고, 어떤 것은 다른 재료로 만든 것이다.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있던 그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빌라도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 형상들에 관을 씌우고, 세상의 철학자들의 형상들과 함께 세워 둔다. 곧 피타고라스의 형상, 플라톤의 형상,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그 밖의 형상들과 함께 두는 것이다. 이 형상들에 대한 다른 숭배 행위도 이방인들처럼 행한다.

Alii vero ex ipsis signant, cauteriantes suos discipulos in posterioribus partibus exstantiae dextrae auris. Unde et Marcellina, quae Romam sub Aniceto venit, cum esset hujus doctrinae, multos exterminavit. Gnosticos se autem vocant: etiam imagines, quasdam quidem depictas, quasdam autem et de reliqua materia fabricatas habent, dicentes formam Christi factam a Pilato, illo in tempore quo fuit Jesus cum hominibus. Et has coronant, et proponunt eas cum imaginibus mundi philosophorum, videlicet cum imagine Pythagorae, et Platonis, et Aristotelis, et reliquorum; et reliquam observationem circa eas similiter ut gentes faciunt.

21장

아시아에 있던 케린토스라는 사람은, 세상이 최초의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어떤 능력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그 능력은 크게 분리되어, 만물 위에 있는 그 통치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예수에 관해서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제시했다. [그에게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었으며, 의로움과, 슬기와, 지혜에서는 모든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한다. 세례 뒤에는, 모든 것 위에 있는 그 통치권에서, 그리스도가 비둘기의 모습으로 예수에게 내려왔고, 그때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선포하며, 능력들을 행했다고 한다. 마지막에는 그리스도가 예수에게서 다시 날아 떠났고, 예수가 고난을 받고 다시 살아났으며, 영적인 존재인 그리스도는 고난받지 않는 채로 남았다고 한다.

Et Cerinthus autem quidam in Asia, non a primo Deo factum esse mundum docuit, sed a virtute quadam valde separata, et distante ab ea principalitate quae est super universa, et ignorante eum qui est super omnia Deum. Jesum autem subjecit, non ex virgine natum, [impossibile enim hoc ei visum est], fuisse autem eum Joseph et Mariae filium, similiter ut reliqui omnes homines, et plus potuisse justitia, et prudentia, et sapientia ab omnibus. Et post baptismum descendisse in eum, ab ea principalitate quae est super omnia, Christum figura columbae; et tunc annunciasse incognitum Patrem, et virtutes perfecisse; in fine autem revolasse iterum Christum de Jesu, et Jesum passum esse, et resurrexisse: Christum autem impassibilem perseverasse, exsistentem spiritalem.

22장

에비온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데 동의한다. 그러나 주님에 관한 일들은 케린토스와 카르포크라테스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마태에 따른 복음서만 사용하며, 사도 바울을 거부한다. 그를 율법에서 떨어져 나간 배교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예언의 글들은 유별나게 풀이하려 애쓴다. 할례를 행하며, 율법에 따른 관습들을 계속 지키고, 유대적인 생활 방식으로 살아,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집인 양, 그곳을 숭배하기까지 한다.

Qui autem dicuntur Ebionaei, consentiunt quidem mundum a Deo factum: ea autem quae sunt erga Dominum, similiter ut Cerinthus et Carpocrates opinantur. Solo autem eo quod est secundum Matthaeum Evangelio utuntur, et apostolum Paulum recusant, apostatam eum legis dicentes. Quae autem sunt prophetica, curiosius exponere nituntur; et circumciduntur ac perseverant in his consuetudinibus, quae sunt secundum legem, et Judaico charactere vitae, uti et Hierosolymam adorent, quasi domus sit Dei.

23장

니골라파는 니골라를 스승으로 삼는다. 사도들이 처음 집사의 직무를 맡긴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그들은 절제 없이 산다. 요한의 묵시록을 통해, 그들이 어떤 이들인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간음하는 일과,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일이 선악의 차이가 없는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말씀도 그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네게는 니골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 이것이 있다. 나도 그 행위를 미워한다.”

Nicolaitae autem magistrum quidem habent Nicolaum, unum ex vii. qui primi ad diaconium ab apostolis ordinati sunt: qui indiscrete vivunt. Plenissime autem per Johannis Apocalypsin manifestantur qui sint, nullam differentiam esse docentes in moechando, et idolothyton edere. Quapropter dixit et de iis sermo: Sed hoc habes quod odisti opera Nicolaitarum, quae et ego odi.

24장

케르돈이라는 사람은, 시몬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서 계기를 얻고, 휘기노스 때에 로마에 왔다. 휘기노스는 사도들로부터 이어지는 감독직의 계승에서 아홉째 자리를 차지했다. 율법과 예언자들이 선포한 하나님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그는 가르쳤다. 앞의 분은 알려져 있고, 뒤의 분은 알려지지 않았으며, 한 분은 의롭고, 다른 분은 선하다고 했다.

Et Cerdon autem quidam ab iis, qui sunt erga Simonem, occasionem accipiens cum venisset Romam sub Hygino, qui nonum locum episcopatus per successionem ab apostolis habuit, docuit eum qui a lege et prophetis annuntiatus sit Deus, non esse Patrem Domini nostri Christi Jesu. Hunc enim cognosci, illum autem ignorari: et alterum quidem justum, alterum autem bonum esse.

25.1

그를 계승한 폰토스의 마르키온은 가르침을 더욱 확장하여, 율법과 예언자들이 하나님으로 선포한 분을 염치없이 모독했다. 그분을 악한 일들을 만드는 이, 전쟁을 탐하는 이, 생각이 일정하지 않은 이, 자기 자신과도 모순되는 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세상을 만든 하나님 위에 계신 그 아버지에게서 와서, 티베리우스 황제의 관리였던 본디오 빌라도 총독 때에, 유대로 왔다고 한다. 유대에 있던 이들에게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 예언자들과, 율법과, 세상을 만든 그 하나님의 모든 작품을 폐했다고 한다. 그 하나님을 코스모크라토르라고도 부른다. 이에 더하여, 그는 누가에 따른 복음서를 잘라 내며, 주님의 탄생에 관해 기록된 모든 것을 제거하고, 주님의 말씀에 담긴 가르침에서도 많은 것을 제거했다. 그 대목들에는 매우 분명하게, 주님이 이 우주의 창조주를 자기 아버지라고 고백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다. 복음서를 전한 사도들보다 자기가 더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그는 자기 제자들을 설득했다. 복음서를 전해 준 것이 아니라, 복음서의 조각을 전해 준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의 서신들도 잘라 냈다.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에 관하여, 그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사도가 분명하게 말한 모든 것을 제거했다. 예언의 글들에서 사도가 인용하며, 그 글들이 주님의 오심을 미리 선포한다고 가르친 것들도 모두 제거했다.

Succedens autem ei Marcion Ponticus, adampliavit doctrinam, impudorate blasphemans eum qui a lege et prophetis annunciatus est Deus, malorum factorem, et bellorum concupiscentem, et inconstantem quoque sententia, et contrarium sibi ipsum dicens. Jesum autem ab eo Patre, qui est super mundi fabricatorem Deum, venientem in Judaeam temporibus Pontii Pilati praesidis, qui fuit procurator Tiberii Caesaris, in hominis forma manifestatum his qui in Judaea erant, dissolventem prophetas, et legem, et omnia opera ejus Dei qui mundum fecit, quem et Cosmocratorem dicit. Et super haec, id quod est secundum Lucam evangelium circumcidens, et omnia quae sunt de generatione Domini conscripta auferens, et de doctrina sermonum Domini multa auferens, in quibus manifestissime conditorem hujus universitatis suum Patrem confitens Dominus conscriptus est; semetipsum esse veraciorem, quam sunt hi qui evangelium tradiderunt apostoli, suasit discipulis suis; non evangelium, sed particulam evangelii tradens eis. Similiter autem et apostoli Pauli epistolas abscidit, auferens quaecunque manifeste dicta sunt ab Apostolo de eo Deo qui mundum fecit, quoniam hic Pater Domini nostri Jesu Christi, et quaecunque ex propheticis memorans Apostolus docuit praenunciantibus adventum Domini.

25.2

구원은 혼들만 얻을 것이며, 그의 가르침을 배운 혼들이 구원받는다고 한다. 몸은, 땅에서 취한 것이므로, 구원에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 대한 모독에 그는 다음 말도 덧붙였다. 참으로 악마의 입을 취하여, 진리와 반대되는 모든 것을 말한 것이다. 카인과 그와 같은 이들, 소돔 사람들, 이집트 사람들과 그와 같은 이들, 온갖 악이 뒤섞인 가운데 살아간 모든 민족이, 주님께 구원을 받았다고 한다. 주님이 저승으로 내려오셨을 때, 그들이 그분께 달려갔으며, 주님이 그들을 자기 나라로 받아들이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르키온 안에 있던 뱀은,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그 밖의 의로운 이들과, 아브라함과 연결된 족장들과, 모든 예언자들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이들이, 구원에 참여하지 못했다고 선포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기들의 하나님이 늘 자기들을 시험하신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으므로, 그때도 그분이 시험하신다고 의심하여, 예수께 달려가지 않았고, 그분의 선포도 믿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혼이 저승에 남았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유독 드러내 놓고 성경을 잘라 내는 일을 감행했으며, 누구보다도 염치없이 하나님을 비방했으므로, 우리는 그를 별도로 반박할 것이다. 그의 글을 근거로 그를 논박하고, 그가 보존하며, 자기 자신도 사용하는 주님과 사도의 그 말씀들로, 하나님께서 도우시면, 그의 견해를 무너뜨릴 것이다. 지금은 필요하여 그를 언급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진리를 변질시키고, 교회의 선포를 해치는 이들은 모두, 사마리아의 마술사 시몬의 제자이며 후계자라는 것을, 그대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다른 이들을 미혹하려고, 그들이 자기 스승의 이름을 고백하지 않더라도, 그의 견해를 가르친다.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을 미끼처럼 내세우면서, 시몬의 불경을 여러 방식으로 끌어들여, 많은 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좋은 이름을 통해, 자기 견해를 악하게 퍼뜨리고, 그 이름의 달콤함과 아름다움을 통해, 배교의 우두머리인 뱀의 쓰고 해로운 독을 그들에게 건네는 것이다.

Salutem autem solum animarum esse futuram, earum quae ejus doctrinam didicissent; corpus autem, videlicet quoniam a terra sit sumptum, impossibile esse participare salutem. Super blasphemiam autem quae est in Deum, adjecit et hoc, vere Diaboli os accipiens, et omnia contraria dicens veritati: Cain et eos qui similes sunt ei, et Sodomitas, et Aegyptios, et similes eis, et omnes omnino gentes, quae in omni permixtione malignitatis ambulaverunt, salvatas esse a Domino, cum descendisset ad inferos, et accurrissent ei, et in suum assumpsisse regnum; Abel autem et Enoch, et Noe, et reliquos justos, et eos qui sunt erga Abraham Patriarchas, cum omnibus Prophetis, et his qui placuerunt Deo, non participasse salutem, qui in Marcione fuit serpens praeconavit. Quoniam enim sciebant, inquit, Deum suum semper tentantem eos, et tunc tentare eum suspicati, non accurrerunt Jesu, neque crediderunt annuntiationi ejus: et propterea remansisse animas ipsorum apud inferos dixit. Sed huic quidem, quoniam et solus manifeste ausus est circumcidere Scripturas, et impudorate super omnes obtrectare Deum, seorsum contradicemus, ex ejus scriptis arguentes eum, et ex iis sermonibus qui apud eum observati sunt, Domini et Apostoli, quibus ipse utitur, eversionem ejus faciemus, praestante Deo. Nunc autem necessario meminimus ejus, ut scires quoniam omnes qui quoquo modo adulterant veritatem, et praeconium Ecclesiae laedunt, Simonis Samaritani magi discipuli et successores sunt. Quamvis non confiteantur nomen magistri sui ad seductionem reliquorum: tamen illius sententiam docent: Christi quidem Jesu nomen tanquam irritamentum praeferentes, Simonis autem impietatem varie introducentes, mortificant multos, per nomen bonum sententiam suam male disperdentes, et per dulcedinem et decorem nominis, amarum et malignum principis apostasiae serpentis venenum porrigentes eis.

26.1

앞서 말한 이들에게서, 이미 여러 이단의 많은 갈래가 생겨났다.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아니 모두가 교사가 되기를 바라며, 자기가 속했던 이단에서 떠나려 하기 때문이다. 한 견해에서 다른 가르침을 가져오고, 또 다른 견해들을 서로 엮어서, 새롭게 가르치는 데 열을 올리며, 무엇을 엮어 냈든, 자기가 그 견해를 고안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사투르니누스와 마르키온에게서 나온, 절제파라고 불리는 이들은, 혼인을 삼가라고 선포했다. 하나님께서 처음 빚으신 일을 무효로 돌리고, 사람들이 태어나도록 남성과 여성을 만드신 분을 간접적으로 고발한 것이다. 그들이 동물성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삼가게 하여,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았다. 처음 빚어진 이의 구원에도 반대한다. 이것은 그들 사이에서 최근에 고안된 것으로, 타티아노스라는 사람이 처음 이 모독을 들여왔다. 그는 유스티노스에게서 배웠으며, 그와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스티노스가 순교한 뒤, 교회에서 떠나, 교사라는 자만심으로 우쭐하고 부풀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난 듯이, 자기만의 가르침을 세웠다. 발렌티누스를 따르는 이들처럼, 어떤 보이지 않는 아이온들을 이야기로 꾸며 냈고, 마르키온과 사투르니누스처럼, 혼인을 타락과 음행이라고 말했다. 아담의 구원을 반대하는 주장은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Ab his autem qui praedicti sunt, jam multae propagines multarum haeresum factae sunt, eo quod multi ex ipsis, imo omnes velint doctores esse, et abscedere quidem ab haeresi in qua fuerunt; aliud autem dogma ab alia sententia, et deinceps alteram ab altera componentes, nove docere insistunt, semetipsos adinventores sententiae, quamcunque conpegerint, enarrantes. Ut exempli gratia dicamus, a Saturnino et Marcione, qui vocantur Continentes, abstinentiam a nuptiis annuntiaverunt, frustrantes antiquam plasmationem Dei, et oblique accusantes eum, qui et masculum et foeminam ad generationem hominum fecit: et eorum quae dicuntur apud eos animalia abstinentiam induxerunt, ingrati exsistentes ei qui omnia fecit Deo. Contradicunt quoque ejus saluti, qui primus plasmatus est: et hoc nunc adinventum est apud eos. Tatiano quodam primo hanc introducente blasphemiam: qui cum esset Justini auditor, in quantum quidem apud eum erat, nihil enarravit tale: post vero illius martyrium absistens ab Ecclesia, et praesumptione magistri elatus et inflatus, quasi prae caeteris esset, proprium characterem doctrinae constituit: Aeonas quasdam invisibiles similiter atque hi qui a Valentino sunt, velut fabulam enarrans: nuptias autem corruptelas et fornicationes similiter ut Marcion et Saturninus dicens: Adae autem saluti ex se contradictionem faciens.

26.2

또 다른 이들은 바실리데스와 카르포크라테스에게서 계기를 얻어, 구별 없는 성관계와, 여러 사람과의 혼인을 끌어들이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일에도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크게 마음 쓰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여러 방식으로 진리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은 그 수를 다 말할 수 없다.

Alii autem rursus a Basilide et Carpocrate occasiones accipientes, indifferentes coitus, et multas nuptias induxerunt, et negligentiam ipsorum quae sunt idolothyta ad manducandum, non valde haec curare dicentes Deum. Et quid enim? non est numerum dicere eorum, qui secundum alterum et alterum modum exciderunt a veritate.

27.1

이들 외에도, 앞서 말한 시몬파에게서, 그노시스파의 무리가 생겨나, 땅에서 돋는 버섯처럼 나타났다. 이제 그들의 주요 견해들을 이야기하겠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결코 늙지 않고, 동정의 영 안에 있는 어떤 아이온을 제시하며, 그를 바르벨로라고 부른다. 거기에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아버지가 있으며, 그 아버지가 바르벨로에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한다. 이 엔노이아는 앞으로 나와, 그 앞에 서서, 프로노시스를 청했다. 프로노시스가 나오자, 이들이 다시 청하여, 썩지 않음이 나왔고, 그 뒤 영원한 생명이 나왔다. 이것들을 영광스럽게 여긴 바르벨로는, 그 위대함을 바라보고, 잉태를 기뻐하여, 그 가운데서 자기와 닮은 빛을 낳았다. 이것이 빛을 비춤과 만물의 탄생의 시작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이 빛을 보고, 완전하게 되도록, 자기 인자함으로 그 빛에 기름을 부었다고 한다. 그들은 이 빛이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들의 설명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다시 청하여, 자기를 돕도록 누스를 달라고 했고, 누스가 나왔다. 이에 더하여 아버지가 로고스를 내보낸다. 엔노이아와 로고스, 아프타르시아와 그리스도가 짝을 이루며, 아이오니아 조에는 텔레마와 결합하고, 누스는 프로노시스와 결합했다. 이들은 큰 빛과 바르벨로를 높였다. 그 뒤 엔노이아와 로고스에게서, 큰 빛을 나타내도록, 아우토게네스가 나왔고, 크게 영예를 얻었으며, 모든 것이 그에게 복종했다고 한다. 알레테이아도 그와 함께 나와, 아우토게네스와 알레테이아가 짝을 이루었다. 그리스도라고 하는 그 빛과, 썩지 않음에게서, 아우토게네스를 둘러싸도록, 네 등불이 나왔다고 한다. 텔레마와 아이오니아 조에에게서도, 이 네 등불을 섬기도록, 네 발출이 나왔다. 그 이름은 카리스, 텔레시스, 쉬네시스, 프로네시스이다. 카리스는 크고 첫째인 등불과 연결된다. 그들은 그 등불이 소테르(구원자)라고 하며, 아르모겐이라고 부른다. 텔레시스는 둘째 등불과 연결되며, 그 등불은 라구엘이라고도 부른다. 쉬네시스는 셋째 등불과 연결되고, 그 등불은 다윗이라고 부른다. 프로네시스는 넷째 등불과 연결되며, 그 등불은 엘렐레트라고 부른다. 모든 것이 이렇게 굳게 세워진 뒤, 아우토게네스는 더 나아가, 완전하고 참된 사람을 내보낸다. 그를 아다마스라고도 부르는데, 그 자신도 굴복한 적이 없고, 그가 나온 근원의 존재들도 굴복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첫 빛과 함께 아르모겐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아우토게네스에게서 사람과 함께 완전한 앎도 나와, 그 사람과 결합했다. 그 때문에 그는 모든 것 위에 있는 이를 알게 되었다. 동정의 영에게서 굴복하지 않는 능력도 받았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쉬며, 큰 아이온을 찬양한다. 이것으로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 드러났다고 한다. 안트로포스와 그노시스에게서 나무가 생겨났으며, 이 나무도 그노시스라고 부른다.

Super hos autem ex his qui praedicti sunt Simoniani multitudo Gnosticorum exsurrexit, et velut a terra fungi manifestati sunt, quorum principales apud eos sententias enarramus. Quidam enim eorum Aeonem quendam nunquam senescentem in virginali spiritu subjiciunt, quem Barbelon nominant. Ubi esse patrem quendam innominabilem dicunt: voluisse autem hunc manifestare se ipsi Barbeloni. Ennoeam autem hanc progressam stetisse in conspectu ejus, et postulasse Prognosin. Cum prodiisset autem et Prognosis, his rursum petentibus prodiit Incorruptela: post deinde Vita aeterna: in quibus gloriantem Barbelon, et prospicientem in magnitudinem, et conceptu delectatam, in hac generasse simile ei lumen. Hanc initium et illuminationis, et generationis omnium dicunt: et videntem Patrem lumen hoc, unxisse illud sua benignitate, ut perfectum fieret. Hunc autem dicunt esse Christum: qui rursus postulat, quemadmodum dicunt, adjutorium sibi dari Nun, et progressus est Nus. Super haec autem emittit pater Logon. Conjugationes autem fient Ennoiae et Logi, et Aphtharsias et Christi: et Aeonia autem Zoe Thelemati conjuncta est, et Nus Prognosi. Et magnificabant hi magnum lumen et Barbelon. Post deinde de Ennoia et de Logo Autogenem emissum dicunt ad repraesentationem magni luminis, et valde honorificatum dicunt, et omnia huic subjecta. Coëmissam autem ei Alethiam, et esse conjugationem Autogenis et Alethiae. De lumine autem, quod est Christus, et de incorruptela, quatuor emissa luminaria ad circumstantiam Autogeni dicunt; et de Thelemate rursus et Aeonia Zoe quatuor emissiones factas ad subministrationem quatuor luminaribus, quas nominant Charin, Thelesin, Synesin, Phronesin. Et Charin quidem magno et primo luminario adjunctam; hunc autem esse Sotera volunt et vocant eum Armogen: Thelesin autem secundo, quem et nominant Raguel: Synesin autem tertio luminario; quem vocant David: Phronesin autem quarto, quem nominant Eleleth. Confirmatis igitur sic omnibus, super haec emittit Autogenes hominem perfectum et verum, quem et Adamantem vocant: quoniam neque ipse domatus est, neque ii ex quibus erat, qui et remotus est cum primo lumine ab Armoge. Emissam autem cum homine ab Autogene agnitionem perfectam, et conjunctam ei: unde et hunc cognovisse eum qui est super omnia: virtutem quoque ei invictam datam a virginali spiritu: et refrigerant in hoc omnia hymnizare magnum Aeona. Hinc autem dicunt manifestatam Matrem, Patrem, Filium: ex Anthropo autem et Gnosi natum lignum, quod et ipsum Gnosin vocant.

27.2

그다음, [모노게네스 곁에 서 있는] 첫 천사에게서 성령이 나왔다고 말한다. 그 영을 소피아와 프루니코스라고도 부른다. 그 영은 나머지 모든 존재에게 짝이 있고, 자기에게는 짝이 없음을 보고, 자기와 결합할 이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찾지 못하자, 고집하며 뻗어 나갔고, 아래에서 짝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찾지 못하자, 지친 채 밖으로 뛰어나왔다. 아버지의 선한 뜻 없이 충동적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그 뒤, 순박함과 선함에 이끌려, 한 작품을 낳았는데, 그 안에는 무지와 대담함이 있었다. 그들은 이 작품이 프로타르콘이며, 이 피조세계를 만든 이라고 말한다. 큰 능력이 그를 어머니에게서 떼어 놓았고, 그가 어머니에게서 멀어져 아래쪽으로 갔으며, 하늘의 창공을 만들고, 그 안에 거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에게 무지가 있었으므로, 자기 아래 있는 권세들과, 천사들과, 창공들과, 땅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뒤 그가 아우타데이아와 결합하여, 카키아, 젤로스, 프토노스, 에리니스, 에피튀미아를 낳았다고 말한다. 이들이 태어나자, 어머니 소피아는 슬퍼하며 달아나, 더 높은 곳으로 물러났고, 아래로 헤아릴 때의 여덟 무리가 되었다. 어머니가 떠나자, 그는 자기 혼자 있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며,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들은 이런 거짓말들을 한다.

Deinde ex primo angelo [qui adstat Monogeni,] emissum dicunt Spiritum sanctum, quem et Sophiam, et Prunicum vocant. Hunc igitur videntem reliqua omnia conjugationem habentia, se autem sine conjugatione, quaesisse cui adunaretur: et cum non inveniret, asseverabat et extendebatur, et prospiciebat ad inferiores partes, putans hic invenire conjugem: et non inveniens, exsiluit taediata quoque, quoniam sine bona voluntate patris impetum fecerat. Post deinde simplicitate et benignitate acta generavit opus, in quo erat ignorantia et audacia. Hoc autem opus ejus esse Protarchontem dicunt, fabricatorem conditionis hujus: virtutem autem magnam abstulisse eum a matre narrant, et abstitisse ab ea in inferiora, et fecisse firmamentum coeli, in quo et habitare dicunt eum. Et cum sit ignorantia, fecisse eas quae sunt sub eo potestates, et angelos, et firmamenta, et terrena omnia. Deinde dicunt adunitum eum Authadiae, generasse Kakian, Zelon, et Phthonum, et Erinnyin, et Epithymian. Generatis autem his, mater Sophia contristata refugit, et in altiora secessit et fit deorsum numerantibus octonatio. Illa igitur secedente, se solum opinatum esse, et propter hoc dixisse: Ego sum Deus zelator, et praeter me nemo est. Et hi quidem talia mentiuntur.

28.1

다른 이들은 다시 기괴한 이야기를 한다. 뷔토스의 권능 안에 어떤 최초의 빛이 있는데, 복되고 썩지 않으며 끝이 없다는 것이다. 이 빛이 만물의 아버지이며, 제1의 인간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에게서 나오는 엔노이아를 자신을 발출한 이의 아들이라고 하며, 이 인간의 아들이 제2의 인간이라고 한다. 그들 아래에는 성령이 있고, 그 위의 영 아래에는 원소들이 구분되어 있으니, 물과 어둠과 심연과 혼돈이다. 그 위에 영이 떠 있다고 하며, 그 영을 제1의 여자라고 부른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그 뒤 제1의 인간은 자기 아들과 함께 영, 곧 그 여자의 아름다움을 기뻐하고, 그 여자에게 빛을 비추어 그에게서 썩지 않는 빛을 낳았다. 이 빛은 셋째 남성으로, 그들이 그리스도라고 부르는 존재이며, 제1의 인간과 제2의 인간과 제1의 여자인 성령의 아들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그 여자와 결합한 것이며, 그들은 그 여자를 살아 있는 이들의 어머니라고도 부른다. 그 여자가 빛들의 크기를 감당하거나 담아낼 수 없었기에, 너무 가득 차서 넘쳐흘렀는데, 왼쪽 부분으로 흘러넘쳤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그들의 아들 그리스도만 오른쪽에 속한 존재로서 위로 올라가, 곧바로 이끌려 어머니와 함께 썩지 않는 아이온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이 참되고 거룩한 교회라고 한다. 만물의 아버지인 제1의 인간과, 그 아들인 제2의 인간과, 그들의 아들 그리스도와, 앞서 말한 여자가 함께 불리고 모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Alii autem rursus portentosa loquuntur, esse quoddam primum lumen in virtute Bythi, beatum, et incorruptibile, et interminatum: esse autem et hoc Patrem omnium, et vocari Primum Hominem. Ennoeam autem ejus progredientem, filium dicunt emittentis, et esse hunc Filium Hominis Secundum Hominem. Sub his autem Spiritum sanctum esse, et sub superiori spiritu segregata elementa, aquam, tenebras, abyssum, chaos, super quae ferri Spiritum dicunt, primam foeminam eum vocantes. Postea, dicunt, exultante primo homine cum filio suo super formositate Spiritus, hoc est foeminae, et illuminante eam, generavit ex ea lumen incorruptibile, tertium masculum, quem Christum vocant, filium Primi et Secundi Hominis et Spiritus sancti primae foeminae, concumbentibus autem patre et filio foeminae, quam et matrem viventium dicunt. Cum autem non potuisset portare nec capere magnitudinem luminum, superrepletam et superebullientem secundum sinisteriores partes dicunt: et sic quidem filium eorum solum Christum, quasi dextrum, et in superiora allevatitum, arreptum statim cum matre in incorruptibilem Aeonem. Esse autem hanc et veram, et sanctam Ecclesiam, quae fuerit appellatio et conventio et adunatio Patris omnium, Primi Hominis, et Filii, Secundi Hominis, et Christi, filii eorum, et praedictae foeminae.

28.2

그 여자에게서 넘쳐 나온 권능은 빛의 물기를 지니고 아버지들에게서 아래로 떨어졌다고 가르친다. 자기 뜻으로 빛의 물기를 지녔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 권능을 왼쪽 존재라고도, 프루니코스라고도, 소피아라고도, 남녀 양성의 존재라고도 부른다. 그 존재는 거리낌 없이 물속으로 내려갔고, 움직이지 않던 물을 움직이게 했으며, 심연까지 거침없이 나아가 그 물에서 몸을 취했다고 한다. 그가 지닌 빛의 물기에 모든 것이 달려와 달라붙었고, 그를 에워쌌다는 것이다. 그 물기를 지니지 않았다면 아마 물질에 완전히 삼켜져 가라앉았을 것이다. 그 존재는 그렇게 물질에서 생긴 몸에 묶여 몹시 짓눌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물을 벗어나 어머니에게 올라가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감싼 몸의 무게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몹시 고통스러워진 그는 위에서 온 빛을 감추려고 꾀했다. 자기처럼 그 빛도 아래의 원소들에게 해를 입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자기가 지닌 빛의 물기에서 힘을 얻자, 그는 튀어 올라 높은 곳으로 들려 갔다. 높은 곳에 이르러 몸을 펼쳐 덮개를 만들었고, 자기 몸으로 눈에 보이는 이 하늘을 만들었다. 그 뒤 자신이 만든 하늘 아래에 머물렀으며, 여전히 물로 된 몸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위에 있는 빛을 갈망하고, 온전히 힘을 얻자, 몸을 내려놓고 거기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들이 그가 벗어 버렸다고 말하는 이 몸을 여자에게서 나온 여자라고 부른다. 그의 아들도 어머니가 그에게 남겨 준 썩지 않음의 어떤 숨결을 자기 안에 지녔으며, 그것으로 활동한다고 말한다. 그 아들은 힘을 얻어 자신도, 그들의 말에 따르면, 물에서 어머니 없이 아들을 발출했다. 그들이 보기에 그는 어머니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아들도 아버지를 본받아 다른 아들을 발출했다. 이 셋째도 넷째를 낳았고, 넷째도 아들을 낳았다. 다섯째에게서 여섯째 아들이 태어났다고 하며, 여섯째는 일곱째를 낳았다. 이렇게 그들의 일곱 무리가 완성되었으며, 어머니는 여덟째 자리를 차지했다. 태어난 순서에서처럼 지위와 권능에서도 차례로 앞섰다고 한다.

Virtutem autem quae superebullit ex foemina, habentem humectationem luminis, a patribus decidisse deorsum docent, sua autem voluntate habentem humectationem luminis: quam et Sinistram, et Prunicon, et Sophiam, et masculo-foeminam vocant. Et descendentem simpliciter in aquas, cum essent immobiles, et movisse quoque eas, petulanter agentem usque ad abyssos: et assumpsisse ex eis corpus. Humectationi enim luminis ejus omnia accurrisse et adhaesisse dicunt, et circumtenuisse eam: quam nisi habuisset, tota absorpta fortasse fuisset et demersa a materia. Deligatam igitur hanc a corpore, quod erat a materia, et valde gravatam resipuisse aliquando, et conatam esse fugere aquas, et ascendere ad matrem; non potuisse [eam] autem propter gravedinem circumpositi corporis. Valde autem male se habentem machinatam esse abscondere illud quod erat desuper lumen, timentem ne et ipsum laederetur ab inferioribus elementis, quemadmodum et ipsa. Et cum virtutem accepisset ab humectatione ejus quod erat secundum eam lumen, resiliit, et in sublimitatem elata est, et facta in alto dilatavit, et cooperuit, et fecit coelum hoc quod apparet, e corpore ejus; et remansit sub coelo quod fecit, adhuc habens aquatilis corporis typum. Cum accepisset concupiscentiam superioris luminis, et virtutem sumpsisset per omnia, deposuisse corpus et liberatam ab eo. Corpus autem hoc exuisse dicunt eam, foeminam a foemina nominant. Et filium autem ejus dicunt habuisse et ipsum aspirationem quandam in se incorruptelae a matre relictam ei, per quam operatur, et potens factus emisit et ipse, ut dicunt, ab aquis filium sine matre: neque enim cognovisse matrem eum volunt. Et filium ejus secundum patris imitationem alterum emisisse filium. Hic quoque tertius quartum generavit, et quartus et ipse generavit filium; de quinto sextum filium generatum dicunt: et sextus septimum generavit. Sic quoque hebdomas perfecta est apud eos, octavum matre habente locum: et quemadmodum generationibus, sic et dignitatibus, et virtutibus praecedere eos ab invicem.

28.3

그들은 자기들의 거짓 이야기에 이런 이름들을 붙였다. 어머니에게서 처음 난 존재는 얄다바오트라고 불리고, 그에게서 난 존재는 이아오, 그에게서 난 존재는 사바오트라고 한다. 넷째는 아도네오스, 다섯째는 엘로에오스, 여섯째는 오레오스이며, 일곱째이자 맨 마지막은 아스탄파이오스라고 한다. 그들은 이들이 하늘들이며, 탁월한 존재들이고, 권능들이며, 천사들이고, 창조자들이라고 상정한다. 각자 태어난 순서에 따라 하늘에 차례로 앉아, 눈에 드러나지 않은 채 하늘과 땅의 것들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첫째인 얄다바오트는 어머니를 업신여겨,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아들들과 손자들을 만들었으며, 천사들과 대천사들, 권능들과 권세들과 주권들도 만들었다. 이들이 생겨난 뒤, 그의 아들들은 지배권을 놓고 그에게 맞서 다투고 싸웠다고 한다. 얄다바오트는 그 때문에 슬퍼하고 절망하여, 아래에 놓인 물질의 찌꺼기를 바라보았고, 거기에 자기 욕망을 굳게 맺어 아들이 태어났다고 한다. 그 아들이 바로 뱀의 모습으로 뒤틀린 누스이며, 그에게서 영과, 혼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나왔다. 모든 망각과 악의, 질투와 시기와 죽음도 거기서 생겼다. 그들은 이 뱀 모양으로 뒤틀린 누스가 교활함으로 자기들의 아버지를 더욱 타락시켰다고 한다. 그가 자기들의 아버지와 함께 하늘과 낙원에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러자 얄다바오트는 기뻐하며 자기 아래의 모든 것을 자랑하면서 말했다. “나는 아버지이며 신이다. 내 위에는 아무도 없다.” 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그에게 외쳤다. “거짓말하지 마라, 얄다바오트야. 네 위에는 만물의 아버지, 제1의 안트로포스와, 안트로포스의 아들인 안트로포스가 있다.” 모두가 이 새로운 소리와 뜻밖의 호칭에 당황하여, 어디서 외침이 들려오는지 찾자, 그들의 관심을 돌려 자기에게 끌어들이려고 얄다바오트가 말했다고 한다. “자,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자.” 여섯 권능은 이 말을 들었고, 어머니는 그들에게 인간을 생각해 내게 했다. 인간을 통해 그들의 근원적 권능을 빼내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함께 인간을 빚었는데, 그 크기와 키가 엄청났다. 그 인간이 그저 꿈틀거리기만 하자, 자기들의 아버지에게 데려갔다. 소피아는 이렇게 하여, 그 아버지에게서도 빛의 물기를 빼내고, 권능을 지닌 채 위에 [있는] 이들에게 맞서 일어서지 못하게 하려 했다. 그가 인간에게 생명의 영을 불어넣자, 자기도 모르게 권능을 빼앗겼다고 한다. 인간은 그로부터 누스와 엔튀메시스를 얻었으며, 구원을 받는 것은 이것들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자기를 만든 이들을 떠나, 곧바로 제1의 인간에게 감사했다고 한다.

Et nomina autem mendacio suo talia posuerunt: eum enim qui a matre primus sit, Ialdabaoth vocari: eum autem qui sit ab eo, Iao; et qui ab eo, Sabaoth; quartum autem Adoneum, et quintum Eloeum, et sextum Oreum, septimum autem et novissimum omnium Astanphaeum. Hos autem coelos, et areothas, et virtutes, et angelos, et conditores subjiciunt per ordinem sedentes in coelo secundum generationem ipsorum, non apparentes, regere quoque coelestia et terrestria; primo ipsorum Ialdabaoth contemnente matrem in eo quod filios et nepotes sine ullius permissu fecerit, adhuc etiam angelos, et archangelos, et virtutes, et potestates, et dominationes. Quibus factis ad litem et jurgium adversus eum conversos esse filios ejus de principatu: propter quae contristatum Ialdabaoth, et desperantem, conspexisse in subjacentem faecem materiae, et consolidasse concupiscentiam suam in eam, unde natum filium dicunt. Hunc autem ipsum esse Nun in figura serpentis contortum, dehinc et Spiritum, et animam, et omnia mundialia: inde generatam omnem oblivionem, et malitiam, et zelum, et invidiam, et mortem. Hunc autem serpentiformem et contortum Nun eorum adhuc magis evertisse Patrem dicunt tortuositate, cum esset cum Patre ipsorum in coelo et in paradiso. Unde exultantem Ialdabaoth in omnibus his quae sub eo essent gloriatum, et dixisse: Ego Pater et Deus, et super me nemo. Audientem autem matrem clamasse adversus eum; Noli mentiri, Ialdabaoth: est enim super te pater omnium primus Anthropus, et Anthropus filius Anthropi. Conturbatis autem omnibus ad novam vocem, et inopinabili nuncupatione, et quaerentibus unde clamor, ad avocandos eos, et ad se seducendum, dixisse Ialdabaoth dicunt: Venite faciamus hominem ad imaginem nostram. Sex autem virtutes audientes haec, matre dante illis excogitationem hominis, uti per eum evacuet eos a principali virtute, convenientes formaverunt hominem immensum latitudine et longitudine: scarizante autem eo tantum, advexerunt eum patri suo, et hoc Sophia operante uti et illum evacuet ab humectatione luminis, uti non posset erigi adversus eos qui sursum [sunt], habens virtutem. Illo autem insufflante in hominem spiritum vitae, latenter evacuatum eum a virtute dicunt: hominem autem inde habuisse Nun, et Enthymesin; et haec esse quae salvantur, dicunt: et statim gratias agere eum Primo Homini, relictis fabricatoribus.

28.4

얄다바오트는 질투하여, 여자를 통해 인간에게서 권능을 빼낼 궁리를 하려 했다. 그는 자기 엔튀메시스에서 여자를 이끌어 냈는데, 프루니코스는 그 여자를 받아들여 보이지 않게 그에게서 권능을 빼냈다. 나머지 존재들은 다가와 그 여자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여, 그를 하와라고 불렀고, 그를 욕망하여, [자기들을 위해] 그 여자에게서 아들들을 낳았다. 그들은 이 아들들이 천사들이라고도 한다. 그들의 어머니는 뱀을 통해 하와와 아담을 꾀어 얄다바오트의 명령을 어기게 할 계책을 세웠다. 하와는 하나님의 아들에게서 듣는 말인 줄로 여겨, 쉽게 믿었고,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도록 아담을 설득했다. 그들이 그것을 먹자, 만물 위에 있는 권능을 알게 되었고, 자기들을 만든 이들에게서 떠났다고 한다. 프루니코스는 그들이 자기 손으로 빚은 존재들에게 패한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며, 다시 외쳤다. 썩지 않는 아버지가 계시는데, 이자는 앞서 자기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거짓말했고, 인간과 제1의 여자가 이미 있었는데, 이 여자도 간음하여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얄다바오트는 자기를 둘러싼 망각 때문에 이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고, 아담과 하와가 자기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그들을 낙원에서 쫓아냈다. 그는 하와에게서 자기 아들들이 태어나기를 바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모든 일에서 그를 거슬렀으며, 남몰래 아담과 하와에게서 빛의 물기를 빼냈기 때문이다. 근원의 권능에서 온 영이 저주도 모욕도 함께 겪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신적 실체를 빼앗긴 그들이 그에게 저주받고, 하늘에서 이 세상으로 내던져졌다고 가르친다. 아버지에게 맞서 행동하던 뱀도 그에게서 아래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그 뱀은 이곳의 천사들을 자기 지배 아래 두고, 자기도 여섯 아들을 낳았으며, 자신은 일곱째가 되었다. 아버지 주위의 일곱 무리를 본뜬 것이다. 그들은 이들이 세상에 속한 일곱 악령이며, 언제나 인류에게 대적하고 저항한다고 말한다. 인류 때문에 그들의 아버지가 아래로 내던져졌기 때문이다.

Zelantem autem Ialdabaoth voluisse excogitare evacuare hominem per foeminam, et de sua Enthymesi eduxisse foeminam, quam illa Prunicos suscipiens invisibiliter evacuavit a virtute. Reliquos autem venientes et mirantes formositatem ejus, vocasse eam Evam, et concupiscentes hanc, generasse ex ea [sibi] filios, quos et angelos esse dicunt. Mater autem ipsorum argumentata est per serpentem seducere Evam et Adam, supergredi praeceptum Ialdabaoth; Eva autem quasi a Filio Dei hoc audiens, facile credidit, et Adam suasit manducare de arbore, de qua dixerat Deus, non manducare. Manducantes autem eos cognovisse eam quae est super omnia virtutem dicunt, et abscessisse ab his qui fecerant eos. Prunicum autem videntem, quoniam et per suum plasma victi sunt, valde gratulatam, et rursum exclamasse quoniam, cum esset Pater incorruptibilis, olim hic semetipsum vocans Patrem, mentitus est: et cum Homo olim esset et Prima Foemina, et haec adulterans peccavit. Ialdabaoth autem propter eam quae circa eum erat oblivionem, ne quidem intendentem ad haec, projecisse Adam et Evam de paradiso, quoniam transgressi erant praeceptum ejus. Voluisse enim filios ei ex Eva generari, et non adeptum esse, quoniam mater sua in omnibus contrariaret ei, et latenter evacuans Adam et Evam ab humectatione luminis, uti neque maledictionem participaret, neque opprobrium, is qui esset a principalitate spiritus. Sic quoque vacuos a divina substantia factos, maledictos esse ab eo, et dejectos a coelo in hunc mundum docent. Sed et serpentem adversus patrem operantem dejectum ab eo in deorsum mundum: in potestatem autem suam redigentem angelos qui hic sunt, et ipsum sex filios generasse, septimo ipso exsistente ad imitationem ejus, quae circa Patrem est, hebdomadis. Et hos septem daemonas mundiales esse dicunt, adversantes et resistentes semper generi humano, quoniam propter eos pater illorum projectus est deorsum.

28.5

아담과 하와는 처음에 빚어졌을 때 그대로, 가볍고 밝으며 영적인 것과 같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 오면서 몸은 더 어두워지고, 더 둔중해지고, 더 굼떠졌다. 혼도 맥이 풀려 지쳐 있었다. 자기를 만든 이에게서 세상의 숨결만 받았기 때문이다. 마침내 프루니코스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빛의 물기가 지닌 달콤한 향기를 돌려주었다. 그것으로 그들은 자기 자신을 기억하게 되었고, 자기들이 벌거벗었다는 것과 몸이 물질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죽음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며, 몸이 잠시 자기들을 감싸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 참을성을 지니게 되었다. 소피아의 인도로 먹을 것을 찾아, 배불리 먹은 뒤, 서로 육체적으로 결합하여 카인을 낳았다고 한다. 내던져진 뱀은 자기 아들들과 함께 곧바로 카인을 붙들어 타락시켰고, 세상의 망각으로 가득 채워, 어리석음과 대담함으로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그가 자기 형제 아벨을 죽이면서 처음으로 질투와 죽음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들 뒤에는 프루니코스의 섭리에 따라 셋이 태어났고, 그 뒤 노레아가 태어났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나머지 수많은 사람이 태어났는데, 아래의 일곱 무리에 의해 온갖 악으로 내몰리고, 위의 거룩한 일곱 무리에게서 이탈하며, 우상숭배와 온갖 다른 다툼으로 내몰렸다고 한다. 어머니는 언제나 보이지 않게 그들에게 맞서, 자기에게 속한 것을 보존했으니, 곧 빛의 물기였다. 그들이 보기에 거룩한 일곱 무리는 일곱 별이며, 이 별들을 행성이라고 부른다. 내던져진 뱀에게는 두 이름, 미카엘과 사마엘이라는 이름이 있다고 한다. 얄다바오트는 인간들에게 화를 냈다. 자기를 아버지와 신으로 섬기지도 공경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을 한꺼번에 모두 멸하려고 홍수를 보냈으나, 소피아가 이 일에서도 맞섰다. 방주 안에서 노아와 함께 있던 이들은 소피아에게서 온 빛의 물기로 구원받았으며, 그것으로 세상이 다시 인간들로 가득 찼다고 한다. 얄다바오트 자신도 그들 가운데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을 택하여, 그와 계약을 맺었다. 그의 후손이 계속 자기를 섬기면, 그에게 땅을 유산으로 주겠다는 것이다. 그 뒤 모세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고, 그들에게 율법을 주어, 그들을 유대인으로 삼았다. 그들 가운데서 이레를 택했는데, 이것을 거룩한 일곱 무리라고도 부른다. 그 각각이 자기 전령을 택하여, 신을 찬양하고 알리게 한다. 다른 이들도 그 찬양을 듣고, 예언자들이 신이라고 선포하는 존재들을 섬기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들은 예언자들을 이렇게 나누어 배정한다. 얄다바오트에게 속한 이는 모세와 눈의 아들 여호수아, 아모스와 하박국이다. 이아오에게는 사무엘과 나단과 요나와 미가, 사바오트에게는 엘리야와 요엘과 스가랴, 아도나이에게는 이사야와 에스겔과 예레미야와 다니엘, 엘로이에게는 토비아와 학개, 오레오스에게는 미가와 나훔, 아스탄파이오스에게는 에스라와 스바냐가 속한다.

Adam autem et Evam prius quidem habuisse levia et clara, et velut spiritalia corpora, quemadmodum et plasmati sunt; venientes autem huc, demutasse in obscurius, et pinguius, et pigrius; sed et animam dissolutam et languidam: quippe a factore tantummodo insufflationem mundialem habentes, quoadusque Prunicos miserata eorum, reddidit eis odorem suavitatis humectationis luminis: per quam in commemorationem venerunt suam ipsorum, et cognoverunt seipsos nudos et corporis materiam; et cognoverunt, quoniam mortem bajulant, et magnanimes exstiterunt, cognoscentes quoniam ad tempus corpus circumdatum est eis: et escas quoque invenisse eos, praeeunte eis Sophia, et satiatos coisse invicem carnaliter, et generasse Cain, quem dejectibilis serpens cum filiis suis statim suscipiens evertit, et adimplevit mundiali oblivione, in stultitiam et audaciam immittens, ita ut et dum fratrem suum Abel occideret, primus zelum et mortem ostenderit. Post quos secundum providentiam Prunici dicunt generatum Seth, post Noream: ex quibus reliquam multitudinem hominum generatam dicunt, et ab inferiori hebdomade in omnem malitiam immissam, et apostasiam superiori sanctae hebdomadae, et idolatriam, et reliquam universam contentionem, cum contraria eis esset semper mater invisibiliter, et proprium salvaret, hoc est, humectationem luminis. Sanctam autem hebdomadam septem stellas, quas dicunt planetas, esse volunt, et projectibilem serpentem duo habere nomina, Michael et Samael, dicunt. Iratum autem Ialdabaoth hominibus, quoniam eum non colebant, neque honorificabant, quasi Patrem et Deum diluvium eis immisisse, ut omnes simul perderet. Contra stante autem et hic Sophia, salvatos eos esse qui circa Noë erant in arca, propter humectationem illius luminis quod ab ea erat, per quam iterum adimpletum esse mundum hominibus: ex quibus quendam Abraham elegisse et ipsum Ialdabaoth, et testamentum posuisse ad eum, si perseveraverit semen ejus serviens ei, dare ei haereditatem terrae. Post per Moysen eduxisse ex Aegypto eos qui ab Abraham essent, et dedisse eis legem, et fecisse eos Judaeos, ex quibus elegisse septem dies, quos et sanctam hebdomadam vocant. Et unusquisque eorum suum praeconem assumit ad gloriandum, et Deum annuntiandum, uti et reliqui audientes glorias, servirent et ipsi his qui a prophetis annuntiantur dii. Sic autem prophetas distribuunt: hujus quidem Ialdabaoth Moysen fuisse, et Jesum Nave, et Amos, et Abacuc: illius autem Iao, Samuel, et Nathan, et Jonam, et Michaeam: illius autem Sabaoth, Heliam, et Joel, et Zachariam: illius autem Adonai, Esaiam, et Ezechiel, et Jeremiam, et Daniel: illius autem Eloi, Tobiam, et Aggaeum: illius autem Orei, Michaeam, et Nahum: illius autem Astanfei, Hesdram, et Sophoniam.

28.6

이들 각자는 자기 아버지이자 신을 찬양한다. 그들은 소피아 자신도 이들을 통해 많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제1의 인간과 썩지 않는 아이온, 위에 있는 그리스도에 관해서였다고 한다. 썩지 않는 빛과 제1의 인간과 그리스도의 내려옴을 인간들에게 미리 알리고 일깨웠다는 것이다. 지배자들이 이 말에 겁을 먹고, 예언자들이 선포한 새로운 내용에 놀라자, 프루니코스가 일을 꾸몄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얄다바오트를 통해, 두 인간이 발출되게 한 것이다. 한 사람은 임신하지 못하던 엘리사벳에게서, 다른 한 사람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났다. 프루니코스 자신은 쉼을 얻지 못했는데,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그러했으므로, 슬픔에 잠겨 어머니에게 도와 달라고 청했다. 그의 어머니인 제1의 여자는 회개하는 딸을 불쌍히 여겨, 제1의 인간에게 그리스도를 보내 딸을 돕게 해 달라고 청했다. 그리스도는 보냄을 받아 내려와, 자기 자매와 빛의 물기에게로 갔다. 아래에 있는 소피아는 자기 형제가 자신에게 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요한을 통해 그의 오심을 알렸으며, 회개의 세례를 준비했다. 또 미리 예수를 준비하여, 그리스도가 내려올 때 깨끗한 그릇을 만나고, 얄다바오트의 아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그 여자를 알리도록 했다. 그리스도는 그들의 아들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일곱 하늘을 거쳐 내려오면서, 그들의 권능을 조금씩 빼냈다고 한다. 빛의 물기가 모두 그에게 모여들었고, 그리스도는 이 세상으로 내려오면서 먼저 자기 자매 소피아를 입었으며, 둘은 서로에게서 쉼을 얻어 기뻐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것이 신랑과 신부라고 설명한다. 예수는 하나님의 작용으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으므로, 모든 인간보다 더 지혜롭고 깨끗하며 의로웠다. 소피아와 결합한 그리스도가 내려왔고,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한다.

Horum igitur unusquisque glorificans suum patrem et Deum, Sophiam et ipsam per eos multa locutam esse de Primo Homine et incorruptibili Aeone, et de illo Christo, qui sit sursum, dicunt, praemonentem et remorantem homines in incorruptibile lumen, et in Primum Hominem, et in descensionem Christi: in quibus conterritis principibus, et admirantibus novitatem in his quae a prophetis annuntiabantur, operatam esse Prunicum per Ialdabaoth nescientem quid faciat, duorum hominum factas esse emissiones: alterum quidem de sterili Elizabeth, alterum autem ex Maria Virgine. Et quoniam non haberet eadem ipsa requiem, neque in coelo, neque in terra, contristatam invocasse in adjutorium matrem. Mater autem ejus, Prior Foemina, miserata est super poenitentia filiae, et postulavit a Primo Homine adjutorium ei mitti Christum: qui et descendit emissus ad sororem suam, et ad humectationem luminis. Cognoscentem autem eam, quae deorsum est Sophiam, descendere ad se fratrem suum, et annuntiasse ejus adventum per Johannem, et praeparasse baptismum poenitentiae, et ante adaptasse Jesum, uti descendens Christus inveniat vas mundum, et uti per filium ejus Ialdabaoth foemina a Christo annuntiaretur. Descendisse autem eum per septem coelos, assimilatum filiis eorum dicunt, et sensim eorum evacuasse virtutem. Ad ipsum enim universam humectationem luminis concurrisse dicunt, et descendentem Christum in hunc mundum, induisse primum sororem suam Sophiam, et exultasse utrosque refrigerantes super invicem: et hoc esse sponsum et sponsam definiunt. Jesum autem quippe ex Virgine per operationem Dei generatum, sapientiorem, et mundiorem, et justiorem hominibus omnibus fuisse; Christum perplexum Sophiae descendisse, et sic factum esse Jesum Christum.

28.7

그의 제자 가운데 많은 이들은 그리스도가 그에게 내려온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스도가 예수에게 내려오자, 비로소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고, 병을 고치고,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를 선포하며, 자기가 제1의 인간의 아들이라고 드러내어 고백했다. 지배자들과 예수의 아버지는 그 일들에 화가 나, 그를 죽이려고 일을 꾸몄다. 그가 그 일로 끌려갈 때, 그리스도 자신은 소피아와 함께 떠나 썩지 않는 아이온으로 갔다고 하며,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한다. 그의 그리스도는 그를 잊지 않고, 위에서 어떤 권능을 그에게 보냈다. 그 권능이 그를 몸 안에서 일으켰는데, 그들은 이 몸을 혼적이며 영적인 몸이라고 부른다. 세상에 속한 것들은 세상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을 보고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 자신도 누구 덕분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그의 제자들 사이에 이런 커다란 오류가 있었다고 한다. 예수가 세상에 속한 몸으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으니, “살과 피는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내려오고 올라갔다는 것을 다음 사실로 확증하려 한다. 세례를 받기 전에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뒤에도, 제자들이 예수가 큰일을 했다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와, 썩지 않는 아이온이 일곱 무리와 결합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들은 세상에 속한 몸을 동물들의 몸이라고 부른다. 그는 부활한 뒤 18개월 동안 머물렀고, 감각이 그에게 내려오자, 분명한 것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그만한 신비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여긴 제자 몇 사람에게 이 일들을 가르쳤고, 그렇게 하늘로 받아들여졌다. 그리스도는 아버지 얄다바오트의 오른편에 앉아, 그들을 알게 된 이들이 세상의 육신을 벗은 뒤, 그 혼들을 자기 안에 받아들이고, 자신을 풍요롭게 한다. 그의 아버지는 이를 알지 못하고, 그를 보지도 못한다. 예수가 거룩한 혼들로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만큼, 그의 아버지는 손실을 입고 줄어들며, 그 혼들을 통해 자기 권능을 빼앗긴다. 아버지는 다시 세상으로 내려보낼 거룩한 혼들을 이제 지니지 못하고, 자기 실체에서 나온 혼들만 지니게 되기 때문이다. 곧 자기 숨결에서 나온 혼들이다. 빛의 영이 지닌 물기가 모두 모여, 썩지 않음의 아이온으로 이끌려 갈 때, 완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Multos igitur ex discipulis ejus non cognovisse Christi descensionem in eum dicunt: descendente autem Christo in Jesum, tunc coincepisse virtutes perficere, et curare, et annuntiare incognitum patrem, et se manifeste Filium Primi Hominis confiteri. In quibus irascentes principes et Patrem Jesu, operatos ad occidendum eum: et in eo cum adduceretur, ipsum quidem Christum cum Sophia abstitisse in incorruptibilem Aeonem dicunt; Jesum autem crucifixum: non autem oblitum suum Christum, sed misisse desuper virtutem quandam in eum, quae excitavit eum in corpore, quod et corpus animale et spiritale vocant: mundialia enim remisisse eum in mundo. Videntes autem discipuli resurrexisse eum, non eum cognoverunt, sed ne ipsum quidem Jesum cujus gratia a mortuis resurrexit. Et hunc maximum errorem inter discipulos ejus fuisse dicunt, quoniam putarent eum in corpore mundiali resurrexisse, ignorantes quoniam caro et sanguis regnum Dei non apprehendunt. Confirmare autem volunt descensionem Christi et ascensionem ex eo, quod neque ante baptismum, neque post resurrectionem a mortuis, aliquid magni fecisse Jesum dicant discipuli, ignorantes adunitum esse Jesum Christo, et incorruptibilem Aeonem hebdomadi: et mundiale corpus animalium dicunt. Remoratum autem eum post resurrectionem xviii mensibus, et sensibilitate in eum descendente didicisse, quod liquidum est: et paucos ex discipulis suis, quos sciebat capaces tantorum mysteriorum, docuit haec, et sic receptus est in coelum, Christo sedente ad dexteram Patris Ialdabaoth, uti animas eorum, qui cognoverunt eos, post depositionem mundiali carnis recipiat in se, ditans semetipsum, patre ejus ignorante, sed ne vidente quidem eum, uti in quantum Jesus semetipsum ditat in sanctis animabus, in tantum Pater ejus in detrimentis factus deminoretur, evacuatus a virtute sua per animas. Jam enim non habiturum eum animas sanctas, ut rursus demittat eas in saeculum, sed tantum eas quae sunt ex substantia ejus, id est, quae sunt ex insufflatione. Consummationem autem futuram, quando tota humectatio spiritus luminis colligatur, et abripiatur in Aeonem incorruptibilitatis.

28.8

그들의 견해는 이러하다. 여기서 발렌티누스 학파의 레르나의 히드라 같은, 머리가 여럿 달린 짐승이 생겨났다. 어떤 이들은 소피아 자신이 뱀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아담을 만든 이에게 맞섰으며, 인간들에게 지식을 넣어 주었고, 그래서 뱀이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지혜롭다고 불렸다는 것이다. 우리 창자의 배치, 곧 음식이 그곳을 통해 전달되고, 그 모양이 뱀을 닮았다는 점도 말한다.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는, 낳는 존재인 뱀 형상의 실체를 이것이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다.

Tales quidem secundum eos sententiae sunt: a quibus, velut Lernaea hydra, multiplex capitibus fera de Valentini schola generata est. Quidam enim ipsam Sophiam serpentem factam dicunt: quapropter et contrariam exstitisse factori Adae, et agnitionem hominibus immisisse, et propter hoc dictum serpentem omnium sapientiorem. Sed et propter positionem intestinorum nostrorum per quae esca infertur, et quod talem figuram habeant, ostendentem absconsam generatricem serpentis figurae substantiam in nobis.

28.9

다른 이들은 다시 카인이 위의 권능에서 나왔다고 말하며, 에서와 고라와 소돔 사람들과 그와 같은 이들이 모두 자기들의 친족이라고 인정한다. 그 때문에 창조자에게 공격을 받았으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소피아가 자기에게서 나온 고유한 것을 그들에게서 자기에게로 거두어 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배신자 유다가 이 일들을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다른 이들 가운데 혼자 진리를 알아, 배신의 신비를 완수했다고 한다. 그를 통해 땅과 하늘의 모든 것이 해체되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조작된 글을 내놓으며, 그것을 유다복음이라고 부른다. 나는 이미 그들의 저술들도 모아 두었다. 그 글들은 휘스테라의 작품들을 해체하라고 권하는데, 그들은 하늘과 땅의 창조자를 휘스테라라고 부른다. 카르포크라테스도 말했듯이, 모든 일을 거치지 않으면 달리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죄와 수치스러운 행위 하나하나에 천사가 곁에 있으며, 그 행위를 하는 이는 대담하게 무모함과 더러움을 행하고, 그 행위에 담긴 것을 천사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한다. “오, 그대 천사여, 나는 그대의 일을 남용한다. 오, 그대 그 권세여, 나는 그대의 행위를 완수한다.” 이름조차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그런 행위로 떨림 없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완전한 지식이라고 한다.

Alii autem rursus Cain a superiore principalitate dicunt, et Esau, et Core, et Sodomitas, et omnes tales cognatos suos confitentur; et propter hoc a factore impugnatos, neminem ex eis mala acceptasse. Sophia enim illud quod proprium ex ea erat, abripiebat ex eis ad semetipsam. Et haec Judam proditorem diligenter cognovisse dicunt, et solum prae caeteris cognoscentem veritatem, perfecisse proditionis mysterium: per quem et terrena et coelestia omnia dissoluta dicunt. Et confinctionem afferunt hujusmodi, Judae Evangelium illud vocantes. Jam autem et collegi eorum conscriptiones, in quibus dissolvere opera Hysterae adhortantur; Hysteram autem fabricatorem coeli et terrae vocant: nec enim aliter salvari eos nisi per omnia eant, quemadmodum et Carpocrates dixit. Et in unoquoque peccatorum et turpium operationum angelum assistere, et operantem audere audaciam et immunditiam inferre, et quod inest ei operationi, angeli nomine dicere: O tu angele, abutor opere tuo: O tu illa potestas, perficio tuam operationem. Et hoc esse scientiam perfectam, sine tremore in tales abire operationes, quas ne nominare quidem fas est.

29장

그들의 견해와 규범 자체가 드러내듯이, 발렌티누스에게서 나온 이들은 이런 어머니들과 아버지들과 조상들에게서 비롯되었다. 이를 분명히 밝혀 비판하고, 그들의 교설을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유일한 창조자이자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 돌이켜, 구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다른 이들도 그들에게서 더 크고 깊은 신비를 알게 되리라고 생각하여, 그럴듯해 보이는 그들의 그릇된 설득에 더는 끌려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도리어 우리에게서 제대로 배워, 그들이 그릇되게 가르치는 내용을 알고, 그 가르침은 비웃되, 그 사람들은 불쌍히 여기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그렇게 비참하고 불안정한 이야기들 속에서 몹시 우쭐해져, 그런 지식, 아니 무지 때문에 자기들이 다른 이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그들을 드러내는 일은 이것이다. 곧 그들의 견해를 밝히는 일이 그들을 이기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설프게 짜 맞춘 이 작은 여우의 몸 전체를 공개하고, 뚜렷이 드러내려고 힘썼다. 모두에게 드러난 그들의 가르침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이제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짐승이 숲에 숨어 있다가, 거기서 뛰쳐나와 많은 사람을 해친다고 하자. 누군가 숲을 헤치고 걷어 내어, 그 짐승 자체를 눈앞에 드러냈다면, 이제 그것을 잡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 짐승이 짐승인 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있고, 그 돌진을 피할 수 있으며, 사방에서 창을 던져, 상처를 내고, 그 해치는 짐승을 죽일 수 있다. 우리도 이와 같다. 그들이 감추고 자기들끼리만 조용히 간직하던 신비를 밝혀냈으니, 그들의 견해를 무너뜨리려고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대와 그대 곁의 모든 사람은 앞서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훈련하고, 그들의 악하고 조잡한 가르침을 무너뜨리며, 진리에 합당한 교설을 제시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약속한 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그들을 논박하겠다. 다음 권에서 그들 모두에게 반박할 것이다. 그대도 보듯이, 이야기가 길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을 무너뜨리는 데 쓸 양식도 마련하겠다. 서술한 순서에 따라 모든 견해에 맞서, 그 짐승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사방에서 상처를 입힐 것이다.

A talibus matribus, et patribus, et proavis eos qui a Valentino sint, sicut ipsae sententiae et regulae ostendunt eos, necessarium fuit manifeste arguere, et in medium afferre dogmata ipsorum, si qui forte ex iis poenitentiam agentes, et convertentes ad unum solum conditorem et Deum factorem universitatis, salvari possint: reliqui autem non jam abstrahantur a prava quasi verisimili suasione eorum, putantes majus et aliquid altius ab iis scituros se mysterium: sed a nobis bene discentes quae ab illis male docentur, derideant quidem doctrinam eorum, illorum autem misereantur, qui adhuc in his tam miserrimis et instabilibus fabulis tantam elationem assumpserunt, ut meliores semetipsos reliquis propter talem agnitionem, imo ignorantiam, arbitrentur. Detectio autem eorum haec est; sive adversus eos victoria est sententiae eorum manifestatio. Quapropter conati sumus nos universum male compositum vulpeculae hujus corpusculum in medium producere, et aperte facere manifestum. Jam enim non multis opus erit sermonibus ad evertendum doctrinam eorum, manifestam omnibus factam. Quemadmodum bestiae alicujus in sylva absconditae, et inde impetum facientis, et multos vastantis, qui segregat et denudat sylvam, et ad visionem perduxit ipsam feram, jam non elaboravit ad capiendam, videntes quoniam ea fera fera est: ipsis enim adest videre et cavere impetus ejus, et jaculari undique, et vulnerare, et interficere vastatricem illam bestiam. Sic et nobis, cum in manifestum redegerimus eorum abscondita et apud se tacita mysteria, jam non erit necessarium multis destruere eorum sententiam. Adest enim et tibi, et omnibus qui tecum sunt, ad haec quae praedicta sunt exerceri, et evertere nequam ipsorum doctrinas et inconditas, et apta veritati ostendere dogmata. Cum igitur haec sic se habeant, quatenus promisi, secundum nostram virtutem inferemus eversionem ipsorum, omnibus eis contradicentes in sequenti libro: (enarratio enim in longum pergit, ut vides) et viatica quoque dabimus ad eversionem ipsorum, occurrentes omnibus sententiis secundum narrationis ordinem, ut simus non tantum ostendentes, sed et vulnerantes undique bestiam.

번역 메모
  1. 서두 1 본문으로

    Quatenus로 시작한 이유절은 뒤의 necessarium duxi, 곧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라는 주절로 이어지는 긴 서두의 일부이다. 한국어는 그 이유를 설명하는 독립된 문장들로 나누어 옮겼다.

    aedificatio는 세우는 일을 뜻한다. 이 성경 인용의 낱말을 따라 ‘하나님께서 세워 가시는 일’로 옮겼다. agnitio는 이 문맥에서 지식을 가리킨다.

    인쇄된 ordinavit 옆의 [l. ornavit]은 Harvey의 교정 제안이다. 여기서는 ornavit를 채택하여 ‘꾸미신’으로 옮겼으며, 원래 형태와 채택 근거를 원문 데이터에 기록했다.

  2. 서두 2 본문으로

    에메랄드와 모조 유리의 비교는 라틴어에서 서술어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문장이다. in ejus contumeliam과 병기된 그리스어의 모욕한다는 표현을 근거로 한국어 문장을 풀어 옮겼다.

    라틴어의 non omnes cerebrum habent는 모두가 머리를 지닌 것은 아니라는 형태이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머리를 비워 내는 비유를 쓰며, Harvey는 4-5쪽 각주에서 두 형태의 관계와 수사적 표현을 논한다. 번역은 명시한 라틴어 대본을 따른다.

    flosculum은 작은 꽃을 뜻한다. 프톨레마이오스 주변의 가르침을 발렌티누스 학파에서 나온 작은 꽃에 견주는 표현으로 읽었다.

  3. 서두 3 본문으로

    barbarum sermonem은 저자가 그리스어와 구분하는 언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읽어 이방의 말로 옮겼다. 서문은 켈트인들 가운데 머문다고 소개한다.

    idiotice는 평범한 사람의 말투를 뜻하는 표현으로 읽었다. auges는 뒤의 기대와 권면을 따라 키워 갈 것이라는 미래 의미로 옮겼다.

  4. 1.1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발렌티누스 계열의 설명을 보고하는 대목이다. 말한다는 동사와 간접화법이 길게 이어지며, 아이온의 계보와 성경 해석도 그가 소개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아이온은 이 계보에 등장하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 같은 낱말의 복수형인 in immensis aeonibus는 시간의 흐름을 뜻하여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로 옮겼다. 플레로마는 이 존재들이 이루는 충만의 영역을 가리킨다.

    엔노이아는 생각, 카리스는 은총, 시게는 침묵, 누스는 지성, 알레테이아는 진리, 로고스는 말 또는 이성, 조에는 생명, 안트로포스는 인간, 에클레시아는 모임 또는 교회를 뜻한다. 이 문맥에서는 뜻을 지닌 명칭들이 인격화되어 짝을 이룬다.

    여덟 존재의 무리를 네 이름으로 부르는 이유를 본문은 각 이름에 남녀 한 쌍이 속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뒤에 나오는 열과 열둘을 합치면 서른이 된다.

    로고스와 조에에 이어지는 patrem은 단수이다. 뒤에 태어날 존재들의 아버지라는 설명은 로고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포도밭 일꾼의 시각은 원문의 첫째, 셋째, 여섯째, 아홉째, 열한째를 유지했다. 그 수를 합쳐 서른으로 만드는 것은 여기서 보고하는 이들의 비유 해석이다.

    인쇄 8쪽의 alitudinibus는 인쇄 형태 그대로 보존했다. 문맥과 병기된 그리스어의 높이를 뜻하는 표현에 따라 altitudinibus의 의미로 읽었다.

    Harvey판 1장 1절은 Massuet판의 1장 1-3절에 해당하는 범위를 포함한다. 인쇄면의 MASS. 난외 표기를 근거로 범위를 연결했다.

  5. 1.2 본문으로

    소피아는 지혜, 텔레토스는 의지와 관련된 이름이며, 호로스는 경계 또는 한계를 뜻한다. 본문은 아버지를 파악하려는 소피아의 움직임을 호로스가 붙들어 멈추는 이야기로 설명한다.

    passio는 소피아가 겪는 강한 정서적 동요를 가리켜 격정으로 옮겼다. intentio는 이 문맥에서 아버지를 알아내려는 생각을 가리킨다.

    라틴어 인쇄본의 [Aeonem, id est, Sophiam]을 대괄호와 함께 옮겼다. Harvey의 14-15쪽 각주 5는 이 네 단어가 고대 역자의 삽입이라는 Grabe의 견해를 논한다. demutatam은 앞의 Sophiam에 연결하여 변질된 소피아로 읽었다.

    이 단위의 첫 No와 뒤의 Nus는 누스라는 동일한 이름의 형태이다. 한국어 표기는 누스로 통일했다.

  6. 1.3 본문으로

    소피아를 여성으로 묘사하고 그가 낳은 것을 형체 없는 실체라고 부르는 말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신화의 구성 요소이다. qualem naturam habebat foemina parere는 여성으로서 자기 본성에 따라 낳을 수 있는 것으로 옮겼다.

    ne hoc ipsum finem habeat의 끝은 소피아 자신의 존재가 끝나는 것으로 읽었다. Harvey의 16쪽 각주 5도 이와 같이 설명한다.

    intentio와 concupiscentia는 이 문맥에서 소피아에게서 분리되는 생각 또는 욕망을 가리킨다. Harvey의 19쪽 각주 2는 둘이 병기된 그리스어의 같은 단어인 enthymesis를 옮긴 것이라고 설명한다.

    crucifixam은 라틴어 대본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옮겼다. Harvey의 20쪽 각주 1은 그리스어의 해당 동사를 울타리로 가로막아 격리한다는 의미로 설명한다. 두 언어의 표현 차이를 읽을 때 함께 고려할 대목이다.

    sine conjuge masculo-foemina는 아버지 자신의 모습을 설명하는 in imagine sua와 연결해 읽었다. 이어지는 pro masculo와 pro foemina도 라틴어 대본을 따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로 옮겼다.

  7. 1.4 본문으로

    그리스도와 성령이 한 쌍으로 나온다는 설명과 뒤이어 예수가 모든 아이온의 공동 산물로 나온다는 설명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이들의 계보에 속한다.

    innati comprehensionem cognoscentes sufficientes, sive idoneos, esse는 구문과 해석이 어려운 대목이다. 한국어는 태어나지 않은 이에 관한 자기들의 이해를 알고 그것으로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여기는 뜻으로 풀었다. Harvey의 21쪽 각주 3도 아이온들이 자기 이해의 범위를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설명한다. 원문 전문가의 추가 대조가 필요한 번역 선택이다.

    라틴어 본문은 성령을 여성적 존재들의 목록에 포함한다. 앞에서 짝을 이룬다고 설명한 계보를 따라 그 목록의 형태를 보존했다.

    patronymice는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부른다는 뜻이다. omnia는 모두에게서 나왔다는 다음 설명을 따라 전체로 옮겼다.

    마지막 ejusdem generis가 가리키는 동질성의 대상은 라틴어 자체에서 명시되지 않는다. 같은 부류의 천사들로 옮겨 그 범위를 유지했다.

  8. 1.5 본문으로

    이 단위는 앞의 계보를 요약한 뒤, 그들이 성경 구절을 아이온들의 수와 작용에 연결하는 방식을 보고한다. 부활 후 열여덟 달과 세례 후 한 해라는 기간도 이 보고 안에 포함된 주장이다.

    quasi in multa materia는 길을 잃는 비유로 읽어 큰 숲에 빠진 듯하다고 옮겼다. materia에는 재료나 물질뿐 아니라 나무와 숲의 뜻도 있다.

    ex agonia compago는 호로스 등의 이름과 이어지는 모호한 구문이다. Harvey의 24쪽 각주 1이 제시한 해석을 따라, 소피아가 고뇌에서 다시 굳게 세워지는 일로 읽었다. de poenitentia도 소피아의 돌아섬 뒤라는 앞 문맥에 연결했다.

    감사기도의 aeonas aeonum은 보통 영원무궁토록이라는 뜻으로 읽는 표현이다. 이 대목에서는 그 소리를 아이온이라는 존재의 이름과 연결하는 해석을 다루므로, 인용 부분에 아이온들의 아이온들이라는 형태를 남겼다.

    이오타와 에타는 예수의 그리스어 이름 앞의 두 글자이다. 그리스어 수 표기에서 각각 10과 8을 나타내므로, 여기서 보고하는 해석은 두 글자로 18을, 이오타 하나로 10을 센다.

    27쪽의 filii에 붙은 [d. filii]는 삭제를 제안하는 편집 표기이다. 본문에 인쇄된 아들이라는 독법을 유지하고, 삭제 제안은 원문 데이터에 따로 기록했다.

    28쪽의 advenisse in omnem substantiam suam은 자기 실체 전체 속으로 들어간다고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에는 풀어진다는 동사가 있으며, Harvey는 27-28쪽 각주 3에서 두 동사의 독법 차이를 설명한다. 라틴어의 의미 범위와 조건문의 연결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곳이다.

    성경 인용은 이 라틴어 대본의 어순과 낱말을 따라 옮겼다. 시대와 아이온의 연결, 전체라는 이름, 신성의 충만이라는 표현을 성경 해석 논거로 삼는 방식이 드러나도록 했다.

  9. 1.6 본문으로

    십자가는 앞에서 호로스에게 붙인 이름인 스타우로스의 라틴어 번역이다. 이 단위는 십자가와 경계라는 두 이름에 굳게 세움과 분리라는 작용을 연결하는 해석을 설명한다.

    키는 곡식을 까불러 알곡과 겨를 가르는 농기구이다. 본문은 이 기능을 구원받는 이들의 정화와 물질의 소멸에 연결하는 주장을 소개한다.

    바울 인용의 per quem은 라틴어의 남성 관계대명사 형태를 따라 그를 통해로 옮겼다. 바로 앞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읽었다.

    끝부분에서 이레네우스는 보고하던 해석에 대한 자기 평가를 밝히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굳게 지키라고 강조한다.

  10. 1.7 본문으로

    엔튀메시스는 생각 또는 숙고를 뜻한다. 여기서는 위의 소피아에게서 분리된 생각을 인격화한 존재의 이름으로 사용한다. 본문은 그를 아카모트라고도 부른다.

    인쇄 32쪽의 defervisse를 유지하여 가라앉았다고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밖으로 밀려나온다는 이미지를 담고 있으며, Harvey의 같은 면 각주 5는 라틴어 effervisse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두 형태의 의미 차이는 추가 검토가 필요한 부분이다.

    실체에 따른 형성과 지식에 따른 형성을 구분하는 문장을 보존했다. 지각을 갖추었다는 뒤의 표현도 이 구별과 함께 읽어야 한다.

    소피아를 아카모트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말과 어머니라고 부르는 말을 각각 대본대로 옮겼다. 본문은 소피아를 아카모트의 단독 발생 근원으로 설명하면서 두 호칭을 사용한다.

    34쪽의 [in]은 인쇄된 전치사 보충이다. 한국어에서도 속에서에 대괄호를 붙여 보충 위치를 드러냈다.

    demutatio와 contrarietas는 변화와 반대 상태로 옮겼다. Harvey의 35쪽 각주 1은 앞의 소피아에게는 지식에서 벗어난 변화가, 아카모트에게는 처음부터 지식에 반대되는 상태가 있었다는 구별로 설명한다.

    데미우르고스는 세상을 만드는 존재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이 구절은 아카모트의 돌아섬에서 세상의 모든 영혼과 데미우르고스의 영혼이 생겨났다는 주장을 보고한다.

  11. 1.8 본문으로

    서두는 Harvey가 대괄호로 제안한 Ecquid enim?을 채택하여 반문으로 옮겼다. 본문에 먼저 인쇄된 Et quidem enim과 채택한 독법을 원문 데이터에서 확인할 수 있다.

    높은 보수와 눈물, 땀, 뜨거운 물에 관한 대목은 이레네우스가 상대방의 설명을 풍자하며 제시하는 자기 말이다. 그들의 어머니라는 문장부터 상대방의 계보 설명을 다시 보고한다.

    파라클레토스는 돕거나 대변하는 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문맥에서는 앞서 공동의 열매로 나온 구원자에게 붙인 이름이다.

    골로새서와 관련된 인용의 divinitates는 대본의 낱말을 따라 신적 존재들로 옮겼다. 문헌에 실린 목록과 인용 형태를 보존했다.

    40쪽의 in incorporalem materiam을 몸을 이루지 않은 물질로 옮겼다. Harvey의 같은 면 각주 3은 뒤에 응집체와 물체가 되는, 아직 조직되지 않은 물질이라는 뜻으로 설명한다.

    41쪽의 conspectu는 바라봄을 뜻하는 인쇄 본문으로 유지했다. 함께 제시된 conceptu는 잉태를 뜻하는 대안이다. 앞의 concepisse visionem은 모습을 받아들이는 말로 옮겼으며, 보는 행위와 잉태의 연결은 같은 면 각주 2에서도 논의한다.

    마지막 illius imaginem은 라틴어의 단수 지시 형태를 살려 그의 형상이라고 옮겼다. 뒤의 문장은 영적 자손이 구원자의 호위자들을 닮았다고 설명한다.

  12. 1.9 본문으로

    이 대목은 실체를 물질적인 것, 혼에 속한 것, 영적인 것으로 나눈다. 라틴어 animalis와 그리스어에서 온 psychicus는 여기서 혼에 속한 같은 범주를 가리킨다. hylicus는 물질에 속한 것으로 옮겼다.

    데미우르고스를 하나님 아버지이자 구원자이며 왕이라고 부르는 부분은 라틴어 대본에 따른 것이다. 같은 면의 그리스어에는 아버지와 왕이라는 명칭이 실려 있다.

    메트로파토르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합한 명칭이고, 아파토르는 아버지가 없다는 뜻이다. Harvey의 42쪽 각주 3은 아카모트를 유일한 발생 근원으로 삼는 계보와 연결하여 두 이름을 설명한다.

    아카모트, 데미우르고스, 천사들의 관계를 각각 보이지 않는 아버지, 독생자, 나머지 아이온들의 형상으로 설명하는 문장이다. 한국어에서는 생략된 형상이라는 말을 보충해 관계를 드러냈다.

    헤브도마드는 일곱, 오그도아드는 여덟의 무리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일곱 하늘과 그 위의 어머니라는 배치를 앞의 여덟 아이온 무리와 연결하는 수적 설명이다.

    낙원은 이 보고에서 하나의 권능이자 넷째 대천사로 설명된다. 라틴어는 Archangelum이라고 명시한다.

    45쪽의 talis operationis는 그러한 활동으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생각 또는 여김을 가리키며, Harvey의 같은 면 각주 4는 라틴어 역자가 다른 낱말을 읽었을 가능성을 설명한다.

  13. 1.10 본문으로

    46쪽 라틴어에는 superiorem eum existentem praescire quae sunt spiritalia가 인쇄되어 있다. 이를 우월한 존재로서 영적인 것을 미리 안다는 뜻으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영적인 것을 알 힘이 부족하다는 방향이고, 48쪽 라틴어도 데미우르고스가 혼에 속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Harvey의 46-47쪽 각주 5는 이 불일치와 교정 가능성을 논한다. 한국어는 채택한 라틴어의 독법을 보존했으며, 이 문장을 저작의 일관된 주장으로 인용할 때에는 이 대조 정보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코스모크라토르는 세상을 지배하는 이를 뜻한다. 이 문헌이 보고하는 계보에서 마귀에게 붙이는 명칭이다. 데미우르고스와 구별하여 옮겼다.

    48쪽의 [autem]을 [한편]으로 표시했다. 같은 면에서 caelestis 옆의 supercaelestis와 materiae 옆의 moestitiae를 채택하여 각각 하늘 위, 슬픔으로 옮겼다. 기본 독법과 교정 표기는 원문 데이터에 보존했다.

    choicus는 흙에 속한 것을, hylicus는 물질에 속한 것을 가리킨다. 형상과 닮음을 각각 물질과 혼에 연결하는 주장의 구별을 살렸다.

    가죽옷을 감각을 지닌 살로 풀이하고, 영적 자손이 데미우르고스를 거쳐 혼과 몸에 심긴다고 설명하는 대목이다. 숨을 불어넣는 장면과 씨, 자궁의 비유를 각각 보존했다.

    perfectae rationis는 완전한 이성으로 옮겼다. ratio는 이성과 말의 의미를 함께 지니며, Harvey는 51쪽 각주 1에서 그리스어에 logos를 보충할 근거로 이 라틴어 표현을 든다. 용어의 인격적 의미 범위는 추가 대조할 지점이다.

  14. 1.11 본문으로

    물질적인 것, 혼에 속한 것, 영적인 것의 세 범주에 서로 다른 결말을 배정하는 주장을 보고하는 대목이다. 이레네우스는 그들이 자기들을 영적인 이들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혼에 속한 이들로 분류한다고 설명한다.

    suae potestatis est는 자기 권한 아래 있다는 말이다. 혼에 속한 존재가 어느 쪽으로 기울지 선택하는 문맥에 맞추어 스스로 선택할 권한을 지닌다고 옮겼다.

    구원자가 입는 그리스도와 몸에 관한 설명에서는 혼에 속한 것과 물질에 속한 것을 구별한다. 여기서 보이고 만질 수 있고 고통받을 수 있는 몸도 혼에 속한 실체로 설명된다.

    프시키코스와 프시키카는 그리스어에서 온 psychicus 계열의 낱말을 드러내는 표기이다. 라틴어 본문은 이를 animalis 계열의 말로 괄호 안에서 다시 풀이하므로 그 풀이도 보존했다.

    53쪽의 라틴어는 하나님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가진 이들과 아카모트에게서 신비에 입문한 이들을 이어 말한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하나님과 아카모트에 관한 완전한 지식을 먼저 말한다. 한국어는 실제 대본인 라틴어의 연결을 따랐다.

    금과 진창의 비유는 어떤 행위를 해도 자기들의 영적 실체가 손상되지 않는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설명하는 비유이다. 그 주장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비판이 다음 절로 이어진다.

  15. 1.12 본문으로

    금지된 행위와 여성들에 관한 비판은 이레네우스가 상대방을 고발하는 서술이다. 귀환한 여성들의 고백을 자기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는 구조를 보존했다.

    55쪽의 pro voluntate in honore idolorum 옆에 제시된 pro voluptate in honorem Deorum을 채택하여 즐거움을 위해 신들을 기리는 축제로 옮겼다. 원래 인쇄 형태와 교정 책임을 원문 데이터에 기록했다.

    형제와 자매라는 말은 함께 사는 관계를 가족처럼 보이게 했다는 앞 문장에 이어지는 반어적 호칭으로 읽었다. 한국어의 자매라던 여자와 형제라던 남자는 이 문맥을 드러낸다.

    syzygia는 짝 또는 짝의 결합을 뜻한다. 위의 짝에서 내려온 은혜와 지상의 결합을 연결하는 주장이어서 짝의 결합으로 옮겼다.

    인용문의 in saeculo와 de saeculo는 세상 안에 있음과 세상에 속함으로 구별했다. 같은 행위를 두 집단에 다르게 평가하는 논리가 두 전치사의 차이와 연결된다.

    이 Harvey 절은 통상 인용의 1권 6장 3-4절과 7장 1절 앞부분에 걸친다. 모든 씨가 완전해지면이라는 문장에서 통상 7장이 시작하며, 다음 Harvey 절의 첫 문장까지 통상 7장 1절이 이어진다.

    최종 회복에서는 영과 혼의 구별이 유지된다. 영적인 이들은 혼을 벗어 플레로마로 들어가고, 의로운 이들의 혼은 중간 영역에 머문다는 설명이다. refrigerare는 쉼을 얻는 뜻으로 읽어 안식을 누린다고 옮겼다.

  16. 1.13 본문으로

    마리아를 통과하는 그리스도, 세례 때 내려오는 구원자, 영적 씨와 경륜에 따라 마련된 몸을 구분하는 설명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상대방의 견해이다. 네 요소의 열거와 수난 때의 분리를 그 구조대로 옮겼다.

    수난을 겪는 존재의 열거에서 경륜에 따라 신비롭게 만들어진 것은 앞의 몸에 관한 설명을 받아 몸으로 풀었다. Harvey의 52쪽과 61-62쪽의 관련 대조를 함께 참조할 수 있다.

    위의 그리스도가 자신을 뻗은 십자가는 앞에서 스타우로스 또는 호로스라는 이름으로 설명한 경계와 연결된다. 라틴어 Cruci를 십자가로 옮기고 그 명칭의 문맥을 유지했다.

    63쪽의 de [ab], [a] Salvatore[m], quam [sive]는 각각 ab, a Salvatore, sive를 채택했다. 예언의 발화 근원을 나누는 문장과 뒤의 선택 접속 구조를 따라 읽었다.

    64쪽의 mundi creationem은 세상의 창조로 옮겼다. Harvey의 각주 3은 procurationem이나 curationem이라는 교정을 제안하며, 병기된 그리스어는 세상을 관리하는 경륜을 뜻한다. 대본 독법과 그 의미 차이를 함께 보존했다.

    백부장의 말은 이 문헌에 인용된 형태를 옮겼다. 데미우르고스를 그 백부장과 연결하는 것은 여기서 보고되는 해석이다.

  17. 1.14 본문으로

    세 부류를 열거하는 순서와 가인·아벨·셋을 열거하는 순서는 라틴어 본문 그대로 보존했다. 이 문장의 두 목록은 세 본성을 예시하며, 뒤의 문장들은 각 부류의 결말을 따로 설명한다.

    65쪽의 라틴어는 아카모트가 씨를 심고 혼들이 여기서 배울 것이라고 이어진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의로운 혼들에 심긴 영적인 것들이 여기서 교육받는 구조이다. Harvey의 같은 면 각주 5가 이 차이를 논한다.

    refrigeraturum과 refrigeraturis는 안식을 누리는 뜻으로 읽었다. 앞의 절과 같이 영적인 씨의 결말과 혼의 중간 영역 안식을 구별했다.

  18. 1.15 본문으로

    왕의 초상을 이루던 보석들을 떼어 개나 여우의 형상으로 바꾸는 모자이크 비유이다. 이레네우스는 성경의 낱말을 사용하면서도 본래 순서와 짜임을 바꾸어 다른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고 비판한다.

    de arena resticulas nectere는 모래로 밧줄을 꼰다는 속담의 형태를 살렸다. 뒤의 해체와 재배열 비유로 이어지는 표현이다.

    68쪽의 adsuentes와 quae를 대괄호의 교정 형태로 채택했다. adsuere는 기워 붙인다는 뜻이며, 옛이야기에 성경의 표현을 덧붙이는 행위를 묘사한다.

    늙은 여자들의 옛이야기라는 표현은 저자의 폄하적 비유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본문은 이 표현으로 상대방의 계보와 신화적 이야기를 평가한다.

  19. 1.16 본문으로

    이레네우스는 회당장의 딸, 바울의 유산된 태아 비유, 머리의 너울, 수난 중의 말과 제자도에 관한 말씀을 상대방이 어떻게 자기 체계에 맞추는지 이어서 보고한다.

    69쪽의 partu 옆에 제시된 parte를 채택하여 유산된 태아의 처지라고 옮겼다. 68쪽의 quae와 71쪽의 nolentem도 인쇄된 교정 제안을 채택했다.

    69-70쪽의 라틴어는 아카모트가 자기 얼굴에 너울을 썼다고 이어진다. 병기된 그리스어에는 모세의 너울을 이 일의 표시로 연결하는 문장이 있으며, Harvey의 각주 3은 라틴어 전승의 누락을 논한다. 한국어는 본문에 남은 라틴어를 따라 옮겼다.

    70쪽 [sic]은 이와 같이라는 뜻의 보충으로 읽어 [이렇게]라고 표시했다. 72쪽 [Suppl. Id autem,]은 지시어 Suppl.을 편집 정보로 분리하고, 보충문을 [또 이 말,]로 옮겼다.

    삭개오 인용 뒤의 생략 부호는 인쇄본에 있는 표시이다. Harvey의 71쪽 각주 4는 그리스어에 남은 영적 부류에 관한 한 문장을 보충하도록 제안한다. 원문 데이터와 번역에 생략 부호를 유지했다.

    사톤은 가루를 재는 용량 단위이다. 누룩 비유에서 세 부류와 연결하는 수가 드러나도록 세 사톤으로 옮겼다.

    수난 중의 인용과 고린도전서·로마서 인용은 이 대본의 형태를 옮겼다. 내 혼이 얼마나 슬픈가, 무엇을 말할지 모르겠다, 영에 속한 것들이라는 어휘와 첫 봉헌물·반죽의 비유를 보존했다.

    마지막 erexisse는 일으켜 세움으로 옮겼다. Harvey의 73쪽 각주 1은 발효 비유 및 병기된 그리스어 동사와의 차이를 논한다.

  20. 1.17 본문으로

    길 잃은 양, 드라크마를 찾은 여자, 시므온과 안나를 아이온들의 이야기와 연결하는 상대방의 해석을 보고한다. 각 장면과 대응시킨 존재를 따라 문장을 나누었다.

    intentio는 소피아의 생각으로 옮겼다. 회복되는 주체를 가리키는 haec는 이 존재로 옮겨 라틴어의 지시 형태를 유지했다. Harvey의 73쪽 각주 2는 위의 소피아와 아래의 소피아가 회복되는 앞의 두 대목을 함께 참조한다.

    시므온의 remittis는 현재형에 따라 놓아주십니다로 옮겼다. 안나의 이름과 남편과 함께한 일곱 해도 라틴어 대본대로 옮겼다.

    지혜라는 이름을 소피아와 연결하고, 지상의 부부 결합을 플레로마의 짝과 연결하는 논리를 보존했다. 마지막 인용은 이 대본의 그리스도와 교회라는 표현을 따른다.

  21. 1.18 본문으로

    대목 끝의 Et Ptolemaeus quidem ita는 여기 소개한 해석을 프톨레마이오스에게 돌린다. 이레네우스는 그 해석을 보고하며, 다음 절에서 반박한다. 중간에는 요한복음 본문을 다시 제시하는 연결문도 있다. Harvey의 79-80쪽 각주는 인용과 본문 제시의 관계를 논한다.

    요한복음의 principium을 시작으로 통일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해석은 시작을 누스 또는 아들과 연결하고, 그 안에서 말씀이 나온다고 설명한다. 한국어는 시간 표현과 인격화된 이름을 연결하는 이 논리가 드러나도록 옮겼다.

    76쪽의 praemisit 옆에 제시된 emisit를 채택했다. 그 문장의 나머지 라틴어에 따라 누스, 아들, 주님의 독생자라는 호칭을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호칭의 배열과 표현에 차이가 있다.

    그를 통해 생겨난 것들과 그 안에서 생겨난 생명을 구별하는 문장 구조를 보존했다. 요한복음 1장의 문장 경계를 나누는 방식이 이 해석의 논거가 된다.

    생명, 인간, 교회는 이 해석에서 조에, 안트로포스, 에클레시아라는 인격화된 명칭과 연결된다. 라틴어 개념어와 뒤의 그리스어식 명칭을 각각 옮겼다.

    78쪽의 manifestatur는 수동형에 따라 드러나는 것으로 옮겼다. 79쪽의 intra Pleroma도 플레로마 안으로 옮겼으며, 같은 면 각주 1은 병기된 그리스어의 온 플레로마라는 표현과의 차이를 설명한다.

    영광에 관한 풀이에서는 plena가 영광을 수식하고, 뒤에 다시 제시하는 요한복음 본문은 plenum을 쓴다. 한국어에서도 앞의 영광이 가득하다는 풀이와 뒤의 말씀이 충만하다는 문장을 구별했다.

  22. 1.19 본문으로

    여기서 이레네우스는 앞에서 소개한 해석을 직접 반박한다. 이름의 순서, 에클레시아의 생략,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의 동일성을 차례로 논한다.

    82쪽의 exponente 옆 Omnipotentem과 verisimilem 옆 verisimile를 채택했다. 첫 교정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수식하고, 둘째는 해석을 그럴듯하게 바꾼다는 연결로 읽었다.

    모노게네스, 소테르, 로고스에 붙은 라틴어 풀이를 독생자, 구원자, 말씀으로 함께 옮겼다. 반박은 이 명칭들을 여러 별개 존재로 나누는 상대방의 주장에 초점을 맞춘다.

    점을 쳐서 이름을 알아낸다는 말은 본문에 없는 이름을 추론해야 한다는 점을 비꼬는 표현이다. 저자의 비판적 어조를 유지했다.

  23. 1.20 본문으로

    이레네우스는 말씀, 독생자, 생명, 빛, 구원자,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고 논증한다. 원문에 열거된 명칭 가운데 포스는 빛을 뜻한다.

    85쪽의 [et]를 [또]로 옮겨 접속사 보충을 드러냈다. 86쪽에서는 et 옆의 ex를 채택하여 호메로스의 시구들로 논제를 만든다는 뜻으로 읽었다.

    이 시는 호메로스의 서로 다른 대목에서 가져온 열 행을 이어 붙인 예이다. 원래 연속된 호메로스 구절로 인용할 때에는 각 행의 출처를 따로 확인해야 한다. 원문 데이터에는 인쇄면의 시구 순서와 난외 위치 표기를 보존했다.

    시구는 라틴어 역문의 행 순서를 유지했다. 첫째 행의 동사에 해당하는 주어 에우뤼스테우스가 셋째 행에 나오는 배열도 살렸다. 메르쿠리우스는 헤르메스의 라틴어 이름이며, 디스는 저승의 신을 가리키는 라틴어 명칭이다.

    호메로스를 아는 사람은 낱낱의 시구를 알아보되 그 새 줄거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비유가 진리의 규범과 성경의 순서에 관한 논증으로 이어진다. Regula Veritatis는 진리의 규범으로 옮겼다.

    89쪽의 redemptio는 극의 마무리로 읽어 옮겼다. 구속이나 해방을 뜻하는 말이 이 극적 비유에서 어떤 뜻인지 Harvey의 각주 1이 여러 견해를 논한다. 이 해석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선택이다.

    마지막 ex ostensione는 그 증명에서도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증명에 앞서라는 형태이며, Harvey의 89쪽 각주 5는 이 차이를 논한다. 라틴어의 연결을 유지했다.

  24. 2장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교회가 사도들과 그 제자들에게서 받은 믿음을 요약하는 대목이다. 한 분 하나님, 한 분 그리스도 예수, 성령에 관한 서술과 그리스도의 심판·생명 부여가 긴 문장으로 이어진다.

    90쪽의 enim을 유지하고 옆의 [et quidem]은 편집 정보로 분리했다. [dis]seminata의 보충 접두사는 채택하여 온 세상에 흩어졌다는 뜻으로 읽었다.

    recapitulare는 다시 하나로 모아 정리한다는 뜻을 지니며, 여기서는 만물을 하나로 모으는 것으로 옮겼다. 에베소서와 빌립보서 등에서 온 표현은 이 문헌의 인용 형태를 따른다.

    그의 사랑 안에 머문 이들에는 처음부터 그렇게 한 이들과 회개한 뒤 그렇게 한 이들이 함께 포함된다. vitam donans와 incorruptelam loco muneris conferat는 생명과 썩지 않음이 선물로 주어진다는 문장이다.

  25. 3장 본문으로

    한 집, 하나의 혼과 마음, 하나의 입, 같은 태양이라는 비유를 따라 교회가 같은 믿음을 보존한다는 주장을 옮겼다. virtus traditionis는 전승이 지닌 힘으로 옮겼다.

    게르마니아와 이베리아인들, 켈트인들 등의 지명·집단명은 고대 본문의 형태를 살렸다. 세상 가운데라는 표현도 그 범위대로 유지했다.

    93쪽의 (lumen,)은 괄호를 유지해 (빛인)으로 옮겼다. Harvey의 94쪽 각주 5는 여러 라틴어 사본에 전하는 난외 유래의 말로 설명한다.

    교회 지도자의 말솜씨가 믿음의 내용을 늘리거나 줄이지 않는다는 논증이다. 가르치는 능력의 차이와 전승 내용의 동일성을 구별한다.

  26. 4장 본문으로

    이레네우스는 지식의 차이를 같은 믿음의 내용에 대한 더 깊은 탐구와 설명에서 찾는다. 비유, 하나님의 경륜, 여러 언약, 성경의 구원 약속을 연구할 주제로 열거한다.

    94쪽 [intelligentiam,]은 Harvey의 95쪽 각주 4에 따라 prudentiam의 난외 풀이로 분리했다. 한국어에서는 prudentia를 슬기로 옮겼다.

    95쪽의 보충 주어 [Deus]는 [하나님]으로 표시했다. 96쪽의 Dei [Deus]는 주격 Deus를 채택했다. 같은 면의 adesse는 Harvey가 96-97쪽 각주 4에서 제안한 nosse로 교정하여 안다는 뜻으로 옮겼다.

    gratias agere는 감사하는 표현으로 유지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고 고난받으신 뜻을 두고 감사한다는 연결로 읽었다. Harvey의 96쪽 각주 2는 이 동사에 관한 다른 교정 가능성을 논한다.

    97쪽 factus 옆의 fatus를 채택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옮겼다. 이어지는 라틴어 et dilecta, dilecta에는 같은 면 그리스어의 οὐκ에 대응하는 부정어가 빠져 있다. 그리스어를 근거로 프로젝트가 [non]을 보충하고, 한국어에도 [사랑받지 못하던]이라는 보충 범위를 표시했다.

    로마서 11장 관련 인용에서 라틴어의 incredulitas는 불신앙으로 옮겼다. 마지막 감탄에서는 풍요, 지혜, 지식의 세 표현과 심판·길의 평행을 살렸다.

  27. 5.1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발렌티누스와 제자들의 견해 차이를 열거하기 시작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첫째라는 말은 이 열거에서 먼저 다루는 발렌티누스를 가리킨다.

    99쪽 aliud, 100쪽 enixum, 101쪽 similiter의 교정 형태를 채택했다. 100쪽의 [reliquum]은 [나머지]로 보충 표시를 유지했다.

    그리스도를 낳는 어머니와 그림자, 뒤에 태어나는 데미우르고스의 순서를 보존했다. 두 경계는 앞에서 호로스라고 부른 존재의 역할을 나누어 설명한 것이다.

    folia veritatis는 진리의 잎들로 옮겼다. 101쪽에 병기된 그리스어는 식물을 뜻하는 형태를 쓰며, Harvey의 각주 2는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독법 차이를 논한다.

  28. 5.2 본문으로

    세쿤두스의 주장,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다른 교사의 주장, 이레네우스의 풍자가 차례로 이어진다. 이름난이라는 말은 라틴어 clarus를 옮겼다. Harvey의 102-103쪽 각주 2는 그리스어 epiphanes를 고유명사로 읽을지 형용사로 읽을지를 논한다.

    모노테스는 단일성, 헤노테스는 하나됨, 모나스는 하나의 단위, 헨은 하나를 뜻하는 명칭이다. 서로 비슷한 뜻의 낱말들을 별개의 존재 이름으로 나열하는 방식을 살려 음역했다.

    프로아르케는 원초적 시작을 가리킨다. 프로아넨노에토스는 생각할 수 없음에 앞섬을 덧붙인 표현이다. 노에톤은 사유될 수 있는 것, 아겐네톤은 생겨나지 않은 것, 아오라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내보내지 않으면서 내보낸다는 역설적 표현을 라틴어대로 유지했다. Harvey의 104쪽 각주 1은 최초의 시작이 근원과 분리되지 않는다는 해석을 논한다.

    이우와 페우는 비극의 탄식으로 제시된 소리이다. 뒤의 박, 텅 빔, 오이, 멜론은 이레네우스가 이름 만들기를 풍자하며 세운 대체 계보이다. cucurbita를 박, cucumis를 오이, pepo를 멜론으로 옮겼다.

    102쪽과 105쪽의 [et], 105쪽의 [antea]는 한국어의 [또], [전에]로 표시했다. 105쪽 nomina 옆의 nomen은 단수 이름으로 채택했다.

    프로아뉘포스타토스와 프로프로퀼린도메네는 풍자 속에서 쓰는 길고 과장된 명칭을 살려 음역했다. 앞섬을 나타내는 pro가 반복되며, 뒤의 채소 이름들과 대비를 이룬다.

  29. 5.3 본문으로

    106쪽의 절 번호와 첫 문장이 비공개 OCR 비교 입력에서 빠져 있었다. 인쇄본을 따라 다른 이들이 최초의 여덟 무리에 붙인 이름을 소개하는 문장 전체를 전사했다.

    첫째와 다섯째, 둘째와 여섯째 같은 위치 표현은 대본대로 옮겼다. 먼저 나온 네 존재와 그들에게서 나온 네 존재를 대응시켜 여덟 무리를 만드는 설명이다.

    아넨노에토스는 생각할 수 없는 것, 아레토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아오라토스는 보이지 않는 것, 아카탈렙토스는 파악할 수 없는 것, 아노노마스토스는 이름 붙일 수 없는 것, 아겐네토스는 태어나지 않은 것을 뜻하는 명칭이다.

    107쪽의 veri를 viri로, 뒤의 viri를 veri로 고치는 제안을 채택했다. 멜론과 궤변가를 부르는 풍자와 참됨에 관한 표현을 살렸다. 108쪽의 genus도 교정 형태를 채택했다.

    뷔토스의 성과 짝에 관한 여러 설명은 상대방 내부의 이견을 보여 주려는 열거이다. 양성을 지닌다는 말은 그 신적 존재에 관해 보고하는 묘사이다.

  30. 6.1 본문으로

    엔노이아는 생각, 텔레시스와 텔레마는 의지와 관련된 명칭이다. 뒤에 덧붙는 의지와 본래 지닌 생각의 구별을 따라, 누스와 알레테이아가 각각 무엇의 형상인지 옮겼다.

    109-110쪽의 이름에 쓰인 oe 합자를 풀어 전사했다. 엔노이아라는 한국어 표기는 앞의 동일한 명칭과 맞추었다.

    유피테르는 제우스의 라틴어 이름이다. 아킬레우스의 명예와 그리스인들의 죽음을 생각하며 잠들지 못하는 호메로스의 신을 끌어와, 생각과 의지가 분리된다는 설명을 풍자한다.

    마지막 totus의 반복은 온전히로 옮겼다. 이레네우스는 하나님의 생각, 원함, 지각을 여러 별개 존재로 나누는 견해와 자신의 설명을 대비한다.

  31. 6.2 본문으로

    아이온이 차례로 나왔다는 설명과 한꺼번에 나왔다는 설명을 구별한다. 자신들이 산파 노릇을 했다고 주장한다는 말은 그들의 확신을 이레네우스가 풍자하는 표현이다.

    아버지, 진리, 인간, 교회라는 이름을 생각과 발출, 자기 드러냄의 단계에 연결하는 설명이다. hoc의 반복은 그 때문에 또는 그것은으로 옮겨 각 명칭이 붙는 계기를 드러냈다.

    로고스와 조에, 안트로포스와 에클레시아의 발생 순서가 앞의 계보와 뒤집힌다고 명시한다. 원문의 부정과 대조를 유지했다.

  32. 6.3 본문으로

    구원자의 기원을 모든 아이온, 열 아이온, 열두 아이온, 그리스도와 성령 등으로 다르게 설명하는 견해를 열거한다. 각 견해의 주체를 어떤 이들 또는 다른 이들로 구분했다.

    Beneplacitum은 기쁘게 여겨진 이로 옮겼다. 온 플레로마가 그를 통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하기를 기뻐했다는 다음 설명과 연결된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명칭을 안트로포스의 후손이라는 계보로 설명하는 주장을 보존했다. 마지막에는 만물의 첫 근원 자체를 안트로포스라고 부르는 다른 해석이 이어진다.

  33. 7.1 본문으로

    마르코스의 행위와 성품에 대한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고발 서술이다. 마술과 능력 행함에 관한 주장도 이 서술자의 관점에 따라 읽어야 한다.

    114쪽의 [et perfectissimum,]은 Harvey가 각주 3에서 삭제 표시라고 설명한다. 그 지시에 따라 대본에서 제외하고, 인쇄 형태와 채택 이유를 편집 정보에 보존했다.

    아낙실라오스의 재주라는 표현은 마르코스의 행위를 기술과 속임수에 연결하는 비교이다. 본문이 언급한 이름과 평가를 그대로 옮겼다.

  34. 7.2 본문으로

    그라티아(Gratia)는 이 문맥에서 피를 흘리고 사람 안에 내려오는 인격적 존재로 묘사되어 은총으로 옮겼다. 마르코스의 직접 발화와 그를 묘사하는 이레네우스의 문장을 구분했다.

    잔에 대한 감사와 기원은 gratias agere, Eucharistia, invocatio를 옮긴 것이다. 원문이 서술하는 의식의 순서와 작은 잔에서 큰 잔으로 붓는 방향을 유지했다.

    118쪽에서 Locus autem tuae magnitudinis는 마르코스가 여자에게 하는 말의 일부이다. 보조 OCR에서 다른 문장 안으로 옮겨진 Locus를 인쇄면의 위치로 되돌렸다.

    만물의 아버지가 천사를 늘 바라본다는 문장은 라틴어의 주어와 목적어를 따른다. 마태복음 18:10을 연상시키는 말이 이 문헌에서는 이 순서로 제시된다.

    117쪽의 facit 옆에 인쇄된 fecit를 채택했다. 119쪽 괄호 끝의 [est]는 Harvey의 각주 2를 따라 삭제하고, 같은 문장 앞에 있는 est는 보존했다.

    우리보다 나은 이라는 인용자의 표현은 해당 인물을 이름 없이 지칭한다. 혼을 달아오르게 하는 영과 빈 공기의 비유를 본문에 제시된 순서로 옮겼다.

  35. 7.3 본문으로

    예언을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을 받는 영 가운데 누가 더 큰 권한을 지니는지를 묻는 논증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때와 인간이 명령하는 때의 대조를 유지했다.

    catathematizantes는 저주하며로 옮겼다. 곁에 인쇄된 [Ar. anathem.]은 다른 사본의 독법을 가리키는 편집 정보로 분리했다.

    잔치에서 제비를 뽑고 서로 예언을 명령한다는 예는, 명령하는 이가 명령받는 이보다 우위에 있다는 앞의 논증과 연결된다.

  36. 7.4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마르코스의 행위와 여자들의 고백을 보고하는 대목이다. 몸을 욕보임, 욕정, 타락이라는 평가어의 발화 책임은 이 서술자에게 있다.

    아시아는 본문에서 집사가 속한 지역을 가리킨다. 당시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 상황과 연결하여 읽을 수 있다.

    exhomologesis는 이 문맥에서 교회 공동체로 돌아온 뒤 이어지는 공개 고백으로 옮겼다. 같은 표현이 다음 절들에서 드러내 놓고 고백하는 행위로 다시 나온다.

  37. 7.5 본문으로

    구속(redemptio)은 심판자 앞에서 하는 말과 연결되어 있다. 마르코스의 제자들이 주장하는 효력과 그들이 말할 기도문을 직접 인용으로 구분했다.

    pro aeonon은 모든 시대에 앞선으로 옮겼다. Harvey 124쪽 각주 3도 여기서 시간의 지속을 가리킬 가능성을 제시한다.

    기도문의 quam, faciem Patris와 뒤따르는 형상들의 관계는 라틴어에서 문장 연결이 불분명하다. 당신을, 아버지의 얼굴을이라는 병렬 형태를 유지하고, quas와 nos imagines illorum은 우리를 그 형상들, 곧 그들의 모상으로로 연결했다. 이 두 구문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지점이다.

    우리 둘과 하나인 자의 연결은 라틴어 표현을 따랐다. Harvey 125쪽 각주 2는 어머니 아카모트와 영적인 씨의 관계로 설명한다. 본문에는 둘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아 대명사를 유지했다.

    호메로스가 말한 지하 세계의 투구는 착용자를 보이지 않게 하는 투구의 이미지이다. 여기서는 어머니가 추종자들을 심판자에게서 숨기는 장면에 사용된다.

  38. 7.6 본문으로

    우리가 사는 론강 지역이라는 말은 서술자가 자신의 지역을 밝히는 표현이다. 마르코스 계열의 활동이 그 지역까지 미쳤다는 보고로 읽힌다.

    양심에 인두 자국을 지닌이라는 표현은 cauteriatas conscientias를 옮겼다. 공개 고백, 조용한 후퇴, 완전한 이탈, 망설임이라는 반응을 각각 구분했다.

    지식의 자녀들은 그노시스를 자처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씨와 열매라는 말로 앞서 서술한 결과를 평가한다.

  39. 8.1 본문으로

    마르코스가 콜로르바소스의 시게를 받아들이는 자궁과 그릇이라고 자신을 말하는 대목이다. Harvey 127-129쪽은 이 첫 문장의 인물 관계와 전승 형태를 검토한다. 한국어는 채택한 라틴어의 이름과 관계를 유지했다.

    128쪽의 semen은 씨로 옮겼다. Harvey가 [f. l. postremitatis]로 제안한 교정은 편집 정보로 분리했다.

    물질적 실체를 지니지 않는다는 말은 insubstantivus를 옮겼다. Harvey 129쪽 각주 3은 이 문맥에서 substantia의 물질적 의미를 설명한다.

    아르케(ἀρχὴ)는 시작이라는 뜻이며 여기서는 이름의 첫 발음으로도 제시된다. 네 음절의 글자 수는 4, 4, 10, 12로, 합계 30이다. 요소, 글자, 음절은 원문의 서로 다른 표현을 구분하여 옮겼다.

    130쪽의 neque ipsum super elementum est는 라틴어 전승에서 구문이 불분명한 곳이다. 그 자체도 한 요소를 넘어서 있지 않다고 직역하고, 앞 문장과의 연결을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자신이 속한 전체의 형상을 보지 못한다는 관계절로 이어진다. Harvey 각주 4도 두 형태의 차이를 검토한다.

    우리가 함께 말하는 아멘과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는 천사는, 마르코스가 소리와 요소의 이론에 연결하는 교회 언어와 성경 표현이다. 인용된 주장의 발화자를 유지했다.

  40. 8.2 본문으로

    이 절과 다음 절이 합쳐 통상 인용의 1권 14장 2절이 된다. 데이터에는 앞부분과 뒷부분의 대응을 각각 표시했다.

    마지막 요소, 그 요소의 마지막 글자, 그 글자에서 나온 소리를 구별한다. 글자는 위로 받아들여지고 소리는 아래에 남는다는 서술의 주어를 각각 보존했다.

    글자의 이름을 다시 여러 글자로 적는 방식이 이어지는 설명이다. 다음 절의 델타 예시가 이 반복의 구조를 구체화한다.

  41. 8.3 본문으로

    델타의 그리스어 이름 ΔΕΛΤΑ는 다섯 글자로 이루어진다. 각 글자의 이름도 다시 여러 글자로 쓸 수 있다는 반복을 무한한 이름의 구성에 연결한다.

    본문의 글자들은 그리스어 문자로 전사했다. Ε, Τ, Α처럼 라틴 문자와 같은 모양의 글자도 이 예시에서는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읽는다.

    글자들의 바다와 깊이라는 비유, 첫 아버지라는 이름은 마르코스의 시게가 가르친 것으로 서술된다.

  42. 8.4 본문으로

    진리는 말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여성적 존재 알레테이아로 묘사된다. 열두 신체 부위에 알파벳의 처음과 끝에서부터 짝지은 스물네 글자를 배정한다.

    신체 부위는 라틴어 대본에 따라 옮겼다. Ventrem은 배, Verenda는 성기, Crura는 다리로 옮겼으며, 병기된 그리스어와 일부 부위가 다르다. 대응표에는 열두 문자 쌍을 따로 보존했다.

    스스로를 낳으며, 아버지를 주는은 Autogenitora et Patrodotora의 의미를 옮긴 것이다. 이 이름들의 정확한 기능과 아버지를 준다는 표현은 추가 해석이 필요한 지점이다.

    134쪽 dixisse 곁의 사본 독법 dedisse는 편집 정보로 분리했다. 본문은 말하다라는 dixisse를 따른다.

  43. 8.5 본문으로

    예수가 여섯 글자라는 계산은 그리스어 이름 Ἰησοῦς를 전제로 한다. 한국어 또는 라틴어 철자의 글자 수와 구별해야 하는 곳이다.

    insigne는 수를 나타내는 표지라는 의미를 살려 옮겼다. 같은 장에서 수표를 가리키는 말과 두드러짐을 뜻하는 말이 겹쳐 쓰이며, 뒤의 숫자 계산으로 이어진다.

    본래의 이름은 olim est nomen을 옮긴 것이다. 들리는 이름의 소리와 플레로마 안에 있는 이름의 능력을 구분하는 마르코스의 설명이다.

    136쪽 locuta est는 Harvey 각주 3이 제시한 locutam esse로 교정했다. 변경 전 독법과 채택 책임을 원문 수정본에 기록했다.

  44. 8.6 본문으로

    여기서 소리 없는 글자와 반모음은 고대의 글자 분류이다. Harvey 137쪽 각주 5-6의 분류에 따르면 소리 없는 글자는 Φ Χ Θ Π Κ Τ Β Γ Δ, 반모음은 Λ Μ Ν Ρ Σ Ζ Ξ Ψ이며, 모음은 Α Ε Η Ι Ο Υ Ω이다.

    아홉, 여덟, 일곱의 합계는 스물넷이다. 아버지 쪽에서 하나가 내려오면 여덟씩 세 무리가 된다는 설명과, 여섯을 네 배 하여 스물넷이 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quadripertita는 병기된 그리스어의 네 배가 됨과 6에서 24로 이어지는 계산에 따라 네 배가 되어로 옮겼다. 수를 세는 원리와 비유가 뒤섞인 서술의 순서를 보존했다.

    겹자음 글자 Ζ Ξ Ψ는 각각 두 자음값으로 세어 합계 여섯이 된다. 이것을 스물네 요소에 더하여 서른을 만드는 계산이다.

    137쪽 apud nos는 Grabe의 교정 apud vos를 채택했다. 138쪽의 [cum illis Gr.]는 Grabe의 보충 제안으로 분리하고 eundem numerum을 유지했다.

  45. 8.7 본문으로

    엿새 뒤 산에 오른 넷째와 여섯째는 인원과 숫자를 함께 읽는 해석이다. Harvey 139쪽은 예수와 세 제자에 모세와 엘리야가 더해지는 장면을 설명한다. 본문은 넷째와 여섯째라는 서수를 유지했다.

    비둘기를 뜻하는 그리스어 περιστερά의 글자 수치는 80+5+100+10+200+300+5+100+1=801이다. Ω와 Α의 값도 800+1이다. 한국어 번역은 라틴어에 있는 Ω, Α의 순서를 유지했다.

    coena pura는 이 문맥의 준비일로 옮겼다. Harvey 140-141쪽 각주 4는 라틴어의 이 표현을 병기된 그리스어 παρασκευή와 연결한다.

    첫 사람의 창조와 마지막 사람의 수난을 여섯째 날과 여섯째 시각에 연결하는 주장은 보고되는 해석이다. 이 문헌에 제시된 날과 시각을 그대로 보존했다.

    마지막 부분의 generationem은 탄생으로 옮겼다. 같은 문맥의 regenerationis는 다시 태어남으로 구별했다. 완전한 지성은 sensus가 가리키는 누스와 연결된다.

  46. 8.8 본문으로

    일꾼은 Diaconus를 옮긴 것이다. 여기서는 일곱이라는 수의 위대함이 맡은 역할을 가리킨다.

    일곱 하늘은 일곱 모음에 차례로 연결된다. 넷째 하늘의 Ι를 중심으로 그 자리부터 다시 세면 일곱째 하늘의 Ω가 넷째가 되는 설명이다.

    142쪽 라틴어 imitationes imitabilium은 모방할 수 있는 것들의 모상으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의 ἀμιμήτων은 모방할 수 없다는 뜻이므로 차이를 기록했다.

    141쪽의 intelligi 옆에 제시된 명령형 intellige를 채택하여 이해하여라로 옮겼다. 발화자의 직접 명령과 그 발화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평가를 구분했다.

  47. 8.9 본문으로

    아기들의 울음과 고통 중에 내는 오(Ω)라는 소리를 위의 권능과 연결하는 해석이다. 시편의 어린아이와 젖먹이, 하늘의 찬양에 관한 말이 그 근거로 인용된다.

    plangens Marcum은 마르코스를 애도하며로 옮겼다. 이 구절은 인쇄된 라틴어와 병기된 그리스어에 있으며, Harvey 143쪽 각주 1은 히폴리토스 병행문에서의 생략을 설명한다. 마르코스에 대한 풍자로 읽을 수 있는 지점이다.

    위의 혼이 자기와 동족인 혼을 알아보고 돕는다는 구문이다. 상하의 혼과 도움을 보내는 방향을 구별했다.

  48. 8.10 본문으로

    앞의 긴 설명을 서른 글자의 이름, 뷔토스, 진리의 몸, 발화, 세계와 인간의 혼이라는 순서로 되짚는다. 여기의 비판적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서 말한은 locuta est non locuta를 따라 모순된 표현을 보존한 것이다. 이름의 소리와 말로 드러나지 않는 이름을 구분했던 앞의 설명을 되받는다.

    이 절에서 통상 인용의 1권 14장이 끝난다. Harvey판에서는 다음 11절부터 통상 인용 15장의 내용이 같은 8장 안에서 계속된다.

  49. 8.11 본문으로

    홀로됨(solitas)과 하나됨(unitas)은 앞서 모노테스와 헤노테스라는 명칭으로 제시된 쌍과 연결된다. 여기서는 라틴어가 뜻을 풀어 쓴 방식을 따른다.

    시게의 철자는 먼저 Σιγὴ, 글자 수 계산에서는 Σειγὴ로 제시된다. 뒤의 형태가 다섯 글자이므로 한국어에서도 세이게라는 음역을 따로 두었다. Χρειστὸς도 여덟 글자를 세는 문맥에 쓰인 철자이다.

    아레토스 7, 세이게 5, 파테르 5, 알레테이아 7의 합계는 24이다. 보조 OCR에서 잘못 읽힌 알레테이아의 숫자는 인쇄면 145쪽의 vii로 확인했다.

    예수와 그리스도의 발음되는 이름,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이름을 구별한다. Harvey 145-146쪽 각주는 각 글자의 이름을 다시 철자로 풀어 세는 방식도 설명한다. 번역은 본문에 제시된 6, 24, 12, 30이라는 수를 보존했다.

  50. 8.12 본문으로

    여덟과 열을 이용하는 계산은 8+80+800=888이다. 예수의 그리스어 이름 Ἰησοῦς에 각 글자의 수치를 적용해도 10+8+200+70+400+200=888이 된다.

    147쪽의 dccc sunt lxxxviii는 앞뒤 어순이 거친 형태이다. 인쇄 본문은 보존하고, 번역은 앞의 8+80+800 및 뒤의 dccclxxxviii와 연결하여 팔백팔십팔로 옮겼다. 보조 OCR에서 다른 문장으로 이동한 이 구절을 인쇄면의 위치로 되돌렸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글자들을 한 자리, 십 단위, 백 단위의 여덟 개씩으로 나누는 설명이다. 여기의 여덟은 각 범주의 글자 개수이며, 이어지는 888은 마르코스가 그 구분에 부여한 해석이다.

    Α, Β, Γ, Δ는 각각 1, 2, 3, 4를 나타내고, 합계 10은 Ι로 표기된다. 본문은 이 이오타를 예수의 이름과 연결한다. 이 절과 다음 절이 합쳐 통상 1권 15장 2절이다.

  51. 8.13 본문으로

    그리스도가 여덟 글자라는 말은 Χρειστὸς라는 철자를 사용한다. Υἱὸς의 네 글자와 합하여 열둘을 만드는 계산이다.

    여덟 무리가 이오타와 결합하여 888이 된다는 말은 앞 절의 8, 80, 800이라는 반복 계산을 이어받는다. 이름과 수의 연결을 주장하는 발화자는 마르코스이다.

    149쪽 dictum은 불렀다는 뜻으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선택되었다는 뜻이며, Harvey 각주 1은 라틴어 electum의 가능성을 검토한다. 현재 대본은 dictum을 보존하며 문장 연결을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긴다.

  52. 8.14 본문으로

    가브리엘, 성령,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 동정녀를 로고스, 조에, 안트로포스, 에클레시아에 각각 배정하는 해석이다. 누가복음 1:35과 관련된 표현들이 이 계보 설명에 쓰인다.

    마리아를 통해 태어난 사람과 세례 때 그에게 내려오는 능력을 구별하여 서술한다. 함께 씨로 뿌려진 이들, 함께 내려오고 올라간 이들도 별도로 구분했다.

    151쪽의 agnovit autem Patrem Christum Jesum은 구문과 신학적 관계가 불명확하다. Patrem Christum Jesum이 목적격으로 이어지는 인쇄 형태에 따라 아버지 그리스도 예수를 알았다고 옮겼다. 이는 이 라틴어 독법에 한정된 번역 선택이다. Harvey 각주 1은 Christum의 격을 바꾸는 의견과 Christum Jesum을 다음 문장으로 옮기는 의견을 검토한다. 이 구절은 추가 원문 대조가 필요한 항목으로 유지한다.

    그리스어 병행문은 이 대목에서 아버지를 알리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국어의 알았다는 말은 실제 대본의 agnovit를 따른다. 해당 문장과 직전의 아버지를 드러냈다는 문장을 구분했다.

  53. 8.15 본문으로

    여기부터 이레네우스가 마르코스의 설명을 직접 반박한다. 진리의 몸을 그리스어 알파벳으로 설명하면, 그 몸이 글자를 고안한 사람들보다 뒤에 생겼다는 결론에 이른다고 비판한다.

    카드모스와 팔라메데스에 관한 내용은 이레네우스가 제시하는 알파벳 기원 전승이다. 거센소리, 겹자음, 긴소리 글자의 구분도 그 전승을 서술하는 순서에 맞추었다.

    153쪽 [temporis quam Palamedes]의 대괄호는 일부 사본의 생략을 나타낸다는 Harvey의 각주를 따른다. 한국어에도 같은 범위를 대괄호로 보존했다.

  54. 8.16 본문으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이에게 이름을 붙이고, 나눌 수 없는 실체를 나누는 모순을 지적하는 반박이다. 반복되는 물음과 주어는 마르코스를 향한 이레네우스의 직접 비판으로 옮겼다.

    154쪽 investigabilis는 그 면의 각주 1이 제시하는 뜻에 따라 찾아 헤아릴 수 없는으로 옮겼다.

    같은 면의 (Aeonem)과 [et decadem]은 본문에 인쇄된 괄호와 보충을 유지했다. 한국어에도 각각 (아이온), [열 무리]로 표시했다.

    다이달로스는 많은 부분으로 복잡한 구조물을 만드는 장인의 비유에 사용된다. 여기서는 신적 존재를 글자들로 제작하는 마르코스를 비판하는 표현이다.

  55. 8.17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원로의 시구를 인용한다. 신적 영감을 받은 원로, 진리의 전령, 하나님을 사랑하는 원로는 본문이 붙이는 호칭이다.

    라틴어 시구 여덟 행의 순서를 한국어 대응에서도 유지했다. 인쇄면 155-156쪽의 행 경계는 원문 데이터의 quoted_verse에 보존했다.

    사탄과 아자젤은 인용된 시에서 마르코스의 행위를 비판하는 데 쓰인 이름이다. 마술과 표징에 대한 평가는 인용된 원로와 그를 인용하는 이레네우스의 발화에 속한다.

    이 절로 Harvey판 8장과 통상 인용 1권 15장이 끝난다. 다음 장은 수와 잃은 양의 비유를 연결하는 해석을 다룬다.

  56. 9.1 본문으로

    아이온들의 발생과 누가복음 15장의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이야기를 하나의 수 체계로 연결하는 해석이다. 여기에 나오는 양 열하나는 열두 아이온에서 하나가 이탈했다는 설명에 따른 수이다.

    하나에서 넷까지의 합계는 10, 둘에서 여섯까지 짝수의 합계는 12, 둘에서 열까지 짝수의 합계는 30이다. 본문이 단계마다 수를 묶는 방식을 구분했다.

    에피세몬은 여기서 6을 나타내는 수표이다. 158쪽의 (consequentem sibi propter episemon)은 수난을 설명하는 괄호 구문으로 옮겼다. 대명사의 지시와 에피세몬의 반복이 불분명하며, Harvey 각주 1도 여러 교정 의견을 검토한다.

    남은 수 아홉과 열하나를 곱하면 99이다. 아멘의 그리스어 철자 ἀμήν에 수치를 적용하면 1+40+8+50=99가 된다.

  57. 9.2 본문으로

    에피세몬을 포함하면 Η가 여덟째가 된다. 에피세몬의 수치 6을 제외하고 Α에서 Η까지 더하면 1+2+3+4+5+7+8=30이다. 글자의 배열 순서와 수치의 합계를 구별한다.

    159쪽의 alpha[beta]는 알파[벳]으로 옮겨 단어 내부의 인쇄된 대괄호를 보존했다. 이어지는 설명은 Α에서 세기 시작하는 배열을 뜻한다. 같은 면의 [per numeros]에는 명시된 교정 numerum을 채택했다.

    160쪽 in figura Logi는 로고스의 형상으로 옮겼다. Harvey 각주 1은 이 자리의 그리스어 logos를 계산으로 이해하며 라틴어와의 불일치를 지적한다. 현재 번역은 라틴어 명칭을 보존하고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긴다.

    에피세몬을 제외하면 Λ는 열한째 글자이다. Α에서 Λ까지 수치를 합하면 99가 되며, 두 Λ가 결합하여 Μ 모양을 만든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원문 데이터에도 ΛΛ와 Μ의 형태를 보존했다.

    99를 지나 100에서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옮겨 가는 것은 손가락으로 수를 표시하는 방식에 대한 언급이다. Harvey 161-162쪽 각주 3이 이 계산 관습을 설명한다.

  58. 9.3 본문으로

    이레네우스가 앞의 수 해석을 비판하며 독자에게 직접 말하는 대목이다. 늙은 여자들의 이야기와 광란의 비유는 이 논쟁적 서술에서 사용된 표현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권고는 디도서 3:10, 인사하는 이의 참여는 요한이서 11절과 연결된다. 이레네우스가 이 인용들을 사용하는 문맥과 발화자를 유지했다.

    불경한 이들에게 기쁨이 없다는 말은 이 문헌에 인용된 Non enim est gaudere impiis를 그대로 옮겼다. 인쇄면은 이사야 48:22를 지시한다.

    무지의 더러운 영과 다른 일곱 영은 마태복음 12:43 이하의 이야기를 여덟 무리에 연결하는 반박이다. 원문의 ignorantia는 무지로 유지했다.

    164쪽 in exclusionem compositam은 배제를 위해 조합된으로 옮겼다. 무엇을 배제하는지와 앞 문장과의 관계가 라틴어에서 불분명하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속임을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킨다는 방향의 구문을 제시하므로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긴다.

  59. 10장 본문으로

    Harvey판은 절 번호 없이 한 장으로 싣는다. 통상 인용의 1권 17장 1-2절 전체에 대응하며, 그 경계를 원문 데이터에 별도로 기록했다.

    네 요소와 네 작용, 일곱 하늘과 여덟째 하늘 및 해와 달, 열두 별자리를 각각 여덟 무리와 열 무리와 열두 무리에 연결하는 설명이다. 분류와 수는 보고되는 해석을 따라 옮겼다.

    166쪽의 oneri는 짐을 실은 운행으로 풀어 옮겼다. 천구의 빠른 움직임과 반대 방향의 느린 움직임을 비교하는 문맥이다. 서른 해의 주기에 대해서는 Harvey 165-166쪽 각주 2도 계산 근거를 확정하지 못한다. 번역은 본문에 제시된 주기를 보존했다.

    trigesimam nominis는 이름의 순서에서 서른째인으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서른 이름을 가진이라는 형태이며, Harvey 166쪽 각주 1은 고대 숫자 표기와 서수 해석의 차이를 설명한다.

    한 시각을 서른 부분으로 나누고 황도의 각 별자리에 서른 부분을 배정하는 설명이 이어진다. 여기의 부분은 본문의 숫자 대응을 위한 단위이며, 현대의 분 단위와 구별해서 읽어야 한다.

    열두 지대의 climata는 지리적 구역을 가리킨다. Harvey 167쪽 각주 3은 고대 지리학의 위도와 낮 길이에 따른 구분을 설명한다.

    마지막에는 끝없는 영원과 수많은 시간의 차이를 데미우르고스의 한계에 연결한다. 이 주장도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상대방의 설명에 속한다.

  60. 11.1 본문으로

    모세의 창조 서술에서 네 이름, 열 이름, 열두 이름을 뽑아 아이온들의 무리에 배정하는 해석이다. 이레네우스의 도입 비판과 그가 보고하는 상대방의 설명을 구분했다.

    창세기 1:2는 땅이 보이지 않고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인용된다. 라틴어 invisibilis et incomposita와 병기된 그리스어 ἀόρατος καὶ ἀκατασκεύαστος의 표현을 따라 옮겼다.

    열 이름의 마지막은 나무, 열두 이름의 마지막은 사람이다. 그들이 세는 대상과 순서를 대응표에서 각각 구분했다.

    cetos는 큰 바다짐승들로 옮겼다. 창조된 생물을 나열하는 문맥에서 바다의 큰 생물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감각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의 넷으로 제시된다. 두 귀, 두 눈, 두 후각 기관과 쓴맛·단맛을 다시 세어 여덟을 만드는 설명이다.

    몸을 열두 지체로 나누는 방식은 앞서 나온 진리의 몸에 관한 설명과 연결된다. 여덟 무리는 감추어진 내장에, 열 무리는 손가락에 배정한다.

  61. 11.2 본문으로

    넷, 여덟, 열에 해당하는 성경 사례들을 모아 각각의 아이온 무리를 나타낸다고 읽는 해석이다. Harvey판 2절은 통상 인용 1권 18장 2-3절을 함께 포함한다.

    172쪽 [adj. salutarem]의 보충을 채택하여 [구원을 주는]으로 옮겼다. 대본과 한국어 모두에서 보충 범위를 대괄호로 구별했다.

    성막의 뜰은 atria, 제사장의 긴 옷은 poderem을 따른다. 이 문헌은 옷의 네 줄 보석과 성막 재료의 네 가지를 같은 수에 연결한다.

    금 열 닢의 팔찌들은 armillas aureorum decem을 옮긴 것이다. 열은 금의 수량을 나타내는 aureorum에 연결했다. 금의 단위와 창세기 24:22의 병행 관계는 추가 대조가 필요한 지점이다.

    여로보암이 받은 열 홀에서 홀은 왕권을 나타내는 sceptra이다. 한국어는 홀과 기둥 등 본문에 제시된 대상을 유지했다.

  62. 11.3 본문으로

    로기온(logion)은 제사장의 흉패를 가리킨다. 열두 돌, 열두 방울, 강과 제단의 열두 돌, 열두 사도 등을 같은 수의 사례로 연결한다.

    강 가운데 돌을 세운 Jesu는 이 문맥에서 여호수아를 가리킨다. 예수와 같은 이름 형태를 문맥에 따라 구별했다.

    175쪽 Saul 뒤에는 라틴어 판본이 생략 부호를 인쇄한다. 이 표시를 보존하고 한국어에도 ...로 나타냈다. 병기된 그리스어에는 사울이 서른 명의 초대객 가운데 첫자리에 앉은 일과 다윗을 잇는 말이 있다.

    서른 날 동안 들에 숨어 있었다는 수는 인쇄된 triginta diebus를 따른다. Harvey 174쪽 각주 2는 성경 병행문의 날짜와 동굴에 온 이들의 수가 이 서술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한국어 본문은 해당 문헌의 수를 보존했다.

  63. 12장 본문으로

    Harvey판 12장 전체는 통상 인용 1권 19장 1-2절에 해당한다. 별도 절 번호 없이 이어지는 장이며, 첫 아버지와 창조주를 구별하려는 성경 해석을 보고한다.

    이사야 1:3, 호세아 4:1, 시편과 로마서 3:11-12의 표현, 출애굽기 33:20을 뷔토스에 관한 말로 읽는 것이 상대방의 주장이다. 뒤의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관한 설명은 이레네우스 자신의 반박이다.

    다니엘이 천사에게 묻는 비유의 풀이는 absolutiones parabolarum을 옮긴 것이다. 여기서 absolutio는 설명하거나 풀어 주는 뜻으로 사용된다.

    흰 이들이 희어질 때까지는 인용된 albi inalbentur를 따른다. Harvey 176-177쪽 각주 1은 다니엘 12:9-10의 다른 전승과 이 인용 형태의 차이를 검토한다. 이해와 희어짐을 자신들에게 적용한다는 마지막 주장을 함께 보존했다.

  64. 13.1 본문으로

    예수의 어린 시절 알파와 베타를 가르친 스승에 관한 이야기를 인용한다. 이레네우스는 이 이야기를 상대방이 사용하는 외경과 허위 문헌의 사례로 제시한다.

    알파와 베타는 라틴어 본문에 인쇄된 Α와 Β를 뜻에 맞게 읽은 것이다. 알파라는 모형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이를 나타낸다는 해석이 이어진다.

    178쪽의 in typum에는 편집자가 제시한 in typo를 채택했다. 원래 형태와 교정 책임은 원문 수정본에 보존했다.

  65. 13.2 본문으로

    Harvey판 13장 2절은 통상 인용 1권 20장 2-3절을 함께 포함한다. 복음서의 여러 말씀을 그리스도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아버지의 증거로 읽는 해석을 보고한다.

    내 아버지께 속한 것들 가운데는 누가복음 2:49를 인용한 라틴어 in his quae Patris mei sunt를 따른다. 문헌이 구체적인 장소명 대신 사용하는 표현을 유지했다.

    선하신 분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인용 형태와 땅과 하늘의 주님이라는 어순은 실제 라틴어 대본을 따른다. Harvey 178쪽 각주 2는 선한 분에 관한 인용의 전승 차이를 설명한다.

    179쪽의 [d. non] 삭제 제안은 편집 정보에 분리하고, 대본의 in eo quod non dixerit를 유지했다. 앞의 답하지 않음에 관한 서술과 병기된 그리스어의 부정어 보충에 맞추어 말씀하지 않으심으로라고 옮겼다.

    이 말들 가운데 하나를 듣고 싶었다는 말은 Harvey 179쪽 각주 2가 외경에서 온 말로 설명하는 인용이다. 복음서의 다른 인용들과 함께 나열되어 있다는 문헌의 구성을 유지했다.

    내게 오너라, 내게 배워라 사이에 그리스어 병행문은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말을 싣는다. 라틴어는 이 어구를 생략하며, Harvey 179쪽 각주 5도 이를 지적한다. 한국어는 라틴어의 인용 범위를 따른다.

    180쪽 인용은 아버지를 아는 아들, 아들을 아는 아버지의 순서로 되어 있다. 아들이 계시한 이에 관한 마지막 예외 구문도 함께 보존했다.

    같은 면의 quod 뒤에 인쇄된 생략 부호를 보존했다. 병기된 그리스어에는 상대방이 지어냈다고 평가하는 어구가 있다. 한국어의 ...는 대본에 실제로 있는 생략 표시를 나타낸다.

  66. 14.1 본문으로

    Harvey판 14장 1절은 통상 인용 1권 21장 1-2절을 함께 포함한다. 구속의 다양한 방식을 설명하는 도입과, 세례와 구속을 구별하는 상대방의 주장이 이어진다.

    181쪽 destructionem, remissa에는 Harvey가 제시한 destitutionem, submissa를 채택했다.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방식이 사탄에게서 도입되었다는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비판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들어갈 수 없다는 표현은 라틴어 nobis를 유지한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이 보고되는 문맥 안에 놓였다.

    182쪽은 구속을 그에게 내려온 영의 것으로 말하며 spiritus를 사용한다. 다음 문장에서는 Christi가 나오므로 그리스도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의 명칭 차이도 원문 데이터에 기록했다.

    다른 세례를 향해 몹시 서두른다는 말과 세베대의 아들들에게 하신 말씀은 각각 누가복음 12:50 및 마가복음 10:38에 연결된다. 여기서 제시하는 인용의 형태와 구속에 적용하는 해석을 유지했다.

  67. 14.2 본문으로

    혼인방, 물에서의 세례, 발화와 응답, 향유 바름이라는 서로 다른 요소를 나열한다. 입문 의식을 행하는 이, 입문하는 이, 곁에 서 있는 이들의 발화를 구분했다.

    183쪽 veritate[m]의 격 어미를 채택하여 veritatem으로 전사했다. [in]과 [et redemptionem]은 Clermont 사본에서의 생략이라는 Harvey 184쪽 각주 4의 설명에 따라 괄호를 보존했다. 한국어에도 [안으로]와 [구속과]로 표시했다.

    바시마로 시작하는 발화는 문헌이 히브리어 이름들이라고 부르는 말들이다. 한국어 음역은 이 판본의 라틴 문자 전사형을 읽은 것이며, 고대 발음을 확정한 표기는 아니다. 전사형 전체를 원문 데이터의 transmitted_ritual_formula에 보존했다.

    두 번째 발화의 메시아, 우파르 등도 라틴 문자 전사형을 따른 음역이다. 이어지는 뜻풀이는 문헌 자체가 제공하는 해석을 번역한 것이다. Harvey 각주의 시리아어 복원은 본문과 구별하였다.

    184쪽 in zonis luminis는 빛의 띠들 가운데로 옮겼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빛의 생명들 안에서라는 형태이다. Christus Dominus viventis는 나자렛 예수에 이어지는 동격과 살아 있는 이의 주님이라는 속격으로 이해했다. 이 의식문의 문장 연결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지점이다.

    이아오는 본문에 인쇄된 Iao를 옮긴 이름이다. 자기 혼을 구속했다는 말의 대명사를 유지했다. 발삼 향유는 opobalsamum을 옮겼으며, 문헌에서는 위의 향기로움을 나타내는 모형으로 설명된다.

  68. 14.3 본문으로

    물을 사용하지 않고 기름과 물을 머리에 바르는 방식, 의식 자체를 물리치고 앎을 구속이라고 부르는 방식이 구별된다. 이 구별과 그 근거는 보고되는 집단들의 주장이다.

    186쪽 de ignorantia labis et passione는 결함의 무지와 수난에서로 옮겨 라틴어 형태를 보존했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무지에서 결함과 수난이 생겼다는 연결이므로, 문장 관계를 추가 대조할 필요가 있다.

    몸, 혼, 영에 속한다는 표현은 corporalem, animalem, spiritalem을 각각 구별한 것이다. 속사람의 구속을 영적인 앎에 연결하는 설명으로 이어진다.

    같은 면에서 편집자가 제시한 [adj. et]를 [et]로 채택하고 한국어에서도 [또]로 표시했다. 혼이 영의 거처라는 문장을 연결하는 보충이다.

  69. 14.4 본문으로

    라틴어는 mortuos와 죽은 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Harvey 186-187쪽 각주 3은 임종자를 말하는 그리스어 병행 전승과 비교한다. 한국어는 채택한 라틴어의 죽은 이들이라는 표현을 유지했다.

    보이지 않는 것들 위로 올라간다는 말은 super invisibilia를 옮긴 것이다. 권세들이 붙잡거나 보지 못한다는 설명과 속사람, 몸, 혼의 서로 다른 행선지를 구별했다.

    187쪽 deducit enim genus는 3인칭이다. 앞의 아카모트를 주어로 이해하여 그는 혈통을 이어받았다고 옮겼다. 이어지는 나는 다시 간다는 1인칭과 구분했으며, 이 인칭 연결은 추가 대조 항목이다.

    아버지와 남성인 짝이 없다는 관계절은 너희 어머니에 연결했다. 소피아는 그 어머니의 어머니로 제시되므로 두 대의 관계를 구별했다.

    188쪽 ipsos와 projicientes는 복수형이다. 의식에 참여한 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입문한 이들은으로 옮겼다. Harvey 각주 1은 앞의 단수 및 병기된 그리스어와의 불일치를 검토한다.

    매듭을 던져 버린다는 말 뒤에는 그것이 혼이라는 풀이가 붙는다. 몸과 혼을 벗고 위로 올라간다는 의식문의 설명을 마무리하는 표현이다.

  70. 15장 본문으로

    Harvey판 15장 전체는 통상 인용 1권 22장 1-2절에 해당한다. 여기서는 이레네우스 자신의 진리의 규범을 제시하고, 뒤이어 다른 집단들의 기원에 관한 설명으로 전환한다.

    189쪽 [sempiterna, et ea omnia,] 대신 Harvey가 제시한 aeonia를 채택하여 영속하는 것들로 옮겼다. 각주 1에는 사본의 et aeonia와 편집자의 해석 근거가 제시된다. 이 채택은 Harvey의 교정 의견을 따른 것이며, 대안 독법과 책임은 원문 데이터에 보존했다.

    하나님의 생각은 sententia를 옮긴 것이다. Harvey 각주 2가 소개하는 Junius의 essentia라는 교정은 별도 대안으로 기록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 사이의 [et]는 편집자의 접속사 보충이다. 한국어에도 [또]로 구별했다.

    하나님이 빚으신 것을 멸시한다는 대목은 몸의 부활과 자기 구원에 대한 반박으로 이어진다. 샘, 뿌리, 나무, 열매의 비유는 이단의 계보를 설명하려는 다음 장의 도입이다.

  71. 16.1 본문으로

    누가를 사도들의 제자이며 추종자라고 부른 뒤 사도행전 8:9-11을 인용한다. 이것은 누가와 사도들의 관계 및 사도행전 본문의 귀속에 관하여 이레네우스가 제시하는 증언이다. 원문 데이터에도 author_attribution_claim으로 기록했다.

    사도행전 8장의 시몬 이야기와 베드로의 말씀이 인용된다. 인용 뒤에는 시몬의 후속 행적과 가르침에 관한 이레네우스의 서술이 이어진다.

    190쪽 [artem]은 마술이라는 말에 붙은 기술이라는 명사이다. Voss 사본과 Clermont 사본의 차이를 표시한 괄호를 한국어에도 [기술]로 보존했다.

    클라우디우스 때 시몬이 동상으로 기려졌다는 말은 dicitur라는 전언 형태를 유지했다. Harvey 191쪽 각주 1은 사비니계 신 세모 상쿠스와의 혼동 가능성을 제시한다.

    유대인들 가운데 아들, 사마리아에서 아버지, 나머지 민족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은 본문에서 시몬에게 귀속된다. 그가 자기를 가장 높은 능력이라고 불렀다는 설명과 연결된다.

  72. 16.2 본문으로

    모든 이단이 시몬에게서 생겨났다는 첫 문장은 이레네우스가 제시하는 계보의 틀이다. 이어지는 헬레나와 엔노이아의 이야기도 시몬의 가르침에 관한 그의 보고로 읽는다.

    헬레나를 자신의 정신의 첫 생각, 만물의 어머니로 부르는 설명이다. 엔노이아는 생각을 가리키는 이름이며, 본문의 Ennoiam과 Ennoian이라는 목적격 형태를 각각 보존했다.

    시몬이 데려온 헬레나와 트로이 전쟁의 헬레나를 여러 몸으로 옮겨 가는 엔노이아라는 설명으로 연결한다. 스테시코로스가 시력을 잃고 되찾았다는 이야기도 그 설명 안에 인용된다.

    팔리노디아는 앞서 한 말을 거두어들이는 노래를 뜻한다. 여기서는 헬레나를 비난하던 시인이 그를 찬양하는 시를 썼다는 대목에 나온다.

    잃은 양을 엔노이아에 적용하고, 시몬이 그를 결박에서 풀어 주러 왔다고 해석한다. 구원과 은혜, 의로운 행위에 관한 뒤의 문장들도 이 서술에서 시몬의 주장에 귀속된다.

    190쪽 이후 주변의 그리스어와 a-e 표시는 Harvey가 히폴리토스 등의 병행문을 비교해 제시한 자료층이다. 한국어는 각 쪽의 라틴어 본문을 대본으로 유지했다.

  73. 16.3 본문으로

    이 집단의 생활과 의식에 관한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고발 서술이다. 종파의 이름과 지식의 기원을 연결하는 마지막 문장도 그의 논쟁적 설명에 속한다.

    파레드로이는 곁에서 돕는 영들, 오니로폼포이는 꿈을 보내는 존재들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Harvey 194쪽 각주 2가 관련 용례들을 설명한다.

    유피테르와 미네르바는 각각 Jovis와 Minervae를 옮긴 이름이다. 본문은 시몬과 헬레나의 형상을 이 신들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보고한다.

    거짓으로 지식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은 falsi nominis scientia를 옮겼다. 디모데전서 6:20의 표현과 연결되는 말로, 시몬파에 관한 이레네우스의 평가를 마무리한다.

  74. 17장 본문으로

    Harvey판 17장은 절 번호 없는 한 장이며, 통상 인용의 1권 23장 5절에 해당한다. 시몬의 후계자로 메난드로스를 소개한다.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서 구원자로 보냄을 받았다는 말은 메난드로스가 자기 자신에 관해 하는 주장으로 서술된다.

    그를 향한 세례를 통해 이미 부활을 받고 늙거나 죽지 않게 된다는 주장이 본문의 마지막 내용이다.

    Harvey 195쪽 각주 2는 유세비우스 『교회사』 3.26의 병행 서술을 제시한다. 후대 교회사에서 이레네우스의 보고가 전해지는 관계를 추적할 수 있는 대목이다.

  75. 18장 본문으로

    Harvey판 18장 전체는 통상 인용 1권 24장 1-2절에 해당한다. 사투르니누스와 바실리데스가 각각 시리아와 알렉산드리아에서 다른 가르침을 폈다는 도입 뒤, 사투르니누스의 견해를 서술한다.

    형상과 닮음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는 인용에는 우리의라는 말이 없다. Harvey 197쪽 각주 3은 일부 이전 판본의 첨가를 검토한다. 한국어는 이 문헌에 실린 인용 범위를 유지했다.

    생명의 불꽃이 사람을 일으키고 마디를 갖추며 살게 한다는 설명이다. articulavit는 관절과 마디를 갖추어 준다는 뜻으로 옮겼다.

    197쪽은 모든 지배자가 그의 아버지를 없애려 했다는 라틴어의 주어와 목적어를 유지했다. 병기된 그리스어에서는 아버지가 지배자들을 없애려 한다는 관계로 읽힌다. 그의 아버지라는 대명사의 지시도 확정하지 않고 보존했다.

    혼인과 출산, 음식 절제, 예언의 기원에 관한 말은 사투르니누스와 그를 따르는 이들의 견해로 보고된다. 꾸며 낸 절제라는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논쟁적 서술이다.

  76. 19.1 본문으로

    바실리데스의 계보는 누스, 로고스, 프로네시스, 소피아와 뒤나미스, 능력들과 지배자들과 천사들로 이어진다. 이름의 뜻은 각각 지성, 말씀, 슬기, 지혜, 능력과 연결된다.

    같은 방식의 발생을 반복하여 365개의 하늘과 한 해의 날수를 연결하는 설명이다. 위의 존재들과 대응하는 형상이라는 antitypi를 이 문맥에 따라 옮겼다.

    199쪽 [et]를 대괄호와 함께 유지하고 한국어에는 [또]로 표시했다. Harvey 각주 4가 Arundel 사본의 형태와 연결하는 접속사이다.

  77. 19.2 본문으로

    가장 아래의 하늘을 차지한 천사들과 그들의 우두머리를 배정하는 바실리데스의 설명이다. 민족들 사이의 대립도 이 천사들의 지배 관계로 설명하는 서술 안에 놓인다.

    구레네 시몬이 예수의 모습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고 예수가 시몬의 모습을 취했다는 내용은, 이레네우스가 바실리데스의 견해로 보고하는 주장이다. 앞의 사마리아 사람 시몬과 이 시몬을 구별해야 한다.

    한국어 본문에서는 Cyrenaeum을 키레네 사람으로 옮겼다. 키레네는 한국어 성경에서 구레네로도 적는 지명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이를 고백하거나 부인한다는 대조는, 몸 없는 능력으로 나타났다는 앞의 설명에서 나온 주장이다. 그 주장의 발화자와 부정·조건 관계를 유지했다.

  78. 19.3 본문으로

    Harvey판 19장 3절은 통상 인용 1권 24장 5-6절을 함께 포함한다. 혼의 구원, 율법과 예언, 우상 제물, 천사들의 이름, 은밀한 지식과 신앙 고백의 관계를 차례로 서술한다.

    201쪽 [Th. adj. προσέταξε]는 테오도레토스 병행문의 추가 동사를 가리키므로 편집 정보로 분리했다. 본문의 라틴어 인용 범위는 그대로 유지했다.

    카울라카우에 관한 라틴어 mundus nomen esse는 구문이 불완전하다. 여기서는 구원자가 내려오고 올라갔다는 세계의 이름으로 연결했다. Harvey 202쪽 각주 1은 그리스어의 훼손을 가정하여 낯선 이름이라는 해석을 제안한다. 이 문장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지점이다.

    그 이름 때문에 고난받는다는 대목은 공개적인 고백과 은폐를 다루는 문맥이다. 너는 모든 이를 알되 아무도 너를 알지 못하게 하라는 직접 발화와 연결된다.

    203쪽은 본문의 continere를 따라 감추어 두는 것으로 옮겼다. 옆에 제시된 pertinere와 각주 2의 사본 설명은 대안 정보로 보존했다.

  79. 19.4 본문으로

    Mathematici는 Harvey 203쪽 각주 4가 설명하는 당시의 용법에 따라 점성가들로 옮겼다. 하늘들의 장소와 위치를 정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라틴어 본문에 그리스어 문자로 인쇄된 ἀβράξας를 아브락사스로 옮겼다. 글자의 수치는 1+2+100+1+60+1+200=365이다.

    이름의 철자와 글자 수치는 원문 데이터의 name_with_numerical_value에 기록했다. 이 절로 통상 인용의 1권 24장이 끝난다.

  80. 20.1 본문으로

    카르포크라테스와 그를 따르는 이들이 예수의 혼, 기억, 위의 능력과 다른 사람들의 혼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뒤의 베드로와 바울에 관한 비교도 이들의 주장으로 보고된다.

    204쪽 qui는 Harvey가 205쪽 각주 5에서 지지하는 quum으로 옮겼다. 같은 쪽의 poenas, Eam, quidam et도 편집자가 인쇄한 교정을 채택했다. 원래 독법과 채택 근거를 각각 원문 데이터에 남겼다.

    circumlatio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순환으로 옮겼다. 위의 세계에서 보았던 것을 혼이 기억한다는 설명의 공간과 움직임을 함께 나타낸다.

    그 혼과 비슷한 것들을 품은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문장은 et eas, quae similia ei amplecterentur, similiter의 생략된 연결을 유지했다. eas가 가리키는 여성 복수 대상은 문맥에서 혼들과 연결되며, Harvey 204-205쪽 각주 4가 병행 전승을 비교한다.

    유대인들의 관습 속에서 자랐으나 그들을 업신여겼다는 말은 라틴어의 남성 복수 eos를 유지했다. 병기된 그리스어는 유대의 관습들을 가리키는 형태로 이어진다. 이 지시 관계는 추가 대조 항목이다.

    passiones는 형벌로 사람들 안에 있던 고통들로 옮겼다. 그 고통들을 없애는 능력을 얻었다는 문맥이다.

  81. 20.2 본문으로

    마술과 생활에 관한 고발, 교회의 이름이 비방받는다는 우려, 혼이 여러 삶을 거친다는 주장으로 서술이 이어진다. 이레네우스의 평가와 그가 보고하는 상대방의 설명을 문맥에 따라 구분했다.

    207쪽 impiam 뒤에 Harvey 각주 1이 제안한 habent를 보충하고 [habent]로 표시했다. 한국어에도 [지니며]로 보충 범위를 보존했다.

    몸에서 몸으로 옮겨 가며 모든 경험을 채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괄호 속의 한 번의 삶에서 모든 것을 행하는 경우와, 뒤의 여러 삶을 통한 충족을 구분했다.

    적대자, 재판관, 하속, 감옥, 마지막 콰드란스에 관한 말은 마태복음 5:25-26과 누가복음 12:58-59에 연결된다. 여기서는 감옥을 몸으로, 빚을 갚는 일을 경험을 채우는 일로 풀이한다.

    콰드란스는 본문에 나오는 작은 화폐 단위 quadrantem의 이름이다. 마지막 단위까지 갚는다는 인용의 구체성을 보존했다.

    그들에 대한 심판은 정당하다는 말은 로마서 3:8의 표현과 연결된다. 해당 문장은 이레네우스 자신의 판단으로 제시된다.

  82. 20.3 본문으로

    나는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ego nequaquam credam에는 목적어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한국어는 이 생략을 유지했다. Harvey 209쪽 각주 3은 상대방의 논리를 되받는 풍자로 이해한다.

    그들의 저술에 적혀 있다는 말을 먼저 제시한 뒤, 예수가 제자들과 사도들에게 따로 말했다는 주장을 보고한다. 이 전달 관계를 원문 데이터의 reported_secret_teaching_claim에 구분했다.

    믿음과 사랑에 따른 구원, 사람들의 판단에 따른 선악의 구분은 인용된 집단의 설명이다. 이 문맥에서 indifferentia는 그 자체로 선악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옮겼다.

  83. 20.4 본문으로

    마르켈리나가 아니케토스 때 로마에 왔다는 연대 표지와, 이 집단이 스스로 그노시스파라고 불렀다는 보고를 보존했다.

    낙인의 위치는 라틴어 posterioribus partibus exstantiae dextrae auris에 따라 오른쪽 귓불 뒤편으로 옮겼다.

    그리스도의 형상이 빌라도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내용은 이 집단의 주장으로 보고된다. 원문 데이터의 reported_image_provenance_claim은 주장하는 집단, 전하는 저자, 주장된 제작자를 구분한다.

    형상에 관을 씌우고 철학자들의 형상과 함께 두었다는 설명이다. 피타고라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는 본문의 이름을 순서대로 유지했다.

  84. 21장 본문으로

    케린토스에 관한 문헌의 보고이다. 예수의 인간적 출생, 세례 때 내려온 그리스도, 수난 이전의 분리를 구별하여 서술한다.

    211쪽 Asia는 아시아로 유지했다. 편집자가 제시한 Aegypto라는 교정과, 이집트에서 교육받았다는 그리스어 병행문의 내용을 구분했다. Harvey 각주 1은 이집트의 교육과 아시아의 활동을 함께 서술하는 테오도레토스의 기록도 제시한다.

    그에게 그것은 불가능하게 보였다는 구문은 인쇄 본문의 대괄호를 유지했다. Harvey 각주 2는 난외 주석일 가능성을 제시하므로, 한국어에도 대괄호로 구별했다.

  85. 22장 본문으로

    에비온파가 마태에 따른 복음서만 사용하고 바울을 율법의 배교자로 여겨 거부한다는 보고이다. 문헌명, 사용 범위, 거부 대상과 이유를 원문 데이터의 reported_text_use_claim에 기록했다.

    212쪽의 non은 Harvey 212-213쪽 각주 3에 따라 삭제했다. 세상의 창조에 관한 견해와 주님에 관한 견해를 구별하고, 후자에서 케린토스와 카르포크라테스와 비슷하다고 읽는 교정이다.

    마태에 따른 복음서라는 명칭은 본문이 제시한 명칭이다. 이 집단이 사용한 책의 구체적인 형태를 확인하려면 다른 인용과 전승 자료를 대조해야 한다.

    할례와 율법의 관습, 예루살렘 숭배에 관한 마지막 문장은 이레네우스가 묘사하는 집단의 생활과 경건에 속한다.

  86. 23장 본문으로

    니골라파의 스승 니골라를 사도들이 처음 집사의 직무에 세운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와 연결한다. 이레네우스가 제시하는 시조 귀속 주장을 원문 데이터에 구분했다.

    요한의 묵시록이라는 이름으로 문헌을 지시하고 요한계시록 2:6을 인용한다. 이 문장 자체에는 요한의 이름에 사도 등의 신원 표기가 더해져 있지 않다.

    nullam differentiam은 간음과 우상 제물을 먹는 일이 그 자체로 선악의 차이가 없는 행위라고 가르친다는 뜻으로 옮겼다. 집단의 가르침에 대한 이레네우스의 비판이다.

  87. 24장 본문으로

    케르돈이 시몬 주변의 이들에게서 계기를 얻어 로마에 왔다고 서술한다. 휘기노스의 감독직을 도착 시기의 표지로 사용한다.

    감독직 계승의 아홉째라는 nonum을 그대로 옮겼다. Harvey 214-215쪽 각주 2는 다른 계승 목록의 수와 비교하고 계산 방식 또는 전승상의 문제를 검토한다.

    율법과 예언자들의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의 아버지를 구별하여 각각 알려진 분과 알려지지 않은 분, 의로운 분과 선한 분으로 배정하는 것이 케르돈의 견해로 제시된다.

  88. 25.1 본문으로

    폰토스의 마르키온이 케르돈을 계승했다고 서술한 뒤 그의 가르침과 문헌 사용을 비판한다. 하나님의 성품에 관한 표현들은 보고되는 마르키온의 주장과 이레네우스의 비판을 구분해서 읽는다.

    코스모크라토르는 Cosmocrator를 옮긴 이름으로, 세계의 통치자를 뜻한다. 본문은 세상을 만든 하나님을 마르키온이 이렇게 부른다고 말한다.

    본디오 빌라도에 붙은 praeses와 procurator를 각각 총독과 황제의 관리라는 역할로 옮겼다. 인명과 티베리우스 때라는 시간 관계를 보존했다.

    누가에 따른 복음서와 사도 바울의 서신들을 잘라 냈다는 주장은 이레네우스가 제시하는 보고이다. 원문 데이터의 reported_text_editing_claim은 문헌명과 주장된 제거 범위를 구분한다.

    여기서 제시하는 바울 서신의 변경 범위는 창조주와 아버지의 관계, 주님의 오심을 예고하는 예언의 인용들이다. 서신별 분량과 구체적인 본문은 별도 대조의 대상이다.

  89. 25.2 본문으로

    혼만 구원받는다는 설명 뒤, 저승에 내려간 주님을 누가 맞이했는지에 관한 마르키온의 견해가 보고된다. 가인과 의인들을 반대로 배정한다는 것이 이레네우스의 비판이다.

    자기 나라로 받아들였다는 assumpsisse는 주님을 주어로 이어 읽었다. Harvey 218쪽 각주 4의 테오도레토스 병행문도 그들이 나라 안으로 받아들여졌다는 방향으로 제시된다.

    마르키온 안의 뱀과 마지막의 독이라는 표현은 이레네우스가 사용하는 논쟁적 비유이다. 마르키온이 설명하는 저승의 이야기와 이레네우스 자신의 평가를 구분했다.

    별도로 반박하겠다는 seorsum contradicemus는 미래의 계획으로 옮겼다. Harvey 219쪽 각주 2는 유세비우스 『교회사』 5.8이 이 계획을 전하는 대목을 제시한다.

    그가 사용하는 주님과 사도의 말씀을 근거로 반박하겠다는 말에서 사도는 앞의 바울 서신과 연결된다. 이레네우스가 밝히는 향후 논증의 자료 범위이다.

  90. 26.1 본문으로

    여러 집단이 앞선 가르침에서 갈라져 새 견해를 만든다는 이레네우스의 설명이다. 이어지는 절제파와 타티아노스의 사례는 그 계보를 보여 주기 위해 배치된다.

    Continentes는 절제파로 옮겼다. 혼인과 동물성 음식을 삼가는 생활을 가리키는 명칭이며, 병기된 그리스어는 엔크라테이스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처음 빚어진 이의 구원이라는 앞의 말은 문단 끝에서 아담의 구원으로 구체화된다. 이름이 등장하는 순서를 유지했다.

    타티아노스가 유스티노스의 가르침을 들었고, 유스티노스의 순교 뒤에 가르침을 바꾸었다는 보고이다. 인물 관계는 원문 데이터의 reported_teacher_relationship에 기록했다.

    타티아노스의 교사 의식과 혼인관에 대한 평가는 이레네우스의 서술이다. 그의 주장과 순교 이전·이후라는 보고의 시간 관계를 구분했다.

  91. 26.2 본문으로

    혼인을 삼가는 앞의 집단과 다른 방식의 생활을 주장하는 집단을 덧붙인다. 성관계와 혼인, 우상 제물에 관한 내용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고 비판하는 견해이다.

    그 수를 다 말할 수 없다는 말로 앞의 이단 계보 설명을 맺는다. 다음 장에서는 또 다른 그노시스파의 신화적 계보를 서술한다.

  92. 27.1 본문으로

    221쪽 첫 문장의 Barbelo는 Harvey 각주 2가 문단을 가리키던 난외 표제에서 들어온 듯하다고 설명한다. 이 판단을 채택하여 본문에서 분리하고 원문 데이터에 표제를 보존했다. 뒤에서 실제 인물명으로 나오는 Barbelon과 Barbeloni는 유지했다.

    엔노이아는 생각, 프로노시스는 미리 앎, 아프타르시아는 썩지 않음, 아이오니아 조에는 영원한 생명, 텔레마는 뜻과 연결되는 이름들이다. 이 문단은 라틴어 풀이와 그리스어형 명칭을 함께 사용하므로 그 연결을 구분했다.

    네 등불과 그에 연결되는 발출들을 원문 순서대로 옮겼다. 카리스는 은총, 텔레시스는 의지, 쉬네시스는 이해, 프로네시스는 슬기와 연결된다. 이 문단의 다윗은 셋째 등불의 이름으로 제시된다.

    아르모겐은 Armogen과 Armoge라는 인쇄 형태를 같은 이름으로 연결해 옮겼다. 아다마스가 첫 빛과 함께 아르모겐에게서 떨어져 나왔다는 문장은 대본의 분리 관계를 유지했다.

    아다마스는 본문에서 굴복한 적 없다는 설명과 연결된다. 앞 장의 처음 빚어진 아담과 구별되는 이 계보의 명칭으로 옮겼다.

    224쪽 refrigerant는 Harvey 각주 4의 설명을 따라 쉼의 뜻으로 옮겼다.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쉬며 큰 아이온을 찬양한다는 구문이다.

  93. 27.2 본문으로

    성령을 소피아와 프루니코스라고 부르고, 그로부터 아래의 창조자가 나왔다는 이 집단의 설명이다. 이 명칭들의 동일시와 발생 순서를 문맥대로 유지했다.

    225쪽 [qui adstat Monogeni,]는 편집자가 삽입일 가능성을 지적한 구문이다. 본문에 있는 대괄호를 유지하여 [모노게네스 곁에 서 있는]으로 옮겼다.

    226쪽 Proarchontem에 붙은 교정 Protarchontem을 채택하고 프로타르콘으로 옮겼다. 첫 지배자를 뜻하는 이름이며, 여기서는 아래의 피조세계를 만드는 존재를 가리킨다.

    아우타데이아, 카키아, 젤로스, 프토노스, 에리니스, 에피튀미아는 각각 자기 고집, 악, 경쟁심, 시기, 분노, 욕망과 연결되는 인격화된 이름들이다.

    아래로 헤아릴 때의 여덟 무리는 deorsum numerantibus octonatio를 따른다. 소피아의 자리와 집합 명칭의 관계는 대본에서 간략하게 제시되므로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긴다. 마지막의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이레네우스가 보고하는 창조자의 발화이다.

  94. 28.1 본문으로

    Harvey판 28장 1절은 통상 인용 1권 30장 1-2절을 함께 담는다. 그리스어 병기는 테오도레토스가 전하는 요약이며, 한국어 대본은 라틴어 고대 역본이다.

    Ennoeam ... filium dicunt emittentis에서 emittentis는 발출하는 이를 가리키는 속격이다. 번역은 엔노이아를 발출한 이의 아들이라고 부르는 구문으로 읽었다. 이 인물 관계와 고대 번역의 구문은 추가 대조가 필요한 항목이다.

    제1의 인간과 제2의 인간, 제1의 여자, 셋째 남성은 이 문단에서 보고하는 계보의 명칭이다. 영을 여성으로 부르는 설명과 아버지와 아들의 결합을 본문의 순서대로 옮겼다.

    228쪽의 allevatitum은 인쇄 형태를 유지하고, in superiora와 연결해 위로 올라간다는 뜻으로 읽었다.

    교회는 appellatio, conventio, adunatio의 세 표현으로 설명된다. 함께 불리고 모여 하나가 된다는 뜻을 살렸다.

  95. 28.2 본문으로

    humectatio luminis는 적시거나 축축하게 하는 빛을 가리킨다. 이 계보에서 빛이 지닌 성분과 물의 이미지가 이어지므로 빛의 물기로 옮겼다.

    Sinistra는 왼쪽 존재, masculo-foemina는 남녀 양성의 존재로 옮겼다. 프루니코스와 소피아는 이 문단에서 같은 존재에게 붙이는 이름들이다.

    229쪽의 repsisse [resipuisse]에서 대괄호 독법 resipuisse를 채택해 정신을 차리다고 옮겼다. 같은 면의 a [e] corpore ejus에서는 e를 채택했다. 채택 전후의 형태와 책임을 원문 수정 기록에 남겼다.

    229쪽의 [eam]은 Clermont 사본에서 빠진다는 각주 2에 따라 인쇄된 대괄호를 유지했고, 한국어에도 [그는]으로 표시했다.

    여자에게서 나온 여자라는 호칭의 목적어는 벗어 버린 몸이다. Harvey는 229쪽 각주 5에서 라틴어 번역 과정에 관계대명사가 빠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어머니의 아들이 첫째이며, 그 아래로 여섯 세대가 이어져 일곱 무리를 이룬다. 어머니는 여덟째 자리에 놓인다.

  96. 28.3 본문으로

    230쪽의 [magnum;]은 231쪽 각주 3이 삭제 표시라고 설명한다. 이를 분리하고, Astaphaeum은 판본이 제시한 Astanphaeum으로 교정했다.

    areothas의 인쇄 형태를 유지했다. Harvey는 231쪽 각주 6에서 그리스어 aretai를 나타내며, 뒤의 virtutes는 dynameis에 대응한다고 설명한다. 두 표현을 탁월한 존재들과 권능들로 구분했다.

    누스는 지성, 엔튀메시스는 생각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절에서 뱀의 형상인 누스와 인간이 받는 누스가 같은 어휘로 서술된다.

    Nun ... evertisse Patrem은 누스와 아버지가 모두 대격으로 나타난다. 번역은 앞에 놓인 누스를 행위 주체로 읽어 아버지를 타락시켰다고 옮겼다. 두 인물의 주체와 목적어 관계는 추가 대조가 필요한 항목이다.

    안트로포스는 인간을 뜻한다. 제1의 안트로포스와 그 아들인 안트로포스는 앞 절의 제1의 인간과 제2의 인간에 대응한다.

    우리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자는 창세기 1:26의 말이 얄다바오트의 발언으로 제시된다. 이어지는 생명의 영을 불어넣는 서술도 이 집단의 창조 해석을 보고하는 문맥에 있다.

    233쪽의 [sunt]는 Arundel 사본에서 빠진다는 각주 1에 따라 대괄호를 유지했다. 한국어의 위에 [있는]에 대응한다.

  97. 28.4 본문으로

    de sua Enthymesi는 라틴어 재귀 소유형을 따라 얄다바오트 자신의 엔튀메시스로 옮겼다. Harvey의 233쪽 각주 2는 이를 아담의 엔튀메시스로 읽는 해석을 소개하며 논의한다.

    233쪽의 [sibi]는 Arundel 사본에 있고 Clermont 사본에서 빠진다는 각주 3과 함께 보존했다. 한국어는 [자기들을 위해]로 표시했다.

    234쪽의 haec adulterans peccavit에서 haec는 여성 단수 주어로 읽었다. 같은 면의 각주 5가 하와를 지시하므로, 이 여자가 간음하여 죄를 지었다고 옮겼다.

    235쪽까지 이어지는 문단은 통상 인용 1권 30장 8절을 포함한다. 인간과 뱀이 아래 세상으로 쫓겨나는 장면, 뱀의 여섯 아들과 일곱 악령의 계보를 함께 담았다.

    빛의 물기를 빼내는 행위는 소피아가 그 성분을 보존하려는 행동으로 서술된다. 저주와 모욕에서 보호하려는 대상은 근원의 권능에서 온 영이다.

  98. 28.5 본문으로

    Harvey판 28장 5절은 통상 인용 1권 30장 9-10절과 11절의 예언자 배정 목록을 담는다. 통상 11절의 나머지 서술은 Harvey판 다음 절에 이어진다.

    236쪽의 magnanimes는 큰 마음을 지닌 상태를 나타낸다. Harvey의 각주 1은 여기서 인내한다는 뜻의 longanimes가 더 적합하다고 설명한다. 라틴어는 인쇄 독법을 유지하고, 번역은 몸의 일시성을 견디는 문맥을 따라 참을성으로 옮겼다.

    노레아는 이 문단에서 셋 다음에 태어난 인물로 소개된다. 이어지는 인간들의 계보는 복수형 ex quibus로 이 두 인물에게 연결된다.

    apostasiam superiori sanctae hebdomadae는 격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인쇄 형태를 유지하면서 위의 거룩한 일곱 무리에게서 이탈하는 뜻으로 옮겼다. Harvey의 236쪽 각주 3은 Grabe가 제안한 a superiori sancta hebdomade를 소개한다.

    237쪽의 ex quibus elegisse septem dies는 앞의 유대인들과 이레의 관계가 불명확하다. 인쇄된 연결을 그들 가운데서 이레를 택했다고 옮겼고, 각주 1의 시간과 행성에 관한 재구성 논의는 추가 대조 항목으로 남겼다.

    예언자 배정 목록의 Michaeam은 이아오와 오레오스 항목에 두 번 나온다. 한국어는 두 곳 모두 미가로 옮겼다. Astanfei는 앞 절의 Astanphaeum과 연결해 아스탄파이오스로 적었다.

    홍수와 노아, 아브라함과 계약, 출애굽과 율법의 서술은 이레네우스가 소개하는 집단의 성경 해석에 속한다. 예언자들을 여러 신에게 배정하는 목록도 같은 보고 문맥에 있다.

  99. 28.6 본문으로

    Harvey판 이 절은 통상 인용 1권 30장 11절의 예언자 목록 뒤에서 시작해 12절까지 이어진다. 원문에는 제1의 인간과 함께 썩지 않는 아이온도 열거된다.

    238쪽의 descendere ad fratrem ejus에는 소유 관계와 이동 방향의 문제가 있다. 같은 면 각주 3이 소개하는 Massuet의 descendere ad se fratrem suum을 채택하여, 소피아가 자기 형제가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안다고 옮겼다. 이는 채택한 교정 제안으로 기록했다.

    per filium ejus Ialdabaoth의 소유 관계는 불변화 이름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 예수를 미리 준비하는 앞 문장에 연결해 얄다바오트의 아들을 통해 그 여자를 알린다고 옮겼다.

    induere는 입히거나 입는 뜻으로 쓰인다. 여기서는 Christum을 주체, sororem suam Sophiam을 대상으로 읽어 그리스도가 소피아를 입었다고 옮겼다. 이어지는 두 존재의 결합과 신랑·신부 비유가 이 해석의 문맥이다.

    238쪽의 [in]은 각주 5가 여러 사본에서 빠지고 불필요하다고 설명하므로 본문에서 분리했다. 내려온 그리스도가 소피아와 결합한 상태라는 구문으로 옮겼다.

  100. 28.7 본문으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분하고 수난 전에 그리스도와 소피아가 떠난다는 설명은 이 집단의 견해를 보고하는 문맥에 속한다. 뒤의 부활한 몸과 혼들의 회복도 같은 발화 층에서 이어진다.

    239쪽의 non autem oblitum suum Christum은 그리스도와 소유형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한국어는 그의 그리스도가 그를 잊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었다. Harvey 각주 3은 Jesus와 sui가 들어간 구문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sed ne ipsum quidem Jesum cujus gratia a mortuis resurrexit에는 서술어가 생략되어 있다. 번역은 예수 자신도 누구를 통해 살아났는지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읽었다. Jesum을 앞의 알아보지 못했다는 동사의 목적어로 연결하는 가능성과 함께 추가 대조가 필요한 구문이다.

    corpus animale et spiritale는 혼적이며 영적인 몸으로 옮겼다. 뒤의 corpus animalium은 동물들의 몸이라는 복수 속격이므로 두 구문을 구별했다.

    고린도전서 15:50에 해당하는 인용의 apprehendunt는 차지한다는 말로 옮겼다. 이 인용을 사용하여 세상에 속한 몸의 부활을 부정한다는 주장이 본문에 보고되어 있다.

    부활 뒤 머문 기간은 대본의 xviii mensibus에 따라 18개월로 옮겼다. 240쪽 각주 1의 숫자 기원에 관한 설명은 Harvey의 추정에 해당한다.

    240쪽의 didicisse는 배웠다고 옮겼다. 각주 3에는 다른 그리스어 동사였을 가능성이 제시되어 있다. 이어지는 docuit는 가르쳤다는 뜻으로 구별했다.

    Christo sedente는 인쇄된 주어인 그리스도를 따라 옮겼다. 240쪽 각주 4는 이를 예수로 바꾸는 제안과 오른편의 위치 해석을 논의한다. 이후 본문이 예수와 아버지의 권능 감소를 서술하는 관계는 추가 대조 항목이다.

    sensibilitas는 감각으로 옮겼다. 이 문단은 감각이 내려오는 일, 분명한 것을 배우는 일, 소수 제자에게 가르치는 일을 차례로 구별한다.

  101. 28.8 본문으로

    레르나의 히드라는 머리가 여럿 달린 괴물의 비유이다. 여기서는 여러 학설이 생겨나는 모습을 이레네우스가 논박하는 데 사용한다.

    241쪽의 eo [l. et]에서는 et를 채택했다. 각주 4는 Clermont 사본의 독법을 근거로 제시한다.

    마지막 문장은 ostendentem이라는 분사와 실체를 가리키는 말의 연결이 불완전하다. 대본을 유지하고, Harvey 각주 4가 제시하는 문장 관계를 참고하여 창자의 배치가 몸 안의 뱀 형상 실체를 가리킨다는 뜻으로 풀었다. 추가 대조가 필요한 항목이다.

  102. 28.9 본문으로

    Harvey판 28장 9절은 통상 인용 1권 31장 1-2절에 해당한다. 다음 Harvey 29장이 통상 31장 3-4절을 담는다.

    241쪽의 male acceptos [mala acceptasse]에서는 대괄호의 교정을 채택했다. 242쪽의 audire와 id quod는 각주 4에 따라 audere와 et quod로 교정했다.

    유다복음은 이레네우스가 이 집단의 글에 붙여 보고하는 명칭이다. 그가 그들의 저술들을 모았다고 말하는 부분도 함께 보존했다.

    휘스테라는 하늘과 땅의 창조자에게 붙이는 명칭으로 소개된다. 한국어는 이름으로 음역했다.

    abutor는 대상을 남용하거나 다 써 버리는 뜻으로 읽어 남용한다고 옮겼다. 인용문은 행위자가 천사와 권세에게 말하는 형식이다.

  103. 29장 본문으로

    Harvey판 29장은 자체 절 번호 없이 인쇄되어 있다. 한 읽기 단위로 보존하고, 통상 인용 1권 31장 3-4절과 연결했다.

    243쪽의 Delectatio는 각주 1이 소개하는 Feuardent의 detectio를 채택했다. 뒤의 견해를 드러내는 일과 승리의 관계에 맞추어 드러낸다고 옮겼다.

    숲의 짐승 비유는 qui segregat라는 단수 주체에서 videntes와 ipsis라는 복수 표현으로 옮겨간다. 숲을 걷어 낸 이와 짐승을 보게 된 사람들을 구별해 한국어 문장을 풀었다.

    viatica는 여행에 필요한 양식이나 준비물을 뜻한다. 다음 권에서 제공할 논박의 수단을 양식에 견주는 표현으로 옮겼다.

    244쪽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 권에서 순서대로 반박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문장 뒤에 제1권의 본문이 끝나며, 243쪽의 장 표제와 구별해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