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본문으로
1.1-1.5: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작품의 세 판을 말한다. 첫 판은 서둘러 쓴 것이라 스스로 폐기했고, 둘째 판은 사본이 만들어지기 전에 뒤에 배교한 형제가 잘못 베껴 퍼뜨려 잃었으며, 지금의 셋째 판이 이제 첫째 판 구실을 한다. 크로이만은 둘째 판의 문구가 이 셋째 판에 섞여 들어갔다고 보고 일부를 [ ]로 묶었다.
1.6: 흑해의 그리스어 이름 Euxeinos는 ‘손님을 반기는’이라는 뜻이며, 원래 이름 Axeinos(‘손님을 반기지 않는’)를 좋은 말로 바꾼 것이다. ‘본성으로는 부정되고 이름으로 조롱받는다’는 이 반어를 가리킨다.
1.9: abscondunt의 생략된 목적어는 크로이만의 주석대로 libido(정욕)이다. 수레 멍에에 화살통을 걸어 교접 중임을 알린다는 이야기는 헤로도토스 『역사』 1.216의 마사게타이 풍속과 같은 계열이다. 크로이만은 사본의 notentur 대신 notantur로 고쳐 읽었고, 그 읽기를 따랐다.
1.11: 병이나 노쇠로 죽어 먹을 수 없게 된 자의 죽음을 저주받은 죽음으로 여긴다는 뜻이다(헤로도토스 1.216 참조).
1.12: 젖가슴을 잘라 내고 싸우는 여자들은 아마존 전승을 가리킨다. pensum은 여자에게 할당된 하루 길쌈 분량이며, ‘도끼로 길쌈 일감을 삼는다’는 길쌈 대신 무기를 든다는 표현이다.
1.13: ridens(웃는)는 엥겔브레히트의 추정이다. 사본은 libens, 다른 추정으로 liquens, liber, lucens가 있다. 크로이만 본문을 따랐다.
1.14: niuibus(눈으로)는 엥겔브레히트의 추정이며 사본은 ignibus(불로)이다. ‘불로 데워야 물이 돌아온다’는 사본 읽기도 의미가 통하지만 크로이만 본문을 따라 옮겼다.
1.15: 타우로이족의 제사는 이피게네이아가 타우리스에서 이방인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 콜키스인의 사랑은 메데이아와 이아손 이야기, 카우카소스의 십자가는 카우카소스 산에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이야기다. 1.17의 ‘참된 프로메테우스’는 이 마지막 이야기를 이어받는다.
1.16: 하막소비오이(Hamaxobii)는 ‘수레에서 사는 자들’이라는 뜻의 스키타이계 유목민이다. 히스테르(Hister)는 도나우강 하류의 옛 이름이다.
1.18: 비버(castor)는 사냥꾼에게 쫓기면 스스로 생식기를 물어뜯어 버린다는 고대 속설이 있었다(플리니우스 『박물지』 8.109). 마르키온이 신자에게 혼인을 금한 것을 이 속설에 빗대었다.
1.19: ‘복음서들을 갉아 먹었다’는 마르키온이 누가복음을 줄여 자기 복음서로 삼은 일을 가리킨다. 폰토스 쥐는 폰토스산 모피 짐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1.20: canicola는 엥겔브레히트의 추정(사본 caninola)으로 견유학파 디오게네스를 가리킨다. 디오게네스가 대낮에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다’고 다닌 일화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6.41에 있다. 크로이만은 cupiebat 뒤에 마침표를 찍어 lucernam ... circumferens를 다음 문장 쪽에 두었으나, 분사구는 내용상 디오게네스의 행동이므로 같은 단위 안에서 디오게네스의 행동으로 옮겼다.
1.21: ‘그 자신의 편지’는 마르키온이 정통 신앙을 지녔던 시절에 쓴 편지를 말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2와 이 작품 4.4에서도 이 편지를 언급한다.
1.23: ‘다른 작은 책’은 『이단자들에 대한 항변』(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이다.
1.24: praescriptio는 로마 소송에서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의 청구 자격 자체를 막는 항변을 뜻한다. 여기서는 ‘나중에 생긴 가르침은 그 새로움만으로 배척된다’는 논법을 가리키므로 ‘항변’으로 옮겼다. regula(규범)는 여기서 상대의 기본 교리 체계를 뜻한다.
- 2 본문으로
2.1: 쉼플레가데스는 흑해 입구에서 배를 부수었다는 서로 부딪치는 두 바위다.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의 비유는 누가복음 6:43(마태복음 7:17-18 참조)이다.
2.3: 인용은 이사야 45:7이다. 라틴어 condo mala를 그대로 ‘악을 짓는 자’로 옮겼다(개역개정은 ‘환난도 창조하나니’). in partem bonae arboris bonos fructus는 condentem이 생략된 구문으로 보아 ‘좋은 나무의 몫으로 좋은 열매를 위해’로 옮겼다.
2.4: creatoris는 크로이만의 고친 읽기(사본 creatore)이다. desipuit는 스칼리게르의 추정(사본 decepit)으로 ‘맛을 잃게 했다’로 옮겼다. 적은 누룩과 온 덩어리는 고린도전서 5:6을 떠올리게 한다. dispositio는 ‘경륜’으로 옮겼다.
2.5: duo는 크로이만의 추정이며 사본은 quo이다. 케르도는 로마에서 활동한 시리아 출신 교사로,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1.27.1은 그가 율법과 예언자들의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구분했다고 전한다.
- 3 본문으로
3.1: ‘시인과 화가의 방종’은 호라티우스 『시학』 9-10행에서 화가와 시인에게 무엇이든 감행할 권한이 있다고 한 대목을 가리킨다.
3.5: [태어나지 않았고 ... 끝도 없다]는 크로이만이 ‘이 상태’(hunc statum, 곧 가장 높은 위대함의 상태)를 이해하지 못한 자가 덧붙인 것으로 보아 [ ]로 묶었다. censendum 앞의 †는 본문 손상 표시이며, 크로이만은 cense<o uindica>ndum(‘영원에 귀속시켜야 한다고 나는 판단한다’)을 추정으로 제시한다. 전해진 censendum을 ‘돌려야 한다’로 옮기고 같은 자리에 †를 두었다. 크로이만은 constitutum이 deum이 아니라 summum magnum에 걸린다고 본다.
3.7: lex는 여기서 모세 율법이 아니라 ‘가장 높은 위대함’의 조건을 규정하는 원리를 뜻하므로 ‘법칙’으로 옮겼다.
3.8: ‘대등한 것을 갖지 않음으로써 그러한 것이 될 것이므로’의 어순은 크로이만의 재배열(사본: quod fuerit summum magnum)을 따른 것이다.
3.12: id eum은 리갈티우스의 추정(사본 idem, iidem)이다.
3.13: [그리고 물론 가장 높은 위대함]은 크로이만이 둘째 판의 잔존 부분을 앞 문맥에 잇기 위해 끼워 넣은 것으로 보아 [ ]로 묶었다. <만일>은 크로이만이 보충한 si이다.
- 4 본문으로
4.5: 인용은 이사야 40:25이다. non ita(‘그렇지 않다’)는 우르시누스의 추정(사본 nostro, nostra)이다.
4.7-4.8: 크로이만은 이 대목에 두 판의 문장이 섞여 있다고 본다. 하나는 ‘왕은 비록 하나님에 이르기까지 가장 높은 위대함이라도 하나님 아래에 있다’는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왕은 자기 왕좌에서 가장 높은 위대함이지만 하나님과 비교되면 떨어져 나간다’는 형태다. 4.8의 translato는 욀러의 추정(사본 translatio)이다.
4.10: ‘왕들의 왕’은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4.11의 ‘제국의 통일 속에서 작은 왕국들을 다스리는 왕들’은 로마 제국 아래의 피보호 왕들이다.
4.11: [다른 형태의]는 크로이만이 뜻이 통하지 않는 삽입으로 보아 [ ]로 묶었다. <마찬가지로>는 크로이만이 si를 si<militer>로 보충한 것이고, <만일>은 그가 보충한 si이다.
4.13: [왕과 두]는 크로이만이 삭제 대상으로 표시한 reges et duo를 옮긴 것이다.
4.14: complexus는 수사학에서 상대를 두 선택지 사이에 가두는 논법, 곧 양도논법(dilemma)을 가리키는 용어이므로 ‘양도논법’으로 옮겼다.
- 5 본문으로
5.2: 발렌티누스파 체계에서 뷔토스(Bythos, ‘심연’)와 시게(Sige, ‘침묵’)는 첫 한 쌍이며, 플레로마는 서른 아이온으로 이루어진다. 아이네아스의 암퇘지는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8.43 이하에서 새끼 서른 마리와 함께 나타난 흰 암퇘지다. Sigen, tum은 크로이만의 고친 읽기(사본 Sigeneum)이다.
5.3: <또한>은 크로이만이 보충한 et이다.
5.4: 맨 앞의 [하나 다음에]는 크로이만이 중복으로 보아 [ ]로 묶은 post unum이다.
5.5: et duo는 크로이만의 추정(사본 post duo, potest duo)이고, quo는 스칼리게르의 추정(사본 quod)이다.
5.8: <만큼>은 크로이만이 보충한 quantum이다. 그는 이 보충 대신 unum을 삭제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고 덧붙인다.
5.12: superstitio(미신)와 religio(경건)는 로마 종교 어휘에서 지나친 숭배와 합당한 숭배를 대비하는 짝이다.
5.14: [섬기거나]는 크로이만이 중복으로 보아 [ ]로 묶은 colendum이다.
- 6 본문으로
6.1: 재판관이며 사나운 창조주와 오직 선한 신의 대비는 마르키온의 『대립명제』(Antitheses)가 율법과 복음을 대조하여 세운 두 신의 성격 구분이다.
6.4: conuenire(소환하다)와 manum inicere(손을 얹어 붙잡다, manus iniectio)는 로마 민사소송에서 피고를 법정에 끌어내는 절차의 용어이며, praescribo도 1.24의 ‘항변’과 같은 소송 용어다. quos는 판 데르 플리트의 추정(사본 qui)이다. ‘사람들도 같은 이름 아래 서로 크게 다를 수 없어서가 아니라’는 non quia non ... licet의 이중 부정을 옮긴 것으로, 사람들은 같은 이름 아래서도 크게 다를 수 있다는 뜻이다.
6.7: ‘저 더 우월한 신’은 마르키온이 창조주보다 높다고 내세운 선한 신이다.
- 7 본문으로
7.2-7.3: 시편 82:1과 82:6(불가타 81:1, 81:6)의 인용이다. 7.1-7.4 전반부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예상하는 마르키온파의 반론을 간접화법(접속법 competat)으로 옮긴 것이므로 ‘-라는 것이다’로 맺었다.
7.1: passiuus는 ‘아무에게나 두루 쓰이는’이라는 뜻으로 보아 ‘아무에게나 쓰이고’로 옮겼다.
summum magnum은 지시대로 ‘가장 높은 위대함’으로 통일했고, 7.11의 복수 summa magna는 ‘가장 높은 위대함들’로 옮겼다.
7.8-7.10: status는 ‘지위’, condicio는 ‘조건’, uocabulum과 appellatio는 각각 ‘명칭’과 ‘호칭’으로 옮겨 이름과 실체의 대비를 유지했다. 7.5의 condiciones는 사회적 처지를 가리키므로 ‘신분’으로 옮겼다.
7.5: Olofernae는 사본 M의 형태로, Kroymann은 이를 복수 주격(홀로페르네스들)으로 읽을 수 있다고 보았다. 홀로페르네스는 외경 유딧기의 아시리아 장군이다. 번역은 왕 이름의 나열로 옮겼다.
7.10: ‘at’는 사본의 et 대신 Kroymann이 고쳐 읽은 것이다. 7.11의 quae(사본 qua)도 Kroymann의 수정이다.
7.13: sustinens는 사본의 sustinentis를 Kroymann이 고친 것이며, ‘비교를 견디지 못하는’이 규범(regula)을 꾸미도록 옮겼다.
7.14: Pontus는 마르키온의 고향 폰토스이자 ‘바다’를 뜻하는 말이므로 ‘폰토스 바다’로 옮겨 말장난을 살렸다. 흑해 연안 폰토스는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책에서 거듭 조롱하는 지명이다.
7.16: eum은 Kroymann이 사본의 eam을 고친 것으로, retractatum(논의)을 가리키게 하여 ‘그 논의를’로 옮겼다.
- 8 본문으로
8.1: proferant는 Pamelius의 수정이고 사본 MR은 praeferant이다. supercilio(눈썹, 곧 거만함)는 ‘거만한 눈썹 위에’로 살려 옮겼다.
8.2: calceati는 ‘신발을 신겨 받은’과 ‘신발로 얻어맞은’의 두 뜻을 함께 지닌 말장난이어서 ‘신발 맛을 보고 나면’으로 옮겼다.
8.3: 문장은 audiens(듣고서)에 걸린 분사구로 8.4의 gratias ago로 이어진다. ‘et ipsa ignorantia antiquum’은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로 오래되었다는 역설이다. ‘옛 이름들을 지녔으면서 새로운 이’는 예수와 그리스도가 구약에 이미 나오는 이름(여호수아, 기름부음 받은 이)이라는 뜻이다. Iesus Christus는 R3의 주격이며 MR1은 대격이다.
8.4: Kroymann은 nouae scilicet diuinitatis professionem이 후대 삽입일 가능성을 apparatus에서 제기했으나 본문에 괄호를 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옮겼다.
8.6-8.7: 사투르누스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신 가운데 하나로 여겨졌다. 8.7의 첫 구절(cum primum consecrauit)은 8.6의 ‘언젠가 새로움이 내놓은’에 걸리는 시간절이다.
- 9 본문으로
9.1: sed는 사본의 sed et를 Kroymann이 고친 것이고, nouitatem cognitionis는 사본의 nouitatis cognitionem을 Engelbrecht가 고친 것이다. Kroymann은 nouitatis-ipsamque 전체의 삭제 가능성도 언급했다. agnitio와 cognitio는 각각 ‘알려짐’과 ‘앎’으로 옮겼다.
9.3: ‘ad lineas rursum et in gradum’은 경기의 출발선과 자세를 가리키는 표현이어서 ‘다시 출발선으로, 제자리로’로 옮겼다.
9.4: 사도행전 17:23의 아테네 ‘알지 못하는 신에게’ 제단을 염두에 둔다. prostitutas는 ‘공공연히 내걸린’의 뜻으로 보았다.
9.5: ‘확실하지 않은 신들’(di incerti)은 로마 종교에서 이름을 특정하지 않은 신들에게 바친 제사를 가리킨다.
9.17: 디모데전서 1:4(끝없는 족보와 변론)를 암시한다.
9.18: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Kroymann의 설명(scil. argumenta)에 따라 ‘논거들이’를 보충했다.
9.19-9.24: status principalis는 ‘근본 지위’로 옮겼다. 두 신이 모두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영원하다는 공통 조건을 가리킨다.
9.22: <non>은 Kroymann의 보충이며 ‘<아니며>’로 표시했다.
9.23: si incerta sunt는 Kroymann의 설명대로 si quae incerta sunt(불확실한 것이 있다면)로 읽었다. 문장은 9.24로 이어지므로 9.23을 ‘그것은’으로 끝냈다.
9.25: ideo nec incertus는 Kroymann이 삭제 대상으로 표시한 구절이어서 [ ] 안에 옮겼다. Engelbrecht는 ideo nec <nunc> incertus로 읽었다. Kroymann은 이 지점의 장 구분이 잘못되었다고 보았고, 실제로 10.1의 siquidem이 9.25의 논증을 이어 받는다.
- 10 본문으로
10.1: harum은 사본의 earum을 Kroymann이 고친 것이다. siquidem이 9.25를 이어 받는 이유절이므로 ‘-기 때문이다’로 옮겼다.
10.2: ‘자기 글이라는 성전’(templum litterarum)은 모세오경을 성전에 빗댄 표현이고, natales agnitionis는 ‘앎의 출생일’로 직역했다.
10.4: 열거된 표현들(‘하나님이 허락하시면’, ‘하나님께 맡긴다’ 등)은 이교도들이 일상에서 쓰던 관용구로, 테르툴리아누스가 『영혼의 증언』과 『호교론』 17장에서 ‘본성적으로 그리스도인인 영혼’의 증거로 든 것과 같은 논거이다. 여기서는 관용구 안의 deus를 창조주를 가리키는 말로 보아 ‘하나님’으로 옮겼다.
10.6: dos는 ‘지참금’을 뜻하나 영혼이 처음부터 받은 자질을 가리키므로 ‘타고난 선물’로 옮겼다.
10.7: ‘Iudaeorum enim deum dicunt animae deum’은 Kroymann이 문맥을 끊는 후대 주석으로 보아 삭제 표시한 문장이다(R1과 F에는 없다). 그는 이 문장이 원래 10.4의 seorsum tamen illum quasi proprio nomine perhibent에 붙은 난외 주였다고 추정했다. 라틴어는 ‘유대인들의 하나님을 영혼의 하나님이라 부른다’로도 읽을 수 있으나, 마르키온파가 창조주를 ‘유대인들의 하나님’이라 부른 점에 맞추어 번역했다.
10.8: Pontici는 마르키온의 동향인 폰토스 사람들이다. 창조주가 마르키온의 신보다 먼저 마르키온의 고향에서도 알려졌다는 조롱이다.
10.9: accipiat는 사본의 accipe를 Kroymann이 고친 것이다. 주어가 생략되어 있어 ‘그는’으로 옮겼으며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킨다.
- 11 본문으로
11.1: 직역은 ‘누가 낯선 이들만큼 자기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겠는가’이나, 마르키온파의 논지(창조주는 자기 세계에서 알려졌고 마르키온의 신은 그 세계에 낯설다)에 맞추어 비교의 뜻을 살려 옮겼다.
11.3-11.4: ‘그렇다면 그가 낯선 것들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는 마르키온의 신이 자기 것이 아닌 인간을 구원하러 왔다는 주장에 대한 반문으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문제를 1권 23장 이하에서 다시 다룬다.
11.8: patet mendacio ueritas는 ‘진리는 거짓에게 열려 있다(드러나 있다)’로 읽을 수 있으며, 거짓 신성에게 빈자리가 있다면 진리는 그것을 쉽게 알아본다는 뜻으로 보아 직역에 가깝게 옮겼다.
11.9: <eius>는 Kroymann의 보충이며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킨다. ‘사람이었다고 인정하는’ 신들은 에우헤메로스식 설명에 따라 인류에게 유익을 준 인간이 신으로 높여졌다는 이교 전승을 가리킨다.
11.11: Kroymann은 hoc ex forma dei가 후대 삽입일 가능성을 apparatus에서 언급했으나 본문에서 괄호 처리하지 않았으므로 그대로 옮겼다.
11.12: 트립톨레모스는 데메테르에게서 곡식 재배를 배워 인류에게 전했다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이다. cicercula는 작은 병아리콩으로, 하찮은 작물 하나라도 만들어 냈어야 한다는 조롱이다.
11.15: <agnoscunt>는 Kroymann의 보충이고 van der Vliet는 confitentur를 보충했다. 11.15의 마지막 ut 절은 11.16으로 이어지는 비교 구문이다.
11.22: ‘육신이 거짓이라면’과 ‘몸의 실체까지 거짓으로 꾸몄다면’은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 육신이 아니었다는 마르키온의 가현설적 그리스도론을 겨냥한다. ‘나무에 달려 창조주의 저주를 받아들였다’는 신명기 21:23과 갈라디아서 3:13을 가리킨다. Kroymann 1906의 305쪽 인쇄면에 procuranit으로 찍혀 있으나 procurauit의 오식으로 보고 옮겼다.
11.24: 창조주가 ‘맹세하며 자기만이 하나님이라고 단언했다’는 것은 이사야 45:5, 45:21-23(“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을 가리킨다. 마르키온파는 이 구절을 창조주가 더 높은 신을 몰랐다는 증거로 사용했다.
- 12 본문으로
이 장은 causa(까닭)와 res(일, 곧 신이 행하고 다스리는 대상)의 말놀이로 논증한다. sine causa를 ‘까닭 없이’로, res를 ‘일’로 옮겨 ‘일이 없으면 존재할 까닭도 없다’는 연결이 보이게 했다.
12.3의 [곧 일 없이]와 12.4의 [일의 까닭인 일 자체를 갖지 않은 채]는 Kroymann이 후대 삽입으로 보아 괄호로 묶은 대목이다. 그는 12.6의 ‘곧 일 없이’가 원래 자리이고 여기로 옮겨 적힌 것으로 판단한다. 번역에서는 괄호를 그대로 두었다.
12.9의 formatum을 Kroymann은 μορφωθέντα, 곧 ‘감각으로 붙잡을 수 있게 형체를 얻은’ 하나님으로 해석하며 로마서 2:20을 비교한다. 번역은 ‘행한 일들의 권위로 드러난 하나님’으로 옮겼다.
12.11의 pignus(담보, 보증)는 하나님이 자신을 믿을 근거로 내놓은 증거를 뜻한다. 하나님께 합당한 일들이 바로 그 담보라는 동격 구문이다.
- 13 본문으로
13.6 첫머리의 **는 Kroymann이 표시한 탈문이다. 그는 eum fecisse(그가 만들었다는 것) 같은 말이 빠진 것으로 보며, 문맥상 ‘합당하지 않은 것이라도 만들었더라면 나았을 것이다’라는 뜻이 이어진다.
13.6의 ‘장식과 치장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 κόσμος가 ‘세상’과 ‘장식, 질서’를 함께 뜻한다는 점을 가리킨다.
13.7-8의 철학자 목록은 학설지 전통에 따른 것이다. 플라톤이 별들을 ‘신들의 불의 종족’이라 부른 것은 『티마이오스』 40A를 가리킨다. 13.8의 [세상에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하기를]은 Kroymann이 삽입으로 보아 괄호로 묶은 대목이며, 이 경우 formidauerint의 목적어는 ‘세상을 신이라고 선언하는 일’로 이해된다.
13.8의 magi, hierophantae, gymnosophistae는 각각 페르시아의 사제층, 이집트 비의의 해설자, 인도의 나체 고행자를 가리키며 음역했다(마기, 히에로판테스, 귐노소피스타이).
13.9의 ‘그리스어 낱말의 소리를 따라’는 제우스를 ζεῖν(끓다)과, 헤라를 ἀήρ(공기)와 연결한 스토아식 어원 해석을 가리킨다.
13.10의 카메나이는 샘과 물에 결부된 라틴의 여신들이다. ‘위대한 어머니’는 키벨레이며, ‘목욕 의식의 물’(lauacris)은 그 여신상을 해마다 강물에 씻던 의식과 연결된다.
13.11은 오시리스의 죽음과 발견을 기념하는 이시스 제의, 그리고 미트라스 비의의 입문 단계 가운데 하나인 ‘사자’(Leo) 등급을 가리킨다. 사자 등급은 불과 연결되었다.
- 14 본문으로
14.1의 ‘사도의 말대로 능력이 약함 가운데서’는 고린도후서 12:9를 가리킨다. cantharis는 독성 분비물을 내는 가뢰로 옮겼다.
14.3의 ‘셋째 하늘’은 고린도후서 12:2에서 온 표현이다. 마르키온파는 그들의 신이 창조주의 하늘 위에서 내려왔다고 보았다.
14.4는 마르키온파 공동체도 세례의 물, 기름 부음, 세례 후 새 신자에게 주는 젖과 꿀, 성찬의 빵을 사용했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repraesentat는 ‘나타내다, 현존하게 하다’의 두 뜻이 있어 ‘나타내는’으로 옮겼다. sacramenta는 ‘성례’로 옮겼다.
14.5는 마태복음 10:24, 누가복음 6:40을 가리킨다.
14.7의 ‘이제 그대의 원수가 된 육신’은 마르키온이 혼인을 금하여 육신을 적대한 것을 가리킨다. 사본에 따라 inimicae / inimica / inimice로 갈리며, 번역은 Kroymann의 inimicae(육신에 걸리는 속격)를 따랐다.
14.8은 마르키온파가 육식을 삼가면서도 물고기는 더 거룩한 음식으로 여겨 먹었다는 관행을 가리킨다.
14.9의 apocarteresis는 스스로 굶어 죽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다. 사본 M, R1은 이 낱말을 알아보지 못하고 훼손된 형태로 전한다.
- 15 본문으로
15.1의 ‘그대들의 사도’는 마르키온이 유일하게 받아들인 바울을 가리키며, 셋째 하늘 문제(고린도후서 12:2)는 『마르키온 반박』 제5권에서 다룬다.
15.2의 ‘티베리우스 황제 15년’은 누가복음 3:1에 근거한다. ‘세베루스 황제 15년’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재위 15년, 곧 207/208년이며 이 책의 집필 연대를 정하는 근거가 된다. 사본 M은 a. XV, R은 a XII로 적으며, 두 곳 모두 Kroymann의 ‘quinto decimo’를 따랐다.
15.10의 subsiciua는 토지 측량 용어로, 구획한 뒤 남은 자투리땅을 뜻한다.
15.14의 [신에게]는 Kroymann이 삭제 대상으로 표시한 deo이며, opponitur는 사본의 opponeretur를 고친 것이다. 그는 ut aeque deo(똑같이 신인 이상)를 illi quoque와 연결해 읽으며, 번역도 이에 따랐다.
15.16의 ‘그 주인과 같다’는 사본의 domino를 Kroymann이 dominum으로 고친 읽기를 따른 것이다. 물질이 그 주인인 창조주처럼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영원하다는 뜻이다.
15.17은 마르키온이 악의 근원을 물질에 둔다는 보고다. 15.18-20의 계산은 위의 영역 셋(마르키온의 신, 장소, 물질), 아래의 영역 넷(창조주, 장소, 물질, 악), 그리스도 둘을 합하여 아홉이다.
- 16 본문으로
16.3-4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구분은 골로새서 1:16을 배경으로 한다. 16.5에서 Tertullianus는 사도의 이 본문을 제5권에서 다루겠다고 미룬다.
16.8의 ‘귀한 지체와 덜 귀한 지체’(honesta, inhonesta)는 고린도전서 12:22-23의 표현과 겹친다.
16.11 첫머리의 <이들이>는 Kroymann이 보충한 qui를 옮긴 것이다. ‘금지한 것을 명하고’는 마르키온의 『대립 명제』가 창조주의 모순으로 제시한 사례들을 가리키며, ‘치기도 하고 고치기도 한다’는 신명기 32:39, ‘생명과 죽음’은 신명기 30:15, ‘악과 평화를 지은’은 이사야 45:7을 가리킨다.
16.12의 ‘창조주의 보이는 것들’은 사본의 creaturis(피조물들)를 Kroymann이 creatoris로 고친 읽기를 따랐다.
- 17 본문으로
17.1의 ‘모든 메뚜기보다 앞세워야 할’은 마르키온파가 창조주의 작은 피조물을 조롱한 것(13-14장)을 받아, 해방의 일 하나가 창조주의 모든 작은 피조물보다 낫다고 내세우는 말이다. 17.2의 ‘더 작은 신’은 마르키온파가 창조주를 낮추어 부르는 방식을 그대로 받아 비꼰 것이다.
17.7의 deducto는 Kroymann의 수정이다(M과 G는 deductus, R은 deducta). 이 읽기에 따라 ‘알려지지 않은 신의 문제에서 이 대목까지 이끌어 온 논의에서’로 옮겼다.
17.8의 ‘더 나을수록 더 필요했으므로’는 van der Vliet의 수정 necessarior quo melior를 따른 Kroymann 본문을 옮긴 것이다. 사본은 melior quo necessarior로 적는다. Kroymann은 latere non debuit가 군더더기일 수 있다고 보나 본문에 남겨 두었으므로 번역에 반영했다.
17.11의 ‘다른 곳에서 늦은 계시를 책망하며’는 제1권 22장 이하에서 마르키온의 신이 뒤늦게 나타났다는 문제를 다시 다루는 대목을 가리킨다.
- 18 본문으로
18.2: anabibazon은 달의 승교점(上昇交點)을 가리키는 점성술 용어이고, maleficae는 해로운 행성들(토성·화성 등)을 뜻한다. ‘사각’(quadratus)과 ‘삼각’(trigonus)은 행성 사이의 90도·120도 각도 배치(aspect)다. 마르키온의 신이 늦게 나타난 까닭을 별자리 탓으로 돌리는 조롱이며, 18.3의 마르키온파 점성술 비난으로 이어진다.
18.4: 사본(MR)은 est 대신 et, 앞의 reuelatus 대신 cognitus, 18.7의 cognitus 대신 reuelatus를 전한다. Kroymann은 두 단어가 서로 뒤바뀌었다고 보고 고쳐 읽었으며, 번역은 Kroymann의 본문을 따랐다.
18.5-18.6: natura는 ‘본성’과 ‘자연(피조 세계)’의 뜻을 함께 지닌다. 여기서는 opera(작품들)로 하나님을 알게 하는 피조 세계를 가리키므로 ‘자연’으로 옮겼다. ‘자연이 전혀 없는 자’는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은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킨다.
18.7: nego는 Kellner와 van der Vliet의 읽기이며 사본은 nega(M), negas(R)를 전한다. cognosci는 R의 읽기를 따른 것이다(M·F는 cognoscis).
18.8: 콘수스(Consus)는 로물루스가 세운 곡물·저장의 신, 클로아키나(Cloacina)는 타티우스와 연결되는 하수도(Cloaca Maxima)의 여신, 파보르(Pavor, ‘공포’)는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전투 중 서원한 신격, 알부르누스(Alburnus)는 메텔루스와 연결되는 산의 신이다. ‘얼마 전 어떤 이’는 130년경 죽은 총애하던 청년 안티노우스를 신격화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다. 사본 M·F는 Pauorem 대신 pauonem을 전한다.
18.9: nauclerus는 배를 소유하고 운항하는 선주를 뜻한다. 신을 공인하는 것은 왕이나 황제의 권한이라는 18.8의 논리에 기대어, 폰토스 출신 선주였다는 마르키온의 전력을 비꼰다.
- 19 본문으로
19.2: 그리스도를 따로 다루겠다고 예고한 책은 『마르키온 반박』 제3권이다.
19.4: 루가복음 3:1의 ‘티베리우스 황제 제15년’을 가리킨다. 마르키온의 복음서는 이 연대로 시작하여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곧바로 가버나움으로 내려온 것으로 서술했다(눅 4:31 참조). manare(흘러 내리다)는 육체 없이 내려온 가현론적 그리스도를 꼬집는 표현이다.
19.5: 본문이 어려운 곳이다. Kroymann은 Marcionis 뒤에서 문장을 끊고 salutis를 중복 오기로 보아 [ ]로 묶었으며(Ursinus는 salutem), qui ita uoluit는 ‘(그렇게 원했던) 마르키온’을 가리킨다고 해석한다. 번역은 이 구두점을 따라 앞 문장을 ‘마르키온의 구원하는 영이다’로 끊고, [구원의]를 원래 자리에 남겼다. aura canicularis는 시리우스(개의 별)가 뜨는 한여름의 해로운 열풍을 뜻하며 ‘삼복의 열풍’으로 옮겼다. ‘대(大) 안토니누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재위 138-161년)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와 구별한 호칭이다. aura는 R3의 읽기다(MR1은 aula).
19.6: Antoninianus는 Gelenius의 수정이다(사본은 antoninus). Pio impius는 황제의 칭호 Pius(경건한)와 impius(불경한)를 맞세운 말놀이다.
19.7: 티베리우스 제15년(28/29년)부터 안토니누스 피우스 치하까지 115년 6개월 15일로 계산한 수치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기간을 무엇을 기준으로 셈했는지는 본문에서 밝혀지지 않으며, 마르키온이 로마 교회와 결별한 144년 무렵과 대체로 맞는다.
19.8-19.9: Kroymann은 statim 뒤에 마침표를 찍었다. statim은 다음 문장 ‘분별 있는 그대에게는 사안이 명백하다’에 걸려 ‘곧바로 명백하다’는 뜻으로 읽히므로, 19.8 끝에 ‘곧바로’를 남기고 문장을 열어 두었다. Antoniniani는 Rigaltius의 수정이다(사본은 antonini).
19.10: Kroymann은 ut probem을 양보절로 읽으라고 주석하므로 ‘증명해야 한다 하더라도’로 옮겼다. 그는 ut probes일 가능성도 제시한다.
19.11: instrumentum은 ‘문서’ 또는 ‘성경(경전 묶음)’을 뜻한다. 19.13의 utriusque instrumenti는 율법(구약)과 복음(신약) 두 문서를 가리킨다. 19.11의 summum instrumentum은 마르키온파가 가장 높이 두는 문서, 곧 『안티테시스』다.
19.12: 『안티테시스』(Antitheses, ‘대립들’)는 율법과 복음, 구약의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아버지 사이의 모순을 나란히 열거한 마르키온의 저작으로 현존하지 않는다. 사본 M·F는 Antithesis, R과 통행본은 Antitheses로 적는다.
19.14: ratio는 여기서 율법과 복음 모두의 하나님을 창조주 한 분으로 보는 신앙의 원리를 가리키므로 ‘이치’로 옮겼다. ‘폰토스 사람’(Ponticus)은 마르키온이다.
- 20 본문으로
20.4: 갈라디아서 2:9(기둥 같은 사도들), 2:14(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않음), 2:2(헛되이 달리지 않으려 함), 2:11-14(안디옥 사건)를 가리킨다. 마르키온파는 이 대목을 들어 열두 사도가 복음을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20.5: passiuus conuictus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지 않고 함께 먹는 식탁 교제를 가리킨다. <uindicans>는 van der Vliet의 보충이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처럼’은 고린도전서 9:20-22다. ‘책망한 당사자 자신의 마음에 들게 될’은 바울이 나중에 같은 처신을 스스로 택했다는 뜻이다.
20.6: 갈라디아서 2:9의 ‘친교의 악수’와 이방인과 할례자에게로 나눈 직무 분담을 가리킨다.
20.7: 고린도전서 15:11.
20.8: 거짓 형제들은 갈라디아서 2:4, 다른 복음으로 옮김은 갈라디아서 1:6-7,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킴은 갈라디아서 4:10이다. dispositio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oikonomia)을 뜻하므로 ‘경륜’으로 옮겼다.
20.9: 이사야 43:18-19. Kroymann은 사본에서 ‘sic et per Hieremiam’과 20.11 앞의 ‘et alibi’가 서로 뒤바뀌었다고 보고 자리를 바꾸었다. 번역은 Kroymann의 배열을 따른다.
20.10: 예레미야 31:31-32(칠십인역 38:31-32).
20.11: 예레미야 4:3-4. nouamen은 새로 개간한 땅을 뜻하며 R의 읽기다(M·F는 nouam et). 개역개정의 ‘묵은 땅을 갈라’에 해당한다.
20.13: 호세아 2:11.
20.14: 이사야 1:13-14.
- 21 본문으로
21.2-21.4: 시편 2:3, 2:1-2. 테르툴리아누스는 시편 2:3을 그리스도 이후 율법의 멍에가 풀리는 일에 대한 예언으로 읽는다. 21.4의 conuenerunt는 M·F의 읽기다(R은 circumuenerunt).
21.7: quid는 Kroymann의 수정이다(사본은 quod). 이를 따라 ‘왜’로 옮겼다.
21.9: 우상 제물은 고린도전서 8장과 10장, 여자의 너울은 11장, 혼인과 이혼은 7장, 부활은 15장에서 다루어진다.
21.10: <만일>은 R3의 si를 Kroymann이 채택한 보충이다(MR1에는 없음).
21.12, 21.14: census는 ‘혈통, 기원’을 뜻하며, ‘사도적 혈통의 교회’는 사도가 세웠거나 사도적 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교회를 가리킨다. christianizare는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을 고백하다’를 뜻하는 드문 동사다.
21.15: sacramentum은 ‘군대의 맹세’와 ‘신앙의 신비(종교)’의 뜻을 아울러 가진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교 신앙 전체를 가리키므로 regula sacramenti istius를 ‘이 신앙의 규범’으로 옮겼다. ‘앞서의 정의’는 18.7의 논증, 곧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통해서만 알려진다는 정의다.
21.17: 문장 앞에 Kroymann이 탈문(**)을 표시했다. 그는 ‘si non poterit probari’(증명될 수 없다면) 같은 말이 빠졌다고 보며, oportebit은 그의 수정이다(사본은 oportebat). 번역은 탈문 표시를 그대로 두었다. circumlator는 19.3과 같이 ‘전한 자’로 옮겼다.
- 22 본문으로
22.2: praescriptio는 소송 본안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의 청구 자체를 막는 법정 항변으로, 테르툴리아누스는 시기와 기원(‘먼저 있었던 것이 참되다’)에 근거한 지금까지의 논증을 이렇게 부른다. ‘그의 그리스도를 따라 그림자와 환영’은 마르키온의 그리스도가 실제 육체가 없는 환영이었다는 가현론을 그의 신에게 되돌려 적용한 표현이다.
22.5: materiae와 causae는 선함이 작용할 대상과 계기, 곧 인간의 죄와 비참을 가리킨다. 각각 ‘사안들’과 ‘원인들’로 옮겼다.
22.6: ‘죽음의 쏘는 것인 죄’는 고린도전서 15:56이다. agere는 Kroymann의 수정이다(사본은 agi). primae huic regulae diuinae bonitatis occurrens와 statim succurrens, ut causa coepit에 대해 Kroymann은 이 자리에 원래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앞의 inueniri 뒤에 놓으면 문맥이 매끄럽다고 주석하며 †를 붙였다. 번역은 전해진 자리 그대로 옮기고 † 위치를 유지했다. ‘창조주의 악함’은 마르키온파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22.12: agat는 Ciacconius의 수정이다(사본은 agatur). interim naturae nomine는 ‘본성의 명분으로는’, 곧 선함이 본성이라고 전제하는 한 ‘원하지 않았다’는 변명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22.14: bonitas는 Pamelius의 수정이다(사본은 bonitatis).
22.17: ut a primordio는 Kroymann의 수정이다(사본은 et a primordio). M에는 이 문장이 두 번 나온다.
22.19: <않았기>는 R3의 non을 채택한 보충이다(MR1에는 없음). finis는 ‘끝’과 ‘정의(定義)’의 뜻이 있으며, 여기서는 악의를 규정하는 표지라는 뜻으로 보아 ‘악의의 정의에 해당함’으로 옮겼다.
22.21: elogium은 피고의 죄목을 적은 고발장이다. 마르키온이 창조주에게 씌운 죄목 전체가 오히려 그의 신에게 돌아간다는 뜻이다.
22.23: 창세기 2:17, 3:6, 3:19의 선악과 사건과 죽음 선고를 가리킨다.
22.27: lenocinator는 본래 ‘뚜쟁이, 호객꾼’을 뜻하며, 은혜를 일부러 늦추어 값을 올리는 자라는 비난이다. ‘은혜를 미끼로 삼는 자’로 옮겼다.
22.28-22.29: ‘티베리우스부터’ 신이라는 표현은 19.4의 티베리우스 제15년 연대를 받아 마르키온의 신이 그 시점에야 활동을 시작했다는 점을 꼬집는다. 22.29의 문장은 다음 단위로 이어진다.
- 23 본문으로
23.1: 앞 장에서 선함이 ‘본성적’(naturalis)이어야 한다는 규범을 세운 데 이어, 여기서는 ‘이성적’(rationalis)이어야 한다는 두 번째 규범을 세운다. ratio는 이 장에서 ‘이성’(rationalis, inrationalis)과 선함의 ‘이치’(ratio bonitatis, prima/secunda ratio, 곧 선함이 성립하는 근거와 순서)로 나누어 옮겼다.
23.5: 원수 사랑은 마태복음 5:44; 누가복음 6:27을 가리킨다. 마르키온파는 이 계명을 낯선 자를 향한 의무 없는 선함의 근거로 삼는다. effundatur는 Kroymann의 수정(사본 effunditur)을 따랐다.
23.6: Kroymann은 hominem 뒤에 마침표를 찍어 a primordio extraneum을 따로 떼어 놓았으나(통상 판본은 extraneum, cessando로 이어 읽는다), 번역에서는 ‘처음부터 낯선 자였던 인간’이라는 동격으로 한 질문 안에 옮겼다.
23.7: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레위기 19:18; 마태복음 5:43을 인용한다.
23.8: destructum(허물어진)과 exstructum(세워진)은 말놀이로, 마태복음 5:17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를 암시한다. 장치는 et-quoque를 est, tu quoque로 고쳐 읽을 가능성과 Christo <tuo>를 제안한다.
23.10: debita/indebita bonitas는 ‘마땅히 베풀어야 할 선함’과 ‘베풀 의무가 없는 선함’으로 옮겼다. [id est indebita]는 Kroymann이 난외 주석이 본문에 들어온 것으로 보고 괄호로 묶은 말이다.
23.11: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넘어서는’은 마태복음 5:20을 가리킨다. 같은 iustitia를 성경 인용 부분에서는 개역개정을 따라 ‘의’로, 논증의 원리로 쓰인 곳에서는 ‘정의’로 옮겼다. Kroymann은 ei를 bonitati로 읽어야 exiguae가 이해된다고 하면서, non habenti proprium hominem은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읽어야 하므로 ac부터 23.12의 redundauit까지가 후대 삽입일 수 있다고 의심한다. habenti는 Lat 판본의 읽기이고 사본은 habentis이다.
23.13: exhibe는 Rigaltius의 수정(사본 exhibere)이다.
23.14: Kroymann은 ratio ipsa를 ‘하나님’(이성 자체인 분)으로 풀이하며, bonitatis를 gradu와 묶어 ‘선함의 둘째 단계’로 읽는다. 번역은 이 해석을 따랐다.
23.16: Kroymann은 사본의 어순(rationalis erit, cum in rem suam exhibetur)을 cum in rem suam exhibetur, rationalis erit로 바꾸고 sic et를 sicut로 고쳤다. 번역은 수정된 본문을 따랐다.
23.19-20: 로마법의 노예 관련 개념을 사용한다. alii uindicetur는 다른 사람이 법정에서 종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소송(uindicatio)을, adsertor는 노예를 자유인이라고 법정에서 주장하는 자(adsertor libertatis)를, plagiator는 남의 노예나 자유인을 빼돌리는 자(Lex Fabia 위반자)를 가리킨다. aduersus caput domini는 주인의 목숨 또는 법적 신분을 노린다는 뜻을 모두 담을 수 있어 ‘목숨’으로 옮겼다.
23.20: Kroymann은 non aliter와 deus Marcionis 사이에 탈문(**)을 표시하고 agit(행한다)가 빠졌다고 추정한다. 번역은 탈문 표시를 같은 자리에 두고, 이어지는 분사들(inrumpens, eripiens)을 서술어로 풀어 옮겼다. aluminum은 M의 읽기이고 R은 alumnum이다. 여기서 deo(하나님에게서 인간을 빼앗아)와 deo impium은 창조주를 가리키므로 ‘하나님’으로 옮겼다.
23.22: 마르키온파의 예배 행위를 열거한다. tingitur는 세례를, ad caelum expanditur는 두 팔을 벌린 기도 자세를, sternitur는 엎드림을, super panem gratiarum actionibus fungitur는 성찬의 감사 기도(eucharistia)를, elemosyna와 dilectio는 구제와 애찬(agape)을 암시한다. 물, 하늘, 땅, 빵, 재물이 모두 창조주의 것이라는 점이 논지이다. 사본 R3은 non putem 대신 an putem으로 읽는다.
23.23: alium illi deum은 마르키온의 신의 관점에서 본 ‘다른’ 신, 곧 그 인간의 주인인 창조주를 가리키므로 ‘다른 하나님’으로 옮겼다.
- 24 본문으로
24.2: 마태복음 5:48. 개역개정은 명령형 ‘온전하라’이나, 테르툴리아누스의 라틴어는 미래형 eritis(될 것이다)이므로 그대로 옮겼다.
24.4: Kroymann은 사본에서 suarum 뒤에 있던 quae를 앞으로 옮겼다. materiae suae는 선함이 미쳐야 할 대상들, 곧 사람들을 가리킨다.
24.5: ‘창조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창조주를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고백하는 정통 교회 신자들을 마르키온파와 구별하여 부르는 표현이다.
24.9: <in>(데서)은 Kroymann의 보충이다.
24.10: bonitatis는 Kroymann의 수정(사본 bonitatem)이다.
24.12: usque adeo는 Kroymann의 풀이(quin etiam)를 따라 ‘아니’로 옮겼다.
24.14: imperfectae는 Oehler의 수정(사본 inperfectum)이다. 마르키온은 육체의 부활을 부정하고 영혼의 구원만을 가르쳤다.
24.16: sciam은 Rigaltius의 수정(사본 si iam)이다. 마르키온파는 세례 지원자에게 혼인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했고(세례는 미혼자, 과부, 이혼한 자에게만 베풀었다), 박해 때 순교자를 냈다. ‘그 이름’은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24.18: denique는 namque, hactenus는 non amplius라는 Kroymann의 풀이를 따라 ‘실로’, ‘더 이상’으로 옮겼다.
24.19: 마르키온의 가현설, 곧 그리스도가 참 육체가 아니라 육체의 겉모습만 지녔다는 주장을 가리킨다. cuius(그것의)는 육체를 받으므로 ‘육체의 실재’로 풀어 옮겼다.
24.20: 본문 손상(†). 사본 MR3G는 debuit debuisse, R1은 debui, Iunius는 habuit, Oehler는 ipsum 대신 ipso를 읽었고, Kroymann은 debet tribuisse를 가능성으로 제시한다. 번역은 전해진 debuit debuisse를 ‘빚졌어야 했다’로 옮기고 그 앞에 †를 두었다. 육체를 가장했다는 것 자체가 육체에 어떤 가치를 인정한 것이라는 논지로 이해된다.
24.21: materia corporalis, non animalis는 ‘몸의 질료이지 혼(anima)의 질료가 아니다’라는 대비로 옮겼다.
24.22-25: 창세기 2:7-8을 인용한다. 라틴어 limum de terra는 hominem의 동격으로, ‘사람을, 곧 땅의 흙을’로 옮겼다. 창세기 2:7의 ‘생령’(개역개정)은 라틴어 animam uiuam과 anima 논증을 살리기 위해 ‘살아 있는 영혼’으로 옮겼다. 2:8의 paradisus는 ‘낙원’으로 옮겼다(개역개정은 ‘에덴에 동산’).
24.26: partitio specialis hominis liberandi는 일부 사람만 구원받는다는 앞의 논증(개별적 분할)을, proprietas generalis는 인간에게 일반적으로 고유한 것, 곧 육체를 가리킨다.
24.28: deus saeuus(잔혹한 하나님)는 마르키온파가 창조주를 부르는 명칭이다. 지침에 따라 창조주를 가리키므로 ‘하나님’으로 옮겼다.
24.29: tribuli et spinae(엉겅퀴와 가시)는 창세기 3:18의 저주를 가리킨다. febriculas는 Engelbrecht의 수정(사본 febricitas)이다.
24.30: Kroymann은 Engelbrecht를 따라 obiectus 뒤를 쉼표로 이어 in quo를 의문사로 읽는다. 전갈과 파리는 창조주가 만든 해로운 생물의 예로, 마르키온파가 창조주의 피조물을 조롱하던 사례를 테르툴리아누스가 되돌려 쓰는 것이다.
24.31: 사본 R1은 perfecta est, R3은 perfecta sis로 읽는다. 번역은 M의 ut perfecte를 따랐다.
24.32: princeps generis offensus는 인간이 죄로 노엽게 한 인류의 주권자, 곧 창조주를 가리킨다. 정통 신자는 창조주를 심판자로 인정하므로 현재의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대비이다.
- 25 본문으로
25.1: ingenitam(타고난)은 앞 장들의 naturalis(본성적) 논증을 가리킨다. adaequare는 M의 읽기이고, R과 통상 판본은 adaequari이다. 문장 후반 quod scilicet in quantum deo congruat 이하는 구문이 압축되어 있어, ‘하나님께 어울리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 그만큼’으로 풀어 옮겼다.
25.3: Kroymann은 nos uero 뒤의 et를 삽입으로 보고 괄호로 묶었다. 그는 et ex hoc quoque부터 주절(귀결절)이 시작된다고 본다.
25.4: ‘복되고 썩지 않는 존재는 자기에게도 남에게도 괴로움을 끼치지 않는다’는 에피쿠로스의 『주요 교설』 1의 명제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키온의 신이 진노와 심판을 갖지 않는다는 주장을 이 명제와 연결한다. 원문의 줄표는 ASCII 하이픈으로 옮겼다.
25.5: per Iesum은 M의 약어 per ihm을 R이 Iesum으로 풀어 쓴 것이다. Kroymann은 ‘육체적 본성을 통해’, 곧 예수로서 겪은 수난으로 이해한다.
25.6: Kroymann은 et de ceteris motibus eum agnouisse를 e<um obnoxi>um(다른 움직임들에 종속된 자로)으로 보충할 가능성을 제시한다. 번역은 전해진 본문대로 옮겼다.
25.7: enim은 Kroymann의 수정(사본 autem)이다.
25.8-9: [quis uolet quod non concupiscet?]는 M, G, R3에 없어 Kroymann이 괄호로 묶었다. 그는 이 대목에 두 가지 판본(초고와 수정고)이 겹쳐 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concupiscentia/concupiscere는 ‘욕구’/‘갈망하다’, cura/curare는 ‘염려’/‘염려하다’로 옮겼다. 25.9의 curabit는 R3의 읽기이고 MR1은 curauit이다.
25.11-14: aemulatio는 ‘경쟁심’, aemulari는 ‘겨루다’로 옮겼다. 이 말은 적수와 겨루는 마음과 함께 질투(구약의 ‘질투하는 하나님’)의 뜻도 지니며, 마르키온이 창조주에게서 비난한 감정이 바로 이것이다.
25.12: liberaturus, et ea는 Ursinus의 수정(사본 liberaturus eum 또는 cum)이다.
25.13: autem은 Kroymann의 수정(사본 enim)이다.
25.14: indignatio bilis는 R3의 읽기이고 MR1은 indignabilis이다. non poterit 뒤에는 esse가 생략된 것으로 보아(Kroymann) ‘있을 수 없을 것이다’로 옮겼다.
25.15: ‘창조주를 다루는 대목’(in causa creatoris)은 『마르키온 반박』 제2권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창조주의 진노, 질투, 엄격함에 대한 마르키온파의 비난을 다룬다.
- 26 본문으로
26.2-3: Kroymann은 uexat 뒤에 마침표를 찍었으나 si 조건절이 26.3의 non inuenio로 이어지므로 쉼표로 이어 옮겼다.
26.3: ‘더 충만한’ 계율은 마르키온파가 혼인 금지 등 창조주의 율법보다 더 엄격한 윤리를 가르친 것을 가리킨다.
26.4: ut non은 M의 읽기이고 R은 non ut이다. defendere(26.5 이하)는 이 문맥에서 ‘처벌하다, 보복하다’(uindicare)의 뜻으로 옮겼다.
26.9-11: offendi/offensa는 ‘노여워하다’/‘노여움’, irasci/ira는 ‘분노하다’/‘분노’, ulcisci/ultio는 ‘보복하다’/‘보복’으로 구별하여 옮겼다.
26.11: si non offenditur의 si는 Kroymann의 수정(사본 sed)이다.
26.14-15: Kroymann은 26.14의 qui noluit부터 faciendum까지와 26.15의 quando noluit부터 prohibuit까지가 같은 내용의 두 판본이며, 뒤의 것이 저자가 먼저 쓴 판본이라고 본다. 번역은 두 문장을 모두 옮겼다. 26.15의 autem은 Kroymann의 수정(사본 enim), prohibendo도 그의 수정(사본 prohibendum)이다. moueri는 ‘동요하다’로 옮겼다.
26.17: van der Vliet를 따라 admissum 뒤를 쉼표로 이어 atquin 이하를 조건절의 귀결로 읽었다.
26.18: <boni>(선의)는 Kroymann의 보충이다. deus optimus는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키므로 ‘지극히 선한 신’으로 옮겼다.
- 27 본문으로
27.2의 praeuaricator는 법정 용어로, 상대편과 몰래 짜고 소송을 일부러 지게 하는 고발인을 뜻한다. 진리의 편에서 고발해야 할 신이 스스로 고발을 무너뜨린다는 뜻을 살려 ‘진리를 저버린 담합자’로 옮겼다. circumscriptor도 법적 속임수로 판결을 피해 가는 자를 가리킨다.
27.5의 ‘게헨나의 불’은 마태복음 5:29-30, 18:8-9, 마가복음 9:43을, ‘바깥 어둠’과 ‘이 갊’은 마태복음 8:12, 누가복음 13:28을 가리킨다.
27.10의 plagiarius는 남의 종이나 자유인을 꾀어내거나 빼돌리는 자를 가리키는 로마법상 용어이므로 ‘남의 종을 꾀어 가는 자’로 옮겼다. 정당한 주인이 아니면서 남의 소유인 사람을 차지하는 마르키온의 신을 겨냥한 비유이다.
27.11의 adultera는 앞 문장의 dominatio(지배)에 걸리는 여성형 형용사로 읽어 ‘간통한 지배’로 옮겼다.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배’와 대조되는 위조된 지배라는 뜻과 간통한 여자라는 뜻이 함께 겹친다. 27.11 끝의 adulatione와 27.12 첫머리의 non potestate는 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27.8의 enim은 Kroymann의 추정(MR은 autem)이고, diligetur는 M의 읽기(R은 diligitur)이다.
27.13의 circus는 전차 경주장, cauea는 검투와 맹수 싸움이 벌어지는 원형 경기장의 관람석, scaena는 극장 무대를 가리킨다.
27.14의 acerra는 제단에 향을 올리기 위한 향 상자이다. 박해 때 그리스도인에게 황제나 신들에게 향을 바치게 하여 신앙을 부인하는지 시험한 관행을 가리킨다. animam lucrari(목숨을 얻다)는 마태복음 16:25-26의 표현을 비튼 것으로 보인다.
27.16의 quae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 MR은 quem이다. quae를 따라 ‘그대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들을’로 옮겼다.
27.17의 die illo(그날에)는 Latinius의 읽기이며 사본 MR은 dei illorum이다. ‘그날’은 최후 심판의 날이다.
27.18은 Kroymann의 구두점(abici illum. qua? si ab oculis, nonne)을 따랐다. 통행본은 abici illum quasi ab oculis(눈앞에서 내버려지는 것처럼)로 읽는다. qua?는 ‘어디서/어떤 방식으로’를 묻는 말로 보아 ‘어디서 내버려진다는 말인가?’로 옮겼다. 사본 MR은 respondent, Latinius는 respondebunt이다.
- 28 본문으로
28.3의 sulphuratiorem은 R3의 읽기이며 M은 sulphuratonem, R1은 sulphurationem이다. praeparabit는 R3, M과 R1은 praeparauit이다.
28.4의 deus zelotes(질투하는 하나님)는 출애굽기 20:5, 34:14의 창조주 칭호이다. ‘자기 적대자를 버리고 떠난 자들’은 창조주의 적대자인 마르키온의 신을 저버린 죄인들을 가리킨다. 마지막의 atque ita neminem은 신이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압축한 표현이어서 ‘아무도 아닌 신’으로 옮겼다.
28.5와 28.12의 sacramentum은 그리스도교 성례이자 군사 서약을 뜻하는 말이다. 문맥이 세례이므로 ‘성례’로 옮겼다.
28.6의 si retineret, iudicaret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retineret, si iudicaret이다. 28.7의 absoluet도 추정(사본 absolueret)이다. 28.8의 damnasset ... deuinxisset는 Kroymann이 두 동사의 자리를 바꾼 것이며, 사본은 deuinxisset ... damnasset이다.
28.6-28.10은 세례의 네 효과, 곧 죄 용서, 죽음에서 풀려남, 거듭남, 성령 받음을 차례로 들어 마르키온의 신이 그 어느 것의 전제도 갖추지 못했다고 논증한다.
28.11의 animae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anima이다. 추정을 따라 ‘영은 영혼을 보충하는 것’으로 옮겼다. signat(인 치다)와 resignatum(봉인을 풀다)은 짝을 이루는 말놀이이다.
28.12의 ‘구원에 몫이 없는 육체’는 육체의 구원을 부정한 마르키온의 가르침을 가리킨다.
28.13의 quam deus는 M의 읽기이며 R은 ut deus이다.
28.14의 cum은 사본 MR의 읽기이고 Latinius는 cur로 읽는다. 28.14-16의 quid는 ‘왜’의 뜻이다. 28.14의 ‘약한 육체’와 ‘무가치한 육체’는 마르키온파가 육체를 낮추어 부르는 말을 받아 쓴 것이다. 28.15의 rependens는 M의 읽기이며 R은 reprehendens이다.
사본에서는 29.1의 문장(quid dicam ... sanctam)이 28.14의 imponit sanctitatem 바로 뒤에 놓여 있는데, Kroymann이 이를 29장 첫머리로 옮겼다. 번역은 Kroymann의 배열을 따랐다.
- 29 본문으로
29.1-29.4의 sanctitas는 거룩함 일반이 아니라 혼인하지 않거나 성관계를 끊는 성적 절제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용어를 통일하기 위해 ‘거룩함’으로 옮겼다. 29.1의 ‘거룩한 실체를 거룩하게 한다’는, 마르키온의 신이 이미 성적으로 절제하는 사람에게만 세례를 준다는 점을 꼬집는 말이다.
29.2는 마르키온파가 처녀, 과부, 독신자, 혼인을 끊은 기혼자에게만 세례를 베풀었다는 보고이다. tingitur는 ‘물에 적셔지다’, 곧 세례를 받는다는 뜻이다. 사본 M은 tinguitur이다. nisi ... mercata의 여성형은 caro(육체)에 걸린다.
29.3의 니골라당은 요한계시록 2:6, 15에 나오는 무리이다.
29.4의 nec praescribimus. sed suademus는 Kroymann의 구두점을 그대로 둔 채 ‘금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 권하면서’로 옮겼다. sectando에 대해 Kroymann은 sectandum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in crementum은 R의 읽기이고 MF는 incrementum이며, 뜻은 같다.
29.5의 [tunc]는 Kroymann이 삭제 대상으로 표시한 말이다. R3와 통행본은 ut로 읽는다. 괄호 안에 ‘그때에는’으로 옮겼다.
29.9는 창세기 1:28, 출애굽기 20:14, 17을 인용하고 레위기 20:11-17의 근친상간, 동성 간 성관계, 수간에 대한 사형 규정을 가리킨다. monstrosam은 M의 읽기이며 R은 monstruosam, F는 menstruosam이다.
29.8의 institutio(제도)와 institutor(제정자)는 같은 어근의 말이다. 제정자는 혼인을 세운 창조주를 가리킨다. 29.8 끝의 cuius est tam과 29.9의 quam et가 ‘한편으로 ... 다른 한편으로’의 짝을 이룬다.
29.10의 ‘보혜사를 근원으로 삼는 영적 이치’와 ‘단 한 번의 혼인’은 테르툴리아누스가 몬타누스파의 ‘새 예언’을 받아들인 뒤 재혼을 금한 입장을 가리킨다. 이 구절은 이 판본이 쓰인 시기에 그가 이미 새 예언을 따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diffuderat는 R의 읽기이며 M은 diffunderat이다.
29.12는 고린도전서 7:29를 인용한다. atque si는 M의 읽기이며 R과 통행본은 quasi이다. 29.12 끝의 cuius et retro fuit와 29.13 첫머리의 인용(창 1:28)이 한 문장을 이룬다.
29.14의 cedendo는 Kellner의 추정이며 MR은 caedendo(베어짐으로써), F는 credendo이다. praestaret esse는 MR1의 읽기이며 R3는 praestaret <et> esse, Oehler는 praestaret messem(수확을 내줄)으로 고친다. cedendo를 따라 ‘자리를 내줌으로써 거룩함이 존재하게 해 줄’로 옮겼다. ipsi는 M에서 a를 i로 고친 읽기이다.
29.18은 고린도후서 12:9를 인용한다.
29.21의 totum은 in totum(완전히)의 뜻이다. optimo는 R의 읽기이며 M은 optime이다.
29.22의 de quo nascitur auferendo는 ‘사람이 태어나는 근원, 곧 혼인을 없앰으로써’의 뜻이다. 29.24의 diliget는 Engelbrecht의 추정이며 MR은 diligit이다.
29.24의 ‘많은 이단을 만들지 않으려고’는 마르키온파를 이단이라 부르는 테르툴리아누스의 관점을 마르키온의 신의 동기에 섞어 넣은 풍자이다.
29.25의 ‘태어나는 아이들을 죽인 파라오’는 출애굽기 1:22를 가리킨다. humanior는 MR1의 읽기이며 R3와 통행본은 immanior(더 잔인한)이다. humanior를 따라 반어적 질문으로 옮겼다.
29.28의 si esses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 MR은 si isses이다. ‘그대가 존재한다면’은 마르키온의 신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논지를 반영한다. dispositio는 창조주가 세운 질서, 곧 경륜을 뜻한다.
29.29의 statuum은 R3의 읽기(MR1은 statum)이고, confirmant도 R3의 읽기(MR1은 confirmantes)이다. 29.29-29.32는 제1권의 결론으로, 성경 본문에 대한 검토는 뒤의 권들(특히 제4권의 누가복음 검토)로 미룬다고 밝힌다.
29.30의 succedet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 MR은 succedit이다. 29.30 끝의 proinde는 29.31의 조건문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