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두 본문으로
προκάθηται와 προκαθημένη τῆς ἀγάπης를 각각 ‘앞자리를 차지하다’와 ‘사랑을 이끌다’로 옮겼다. 교회의 지위와 ‘사랑’의 범위를 특정 후대 제도로 확정하지 않았다. 이 번역어는 재검토할 수 있다.
ἀξιεπίτευκτος를 ‘그 소원이 이루어질 만한’으로 옮겼다. 대응하는 한국어와 ἀδιακρίτως의 수식 범위에는 해석 여지가 남아 있다.
χριστώνυμος를 채택했다. 인쇄본 각주에 제시된 χριστόνομος는 대안 독법으로만 보존한다. ‘낯선 빛깔’은 χρώματος의 비유를 풀어 쓰지 않은 표현이다.
- 1.1 본문으로
‘그보다 더 큰 것’과 ‘끝에 이르다’의 구체적 내용을 번역문에서 모두 풀어 쓰지 않았다. 서신 전체에서 죽음과 하나님께 이름을 바라는 화자의 뜻과 함께 읽을 수 있다.
현재 결박된 화자가 앞으로 독자들에게 인사하기를 바란다는 시간 관계를 유지했다.
- 1.2 본문으로
χάριτος를 따라 ‘은혜’로 번역했다. 각주의 πέρατος를 본문에 섞지 않았다.
‘나를 배려하다’는 φείσησθέ μου를 옮긴 것이다. 앞뒤 문맥에서는 죽음을 막으려는 개입을 삼가 달라는 요청으로 읽히며, 감옥에서 풀어 달라는 말로 번역하지 않았다. ‘몫’의 구체적인 성격은 본문에 덧붙이지 않았다.
- 2.1 본문으로
λόγος와 φωνή를 ‘말’과 ‘목소리’로 구별했다. ‘하나님의 말’을 성경이나 성육신에 대한 명제로 확정하지 않았다.
‘이름을 남기다’는 ἐπιγραφῆναι의 표현을 옮긴 것으로, 실제 비문이 세워졌다는 역사적 주장을 덧붙이지 않는다.
인쇄본 여백의 데살로니가전서 2:4는 편집자 참조이다. 이그나티우스가 직접 인용임을 표시했다고 간주하지 않는다.
- 2.2 본문으로
σπονδισθῆναι의 액체를 붓는 제사 비유를 ‘부어 드리는 제물’로 보존했다. 실제로 어떤 제단이 설치되었다는 사건 설명으로 바꾸지 않았다.
서쪽·동쪽과 지다·떠오르다의 대응을 유지했다. ἐπίσκοπος는 ‘감독’으로 옮겼다.
- 3.1 본문으로
μαθητεύοντες를 다른 이들을 제자로 가르치는 행위로 읽었다. 그 동사의 용법과 뒤따르는 명령의 관계는 원어 검수에서 재검토할 수 있다.
- 3.2 본문으로
말함·원함, 불림·실제로 드러남의 두 대조를 유지했다. ‘세상에 보이지 않을 때’의 뜻을 번역문에서 죽음 하나로 확정하지 않았다.
- 3.3 본문으로
φαίνομαι가 반복되는 앞뒤 문맥의 보임과 드러남을 유지했다. 첫 문장을 물질세계 전체에 대한 체계적인 교리 명제로 확장하지 않았다.
πεισμονή와 μέγεθος를 ‘설득’과 ‘위대함’으로 옮겼다. 여기서 위대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별도 해석이 필요하다.
- 4.1 본문으로
ἑκών의 자발성과 ‘여러분이 막지 않는다면’이라는 조건을 모두 유지했다. ‘갈립니다’는 원문의 현재형을 따른다.
곡식·이빨·빵의 비유를 보존했다. 이 서신의 화자가 처한 순교 상황을 표현한 문장이며 현대 독자에게 하는 행동 지침으로 바꾸지 않는다.
채택 본문은 τοῦ Χριστοῦ이다. 각주는 θεοῦ와 해당 말의 생략을 대안으로 소개한다. 여백의 Zenobius 참조는 성경 구절로 분류하지 않는다.
- 4.2 본문으로
‘잠들다’는 죽음을 나타내는 비유로 읽되 본문의 표현을 유지했다. ‘이 도구들’이 앞의 짐승들을 가리키는 관계를 보존했다.
채택 본문에는 θυσία만 있으며 각주의 θεῷ 또는 θεοῦ를 번역 본문에 추가하지 않았다.
- 4.3 본문으로
과거의 사도들과 현재의 화자 사이에 놓인 세 대조를 유지했다. πάθω는 ‘고난을 겪으면’으로 옮겼으며 본문에 없는 구체적인 처형 방식을 덧붙이지 않았다.
ἀναστήσομαι는 ‘일어설 것입니다’로 옮겼다.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는 메모에 남기며 한국어 본문에서 확정하지 않았다.
인쇄본의 고린도전서 7:22 참조를 확인했다. XML의 7:29 표기와 연결값은 오류 기록에 보존한다.
- 5.1 본문으로
본문이 직접 열 마리 표범을 군인들의 부대로 풀이한다. 실제 야생 표범에게 묶였다는 사건으로 읽지 않았다.
ἀδικήμασιν을 ‘부당한 행위’로 옮겼다. 앞선 ἰδικήμασιν 판독은 확대 재확인과 보조 전사 대조 뒤 철회했다. 이 단어에 대한 원문 교정은 하지 않았다.
여백은 Cor. 4, 4로 적혀 있다. XML의 문헌 연결과 함께 고린도전서 4:4로 대응시키되 원래 여백 표기를 함께 보존한다.
- 5.2 본문으로
Lake의 본문 ἄκοντα를 따라 짐승들이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옮겼다. 각주에 나오는 Lightfoot의 대안 선호를 채택하지 않았다.
문장 마지막의 생략된 행위 대상은 앞의 ‘나를 먹어 치우다’로 이해했다. 원문의 과격한 요청을 완화하거나 현대 독자에게 권하는 문장으로 바꾸지 않았다.
- 5.3 본문으로
‘시기하다’는 ζηλόω의 표현을 유지했다. 주변 문맥에서는 화자가 바라는 일을 가로막는다는 함의를 읽을 수 있으나 본문을 그 설명으로 대체하지 않았다.
고난의 열거는 서신 화자의 요청을 옮긴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모두 유지했다.
- 6.1 본문으로
해산의 비유를 유지했다. 화자의 죽음과 새로운 삶을 어떤 체계로 연결할지는 별도의 해석 문제이다.
인쇄본 여백은 Cor. 9, 15로 되어 있다. 고린도전서 9:15 대응은 편집자 참조로만 기록한다.
- 6.2 본문으로
죽음과 삶의 역설을 뒤집지 않았다. 원문은 독자에게 화자가 사는 것을 막거나 죽기를 바라지 말라고 요청한다.
‘물질로 속이지 말라’는 Lake의 채택 본문을 옮겼다. 그 구절의 생략 증거와 동사에 대한 대안은 각주로 분리했다.
- 6.3 본문으로
τοῦ θεοῦ μου를 ‘나의 하나님’으로 유지했다. 번역에서 이 호칭을 다른 말로 완화하거나 후대 교리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συμπαθείτω는 ‘나와 함께 느끼다’로 옮겼다. 물리적으로 같은 고난을 당하라는 명령으로 확정하지 않았다.
- 7.1 본문으로
원문의 ‘이 시대의 지배자’에 이름을 추가하지 않았다. ‘그곳에 있는 여러분’은 서신의 수신자를 향한 표현으로 옮겼다.
- 7.2 본문으로
‘나의 사랑’이 사랑의 대상인지 욕망 자체인지는 여기서 확정하지 않는다. ἔρως를 곧바로 ‘그리스도’나 ‘세속적 욕망’으로 바꾸지 않았다.
καὶ λαλοῦν을 따라 ‘살아서 말하는 물’로 옮겼다. 각주가 소개하는 ἁλλόμενον을 채택해 ‘솟아오르는 물’로 바꾸지 않았다.
요한복음 4:10, 7:38은 여백의 편집자 참조이고, 4:14는 이문 관련 각주 속 참조이다. 서로 다른 출처 역할로 보존한다.
- 7.3 본문으로
σάρξ를 먹는 비유 안에서 ‘살’로 옮겼다. 피와 썩지 않는 사랑의 연결도 원문대로 유지했다.
여백의 요한복음·로마서·디모데후서 위치는 편집자 참조로만 연결했다. 성찬에 대한 후대의 특정 설명을 번역에 삽입하지 않았다.
- 8.1 본문으로
θέλω의 반복과 마지막 수동형을 유지해 한국어에 어색함이 남는다. 원문이 명시하지 않은 수동형의 행위자를 하나님 등으로 추가하지 않았다.
- 8.2 본문으로
‘거짓 없는 입’이라는 명사 표현을 예수 그리스도에 연결해 문장으로 옮겼다. 특정 성경 구절을 본문에 덧붙이지 않았다.
- 8.3 본문으로
ἐπιτύχω의 목적어는 이 문장에 명시되지 않는다. 앞 문맥의 하나님께 이름과 연결할 수 있으나 본문에서는 ‘뜻을 이루다’로 옮겼다.
두 조건문의 강한 대조를 보존했다. 버림받음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한 것인지는 단정하지 않았다.
- 9.1 본문으로
ἐπισκοπήσει를 ‘돌보다’로 옮겼다. 앞의 감독이라는 직함과 관련된 동사이지만 후임 직책자의 임명을 본문에 추가하지 않았다.
μόνος와 뒤따르는 ‘여러분의 사랑도’라는 표현을 함께 살려 한국어 문장으로 배열했다.
- 9.2 본문으로
ἔκτρωμα의 강한 비유를 유지했다. ‘무언가가 되다’는 τις εἶναι의 표현을 옮긴 것이며 어떤 지위가 주어진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여백의 고린도전서 15:8-9를 확인했다. XML 표시 문자열의 마지막 0을 인쇄본의 9에 맞춰 참조 기록에서 바로잡았다.
- 9.3 본문으로
교회들이 화자를 맞아들이고 배웅했다는 표현의 주체를 유지했다. προῆγον의 선도·배웅 의미는 ‘배웅하다’로 옮겼으며 구체적인 행렬 방식은 추정하지 않았다.
- 10.1 본문으로
에베소 사람들을 ‘통하여’ 쓴다는 표현을 그대로 두었다. 그들이 필사자인지 전달자인지를 번역에서 확정하지 않았다.
- 10.2 본문으로
먼저 간 사람들의 이름이나 직무를 추가하지 않았다. ἀναπαῦσαι는 ‘편안하게 해 주다’로 옮겼으며 단순히 숙소만 제공하는 일로 좁히지 않았다.
- 10.3 본문으로
원문의 로마식 날짜를 보존했다. 현대 날짜로 환산하지 않았으며 집필 연도를 추정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라는 속격 표현을 유지했다. 예수에 대한 기다림인지 그분에게 속한 인내인지 본문에서 단정하지 않았다.
여백의 데살로니가후서 3:5는 편집자 참조이며 다음 서신의 시작은 포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