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본문으로
1.1 ‘잃어버린 이전 저작’은 이 책의 앞선 판을 가리킨다. 제1권 1장에 따르면 첫 판은 급히 쓰여 폐기되었고, 그것을 대신한 둘째 판은 완성되기 전에 한 형제가 빼돌려 잘못 베낀 채 유포했다. 지금의 저작은 셋째 판이다.
1.3 regulae interuersio는 신앙의 규범(regula)을 바꾸어 놓았다는 뜻이며 ‘규범의 변조’로 옮겼다. 나중에 생긴 쪽이 변조한 쪽이라는 시간 우선 논증은 『이단자들에 대한 항변』(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 31-32장과 이 책 제4권 5장에도 나온다.
1.4 ‘첫째 권’은 이 책 제1권이다. 마르키온의 가르침이 안토니누스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것이라는 논증은 제1권 19-21장에 있다.
1.5 praescriptio는 소송에서 본안 심리에 들어가기 전에 상대방의 청구 자격을 막는 법적 항변이다. ‘항변들의 지름길’은 『이단자들에 대한 항변』에서 쓴 이 방식을 가리킨다. ‘ceterum ... uincit’를 삽입구로 본 것은 Kroymann의 구두점을 따랐다.
1.5 [decretum est]는 Kroymann이 후대 삽입으로 의심하여 괄호 안에 넣은 말이며, 번역에서도 전승된 위치에 괄호째 두었다. van der Vliet은 어순을 바꾸어 ‘sed decretum est, non ut laborantem, <sed> ut gestientem’(그렇게 정해졌으니, 힘에 부친 자로서가 아니라 즐기는 자로서)으로 읽자고 제안했다.
- 2 본문으로
2.1 gradum conserere는 검투사나 병사가 발을 맞대고 근접전을 벌인다는 표현이며 ‘맞붙어 싸운다’로 옮겼다. 첫 ‘qua’(~라는 점에서)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 R은 quia(~이므로)로 읽는다.
2.4 ‘rerum, quae’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rerumque’로 읽는다.
2.5 ‘그리스도 뒤에 신을’은 Rhenanus 제3판(R3)과 Kroymann의 어순이다. M과 R 초판은 ‘Christum post deum’(신 뒤에 그리스도를)으로 읽는다.
2.6, 2.8, 2.10 dispositio, dispositum은 하나님이 미리 정해 두고 질서 있게 이루어 가는 구원 경륜을 가리키며 ‘계획’, ‘계획된’으로 옮겼다.
2.7 따옴표 안의 말은 마르키온파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마르키온은 그리스도가 티베리우스 제15년에 아무 예고 없이 하늘에서 가버나움으로 내려왔다고 보았다(제1권 19장; 제4권 7장; 눅 3:1; 4:31).
2.10 ‘substructum’은 Kroymann의 추정으로 opus(일, 2.9)에 걸리며, 사본은 paratura(준비)에 일치시킨 ‘substructam’으로 읽는다. 번역은 ‘그 일’을 주어로 삼았다.
2.11 quae는 credere의 목적어로 보아 ‘선포를 통해 믿기를 배운 것들’로 옮겼다.
- 3 본문으로
3.1 uirtutes는 복음서의 δυνάμεις(개역개정 ‘권능’, ‘능력’)에 해당하며 기적 행위를 가리키므로 ‘기적’으로 옮겼다. signa는 ‘표적’이다.
3.2 exauctorare는 병사를 제대시키거나 지위를 박탈한다는 말이며, 기적이 증거로서 지닌 권위를 그리스도 자신이 박탈했다는 뜻으로 옮겼다.
3.3 막 13:22; 마 24:24. <ad>는 Engelbrecht가 보충한 말이며 ‘돌아서게 <하려고>’로 옮겼다.
3.5 창조주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예언자라도 따르지 말라고 미리 경고한 본문은 신 13:1-3이다. ‘목욕탕에서 자리를 맡듯이’는 공중목욕탕에서 먼저 온 사람이 자리를 차지하는 관습에 빗댄 표현이다.
3.6 †cludet는 Kroymann이 손상된 곳으로 표시한 말이다. M과 R은 cludet, F는 eludet로 읽는다. Kroymann은 excludet를 ‘부화시키다, 낳다’의 뜻으로 읽을 가능성을, Engelbrecht는 cudet(‘찍어 내다’)를 제안했다. 번역은 전승된 cludet(claudere, 닫아 두다)를 따라 ‘굳게 잠가 둔다면’으로 옮기고 † 표시를 남겼다.
3.6 Kroymann은 ‘posterior’와 ‘non potuit’ 사이에 탈문을 표시하고 praedamnari(미리 정죄되다)를 보충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읽으면 ‘누구보다도 나중이 아닌 창조주는 미리 정죄될 수 없었다’는 뜻이 된다. R3와 통행본은 ‘non potuit’ 대신 ‘esse potuit’로 읽는다. 번역은 탈문 자리에 **를 두었다.
3.7 <그대의>는 Kroymann이 보충한 tuum이다. Kroymann은 interpretari를 probare(증명하다)의 뜻으로 보았고, 그 주어는 앞의 기적들(uirtutes)이다. respondentes는 M과 R 초판의 읽기이며 기적들에 걸린다.
3.9 uetustas는 믿음을 얻어 내는 ‘오래됨’, 곧 오래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3.10 ‘uenturus’와 ‘prophetiis’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uenturum, prophetis로 읽는다. aemulus는 맞서 겨루며 흉내 내는 자라는 뜻으로 ‘경쟁자’로 옮겼다.
3.11 exigis(그대가 얻어 내는 것)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exigit로 읽는다.
- 4 본문으로
4.1 ut displicentis, ut ... reuincendi는 ‘우리 하나님’(dei nostri)에 걸린 속격으로 옮겼다. Kroymann은 주어에 걸리는 displicentem으로 고칠 가능성도 적어 두었다.
4.3 여기서 ‘그리스도’는 창조주가 예고한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Kroymann은 <meum>을 보충할 가능성을 적어 두었으나 본문에는 넣지 않았다.
4.4 ‘deum eius’(그의 신)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dominum으로 읽는다. intercessio는 ‘개입’으로 옮겼으며, 호민관이 결정을 가로막는 거부권이라는 법적 뜻도 함께 지닌다.
4.5 <만일>은 Kroymann이 보충한 si이다. 이 조건문의 귀결은 4.6의 ‘헛되이 참은 셈이다’이다. 통행본은 ‘perseuerauerit. uane’로 끊지 않는다.
4.8 [그러나]는 Kroymann이 삭제 대상으로 괄호에 넣은 uero이며, Engelbrecht는 ‘alterum ergo’로 읽는다. ‘sustinuisset’는 Engelbrecht의 추정이다(사본 sustinuisse). traducere는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폭로한다는 뜻이다. ‘한쪽’은 창조주, ‘다른 쪽’은 창조주의 그리스도이다.
4.13 ‘율법과 예언자들을 허문다’는 것은 마르키온이 율법과 복음을 분리하고 『안티테시스』(Antitheses)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복음과 대립시킨 작업을 가리킨다(제1권 19장).
- 5 본문으로
5.1 proludere는 검투사가 실전에 앞서 목검으로 하는 예비 동작을 가리키며 ‘연습 공격’으로 옮겼다. ‘de gradu primo’는 처음 자세, ‘de longinquo’는 멀리서 던지는 공격을 뜻한다.
5.2 ‘exhinc’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et hinc’로 읽는다. ‘ad certum’은 실전, lineae는 경기장에 미리 그어 두는 경계선을 가리킨다.
5.3 ‘commixta’(뒤섞여)는 Kroymann의 추정이며 사본은 성경에 걸리는 commixtae로 읽는다.
5.5 expunctum은 장부에서 항목을 지워 정산을 마쳤다는 회계 용어이며 ‘이미 완결된’으로 옮겼다.
5.6 사 50:6.
5.9 ‘산들이 단맛을 떨어뜨릴 것’은 욜 3:18,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출 3:8을 가리킨다. sapa와 defrutum은 포도즙을 졸여 만든 감미료이며 ‘졸인 포도즙’, ‘끓인 포도즙’으로 옮겼다. Samias는 사모스산 도기 그릇이다. Latinius는 psomias(빵 조각)로, Leopoldus는 coacturum 대신 cocturum(굽다)으로 읽자고 제안했다. <것은 아니다>는 Rhenanus 제3판(R3)이 보충한 ‘non tamen’이다. aquilex는 수맥을 찾아 물길을 내는 기술자이다.
5.10 사 41:18-19. Pamelius는 ‘cedrum et buxum’의 어순으로 읽는다.
5.11 사 43:20. 테르툴리아누스는 칠십인역의 ‘세이렌들과 참새의 딸들’을 따르며, 개역개정은 ‘승냥이와 타조’로 옮긴다. 제비 새끼, 여우 새끼, 전설 속의 노래꾼(세이렌)을 글자 그대로 읽는 해석을 조롱하는 대목이다.
5.12 ‘이단자들의 사도’는 마르키온이 유일하게 인정한 사도 바울이다(Latinius는 haereticorum 대신 ethnicorum으로 읽자고 했다). 소 본문은 고전 9:9-10과 신 25:4, 반석은 고전 10:4, 아브라함의 두 아들은 갈 4:22-24, 한 육신은 엡 5:31-32와 창 2:24이다. argumenta는 연극의 ‘줄거리’라는 뜻을 살려 ‘이야기’로 옮겼다.
- 6 본문으로
6.1 status causae는 수사학에서 소송의 쟁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사안의 쟁점’으로 옮겼다.
6.2 마르키온은 창조주가 예고한 그리스도는 유대 민족의 회복을 위해 올 자로서 아직 오지 않았다고 보았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주장을 이 권 21장 이하와 제4권 6장에서 다룬다.
6.3 ali<en>um은 Kroymann이 사본의 alium(다른 자)을 alienum(낯선 자)으로 고친 것이다. 번역에서는 보충된 부분에 해당하는 ‘낯선’을 < > 안에 두었다.
6.4 마르키온은 폰투스의 시노페 출신 선주(nauclerus)였다. 로도스 해법(lex Rhodia)은 해상 운송의 투하 손해 분담을 규정한 법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고, 테르툴리아누스는 마르키온의 주장을 그의 고향을 따서 만든 ‘폰투스 법’이라고 비꼰다.
6.7 사 29:14.
6.8-6.9 사 6:9-10.
6.10 사 29:13(마 15:8 참조).
6.11 ‘우레를 굳게 하고 영을 지으며 인간들에게 자기 그리스도를 예고하는’ 창조주는 칠십인역 암 4:13의 표현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요엘의 말로 인용하며, Pamelius는 Amos로 고쳤다. ‘condente’는 Latinius의 추정이며 사본은 concludente로 읽는다. 개역개정 암 4:13은 ‘바람을 창조하며’로 옮기지만, 번역은 spiritus를 ‘영’으로 옮겼다. ‘ne dicam’은 Ursinus의 추정이며 사본은 nedum으로 읽는다.
6.12 사 42:19. 칠십인역을 따라 ‘내 종들’을 복수로 옮겼다. Kroymann은 ‘dominatur’를 복수 dominantur로 고칠 가능성을 적어 두었다.
6.13-6.14 사 1:2-3.
6.16 애 4:20 칠십인역(‘우리 얼굴의 영은 주 그리스도’)을 테르툴리아누스는 ‘우리 영의 얼굴(persona)’로 인용한다. 개역개정은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로 옮긴다. persona는 ‘얼굴’과 ‘인격’을 함께 뜻하며, 그리스도가 영의 얼굴로서 예언자들 안에서 말했다는 논지에 맞추어 ‘얼굴’로 옮겼다. ‘Christus dominus’는 R3의 읽기이며 M과 R 초판은 대격으로 읽는다. uicarius는 ‘대리자’로 옮겼다.
6.17 사 1:4.
6.18 아들을 아버지의 실체 전체에서 나온 ‘부분’(portio)으로 보는 설명은 『프락세아스 반박』(Aduersus Praxean) 9장에도 나온다.
6.19 ‘cum intellegere potuissent’는 R3의 읽기이며 M과 R 초판은 cum 대신 non으로 읽는다.
6.21 <그런>은 Kroymann이 보충한 ea이다. planus는 떠돌며 속이는 ‘협잡꾼’으로, aemulus는 3.10과 같이 ‘경쟁자’로 옮겼다. exorbitator는 바른 길에서 벗어난 자를 뜻하므로 ‘유대교에서 벗어난 자’로 옮겼다.
- 7 본문으로
7장 전체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유대인 반박』(Adversus Iudaeos) 14장과 거의 같은 내용이며, Kroymann도 이 대응을 표시한다.
7.1 “맹인이 맹인에게 이끌리듯 같은 구덩이에 빠졌다”는 마 15:14; 눅 6:39를 가리킨다. ex abundanti는 논증에 꼭 필요하지는 않은 덧붙임이라는 뜻이어서 ‘덤으로’로 옮겼다.
7.2, 7.15 habitus는 겉모습이나 처지를 뜻하면서 옷차림도 뜻한다. 7.2에서는 ‘모습’, 스가랴서의 옷을 다루는 7.15의 duplici habitu는 ‘두 가지 차림’으로 옮겼다.
7.3 사 53:7. Pamelius는 os 뒤에 suum을 보충했다.
7.4-7.6 사 53:2-3을 칠십인역에 가까운 라틴어로 인용한다. “우리가 그에 대하여 알렸다”는 칠십인역 ἀνηγγείλαμεν을 따른 것으로, 개역개정 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기를 연한 순 같고”)와 다르다. 7.4의 ne는 M과 R의 읽기이고, F와 Pamelius는 nec로 읽는다.
7.6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거치는 바위”는 사 8:14; 28:16; 롬 9:33; 벧전 2:8을 가리킨다.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는 시 8:5(라틴어 시 8:6)의 칠십인역 본문을 따른 것이며, 개역개정은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라고 옮긴다. “벌레요 사람이 아니며 사람의 수치요 백성의 멸시거리”는 시 22:6(라틴어 시 21:7)이다. nullificamen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진 것’이라는 뜻이어서 ‘멸시거리’로 옮겼다.
7.7 버림받은 뒤 높여진 모퉁잇돌은 시 118:22(라틴어 시 117:22); 사 28:16; 엡 2:20-21; 벧전 2:4-7을, 산에서 떼어 낸 돌이 나라들의 형상을 부수는 장면은 단 2:34-35, 44-45를 가리킨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다니엘서의 lapis 대신 petra라고 쓰므로 ‘바위’로 옮겼다.
7.8-7.10 단 7:13-14. Pamelius는 7.8의 aduentu 앞에 secundo를 보충했다. ueniens uenit는 히브리어식 반복 표현이어서 ‘오고 와서’로 옮겼다. filius hominis와 uetus dierum은 개역개정의 ‘인자’와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를 따랐다. 7.9 앞에 Pamelius는 et를 보충했고, 7.10 끝의 구두점은 Engelbrecht를 따라 마침표로 끊었다.
7.11-7.12 시 45:2-4(라틴어 시 44:3-5). Engelbrecht가 시편 인용을 삽입구로 표시했으므로 앞뒤에 ‘-’를 두었다. tempestiuus는 ‘때에 맞는’, ‘한창때인’이라는 뜻이며 칠십인역 ὡραῖος에 해당하여 ‘아름다움이 한창이니’로 옮겼다. 7.12 후반부는 시 8:5-6(라틴어 시 8:6-7)이다.
7.13 슥 12:10, 12; 요 19:37. tribus ad tribum은 ‘지파마다’로 옮겼다.
7.14 렘 17:9의 칠십인역(καὶ ἄνθρωπός ἐστιν, καὶ τίς γνώσεται αὐτόν)을 인용한다. 히브리어 본문을 따른 개역개정 17:9(“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와는 다르다.
7.15 “그의 출생을 누가 이야기하겠는가”는 사 53:8의 칠십인역(τὴν γενεὰν αὐτοῦ τίς διηγήσεται)이다. 스가랴서 장면은 슥 3:1-5이며, 개역개정의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칠십인역과 라틴어 성경에서는 Ἰησοῦς/Iesus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이름이 예수와 같다는 점을 ‘이름의 신비’(nominis sacramentum)로 읽으므로 본문에서 ‘예수’로 옮겼다. 마귀를 유다를 부추긴 자라고 한 것은 요 13:2, 27을, 세례 뒤의 시험은 마 4:1-11을 가리킨다. poderes는 발끝까지 내려오는 제사장 옷, mitra와 cidaris는 머리에 쓰는 것이어서 각각 ‘긴 옷’, ‘관’, ‘두건’으로 옮겼다. cidari munda는 R의 읽기이고 M은 cidarim mundam이다.
7.16 속죄일(금식일)의 두 숫염소는 레 16:5-10을 가리킨다. Engelbrecht는 이 자리의 enim이 매끄럽지 않으며, 『유대인 반박』 14장의 대응 대목에는 여호사닥의 아들인 제사장에 관한 말이 앞에 있으므로 여기서도 무언가가 떨어져 나갔을 수 있다고 보았다. 번역에서는 enim을 ‘사실’로 옮겼다. ordo는 그리스도가 두 번 오는 차례를 가리키므로 ‘단계’로 옮겼다.
7.17 domini는 Latinius의 읽기이며 M과 R은 dominum이다. Pamelius는 laesus est 앞에 et를 보충했다.
7.18 주홍색 실, 저주, 침 뱉음, 찌름, 그리고 제사장들이 다른 염소를 먹는다는 세부는 레 16장에 없다. 이 세부는 『바나바 서신』 7장과 미쉬나 요마 6장에 반영된 유대 전승에 나온다. 레 16:27은 속죄제 염소의 고기를 진영 밖에서 불사르라고 규정한다. uisceratio는 제사 뒤에 제물 고기를 나누어 주는 일을 뜻하므로 ‘제물 고기 나눔’으로 옮겼고, ieiunantibus ceteris a salute는 금식일 문맥을 받아 ‘구원을 굶을 것이다’로 옮겼다. oblatus는 F에 빠져 있고, fruerentur는 R의 읽기이며 M은 fruentur이다.
7.19 canebatur는 예언자들이 노래하듯 예언했다는 뜻이어서 ‘노래되었다’로 옮겼다. Pamelius는 7.20의 secundum 뒤에 qui est in honore et gloria를 보충했다.
- 8 본문으로
8.1 ‘살무사가 독사에게서 독을 빌린다’(aspis a uipera)는 나쁜 자가 더 나쁜 자에게서 해악을 빌린다는 뜻의 속담이다. aspis는 ‘살무사’, uipera는 ‘독사’로 옮겼다.
8.2-8.4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온 것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라 한 것은 요일 2:18, 22; 4:2-3; 요이 7을 가리킨다. praecoci et abortiui Marcionitae는 마르키온보다 앞서 때 이르게 나온 마르키온파라는 뜻으로 ‘때 이르게 태어난 유산아 같은 마르키온파’로 옮겼다. M과 F는 praecocos, R은 praecoquos로 읽고, abortiuos는 R의 읽기이며 M은 auorsiuos이다. 8.2 끝의 et tamen non은 8.3의 ut절과 이어지므로 ‘그렇다고 다음과 같은 목적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로 옮겨 부정어를 8.2에 두었다. 8.4의 deum carnem은 ‘하나님이 육신’이라는 명제로 옮겼다.
8.5 마르키온의 신이 육신을 만들지도 다시 일으키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지극히 선하다’고 한 것은 반어이다. 육신을 거짓으로 꾸민 그리스도를 보낸 신이 창조주의 ‘거짓과 속임수’와 다르다는 주장이 8.6-8.7에서 뒤집힌다.
8.7-8.8 통상의 구두점은 homo, proinde로 이어 읽는다. 8.8의 opinor는 Kroymann의 추정이며 M과 R은 Christus이다.
8.11 빛과 어둠의 사귐을 부정한 사도의 말은 고후 6:14이다. Kroymann은 M과 R의 fallaciae id est tenebrarum을 tenebrarum, id est fallaciae로 고쳤다. fallaciam은 M과 R1의 읽기이고 R3와 통상 본문은 fallacia이다.
8.12 Christi는 Ursinus의 읽기이며 M과 R은 Christus이다. uirtutes는 그리스도가 행한 능력의 일을 가리키므로 ‘기적들’로 옮겼다.
8.13 liberauit는 R의 읽기이고 M과 F는 liberabit이다. uitium은 몸의 결함이나 병을 뜻하므로 ‘병’으로 옮겼다. 이 장에서 육신과 몸의 ueritas는 ‘실재’로, 거짓(fallacia, mendacium)과 맞서는 ueritas는 ‘진실’로 옮겼다.
8.15 putatiuus는 ‘그렇다고 여겨질 뿐인’이라는 뜻이어서 ‘겉보기뿐인’으로 옮겼다.
8.17-8.18 고전 15:3-4. 인용은 ‘내가 받은 것’을 생략한 형태이다. resurrexerit는 M과 F의 읽기이고 R은 resurrexit이다.
8.19 육신이 취해진 땅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창 3:19이다. reuertentis는 Latinius의 읽기이며 M과 R은 deuertentis이다.
8.22 si Christi는 M, si Christus는 R의 읽기이다. Pamelius는 ualebit 대신 resurrexit로 읽었다.
8.23-8.27 고전 15:12-18을 차례로 따른다(8.23은 15:12, 8.24는 15:14, 8.25는 15:15, 8.26-8.27은 15:17-18). 8.24의 inanis et는 Junius의 읽기이며 M과 R은 inanis est이다.
- 9 본문으로
9.1 아브라함과 롯을 찾아온 천사들이 음식을 먹고 맡은 일을 행한 장면은 창 18:1-8; 19:1-3을 가리킨다. 마르키온파는 이 천사들이 실제 육신 없이도 참으로 행동했다는 점을 들어 환영인 그리스도를 변호했다.
9.4 carni는 Kellner의 추정이며 M과 R은 carnis이다. uel qua는 ‘그가 ... 라는 이유만으로도’로 옮겼다.
9.5 enim은 Kroymann의 추정이며 M과 R은 autem이다. hanc qualitatem은 Kroymann의 추정이며 M과 R은 hac qualitate이다. 진흙에서 취한 육신은 창 2:7, 무에서 말씀으로 세상을 지은 것은 창 1장을 가리킨다.
9.6, 9.9, 9.15 사본은 unde 하나만 전하고, 편집자들(9.6은 Ursinus, 9.9는 Latinius, 9.15는 Pamelius)이 unde를 하나 더 보충하여 ‘어디서든’(undeunde)으로 읽는다. 보충된 부분을 ‘어디서<든>’의 <든>으로 표시했다.
9.6 “그들은 천사들과 같을 것이다”는 눅 20:36이다. 마르키온이 사용한 누가복음 본문에 들어 있는 말이므로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그대의 신’의 약속으로 다룬다.
9.7-9.8 통상 본문은 9.7의 sumatur 뒤에 쉼표를 두어 9.8과 이어 읽는다.
9.10 certa ratione를 Kroymann은 ‘분명한 근거로써’라는 뜻으로 설명하며, 이를 따라 ‘분명한 이유를 들어’로 옮겼다. qua는 M과 R의 읽기이고, Oehler는 주석에서 quia를 제안했다.
9.13 아브라함에게 나타난 세 사람 가운데 하나를 그리스도로 보는 해석이다(창 18장). ediscentis는 Kroymann의 추정이며(『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6장 참조), M과 R1은 et discentes, R3는 discentis이다. 그리스도가 성육신 이전에 나타남으로써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법을 익혔다는 생각은 제2권 27장에도 나온다.
9.14 commeatus는 군인의 휴가나 일시적인 체류를 뜻하므로 ‘짧은 체류’로 옮겼다. breuem은 R의 읽기이고 M과 F는 breue이다.
9.15 demissa는 Kroymann의 추정이며 M과 R은 dimissam이다. 통상 본문은 9.14의 fuerant 뒤에 쉼표를 두어 9.15와 이어 읽는다.
9.16 시 104:4(라틴어 시 103:4); 히 1:7. 칠십인역을 따른 라틴어는 ‘천사들을 영으로, 시종들을 타오르는 불로’이고, 개역개정 시 104:4는 “바람을 자기 사자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라고 옮긴다. spiritus는 ‘영’과 ‘바람’을 모두 뜻하며, 여기서는 천사의 실체를 말하는 논증이므로 ‘영’으로 옮겼다.
- 10 본문으로
10.1 admissus는 R3의 읽기이고 M과 R1은 admissum이다. tui는 R3의 읽기이고 M과 R1은 uti이다.
10.2 ‘똥으로 채워진’ 육신이라는 표현은 육신을 경멸하는 마르키온파의 말로 인용된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4장에서도 이와 같은 경멸을 다룬다.
10.3 imago는 ‘형상’, similitudo는 ‘모양’, 10.2의 simulacrum은 ‘모상’, 10.6-10.7의 effigies는 ‘본뜬 모습’으로 옮겼다.
10.6 fides와 stropha가 대비되므로 fides를 믿음이 아니라 ‘신실함’(속임 없는 정직)으로 옮겼다. stropham은 M과 R3의 읽기이고, R1은 stofam, F는 scofam이다.
10.7 aliquatenus는 Kroymann의 추정이며 M과 R은 aliquantis이다.
10.9 떨기나무와 불은 출 3:2, 구름은 출 13:21-22; 14:19-24를 가리킨다. globus는 둥근 덩어리를 뜻하며 불기둥(구름 기둥)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나 원어의 뜻을 살려 ‘둥근 덩이’로 옮겼다. idem은 R3의 읽기이고 M과 R1은 id est이다. paratura는 갖추어 입는 장비라는 뜻이어서 ‘육신이라는 장비’로 옮겼다.
10.12 fingendo는 ‘빚어 만듦’과 ‘거짓으로 꾸밈’을 함께 뜻한다. 여기서는 마르키온의 그리스도가 육신을 흉내 낸 일을 가리키므로 ‘본떠 꾸밈으로써’로 옮겼다. deus superior는 마르키온의 신을 가리키며 ‘더 높은 신’으로 옮겼다.
- 11 본문으로
11.1 putatiua corpulentia는 그리스도의 몸이 실제가 아니라 그렇게 여겨진 것일 뿐이라는 마르키온의 가현설적 주장을 가리키며, ‘겉보기 몸’으로 옮겼다.
11.2 ‘폰투스 사람’(Ponticus)은 폰투스의 시노페 출신인 마르키온을 가리킨다. ‘하나님에게서’로 옮긴 in deo caro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caro in deo로 읽는다. 참된 육신을 지녔으나 태어나지 않은 창조주의 천사들은 아브라함을 찾아온 세 사람과 소돔에 간 두 천사(창 18-19장)를 가리킨다.
11.3 필루메네는 아펠레스가 따른 여성 예언자이다. 아펠레스는 마르키온의 제자였다가 갈라선 인물로, 그리스도가 탄생 없이 원소들에게서 육신을 취했다고 가르쳤다. ex fide는 ‘참으로, 실제로’의 뜻으로 옮겼다. magis(오히려)는 11.2의 facilius(더 쉽게)와 짝을 이루어, 필루메네가 환영보다 태어나지 않은 참 육신을 택했음을 나타낸다.
11.5 눅 11:27. 11.6 눅 8:20.
11.7 filius hominis는 개역개정을 따라 ‘인자’로 옮겼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칭호가 ‘사람의 아들’, 곧 사람에게서 태어난 자를 뜻한다는 데서 탄생의 고백을 끌어낸다.
11.8 et uidebimus de his capitulis suo in tempore는 사본에서 11.6의 foris stare 뒤에 있으나 Kroymann이 이 자리로 옮겼다. tamen quod supra statui 뒤에 Kroymann은 teneo를 보충하여 읽으며, 이를 따라 ‘그대로 지킨다’로 옮겼다. ‘복음에 대한 검토’는 마르키온의 복음서를 다루는 제4권을 가리킨다.
11.9 expugnandam(무너뜨려야)은 MR1의 독법이고 R3와 옛 판본들은 expungendam으로 읽는다.
11.12 ‘그대는’으로 옮긴 tu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tunc(그때)로 읽는다.
11.13 sanguinis tributum(피의 공납)은 다달이 치르는 월경의 피를 가리키며, 그것이 멈추어 배가 부푸는 상태를 말한다.
11.14 scaena(무대), desaltare(춤으로 배역을 끝까지 연기하다), persona(배역), agere(연기하다)는 무언극의 용어이다. 환영으로서의 그리스도를 무대 배우에 빗대어, 육신의 배역을 맡았다면 탄생 장면까지 연기했어야 한다고 비꼰다. desaltasset는 R3의 독법이고 MR1은 adeltasset로 읽는다.
11.15 Kroymann은 이 문장을 반어로 읽는다. 마르키온은 참 육신도 참 탄생도 인정하지 않았으므로, ‘육신 자체를 참된 것으로 내놓았다’는 말은 조롱이다. ‘참된 탄생마저’의 etiam은 ‘참된 육신뿐 아니라’라는 뜻이다.
11.19 ‘합당하지 않다’(indigna)는 사본 F의 독법이고 MR은 digna로 읽는다. caro damnatione(육신이 정죄보다)는 Kroymann의 추정이고 MR은 carne damnatio로 읽는다.
- 12 본문으로
12.1 †로 표시된 ad hanc 부근에서 Kroymann은 adhuc <ad> hanc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Engelbrecht는 앞부분에서 이사야의 예언(사 7:14; 8:4) 인용이 탈락했다고 추정한다. 전해진 대로 ‘이사야와 그리스도를 이렇게 견주는 일’로 옮겼다. 같은 논증이 『유대인 반박』 9장에도 나온다.
12.2 사 7:14; 8:4. uirtus는 ‘힘’과 ‘재물’을 함께 뜻하며, 개역개정 사 8:4는 ‘다메섹의 재물’이라 한다. 13장의 논증이 uirtus를 힘과 재물(금)의 양면으로 풀기 때문에 ‘힘’으로 통일했다. 라틴어 aduersus regem Assyriorum은 ‘앗수르 왕에 맞서’이고, 개역개정은 ‘앗수르 왕 앞에 옮겨질 것’이다.
12.5 마 1:23. 라틴어에서 nobiscum deus와 deus nobiscum의 어순이 번갈아 나오지만 의미 차이가 없어 모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로 옮겼다.
12.8 [일컬어지는 대로]로 옮긴 dicitur는 Kroymann이 삭제 표시한 말이다. 사본 MF에는 12.9의 idcirco부터 deus nobiscum까지가 이 자리에도 한 번 더 들어 있고, R은 이를 삭제했다.
12.9 ‘이것 역시’(et hoc)는 Kroymann이 어순을 고친 독법이며 사본 MR은 hoc sit et로 읽는다. 테르툴리아누스는 히브리어를 쓰는 그리스도인들과 마르키온파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를 말할 때 Emmanuel이라는 말을 쓴다고 주장한다.
12.10 ‘말하게 될 것이다’(pronuntiabit)는 Engelbrecht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pronuntiauit로 읽는다. expungere는 ‘이행하다, 완수하다’의 뜻으로, 뜻을 말함으로써 그 소리가 나타내는 바를 채운다는 의미로 옮겼다.
12.11 갈 3:27. tingere는 ‘물에 담그다’로 세례를 가리킨다. ‘고유하게’(proprie)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proprius로 읽는다.
- 13 본문으로
13.1 ‘앞에 두었는지’(praemittat)는 Pamelius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promittat로 읽는다.
13.2 사 8:4. <아이가>(puer)는 Pamelius의 보충이다. 개역개정은 ‘이 아이가 내 아빠, 내 엄마라 부를 줄 알기 전에’이다.
13.5 폰투스 지방의 야만 민족을 조롱하는 대목이다. ‘버터로 급료를 받으며’는 사 7:15의 ‘버터와 꿀’을 겨냥한 말장난이다. lanceare(창을 던지다)와 lancinare(찢다)는 발음이 비슷한 말을 맞세운 언어유희이며, lancinare는 이가 나서 음식을 찢어 먹는 일로 옮겼다.
13.6 ‘사내 구실을 하다’(uirum facere)는 Kroymann이 『유대인 반박』 9장의 병행 구절을 따라 고친 독법이고, 사본 MR은 uiuere, Engelbrecht는 uirere로 읽는다.
13.7 ‘그는 말한다’(inquit)의 주어는 마르키온 측 반론자이다.
13.9 사 7:14. 개역개정은 signum을 ‘징조’로 옮기나 여기서는 논증의 용어를 살려 ‘표징’으로 옮겼다.
13.10 ‘이미 표징이’(iam signum)는 Latinius가 병행 구절을 따라 제안한 독법이고, 사본 MR은 tam dignum으로 읽는다.
13.11 사 7:14의 히브리어 ‘알마’를 아퀼라, 테오도티온, 심마쿠스의 그리스어 역은 ‘젊은 여자’(νεᾶνις)로, 칠십인역은 ‘처녀’(παρθένος)로 옮겼다. 유대인 측이 ‘젊은 여자’ 독법을 내세운 논쟁은 유스티누스 『트리폰과의 대화』 43, 67장에도 나온다.
13.12 ‘믿어지겠지만’(credetur)은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crederetur, Pamelius는 creditur로 읽는다.
13.13 사 7:15. ‘새로운 탄생에’(natiuitati)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natiuitatis로 읽는다. alibi(다른 곳에서)는 표징 구절(사 7:14)과 구별되는 이어지는 구절들(사 7:15; 8:4)을 가리킨다. nec hoc부터 infantiae est까지를 Kroymann은 삽입구로 보고, 번역에서도 줄표로 묶었다.
13.14 [곧, 악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est: malitiae non assentaturi)는 Kroymann이 삭제 표시한 말로, 사 7:15-16의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줄 알 때’를 풀어 쓴 주석이 본문에 들어온 것으로 본다. ‘유아기에’(infantiae)는 Ursinus의 독법이고, sed 뒤의 <또한>(et)은 Kroymann의 보충이다.
13.15 ‘나중의 복음에서’(posteriori)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posterior(나중에 그대는)로 읽는다. Kroymann은 이것을 마르키온 자신의 복음서로 해석한다. 마르키온의 복음서에는 마 2장의 박사 이야기가 없다.
13.16 마 2:11. 테르툴리아누스는 세 예물 가운데 금과 유향만 든다. ‘그리스도의 유아기에’(infantiam Christi)는 Kroymann의 추정이고 사본 MR은 in infantia Christum으로 읽는다.
13.17 uirtus를 ‘위력과 세력’(uim et uires)으로 풀어, 다메섹의 ‘힘’이 곧 금과 향료라는 재물임을 보인다. Kroymann은 et uires가 병행 구절에서 끼어든 말일 수 있다고 본다. ‘창조주가 하는 일’(creatoris)은 Pamelius 등의 독법이고 사본 MR은 creatori로 읽는다.
13.18 슥 14:14. 개역개정은 ‘사방에 있는 이방 나라들의 보화 곧 금 은과 의복이 심히 많이 모여질 것이라’이다. praetendet(앞장서다)는 MR1의 독법이고 R3는 pertendet로 읽는다. ualentia는 ‘힘’으로 옮겨, uirtus와 같은 논리로 금과 은을 민족들의 힘으로 보는 해석을 살렸다.
13.19 시 72:15(칠십인역 71:15). 개역개정은 ‘스바의 금’이고 라틴어 본문은 ‘아라비아의 금’이다.
13.20 시 72:10. 개역개정은 ‘스바와 시바 왕들이 예물을 드리리로다’이고 라틴어 본문은 ‘아랍 사람들과 스바의 왕들’이다. ‘시리아들의 분할’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194년 무렵 시리아 속주를 시리아 코일레와 시리아 페니키아로 나눈 일을 가리키며, 다메섹은 시리아 페니키아에 속하게 되었다. magi는 개역개정 마 2:1을 따라 ‘박사들’로 옮겼다.
13.21 왕상 12:28-31. 여로보암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운 일을 가리킨다.
13.23 사 1:10. archontas는 그리스어 ἄρχοντας를 그대로 쓴 말이며 개역개정을 따라 ‘관원들’로 옮겼다.
13.24 겔 16:3. Cethea는 개역개정의 ‘헷 사람’이다.
13.25 사 1:2. 개역개정은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이다.
13.26 계 14:8; 17:5; 18:10. ‘우리의 요한’은 마르키온이 요한계시록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붙인 표현이다.
13.28 마 2:12.
- 14 본문으로
14.1 이 장은 시 45편(칠십인역과 불가타 44편)을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으로 읽는다.
14.2 시 45:3. 라틴어 super femur는 ‘허벅지에’이고 개역개정은 ‘허리에’이다. ensem은 Gelenius의 독법이고 사본 MR은 ense로 읽는다.
14.3 시 45:2. tempestiuus decore는 ‘아름다움이 제때에 이른, 한창인’의 뜻으로, 14.4와 14.11의 tempestiuitas decoris를 ‘아름다움의 한창때’로 옮겼다.
14.5 시 45:4. extende는 칠십인역 ἔντεινον(활을 당기다, 뻗치다)에 해당하며, 14.13에서 말씀을 온 땅에 뻗치는 것으로 풀이되므로 ‘뻗어 나가라’로 옮겼다.
14.6 시 45:4. iustitia는 시편 인용이므로 ‘의’로 옮겼다(개역개정 ‘공의’). <이것들을>(ea)은 Engelbrecht의 보충이고 Ursinus는 haec를 보충한다.
14.8 계 1:16; 2:12; 19:15, 21. 계시록에서 칼은 인자 또는 말 탄 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테르툴리아누스는 ‘하나님의 입에서’라고 쓴다. 원수들에 대해서는 엡 6:12, 가장 사랑하는 이들에게서 잘라 낸다는 말은 마 19:29; 눅 14:26을 반영한다.
14.9 엡 6:14-17. 바울을 ‘공동의 스승’이라 부른 것은 마르키온도 바울 서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마르키온의 정경에서 에베소서는 ‘라오디게아서’라는 이름으로 들어 있었다. lorica는 개역개정의 ‘호심경’에 해당하며 ‘흉갑’으로 옮겼다. praeparationem은 MF의 독법이고 R은 praeparatione로 읽는다.
14.10 마 10:34. machaera는 ensis, gladius(칼)와 구별하여 ‘검’으로 옮겼다. 마르키온이 사용한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눅 12:51)에는 ‘검’ 대신 ‘분쟁’이 나온다.
14.11 ‘그대의 그리스도’는 14.10에서 검을 보내러 왔다고 말한 주를 가리킨다. quem(그 칼을)은 ensis를 받는다.
14.14 시 45:4. 개역개정은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이다.
14.15 시 45:5. traductiones cordis는 마음속을 드러내어 꾸짖는 일을 뜻하며 ‘마음을 드러내는 책망들’로 옮겼다.
14.16 시 45:5. 개역개정은 ‘만민이 왕의 아래에 엎드러지는도다’이다.
14.17 interpretationibus eius의 eius는 앞 문장의 비유적 말하기를 받는 것으로 보아 ‘그 방식의 해석들’로 옮겼다. in tantum ... in quantum은 ‘전사가 아니었던 바로 그만큼’, 곧 전사가 아니었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사야의 그리스도라는 뜻이다.
- 15 본문으로
15.3-15.4 Kroymann은 사본 MR의 sicut와 sic의 자리를 바꾸고 dominum을 deum으로 고쳐 ut sic utriusque dei filium Christum competat dici, sicut utrumque patrem deum으로 읽었다. 번역은 이 본문을 따라 ‘두 아버지를 각각 신이라고 부르는 것처럼’을 앞 조건문에 붙였다.
15.4-15.5 고전 8:5 인용이다. 개역개정은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이다.
15.5-15.7의 dispositio는 하나님이 정하고 실행하는 계획, 곧 경륜으로 옮겼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신’이라는 이름은 본성(natura)에서 오기 때문에 여러 존재에게 쓰일 수 있지만,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경륜에서 오기 때문에 그 경륜을 세운 이에게만 속한다고 논증한다.
15.7 in discordia dispositionum은 Kroymann의 수정(사본 discordiam)이다. commentati는 두 신의 경륜을 ‘지어낸’ 마르키온파를 가리키는 주격 복수로 보았다.
15.8 catachresis는 고유한 명칭이 없을 때 다른 대상의 단어를 빌려 쓰는 수사학의 전용이다. nullus ... nonnisi의 이중 부정은 ‘어느 것이든 ...로만’이라는 강한 긍정으로 옮겼다. nunc 대신 Ciacconius는 tunc를 제안했다.
15.9 dispositio eius는 Kroymann의 수정(사본 dispositiones)이다. Engelbrecht는 deficere puto nihil debere로 읽기를 제안했다.
15.11 마 9:16-17(막 2:21-22; 눅 5:36-38)의 새 헝겊과 새 포도주 비유를 가리킨다. inditus는 M의 읽기이고 R과 통행본은 indutus(입은)이다. Kroymann은 senio를 adsutus와 inditus에 함께 걸리는 여격으로 해석하며, 번역도 이에 따랐다.
15.12 Engelbrecht는 in nomine의 in을 삭제하자고 했으나 번역은 Kroymann 본문대로 in을 살렸다.
15.16 Christus는 그리스어 χριστός, 곧 ‘기름 부음 받은 자’이므로 이름 자체가 기름 부음을 받을 몸을 전제한다는 논증이다. <autem>은 Kroymann의 보충이다.
15.21 planus는 떠돌이 사기꾼을 가리킨다. euangelium probabit는 제4권에서 할 마르키온 복음서 검토를 가리킨다. Engelbrecht는 probauit로 읽고 마 24:24와 막 13:22의 거짓 그리스도 경고를 가리킨다고 보았다. crediderint의 주어는 유대인들이다.
- 16 본문으로
16.1 sportula는 후견인이 피후견인에게 나누어 주던 음식 바구니나 그 대신 주던 돈이다. 남의 바구니를 낚아채는 좀도둑에 빗대어 마르키온의 그리스도가 창조주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로챘다고 비꼰다.
16.2 ‘지혜를 빼앗긴 유대인들’은 사 29:14(“지혜자들의 지혜가 없어지고”)를 가리킨다. sacramentum은 이 장과 18장에서 감추어졌다가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뜻으로 보아 ‘신비’로 옮겼다.
16.3 Heliam potius interpretantur Christum quam Iesum은 ‘예수보다 엘리야를 그리스도로 해석한다’로 옮겼다. 말 4:5의 엘리야 재림 기대와 요 1:21의 질문이 배경이다.
16.6 obstrepit는 Ursinus의 수정(사본 obrepit)이고, <ideo Iesus,>는 Ursinus의 보충이다.
16.9 Auses는 민 13:16(칠십인역 Αυση)의 호세아이고, Naue는 눈이다. 라틴어 Iesus는 그리스어 Ἰησοῦς를 옮긴 것으로, 히브리어 여호수아의 그리스어 형태이며 예수의 이름과 같다. 테르툴리아누스의 논증이 이 동일성에 기대므로 번역도 여호수아를 ‘예수’로 옮겼다. 18.14도 같다.
16.10 secundum populum은 이스라엘 다음의 ‘둘째 백성’, 곧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수 1:1-9, 민 14:29-31, 출 3:8(젖과 꿀이 흐르는 땅), 수 5:2(돌칼로 할례), 고전 10:4(반석은 그리스도)가 배경이다. <in>은 Kroymann, <id est>와 <praeceptis>는 Pamelius가 『유대인 반박』 9장의 병행 대목을 따라 보충했다. Pamelius는 imagines 대신 imagine로 읽었다.
16.13-16.14 출 23:20-21 인용이다. angelus는 ‘천사’로 옮겼으며, 개역개정은 ‘사자’이다. non enim celabit te는 Engelbrecht의 수정(MF celauit, R celaui)이다. 칠십인역은 οὐ γὰρ μὴ ὑποστείληταί σε(그는 너를 피하여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이고, 개역개정은 히브리어 본문을 따라 “그가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아니할 것은”이다. 인용문의 복수 명령 intendite, exaudite와 단수 te가 섞여 있어 번역도 ‘너희’와 ‘너’를 그대로 두었다. Pamelius는 모두 단수로 고쳤다.
16.14 Iesum autem ob nominis sui futuri sacramentum의 sui는 말하는 주체인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 ‘장차 자기가 지닐 이름’으로 옮겼다.
16.15 id enim은 Kroymann이 병행 대목을 따라 사본의 identidem을 고친 읽기이다.
16.16-17.1 ordo는 예언된 그리스도의 생애가 차례로 이어지는 과정을 가리키므로 ‘행로’로 옮겼다.
16.17 praescriptio는 본안 심리에 앞서 상대 주장이 성립할 조건을 정하는 법정 용어이다. 여기서는 두 그리스도에게 공통점이 있으면 안 된다는 논쟁의 전제 규칙을 가리킨다.
16.18 사본과 Kroymann 본문은 a nobis를 두 번 쓴다. 번역은 차이를 부정해야 하는 테르툴리아누스 쪽도 차이의 기준을 지켜야 한다는 뜻으로 옮겼다. 뒤따르는 문장이 마르키온파(uos)와 테르툴리아누스 쪽(nos)에 각각 필요한 입증을 제시한다.
- 17 본문으로
17.1-17.3 사 53:2-3의 칠십인역에 가까운 인용이다. adnuntiauimus coram ipso, uelut puerulus는 칠십인역 ἀνηγγείλαμεν ἐναντίον αὐτοῦ ὡς παιδίον에 해당하며, 개역개정은 “그는 주 앞에서 자라기를 연한 순 같고”이다. deficiens citra omnes homines의 citra는 ‘모든 사람에 못 미치는’으로 옮겼다.
17.3-17.4 ‘앞에서’ 한 말은 사 52:14로, 사 53장 바로 앞에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아버지가 아들에게 한 말로 읽는다.
17.5-17.6 quodcumque-adnuntiabatur는 사본에서 17.1의 cum scripturis conferamus 뒤에 있으나 Kroymann이 이 자리로 옮겼다. quonam habitu et quonam conspectu도 Kroymann의 수정(사본 quoniam habitum et quoniam conspectum)이다. corpusculum은 마르키온파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을 낮추어 부른 말로 보아 ‘하찮은 몸’으로 옮겼다.
17.7 시 45:2-3(Kroymann은 불가타 번호로 Ps. 44, 3-4) 인용이다. tempestiuus decore는 칠십인역 ὡραῖος κάλλει(아름다움이 한창인)를 옮긴 고대 라틴어 역본의 표현이다. 개역개정 시 45:2는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이다. 여기서 citra는 ‘보다 빼어나게’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Pamelius는 supra로 고쳤다. ‘말씀의 칼’은 시 45:3의 칼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풀이한 것이다(엡 6:17; 히 4:12 참조).
17.8 시 22:6(불가타 21:7) 인용이다. 개역개정은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이다. in corporali habitu는 Kroymann의 수정(사본 habitu incorporabili)이다. nullificamen은 칠십인역 ἐξουδένημα를 옮긴 말이다.
17.9 adnuntia sunt는 Kroymann의 수정이다. R3과 통행본은 adnuntiat로 읽어 ‘예언자가 그의 내면의 성질은 이와 같다고 알리지 않는다’라는 뜻이 된다.
17.9-17.11 사 11:1-3 인용이다. 칠십인역에는 ‘경건의 영’(εὐσεβεία)이 들어 있고, 개역개정은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다. uirga를 ‘줄기’, flos를 ‘꽃’으로 옮겼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도의 육신에 관하여』 21장에서 줄기를 마리아, 꽃을 그리스도로 풀이한다. 17.11의 uniuersitas는 Kroymann이 병행 대목을 따라 사본의 diuersitas를 고친 것이고, censendam(M, Pamelius)은 Mariam에 걸리므로 ‘혈통이 거기서부터 헤아려지는 마리아’로 옮겼다. R과 다른 편집본은 censendum이다.
17.12 사 53:3, 53:7, 42:2-3(마 12:19-20 참조)을 엮은 대목이다. homo in plaga et sciens ferre imbecillitatem은 칠십인역 사 53:3을 따른다. linum ardens는 칠십인역 λίνον καπνιζόμενον(연기 나는 심지)에 해당하며, 개역개정 사 42:3은 “꺼져가는 등불”이다. 갈대와 심지에 붙은 ‘곧 ...’ 풀이는 테르툴리아누스 자신의 것이다. Pamelius는 extinxit 뒤에 sed lucernam magis fecit ortu luminis sui를 보충했다.
17.13 <et>는 Kroymann의 보충으로 ‘행적도’의 ‘도’로 옮겼다.
17.14 마르키온의 복음서 검토는 제4권에서 이루어진다. quasi in rem praesentem은 ‘현장에 가서’라는 법률 표현으로, Kroymann은 사안 자체가 눈앞에 있는 자리, 곧 복음서 본문을 다룰 자리로 풀이한다. uirtus는 그리스도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17.15 사 50:10 인용이다. 칠십인역 τοῦ παιδὸς αὐτοῦ의 παῖς는 ‘아이’와 ‘종’을 모두 뜻하며, 라틴어는 filius로 옮겼다. 개역개정은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이다. [et]는 Kroymann이 제4권 22장의 quis deum metuens audiat를 근거로 삭제 대상으로 표시한 단어이다.
17.16 사 53:4 인용이며 마 8:17에서도 인용된다.
- 18 본문으로
18.1-18.2 신 21:23 인용이며 갈 3:13에서도 인용된다. 18.2의 differo를 Kroymann은 semoueo(떼어 놓다)로, digne를 iure(정당하게)로 풀이했고, digne a는 Kroymann의 수정(R dignae, M digne)이다.
18.4 창 22:6에서 이삭이 번제 나무를 지고 간 일을 가리킨다.
18.5 figuraturus는 Engelbrecht의 수정(사본 figuratus), uel은 Kroymann이 병행 대목을 따라 사본의 nec를 고친 것이다. Pamelius는 18.6의 passus est 뒤에 et uenumdatus in Aegyptum을 보충했다.
18.6 <fratribus>는 Oehler가 『유대인 반박』 10장의 병행 대목을 따라 보충한 것이다.
18.6-18.7 인용된 축복은 신 33:17에서 모세가 요셉 지파에게 한 축복인데, 테르툴리아누스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unicornis는 칠십인역 μονόκερως(외뿔 짐승)를 따른 것이며, 개역개정은 “그의 뿔은 들소의 뿔 같도다”이다. uentilare는 키질하듯 들어 올려 흔들어 던진다는 뜻이며, 18.9에서 믿음으로 하늘로 들어 올리는 일과 심판으로 땅으로 내던지는 일의 두 방향으로 풀이되므로 ‘키질하다’로 옮겼다.
18.8 antemna는 돛을 거는 가로 활대이며, 라틴어 항해 용어에서 그 양 끝을 cornua라고 불렀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십자가의 가로대에 적용한다. mediae는 Engelbrecht의 수정(사본 media)이며, Ursinus는 medius, Junius는 medio로 읽었다.
18.10-18.12 창 49:5-6 인용이다. imprecatur는 Kroymann의 수정(사본 interpretatur)이고, ex illis enim deducitur census istorum을 삽입구로 표시한 것은 Engelbrecht이다. 이 삽입구는 18.10과 18.11에 걸쳐 있어 ‘저들(시므온과 레위)에게서 이들(서기관과 바리새인)의 혈통이 내려온다’는 뜻을 18.10 끝과 18.11 첫머리에 나누어 옮겼다. Pamelius는 cum Iacob 뒤에 exporrigens benedictionem을 보충했다.
18.11 haeresis는 칠십인역 αἵρεσις(선택, 뜻)를 옮긴 말인데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분파’라는 뜻으로 읽어 그리스도를 박해한 무리에 적용한다. 개역개정 창 49:5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이다.
18.12 iecora mea(내 간)는 칠십인역 τὰ ἥπατά μου를 따른 것이며, 개역개정은 “내 영광아”이다. neruos tauro ceciderunt는 개역개정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에 해당한다. 사람들과 황소에 붙은 ‘곧 ...’ 풀이는 테르툴리아누스 자신의 것이다. Engelbrecht를 따라 quem은 suffigendo의 목적어로 보았다.
18.14 출 17:8-13의 아말렉 전투이다. 여기의 Iesus도 여호수아이다. dimicaturi는 domini에 걸리는 속격으로 보아 ‘언젠가 마귀에 맞서 싸울 주의 이름’으로 옮겼다. uolutante는 병행 대목의 uolutata로 고치지 않는 Kroymann 본문을 따랐다.
18.15 출 20:4의 형상 금지와 민 21:8-9의 청동 뱀을 대비한다(요 3:14 참조). Pamelius는 salutare 앞뒤에 Israeli와 eo tempore, quo a serpentibus exterminati sunt를 보충했다.
18.16 publicabatur는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망신시킨다는 뜻으로, 골 2:15의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와 겹친다. salus는 M과 R3의 읽기이며 R1은 sanitas이다.
- 19 본문으로
19.1 시 96:10(칠십인역·불가타 95:10)이다. a ligno(나무로부터)는 히브리어 본문과 칠십인역 주요 사본에 없고 일부 라틴어 시편 전승에 들어 있는 구절이다. 유스티누스는 『트리폰과의 대화』 73장에서 유대인들이 이 말을 지웠다고 주장했다. 개역개정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이다. 같은 구절이 21.2에 다시 쓰인다.
19.2 lignarius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 곧 목수나 목재상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a ligno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닌 다른 왕에게 돌리려는 해석을 이 말로 비꼰다. <putes>는 Kroymann이 평행 구절인 『유대인 반박』 10장을 따라 보충했다.
19.3 롬 5:14(“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에 기댄 논증이다. etenim si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etsi enim)이다. regnum mortis는 regnauit와 짝을 이루므로 ‘죽음의 통치’로 옮겼다.
19.4-19.5 사 9:6이다. 개역개정은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이다. Kroymann 본문에는 ‘아들’(filius)이 없어 주어 없이 ‘또 우리에게 주어졌으니’로 옮겼다. Pamelius는 <et datus est nobis filius>를 보충하려 했다. 대시 사이의 quid noui 문장은 테르툴리아누스의 삽입 논평이다.
19.7 nouae gloriae는 rex에 걸릴 수도 있고 potestatem et sublimitatem에 걸릴 수도 있다. 번역은 후자로 보아 ‘새 영광의 권능과 숭고함’으로 옮겼다. Kroymann은 nouae gloriae nouorum aeuorum Christus Iesus로 어순을 바꾸는 가능성도 제시했다.
19.8-19.9 렘 11:19의 칠십인역(“그의 빵에 나무를 던져 넣자”)이다. 개역개정은 “우리가 그 나무와 열매를 함께 박멸하자”이다. <de>는 편집자의 보충이다. 19.9의 dominus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deus)이다.
19.9 ‘그대들의 복음’은 마르키온이 쓰던 복음서로, 눅 22:19의 성찬 제정 말씀(“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을 가리킨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제4권 40장에서 이 말씀을 figura corporis mei(내 몸의 상징)로 풀이한다. sacramentum은 여기서 예언 속에 감추어진 뜻을 가리키므로 ‘신비’로 옮겼다. pani는 사본 MF의 읽기이며, Oehler는 corpori를 제안했다.
19.10-19.13 시편 번호는 칠십인역과 불가타를 따른 것으로, ‘제21편’은 개역개정의 시 22편이다. 19.11은 시 22:16(“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9.12-13은 22:21이다. unicornis는 칠십인역의 μονόκερως(외뿔 짐승)를 옮긴 말이며 개역개정은 “들소의 뿔”이다. <meam>은 Kroymann의 보충이다. ‘앞에서 보였듯이’는 18.4에서 신 33:17의 뿔을 십자가의 가로대 끝으로 풀이한 대목을 가리킨다. 19.11의 atrocia sunt는 Engelbrecht의 수정이다.
19.14 <prophetari passionem quam eius>는 Pamelius가 『유대인 반박』 10장의 평행 구절에서 보충했다. 꺾쇠 안의 번역은 이 보충 부분만 옮긴 것이고, qui solus 이하의 관계절은 뒤의 독립문으로 풀었다.
19.15 significari [me] a creatore는 Engelbrecht의 읽기이다. 사본 MR은 significare me a creatore(‘내가 창조주에게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전혀 보여 주지 못한다고’)이다. 번역은 남은 me를 [나로서는]으로 옮겨 괄호 안에 두었다.
19.16 Engelbrecht는 praedicatum 대신 praedicata를 제안했다. ‘자기의 신’은 마르키온파가 내세우는 선한 신이다.
19.21 사 57:2의 칠십인역(ἡ ταφὴ αὐτοῦ ἦρται ἐκ τοῦ μέσου)이다. 개역개정은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이다. sepultura는 장사와 무덤을 다 뜻하므로, 19.20에서는 ‘장사’로, 인용문에서는 ‘무덤’으로 옮겼다.
19.22 사 53:12이다. 개역개정은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이다. Pamelius는 spolia 뒤에 설명구를 보충하려 했다.
19.23 repensandae(갚다, 보상하다)는 ‘죽음의 해악을 갚아 주려는 것’으로 옮겼다. [propter mortem consecuturum]은 Junius가 삭제를 제안한 구절이다. 마지막 consecuturum은 Pamelius의 수정(사본 MR consecuturus)이다.
- 20 본문으로
20.1 a diuersa sententia(반대편 견해에 의해)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ad diuersas sententias)이며, quae도 Kroymann의 수정(사본 MR quaeque)이다. ex praeiudicio maioris partis는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더 큰 부분이 이미 예언대로 입증되었으므로 그 결과가 나머지 부분에 대한 판단을 미리 정한다는 뜻이다.
20.3 <haec>는 Kroymann의 보충이다. dispositio는 여기서 하나님이 정한 일들의 배열, 곧 ‘경륜’으로 옮겼다. 20.9, 20.13, 20.21에서는 이사야서 칠십인역의 διαθήκη를 옮긴 말이므로 ‘언약’으로 옮겼다.
20.4-20.5 『유대인 반박』 11장 끝과 12장에 같은 논증이 있다. Kroymann은 20.4의 ad deum Christum 앞에 평행 구절에 따라 <et> ad eius Christum을 넣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20.6 시 2:7-8이다. 개역개정은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이다.
20.7-20.8 eius는 앞 인용의 ‘아버지’, 곧 창조주를 가리킨다. Pamelius는 filium eum으로 읽었다.
20.9 사 42:6-7이다. in dispositionem generis는 칠십인역 εἰς διαθήκην γένους를 옮긴 말로 ‘족속의 언약’으로 옮겼다. 개역개정은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여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이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삽입 풀이(헤매는 자들, 죄과, 죽음, 무지)는 인용 부호 밖에 두었다.
20.11-20.12 사 55:4-5이다. 개역개정은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이다. Engelbrecht는 칠십인역 ἐν ἔθνεσιν에 맞추어 eum <in> nationibus로 읽기를 제안했다.
20.13 사 55:3이다. religiosa et fidelia Dauid는 칠십인역 τὰ ὅσια Δαυιδ τὰ πιστά를 옮긴 말로, 개역개정은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다. 20.29에서는 같은 구절이 sancta et fidelia로 인용되어 ‘거룩하고 신실한 것들’로 구별해 옮겼다.
20.15 시 132:11(칠십인역 131:11)이다. 개역개정은 “네 몸의 소생을 네 왕위에 둘지라”이다. 뒤따르는 논증이 uenter(배, 태)라는 낱말에 기대므로 ‘배’로 옮겼다.
20.18-20.20 사본 MF에는 superest부터 deputauit까지가 두 번 나온다. 20.20의 uirginis uentrem patri eum은 Kroymann이 사본들의 서로 다른 읽기를 정리한 본문이다. patri는 혈통의 시조인 다윗을 가리킨다.
20.21 ita quae는 Ursinus의 수정(사본 MR itaque)이다. 사본 F에는 noua가 없다.
20.22 [immo ... resurrectione]는 Kroymann이 한 독자의 어설픈 삽입으로 보고 괄호에 넣은 문장이다. in secunda Basiliarum은 칠십인역의 ‘왕국기’ 둘째 권, 곧 사무엘하를 가리킨다. 사본 MR은 prima이고 secunda는 Pamelius의 수정이다. 나단의 약속은 삼하 7:12(“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이다.
20.23-20.24 테르툴리아누스는 ex uentre ipsius(그 자신의 배에서)를 다윗 자신의 배로 읽으면 다윗이 솔로몬을 낳은 셈이 된다고 비꼰다. 20.24의 qui esset ex Dauid는 uentre를 받는 관계절로 보아 ‘다윗에게서 나온 그 배, 곧 마리아의 배’로 옮겼다.
20.25 삼하 7:13-14(“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에 기댄 논증이다. haberet esse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habendus esset)이다. ‘거룩한 인간’을 성전으로 보는 해석은 요 2:19-21과 맞닿는다.
20.27 sed <et>는 Rigaltius의 읽기이다. 삼하 7:15(“내 은총을 그에게서 빼앗지 아니하리라”)와 왕상 11:1-10(솔로몬의 이방 아내들과 우상숭배)을 가리킨다.
20.28 왕상 11:14(“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자가 되게 하시니”)이다. 라틴어 Satan은 히브리어 ‘대적자’(사탄)를 음역한 칠십인역의 표현을 따른 것이다. Pamelius는 Satan과 hostem 사이에 <id est>를 넣었다.
20.29 사 55:3-4를 다시 끌어온다. Engelbrecht는 두 번째 non Dauid를 삭제하려 했다.
- 21 본문으로
21.1-21.2 마르키온파는 창조주의 그리스도가 흩어진 유대 민족만을 다시 모으기 위해 정해졌고 마르키온의 그리스도는 온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이 나무로부터 다스린 그때’는 19.1의 시 96:10 인용을 다시 가리킨다.
21.2 케르돈(Cerdo)은 2세기 로마에서 활동한 시리아 출신 교사로, 이레나이우스(『이단 반박』 1권 27장 1절)는 그를 마르키온의 선배로 전한다.
21.3 [et]는 Kroymann이 괄호에 넣었다. proselyti는 이방인으로서 율법을 받아들이고 유대교로 넘어온 개종자들이다. quando는 Kroymann의 설명에 따라 ‘~인데도’라는 대조의 뜻으로 옮겼다. 이사야 인용은 칠십인역 사 54:15(ἰδοὺ προσήλυτοι προσελεύσονταί σοι δι᾽ ἐμοῦ)에 해당한다. 개역개정 54:15는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로 내용이 다르다.
21.4 사 42:4의 칠십인역(καὶ ἐπὶ τῷ ὀνόματι αὐτοῦ ἔθνη ἐλπιοῦσιν)이며 마 12:21에도 인용된다. 개역개정 사 42:4는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이다.
21.5 Moysei는 사본 M의 철자이다.
21.7-21.9 사 2:2-4이다. 개역개정은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서며 ... 무리가 그들의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이다. 21.7의 <et>는 Pamelius의 보충이며, omnes는 Gelenius의 수정(사본 MR omnes enim)이다.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집’, 곧 성전으로 보는 해석은 요 2:19-21을, ‘능력과 권능’은 엡 1:21을 배경으로 한다.
21.9 zibinae(사본 M; 통행본 sibynae)는 그리스어 σιβύνη를 옮긴 말로 사냥용 창이다. reuincet는 사본 MR1의 단수형이며 주어는 앞의 ‘그’이다.
21.10 대구가 엇갈려 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예언되었다는 사실과, ‘읽히는 것’을 성취되었다는 사실과 짝지었다. 번역은 이 배열을 그대로 두었다. aut는 Rigaltius의 읽기이다.
21.11 개종자들의 선택이 ‘처음 날들부터’ 있었다는 말은 개종자 제도가 모세 율법 시대부터 있었다는 뜻이며, 민족들의 부르심은 사 2:2의 ‘마지막 날들’에 속한다는 대조이다. Rigaltius는 quorum ... est allectio로 어순을 바꾸었다.
- 22 본문으로
22.1 사 52:7이다. tempestiui는 칠십인역 ὡς ὥρα(얼마나 때에 맞는가)를 옮긴 말이다. 개역개정은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고, 롬 10:15도 같은 구절을 사도들의 전파에 적용한다. mala는 사본 M의 읽기(사본 R malum)이다.
22.2 시 19:4(칠십인역 18:5)이다. 롬 10:18도 이 구절을 사도들의 전파에 적용한다. ‘시온에서 나온 율법과 예루살렘에서 나온 주의 말씀’은 사 2:3(21.9)을 다시 가리킨다. respondet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respondit)이다.
22.3 사 46:12-13이다. quique longe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longe quique)이며, Kroymann은 mea 뒤에 쉼표를 두어 한 문장으로 읽었다. iustitia는 성경의 ‘의’로 옮겼다.
22.4-22.5 archontes는 그리스어 ἄρχοντες로, 유대 공의회의 관원들을 가리킨다. Kroymann은 uel maxime ... praedicatores를 마르키온파의 대답으로, atquin 이하를 테르툴리아누스의 반박으로 끊어 읽었다. 통행본은 an non uel maxime를 한 문장으로 묶는다.
22.6 사 52:11이다. 개역개정은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이다. dominica uasa는 Latinius의 수정이며, 사본 MR은 domini causam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 가운데’를 회당으로 풀이한다.
22.7 사 52:10(“여호와께서 열방의 목전에서 그의 거룩한 팔을 나타내셨으므로 땅 끝까지 모든 것이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도다”)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brachium(팔)을 ‘하나님의 능력’, 곧 그리스도로 풀이한다. uiderent는 Kroymann의 수정(사본 MR uiderint)이다.
22.9-22.10 시 2:3과 2:1-2이다. 개역개정 2:2는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이다. Christus eius는 칠십인역 τοῦ χριστοῦ αὐτοῦ를 따라 ‘그의 그리스도’로 옮겼다.
22.11 aduersarii는 creatoris에 걸리는 속격 단수로 보았다. 곧 창조주가 사도들이 전파한 그리스도의 적대자라는 마르키온파의 전제를 담는다. praedicabant는 사본 R1 난외와 Gelenius의 읽기이며, 사본 MR은 praedicabas, R3은 praedicabat이다.
22.12 qui(어떻게)는 사본 R3의 읽기이다. 사본 MR1은 quae, Oehler는 quare를 제안했다.
22.14-22.15 사 57:1이다. 개역개정은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 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서 불리어 가도다”이다. a persona <in>iustitiae는 칠십인역 ἀπὸ προσώπου ἀδικίας에 맞춘 Pamelius의 수정(사본 MR iustitiae)이다. perit는 사본 R3, auferuntur는 Pamelius의 읽기이다.
22.16 인용문은 지혜서 2:12(칠십인역 ἐνεδρεύσωμεν τὸν δίκαιον, ὅτι δύσχρηστος ἡμῖν ἐστιν)이다. 지혜서는 개역개정에 들어 있지 않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사 57:1을 앞에 두고 지혜서 구절을 뒤에 붙여 의인의 수난을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에게 적용한다.
22.17 겔 9:4이다. 개역개정은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이다. ‘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타우(ת)이며, 테르툴리아누스가 쓴 라틴어 본문은 이를 글자 이름 Tau로 옮겼다. medio는 사본 M, in medio는 사본 R의 읽기이다.
22.18 그리스어 대문자 Τ와 라틴어 T가 십자가 모양이라는 점에서 테르툴리아누스는 에스겔의 표를 그리스도인들이 이마에 긋는 십자가 표시와 연결한다(『화관에 관하여』 3.4 참조).
22.18-22.20 ‘시편 제21편’은 개역개정 시 22편이며, 22.19는 22:22, 22.20은 22:25이다. ‘제67편’은 개역개정 시 68편이며, 22.21은 68:26(칠십인역 67:27, ἐν ἐκκλησίαις εὐλογεῖτε τὸν θεόν)이다. ecclesia는 칠십인역 ἐκκλησία를 따르며, 테르툴리아누스가 교회로 읽기 때문에 ‘교회’로 옮겼다. 개역개정은 “회중”, “대회”로 옮긴다.
22.21-22.23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예언을 미가에게 돌리지만, 인용된 본문은 말 1:10-11이다. 22.22의 non est uoluntas mea는 칠십인역 οὐκ ἔστιν μου θέλημα ἐν ὑμῖν을 따른 말로, ‘나는 기뻐하지 않는다’로 옮겼다. 개역개정은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이다.
22.24 마르키온파도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교회를 이루며, 성찬을 거행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삼는 논증이다. ecclesiarum sacramenta는 교회의 의식을 뜻하므로 ‘성례’로 옮겼다(19.9의 sacramentum은 ‘신비’로 옮겼다). tuo Christo prophetasse는 창조주의 영이 마르키온파의 그리스도를 위해 예언했다고 인정하라는 반어이다.
- 23 본문으로
23.2-23.8의 논증과 이사야 인용은 『유대인 반박』 13장에 거의 같은 형태로 나온다.
23.2 사 2:20. MR의 nociuis(해로운 것들)를 따랐다. Pamelius는 칠십인역의 νυκτερίσιν(박쥐들)에 맞추어 noctuis로 고쳤고, 개역개정은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로 옮긴다.
23.3 사 3:1-3. ‘지혜로운 건축가’는 칠십인역 σοφὸν ἀρχιτέκτονα를 따른 것이며 개역개정 3:3은 “정교한 장인”이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를 교회를 세우는 성령으로 풀이한다.
23.4 사 5:6. ‘소렉’(Sorech; R은 Soreth)은 칠십인역 사 5:2의 ἄμπελον σωρηχ에서 온 말로, 개역개정은 “극상품 포도나무”로 옮긴다. 23.5의 ‘가시’와 ‘부르짖음’은 사 5:4, 5:7(개역개정 “공의를 바랐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에서 왔고, 가시관(마 27:29)과 십자가 처형을 요구한 외침에 적용된다. 사 5:7의 iustitia는 ‘의’로 옮겼다.
23.6 눅 16:16(마 11:13).
23.8 사 52:5(롬 2:24 참조), 사 1:7-8, 1:3-4. ‘티베리우스부터 베스파시아누스까지’는 십자가 처형(티베리우스 치세, 14-37년)부터 예루살렘 파괴(70년, 베스파시아누스 치세)까지의 기간이다.
23.8 non <in> paenitentiam은 Kroymann이 in을 보충한 읽기다(MR paenitentiam, Latinius paenitentiae, Engelbrecht paenitentia <eum>). 보충된 in을 ‘<을 위한 기간>’으로 옮겨, 그 중간 기간을 뉘우침의 기회로 깨닫지 못했다는 뜻으로 풀었다. 같은 문장의 ‘derelicta filia Sion est’에서 est는 Kroymann의 수정이며 MR은 Sion et로 전한다.
23.9 사 1:20. nolueritis는 Migne 판의 읽기이며 MR은 uolueritis(원하면)다. 개역개정 1:20은 “칼에 삼켜지리라”이다.
23.9-23.10 ‘시편 제58편’은 Pamelius의 수정 quinquagesimo octauo를 따른 불가타·칠십인역 번호로, 개역개정 시 59:11(“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흩으시고”)에 해당한다. M은 LVII, R은 quinquagesimo septimo로 전한다. disperge는 Pamelius의 읽기이며 MR은 disperde(멸하소서)다.
23.10-23.11 사 50:11. 개역개정은 “너희가 고통이 있는 곳에 누우리라”로 옮긴다. ‘그들이 불타는 일’은 같은 절의 불과 횃불 심상을 가리킨다.
23.13 마르키온은 다른 신의 그리스도를 창조주에게 속한 천상의 능력들과 권능들이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보았다(고전 2:8의 ‘이 세대의 통치자들’ 해석과 관련된다). ut aemulis는 M의 읽기이며 R과 이전 판본은 ab aemulis다. aemulus는 23.22의 zelotes와 같은 질투·경쟁의 관념을 담고 있어 ‘경쟁자’로 옮겼다.
23.14 사 53:9를 칠십인역(δώσω τοὺς πονηροὺς ἀντὶ τῆς ταφῆς αὐτοῦ καὶ τοὺς πλουσίους ἀντὶ τοῦ θανάτου αὐτοῦ)에 따라 인용한다. 개역개정은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되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로 뜻이 다르다. subreptam eam의 eam은 sepultura(매장된 시신)를 받으며, Pamelius는 subreptum eum(그를 훔쳤다)으로 고쳤다. 유다에게서 산 배반은 마 26:15, 병사들의 거짓 증언은 마 28:12-13에 근거한다.
23.15 Iudam은 가룟 유다가 아니라 민족으로서의 유다, 곧 유대인들을 가리킨다(Kroymann의 주석 ‘Iudam = Iudaeos’). 그래서 동사 peremissent가 복수형이다. aduersarium sui는 M과 F의 읽기이며, R과 이전 판본은 aduersarium <domini> sui로 보충한다.
23.17-23.18 사 1:7-8을 다시 끌어온다. 유대가 이미 황폐해져 있으므로, 앞으로 올 그리스도 때문에 그 황폐가 일어난다는 유대인들과 마르키온의 전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논증이다.
23.20-23.21 마르키온의 그리스도가 셋째 하늘에서 창조주의 하늘을 지나 내려왔다는 마르키온파의 주장을 겨냥한다. 창조주가 그 통과를 허락하고 땅에서 그를 죽였다면, 자기 영역의 침범을 스스로 원했다는 결론이 된다는 것이다.
23.22 deus zelotes는 출 20:5, 34:14의 ‘질투하는 하나님’을 반영한다. Kroymann은 zelotes 뒤에 마침표를 찍고 tamen을 ‘어쨌든’(jedenfalls)으로 읽는다. 이전 판본은 ‘zelotes, tamen uicit’로 이어 읽는다. deus는 R1에 없다.
- 24 본문으로
24.1-24.2 마르키온파 반론자의 말이다. ‘차이’(diuersitas)는 두 신의 다름을 가리킨다. ‘너희의 그리스도’(uester)는 반론자가 테르툴리아누스 쪽 신자들을 향해 하는 말이므로 복수로 옮겼다.
24.2 아브라함의 품은 눅 16:22-23에서 왔다. refrigerium은 죽은 자들이 누리는 위로와 휴식을 뜻하여 ‘안식’으로 옮겼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이 주제를 제4권 34장에서 다룬다(24.5의 ‘알맞은 때에’).
24.3 감탄사 o는 Kroymann이 보충했다.
24.4 욥 5:18, 신 32:39(“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사 45:7(“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deum tuum은 마르키온파 독자를 향해 창조주를 ‘그대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표현으로 직역했다.
24.6 sperant는 R3의 읽기이며 MR1은 separant다. 『신자들의 소망에 대하여』(De spe fidelium)는 전하지 않으며, 히에로니무스가 에스겔서 주석 36장에서 천년왕국론 저작들 가운데 이 책을 언급한다.
24.7 천 년 동안의 나라는 계 20:4-6,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은 계 21:2, ‘위에 있는 우리 어머니’는 갈 4: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에서 왔다. delatum은 Kroymann의 수정으로 regnum(나라)과 일치하며, MR의 delata는 ciuitas(도성)와 일치한다. Kroymann을 따라 ‘하늘에서 내려온 나라’로 옮겼다.
24.8 빌 3:20(“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어 politeuma를 쓰고 라틴어 municipatus로 풀이한다.
24.9 겔 48:30-35, 계 21:2, 21:10. ‘새 예언’은 몬타누스와 프리스킬라, 막시밀라의 예언 운동을 가리키며, 테르툴리아누스가 이 저작의 최종판을 쓸 무렵 그 예언을 받아들이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testatur는 R3의 읽기이며 MR1은 testatus다.
24.10 ‘동방 원정’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파르티아 원정(197-199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proxime는 R1에 없다. et alias de proximo nullam은 아침 시간 외에는, 또는 가까이 다가가면 도성이 보이지 않았다는 뜻으로 옮겼다.
24.11 excipiendis <de> resurrectione sanctis의 de는 Kroymann이 보충했으며 ‘<에서 나온>’으로 옮겼다.
24.12 <sub>caelestis는 Kroymann이 sub를 보충한 읽기로(MR caelestis), 천년왕국이 하늘 아래, 곧 땅 위에 있는 나라임을 나타낸다. ‘하늘’은 caelestis를, ‘<아래의>’는 보충된 sub를 옮긴 것이다. 이 읽기를 따르면 땅의 나라 다음에 오는 ‘하늘 나라’와 구별된다.
24.12 ‘순식간에’(in atomo)는 고전 15:52의 ἐν ἀτόμῳ, ‘썩지 않음을 덧입음’은 고전 15:53과 고후 5:4의 표현이다. [ideo]는 M의 본문에 없고 첫 필사자가 난외에 적은 것이어서 Kroymann이 삽입으로 의심했다. sic는 R, M은 sit, conflagratione는 R3의 읽기다.
24.14 창 22:17(15:5 참조). qua는 Rigaltius의 수정이며 MR은 quam이다. dispositio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실행을 뜻하여 ‘경륜’으로 옮겼다.
24.15 창 27:28(개역개정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24.19 눅 12:31. 마르키온은 누가복음만을 복음으로 인정했으므로 ‘그대들의 복음’이라 한다. primum(먼저)은 마 6:33의 표현과 일치하며, 개역개정 눅 12:31에는 ‘먼저’가 없다.
24.20 창 27:39. 칠십인역은 ‘땅의 기름짐에서’로 읽어 축복으로 이해하지만, 개역개정은 히브리어 전치사를 분리로 읽어 “네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멀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멀 것이며”로 옮긴다. praemittit는 Kroymann의 수정이며 MR은 promittit다.
24.21 에서는 장자이나 이삭의 축복에서 밀려났고(창 25:23, 27장),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를 먼저 택함을 받았으나 나중에 복음으로 부름받는 유대인들의 예표로 읽는다.
24.22 창 28:12-13. alios descendentes et는 Kroymann이 어순을 고친 것이다(MR et alios descendentes). iudicium 앞의 탈문을 **로 표시했다. Kroymann은 ‘domino autem desuper innixo et hoc et illud in domini’ 같은 보충을 제안하며, 그 경우 ‘주가 위에서 기대어 서 있으므로 이 일도 저 일도 주의 심판에 달려 있다’는 뜻이 된다. Engelbrecht는 decidant <et>, Ursinus는 iudicio로 고쳤다. 이전 판본은 iudicium 뒤에 물음표를 찍어 문장 전체를 ‘해석한다면 경솔한가?’라는 물음으로 읽는다.
24.24 창 28:17(개역개정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terribilis는 M의 읽기이며 R은 terribilis est다.
24.25 그리스도를 성전으로 보는 것은 요 2:19-21, 문으로 보는 것은 요 10:7, 10:9에 근거한다.
24.27 <uia>는 Kroymann이 보충했다. Latinius는 strata uia로 읽는다.
24.28 암 9:6. ‘오를 길’(ascensus)은 칠십인역 ἀνάβασιν을 따른 것이며, 개역개정은 “그의 궁전을 하늘에 세우시며”로 옮긴다.
24.29 사 49:18(“네가 반드시 그 모든 무리를 장식처럼 몸에 차며 그것을 띠기를 신부처럼 할 것이라”).
24.31 사 60:8. 칠십인역은 ‘구름처럼, 새끼와 함께 있는 비둘기처럼 내게로 날아오는 이들은 누구인가’이며, 개역개정은 “저 구름 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이다. 전승된 라틴 본문의 milui(솔개)를 그대로 옮겼다. ‘비둘기처럼 순전하게’는 마 10:16을 반영한다.
24.32 살전 4:17, 단 7:13. auferemur는 R, M은 auferamur다. eatenus, dum 이하는 ‘원소들을 증인으로 부르는 이(주)가 땅에도 하늘에도 있는 한’으로 해석했다.
24.33 사 1: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praeiudicium은 앞선 사례가 뒤의 판단을 미리 정해 주는 근거를 뜻하여 ‘선례’로 옮겼다.
24.42 마르키온의 그리스도가 실제 육신 없이 환영(phantasma)으로 나타났다는 주장은 이 권 8-11장에서 반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