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입증했듯이 성령이 피조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여러분이 “그러면 성령은 아들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들도 피조물이 아니심을 알게 된 여러분은 이제, 생겨난 것들이 아들 때문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아버지인가?”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 이렇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들은 영이고, 아들 자신이 성령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거룩한 삼위일체 밖에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자들이라고 불릴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옮겨 붙이고, 인간의 출생에 빗대어, 손자와 할아버지라고 부르며, 이교도들의 신들의 계보를 자기들 나름대로 다시 꾸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신앙이 아닙니다. 교회의 신앙은 구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향합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라 불릴 수 없고, 아들은 아버지라 불릴 수 없으며, 성령은 이 이름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 않으십니다. 이 신앙에서는 이름을 서로 바꾸어 말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이시고, 아들은 언제나 아들이시며, 성령은 언제나 성령이시며 그렇게 불리십니다. 아리우스의 무리가 그런 상상을 하더라도,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하나님과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서는 아버지가 언제나 아버지인 것도, 아들이 언제나 아들인 것도 아닙니다. 같은 사람이 한 아들의 아버지가 되지만, 그 자신은 다른 사람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들도 아버지의 아들이면서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됩니다. 예컨대 아브라함은 나홀의 아들이면서, 이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이삭도 아브라함의 아들이면서, 야곱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각 사람은 자기 부모의 일부여서, 아들로 태어나지만, 그 자신도 다른 사람의 아버지가 됩니다. 신성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같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에게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이의 아버지가 될 분을 낳지도 않으십니다. 아들도 아버지의 일부가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또 아들을 낳기 위해 나신 분도 아니십니다. 따라서 오직 신성 안에서 아버지는 본래적 의미의 유일한 아버지이시며, 지금도, 과거에도, 영원히 그러하실 것입니다. 아들도 본래적 의미의 유일한 아들이십니다. 이분들에게는 다음 진술이 확고합니다. 아버지는 언제나 아버지이시며 그렇게 불리고, 아들은 언제나 아들이시며 그렇게 불리십니다. 성령도 언제나 성령이십니다. 우리는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시며,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 주어지신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거룩한 삼위일체는 변함없이 존속하시며, 하나의 신성 안에서 알려지십니다. 그러므로 “그러면 성령은 아들인가?”라고 묻는 사람은, 그 이름을 바꿀 수 있는 것처럼 상상하며, 스스로 광기를 불러들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할아버지인가?”라고 묻는 사람도, 아버지에게 새 이름을 만들어 붙이며, 마음속으로 길을 잃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자들의 뻔뻔한 말에 계속 대답하는 것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사도의 권고와 맞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사도가 명한 대로 그들에게 충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Εἰ γὰρ, ἐπεὶ μὴ κτίσμα ἐστὶ τὸ Πνεῦμα (τοῦτο γὰρ ἐδείχθη), ἐρωτᾶτε, Υἱὸς οὖν ἐστὶ τὸ Πνεῦμα; ὥρα, μαθόντας ὑμᾶς, ὅτι μὴ κτίσμα ἐστὶν ὁ Υἱός (διὰ τοῦτο γὰρ τὰ γενητὰ ἐκτίσθη), ἐρωτᾶν, Πατὴρ οὖν ἐστὶν ὁ Υἱός; Ἢ καὶ οὕτως· Τὸ Πνεῦμα οὖν ἐστὶν ὁ Υἱός, καὶ ὁ Υἱὸς αὐτὸς ἐστ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Τοιαῦτα δὲ λογιζόμενοι, ἔξω μὲν τῆς ἁγίας Τριάδος ἔσονται, ἄθεοι δὲ κληθήσονται, ἀλλάσσοντες τὸ ὄνομα τοῦ Πατρός, καὶ τοῦ Υἱοῦ, καὶ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μεταφέροντες τε αὐτό, ὡς θέλουσιν, ἐν ὁμοιώματι γενέσεως ἀνθρωπίνης, ἔγγονα καὶ πάππους ὀνομάζοντες, καὶ τὴν Ἑλλήνων θεογονίαν ἑαυτοῖς ἀναπλασσόμενοι. Οὐχ ἔστι δὲ αὕτη τῆς Ἐκκλησίας ἡ πίστις, ἀλλ’ ὡς εἶπεν ὁ Σωτήρ, εἰς Πατέρα καὶ Υἱὸν καὶ ἅγιον Πνεῦμα· Πατέρα μέντοι, οὐ δυνάμενον λέγεσθαι πάππον, καὶ Υἱὸν οὐ δυνάμενον λέγεσθαι Πατέρα, καὶ Πνεῦμα ἅγιον οὐχ ἄλλως ἢ οὕτως ὀνομαζόμενον. Ἐπὶ ταύτης τῆς πίστεως οὐχ ἔστιν ἐναλλὰξ εἰπεῖν· ἀλλ’ ἀεὶ ὁ Πατὴρ Πατὴρ ἐστι, καὶ ὁ Υἱὸς ἀεὶ Υἱός,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ἀεὶ Πνεῦμα ἅγιόν ἐστι καὶ λέγεται. Ἐπὶ μὲν γὰρ τῶν ἀνθρώπων, οὐχ ἔστιν οὕτως, κἂν οἱ Ἀρειανοὶ τοιαῦτα φαντάζωνται. Ὡς γὰρ γέγραπται, « Οὐχ ὡς ἄνθρωπος ὁ Θεός, » οὕτως ἄν τις εἴποι, οὐχ ὡς Θεὸς οἱ ἄνθρωποι. Ἐπὶ γὰρ τῶν ἀνθρώπων, οὐχ ἔστιν ὁ πατὴρ ἀεὶ πατήρ, οὐδὲ ὁ υἱὸς ἀεὶ υἱός. Ὁ γὰρ αὐτὸς πατὴρ μὲν υἱοῦ γίνεται, αὐτὸς δὲ ἑτέρου γέγονεν υἱός, καὶ ὁ υἱὸς πατρὸς ὢν υἱός, ἄλλου γίνεται πατήρ. Ἀβραὰμ γοῦν υἱὸς ὢν τοῦ Ναχὼρ, πατὴρ γέγονε τοῦ Ἰσαὰκ· καὶ Ἰσαὰκ δὲ υἱὸς ὢν τοῦ Ἀβραὰμ, πατὴρ γέγονε τοῦ Ἰακώβ. Ἕκαστος γὰρ, μέρος ὢν τοῦ γονέως, γεννᾶται μὲν υἱός, γίνεται δὲ καὶ αὐτὸς ἑτέρου πατήρ. Ἐπὶ δὲ τῆς θεότητος οὐχ οὕτως, ἐπεὶ μὴ ὡς ἄνθρωπος ὁ Θεός. Ὁ γοῦν Πατὴρ οὐχ ἐκ Πατρὸς ἐστι· διὸ οὐδὲ γεννᾷ τὸν γεννησόμενον ἑτέρου Πατέρα· οὐδὲ ὁ Υἱὸς μέρος ἐστὶ τοῦ Πατρός, διὸ οὐδὲ γέννημά ἐστιν εἰς τὸ γεννᾶν Υἱόν. Ὅθεν ἐπὶ τῆς θεότητος μόνης ὁ Πατὴρ κυρίως καὶ μόνος Πατὴρ ὢν, ἐστὶ καὶ ἦν καὶ ἀεὶ ἔσται. Καὶ ὁ Υἱὸς κυρίως, καὶ μόνος Υἱός ἐστι. Καὶ ἐπὶ τούτων ἔστηκε τὸ, ὁ Πατὴρ ἀεὶ Πατήρ, καὶ τὸ, Υἱὸς ἀεὶ Υἱός, εἶναι τε καὶ λέγεσθαι· καὶ τὸ Πνεῦμα δὲ τὸ ἅγιον ἀεὶ Πνεῦμα ἅγιόν ἐστι· καὶ τοῦτο τοῦ Θεοῦ εἶναι, καὶ παρὰ τοῦ Πατρὸς δι’ Υἱοῦ δίδοσθαι πεπιστεύκαμεν. Οὕτω γὰρ ἡ ἁγία Τριάς ἀναλλοίωτος διαμένει, ἐν μιᾷ θεότητι γινωσκομένη. Οὐκοῦν ὁ ἐρωτῶν, Υἱὸς οὖν ἐστι τὸ Πνεῦμα; ὡς δυναμένου τοῦ ὀνόματος ἀλλάττεσθαι, φαντάζεται, καὶ μανίαν ἑαυτῷ περιποιεῖται. Καὶ ὁ ἐρωτῶν δὲ, πάππος οὖν ἐστιν ὁ Πατήρ, ἐπινοῶν ὄνομα τῷ Πατρὶ, πλανᾶται τῇ καρδίᾳ. Ἀποκρίνασθαι μὲν οὖν ἔτι πρὸς τὴν ἀναίδειαν τῶν αἱρετικῶν οὐχ ἀσφαλὲς· μάχεσθαι γὰρ ἐστι τῇ ἀποστολικῇ παραινέσει· συμβουλεύειν δὲ μᾶλλον, ὡς παρήγγειλεν αὐτὸς, καλό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