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피온에게 보낸 제3서신

ΕΠΙΣΤΟΛΗ ΤΟΥ ΑΥΤΟΥ ΠΡΟΣ ΤΟΝ ΑΥΤΟΝ ΣΕΡΑΠΙΩΝΑ ΕΠΙΣΚΟΠΟΝ ΠΕΡΙ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Σ

아타나시우스

1

당신은 아마 놀랄 것입니다. 성령에 관해 쓴 편지를 줄여 짤막하게 설명하라고 지시했는데, 나는 그 주제에 관한 논의를 버린 듯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불경하게 구는 자들을 반박하는 글을 썼으니 말입니다. 아들을 피조물이라고 하는 자들을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잘 압니다. 당신은 나를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를 알게 되시면, 경건하신 당신도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그 이유가 합당함을 보실 것입니다. 주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는 자기에게서 나온 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듣는 것들을 말할 것이다. 내 것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너희에게 알릴 것이다.” 주님은 숨을 불어넣으시며 자신에게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성령을 모든 육체 위에 부어 주셨습니다. 기록된 말씀에 따라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 먼저 말하고 쓴 것은 적절했습니다. 아들에 관한 지식으로부터, 성령에 관한 지식도 올바르게 지닐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게 된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고유한 관계를, 성령도 아들과의 관계에서 지니신다는 것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들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지니신 것은 모두 내 것이다.” 그와 같이 우리는 아들을 통해 이 모든 것이, 성령 안에도 있음을 발견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나는 그를 기뻐한다.” 그와 같이 성령은 아들의 영이십니다. 사도가 말합니다. “그는 자기 아들의 영을 우리의 마음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그 영은 ‘아바, 아버지!’라고 외치신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이 ‘내 것은 아버지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듯, 성령도 아버지의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영이라고 불리시는 바로 그 성령입니다. 아들 자신이 말씀하십니다. “보혜사가 오시면, 곧 내가 아버지에게서 너희에게 보낼,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는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며, 나에 관해 증언할 것이다.” 바울은 씁니다. “사람 안에 거하는 사람의 영 외에는 아무도 그 사람의 일을 알지 못한다. 그와 같이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영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성경 전체에서도 당신은 발견할 것입니다. 아들의 영이라고 불리시는 성령이, 하나님의 영이라고 불리신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이 점도 앞서 썼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의 고유한 관계 때문에, 그리고 아버지의 본질에 고유하게 낳아지신 분이기 때문에, 피조물이 아니시고,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령도 그와 같이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그를 피조물이라고 말하는 이는 불경합니다. 성령은 아들과 고유한 관계를 지니시며, 아들에게서 모든 이에게 주어지시고, 성령이 지니시는 것은 아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Ἴσως θαυμάσεις, πῶς ἐντειλάμενον τὴν περὶ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γραφεῖσαν ἐπιστολὴν ἐπιτεμειν , καὶ δι’ ὀλίγων δηλῶσαι, ὁρᾷς ὥσπερ ἀφέντα με τὸν περὶ τοῦτου λόγον, καὶ γράφοντα κατὰ τῶν ἀσεβούντων εἰς τὸν Υἱὸν τοῦ Θεοῦ, καὶ λεγόντων αὐτὸν κτίσμα· ἀλλ’ οὐ μέμψῃ εὖ οἶδ’ ὅτι, εἰ μάθοις τὸ αἴτιον, ἀλλὰ καὶ ἀποδέξεται σου ἡ εὐλάβεια, ὁρῶσα τὸ εὔλογον. Ἐπειδὴ γάρ, ὡς αὐτὸς ὁ Κύριος εἶπεν· « Οὐ λαλήσει παρ’ ἑαυτοῦ ὁ Παράκλητος· ἀλλ’ ὅσα ἀκούσει, λαλήσει· ὅτι ἐκ τοῦ ἐμοῦ λήψεται, καὶ ἀναγγελεῖ ὑμῖν· » καὶ ἐμφυσήσας δέδωκεν ἐξ αὐτοῦ τοῦτο τοῖς μαθηταῖς, καὶ οὕτως ἐξέχεεν αὐτὸ ὁ Πατὴρ ἐπὶ πᾶσαν σάρκα κατὰ τὸ γεγραμμένον· διὰ τοῦτο εἰκότως περὶ τοῦ Υἱοῦ τοῦ Θεοῦ πρῶτον εἴρηται τε καὶ γέγραπται· ἵν’ ἐκ τῆς περὶ τοῦ Υἱοῦ γνώσεως ἔχειν καὶ τὴ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γνῶσιν καλῶς δυνηθῶμεν· οἷαν γὰρ ἔγνωμεν ἰδιότητα τοῦ Υἱοῦ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ταύτην ἔχειν τὸ Πνεῦμα πρὸς τὸν Υἱὸν εὑρήσομεν. Καὶ ὡσπερ ὁ Υἱὸς λέγει, « Πάντα ὅσα ἔχει ὁ Πατὴρ ἐμά ἐστιν, » οὕτως ταῦτα πάντα διὰ τοῦ Υἱοῦ εὑρήσομεν ὄντα καὶ ἐν τῷ Πνεύματι. Καὶ ὡς ὁ Πατὴρ ἔδειξε τὸν Υἱὸν λέγων, « Οὗτός ἐστιν ὁ Υἱός μου ὁ ἀγαπητός, ἐν ᾧ ηὐδόκησα, » οὕτως τοῦ Υἱοῦ ἐστι τὸ Πνεῦμα· « Ἐξαπέστειλε γάρ, » φησιν ὁ Ἀπόστολος, « τὸ Πνεῦμα τοῦ Υἱοῦ αὐτοῦ ἐν ταῖς καρδίαις ἡμῶν κρᾶζον· Ἀββᾶ, ὁ Πατήρ. » Καὶ τὸ παράδοξον, ὡσπερ ὁ Υἱὸς λέγει, Τὰ ἐμὰ τοῦ Πατρὸς ἐστιν, οὕτως τοῦ Πατρὸς ἐστι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ὅπερ τοῦ Υἱοῦ εἴρηται. Αὐτὸς μὲν γὰρ ὁ Υἱὸς λέγει· « Ὅταν ἔλθῃ ὁ Παράκλητος, ὃν ἐγὼ πέμψω ὑμῖν παρὰ τοῦ Πατρός, 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 ὃ παρὰ τοῦ Πατρὸς ἐκπορεύεται, ἐκεῖνος μαρτυρήσει περὶ ἐμοῦ· » ὁ δὲ Παῦλος γράφει· « Οὐδεὶς οἶδε τὰ τοῦ ἀνθρώπου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ἀνθρώπου τὸ κατοικοῦν ἐν αὐτῷ· οὕτω καὶ τὰ τοῦ Θεοῦ οὐδεὶς οἶδεν εἰ μὴ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Θεοῦ τὸ ἐν αὐτῷ. Ἡμεῖς δὲ οὐ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κόσμου ἐλάβομεν, ἀλλὰ τὸ Πνεῦμα τὸ ἐκ τοῦ Θεοῦ, ἵν’ εἰδῶμεν τὰ ὑπὸ τοῦ Θεοῦ χαρισθέντα ἡμῖν. » Καὶ ἐν πάσῃ δὲ τῇ θείᾳ Γραφῇ εὑρήσεις, ὅτι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λεγόμενον τοῦ Υἱοῦ, τοῦτο λέγεται τοῦ Θεοῦ εἶναι· καὶ τοῦτο ἐν τοῖς ἐμπροσθεν ἐγράψαμεν. Οὐκοῦν εἰ ὁ Υἱὸς διὰ τὴν πρὸς τὸν Πατέρα ἰδιότητα, καὶ διὰ τὸ εἶναι αὐτοῦ τῆς οὐσίας ἴδιον γέννημα, οὐκ ἐστὶ κτίσμα, ἀλλ᾽ ὁμοούσιος τοῦ Πατρός· οὕτως οὐκ ἂν εἴη οὐδὲ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κτίσμα, ἀλλὰ καὶ ἀσεβὴς ὁ λέγων τοῦτο, διὰ τὴν πρὸς τὸν Υἱὸν ἰδιότητα αὐτοῦ, καὶ ὅτι ἐξ αὐτοῦ δίδεται πᾶσι, καὶ ὅ ἔχει τοῦ Υἱοῦ ἐστίν.

2

이 말씀들만으로도 누구든 다투기 좋아하는 자를 설득하기에 충분합니다. 더는 그분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부르지 않도록 하기에 충분합니다. 하나님 안에 계시고,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살피시며,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해 주어지시는 분을 말입니다. 그런 주장이 그를 아들도 피조물이라고 말하도록 몰아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말씀이며 지혜이신 분, 인장이며 광채이신 분, 그를 보는 이는 아버지를 보게 되는 분을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자는 다음 말씀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들을 부인하는 이는 아버지도 지니지 못한다.” 그런 자는 점차, 어리석은 자처럼, “하나님은 없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경한 자들에 대한 반박이 더 많은 근거로 드러나도록, 아들이 피조물이 아니심을 밝히는 근거들로, 성령도 피조물이 아니심을 밝히는 것이 좋겠습니다. 피조물들은 존재하지 않던 데서 왔고,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고,” 그 안의 것들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오시며, 그렇게 불립니다. 사도가 말했듯이 그렇습니다. 아들은 존재하지 않던 데서 오시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오시기 때문에, 마땅히 피조물일 수 없다면, 성령도 반드시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게서 오신다고 고백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들은 존재하지 않던 데서 옵니다.

Ἱκανὰ μὲν οὖν καὶ ταῦτα πεῖσαι καὶ πάντα ὀντινοῦν φιλόνεικον, μηκέτι λέγειν κτίσμα τοῦ Θεοῦ, τὸ ἐν τῷ Θεῷ, καὶ τὰ βάθη ἐρευνῶν τοῦ Θεοῦ, καὶ ἐκ Πατρὸς δι᾽ Υἱοῦ διδόμενον· ἵνα μὴ ἐκ τούτων ἀναγκασθῇ καὶ τὸν Υἱὸν εἰπεῖν κτίσμα, τὸν Λόγον, τὴν σοφίαν, τὸν χαρακτῆρα, τὸ ἀπαύγασμα, ὃν ὁρῶν τις ὁρᾷ τὸν Πατέρα, καὶ λοιπὸν ἀκούσῃ· « Ὁ ἀρνούμενος τὸν Υἱόν, οὐδὲ τὸν Πατέρα ἔχει. » Λέξει γὰρ κατ᾽ ὀλίγον ὁ τοιοῦτος, ὡς ὁ ἄφρων· « Οὐκ ἐστὶ Θεός. » Ὅμως δὲ ὑπὲρ τοῦ ἐκ πλειόνων δεῖχθῆναι τὸν κατὰ τῶν ἀσεβῶν ἔλεγχον καλόν, ἐξ ὧν ὁ Υἱὸς δείκνυται μὴ ὢν κτίσμα, ἐκ τούτων δεῖξαι καὶ τὸ Πνεῦμα μὴ εἶναι κτίσμα. Ἐξ οὐκ ὄντων ἐστὶ τὰ κτίσματα, καὶ ἀρχὴν ἔχει τοῦ εἶναι· « Ἐν ἀρχῇ » γὰρ « ἐποίησεν ὁ Θεὸς τὸν οὐρανὸν καὶ τὴν γῆν, » καὶ τὰ ἐν αὐτοῖς. Τὸ δὲ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ἐκ τοῦ Θεοῦ ἐστι, καὶ λέγεται, ὡς εἶπεν ὁ Ἀπόστολος. Εἰ δὲ ὁ Υἱός, ἐπειδὴ ἐξ οὐκ ὄντων οὐκ ἐστίν, ἀλλ᾽ ἐκ τοῦ Θεοῦ, εἰκότως οὐκ ἂν εἴη κτίσμα, ἀνάγκη μηδὲ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εἶναι κτίσμα· ἐπειδὴ ἐκ τοῦ Θεοῦ ὡμολόγηται. Τὰ γὰρ κτίσματα ἐξ οὐκ ὄντων ἐστίν.

3

또 성령은 기름부음과 인장이라고 불리며 실제로 그러하십니다. 요한은 이렇게 씁니다. “여러분이 그에게서 받은 기름부음은 여러분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여러분은 누가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기름부음, 곧 그의 영이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언자 이사야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영이 내 위에 계신다. 그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다.” 바울도 씁니다. “여러분도 그 안에서 믿어 인침을 받았습니다.” 또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그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한 인침을 받았습니다”라고 합니다. 피조물들은 성령 안에서 기름부음과 인침을 받습니다. 피조물들이 성령 안에서 기름부음과 인침을 받는다면, 성령은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기름을 부으시는 분은 기름부음을 받는 것들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기름부음은 아들의 숨결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지닌 이는 말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인장은 아들의 모습을 새기므로, 인침을 받는 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닙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나의 어린 자녀들이여, 나는 여러분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겪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형성되실 때까지 그렇습니다.” 성령이 아들의 향기와 모습이시라면, 성령은 피조물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들도 아버지의 모습으로 계시며, 피조물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본 이는 아버지를 보듯이, 성령을 지닌 이는 아들을 지닙니다. 아들을 지닌 이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바울은 씁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요한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머물며, 그가 우리 안에 머무신다는 것을 우리는 이로써 압니다. 그가 자기 영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아버지 안에 계시며, 아버지도 아들 안에 계시므로, 피조물이 아니시라고 고백해야 한다면, 성령도 반드시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아들은 성령 안에 계시고, 성령도 아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는 이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불립니다. 다시 다음 사실에서도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이시라면, 아버지가 한 분이시듯 아들도 한 분이십니다. “한 분 하나님이 계시며, 만물은 그에게서 왔습니다.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독생자라고 불리시며 그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반면 피조물들은 많고 다양합니다. 천사들과 대천사들과 그룹, 권세들과 권위들과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렇습니다. 아들은 여럿 가운데 하나가 아니시고, 한 분이시며, 아버지가 한 분이시듯 그러하시고, 피조물이 아니시라면, 성령도 반드시 그러하셔야 합니다. (성령에 관한 지식도 아들에게서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도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성령은 여럿 가운데 하나가 아니시고, 그 자신도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Καὶ πάλιν χρῖσμα καὶ σφραγὶς λέγεται καὶ ἐστι τὸ Πνεῦμα· ὁ μὲν γὰρ Ἰωάννης γράφει· « Καὶ ὑμεῖς τὸ χρῖσμα ὃ ἐλάβετε παρ᾽ αὐτοῦ μένει ἐν ὑμῖν· καὶ οὐ χρείαν ἔχετε, ἵνα τις διδάσκῃ ὑμᾶς, ἀλλ᾽ ὡς τὸ αὐτοῦ χρῖσμα, τὸ πνεῦμα αὐτοῦ διδάσκει ὑμᾶς περὶ πάντων· » ἐν δὲ τῷ προφήτῃ Ἠσαΐᾳ γέγραπται· « Πνεῦμα Κυρίου ἐπ᾽ ἐμέ, οὗ εἵνεκεν ἔχρισέ με· » καὶ ὁ Παῦλος δὲ γράφει· « Ἐν ᾧ καὶ πιστεύσαντες ἐσφραγίσθητε· » καὶ πάλιν· « Μὴ λυπεῖτε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ἐν ᾧ ἐσφραγίσθητε εἰς ἡμέραν ἀπολυτρώσεως. » Τὰ δὲ κτίσματα ἐν τούτῳ χρίεται καὶ σφραγίζεται· εἰ δὲ τὰ κτίσματα ἐν τούτῳ χρίεται καὶ σφραγίζεται, οὐκ ἂν εἴη κτίσμα τὸ Πνεῦμα· οὐ γὰρ ὅμοιον τὸ χρίον τῶν χριομένων. Καὶ γὰρ τὸ χρῖσμα τοῦτο πνοὴ ἐστι τοῦ Υἱοῦ· ὥστε τὸν ἔχοντα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ν· « Χριστοῦ εὐωδία ἐσμέν. » Καὶ ἡ σφραγὶς δὲ τὸν Υἱὸν ἐκτυποῖ, ὥστε τὸν σφραγιζόμενον ἔχειν τὴν τοῦ Χριστοῦ μορφὴν, λέγοντος τοῦ Ἀποστόλου· « Τεκνία μου, οὓς πάλιν ὠδίνω, μέχρις οὗ μορφωθῇ Χριστὸς ἐν ὑμῖν. » Εἰ δὲ τὸ Πνεῦμα εὐωδία καὶ μορφὴ τοῦ Υἱοῦ ἐστίν, εὔδηλον, ὡς οὐκ ἂν εἴη τὸ Πνεῦμα κτίσμα· ἐπειδή καὶ ὁ Υἱός, ἐν μορφῇ τοῦ Πατρὸς ὑπάρχων, οὐκ ἐστὶ κτίσμα. Καὶ γὰρ ὥσπερ ὁ ἑωρακὼς τὸν Υἱὸν ὁρᾷ τὸν Πατέρα, οὕτως ὁ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ἔχων ἔχει τὸν Υἱόν, καὶ ἔχων αὐτόν, ναὸς τοῦ Θεοῦ ἐστι, γράφοντος τοῦ μὲν Παύλου· « Οὐκ οἴδατε, ὅτι ναὸς τοῦ Θεοῦ ἐστε,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τοῦ Θεοῦ οἰκεῖ ἐν ὑμῖν; » ὁ δὲ Ἰωάννης φησίν· « Ἐν τούτῳ γινώσκομεν, ὅτι ἐν τῷ Θεῷ μένομεν, καὶ αὐτὸς ἐν ἡμῖν, ὅτι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αὐτοῦ δέδωκεν ἡμῖν. » Εἰ δὲ ὁ Υἱὸς ἐν τῷ Πατρὶ ὢν, ἐν ᾧ ἐστι καὶ ὁ Πατήρ, ὁμολογητέον μὴ εἶναι κτίσμα, ἀνάγκη πᾶσα μηδὲ τὸ Πνεῦμα εἶναι κτίσμα· ἐν αὐτῷ γὰρ ἐστὶν ὁ Υἱός, καὶ αὐτὸ ἐν τῷ Υἱῷ. Διὸ καὶ ὁ τὸ Πνεῦμα λαμβάνων ναὸς τοῦ Θεοῦ χρηματίζει. Πάλιν δὲ κἀκ τούτου συνιδεῖν καλόν, εἰ ἐστὶν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Λόγος, ὡς Πατὴρ εἷς ἐστιν. « Εἷς γὰρ Θεός, ἐξ οὗ τὰ πάντα, καὶ εἷς Κύριος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 διὸ καὶ μονογενὴς Υἱὸς εἴρηται καὶ γέγραπται· τὰ δὲ κτίσματα πολλὰ καὶ διάφορα, ἄγγελοι, ἀρχάγγελοι, χερουβίμ, ἀρχαὶ, ἐξουσίαι, καὶ τὰ ἄλλα, ὥσπερ εἴρηται. Εἰ δὲ, ὅτι οὐκ ἐστὶ τῶν πολλῶν ὁ Υἱός, ἀλλ’ εἷς ἐστιν, ὡς Πατὴρ εἷς ἐστι, καὶ οὐκ ἐστι κτίσμα, πάντως καὶ τὸ Πνεῦμα (χρὴ γὰρ ἀπὸ τοῦ Υἱοῦ λαμβάνειν καὶ τὴ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γνῶσιν) οὐκ ἂν εἴη κτίσμα. Οὐ γὰρ τῶν πολλῶν ἐστίν, ἀλλ’ ἕν ἐστι καὶ αὐτό.

4

사도도 이것을 알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 분이신 같은 성령이 이루시며,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따로 나누어 주십니다.” 조금 뒤에는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을 이루도록 세례를 받았고,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다시, 성령에 관한 지식은 아들에게서 얻어야 하므로, 아들에게서 그 증거들도 제시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아들은 모든 곳에 계십니다. 아버지 안에 계시며, 아버지도 아들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은 만물을 다스리고 유지하십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만물이 함께 서 있다.” 보이는 것들이든 보이지 않는 것들이든 그렇습니다.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신다.” 그러나 피조물들은 구분된 장소들에 있습니다. 태양과 달과 다른 빛나는 천체들은 궁창에 있고, 천사들은 하늘에, 사람들은 땅 위에 있습니다. 아들은 구분된 장소들에 제한되지 않으시고, 아버지 안에 계시며, 모든 곳에 계시고,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므로,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따라서 성령도 피조물일 수 없습니다. 성령도 구분된 장소들에 제한되지 않으시고, 만물을 채우시며,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영은 온 세계를 가득 채우셨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겠습니까?” 성령은 한 장소에 계시지 않고, 만물을 초월하여 계시며, 아들 안에 계십니다. 아들도 아버지 안에 계시듯이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도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이미 밝혀졌듯이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다음 사실은 아리우스 이단을 더욱 분명히 정죄하고, 다시 아들로부터 성령에 관한 지식을 얻게 할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창조주이십니다. 그는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가 하시는 것을 보는 그 일들을, 나도 한다.” “만물이 그를 통해 생겨났고, 그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이 창조주이시므로,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아들을 통해 만물이 창조된다면, 아들은 창조되는 것들 가운데 속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도 피조물이 아니시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성령에 관해서도 시편 103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그들의 영을 거두시면, 그들은 사라지고, 자기의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께서 주의 영을 보내시면, 그들은 창조될 것이며, 주께서 땅의 얼굴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Καὶ τοῦτο οἶδεν ὁ Ἀπόστολος λέγων· « Ταῦτα δὲ πάντα ἐνεργεῖ τὸ ἓν καὶ τὸ αὐτὸ Πνεῦμα, διαιροῦν ἰδίᾳ ἑκάστῳ καθὼς βούλεται· » καὶ μετ’ ὀλίγα· « Ἐν ἐνὶ Πνεύματι ἡμεῖς πάντες εἰς ἓν σῶμα ἐβαπτίσθημεν, καὶ πάντες ἓν Πνεῦμα ἐποτίσθημεν· » καὶ πάλιν, ἐπειδή ἐκ τοῦ Υἱοῦ δεῖ λαμβάνειν τὴν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γνῶσιν, πρέπον ἂν εἴη ἐξ αὐτοῦ καὶ τὰς ἀποδείξεις προφέρειν. Πανταχοῦ τοίνυν ἐστὶν ὁ Υἱός, ἐν Πατρὶ γὰρ ὢν, καὶ τοῦ Πατρὸς ὄντος ἐν αὐτῷ. Πάντα γὰρ κρατεῖ καὶ συνέχει, καὶ γέγραπται, ὅτι· « Ἐν αὐτῷ συνέστηκε τὰ πάντα, » εἴτε ὁρατὰ εἴτε ἀόρατα, « καὶ αὐτὸς ἐστὶ πρὸ πάντων. » Τὰ δὲ κτίσματα ἐν μεμερισμένοις τόποις ἐστίν· ἥλιος μὲν καὶ σελήνη καὶ οἱ ἄλλοι φωστήρες ἐν τῷ στερεώματι, ἐν οὐρανῷ δὲ ἄγγελοι, καὶ ἄνθρωποι ἐπὶ τῆς γῆς. Εἰ δὲ ὁ Υἱός, οὐκ ὢν ἐν μεμερισμένοις τόποις, ἀλλ’ ἐν Πατρὶ ὢν, πανταχοῦ ἐστι, καὶ ἔξω τῶν πάντων ὢν, οὐχ ἔστι κτίσμα, ἀκολούθως οὐχ ἂν εἴη οὐδὲ τὸ Πνεῦμα κτίσμα, μὴ ὂν ἐν μεμερισμένοις τόποις, ἀλλὰ πάντα πληροῦν καὶ ἔξω τῶν πάντων ὢν. Οὕτω γὰρ καὶ γέγραπται « Πνεῦμα Κυρίου πεπλήρωκε τὴν οἰκουμένην. » Καὶ Δαβὶδ ψάλλει « Ποῦ πορευθῶ ἀπὸ τοῦ Πνεύματός σου, » ὡς μὴ ὄντος αὐτοῦ ἐν τόπῳ, ἀλλ’ ἔξω μὲν τῶν πάντων, ἐν δὲ τῷ Υἱῷ ὄντος, ὡς ἐστι καὶ ὁ Υἱὸς ἐν τῷ Πατρὶ. Διὰ τοῦτο γὰρ οὐδ’ αὐτὸ κτίσμα ἐστίν, ὡσπερ δέδεικται. Πρὸς πᾶσι δὲ τούτοις ἔτι μᾶλλον ἐκ τούτου καταγνωσθήσεται μὲν ἡ Ἀρειανὴ αἵρεσις, ἐπιγνωσθήσεται δὲ πάλιν ἐκ τοῦ Υἱοῦ ἡ περ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γνῶσις. Κτίστης τοίνυν ἐστὶν ὁ Υἱὸς ὡς ὁ Πατήρ. « Ἃ γὰρ βλέπω, » φησί, « τὸν Πατέρα ποιῶντα, ταῦτα κἀγὼ ποιῶ. Πάντα » γοῦν « δι’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καὶ χωρὶς αὐτοῦ ἐγένετο οὐδὲ ἕν. » Εἰ δὲ, κτίστης ὢν, ὡς ὁ Πατήρ, ὁ Υἱός, οὐχ ἔστι κτίσμα καὶ εἰ, δι’ αὐτοῦ κτίζεται τὰ πάντα, οὐχ ἔστι τῶν κτιζομένων: δηλονότι οὐδὲ τὸ Πνεῦμα κτίσμα ἐστίν, ἐπειδὴ καὶ περὶ αὐτοῦ γέγραπται ἐν τῷ ἑκατοστῷ τρίτῳ ψαλμῷ « Ἀντανελεῖς τὸ πνεῦμα αὐτῶν, καὶ ἐκλείψουσιν, καὶ εἰς τὸν χοῦν αὐτῶν ἐπιστρέψουσιν: ἐξαποστελεῖς τὸ Πνεῦμα σου, καὶ κτισθήσονται, καὶ ἀνακαινιεῖς τὸ πρόσωπον τῆς γῆς. »

5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시며, 창조하시는 일에 속하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만물을 창조하십니다. 말씀이 계신 곳에는, 성령도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 창조되는 것들은, 말씀에게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존재할 힘을 지닙니다. 시편 32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굳게 세워졌으며, 그의 입의 영으로 하늘들의 모든 군대가 세워졌다.” 실제로 성령은 이처럼 아들과 나뉠 수 없는 관계에 계십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통해 이 점에 의문을 품지 않게 됩니다. 말씀이 예언자에게 임하셨을 때, 예언자는 말씀에게서 오는 것들을 성령 안에서 말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형제들이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스가랴에서는, 말씀이 그에게 임하신 뒤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너희는 내 말과 내 법도를 받아들여라. 내가 내 영으로 예언자들에게 명하는 모든 것이다.” 조금 뒤에 그는 백성을 꾸짖으며 말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을 완고하게 하여, 내 법들과 말씀들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 말씀들은 주 만군의 하나님께서 자기 영으로, 옛 예언자들을 통해 보내신 것들이다.” 그리스도께서 바울 안에서 말씀하실 때에도, 바울 자신이 말했듯이, “여러분이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의 증거를 찾는다면.” 그는 그와 동시에 자신에게 말할 능력을 주시는 성령을 지녔습니다. 그는 이렇게 씁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내게 주시는 도움에 따라.” 또 그리스도께서 그의 안에서 말씀하실 때, 그는 말했습니다. “다만 성령께서 도시마다 내게 엄숙히 알려 주시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말씀 밖에 계시지 않습니다. 말씀 안에 계시며,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은사들은 삼위일체 안에서 주어집니다. 이 은사들이 나뉘어 주어질 때, 고린도인들에게 썼듯이, 성령은 같은 분이시며, 주님도 같은 분이시고,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도 같은 분이십니다. 아버지 자신이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모든 것을 이루시고 주십니다.

Τούτου δὲ οὕτως γεγραμμένου, δηλὸν ἐστιν, ὡς οὐχ ἔστι κτίσμα τὸ Πνεῦμα, ἀλλ’ ἐν τῷ κτίζειν ἐστίν: ὁ γὰρ Πατὴρ διὰ τοῦ Λόγου ἐν τῷ Πνεύματι κτίζει τὰ πάντα, ἐπεὶ ἔνθα ὁ Λόγος, ἐκεῖ καὶ τὸ Πνεῦμα: καὶ τὰ διὰ τοῦ Λόγου κτιζόμενα ἔχει 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παρὰ τοῦ Λόγου τὴν τοῦ εἶναι ἰσχύν. Οὕτω γὰρ γέγραπται ἐν τῷ τριακοστῷ δευτέρῳ ψαλμῷ « Τῷ Λόγῳ Κυρίου οἱ οὐρανοὶ ἐστερεώθησαν, καὶ τῷ Πνεύματι τοῦ στόματος αὐτοῦ πᾶσα ἡ δύναμις αὐτῶν. » Ἀμέλει οὕτως ἐστὶ τὸ Πνεῦμα ἀδιαίρετον πρὸς τὸν Υἱόν, ὡς μὴ ἀμφιβάλλειν ἐκ τοῦ λεγομένου. Ὅτε γὰρ ὁ Λόγος ἐγίνετο πρὸς τὸν προφήτην, τὰ παρὰ τοῦ Λόγου ἐν τῷ Πνεύματι ἐλάλει ὁ προφήτης. Οὕτω καὶ γέγραπται ἐν μὲν ταῖς Πράξεσι τοῦ Πέτρου λέγοντος: « Ἄνδρες ἀδελφοί, ἔδει πληρωθῆναι τὴν Γραφήν, ἣν προεῖπε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 ἐν δὲ τῷ Ζαχαρίᾳ, τοῦ Λόγου γενομένου πρὸς αὐτόν, γέγραπται: « Πλὴν τοὺς λόγους μου καὶ τὰ νόμιμά μου δέχεσθε, ὅσα ἐγὼ ἐντέλλομαι ἐν Πνεύματί μου τοῖς προφήταις. » Καὶ μετ’ ὀλίγα, αἰτιώμενος τὸν λαόν, ἔλεγε· « Τὴν καρδίαν αὐτῶν ἔταξαν ἀπειθῆ τοῦ μὴ εἰσακούειν τοὺς νόμους μου, καὶ τοὺς λόγους, οὓς ἐξαπέστειλε Κύριος παντοκράτωρ ἐν Πνεύματι αὐτοῦ, ἐν χερὶ τῶν προφητῶν τῶν ἔμπροσθεν. » Καὶ τοῦ Χριστοῦ δὲ λαλοῦντος ἐν τῷ Παύλῳ, ὡς αὐτὸς εἶπεν· « Εἰ δοκιμὴν ζητεῖτε τοῦ ἐν ἐμοὶ λαλοῦντος Χριστοῦ· » οὐδὲν ἧττον τὸ Πνεῦμα εἶχεν ἐπιχορηγοῦν αὐτῷ τὸ λαλεῖν. Οὕτω γὰρ αὐτὸς γράφει· « Κατὰ τὴν ἐπιχορηγίαν τοῦ Πνεύματο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εἰς ἐμέ. » Πάλιν τε τοῦ Χριστοῦ ἐν αὐτῷ λαλοῦντος, ἔλεγε· « Πλὴν ὅτι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κατὰ πόλιν διαμαρτύρεταί μοι, λέγον, ὅτι δεσμὰ καὶ θλίψεις με μένουσιν. » Οὐ γὰρ ἐκτός ἐστι τοῦ Λόγου τὸ Πνεῦμα, ἀλλὰ ἐν τῷ Λόγῳ ὂν, ἐν τῷ Θεῷ δι’ αὐτοῦ ἐστιν· ὥστε τὰ χαρίσματα ἐν τῇ Τριάδι δίδοσθαι. Ἐν γὰρ τῇ τούτων διαιρέσει, ὡς Κορινθίοις γράφει, τὸ αὐτὸ Πνεῦμά ἐστι καὶ ὁ αὐτὸς Κύριος, καὶ ὁ αὐτὸς Θεός ἐστιν ὁ ἐνεργῶν τὰ πάντα ἐν πᾶσιν. Αὐτὸς γὰρ ὁ Πατὴρ διὰ τοῦ Λόγου ἐν τῷ Πνεύματι ἐνεργεῖ καὶ δίδωσι τὰ πάντα.

6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삼위일체 안에서 기도하며 말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사귐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성령에게 참여하여, 말씀의 은혜를 지니며, 말씀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도 지닙니다. 삼위일체의 은혜가 하나이듯이, 그와 같이 삼위일체는 나뉠 수 없으십니다. 이 점은 거룩한 마리아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 위에 이루어질 말씀의 내려오심을 알리려고 파송되어, “성령께서 네 위에 오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씀 안에 성령이 계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곧바로 덧붙였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의 지혜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말씀 안에 계시므로, 말씀을 통해 하나님 안에도 성령이 계심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실 때, 아들과 아버지가 오셔서, 우리 안에 거처를 마련하실 것입니다. 삼위일체는 나뉠 수 없으며, 그 신성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분 하나님이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해, 만물 안에 계십니다. 이것이 보편 교회의 신앙입니다. 주님께서는 삼위일체 안에서 교회에 기초를 놓고 뿌리를 내리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라.” 성령이 피조물이었다면, 주님께서는 성령을 아버지와 같은 부류에 두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삼위일체가 서로 다르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낯설고 관계없는 어떤 것이 삼위일체에 포함되어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무엇이 부족하여, 다른 본질의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과 함께 영광을 받으셔야 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조차 없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나는 충만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자신이 성령을 아버지의 이름과 나란히 두셨습니다. 거룩한 삼위일체가 서로 다른 것들, 곧 창조주와 피조물로 이루어지지 않으셨음을 밝히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신성은 하나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배워, 삼위일체 안에서 주어지는 은혜가 하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한 분 주님, 한 믿음, 한 세례.” 세례가 하나이듯이, 믿음도 하나입니다. 아버지를 믿는 이는, 아버지 안에 아들이 계심을 알고, 성령이 아들 밖에 계시지 않음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아들과 성령도 믿습니다. 삼위일체의 신성은 하나이며, 한 분 아버지에게서 알려지기 때문입니다.

Ἀμέλει, ἐπευχόμενος Κορινθίοις, ἐν τῇ Τριάδι ηὔχετο λέγων· « Ἡ χάρι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καὶ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καὶ ἡ κοινωνία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μετὰ πάντων ὑμῶν. » Τοῦ γὰρ Πνεύματος μετέχοντες, ἔχομεν τὴν τοῦ Λόγου χάριν, καὶ ἐν αὐτῷ τὴν τοῦ Πατρὸς ἀγάπην. Ὡς δὲ μία τῆς Τριάδος ἡ χάρις, οὕτως ἀδιαίρετος ἡ Τριάς. Τοῦτο δ’ ἄν τις ἴδοι καὶ ἐπ’ αὐτῆς τῆς ἁγίας Μαρίας. Ὁ γὰρ ἄγγελος Γαβριὴλ, ἀποσταλεὶς ἀπαγγεῖλαι τὴν ἐπ’ αὐτῆς ἐσομένην τοῦ Λόγου κάθοδον, « Πνεῦμα ἅγιον, » εἴρηκεν, « ἐπελεύσεται ἐπὶ σὲ, » εἰδὼς, ὅτι ἐν τῷ Λόγῳ ἦν τὸ Πνεῦμα· εὐθὺς γοῦν συνῆψε· « Καὶ δύναμις Ὑψίστου ἐπισκιάσει σοι. Χριστὸς γὰρ Θεοῦ δύναμις καὶ Θεοῦ σοφία. » Τοῦ δὲ Πνεύματος ὄντος ἐν τῷ Λόγῳ, δῆλον ἂν εἴη, ὡς καὶ ἐν τῷ Θεῷ ἦν διὰ τοῦ Λόγου τὸ Πνεῦμα. Οὕτω δὲ καὶ τοῦ Πνεύματος γενομένου ἐν ἡμῖν, ἐλεύσεται ὁ Υἱὸς, καὶ ὁ Πατὴρ, καὶ μονὴν ποιήσουσιν ἐν ἡμῖν. Ἀδιαίρετος γὰρ ἡ Τριὰς, καὶ μία ταύτης ἡ θεότης· καὶ εἷς Θεὸς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ν. Αὕτη τῆς καθολικῆς Ἐκκλησίας ἡ πίστις· ἐν Τριάδι γὰρ αὐτὴν ἐθεμελίωσε καὶ ἐῤῥίζωσεν ὁ Κύριος, εἰρηκὼς τοῖς μαθηταῖς· « Πορευθέντες, μαθητεύσατε πάντα τὰ ἔθνη, βαπτίζοντες αὐτοὺς εἰς τὸ ὄνομα τοῦ Πατρὸς, καὶ τοῦ Υἱοῦ καὶ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 Κτίσμα δὲ εἰ ἦν τὸ Πνεῦμα, οὐκ ἂν συνέταξεν αὐτὸ τῷ Πατρί· ἵνα μὴ ᾖ ἀνόμοιος ἑαυτῇ ἡ Τριὰς, ξένου τινὸς καὶ ἀλλοτρίου συντασσομένου αὐτῇ. Τί γὰρ ἔλειπε τῷ Θεῷ, ἵνα ἀλλοτριούσιον προσλάβηται, καὶ σὺν αὐτῷ δοξάζηται; Μὴ γένοιτο! Οὐκ ἔστιν οὕτως. « Πλήρης, » αὐτὸς εἶπεν, « εἰμί. » Διὰ τοῦτο αὐτὸς ὁ Κύριος τῷ ὀνόματι τοῦ Πατρὸς αὐτὸ συνέταξεν· ἵνα δείξῃ, ὅτι οὐκ ἐκ διαφόρων, τουτέστιν ἐκ κτίστου καὶ κτίσματος, συνέστηκεν ἡ ἁγία Τριάς· ἀλλὰ μία ταύτης ἡ θεότης ἐστί. Τοῦτο μαθὼν ὁ Παῦλος, ἐδίδαξε μίαν εἶναι τὴν ἐν αὐτῇ διδομένην χάριν, λέγων· « Εἷς Κύριος, μία πίστις, ἓν βάπτισμα. » Ὥσπερ δὲ ἓν βάπτισμα, οὕτως καὶ μία πίστις· ὁ γὰρ πιστεύων εἰς τὸν Πατέρα οἶδεν ἐν τῷ Πατρὶ τὸν Υἱὸν, καὶ τὸ Πνεῦμα, οὐκ ἐκτὸς τοῦ Υἱοῦ· καὶ διὰ τοῦτο πιστεύει καὶ εἰς τὸν Υἱὸν καὶ εἰ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ἐπειδὴ καὶ μία τῆς Τριάδος ἡ θεότης, ἐξ ἑνὸς τοῦ Πατρὸς γινωσκομένη.

7

그러므로 이것이 보편 신앙의 특징입니다. 성령을 모독하며, 피조물이라고 하는 이들은, 지금까지 말한 것들로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제 말할 것들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수그러들도록 하십시오. 삼위일체이시고, 믿음이 삼위일체 안에 있다면, 그들은 말해 보십시오. 삼위일체는 언제나 삼위일체이십니까? 아니면 삼위일체가 아니셨던 때가 있었습니까? 삼위일체가 영원하시다면,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시며, 영원히 말씀과 함께 말씀 안에 계십니다. 피조물들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피조물이고, 피조물들이 존재하지 않던 데서 왔다면, 삼위일체가 아니셨던 때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때에는 둘이셨을 것입니다. 이보다 더 불경한 말을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변화와 발전을 통해 삼위일체가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먼저 둘이 계시다가, 피조물의 생성을 기다려, 그 피조물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포함되고, 삼위일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들어오는 일조차 결코 없기를 바랍니다! 아들은 언제나 계시므로 피조물이 아니시듯이, 삼위일체도 언제나 계시므로, 그 안에는 피조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삼위일체는 언제나 계셨던 대로, 지금도 계십니다. 지금 계신 대로, 언제나 계셨으며 계속 계십니다. 그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계십니다. 한 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며, 그는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해, 만물 안에 계십니다. 그는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요청하신 대로, 이 내용도 짤막하게 적어 보냈습니다. 당신은 지혜로우시므로, 이 글에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채워 주시기 바랍니다. 같은 신앙에 속한 이들에게 읽어 주시고, 다투며 모독하는 이들은 반박하십시오. 그들은 늦게라도 언젠가 생각을 바꾸어, 자기 영혼에서, 앞서 품었던 사악한 생각을 씻어 낼지도 모릅니다. 기록된 말씀에 따라 그들은, 거기서 벗어나고 오래 머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대로 머물다가 주님께서 하신 다음 말씀을 듣지 않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이는, 이 시대에도 오는 시대에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Τῆς μὲν οὖν καθολικῆς πίστεως ὁ χαρακτὴρ οὗτος. Οἱ δὲ δυσφημοῦντες εἰς τὸ Πνεῦμα, καὶ λέγοντες αὐτὸ κτίσμα, εἰ μὴ ἐκ τῶν εἰρημένων μεταγινώσκουσι, κἂν ἐκ τῶν λεχθησομένων αἰσχυνόμενοι καταδυέτωσαν. Εἰ Τριάς ἐστι, καὶ ἐν Τριάδι ἐστὶν ἡ πίστις, εἰπάτωσαν, εἰ ἀεὶ Τριάς ἐστιν, ἢ ἦν, ὅτε οὐκ ἦν Τριάς. Εἰ μὲν οὖν ἀΐδιός ἐστιν ἡ Τριὰς, οὐκ ἔστι κτίσμα τὸ Πνεῦμα, ἀϊδίως σὺν τῷ Λόγῳ καὶ ἐν αὐτῷ ὄν. Τὰ γὰρ κτίσματα ἦν, ὅτε οὐκ ἦν. Εἰ δὲ κτίσμα ἐστὶ, τὰ δὲ κτίσματα ἐξ οὐκ ὄντων ἐστὶ, δῆλον, ὅτι ἦν, ὅτε οὐκ ἦν Τριὰς, ἀλλὰ δυάς. Καὶ τί τούτου ἀσεβέστερον ἄν τις εἴποι; Ἐκ μεταβολῆς καὶ προκοπῆς λέγουσι συνίστασθαι τὴν Τριάδα, καὶ δυάδα μὲν εἶναι, ἐκδέχεσθαι δὲ κτίσματος γένεσιν, ἵνα μετὰ Πατρὸς καὶ Υἱοῦ συνταχθῇ καὶ γένηται ἡ Τριάς. Μὴ γένοιτο κἂν εἰς νοῦν ποτε ἐλθεῖν Χριστιανῶν τὸ τοιοῦτον! Ὥσπερ γὰρ ἀεὶ ὢν ὁ Υἱὸς οὐκ ἔστι κτίσμα, οὕτως ἀεὶ οὔσης τῆς Τριάδος, οὐδέν ἐστιν ἐν αὐτῇ κτίσμα· διὸ οὐκ ἔστι κτίσμα τὸ Πνεῦμα. Ὡς γὰρ ἀεὶ ἦν, οὕτως ἐστὶ καὶ νῦν· καὶ ὡς νῦν ἐστὶν, οὕτως ἀεὶ ἦν, καὶ ἔστιν ἡ Τριὰς, καὶ ἐν αὐτῇ Πατὴρ, καὶ Υἱὸς, καὶ Πνεῦμα ἅγιον. Καὶ εἷς Θεὸς ὁ Πατὴρ ὁ ἐπὶ πάντων, καὶ διὰ πάντων, καὶ ἐν πᾶσι, ὅς ἐστιν εὐλογητὸ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Ἀμήν. Ἐγὼ μὲν οὖν, ὡς ἐδήλωσας, δι’ ὀλίγων καὶ ταῦτα καταγράψας ἀπέστειλα· σὺ δὲ ὡς συνετὸς, εἴ τι καὶ ἐν τούτοις λείπει, θέλησον πληρῶσαι· καὶ τοῖς μὲν οἰκείοις τῆς πίστεως ἀνάγνωθι, τοὺς δὲ φιλονεικοῦντας δυσφημεῖν ἔλεγχε· τάχα κἂν ὀψέ ποτε μεταγνόντες, ἀπονίψωσιν ἀπὸ τῆς ψυχῆς ἑαυτῶν τὴν προγενομένην ἐν αὐτοῖς κακόνοιαν. Καλὸν γὰρ αὐτοὺς, κατὰ τὸ γεγραμμένον, ἀποπηδῆσαι καὶ μὴ ἐγχρονίσαι· ἵνα μὴ ἐπιμένοντες ἀκούσωσι τὸ εἰρημένον ὑπὸ τοῦ Κυρίου· « Ὃς δ’ ἂν εἴπη κατὰ τοῦ Πνεύματος τοῦ ἁγίου, οὐχ ἀφεθήσεται αὐτῷ οὔτε ἐν τῷ αἰῶνι τούτῳ, οὔτε ἐν τῷ μέλλοντι. »

번역 메모
  1. 1 본문으로

    성령에 관한 요약을 요청받고 먼저 성자를 논한 이유를 설명한다. 성자와 성부의 고유한 관계를 아는 것이 성령과 성자의 관계를 이해하는 근거라고 한다.

    요 16:13-15, 20:22, 갈 4:6, 요 15:26, 고전 2:11-12 등을 연결한다. 성령은 아들의 영인 동시에 하나님의 영으로 고백된다.

  2. 2 본문으로

    성자를 피조물과 구별하는 논증을 성령에게 적용한다. 피조물은 존재하지 않던 데서 생겨나지만 성자와 성령은 하나님에게서 오신다는 구별이다.

    성령을 피조물이라고 하면 성자도 피조물이라고 하게 되고, 성자를 부인하면 성부도 잃는다는 연결이 논증의 서두에 놓인다.

  3. 3 본문으로

    기름부음과 인장으로서 성령은 피조물에게 그리스도의 모습을 새기신다. 성령을 지닌 사람이 성자도 지니며 하나님의 성전이 된다는 내주 논증이 이어진다.

    고전 8:6의 한 분 하나님과 한 분 주님을 근거로 많은 피조물과 유일한 성자와 성령을 구별한다. 첫 서신 23-27절의 논증을 요약하여 다시 적용하는 부분이다.

  4. 4 본문으로

    피조물은 장소에 제한되지만 성자는 만물을 유지하며 성부 안에서 모든 곳에 계신다는 구별을 성령에게 적용한다. ‘만물을 초월하여’는 ἔξω τῶν πάντων을 옮긴 표현이다.

    이어 성자와 성령을 창조되는 것들과 구별한다. 본문의 시편 103편은 일반적인 한국어 성경의 104편에 해당한다.

  5. 5 본문으로

    아버지가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창조하고 모든 선물을 주신다는 논증이다. 예언자와 바울의 증언을 통해 말씀이 말씀하시는 일과 성령이 말할 능력을 주시는 일을 연결한다.

    시편 32편은 일반적인 한국어 성경의 33편에 해당한다. 행 1:16과 20:23, 스가랴의 말씀, 고전 12장의 은사에 관한 진술이 함께 쓰인다.

  6. 6 본문으로

    고린도인들을 위한 기도, 마리아에게 한 가브리엘의 말, 세례 명령을 연결하여 은혜와 신성이 하나인 삼위일체를 설명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다’는 눅 1:35의 말이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자 하나님의 지혜’는 고전 1:24를 통한 아타나시우스의 설명이다. 번역에서는 두 인용의 화자를 구별했다.

  7. 7 본문으로

    성령이 피조물이라면 삼위일체가 아니었던 때와, 둘에서 셋으로 변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맞논증이다. 삼위일체의 영원함을 근거로 그 안에 피조물이 없다고 결론 내린다.

    끝에서는 세라피온에게 글을 보충하고 같은 신앙을 지닌 이들에게 읽어 주며 반대자들을 반박해 달라고 요청한다. 성령 모독에 대한 경고로 서신을 맺는다.

판본 정보

보존 판본 alpha-0.24.1

Migne PG 26(1857), 624-637단 중 제3서신 1-7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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